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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식(Son, YoungSick) 한국동양철학회 2011 동양철학 Vol.0 No.35
문석윤 선생의 미발 개념을 비판하면서, 이승환 선생은 미발 공부론을 제시했다. 미발은 의식의 미지향적 국면, 혹은 최소 의식이라 한다. 공부 방법은 예를 들자면, ‘비디오 테잎을 통한 자기 관찰법’같은 성찰이다. 그는 미발이든 이발이든 의식의 일부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공부론에서 출발한다. 공부는 ‘의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형이상학을 배제한다. 왜 그러한가? 이승환은 현실에 있는 것에 근거한다. 그것은 지각 경험에 의해서 확인된다. 그래서 ‘미발=최소 의식’이라 한다. 반면 성리학은 형이상학이며, 리기 등의 개념은 요청된 것이다. 미발은 ‘성리(性理)’를 규정하는 말이다. 그는 미발의 의미를 주희와 이황의 문헌에서 훈고학적으로 증명하려 한다. ‘미발=의식’이라 하므로 심리학으로 나간다. 문제는 그의 훈고고증에 있다. 그는 주희가 ‘틀린 미발 공부’라 한 것을 ‘틀린 미발 개념’으로 간주한다. ‘미발 공부 방법’과 ‘미발 개념’은 다르다. 논리적으로 보아도, ‘미발=무의식’에 가까운 개념이므로 주희와 이황의 제자들이 요명적멸窈冥寂滅한 의식 상태에 빠지려 한 것이다. ‘미발=최소 의식’이라면 그렇게 했겠는가? 주희는 미발을 ‘思慮未萌 知覺不昧’라 규정한다. 사려미맹이란 개인의 사려가 싹트기 이전의 것, 즉 개인성을 떠난 보편타당한 상태이며, 과불급이 없고 치우침(偏倚)이 없는 상태이다. 경험 이전의 ‘선험적’이라는 뜻에 가깝다. 지각불매란 최소 자아(현재의 자아)를 뜻한다. 그 자아는 인식을 하되, 인식 대상이 되지 못 한다. 따라서 지각불매로서 미발은 인식 대상이 아니다. 이승환은 이발 미발을 의식의 상태로 규정한다. 이는 미발과 이발을 리기의 대립된 대칭성으로 파악하는 성리학과 다르다. 미발이 최소 의식이라면 공부가 불필요하다. 마음 수양이란 가능태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최소 의식은 그냥 주어지는 것(현실태)이다. 비디오 테잎에 한 자기 관찰법은 이발의 성찰이지, 미발 함양은 아니다. 미발 공부법인 계신공구(戒愼恐懼)는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이 없다. 미발의 자아를 키우는 것(함양)이기 때문이다. 이승환은 개인의 욕망과 영리심이 서양 근대의 자본주의를 가져왔다고 본다. 이는 틀렸다. 만약 이기심만 앞선다면, 자본주의로 나가기보다는 침략으로 나갈 것이다. 보편적 진리와 당위(선험성)를 추구했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 기술 혁명 자본주의로 나갔을 것이다. Criticizing Prof. Moon, Suk-yoon’s concept of wei-fa (the feeling & thinking are not aroused yet), Prof. Lee Seung-Hwan presented the practicing wei-fa theory. He said wei-fa is a pre-intentional aspect of consciousness or minimal consciousness, such as a video-tape self-observation. He presupposes that either wei-fa or yi-fa(the feeling & thinking are aroused) is a consciousness. So he departs from the practicing wei-fa theory. Because we can practice within a consciousness. He based on the actuality which is confirmed by a perception & experience. He excludes metaphysics such as li, qi etc. But metaphysical concepts are not experienced, but postulated. He tried to prove his wei-fa conception by a scholastic method within Zhuxi’s & Yi Whang’s writings. But it is wrong, because he regards ‘a wrong method of practicing wei-fa’ as ‘a wrong concept of wei-fa’ which were mentioned by Zhuxi & Yi Whang. And let’s think logically, ‘wei-fa is the unconscious (quietness)’, so the students of Zhuxi tried to get into the state of quietness without any promptings of consciousness. If wei-fa is a minimal consciousness, did they do such thing? Zhuxi defined wei-fa as ‘thinking is not aroused’ & ‘perception is not dark’. The former means ‘a state that personal thinking, i.e., individuality is not rising.’ It is similar to ‘pre-experience, transcendental, universal validity’. The latter means one's minimal self, or present self which can perceive all other things, but cannot recognize itself. So Zhuxi recommended his pupils not to perceive wei-fa self, but to nourish it. Zhuxi made a symmetrical theory of li & qi. But Prof Lee consider both wei-fa & yi-fa are consciousness. so they can not be symmetrical. Minimal consciousness is always given, so it’s not an object of practice. A video-tape self-observation is a yi-fa self-examination, not a wei-fa nourishing. Prof Lee assumes that seeking profit mind & desire brought the modern capitalism. It is wrong. If men are persuading only a profit, they will plunder, rather than produce capitalistically. I think essence of western modernity is the transcendentalism which push up the modern science & the Industrial Revolution.
홍성민(Hong, Seong mean) 대한철학회 2011 哲學硏究 Vol.118 No.-
이 논문의 목적은 ‘朱子 未發 晩年說’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未發時 知覺不昧에 관한 주자의 입장을 재확인해보는 데 있다. 주자는 처음 미발을 復卦로 상징하였다가 만년에는 곤괘로 그 상징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이 점에 주목하여 주자가 만년에 미발의 지각 상태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바꾸었다고 이해하였다. 이른바 주자의 미발 만년설이 그것이다. 또한 현대의 연구자들은, 주자의 미발 만년설에 관한 상이한 이해로 말미암아 조선의 지성계에서는 다양한 논쟁과 분기가 발생하였는데, 이것은 주자의 미발론에 잠복해있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해결하고 주자 미발론을 적극 발전시켜 나간 과정이었다고 평가한다.그러나 이 논문은 주자가 자신의 미발론을 시종 바꾼 적이 없었으며 주자 미발론 내에 어떠한 딜레마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은 주자의 만년설 텍스트에 대한 고증적 분석을 통해, 미발에 관한 주자의 만년 논의는 정이천에 대한 주자의 비평적 메타언어이지 주자 본인의 일차적 진술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점에 입각해보면, 주자의 미발 만년설은 그 입지가 미약하다고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주자는 평생 미발에 대해 일관된 견해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주자 미발 만년설에 대한 재고를 촉구하고 있다. The article examines that Zhu-Xi’s late theory on weifa(未發, the unaroused state) is invalid, and re-verifies that Zhu-Xi’s opinion on zhijuebumei(知覺不昧, awareness is not benighted) remained unchanged. It seems that Zhu-Xi used Fu-Gua(復卦, Hexagram of Recover) to symbolize state of weifa at first, but at late years he changed Fu-Gua into Kun-Gua(坤卦, Hexagram of Earth) to symbolize state of weifa. Korean Neo-Confucianist paid attention to this fact, and so figured out that Zhu-Xi changed his own opinion about state of weifa. It is so-called ‘Zhu-Xi’s late theory on weifa’. Furthermore, contemporary Korean Neo-Confucianism researchers evaluate that division of Korean Neo-Confucian schools were due to different views of the Zhu-Xi’s late theory on weifa. Moreover they find out that the important value of Korean Neo-Confucianism development is to resolve the dilemma of Zhu-Xi’s theory on weifa.However, the article fundamentally insists that Zhu-xi had never changed his own theory on weifa but also his dilemma have never existed from the first. The article tries to analyze Zhu-Xi’s late texts on weifa by textual critical aptitude, and so insists that Zhu-Xi’s late texts on weifa is regarded as his critical meta-language to annotate Cheng Yi-Chuan’s statements. In conclusion, the article asserts that Zhu-Xi had consistent opinion on weifa in his whole life, and so urges to reconsider ‘Zhu-Xi’s late theory on weifa’.
한자경(Ja-Kyoung Han) 한국철학회 2015 철학 Vol.0 No.123
본고는 미발지각으로 주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 관점에서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발지각에 관한 논의를 검토해보았다. 주희 성리학에서의 미발지각의 의미를 논하기 위해 주희의 인간 본성의 이해 및 병술지오(중화구설)와 기축지오(중화신설)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밝힌 후 ‘희노애락지미발’, ‘사려미맹’, ‘지각불매’로 압축되는 미발지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현대 한국에서 제기되는 미발에 관한 논쟁을 검토하였다. 미발의 형이상자를 마음활동 없는 성=리로만 간주하는 문석윤, 그를 비판하며 미발을 오히려 경험적 의식으로 해명하는 이승환, 다시 미발이 경험적 의식일 수 없음을 강조하며 미발=성=리를 주장하는 손영식의 입장을 살펴보았는데, 문제는 두 입장 모두 미발=성=리=보편, 이발=심=기=개별이라는 이원 구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양 항을 ‘본체로서의 미발’과 ‘공부로서의 미발’로 종합하려는 이상돈도 미발지각에 대한 천착이 결여됨으로써 결국 이 이원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반면 본고는 주희 기축년 깨달음의 핵심을 바로 이러한 이원구도를 깨는 미발지각의 발견으로 논하였다. 미발지각은 개별인간 안에 깃든 보편적 천지지심인 심층마음의 허령불매의 활동성이라는 것, 이 미발지각의 발견이 성리학을 포함한 동양 형이상학의 핵심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다.
주희와 이황의 미발(未發) 이론에 대한 논쟁 : 이승환 선생의 미발 개념 비판
손영식(Son Young-Sick) 한국동양철학회 2009 동양철학 Vol.0 No.31
마음을 기로 보는 물질주의적 경향이 있다. 이승환 선생은 ‘미발=미지향성’으로 본다. 이 또한 그런 경향 가운데 하나이다. ‘未發’은 『중용』에 나오지만, 『예기』 「악기」의 감응 이론으로 이해된다. 정이가 장재학파와의 토론 속에서 처음 미발 개념을 제시한다. 주희는 호남학파와 대결하면서 미발 개념을 확립한다. 이황은 서경덕 제자들과 접하면서 미발을 이해한다. 그들은 기=개체성을 주장하는 기론자들과 대결하면서, 미발 개념에 ‘선험성 보편성’을 근거시켰다. 이승환은 미발을 개인의 심리로 본다.(심리학주의) 그 결과 도덕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정초시키기 어렵다. 이는 사실에서 당위를 이끌어내는 자연주의적 오류라 할 수 있다. 그는 ‘미발 ≠ 의식 두절 상태“임을 훈고로 증명한다. 그러나 ‘미발=미지향성’은 훈고하지 못 한다. 미발을 규정하는 서양 학문의 용어는 내적 통일성이 없다. 게다가 미지향성이라는 말은 노에마(인식 기능)라 하는 것이 더 낫다. 성리학에서 미발과 태극은 리를 규정하는 핵심 용어이다. 미발은 선험성 보편성을, 태극은 규범성 모범성을 규정하는 말이다. 미발은 인식 대상이 아니라, 함양할 것이다. 미발은 자아의 선험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미발 개념은 근대성의 핵심이다. There is a trend that regard mind as a material force(qi). In this context, Prof. Lee Seung Whan presented an idea that 'being not aroused yet'(未發; NAY) is pre-intentional. NAY is in the head of “the Doctrine of the Mean”, but most researchers understand that concept in the light of a stimulus - response theory of “Liji(Classic of Rites) Yueji(Classic of Music)” In discussing with Zhang Zai & his disciples, Ch’eng I presented the concept of NAY first. In the confrontation with Hunan scholars, Zhuxi established NAY theory. Yi Whang came in contact with the students of Seo Kyung Duck, he recognized NAY. They competed with the materialist, they developed NAY as transcendentality. Prof Lee considered NAY as personal consciousness. This is a kind of psychologism & the naturalistic fallacy that take the ought out of the fact. He tried to verify that NAY is not a coma, but he didn't verify that NAY is a intentionality. Zhuxi defined Li(principle) with the concept of NAY & Taiji (great ultimate). NAY is a transcendentality & universality. Taiji is a standard & ideal. NAY is a ground of transcendental ego.
이선열(Yi, Sun-Yuhl)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0 철학사상 Vol.36 No.-
미발(未發)과 기질(氣質)의 관계는 중화론(中和論)과 이기론(理氣論)이라는 주자학의 두 논의범주가 중첩되면서 발생하는 논리적 문제로, 이는 율곡학파 특유의 논점과 결합하여 더욱 증폭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주희는 중화신설을 정립하며 미발을 현상 너머의 초월적 본체가 아닌 ‘마음’의 한 국면으로 규정하였는데, 여기에 심(心)을 기(氣)로 보는 율곡학파의 인식이 투영되자 심의 한 부분인 미발 또한 결국 기의 조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에 송시열과 박상현은 미발을 기질 개념과 결부하여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놓고 이론적으로 대립한다. 박상현에게 미발이란 ‘대상사물과 감응하기 이전’이라는 마음의 한 시점을 뜻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시간적 관념이 우선하며 특정한 도덕적 함의가 들어있지 않다. 그에게 미발은 곧바로 중(中)의 상태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박상현은 마음을 이루는 기의 청탁(淸濁) 여하에 따라 미발시에도 중(中)과 부중(不中) 또는 선과 악이 모두 존재할 수 있다는 입장에 선다. 이러한 그의 논리는 성인과 보통사람은 각각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미발에 있어서도 서로 동일하지 않다는 성범부동론(聖凡不同論)의 견해로 이어진다. 반면 송시열은 미발이란 곧 마음이 중의 상태에 있음을 일컫는 것이요, 미발 개념을 규정함에 있어 기질의 편차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미발은 단지 사물과 접하지 않은 시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이상태로서의 의미를 그 자체로 함축한다. 그는 기품 여하와 무관하게 천리와 소통하는 마음자리로서 미발의 이념적 위상을 확보하고자 하며, 이에 기질의 영향이 실제화되는 시점을 이발(已發) 이후로 한정하여 미발과 기질의 상관성을 아예 차단시킨다. 송시열에게 미발이란 본성 또는 천리와 동등한 보편성을 가지며, 따라서 성인과 범인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동질적으로 체험될 수 있는 심적 상태로 간주된다. 이러한 두 사람의 견해차는 훗날 호학과 낙학의 입장 대립과 큰 틀에서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Debate on Mibal(未發) between Song Si-Yeol and Park Sang-Hyun: Focusing on the problem of understanding mibal in relation to kijil(氣質). Song Si-Yeol and one of his disciples Park Sang-Hyun disagree with each other as to whether it is legitimate to understand mibal (未發) in relation to kijil(氣質, temperament). The disagreement between them stems from the fact that their versions of mibal differ from each other. According to Park, mibal is a certain time prior to the mind"s making contact with an object. From this view, mibal is basically a temporal notion and does not contain any ethical implications in particular. For Park, mibal is not equated with the notion of centrality(中). He argues that centrality and incorrectness (不中), or good and evil, may coexist, even in the state of mibal. This leads to the view that a sage and a layman cannot be the same in terms of mibal, for they differ in temperament. On the other hand, Song contends that mibal is the mind in the state of centrality. According to him, the difference in temperament should not be taken into account when expounding the concept of mibal. He holds that mibal is not a mere temporal point prior to the contact to an object, but an ideal entity that contains moral significance by itself. Song aims to provide a metaphysical basis of mibal that interprets it as the realm of a mind that is connected to the Heavenly Principle(天理). For this reason, he claims that the difference in temperament can only be displayed in the state of yibal(已發), precluding the interconnection between mibal and temperament. According to Song, mibal, like sung(性) and li(理), is universally applied. Thus, it can be experienced by every member of mankind, sages and laymen alike. In general, the difference of opinion on this matter between Song and Park corresponds to the later disagreement between the Ho-hak line(湖學) and the Rak-hak line(洛學).
한정길(韓正吉) 한국양명학회 2009 陽明學 Vol.0 No.23
이 글에서는 송명리학의 주요 논제인 ‘未發’ 문제에 대한 王陽明의 견해를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 왕양명이 ‘주자의 미발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주자가 미발 탐구를 통하여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왕양명의 미발관의 특징은 무엇인지’, ‘미발 문제에 대한 왕양명의 해결 방식이 지닌 의의는 무엇인지’ 등의 문제들을 다루었다. 주자의 미발설에 대한 왕양명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思慮未萌?知覺不昧’의 미발상태를 ‘자기 중심성이 탈락한 순일한 의식의 상태’인 ‘未發之中’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미발상태는 자기중심적으로 흐를 수 있는 氣가 아직 작용하지 않은 상태에 불과할 뿐, 사욕이 없는 순수한 도덕본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발시의 존양공부를 통해서는 已發之和를 확보하기 어렵다. 또 하나는 ‘미발시에 지각자는 있지만 지각되는 것은 없다’고 봄으로써 미발시의 본체체인이나 성찰공부를 근본적으로 막아버렸다는 점이다. 미발시에 도덕본체에 대한 체인이나 성찰공부가 없다면 도덕실천 역량이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주자의 미발설은 도덕본체[본성]를 실현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되기에는 문제가 있다. 주자학의 미발규정과 미발시의 존양공부에 대한 양명의 비판이 가능한 것은 그가 미발을 주자학에서와는 전혀 달리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명은 ‘미발’과 ‘이발’을 주자학에서와 같이 마음의 어떤 상태나 국면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고, ‘마음의 본체[心體]’와 ‘마음의 작용[心用]’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양명은 끊임없이 활동하면서 만물을 창생하고 주재하는 本性[理]을 ‘마음의 본체[心體]’로 삼고, 그것을 ‘未發之中’으로 규정한다. 心體는 私欲이 없는 순수한 천리[心卽理]이기 때문에 어디에도 치우치거나 의지함이 없는 ‘未發之中’ 일 수 있다. 그 心體[未發之中]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일반인들은 私欲이 심체를 가리고 있기 때문에 미발지중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욕을 제거하는 공부가 요구된다. 이 공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心體가 스스로 자신을 체인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양명은 心體가 이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 능력이 바로 良知이다. 양명은 天性이 스스로를 환하게 드러내는 밝은 능력[明覺]을 ‘良知’로 규정한다. 양지는 바로 ‘天性과 明覺’의 통일체이다. 이것은 심체 자체가 스스로를 환하게 드러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 것으로서, 良知를 心體로 규정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良知가 未發之中으로 규정되기에 이른다. 마음의 본체인 양지가 미발지중으로 규정됨으로 해서 양명은 양지 체용일원의 틀로 미발이발에 관한 기존의 다양한 언급들을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본성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그 이론적 토대를 良知論을 통해서 마련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① 사려 발생의 시간적 선후를 의미하는 未發?已發의 개념과 心體로서의 未發=未發之中=良知의 맥락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 ② 未發之中이 본체 곧 양지로서 의미되는 맥락과 수행의 결과로서 도달되는 심의 경계로서 의미되는 맥락을 구분해 주었다는 점, ③ 心體와 心의 動靜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드러내주었다는 점, ④ 未發之中과 已發之和의 관계를 양지의 체용 관계로 설명한다는 점, ⑤ 中和를 실현하는 공부를 致良知 공부로 통일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 등의 이론사적 의의를 지닌다. 왕양명의 미발론이나 중화론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드문 이유도, 왕양명철학에서는 그것들이 모두 양지론으로 전환되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홍성민(洪性敏) 한국동양철학회 2008 동양철학 Vol.0 No.29
본 연구는 마음의 구조에 관한 朱子의 언급을 분석하여, 주자 미발론의 도덕철학적 함의를 밝힌 글이다. 주자는 미발 때의 마음을 일상의 수양을 위한 기반으로 삼기 위해, 미발 때에도 지각이 활동한다고 주장하였다. 미발 때에는 마음의 본연 상태가 보존되어 있는데, 그 본래 상태를 주자는 虛靈不昧라고 표현하였다. 허령불매란 萬理를 구비하고 萬事에 응할 수 있는 본래의 도덕 능력을 가리킨다. 그래서 미발의 마음은 지선한 도덕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미발 때의 지각 활동 역시 순선한 것이 된다. 그러나 已發의 시점에서 본 연의 마음 상태는 잘못되기 쉽다. 왜냐하면 대상 지향적 의식 활동에는 주체의 사적 정당화라는 위험성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발의 마음을 존양하는 공부를 통해 이발의 乖戾를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敬의 공부이다. 敬은 動靜을 관통하지만 미발 때에 더 집중되어야 한다. 미발의 순선한 상태를 잘 존양해야 이발에서 中節한 和로 실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보경 ( Choi Bo-kyung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7 용봉인문논총 Vol.- No.51
이 논문에서는 ‘미발지중(未發之中)’에 대한 나흠순과 율곡의 해석을 근거로 미발의 때에 요구되는 수양론의 특성을 분석하고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미발지중’에 대한 해석은 성리학자들의 미발론을 파악하기에 유의미한 주제이다. 따라서 나흠순과 율곡의 미발의 중에 대한 해석을 비교·분석함으로써 그들의 수양론적 특징을 이해하고자 한다. 나흠순의 ‘미발지중’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첫째, 미발의 중을 본체의 의미에서 천명지성(天命之性)으로 보고, 인간을 넘어 사물까지 적용되는 개념으로 확장했다. 둘째, 미발의 중을 체인(體認)하기 위해 사(思) 개념을 미발의 때에도 적용했다. 셋째, 미발의 중을 존재 일반의 본체 개념으로 보고, 존양(存養) 공부를 축소하고 궁리(窮理)를 중심으로 객관성에 초점을 둔 수양론을 구축하고자 했다. 율곡은 ‘미발지중’을 인간 심에 대한 논의로 한정하고, 함양 공부를 통해 가능한 이상적인 심리 상태로 봤다. 미발 함양 공부를 통해, 첫째 사려가 싹트지 않도록 함[思慮未萌]으로써 사욕(私欲)의 발동을 경계하고자 했다. 율곡은 사(思)를 철저히 이발의 때에 배속시키고 사욕의 발동 여부와 관련시켜 논의했다. 둘째, 지각불매(知覺不昧)를 긍정함으로써 이발의 때에 합리적 인식을 위한 잠재적 지각 능력을 기르고자 했다. 따라서 평상 시 존양(存養) 공부가 이발 시(時)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귀착점으로 보고, 미발 함양과 이발 성찰의 병진(竝進)을 강조했다. ‘미발지중’에 대한 나흠순과 율곡의 이해는 사(思), 사려미맹(思慮未萌), 지지(知至), 지각불매(知覺不昧) 등과 입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며, 이러한 논의 구도는 그들의 수양론적 특징을 분석하는 데 유의미하다. 따라서 이를 통해 명대 심학이 대두되던 시기의 나흠순과 주자학 수용·계승 시기 율곡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reason why Yul-gok[栗谷] supports Zhu Xi’s Theory of Wei-fa[未發] cultivation. Zhu-Xi already criticized centrality-seeking[求中] mediation and mediation named yi-fa-cha-shi[已發察識] prevailed Hu-xiang during the Song dynasty. Through the critiques, Zhu-Xi acquired academic authority. This is reason why Yul-gok[栗谷] supports Zhu Xi’s Theory of Wei-fa[未發] cultivation. The author focuses on Wei-fa centrality[未發之中]. Specially, the author will examine Luo Jin Shun[羅欽順] and Yul-gok[栗谷]’s Wei-fa centrality[未發之中]. The examination is focused on the following three points: first of all, Luo Jin Shun[羅欽順] and Yul-gok[栗谷]’s the definition about the notion of Wei-fa centrality[未發之中]; secondary, thinking[思] or intentional thinking[思慮]; and lastly, cognition[知] or awareness or perception[知覺]. Luo Jin Shun[羅欽順] criticized Zhu Xi’s Theory of Wei-fa[未發] cultivation. To emphasize centrality-seeking[求中] mediation, he refers to unique thinking[思] notion that is yi-fa[已發] and wei-fa[未發]. But Yul-gok[栗谷] refers to thinking[思] that is yi-fa[已發], through effort Wei-fa[未發] cultivation he emphasized non-intentional thinking[思慮未萌]. Also Luo Jin Shun[羅欽] minimized Theory of Wei-fa[未發] cultivation and emphasized cognition[知] which seek ontological Wei-fa centrality[未發之中]. However, Yul-gok[栗谷] focused on the effort self-awareness and awakening[知覺不昧]. That is Yul-gok[栗谷] emphasized Theory of Wei-fa[未發] cultivation.
최일범 ( Il Beom Choi ) 한국철학사연구회 2015 한국 철학논집 Vol.0 No.45
詮釋「未發」槪念及其工夫,堪稱決定宋明理學學脈的關鍵議題。從二程下發端的未發體認工夫,到了朱子開始展現新的局面。朱子通過其師李延投入未發工夫,後又與張南獻相互交流,受到湖湘學的影響,遂發表中和舊。但不久之後,對湖湘學産生質疑, 便轉向於中和新說。在朱子學建構上屬關鍵性議題的未發工夫,朝鮮性理學家亦視之爲重要議題。到了16世紀, 如冥曹植、退溪李滉、栗谷李珥等代表朝鮮當代的一群學者,他們不僅談論未槪念的분圍相當活潑,對未發工夫也加以認眞試圖實踐。自從16世紀起發端未發議題, 經過17世紀更加熱烈談論, 直到18世紀已達登峰造極之勢。在18紀朝鮮性理學展開的主要論辯之一的「人物性同異論辨」中, 「未發心體」正屬最要的核心議題,這一點足以證明此事實。朝鮮性理學所展開「未發」相關的談論,主要圍繞著「知覺」及「氣質」議題而行。「知覺」相關談論的焦點便落於未發時的「知覺不昧」。與「氣質」相關的未槪念及其工夫的談論特徵, 可謂在於若說以往未發心體論的工夫主要强調存這一面的單純結構,南塘與巍巖的未發工夫論則進一步提出未發時氣質影響否問題,更加追求動態且重層的氣質變化。朝鮮性理學所進行未發槪念及其工夫相關的談論, 除了主要繼承朱子的未論這一點之外, 령留下兩個問題。第一, 在如何把李延平的未發體認與「知」結合而認識這一點上仍有異見1);第二, 與「氣質」結合的未發心體,是否不過是「氣」?抑或尙有與「理」相聯的可能性?等的問題。 The purpose of this report is to research the theory of self-cultivating at the state of pre-occurrence in Chosun Neo-Confucianism. It would be a key solution to find the character of Chosun Neo-Confucianism in the point of thoughts and practice, and may help draw future research subjects. The self-cultivating at the state of pre-occurrence is one of the urgent problems in Neo-Confucianism not only at Chosun but also at China. All the representative Neo-confucianists in 16th Century, besides Cho Sik, Yi Hwang, Yi Yi, had studied this subject and practiced their own answer. The study of this was developed in 17th century, and reached the peak in 18th century. The theory of self-cultivating at the state of pre-occurrence had been discussed with the awareness and the human characters in Chosun Neo-Confucianism. For awareness, it has been discussed how one can have the state of awareness without thinking. And for human characters, the relation of Spirit itself and human characters was the theme. Is human spirit in the state of pre-occurrence free from the influence of human characters? If not, is it still in the influence of human characters? That`s the question. The conclusion of this paper is that the self-cultivating at the state of pre-occurrence in Chosun Neo-Confucianism can be estimated the develop of Neo-Confucianism but it still has two problems too. One is how can we understand Li Dong`s awareness in pre-occurrence theory, relevance to awareness. The other is the human spirit itself is only Qi or it can be related with Li.
홍성민(Hong, Seong-mean) 대한철학회 2011 哲學硏究 Vol.119 No.-
이 논문의 목적은 未發時 知覺 상태에 관한 畿湖學派의 논쟁을 고찰하고, 그 철학적 함의를 조명하는 데 있다. 南宋의 朱子는 처음 미발의 지각 상태를 復卦로 상징하였는데, 만년에는 그 상징을 坤卦로 바꾸었다가 다시 復卦로 표현하였다. 이와 같이 주자가 미발의 상징 괘상을 거듭 바꾸었다는 것은 미발 개념에 관한 자기 견해를 변경했으며, 나아가 자신의 심성이론과 수양이론도 변화시켰다는 점을 함축한다. 기호학파는 이 문제에 깊이 천착하면서 주자의 미발 만년정론을 확정짓기 위해 논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다양하고 심도 있는 철학적 해석들을 생산하였다. 특히 知覺과 思慮, 能知覺과 所知覺의 개념들에 관해 조선 성리학자들은 주자의 원의와 매우 다르게 이해하였고, 그 만큼 독창적인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켜 나갔다.宋時烈은 坤卦와 復卦가 모두 미발의 상징으로 포섭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송시열에 따르면, 주자는 곤괘로써 思慮未萌이라는 미발의 표층적 상태를 상징하였고, 복괘로써 知覺不昧라는 심층적 상태를 상징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송시열의 견해는 미발시의 의식 상태를 두 층차로 나누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단지 주자의 상호 모순되는 언급을 최대한 정합적으로 조화시키기 위한 시도였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논쟁의 불씨가 배태되어 있었다. 이후 한원진은 미발 復卦說을 철저히 배제하고 곤괘를 미발의 유일한 상징으로 설정하였고, 이에 반해 채지홍은 復卦가 미발론에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견해는 송시열의 생각을 각각 계승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었다. 한원진은 곤괘설을 통해 不動의 지각 본체, 즉 의식의 순수한 본질 상태를 상정하고자 하였고, 반면 채지홍은 복괘설을 통해 居敬涵養의 토대, 즉 미발 때의 공부 가능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미발의 괘상에 대한 기호학파의 탐구와 논쟁은 애당초 주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을 뿐 아니라 중국철학사 내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선 유학의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발전이었다. The article research the debates on awareness in mi-bal(未發, the unaroused state) in Gi-ho school(畿湖學派), and shed new light on its philosophical meanings. Zhu-xi(朱熹) in Nan-Song dynasty(南宋) used Bok-Gwae(復卦, Hexagram of Recover) to symbolize state of mi-bal at first, but at late years he changed Bok-Gwae into Gon-Gwae(坤卦, Hexagram of Earth) to symbolize state of mi-bal. The facts that Zhu-xi changed symbolic hexagram of mi-bal not only mean that his philosophical concept on mi-bal state was changed, but also imply that his own cultivate theory was revised. Gi-ho school researched these problems and tried to determine the Zhu-xi’s final theory of mi-bal. In the process of its research, various and abundant interpretations on Zhu-xi’s terms was produced, especially meanings of Ji-gak(知覺) and Sa-ryeo(思慮) became completely different from Zhu-xi’s original meanings.Song si-yeol(宋時烈) argued that Bok-Gwae and Gon-Gwae both was compatible. According to Him, Zhu-xi symbolized state of Sa-ryeo mi-maeng(思慮未萌, thought has not yet sprouted; surface state of mi-bal) by Gon-Gwae, and did state of Ji-gak bul-mae(知覺不昧, awareness is not benighted; in-depth state of mi-bal) by Bok-Gwae. It means that Song si-yeol attempted to harmonize Zhu-xi’s contradictory references. After that, Han won-jin(韓元震) excluded Bok-Gwae from symbol of mi-bal and defined Gon-Gwae on it, while Chae ji-hong(蔡之洪) argued that Bok-Gwae is available on symbol of mi-bal as ever. By the way, they did not only succeeded Song si-yeol’s ambivalent opinions each other. Han won-jin argued the unmoved substance of awareness that is the fundamental state of humane consciousness, while Chae ji-hong constructed the foundation of Geo-gyeong ham-yang(居敬涵養) that is mind cultivation in mi-bal state. This researches on state of mi-bal awareness is creative and independent development of Cho-seon Neo-Confucianism own, that is not only what Zhu-xi had never thought, but also is undiscovered in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