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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락논쟁(湖洛論爭)과 다산(茶山) 정약용의 종교적 인간이해

        송의원 한국기독교철학회 2020 기독교철학 Vol.30 No.-

        필자는 조선 중기에 나타난 호락논쟁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인간이해를 살펴보려고 한다. 조선 성리학자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황폐화된 인간성을 보면서 인간과 동물의 성(性)이 같은가 다른가의 문제를 고민했다. 이러한 논쟁의 핵심에서 외암(巍巖) 이간(李柬)과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이 있다. 이들은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문하에서 공부하던 중 인간의 본성이 동물과 같은가 다른가를 논쟁했다. 이들의 논쟁은 전국으로 확대되어 서울 경기 지방의 낙하학파 학자들과 호서 지방의 호서학파 학자들이 동참하면서 ‘호락논쟁(湖洛論爭)’이 되었다. 호락논쟁이 있은 후 실학을 집대성 한 다산은 인간의 성에 대하여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호락논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호락논쟁의 발생 원인을 주자의 경전해석이 잘못되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서학적 논의를 끌어드려 인간과 동물의 본성을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 본성을 조선 성리학적 견해인 이기론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천주실의(天主實義)』에서 설명하는 영명(靈明)과 기호로써의 심(心)을 강조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성(性)을 설명한다. 이러한 다산의 주장은 기존의 성리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다산의 논의는 호락논쟁에서 주장한 인간과 동물의 성이 같은가 다른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조선 성리학에서 설명한 이기론적 인간이해를 뛰어 넘어서 기독교적인 새로운 인물성을 주장하였다. This thesis analyzes a human understanding in the Debate between school of Ho and the school of Rack and Da-san(茶山) Chung Yak-Yong(丁若鏞, 1762-1836). Neo-Confucianists was troubled about that comparison of human nature(性) and animal s pass through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the Manchu invasion of 1636. Wae-am(巍巖) Lee Kan(李柬) and Namdang(南塘) Han Won-jin(韓元震) is a man of importance about this debate. They disputed about a human nature while they studying under Kwan Sang-Ha(權尙夏). This debates spread throughout the country which have developed The Debate between school of Ho and the school of Rack(湖洛論爭). After The Debate between school of Ho and the school of Rack, Da-san Chung Yak-Yong who had compiled a practical science, tried to a new way about human nature. He made no mention of The Debate between school of Ho and the school of Rack directly, However, he explained the nature of human and animal by the use of western thoughts. And then, Da-san, who explained the nature of human and animal through emphasize both a miraculous efficacy (靈明) in the 『Tianzhu Shiyi』(天主實義) and mind(心) by means of taste. This sort of a statement of Da-san, do not exist a way in Neo-Confucianism. Therefore, a statement of Da-san is not a problem that is different human nature from animal nature in the Debate between school of Ho and the school of Rack. A statement of Da-san is the Christianity theory of properties of matter, over the human understanding of Li-chi Theory(理氣論) in the Neo-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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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朝鮮時代) 호락논변(湖洛論辨)에서의 인간본성(人間本性) 논의에 관한 고찰(考察)

        洪正根 한국유교학회 2009 유교사상문화연구 Vol.38 No.-

        호락논변은 ‘人物性同異論爭’, ‘聖凡心同異論爭’, ‘未發心體有善惡論爭’을 포함한 다양한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본 논문에서는 호락논변에 스며있는 인간의 본성문제를 개인의 본성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였다. 한원진과 이간의 인물성 논쟁은 조선의 많은 학자들이 참여하는 거대한 학술 논변으로 확대되었다. 조선시대에 발생한 호론과 낙론 사이의 인물성동이 논쟁은, 한국 주자학에서의 본성 논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원진의 性三層說을 개인의 본성 측면에서 분석하여 재구성 하면, 그의 학설에 나타난 개인은 두 측면의 본성을 동시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한원진의 성론에서, 개인이 갖추고 있는 因氣質의 본성은 正通한 기질을 타고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있는 것으로, 偏塞한 기질을 타고난 다른 존재들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학설에서 개인은 또한 인의예지의 본성 외에 超形氣의 리(태극)로서의 본성 또한 동시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초형기의 본성은 논리적으로 상정된 본성으로서 인의예지의 본성이 아니다. 이 초형기의 성 단계에서는 모든 존재자들의 본성이 상호 같다고 할 수 있다. 이간 또한 한원진과 마찬가지로 각 개인이 인의예지의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개인의 본성은 인의예지의 본성 하나 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인의예지의 본성이 곧 초형기의 본성이고, 초형기의 본성이 곧 인의예지의 본성이기 때문에, 두 성을 구분지어 나누어 보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외형적으로는 이간과 한원진은 동일하게 각 개인이 인의예지의 본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이간이 말하는 인의예지의 본성과 한원진이 말하는 인의예지의 본성은 다르다. 이간의 학설에서 나타난 개인이 갖추고 있는 인의예지의 본성은 형기를 초월한 人物同의 본성이지만, 한원진의 학설에서 나타나고 있는 개인이 갖추고 있는 인의예지의 본성은 형기를 초월하지 않은 人人同 · 人物異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한원진과 이간 이후의 호론과 낙론학자들의 본성론은, 대체로 이 두 사람의 본성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동아시아 다른 나라의 주자학에서는, 한국의 호락논변에서와 같은 개인의 본성적 측면에서의 논의를 분석해 내기가 어렵다. 한국의 호락논변은 주자학이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었던 거대한 학술논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朝鮮是以朱子學爲中心的國家。這其中,湖洛論辨是在朝鮮朱子學精密硏究及其發展過程中産生的一場學術論辨。這場論爭始於南塘韓元震(1682~1751)和巍巖李柬(1677~1727)之間,後來擴展向全國學術界。不僅如此,這場論辨還一直持續了200余年,而且在論辨的主題也是朝鮮性理學的主要論点。 湖洛論辨的主題有很多個,其中大主題主要包括人物性同異論爭、聖凡心同異論爭以及未發心體有善惡論爭等。本論文將集中考察人物性同異論爭,幷在此基礎上分析湖洛論辨中個人本性的問題。 湖論的代表學者是韓元震,他認爲人的本性由三層結構組成,分別是人與人同而人與物異的因氣質之性、人與物相同的超形氣之性以及人人異、犬犬異、牛牛異的雜氣質之性。幷將前二者歸類爲本然之性,而後者爲氣質之性。因氣質之性與超形氣之性雖然都是本然之性,但前者是屬於仁義禮智的實事之性,而後者則是將太極和理上升爲本然之性的層次。 洛論學者李柬從一原和異體的觀點上來探討本然之性和氣質之性。他認爲,本然之性應該從一原的觀點上,而異體之性應該從異體的觀點上討論才是正確的。他認爲,本然之性是超形氣階段上的人物相同的性,而氣質之性是各個存在因爲氣質的差異而出現的人物異、人人異、犬犬異、牛牛異的性。他認爲,韓元震所說得因氣質之性和雜氣質之性都是氣質之性。 因爲對本然之性和氣質之性的迥然不同的規定,所以二人無法實現觀點上的合一。自從二人展開論爭以後,朝鮮越來越多的學者參與其中,使之發展成爲一場巨大的學術論辨。尹鳳九 、李顯益、蔡之洪 、宋能相、魏伯圭等學者支持韓元震的主張,從而展開了各自的觀點。金昌翕、魚有鳳、李宰、吳熙常、樸弼周 、金元行、洪直弼等其他學者則支持李柬的同論主張。雖然他們對人物性同異的見解、邏輯的展開方式等存在若幹的差異,但其實他們的人物性論差異卻幷不是很大。 “孟子認爲本然之性是善的”可以用“孟子認爲本性是善的”來置換。換言之,本然之性可以用本性來解釋。從這個觀點來看,朝鮮時代湖論和洛論之間本然之性的論爭可以認爲是朱子學中本性的論爭。 如果從個人的本性方面來分析韓元震的性三層說幷進行再構成,那么可以認爲他的學說中的個人同時具有兩個層面的本性。人所具有的因氣質的本然之性是只有稟受正通之氣而生的人才具有的,稟受偏塞氣質的其他存在是不具有的。 韓元震學說中的個人除了具有仁義禮智的本性外,還同時具有作爲超形氣之理(太極)的本性。超形氣之性雖然從邏輯上可以上升到本性的層次,但它幷不是仁義禮智的本性。在超形氣的階段,所有存在的本性都是相同的。每個人的本性因爲其所具有的異體階段上氣質的差異而不同。韓元震認爲這時的性是氣質之性。 与韓元震一樣,李柬也主張每个人都具有仁義禮智的善的本性。但是他認爲個人的本性除了仁義禮智的本性之外沒有其他的。他指出,仁義禮智的本性就是超形气的本性,超形气的本性就是仁義禮智,因此不能將二者分開而區別對待。 因此,從表面來看,李柬和韓元震都毫無例外的認爲人具有仁義禮智的本性。但是,從內在來看,李柬所說的仁義禮智的本性与韓元震所說的是有差異的。李柬學說中個人所具有的仁義禮智的本性是超形氣的人物相同的本性,然而韓元震學說中的本性則是因氣質(非超形气)階段的、人人同而人物异的本性。 李柬和韓元震以后湖論和洛論的本性論基本上沒有脫离二者的本性論。而東亞其他國家的朱子學中則很難提取幷分析出像韓國湖洛論辨中出現的個人本性的層面這個問題。由此可見,韓國的湖洛論辨說明了朱子學中蘊含著朝向新層次發展的可能性,是一場巨大的學術論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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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정진(奇正鎭)의 「납량사의(納凉私議)」를 둘러싼 기호학계(畿湖學界)의 논쟁(論爭)

        朴鶴來 ( Park Hakrae ) 한국유교학회 2010 유교사상문화연구 Vol.39 No.-

        18세기 이래 湖洛論爭은 주자학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정치 사회적 입장을 반영하며 기호학계의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19세기에 접어들어 호락논변은 정치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先代 學說에 대한 교조적인 계승과 상대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학자들에 의해 이 논쟁에 대한 반성과 대안 모색이 이루어졌고, 奇正鎭의 「納凉私議」는 이러한 결실 중의 하나이다. 湖論과 洛論에 대한 비판적 지양을 통해 호락논쟁 및 주자학의 학문적 본령을 수립하고자 했던 기정진의 호락논변에 대한 논의는 20세기 초반 그의 문집 重刊과 더불어 기호학계의 논란대상이 되었고, 특히 田愚에 의해 집중적으로 비판이 제기되어 기호학계 전반으로 논쟁이 파급되었다. 본고에서는 20세기 초반에 진행된 기정진의 「납량사의」를 둘러싼 기호학계의 논쟁을 19세기 이후의 호락논쟁의 추이와 결부하여 그 논쟁의 내용과 성격을 고찰하였다. 논쟁을 처음으로 제기한 전우의 논의와 이에 대한 기정진 문인들의 반비판을 중심으로 주요 논쟁점을 검토하였고, 논쟁을 통해 최대 쟁점으로 부각된 현상 세계의 차별성에 대한 논의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아울러 이 논쟁에 대한 당시 기호학계의 입장 및 태도에 유의하여 20세기 초반 호락논변에 대한 각 학파들의 호락논변에 대한 지형변화도 試論的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Since 18th century, 'Horak debate(湖洛論爭)' had enabled the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n neo-confucianism and had reflected social and political situations, and had induced productive debates of Kiho school. However, in 19th century, dogmatic inheritance of predecessors scholastic arguments and negation of other scholastic sects became prevailed in conjunction with the socio-political situation. In this circumstances, some scholars tried to reflect on this situation and to find out alternatives. Ki jung jin's 'Napryangsaeui(納凉私議)' was one of the fruit of these efforts. Ki Jung-jin's 'Horak debate', which was tried to establish original nature of Horak dispute and neo-confucianism, became a contested topic of Kiho school by republishing his anthology in the early 20th century. In this article, the author examined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the Kiho school's debates on Ki Jung-jin's 'Napryangsaeui' , which was published in the early 20th century, in relation to the transition of Horak debate since 19th century. It was examined that the arguments of Jun-woo's, who firstly criticised 'Napryangsaeui', and Ki Jung-Jin's disciples, who counter-criticised Jun-woo's criticism. And especially the different characteristics of phenomenon world, which was the main debate topic, was investigated in priority. Moreover, by paying attention to the Kiho school's standpoints and attitudes on the debate, this author analysed the changes of the academic views on Horak debate of each schools by way of t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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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락논쟁(湖洛論爭)의 관점에서 다문화 정책 담론에 관한 탐색 연구: 국회 회의록을 중심으로

        정회원(鄭會元),배우정(裵玗?),배수호(裵壽鎬) 한국정부학회 2021 한국행정논집 Vol.33 No.3

        현재 한국은 다양한 다문화 정책을 수립하여 실시하고 있다. 한국의 다문화 정책의 이론적 근거는 현실과 동떨어진 서구 이론을 기반으로 한 경우가 많아 이러한 간극은 왜곡된 정책적 수요로 정부의 정책 결정을 오도할 위험성이 크다. 본 연구는 다문화 정책 담론에 18세기 후반 조선 시대 호락논쟁(湖洛論爭)을 접목하여 총 네 가지의 내외국인-호락논쟁 모형(內湖外湖, 內湖外洛, 內洛外湖, 內洛外洛)을 제시한다. 본 연구는 1988년∼2020년 30여 년의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록을 활용하여 한국의 다문화 정책 담론의 변화를 통시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주요 연구방법론으로 의미연결망 분석(semantic network analysis)을 활용하였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다문화 정책은 이제 담론형성기를 지나 담론 정착기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문화 정책 담론에서 정책적 지향점은 ‘내락외락’ 유형이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내락외호’ 혹은 ‘내호외락’ 유형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담론과 실제 정책 간의 격차 혹은 괴리를 시사하고 있다. This paper aims to derive multicultural policy theory from the Korean context and diagnose Korea"s multicultural reality and policies based on the fact that research on multicultural policies in Korea has been conducted in a Western-biased manner. Unlike previous research, the paper interpreted the reality of multiculturalism in Korea based on the historical and cultural context based on the Ho-Rak debate of Joseon in the late 18th century and presented a multicultural policy model. The proposed model was based on the two dimensions of the Ho-ron(湖論) and Nak-ron(洛論), which are the two pillars of the Ho-Rak debate, and the two groups (domestic and foreign nationals) were used as the two pillars to build a 2x2 matrix (the Model of Domestic-Foreign/Ho-Rak Debate). As a result, we derive four types: (1) Ne-Ho-Oe-Ho (內湖外湖: separation/exclusion); (2) Ne-Ho-Oe-Nak (內湖外洛: voluntary assimilation/marginalization); (3) Ne-Rak-Oe-Ho (內洛外湖: involuntary assimilation/discrimination/melting pot); and (4) Ne-Rak-Oe-Nak (內洛外낙洛: integration/multiculturalism). In this study, a semantic network analysis was performed on the minutes of the National Assembly"s standing committee. The analysis targets 32 years of data from the 13th National Assembly (1988-1992) to the 20th National Assembly (2016-2020). According to the results, unlike the policy direction of pursuing Ne-Nak-Oe-Nak,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policy gap has occurred in that the actual policy is located in the type of either Ne-Rak-Oe-Ho or Ne-Ho-Oe-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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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암 권상하의 심성론

        송종화 ( Jong Hwa Song ) 한국철학사연구회 2012 한국 철학논집 Vol.0 No.35

        湖洛論爭에 관한 선행 연구는 오상논변·미발논변 등을 중심으로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 성과 속에서 권상하의 철학사상은 비교의 차원으로 함께 다루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그의 철학사상의 면모는 거의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를 중심으로 하는 개별 연구가 아닌 관계로, 어떤 점이 湖學[湖論]의 先河로서의 그의 철학사상의 한국유학사상사적 위상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에 본고에서는 『寒水齋集』에 나타난 心性의 개념 이해를 중심으로 權尙夏의 心性論을 검토하면서, 호학[호론] 형성의 先河로서의 그 사상사적 위치를 짚어보았다. 권상하는 호락논쟁이 본격화된 1709년 이전에, 氣質之性내에서 本然之性[性善]을 확보할 수 있다는 一性이해를 바탕으로 한, 五常偏全의 人物性相異로 그의 입장을 이미 정리하고 있었으며, 호학[호론]의 학자들은 이러한 영향아래 자신들의 사유를 형성하고 호락논쟁 과정에서 五常偏全[人物性相異]을 주장하였다. 권상하는 性을 중심으로 한 心性一物의 관점에서 虛靈한 心의 主宰性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제자 韓元震과 尹鳳九가 말한 ``心性二岐의 의논과 의혹을 종식시키고 평정한 功``이며, 한원진이 말한 ``性善의 필연을 밝힌 功``이다. 이 논리 역시 호락논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정립되어 있었으며, 호학[호론]의 학자들은 이러한 영향아래 자신들의 사유를 형성하고 호락논쟁 과정에서 氣不用事[未發氣質有善惡]를 주장하였다. Researches about the Horaknonjaeng(湖洛論爭) have succeeded by focusing on the Osangnonbyeon(五常論辨)·Mibalnonbyeon(未發論辨). In a way of these researches, philosophic thought of Gwon Sangha(權尙夏) is dealt in a comparison and in that process his philosophic thought seems to be known. However, these researches are treating several thoughts so it is difficult to find accurately what point describes the position of his thought in the korean confucian thought as origin of Hohak(湖學). In this paper, therefore, I examine Gwon Sangha`s theory of mind-nature by focusing on the understanding the concept of mind-nature in Hansujaejib(寒水齋集) and find its position in history of thought as an origin of forming Hohak. Before 1709, Horaknonjaeng don`t break out, Gwan Sangha had been formed that Inmulseongsangi(人物性相異) of Osangpyeonjeon(五常偏全) based on the understanding of the fact that ensuring of Bonyeonjiseong(本然之性·性善) in Gijiljiseong(氣質之性) and under this influence scholars of Hohak formed thoughts and insisted Osangpyeonjeon(五常偏全·人物性相異) during Horaknonjaeng. In the point of Simseongilmul(心性一物) focusing on nature, he didn`t admit the Jujaeseong(主宰性) of mind. This is the efforts of finishing the controversy of Simseongigi(心性二岐) and the efforts of finding the relation between Simseon(心善). Such thoughts are set before the Horaknonjaeng and basing on these influences, scholars of Hohak formed their thoughts and insisted the Gibulyongsa(氣不用事·未發氣質有善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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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말기 호락논쟁의 통합론 연구

        정성희(Jeong, Seong-hee) 한국양명학회 2011 陽明學 Vol.0 No.30

        성암(醒菴) 이철영(李喆榮: 1867~1919)은 조선 말기 호락논쟁에 대한 반성과 통합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성암의 『사상강설(泗上講說)』에는 성암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성암은 호락논쟁의 주요 문제를 분석하고 정리하여, 양자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차이는 극복될 수 있는 것임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면 호학과 낙학이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이론과 동론을 주장하지만 실은 그들이 말하는 성(性)이 대기(帶氣)한 것과 부대기(不帶氣)한 것으로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 결국 호학과 낙학은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만 실제 개념은 각기 다른 것이므로, 양자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암이 호학과 낙학의 통합을 위해 창안한 이론이 바로 동위이시론(同位異時論)과 성삼양설(性三樣說)이다. 이는 호학과 낙학의 동위동시론(同位同時論)과 이위이시론(異位異時論)의 논리적 불합리성을 지양하고, 외암의 미발론(未發論)과 남당의 성삼층설(性三層說)을 참고하여 창안한 이론이다. 성암의 이 이론은 논리적으로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며, 양자의 통합 가능성을 보여준다. 성암 사상의 논리적 근거는 율곡이었다. 호학과 낙학 모두 율곡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근본적 논리와 목적은 같다고 본 것이다. 한편 성암이 당시 일부의 성리학자들에게서 일어난 주리론이나 명덕심론 등에 대해서도 율곡의 학설을 근거로 하여 비판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학설로 인한 학계의 분열을 경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암의 학문적 성과는, 율곡의 학설을 추종하면서도 호락 양자에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설득력 있는 통합론을 창안해내어, 양자가 충분히 통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데 있다. From 18th century Theory of Inmulsungdongi(人物性同異) was developed along while 200 years and became a focus of Neo-Confucianism(性理學) in Chosun Dynasty. Long period of the arguments brought dissension of academe, but trends of reflection and integration appeared in the end of Chosun Dynasty. Seongam(醒菴) Lee cheol-yeong(李喆榮:1867~1919) was the leader who made successfully reasonable conclusion of the argument. In Sasanggangseol(泗上講說), a work of Seongam, he exposed intension to integrate the differences between Hohak(湖學) and Nakhak(洛學). Seongam tried to prove that the differences of the argument between Hohak(湖學) and Nakhak(洛學) could be gotten over by analyzing and adjusting it. In this work he made out that Hohak and Rakhak did not stand apart by the roots. Refering to Mibalron(未發論), Seongsamchungseol(性三層設) he made an original theory of Dongwiisiron(同位異時論) and Seongsamyangseol(性三樣說) which sublate irrationality of Dongwidongsiron(同位同時論) and Iwiisiron(異位異時論). The theory has persuasive opinion sufficiently and shows the possibility of integration of Hohak and Nakhak. He thought two concepts, Hohak and Nakhak, had the same purpose and rationality because they all were from Yulgok(栗谷). On the basis of Yulgok’s thoughts, he criticized other Neo-confucianism such as Myeongdeoksimron(明德心論) of Maesan(梅山), Myeongdeokjusimron(明德主心論) of Kanjae(艮齋) and Juriron(主理論) of Nosa(蘆沙), Hwaseo(華西). Through the studies he followed Yulgok’s thoughts and showed possibility of integration of the argument between Hohak and Nakhak from an objective viewpoint. Even though his scholarly results became unavailable with crumbling of Chosun, his academic contribution can be evaluated meaningful enough because he showed the possibility of integration of arguments on Hohak and Nakhak.

      • KCI등재

        율곡 이통기국의 영향 고찰 -호락논쟁을 중심으로-

        서원혁 ( Suh Won-hyuk ) 한국동서철학회 2017 동서철학연구 Vol.0 No.85

        조선 후기 성리학에서 인성과 물성에 대한 동질성 문제를 놓고 벌인 일련의 논의를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 한다. 그동안 학계는 호락논쟁에 대한 중심을 단지 인간과 동물의 본성이 같은가 혹은 다른가에 중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해 왔다. 이는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실용적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본성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철학적 의미를 둘 수 있다고 하겠다. 철학이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도구로 바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한계는 이미 밝혀 진 바 당시 성리학적 논의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좀 더 무게를 두는 편이 나아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그동안 호락논쟁에서 율곡의 이통기국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그 의미를 찾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호락논쟁은 인물성동이 문제에 중요한 관점을 갖고 있는 만큼 인간의 주체성 및 도덕의식에 대한 논의에 대해 율곡의 이통기국이 어떤 의미를 부여케 했는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아울러 이통과 기국이 호락논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남당 한원진과 외암 이간 사이에서 벌어졌던 인물성동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This paper presents research of the influence of Yulgok` Litongkikook -focus on the Ho-Rok controversy. The Ho-Rok controversy is an ongoing debate between Nan-dang(南塘) Han WonJin and Wei-am(巍巖) Lee Gan about the Inmulseong-Dongiron Controversy. Nan-dang(南塘) argued for Inmulseng-Iron and Wei-am(巍巖) argued for Inmulseng Dongron. The difference in claims between the two is based on Yulgok` Litongkikook, Because Li(理) and Ki(氣) have very different roles in action. Li(理) exists everywhere, but Ki(氣) has a limit. Li`s universality is named Litong(理通). Ki`s limit is named Kikook(氣局). Wei-am(巍巖) maintained Inmulseong-dongron, which viewed Ki as the individuality of Li. Nan-dang(南塘) maintained Inmulseoung-iron, which viewed the positiveness of Ki as Li. Importantly, this argument arose among a difference of views in a translation of Yulgok` Litongkikook. This paper discusses the essence of Yulgok` Litongkikook. As a result the Ho-Rok controversy is resolved through Yulgok` Litongkikook.

      • KCI등재

        도암 이재의 성리설 연구 - 호락논쟁의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

        유지웅 한국양명학회 2022 陽明學 Vol.- No.67

        이 논문의 목적은 18세기 중반 기호 낙론계를 대표하는 도암 이재(陶菴 李縡, 1680~1746)의 성리설을 호락논쟁의 주요 쟁점에 주목하여 검토, 분석하는 것이다. 이재는 18세기 전반기 기호 낙론계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이다. 그는 『전서(全書)』 형태로 이이의 문집 간행을 주도했을 만큼 기호학계에서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한천정사(寒泉精舍)에서의 강학활동을 통해 낙론계 성리설을 계승, 확산시킴으로써 그의 문하에서 낙론계 정통 학맥이 계승되었다는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 아울러 호락논쟁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이재는 호론의 윤봉구, 채응상, 심조 등과 논쟁을 전개하여 낙론계 성리설의 여론을 대변한 인물이었다. 이재의 성리설에는 본연의 측면에서 기(氣)의 개입을 주장하는 호학의 입장을 비판한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이재는 만물이 근원적으로 ‘리’를 동일하게 부여받았다는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기의 제한을 넘어선 ‘리’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인물성동론을 주장한다. 미발 역시 기질적인 맥락에서 해명하려는 호학의 입장을 거부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마음 즉 본심이 있음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 곧 수양의 출발점이자 목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재의 입장은 호론과 대비되는 인물성동(人物性同), 미발심체선(未發心體善), 성범심동(性凡心同)을 공유한 것으로 호락논쟁에서 낙론의 입장을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그가 호론과의 논쟁에서 심‘기’와 일반적인 ‘기질’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함으로서 오는 문제도 노출하지만 전체적인 그의 성리설을 통해 본다면 기질적 맥락에서 미발시 마음의 상태를 설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호락논쟁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낙론의 여론을 대변하고 주도했던 이재의 성리설을 호락논쟁의 주요 쟁점들을 중심으로 검토, 분석하여 낙학의 입장을 주로 호학의 이간을 중심으로 해명되었다는 한계점을 보완하고, 낙학파 성리학자인 이재를 통해 해명함으로써 낙학파 성리학자들을 호락논쟁의 주체로 복원시키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 毅菴 柳麟錫의 「納凉私議疑目講辨」에 대한 一考

        朴鶴來 화서학회 2010 화서학논총 Vol.4 No.-

        韓末 기호학계는 內憂外患의 시기를 맞아 다양한 학파의 분화와 이에 따른 특징적인 성리설의 제기가 이어졌다. 특히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화서 이항로나 노사 기정진은 18세기 이후 기호학계의 최대 논쟁이었던 湖洛論爭이 빚어낸 폐단을 극복하고, 이 논쟁에서 제기된 여러 논쟁점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지양하고자 하는 학문적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노사는 일찍부터 「납량사의」를 통해 호락 양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일분수에 대한 특징적인 해석을 통해 이 논쟁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의 사후 문집발간을 계기로 그의 성리설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고, 간재 전우는 일련의 저술을 통해 노사의 성리설을 비판하였다. 본고는 20세기 초반 기호학계의 최대 논란 중 하나인 노사의 성리설에 대한 논쟁 중에서 「납량사의」에 대한 간재 전우의 비판과 이에 대한 의암 유인석의 반비판을 검토한 것이다. 호락논변에서 제기된 여러 주제를 검토하면서, 특히 간재 전우에 의해 제기된 세계 구성의 동일성과 차별성 및 그것의 원리에 대한 논의를 집중적으로 고찰하였고, 이를 통해 의암의 실천적인 활동의 이론적 근거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era of domestic troubles and external threats, the Kiho school became diversified and each offshoots presented various and characteristic neo-confucian ideologies. The representative neo-confucians of Kiho school, Lee Hangro and Ki Jungjin, overcame the abuses of Horak debate of Kiho school of the 18th century, and tried to sublate several points of disputes by their extensive study. Especially, Ki Jungjin had pointed out the problems of Horak debate in his book, Napryangsaeui, and tried to overcome the dispute by characteristic analysis on li-yi-fen-shu from his early days. However, after the Ki Jungjin's death, the collections of his works were published and disputes were raised on hiss neo-confucianism. Jeonwoo was one of the representative critics and criticised Ki Jungjin's neo-confucian theories in his writings. This article examined Jeonwoo's criticism on Napryangsaeui which was one of the hottest neo-confucian disputes of Ki Jungjin's neo-confucian theories, and the Yuinseuk's counter-criticism. Dealing with several disputes in Horak debate, the arguments, which were raised by Jeonwoo, on the similarity and dissimilarity of the formation of the world and the principles of the formation were centrally examined in this article. By this examination, the theoretical basis of Yuinseuk's practical activities can be revealed.

      • KCI등재

        간재(艮齋) 기질체청설(氣質體淸說)의 계승과 발전 - 후창(後滄) 김택술(金澤述)의 심성론(心性論)을 중심으로-

        신상후 ( Shin Sang-who ) 한국철학사연구회 2023 한국 철학논집 Vol.- No.76

        낙론계(洛論係) 심성론은 율곡학의 범위 안에서 ‘배워서 성인이 될 수 있음[聖人可學]’의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그리고 이 발전은 호론계(湖論係) 학자들과의 논쟁과 토론을 통해 가능했다. 호락논쟁은 호락 모두에, 그 심성론을 체계화하고 심화하는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호락 간 견해의 다름은, 기(氣)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성즉리(性卽理), 심시기(心是氣)’, ‘기발리승일도(氣發理乘一途)’, ‘리통기국(理通氣局)’을 원칙으로 삼는 율곡학의 계승자들이었기에, 기에 대한이해가 중요했다. 율곡은 기의 차별성과 동일성을 모두 언급한 바 있는데, 호론은 기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낙론은 기의 동일성을 역설했다. 이러한 차이는 ‘태생적 기의 오염’을 설명하는 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낙론은 기질의 오염을 “현재에도 유동적일 수 있는 것”으로 보았고, 호론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고정적이고 견고한 것”으로 본 것이다. 요컨대, 기의 장애를 얼마만큼 가볍게 처리하는가, 얼마만큼 고체화할 것인가에 따라 호론과 낙론의 심성론이 갈라지게 된다. 낙론계 심성론은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에 의해 집대성되었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근거는 간재의 기질체청설(氣質體淸說)에 있다. 기질체청설은 낙론계 심성론이 지향했던 ‘기(氣)에 의한 장애의 무력화’를극진히 달성한 이론이다. 물론 주자학이 나아갈 수 있는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간재의 심성론을 낙론계 심성론의 집대성이라고 판단한다. 지금까지 필자는 호락논쟁 및 낙론계 심성론을 주로 미발(未發)과 관련하여 ‘심(心)’을 위주로 분석해왔다. 호락논쟁의 분기는 ‘기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있고, 이것이 ‘심(心)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이어져서, 호락논쟁의 핵심쟁점으로 정립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심 이해의 차이를 통해 성립하는 성(性) 이해의 차이’를 다루었다. 이변화는 필자가 파악하는 낙론계 심성론의 전개 양상을 따른 것이다. 낙론계 심성론은, 18~19세기에 ‘본연적 마음의 선함’을 주장하는 ‘심본선설(心本善 說)’로 전개되고,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간재에 의해 ‘기질의 근원적 선함’을 주장하는 ‘기질체청설(氣質體淸說)’로 집대성되었다. 즉, 본연적 기의 담일청 허함이 본연적 마음에서 기질의 뿌리로까지 확장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기질과 마음 안에 ‘떨어져 있는[墮在]’ 본성, 즉 기질지성(氣質之性)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간재의 제자, 후창(後滄) 김택술(金澤述, 1884~1954)의 심성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낙론계 심성론의 이러한 전개 양상을 밝히는 것이 본고의 목표이다. 간재의 심성론을 계승한 후창 김택술은, 기질지성(氣質之性)에 대해 한결같이 “이발(已發)에 속한다.”고 강조한다. 즉, 마음이 발동한 뒤에, 기질의 구애와 인욕(人欲)의 가림이 있게 되었다면, 그래서 부중절(不中節)의 결과가 도출됐다면, 이때 이것의 원인을 두고 “기질지성에 의한 것이다.”라고 비로소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질지성은 현실의 불선(不善)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기능할 뿐이라는 것이다. 호론계 심성론에서 본연지성이 개념적 상정이라면, 후창의 심성론에서는 기질지성이 개념적 상정이다. 이 두 견해는, 서로를 향해, “본말이 전도되고, 개념과 실재가 역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로 상반된 견해이다. 현대 주자학 연구자들의 기질지성 이해는 대체로 호론계 이론에 가깝다. 호론식의 주자학 이해에 익숙한 현대의 연구자들은 아마도 후창의 견해를 주자학에서 벗어난 이론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기질지성을 후창처럼 이해하지 않으면, 본연지성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주자학은 시종 본연지성이 진짜 본성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대 주자학 연구에서의 난점과 쟁점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간재와 후창의 심성론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The paper examines the development of the theory of Rak School (洛學) in the 19th to 20th century. As followers of the Yulgok school, scholars of the Rak School developed their own theory while faithfully adhering to Yulgok's philosophy. The development of Rak School’s theory of Human nature and Heart-mind involves a sophisticated development Zhu Xi’s theory of the Heart-mind. In Neo-Confucianism, when scholars contrast Heart-mind and Human nature, most consider heart-mind to be ki (氣, Ch. qi) and Human nature to be i (理, Ch. li). As ki, Heart-mind may be impure. However, School of the Rak emphasizes the difference between Heart-mind and temperament (氣質), and thus insists that for ordinary people, even though one’s temperament might be impure, their Heart-minds remain pure. Followers of the Rak school called this pure mind ‘the original Heart-mind’. This is their theory of “Heart-mind is originally good.”. We can say this is the Heart-mind theory of the Rak School. In this paper, the development of this pattern was demonstrated by analyzing the theory of Jeon Wu (1841-1922, pen name Ganjae) and Kim Taeksul (1884~1954, pen name Huchang). Jeon founded a new theory insisting that the original state of ki (氣質本體) is pure and good. Kim inherited this theory and presented a specific understanding of Human nature, especially the Human nature of temperament. According to Kim, the Human nature of temperament is a concept that can be said only after emotions or accidents occur incorrectly. This understanding maybe sound unfamiliar to current Neo-Confucian researchers who are less familiar with the Horak school or may consider it a deviation way too far from orthodox Zhu-Zheng philosophy. However, we should seriously consider this perspective as it enables us to recognize the nature of temperament as secondary, that can carry further implications of understanding the difficulties of Neo-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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