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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마립간시기 왕위계승원리와 왕권의 성격

        김재홍(Kim, Jae Hong) 한국고대사학회 2022 韓國古代史硏究 Vol.- No.105

        마립간시기 왕권의 성격은 여사제적인 성격을 가진 왕비의 계보와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부자 계승과 더불어 세대 계승도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신라 마립간시기의 왕계는 세대 계승과 부자 계승의 원리에 따라 계승되었다. 世代 繼承은 여계 왕비를 통해 계승되었는데, 비는 여사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왕위 계승은 미추의 비인 광명부인(A세대)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따님인 보반부인-내물, 아류부인-실성(B세대)으로 왕계가 이어졌다. 이어 아류부인의 따님인 아로부인을 통해 눌지가 마립간으로 즉위하여 C세대를 열었다. 세대 계승은 동일 세대에서 왕위가 계승되는 것으로, 마립간은 모계로 이어지는 여사제와의 혼인, 개인적인 능력, 국인의 추대를 받아 즉위하였다. 세대 교체를 통해 왕위는 일정한 연령, 전왕의 시해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내물과 실성 마립간을 ‘삼국유사형 마립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눌지마립간은 왕위의 父子 繼承을 지향하여 왕위는 장자인 자비-소지로 승계되었다. 마립간의 조건으로 전대 왕의 장자로서 효성과 인품을 강조하였다. 이 시기에는 왕비의 계보가 불확실하거나 이름이 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여사제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이 시기에는 왕의 아우를 갈문왕으로 책봉하여 왕권에 대한 도전을 차단하고 있다. 부자 계승을 지향한 눌지, 자비, 소지 마립간을 ‘삼국사기형 마립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소지를 뒤이어 즉위한 지증은 모친이 아로부인-눌지를 세대 계승한 조생부인으로, 소지와 동일 세대로서 왕위를 계승하여 마립간이 되었다. 세대 계승으로 즉위하였지만, 지증은 ‘마립간’에서 ‘왕’으로 왕호를 변경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The maripgan period is a time when the succession of generations and the succession of the throne from father to son collide and harmonize. Also, it shows the character of the transition period from the succession of generations to the succession of the throne from father to son. The dynasty of the generations was passed down through the female monarch, and the queen performed the function of a priestess. The succession to the throne came from Michu’s queen, Gwangmyeong (Generation A), and her daughters, Boban-Naemul and Aryu-Silseong (Generation B). Then, Nulji ascended to the throne as Maripgan through Aryu’s daughter, Aro, and opened Generation C. Generational succession means that the throne is inherited from the same generation. The generational change was made through certain years and assassinations of the former kings. The maripgan of this period can be defined as the ‘Samgukyusa type maripgan’. Nulji was oriented to the throne from father to son, and the throne was succeeded to the eldest son, Zabi-Soji. Filial piety and character were emphasized as conditions between marips. At this time, it is presumed that she failed to function as a priestess, as her queen’s lineage is uncertain or unnamed. During this time, the king’s younger brother was appointed as King Galmun, blocking any challenge to the kingship. Maripgan, who ascended to the throne through the succession of the throne from father to son, can be defined as ‘Samguksagi type maripgan’. Jijeung became a maripgan because of her mother, Josang, the daughter of Nulji-Aro. Ji-jeung, who ascended to the throne on the principle of generational succession, changed his title from ‘Maripgan’ to ‘King’ to strengthen his royal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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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하대초기의 왕위계승과 태후의 역할

        이현주 한국여성사학회 2018 여성과 역사 Vol.0 No.29

        In the Early Part of Late Shilla Dynasty, the Royal Ancestral Shrine System and system of the Crown Prince were used to establish legitimacy. Soon after the king was crowned, parental status increased. These practices were to establish the orthodox system of the king and declare the legitimacy of the throne. After the king dies, in the absence of a clear successor prince, the widow of the dead king, the Empress Dowager, plays an influential role in deciding on succession. In the aftermath of King Heungdeok(흥덕왕) 's death, there was a struggle for the throne. The war for the throne after King Heungdeok(흥덕왕) was the result of the role of King Hundeok(헌덕왕)’ queen, Gwiseung(귀승). After the death of King Heung-deok, she selected the next king among various candidates, leading to conflict over the throne. Thus, in the early days of Late Shilla as the struggle over succession grew fierce, Matrilineal kinship became as important as Patrilineal kinship. This led to an undermining of the legitimacy of the throne and the legitimacy of the kingship system. As the royal succession process changed, so the status and role of the Empress Dowager, the queen, became important, resulting in a strengthening of the status of royal women. 신라 하대초기의 왕은 즉위 직후에 종묘제와 태자제를 통해 부계적 정통성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는 왕의 수직적 계통성을 수립하여 부계적 정통성을 천명하고, 왕위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성왕 사후에 적손인 준옹이 소성왕으로 즉위하고, 이어서 소성왕의 아들인 애장왕이 즉위하였는데, 이는 적자계승원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헌덕왕이 애장왕을 시해하고 즉위하고, 흥덕왕은 헌덕왕의 동모제로서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왕위의 적자계승원리를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흥덕왕의 사후에는 왕위계승분쟁이 일어났는데, 이는 적자계승의 왕위계승원리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자 발생한 것이었다. 하대초기의 왕은 모두 원성왕계이고, 이들 중 소성왕, 애장왕, 헌덕왕, 흥덕왕, 민애왕은 인겸계이고, 희강왕, 신무왕, 문성왕, 헌안왕은 예영계이다. 하대초기의 왕위계승분쟁은 왕위의 정통성과 연관된 사안이었다. 왕의 부계적 정통성이 차별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모계, 즉 태후의 출신과 지위가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혜충대왕(인겸)-성목태후의 자녀는 소성왕, 헌덕왕, 흥덕왕, 충공이다. 헌덕왕, 흥덕왕, 충공은 동모형제(同母兄弟)의 혈연적 결연을 매개로 왕실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성목태후가 지닌 태후이자 대비로서의 위상은 인겸계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차기왕위계승권자인 태자가 부재할 경우, 왕위계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는 선왕의 부인, 즉 태후이다. 귀승랑은 헌덕왕의 왕비로, 흥덕왕 사후에 왕위계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태후였다. 즉 흥덕왕 사후에 예영계 간의 왕위계승분쟁이 야기되었던 것은 예영계인 귀승랑이 태후로서 차기 왕위계승권에 간여한 결과였다. 이처럼 하대초기는 왕위계승분쟁이 치열했던 만큼 부계 못지않게 모계 및 처계도 중요하였다. 왕위가 부자로 계승되지 않은 경우에 왕위의 정통성과 왕권의 정당성이 부족하였다. 이와 같은 경우에 왕은 즉위 직후에 그의 부모를 추봉함으로써 왕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하대초기에 원성왕계 간의 왕위계승분쟁은 부계적으로 동일하므로 상대적으로 모계 및 처계의 위상이 중요해졌다. 또한 하대에 당의 제도에 대한 이해가 더욱 심화되었고, 이는 왕실여성, 특히 태후의 지위와 역할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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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ma yna”: 다윗 왕위 계승 순위의 뒤틀림

        손종희 한국구약학회 2016 구약논단 Vol.22 No.2

        Who will succeed the throne of David? This has been an issue of utmost importance not only for the people of Israel but also within the court of David.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primogeniture as a fait accompli in Israel, Amnon is David's eldest son and therefore the heir to the throne. However, the line of succession within the royal palace is completely twisted and eventually Solomon succeeds David. Regal power in David's house is not smoothly transferred, and thus the court is exposed to urgent crisis with continuous power struggles among the princes related to the succession. What is the reason for such a twist? Was there a redactor's activity? Why was the Succession Narrative (2 Sam 9-20 and 1 Kgs 1-2), which revolves around the succession of the throne, written? In order to answer these questions, this study looks at each of the four candidates for the throne in order, and searches for the purpose and intentions of the author of the Succession Narrative. The author of the Succession Narrative, who worked as Solomon's apologist, reveals the reasons why Amnon, Absalom, and Adonijah were all rejected as David's successor, although they were the most privileged. The author records that Solomon is the only lawful successor set by Yahweh. The three candidates violated the law of Yahweh and committed crimes such as rape, murder, and rebellion, even though they had the legitimacy and rights to succeed David's throne. Thus those who committed crucial sins against the law cannot claim the throne, even though they are David the King's eldest son or the second one. In the eyes of the author of the Succession Narrative, therefore, Solomon's accession is the fulfillment of the Davidic covenant and a legitimate, natural result which accords with the will of Yahweh. The author explains through such a theological analysis why Solomon, the youngest son and thus the last candidate for the throne, was able to succeed the throne, and he seeks to find a solution to the immediate political crisis during the early years of Solomon's reign. Thus the Succession Narrative functions as Solomon's political propaganda, which is an apologetic account of the court to resolve public suspicions and accusations. 누가 다윗의 왕위를 계승할 것인가? 이 질문은 이스라엘 백성들뿐 아니라 다윗 왕궁 내의 초유의 관심사였다. 전통적인 고대 이스라엘의 왕위 계승법에 의하면, 다윗의 장남 암논이 왕위를 이어야 하나, 다윗 왕궁에서는 계승 순위가 완전히 뒤틀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다윗 왕가에서는 계승이 순조롭지 못하였으며, 궁중에서는 왕위계승을 둘러싼 왕자들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암투가 연속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왕궁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뒤틀림의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편집의 손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왜 왕위 계승을 주제로 하는 계승 내러티브 (삼하 9-20 & 왕상 1-2)가 기록되었을까? 본 연구의 목적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하여, 네 명의 왕위 후보자들을 순위대로 살펴보고 계승 내러티브 저자가 이 내러티브를 기록한 목적과 의도를 탐구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변증가로 활동한 계승 내러티브의 저자는 왕위 계승에서 우선권을 가졌던 암논, 압살롬, 아도니야가 왜 계승에서 탈락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들을 밝히고, 오직 솔로몬만이 야훼의 정하신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임을 자신의 펜으로 피력하였다. 이 세 후보들은 다윗의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특권과 정당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야훼의 율법을 어기고 강간, 살인, 반역 등의 죄를 범한 인물들이다. 이처럼 율법의 중대한 죄를 범한 자들은 아무리 다윗의 장남이나 차남일지라도 왕위를 계승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승 내러티브의 저자의 눈에는 솔로몬의 등극이 다윗언약의 성취이며, 야훼의 뜻에 의한 합법적이고 당연한 결과이다. 그는 이러한 신학적 해석을 통하여 계승 순위에서 최하위였던 솔로몬이 왕위를 잇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솔로몬 집권 초기에 당면한 정치적 위기에 해법을 찾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계승내러티브는 대중의 의혹과 비난을 해소하기 위한 의도로 기록된 궁중 변증서로서 솔로몬의 정치적 선전물(political propaganda)의 기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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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태자제의 수용과 왕실의 ‘家族’ 인식

        이현주 신라사학회 2022 新羅史學報 Vol.- No.55

        본 연구는 신라의 태자제 수용과 왕실의 ‘家族’ 인식의 상관성을 고찰한 것이다. 태자는 현왕의 적장자로서 차기 왕위계승권자이다. 태자의 왕위계승권은 왕실 ‘家’의 계승 및 상속과 연관된 사안이다. 신라의 태자제는 왕실의 ‘家族’ 인식 하에 고찰할 필요가 있다. 태자의 자격 조건인 ‘적장자’는 중국의 종법제를 기반으로 한 가부장적 가족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태자제는 왕실의 위상을 높이고, 왕권을 강화하는 주요한 제도였다. 태자제는 차기왕위계승권자를 미리 공식화하는 제도로서 왕위계승의 안정성을 담보하고, 왕권강화의 추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신라는 중고기에 태자의 칭호를 도입하여 왕실의 신성성을 고양하였고, 중대에 태자제를 수용하여 왕실의 존엄성을 확보하였다. 신라 중대의 첫 왕인 태종 무열왕은 진골로서 왕위를 계승하였기 때문에 왕권 강화를 위하여 중고기의 성골왕권의 정통성을 극복하고, 진골귀족과의 차별성을 규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중대왕실은 왕위계승의 정당성을 천명하기 위해 부모를 추봉하고, 태자제를 수용하였다. 또한 왕계의 정통성을 수립하기 위해 종묘제를 도입하고, 후비제를 수용하였다. 중대왕실을 존숭하기 위한 일련의 제도는 왕실의 ‘家族’ 인식 형성으로 이어졌다. 신라 왕실 ‘家’ 의 기본구조는 ‘祖父母-父母-夫妻(본인)-子’였다. 다만 신라 왕실의 중첩된 족내혼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외조부모와 처부모를 포함한 확대된 ‘家’의 구조, 즉 <祖父母와 外祖父母-父母와 妻父母-(본인의)夫妻-子女>로 인식하였다. 신라의 왕위계승은 태자제가 수용된 이후 상시의 경우에는 왕의 맏아들에게 왕위계승의 우선권이 주어졌으나, 비상시의 경우에는 부계친 중심의 수직적 계통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상시의 경우, 신라 왕실의 ‘가족’ 구조에 기반하여 왕위계승의 우선권이 부여되었다. 신라 왕실의 가족 구조에서는 중첩된 족내혼으로 인해 부계와 아울러 모계 및 처계의 계통성도 중시되었다. 이와 같은 인식 하에 신라의 왕위계승은 부계친의 적장자 계승뿐만 아니라 女(女壻), 兄弟, 庶子, 外孫의 계승이 이루어졌다. 신라의 태자제는 중국의 종법제적 가족제도에 기반한 왕위계승제도를 수용한 것이다. 신라는 태자제를 수용하고 운용하면서 신라의 실정에 맞게 변용하였다. 태자제는 종묘제, 후비제와 함께 신라 왕실의 ‘家族’ 인식이 형성되는 요소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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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 찬자의 상고기 정치체에 대한 계승 인식 : 논문

        김병곤 한국사학사학회 2011 韓國史學史學報 Vol.0 No.23

        『삼국유사』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本史로 적기하며 ‘遺事’를 서명으로 채용한 것은 『삼국사기』가 누락시킨 삼국사를 서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더불어 首篇이나 다름없는 기이편의 自敍에서 신이사를 기록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처음부터 서명에서 주창한 ‘삼국’의 범위를 벗어나, 삼국과 공존하거나 상고 시대의 여러 정치체에 대해 독립전을 설정하고 신이사와 상관없는 내용을 상당 부분 기술했다. 이는 본서의 찬자인 일연이 상고시대 정치체가 삼국과 상관성이 있음을 주목하고 상호 관계를 구체화하려 했던 것으로, 이 과정에서 ‘二府’ㆍ‘七十二國’등이 전례없이 독립전으로 설정되며 의도적인 개작도 존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설정된 각 정치체간의 계승 관계는 정치적 계승 〈정치적 이계(단군고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와 동일 왕계 계승(단군고조선→북부여, 북부여→동부여, 기자조선→마한, 고구려→백제)〉과 지리적 계승(위만조선→한사군→이부→삼한→삼국, 북부여→졸본부여) 그리고 기층집단의 유입에 따른 인적 계승(위만조선→이부, 낙랑국ㆍ북대방→신라)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이러한 계승 관계 속에서 주목되는 찬자의 상고사 인식을 보면, 우선 (단군)고조선에서부터 삼한을 지나 삼국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나라로 연결되는 일관된 계승관계나 역사적 정통성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민족적 시조로 설정된 단군의 혈연적 계승이 불분명한 까닭이겠지만 정치적 계승자로서 기자의 존재를 긍정하고 중시하였다. 이후 다양한 경로와 개작을 통해 기자조선으로부터 삼국에 이르는 계승관계를 주장하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부 인위적인 개작이 일어나며, 세부 내용에 오류(기준의 남하→마한의 등장, 한사군→이부→삼한 78국, 삼한→삼국)가 발생했지만, 이는 당대 지식인의 사적 인식에서 유래했던 까닭에 큰 결함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일연은 한국사에 포함되나 이전 사서에서 소외되었던 여러 정치체에 대해 뚜렷한 귀속 의식을 가지고 이를 정리해 민족사의 범위를 확장했다. 동시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각 정치체들의 상호 관계를 구체화하여 상고기부터 고대에 이르는 민족사의 계승을 명확히 했던 것이다. 『三国遺事』で金富軾の『三国史記』を木史と摘記して、‘遺事’を書名として採用したのは『三国史記』に漏落された三国史を叙述するという意志の表明である。これに首篇とも言える紀異扁の自叙で、神異事を記録しようとする方針を闡明した。しかし、『三国遺事』では初めから書名で主唱した‘三国’の範囲を外れて三国と共存し、以前時代のいろいろな政治体について独立伝を設定して神異社と関係のない内容を多数記述した。これは本書の撰者である一然が、上古時代の政治体が三国と相関性があることに注目して相互関係を具休化しようとしたことで、その過程で‘二府’ㆍ‘七十二国’などが前例なしに独立伝に設定され、意図的な改作も存在した。 その過程で設定された各政治体の間の継承関係は政治的継承〈異系(檀君朝鮮→箕子朝鮮→衛満朝鮮)と、同一王系(檀君朝鮮→北夫余、北夫余→東夫余、箕子朝鮮→馬韓、高句麗→百済)〉と、地理的継承(衛満朝鮮→漢四郡→二部→三韓→三国、北夫余→卒本夫余)、そして基層集団の流入による人的継承(衛満朝鮮→二部、楽浪国ㆍ北带方→新羅)に区分される。このような継承関係で注目される撰者の上古史についての認識には、まず(檀君)朝鮮から三韓を経て三国に いたるまで一国につながる一貫した継承関係か歴史的正統性が不在する。また民族的始祖として設定された檀君の血縁的継承が不分明な理由からであるが、政治的継承者として箕子の存在を肯定した。以後、多様な経路と改作を通して箕子朝鮮から三国にいたる継承関係を主張した。 ただ、その過程で一部人為的な改作(箕準の南下→馬韓の登場、漢四郡→二部→三韓 七十八国)と誤謬(三韓→三国)が発生したが、これは当代の知識人の通念から起因したので大きな欠陥になるとはいえない。むしろ一然は韓国史には含まれるが、以前史書から疏外させたいろいろな政治体について明らかな帰属意識をもち、これを整理して民族史の範囲を拡張した。同時に多くの経路を通して各政治体らの相互関係を具体化して上古期から三国にいたる民族史の継承を明確にしようとした試図自体は高く三価されるべき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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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明朝广西壮瑶聚居区土官继承程式研究

        姚建光,유지원 전북사학회 2022 전북사학 Vol.- No.65

        The succession system of Toguan (i.e. local officials) in the Zhuang and Yao inhabited areas of Guangxi in the Ming Dynasty had a complete succession program, which can be divided into two stages: the filing of heirs and the process of succession. The former includes the determination of the successor's qualification, the preparation and preservation of the successor's archives, the arrangement of the succession order, and the improvement of the successor's comprehensive quality. The latter is divided into six steps: Declaration of succession, verification of the qualification of the heir by the local and central authorities, the imperial court makes a final judgment and reply, The heir goes to the palace and accept his/her position, the imperial court appoints and confers official positions, titles and certificates, the heir returns home and performs his/her duty. Rewards and punishments for heirs before and after succession often include love and deterrence at the same time. The former often exerts favor, conveys material benefits, and makes his/her rich and noble. The latter is often the imperial court to intimidate his/her with authority, punish his/her with law, lure his/her with benefits, and court his/her with love. The prohibition of succession clause is the red line of succession drawn by the imperial court according to various pro-blems in the implementation of the succession system. Once it is touched, the imperial court will severely punish him/ her. It will not only be deprived of the qualification of inheritance, but also affect the prosperity and wealth of the whole Toguan family. 명대 광서성 장족·요족의 집단 거주지 토관 계승제도는 비교적 체계적인 승계 절차가 있었는데, 이는 크게 계승자의 신고ㆍ등록 절차와 계승자의 승계 절차 등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계승인의 자격 확정, 계승인에 대한 기록물의 작성과 보존, 계승 순서의 배정, 계승인의 종합적 자질향상 등 4가지 사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후자는 계승자의 서면보고, 지방 및 중앙 정부에서의 계승자 자격 검증, 조정(朝廷)에서의 최종심사와 재가, 궁중에서의 관직 임명, 조정에서의 관품과 임명장 수여, 계승자의 귀향 및 직무수행 등의 6단계로 나뉜다. 토관의 승계 과정에는 포상과 처벌이라는 두 가지 내용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전자는 종종 은혜를 베풀어 물질적 이익과 부와 명예를 보장해 주는 것이며, 후자는 중앙 정부의 강력한 무력으로 위협하여 법을 지키게 유도하는 것이다. 승계를 금지하는 조항은 중앙 정부에서 계승제도의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문제점을 고려하여 결정한 저촉해서는 안되는 마지막 기준점이다. 만약 토관이 이를 위반하면 조정에서는 관용 없는 엄중한 처벌을 하여 계승자의 자격 박탈 뿐만 아니라 가문의 부귀영화에까지 화가 미치게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세 가지 규정은 계승제도의 절차와 더불어 계승제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한 중요한 보호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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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의 <사미인곡> 계승 양상과 그 의미

        구선우 어문연구학회 2014 어문연구 Vol.80 No.-

        본고는 송강 정철(1536-1593)의 <사미인곡>을 모티프로 창작한 현대 시인들의 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현대시의 <사미인곡> 계승 양상을 살펴보고 나아가 그것이 지니는 문학적 의미를 밝혀 보았다. 우선 현대 시인들은 <사미인곡>을 내용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계승하였다. 에 담긴 그리움의 정서와 임에 대한 변치 않는 마음을 모티프로 삼아 다양한 형태로 창작했다. 사랑의 본질을 연작시의 형태로 짓기도 하고, <사미인곡>을 모티프로 하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이나 이별한 상황의 슬픔을 노래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사미인곡>의 이별의 상황을 차용했지만 <사미인곡>속 화자와 임의 관계를 비틀기도 했다. 이별 상황을 소재나 의미의 차이가 약간 있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사미인곡>에 내재된 정서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들은 <사미인곡>의 테두리 안에서 소재와 구조 그리고 주제를 수용하여 작품 본연의 의미를 계승했다. 다음으로, 현대 시인들은 <사미인곡>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변용하며 확장하는 방식으로 계승하였다. 이러한 계승은 <사미인곡>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들은 굳이 <사미인곡>만을 소재·구조·주제적 차원에서 활용하지 않고, <서경별곡>과 같은 고려가요도 함께 차용했다. 자유롭게 부분적으로 구절이나 제목을 차용해 모자이크처럼 모아 의미를 직조했다. 현대 시인들은 고전 작품의 대표로써 <사미인곡>이 가지는 의미를 인식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시 속에 현실에 당면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상적 시간으로서의 '과거'라는 새로운 의미를 <사미인곡>에 부여했다. 작품의 내적인 의미보다는 소재적 차원에서 자유로이 활용했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의 작품이 창작될 수 있었다. 이어서 현대시의 <사미인곡> 계승 양상의 문학적 의미를 파악해 보았다. 먼저 본격적인 계승은, 원전 자체가 지닌 문학적 위상을 보여주고, 그 다음으로 확장적 계승은 원전의 외적인 면모를 수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확대한 점에 의미가 있었다. 끝으로 이러한 계승은 고전시가의 전통이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향유자들간에 소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In this articles, the subjects of the study are works created by modern poets with the motive of 'Samiingok' written by Song Gang. The aspects of succession of 'Samiingok' of modern poetry were reviewed and its literary meaning was identified. The summarized results are as follows. Modern poets inherited 'Samiingok' in terms of its contents. They created a variety types of works with the motive of the longing and everlasting love for a lover represented on 'Samiingok'. Some poets wrote serial poetry of the nature of love and some of them composed poetry of unchanging love or sadness of parting with the motive of 'Samiingok'. Some of poets twisted the relation between the narrator and his lover, using the scene of parting of 'Samiingok'. In spite of slight differences of materials or meanings, all of them inherited the sentiment implied in 'Samiingok'. Next, modern poets inherited 'Samiingok' by changing and expanding its original meanings. They didn't only use 'Samiingok' in terms of material, structure, and theme but also used Goryeo Songs such as 'Seogyeongbyeolgok'. Modern poets recognized the meanings of 'Samiingok' as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classics. As a result, they imparted a new meaning called 'past' which is the ideal time that can recognize and settle the facing current problems to 'Samiingok'. They could create many works with different meanings since they freely used 'Samiingok' in terms of its material instead of the internal meanings. Then, the aspects of succession and the literary meaning of 'Samiingok' on modern poetry were identified. The regular succession shows the literary meanings of the original poem and the expanded succession expanded the new meanings by accepting the external aspects of it. Lastly, it has a meaning that such inheritance of the tradition of classical poetry is still communicated between readers even in the present and will be sustain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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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자혜의원(慈惠醫院) 계승론”과 대학 “개교기년(開校紀年)” 조정 문제

        김병인 ( Byoung In Kim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0 호남학 Vol.0 No.48

        본고에서는 자혜의원을 대학병원 더 나아가 대학의 역사적 시발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그 가능성을 검토하고, 이것이 대학 “開校紀年재조정”을 둘러싼 여러 논의들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자혜병원 계승론”과 관련하여 진행된 제반논쟁, 특히 최근 각각 개원 100주년을 기념한 바 있는 서울대학교 병원과 경북대학교 병원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그 결과 서울대학교 병원측의 대한의원 계승론은 일부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연세대학측과의 주도권 다툼, 서울대 동료 교수와 서울대병원 노조의 반대, 민족문제연구소측의 비판에 직면해 있는 바, 계승론 자체가 계속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2010년 10월 서울대 평의원회에서 “개교 원년을 1946년으로 유지하고, 대한제국 시기 법관양성소가 설립된 1895년은 개학 연도로 받아들이기”로 한 바있어 더욱 그러하다. 한편 경북대학교는 2007년 “경북대병원 100주년 기념행사”에 직면하여 “同仁醫院의 歷史的眞實은 侵略을 위한 宣撫行爲”라는 의견을 내어 비판하면서 “동인의원의 정체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동창이 많은 것 같아 다시 한 번그 역사적 진실을 약술하고 병원사 왜곡을 경고”하는 등 경북대학교병원의 역사계승 문제는 일차적으로 “동인의원의 계승” 문제를 매듭짓고, 그 다음으로 “대구자혜의원 계승론”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거치고 나서야 결론지어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자혜의원에 대한 조선민중의 대응과 반응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정보와 자료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그나마 일제에 의해 왜곡 되었을 가능성이 많은 까닭에 자혜의원의 정체성과 역사적 위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는 힘든 점이 많았다. 다만 의지할 곳이라고는 조선총독부의 시혜의 이름을 빌린 의료통치 정책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조선민중의 입장에서 자혜의원이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었을 것인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자혜의원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의 수집과 분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남대학교병원의 “광주자혜의원 계승 및 100주년 기념 및 전남대학교 개교기년 재조정”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제언함으로써 논의를 매듭지었다. 첫째, 전남대학교병원에서 주장하는 공공성, 장소성, 역사성이 타당한가에 대하여 충분한 검토를 마쳐야 하고, 둘째 이를 위해 광주자혜의원과 관련된 자료를 보다 광범위하게 수집 분석하여 “자혜의원 계승론”에 대한 학문적 뒷받침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셋째, 만약 자혜의원 계승론을 토대로 전남대학교 역사를 100년으로 잡는다면, 전남대학교병원의 전통이 서양의학의 일방적 수용과 식민통치 수단에 있었다는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고 “濟衆”의 논리와 민족의학사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한의학에 대한 대승적 접근과 접목이 필요할 것이다. 넷째, 전남대학교의 역사가 60년에서 100년으로 늘어나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논리적 설명이 필요할 것이고, 다섯째, 전남대학교 개교기년 재조정 논란은 제도와 형식의 계승이 아닌 인적, 정신사적 맥락 속에서 계승 의식을 풀어가야 할 것이다. The study is intended to review the possibility of if we can see the Jahae Clinic as the historical starting point of the University Hospital or the University, and what it means in various discussions on “Readjustment of the year of school establishment”. For the review, I researched general debates on “the succession to the Jahae Clinic” and especially, focused on the cases from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and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which recently celebrated the 100th Anniversary. According to the research, the insistence on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s succession to the Daehan Clinic is difficult to be kept, even if there is partial consent, because of the fight for hegemony between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Yonsei University, objection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s faculty and the labor union, and IRCA (Institute for Research in Collaborationist Activities)`s criticism. In October, 2010, SNUS(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nate) announced that “SNU would accept Year 1946 as the First Year of the University and Year 1895 when the Training School for Judges was established in the Greater Korean Empire, or Daehan Empire as the Year of the School Establishment”. In 2007 with the celebration of the 100th Anniversary,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complained that “the historical truth of the Dongin Clinic is that it`s a placation activity for the Japanese invasion”. Thus, the matter of the historical succession of Kyungpook University Hospital requires to solve “the succession to the Dongin Clinic” first, and then “the succession to the Daegu Jahae Clinic” before the conclusion. But unfortunately, the information and materials about the period have been quite limited, especially, on what the people`s reaction to the Jahae Clinic, and even remaining materials might be distorted by the Japanese Imperialism, which means that it is difficult to study the Jahae Clinic`s identity and its historical status in detail. What we could depend on and research is the meaning of the Jahae Clinic to Chosun people who were forced to be governed by the medical policy in the name of Jahae meaning charity in Korean. The prerequisite for that is to collect and analyze various materials related to the Jahae 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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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이데올로기와 계승어 교육에 대한 고찰

        김대희 ( Dae Hee Kim ) 국어교육학회 2012 國語敎育學硏究 Vol.43 No.-

        이 연구는 언어 이데올로기와 계승어 교육의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다문화 사회에서의 계승어 교육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다문화 사회가 사회 통합을 능동적인 형태로 지향하기 위해서는 소수 집단이 지닌 언어와 문화에 대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특히 언어 문제에 있어서는 소수 집단이 지닌 언어 이데올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어 이데올로기는 계승어에 대해 언어적 태도와 행동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계승어 교육과 관련한 언어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계승어에 개인적 또는 사회적으로 긍정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언어의 사용을 장려하고 전수하려는 친계승어 이데올로기이며, 또 다른 하나는 계승어를 공용어 습득의 간섭 요인으로 간주하여 주류 사회로의 빠른 적응과 흡수를 위해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반계승어 이데올로기이다. 계승어 교육에 대한 교육적 시도는 한국 사회와의 능동적 통합을 구현할 수 있는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다. 계승어 교육의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소수 언어 습득 및 사용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둘째, 다문화 가족 내 소통을 위한 ``가족 언어 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셋째, 언어 습득을 위한 가족 내 역할 구조를 설정하여야 한다. 넷째, 다문화 가족 외부에서의 계승어 소통 기회를 확대하고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directions of heritage language in multicultural society by exploring the correlation between language ideology and heritage language education. A society should embrace the values and briefs of minority group to attain the positive social integration. Especially, in language usage the mainstream society need to take note the language ideologies. Because the language ideology controls the linguistic attitude and behavior about heritage language. Language ideologies operating in heritage language education can be gauged on a continuum of pro-heritage language ideology on one end and anti-heritage language ideology on the other. The former promotes the use of heritage language by authorizing the meaningful valuation individually and socially. On the other hand, the latter opposes the heritage language education because it interferes in early adaptation to mainstream society. The directions for heritage language education are as below: 1) the spread of positive awareness about the acquisition and use of minority language, 2) the establishment of family language policy, 3) the setting up family role structure, and 4) the expansion of communication opportunity through heritage language.

      • Korean-American Diaspora Households

        Soohee Kim 국제한국어교육문화재단 2017 국제한국어교육 Vol.3 No.2

        지속되는 한류의 위세로 한국정부와 한국어교육 학계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인기상승을 구가하고 있다. 특히 미국 LA 지역은 이중언어 교육 프로그램이 증가 추세에 있고, 미국 현대어문학협회 2009년 통계 보고에 따르면 대학 한국어 학습자의 수도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는 세계화의 목적달성에 근접했지만, 계승어로서의 한국어는 연구 대상에서 뒷전이 되어 각 가정 내에서 한국어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조차 도외시되고 있다. 국차원에서 이중어 구사자를 양성하고자 하는 미 정부와 협력, 이십여 년 전부터 미 학계에서 ‘계승어 운동’이 시작되었으나, 계승어 소실을 당연시하는 교육정책 및 이중언어 사용자를 냉대하는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민 자녀가 소수민족, 언어 차별을 내재화하여 가정 내에서도 부모와 한국어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본고에서는 이민 자녀가 건강한 정체성을 가 지고 부모와 소통하며 능력 있는 이중어 구사자로 미국 사회의 일원이될 수 있도록,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부모는 자녀를 위해 이민 초기부터 구체적인 가족 언어계획을 준비하고, 영어에 능숙한 부모도 가정을 ‘언어의 보금자리’로 지정해 자녀에게 계승어로서의 한국어를 되찾아줄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한글학교는 부차적인 교육기관으로서 그 기능을 다 해야 하고, 가정이 한국어 계승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이민 부모가 자신의 언어를 자녀에게 수월히 계승해주기 위해서는 한국정부가 주도하는 전적인 교육계몽이 있어야 한다. 한국 내에서부터 이중언어 사용에 대한 수용적이고 고무적인 내용을 교과과정에 포함해 한국민을 교육하는 한편 미국 이민자들에게 이중언어 자녀육성에 대한 교육 정보를 널리 전파해야 계승어로서의 한국어가 소생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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