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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18세기 경상도 사대부의 금강산 여행과 그 특징 - 이동항(李東沆)의 『해산록(海山錄)』을 중심으로-

        정재훈 ( Jung¸ Jae-hoon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21 嶺南學 Vol.0 No.76

        16세기부터 증가한 사대부의 일기는 18세기에는 더욱 확대되어 사대부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이동항(李東沆, 1736~1804)의 『해산록(海山錄)』은 여행일기로서 18세기 후반에 경상도에서 살았던 사대부가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기록한 것이다. 이동항의 금강산 여행일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첫째, 경상도에서 관직을 가지지 않은 사대부로서 흔히 가던 여행장소가 아니라 금강산을 여행한 점이다. 둘째, 금강산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18세기에는 일기 형식의 글쓰기도 더욱 유행이 확대되었고, 또 대상에 대한 상세한 묘사 역시 글쓰기의 방식으로 유행하였는데, 이러한 사례의 하나로서 의미가 있다. 셋째, 여행과정에서의 일상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서(篆書)쓰는 것에 일가를 이루었던 이동항은 여행 도중에 발견한 명필의 글씨를 유의하여 기록하였고, 또 전서를 써주기도 하였다. 또 정자나 관청에 걸렸던 편액들의 작성 과정도 서술하였다. 넷째, 다른 자료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여행과정에서의 경비나 물품 등 여행지원에 관한 상세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The diary of the Nobleman, which increased from the 16th century, expanded further in the 18th century and became a daily routine of the Nobleman. Lee Dong-hang (1736-1804)'s "Hae San-rok" is a travel diary recorded by the four great-great-grandfathers who lived in Gyeongsang-do in the late 18th century when they visited Geumgangsan Mountain. Lee Dong-hang's travel diary to Geumgangsan Mountain has interesting features in many ways. First, he traveled to Geumgangsan Mountain, not a common place to travel, as a Nobleman who did not hold government posts in Gyeongsang-do. Second, the detailed description of Mt. Geumgang stands out. In the 18th century, diary-style writing became more popular, and detailed descriptions of objects were also popular in the way of writing, meaningful as one of these examples. Third, daily life in the travel process is described in detail. Yi Donghang, who was a good writer of calligraphy, carefully recorded the calligraphy he found during his trip and also wrote the calligraphy. It also describes the process of writing the pyeonaeks that were caught in the pavilion or government offices. Fourth, detailed data on travel support, such as expenses and goods in the travel process that are difficult to identify from other data, can be found.

      • KCI우수등재

        웹 로그분석을 이용한 실시간 온라인 마케팅 시스템 설계 및 개발에 관한 연구

        오재훈(Jaehoon Oh),김재훈(Jaehoon Kim),김종우(Jongwoo Kim) 한국전자거래학회 2011 한국전자거래학회지 Vol.16 No.3

        e-Business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기존의 오프라인 기업들이 e-Business 시장으로 진입하게 되었으며, 이는 e-Business 시장의 과도한 경쟁을 야기 시켰다. 이에 기업들은 키워드 광고, 이메일 광고, 배너 광고 등의 온라인 마케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온라인 마케팅 방법들은 방문자를 사이트로 유입시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방문자들이 사이트로 유입 후 구매로 전환시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마케팅의 투자 대비 효과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사이트에 유입된 방문자를 대상으로 전환율을 높임으로써 마케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실시간 온라인 마케팅 시스템(ROMS: Realtime Online Marketing System)을 제안하고 개발하였다. ROMS는 방문자 행동을 실시간으로 수집하여 방문자 행동을 분석함으로써 방문자의 정보 및 행동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으며, 방문자의 컨텍스트 특성에 따라 개인화된 마케팅을 수행할 수 있다. The rapid growth of e-business market makes new online companies to start and existing offline companies to join in this area. As the number of players of this market grows rapidly, the competition among them is very intense. Many companies invest huge resources to online marketing including search advertisement, email advertisement and banner advertisement. Because these traditional online marketing activities mainly focus on how to invite visitors to their web sites, ROI of these marketing activities are getting lower. Many companies are looking for a new marketing method to escape this situation. In this paper, we propose ROMS (Realtime Online Marketing System) which supports tools to improve conversion ratio of e-commerce sites. ROMS gathers behavioral data of visitors and analyzes it in realtime. ROMS supports live chats, visitor profiling, context analysis, event detection, and live marketing. With ROMS, personalized offers based on visitors’ realtime context can be made for each visitor.

      • 온라인 시스템 사용자 행동 패턴 분석 시스템설계 및 개발

        오재훈(Oh, Jaehoon),김재훈(Kim Jaehoon) 한국IT서비스학회 2011 한국IT서비스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11 No.9

        온라인 웹 사이트와 자동응답시스템과 같은 온라인 고객 서비스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고객 접점 채널로써 온라인 시스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에는 고객의 시스템 이용 데이터를 분석하여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특히 웹사이트의 경우 사용자의 이용 패턴을 분석하여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개인화된 맞춤형 컨텐 츠를 제공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웹 사이트 분석 시스템을 제외한 대부분의 온라인 분석 시스템들은 SQL 문을 이용한 ETL 처리를 기반으로 한 통계 분석 위주로 구축되고 있으며, 단순한 통계 요약 분석 이상의 사용자 행동 패턴 분석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려면 사용자가 시스템을 이용한 순서에 따라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SQL을 이용한 ETL 분석 방법은 선언적 언어이기 때문에 시간 순서에 따라 분석을 해야 하는 절차적인 처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사용자 이용 로그(Usage Log)를 절차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사용자 행동 패턴 분석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현하였다. 제안한 시스템은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순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으며,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닌 SQL(Structured Query Language) 기반의 4세대 언어 형식으로 기술할 수 있도록 구성하여 전문 프로그래 머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 KCI등재

        정몽주 초상화의 제작과 숭모

        강영주(kang young-Ju) 포은학회 2021 포은학연구 Vol.28 No.-

        정몽주 초상화는 서원과 사당, 영당 등에 봉안된 전신 초상화와 문집과 화첩 등에 실린 반신 초상화로 구분된다. 전신 초상화는 배향과 제례를 통해 정몽주를 추모하기 위해 제작되었고 반신 초상화는 조선시대에 화첩으로 장첩되어 선물, 감상, 교화 등을 목적으로 제작되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통치의 일환으로 인쇄되어 확산되었다. 이 글에서는 포은영당의 정몽주 초상화가 현대작이 아니라 1677년 한시각이 제작한 초상화를 1769년 한종유가 1차 보완하고 20세기 다시 2차로 수정한 작품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총 3폭의 정몽주 초상화를 제작한 한종유가 1768년에 숭양서원에 봉안할 목적으로 제작한 초상화가 가묘(영당)에 봉안된 1769년 본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1768년 한종유가 제작한 숭양서원 본의 정몽주 초상화는 형형한 눈빛, 강직한 인상, 일부 가감된 의습선 등이 이전 시기의 이모본들과 달라 주목된다. 이는 당시 1677년 한시각 본이 ‘참 모습을 잃어(失眞)’ 다시 제작하게 되면서 한종유가 특별히 포은의 삶과 인품 등이 드러나게 초상화의 ‘전신(傳神)’에 천착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종유가 1768년 숭양서원 본을 제작할 때 포은문집의 간행에 들어갈 ‘초상’을 요청받아 제작했음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서울대학교 소장 정몽주 반신 초상화 초본은 바탕 재질과 한종유의 초상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18세기 후기에 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몽주 초상화는 크게 조선 전반기 대표적으로 ‘핍진(逼眞)’한 이모본이였던 1555년 임고서원 본 초상화 유형과 조선 후반기 1768년 숭양서원 한종유 초상화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한철도 일제강점기 숭양서원에 봉안된 1768년 한종유의 정몽주 초상화를 모사하였음을 밝히고 있으며 현대에도 정몽주 초상화를 거론할 때 이한철이 제작한 1880년 본을 대표작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몽주 초상화의 제작 방식과 유형에 따라 초상화의 성격과 숭모 방식이 달라졌던 것이다. The portrait of Jeong Mong-Joo(鄭夢周) is divided into a full-body portrait(全身 肖像畵) enclosed in Seowon, Sadang, and Yeongdang(影堂:The the household shrine where the portrait) is enshrined, and a half-body portrait(半身 肖像畵) in collections of writings and paintings(畵帖). Full-body portraits of the Joseon Dynasty were produced to commemorate and worship Jeong Mong-ju through orientation and ancestral rites. During the Joseon Dynasty, half-body portraits were produced for the purpose of gifts, appreciation, and edification, but Japanese colonial era was printed and spread as part of colonial rule. In this article, the portrait of Poh-Eun Yeongdang(圃隱影堂) was not a modern work, but a portrait produced by Han Si-Gak(韓時覺) in 1677, which was renovated by Han Jong-Yu(韓宗裕) in 1768 and revised again in the 20th century. In addition, a draft of the portrait owned by Seoul National University(서울大學校) was considered to have been produced in the late 18th century in the style of the background material and work. In other words, the portrait of Jeong Mong-joo can be divided into a portrait type in 1555 and a portrait type of Han Jong-yu in 1768. In Japanese colonial era, portraits of Soongyang Confucian Academy(崧陽書院) became more popular by people traveling between Kaesong(開城), the center of transportation. Lee Han-Cheol(李漢喆) also revealed that he copied Han Jong-yu s portrait. It was found that the adoration method and style of the portrait changed according to the production method and type of portrait of Jeong Mong-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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