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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틸리히의 신학 사상

        김은정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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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리히 신학은 거대한 종합 즉, 실존론적 사고와 역사적 사고, 철학적, 종교학적 사고와 신학적 사고, 자연신학적 요소와 계시신학적 요소, 초월적 요소와 내재적 요소등이 교묘하고 치밀하게 결합되어 있고 조정신학적 특징 때문에 신(Neo)실재론적 형이상학, 실존주의적 신학 또는 역사주의 신학의 어느 한 학풍에 속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김균진, 「20세기 신학 사상?」(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3), 319-320. 엄밀히 말하면 틸리히의 신학의 입장은 변증법적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중간이다. 전자는 신과 세계의 분리를 주장하고 신의 초월성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신과 세계의 종합을 주장하고 신의 내재성을 강조한다. 틸리히는 양자의 충돌을 극복하는 중재와 종합이라는 제 3의 길을 도모하였다. 목창균, 「현대신학논쟁」, 192. 1. 틸리히 신학의 긍정적 평가 먼저 틸리히가 20세기 신학에서 공헌한 점을 기술해 본다면 다음의 몇 가지로 축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틸리히의 신학은 교회의 좁은 영역에 머물지 않고, 세속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기독교 진리의 의미와 타당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틸리히는 자신의 신학을 가리켜 “대답하는 신학”, “변증신학”이라고 정의한다. 하나님의 진리가 교회와 온 세계에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김균진, 「20세기 신학 사상?」, 320. 2) 틸리히의 신학은 “영원한 진리”를 일방적으로 던지고자 하지 않는다. 그의 신학은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과 표상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독교의 진리를 기술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신적 본성”(=신성)과 “인간적 본성”(=인성)이라는 개념의 틀로 설명하지 않고, “새 존재”의 개념으로 설명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존재를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전통적 개념들을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또한 오늘의 세계에 대해 타당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Ibid., 320-321. 3) 틸리히의 신학은 기독교의 진리를 교회 전통의 범위를 넘어, 일반 종교사적 지평 속에서 파악한다. 그는 기독교가 종교사의 배경 속에서 등장하였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틸리히는 기독교에 충실하고자 하며, 진리의 중심적 나타남이 기독교에 있다고 생각지만, 타 종교들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적 태도와 고립을 극복하고, 타 종교들과 기독교의 연관성을 추구하며 양자의 만남과 대화를 시도한다. Ibid., 321. 4) 현대의 문화가 세속화됨에 따라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속의 문화에서 분리된 하나의 종교로 끝나서는 안되며, 오히려 기독교는 문화와 연결되어야 하고, 문화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틸리히는 그의 신학을 통해 현대의 문화를 신율적 문화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Ibid., 321. 5) 틸리히의 신학은 실존주의 철학은 그의 도구로 삼아 인간의 실존을 분석한다. 기독교 진리의 역사적 비평과 메시야적 지평을 그의 신학에 과감히 도입하여 인간실존의 문제, 역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의 대답을 제시한다. 그는 역사의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 안에서 지닌 부정의 기능, 정치적, 사회변혁적 기능을 용감하게 드러낸다. Ibid., 321-322. 2. 틸리히 신학의 비판적 평가 그러나, 틸리히 신학이 가진 타당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우리는 그의 신학이 가진 문제점 가운데 몇 가지를 아래와 같이 기술할 수 있다. 1) 먼저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기독교 메시지를 주어진 상황에 상관시켜 재해석하려는 시도에 누구보다도 많은 관심과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조정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상관관계의 방법’을 도입하였고 대립된 모든 요소들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이 상관의 방법에 가장 신랄한 비판을 가한 것은 칼 바르트였다. 상관의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상관 방법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인간의 상황에 대한 질문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바르트는 상관의 방법을 인간 중심적인 자유주의 신학에로의 복귀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인간에게 의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계시가 인간의 실존적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다. 상관 방법은 인간의 상황으로부터 나온 질문의 대답을 계시에서 제시한다. 그러나 바르트는 대다수 질문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전자의 비판에 대해 틸리히는 상관의 방법이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을 인간에게 의존하게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은 본질에서는 인간에게 의존될 수 없지만, 자신을 나타내는 계시에서는 불가피하게 인간이 응답하는 방식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후자의 비판에 대해서는 기독교 신앙이 기초하고 있으며 인간의 실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계시 사건에서 인간의 실존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제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목창균, 「현대 신학 논쟁」, 204. 2) 틸리히 사상 중 논쟁이 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성서를 상징으로 보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틸리히는 신과 인간을

      • 폴틸리희의 신론연구

        황성호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7807

        틸리히에게는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긴장과 대립이 가장 큰 철학적 물음 이었다.또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추구할 때 신학이 절실하게 요구되었 다.이런 면에서 하나님이란 그러한 긴장과 대립을 초월하는 존재의 궁극 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틸리히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존재한다고 하 면 그 존재 역시 비존재와 긴장과 대립의 상태에 놓여 지기 때문에 하나 님을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심지어 하나님은 본질과 존재를 다 초월 한다고 한다.본질이란 사물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적 완전의 모습 으로 존재론적 현실성을 갖지만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존재를 말한다.반 면에 존재란 본질로부터 나온 현실이라는 것이다.존재는 계속적으로 본 질에 의존하지만 본질에서 나왔기 때문에 본질 그 자체와 동일시 할 수 없다고 한다.하나님이란 바로 이러한 가능성이나 현실성을 초월한 존재 그 자체 혹은 궁극적 관심 그 자체라고 한다.그러므로 전통적으로 하나 님을 증명하려 했던 노력은 사실 하나님에 대해서 어떠한 것도 증명하지 못했다고 한다.단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질문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했 다고 한다.이렇게 하나님을 단지 어떤 한 존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 혹은 궁극적 관심이라고 할 때는 인간에게 궁극적 관심이 되는 어떠한 것 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모든 일반적 경험과 존재를 초 월하지만 인간에게 궁극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차원에서 하나님은 인간 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이것은 무신론적 주장이 아니라 유 신론적 주장을 틸리히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은 구체적 이고 보편적이라고 주장한다.이런 맥락에서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을 넘 어선 하나님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존재 그 자체이지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고 틸리히는 주장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실존적인 존재와의 관계성속에서 이해되어질 수 없는 무 한한 힘과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의 존재 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이러한 면에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틸리 히의 주장은 모든 것들안에 내재하는 하나님의 힘을 묘사하기 위한 강력 하고도 역절적인 표현인 것이다.무한하고도 무조건적인 힘과 의미가 최 고의 존재에게 덧붙여질 때,그 존재는 존재가 되기를 멈추면서 존재가 그 자체가 된다고 틸리히는 말한다.이 말의 의미는 최고의 존재가 무조 건적인 권위와 의미를 지니게 될 경우에 그는 하나의 존재나 최고의 존재 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뜻이다.그러므로 무조건적인 힘과 의미는 단순히 하나의 존재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서의 하나님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다. 존재 그 자체는 만물 안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힘,즉 비존재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한다.존재는 실존상황 아래서 비존재의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에 모든 인간존재들은 비존재의 위협을 피할 수 없다.인간이 비존재의 위협을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비존재의 위협을 수용할 수 있는 용기를 찾는 것이라고 틸리히는 말한다.또한 이러한 용기는 존재 그 자체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짐으로 가능해진다고 그는 말한 다.존재 그 자체로서의 틸리히의 하나님만이 비존재를 포함하면서 동시 에 초월할 수 있기에 비존재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하나님 뿐인 것이다.따라서 존재 그 자체로서의 하나님은 인간의 유한성을 공격 하는 비존재의 위협에 대한 유일한 해답인 것이다.이러한 면에서 실존하 는 모든 존재는 존재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존재 그 자체에 참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비존재에 의해 파멸을 당하고 말게 된다.모든 유한한 것들은 존재 그 자체와 존재 그 자체의 무한성에 참여해야 한다고 틸리히는 주장한다.그렇지 않다면 존재는 존재의 힘을 얻지 못하게 된다. 결국 존재는 비존재에 의해 삼켜버리게 되거나 비존재의 위협에서 결코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그러므로 믿음은 존재 그 자체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존재의 참여이다.존재가 존재 그 자체인 하나님에 참여할 때 하나 님은 존재에게 존재의 힘을 부여한다.존재의 힘은 존재가 비존재에 대한 불안을 스스로 짊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용기의 궁극적인 출처인 것이다. 존재 그 자체라는 용어는 틸리히가 자신의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 한 은유적인 표현이다.사실,존재 그 자체로서의 틸리히의 하나님은 삼위 일체 하나님인 것이다.성부 하나님은 창조적인 힘으로,성자 예수 그리스 도는 구원하시는 사랑으로,성령은 황홀한 변형으로 명백하게 보여지게 된다.삼위일체의 상징들은 하나님의 삶에 대한 논리,즉 분리와 재결합의 운동을 보여준다.삼위일체의 상징들은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의 영원한 영정을 보여준다.성부 하나님은 모든 존재가 그 기원을 두는 존재의 근 원이다.또한 성부 하나님은 비존재의 위협을 무한히 거부하는 존재의 힘 인 것이다.그러므로 그는 모든 실존하는 인간 존재들에게 존재의 힘을 공급한다.이러한면에서 성부 하나님은 위엄이 있고 장대한 것이

      • 틸리히의 존재론과 신론연구 : 틸리히의 존재론적 신론과 그의 설교를 중심으로

        박대현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0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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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틸리히의 존재론적 신론과 그의 설교를 통하여 얻은 틸리히의 신 이해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 종합하자면 세 가지로 정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틸리히의 신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신과는 달리 인과 관계의 원인자로서 모든 존재의 근거로서의 하나님이다. 이것은 존재에의 용기로서의 하나님과도 같은 말이다. 즉 이 말은 틸리히 신론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존재자체(Being Itself)라는 틸리히 자신의 신에 대한 비상징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비존재의 불안에 처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철학의 실존주의적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틸리히는 존재자체를 말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틸리히의 표현이 성서의 하나님 표현과는 많이 달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틸리히의 이러한 해석은 현대 지성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왜 신을 믿어야 하고 신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무턱대고 덮어놓고 성경에 나와 있으니 믿으라는 식의 설교는 베이비 붐 세대에나 통했던 설교이다. 앞으로 나의 목회현장에서는 틸리히의 실존적 고민이 녹아 들어있는 이 존재자체라는 대답이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로 틸리히의 신은 언제나 비존재의 위협을 무로부터 창조해 가시는 역동적인 하나님이다. 존재자체라고 하여서 어떻게 보면 정적인 모습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존재자체라는 표현은 단지 인간의 언어로서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고 나머지 상징을 통해서 우리는 존재자체인 하나님을 세속의 삶 속에 있는 우리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존재의 위협으로부터 존재의 근거가 되는 존재자체인 하나님은 불연속적인 분이 아니라 영원히 연속적인 구원의 과정에서 우리를 당신 안에서 재창조하시고 재 연합하시고 부활하게 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셋째로 틸리히의 신은 보편적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다. 틸리히는 ‘우리의 궁극적 관심’ 이라는 그의 설교에서 궁극적 관심이 존재자체에 관심 되어야 하는데 많은 다른 것들이 우리의 삶속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궁극적 관심이 된다고 하였다. 심지어 종교에서도 틸리히는 우리만 믿고 다른 사람은 믿지 않은 종교나 하나님은 궁극적 관심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던 섬기지 않던 온 인류의 하나님이시고 이것은 즉 하나님은 인류의 보편적 구원을 위해서 존재자체인 하나님이시지 어느 특정한 종교, 교단을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님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사람들 그리고 특정한 종교를 위해서 존재하는 하나님은 이미 궁극적 관심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틸리히의 이러한 보편적 인류의 구원을 위한 존재자체인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이해와 설교는 타 종교와의 대화 또는 선교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방법론적 고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틸리히의 신론은 독일의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르트(Meister Johannes Eckhart 1260?∼1327?)의 신이해와 많은 유사점이 있다. 에크하르트의 신 이해에 대해서 간략하게 논하며 틸리히의 신론과 연결되는 부분을 비교 언급하면서 한국 교회에서의 틸리히 사상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 정리하면서 이 논문을 마치고자 한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 ‘무로부터의 창조’는 어떤 존재에 대비되는 부정성으로서 무(無)가 있어서 여기에서부터 어떤 존재가 창조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말은 없어질 위험에 직면해 있는 피조물을 끊임없이 영원한 현재 가운데서 존재에로 부르신다는 의미이다. 비존재의 위협에서 존재에로 부르신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는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나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끊임없이 창조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창조 이해는 전통적인 창조이해와는 구별된다. 시간의 어느 한 시점에서 창조해 놓고 손을 놓아버린 그러한 창조가 아니고, 창조 후에 피조물에 관여하지 않는 그러한 의미의 창조가 아니다. 영원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도 신은 언제나 피조물이 무성(無性)에 빠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영원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에크하르트의 신 이해는 틸리히의 신이해와 거의 흡사하다. 비존재의 위협에서 존재에로 부르시는 신의 창조는 틸리히가 말하는 비실존의 불안 앞에서 유한성을 지닌 인간이 궁극적 관심을 존재자체에 둠으로 새롭게 창조된다는 의견과 일맥상 통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신 이해는 끊임없이 존재에의 용기에로 부르는 존재의 근거 혹은 존재의 터전으로서의 신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존재자로서 존재자체 없이는 비존재의 실존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에크하르트도 신 없이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님을 주장한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을 앎으로서 무의미와 죽음에 대립되는 의미와 삶을 산다고 말하였고 틸리히는 궁극적 관심을 존재자체에 둠으로서 존재자는 비존재의 위기를 극복한다고 말한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 인간은 바로

      • 틸리히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비판적 이해 : 소외 개념을 중심으로

        이정원 광주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21 국내석사

        RANK : 247807

        오늘날에도 인간은 소외의 상황을 경험한다. 고통, 죽음, 불의, 악의 경험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비극적인 곤경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외의 경험은 궁극적으로 신에 대한 물음과 연결된다. 이와 관련하여 ‘소외의 상황에서 그리스도교 메시지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틸리히의 그리스도론은 ‘오늘날에도 소외의 상황에 처해있는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경계선상의 개신교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실존론적 관점으로 가톨릭 신학과 개신교 신학 사이의 조화를 모색한다. 그의 조직신학은 ‘상관관계의 방법’에 따라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에 답변하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인간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증명해낸다. 틸리히의 그리스도론은 실존론적 바탕에서 이루어지므로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특징이 있다. 그리고 그의 그리스도론은 상승 그리스도론의 방법론을 취하여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가 보여준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찰은 인간이 처한 ‘소외’의 상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비극적인 곤경에 처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므로 ‘새로운 존재’를 대망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로서 예수에게서 실현되었다고 믿는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로서 예수는 소외의 곤경에 참여하면서도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로서 예수에게서 실현된 새로운 존재에 참여하게 될 때 ‘치유’될 수 있다. 나아가 틸리히의 실존론적인 그리스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이 인간의 실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하지만 그의 사변적이고 상승적인 그리스도론에도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존과 소외를 강조하는 그의 인간론에 대해 ‘인간 실존에 비극성만 있고 능동적 자유는 없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또한 새로운 존재를 강조하는 그의 그리스도론은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론적 신인가 아니면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하느님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한다. 따라서 ‘ 인간이 처한 소외에 대한 답변은 새로운 존재인 그리스도로서 예수’라는 명제를 성전과 성경을 중심으로 새롭게 해석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따라서 틸리히의 신학은 인간의 실존과 말씀의 육화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소외의 보편적인 곤경을 경험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소외를 하느님과 연관성 안에서 이해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소외에 대한 기원을 원죄로 설명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메시아를 대망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파스카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분께서 이스라엘이 대망하던 메시아라고 주장한다. 제자들이 묘사하였듯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삼중 소외로 내던져지셨지만, 그럼에도 그분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자기-낮춤을 실현하시며 타인의 회개를 위해 노력하셨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는 소외된 인간 존재를 하느님과 결합시켜 새 창조를 이루시고, 의화된 인간은 성화를 통해 끊임없이 신앙의 결단을 내릴 것을 요구 받는다. Even today, humans experience situations of estrangement. Through experiences of pain, death, injustice, and evil, humans realize they are in a tragic predicament. Moreover, this experience of estrangement is ultimately linked to the question of God. Namely, we raise the question, 'What is the meaning of the Christian message in estrangement? Tillich's Christology is the answer to the question, 'What does Jesus Christ mean to humans in a state of estrangement today?' Paul Tillich, a Protestant theologian on the boundary, seeks harmony between Catholic theology and Protestant theology from an existential perspective. His systematic theology can be said to be the answering theology of human existential situations according to the "method of correlation." It, thus, philosophically proves that the truth of Christianity is not irrelevant to human life. Tillich's Christology is based on existentialism, so it has philosophical and speculative characteristics. And his Christology begins with the question of human existence by taking the methodology of ascending Christology. His consideration of human existence clearly reveals the situation of “estrangement” that humans face. The men in a tragic predicament cannot save himself, so they must aspire to be a "new being." But Christianity believes that this new being has been realized in Jesus as the Christ. Namely, Jesus, as the Christ appears to overcome the plight of estrangement while participating in it. All human beings can be 'healed' when they become involved in the new being realized in Jesus as the Christ. Tillich's existential Christology convincingly suggests that the existence of Jesus Christ has something to do with human existence. However, even his speculative and ascending Christology clearly reveals its limits. His human theory that emphasizes existence and estrangement raises another question, "Is there only tragedy in human existence and no active freedom?" His Christology, which emphasizes the new being, also raises the question: 'Is Jesus Christ an ontological God or a unique God of Christianity?' Therefore, it raises the need for reinterpreting of the proposition, ‘the answer to the estrangement that humans face is Jesus as the Christ, a new being,’ centering on the Tradition and the Bible. Therefore, Tillich's theology needs to be newly understood from two perspectives: human existence and the incarnation of Word. Humans experience the universal plight of estrangement, and the Israelites understand it in connection with God. The Israelites describe the origin of estrangement as original sin and look forward to Messiah to overcome it. However, the disciples of Jesus Christ claim he is the Messiah that Israel had longed for, while experiencing the Paschal incident. As his disciples described, Jesus Christ, who is God, was thrown into triple estrangement, he also proclaimed the kingdom of God, lowered himself, and strived for the repentance of others. Finally, Jesus Christ combines the estranged human being with God to form a new creation; and he constantly requires the justified man to decide the faith through sanctification.

      • 틸리히 '상관관계 방법'의 비판적 적용 : 상황-물음-답변의 '三關方法'을 통한 포스트모던 시대 분석

        최병학 경성대학교 대학원 2011 국내박사

        RANK : 247806

        이 논문은 20세기 최대의 문화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의 사상과 신학적 방법론인 ‘상관관계 방법’(method of correlation)을 포스트모던 시대의 상황에 기초하여 비판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이다. 틸리히는 자신의 저서인『조직신학』을 통해 모든 신학적 대답을 그에 상응하는 철학적 질문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전개하였다. 그러나 틸리히의 철학적 질문과 신학적 대답은 이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유용한가? 틸리히의 철학적 질문이 실존주의에 기초한 질문이었으며 하비 콕스(H. Cox)의 사회적 질문이 '세속도시'에 기초한 질문이었다면, 이제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문화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문화적인 질문을 다듬는 것, 그것이 문화신학자 틸리히 사유의 핵심이며 현상화의 문화적이고 철학적이며 사회적인 질문에 틸리히의 신학으로 답변하려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대지에 거주하며, 대지에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생존을 위해 문화를 수립하거나, 자연에 순응하며 다양한 타자와 만남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이다. 대지와 바람, 곧 풍토(風土)는 우리 인간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으로 작용해 신화적인 세계관을 갖게 하기도 하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세계관, 그리고 자연을 활용하는 실증적이고 실용적인 사유를 그 상관하는 방식에 따라 갖게 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풍토와 장, 곧 상황은 무엇인가? 우리의 이성은 전통적인 형상을 파괴하며 부친살해의 욕망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으며 이성이 그 자신의 간교로 등장한 이미지 과잉시대는 도대체 이성의 한계는 어디인가를 묻게 한다. 존재의 상황도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혼종(hybrid)을 통한 ‘차라투스트라의 기획’과 ‘디지털 생물학’의 등장은 새로운 존재의 확장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불어 사이버스페이스는 영지주의라는 사상적 숙주(宿住)를 만나 신체성에 기반한 인간의 존재와 다른 사이버 주체(Cyber-I)를 창조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성에 기초한 포스트모던 감성시대는 정서에 메마른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감성기적’이라는 새로운 포스트모던적 기적을 추구하게 한다. 이러한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로는 다시금 신화적인 세계관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영원히 지양하는 그래서 중심이 정해지지 않는 자아(non-selfhood)를 통한 인식론적 허무주의를 지향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더구나 이러한 인간 실존의 상황은 외부적인 것으로만 제기되지 않고 내적인 욕망의 문제로까지 침투하여 욕망 정치가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리스도교만이 아닌 이웃 종교의 등장으로 인해 삶의 물음은 더욱 복잡하게 구조화된다. 이러한 풍토에 인간은 실존적인 질문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질문들을 갖게 된다. 사실 틸리히는 ‘철학적 질문’과 ‘신학적 대답’을 그의 방법론의 핵심으로 전제하였는데, 철학적 질문은 ‘풍토에 기초한 상황의 장(場)’과 ‘인간의 물음’을 함께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과 인간의 물음을 동일시 할 수 있을까? 대지와 바람, 즉 풍토(風土)에 따라 대답은, 인간의 질문의 방식에 의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인간의 질문은 풍토에 기초하여 각기 다른 대답을 산출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틸리히의 신학이 상황 신학이라면 그의 철학적 질문에서 상황과 인간의 물음을 나누어야 만이 진정한 상황 신학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신학에 충실하기 위해 이 논문은 틸리히의 ‘상관관계 방법’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틸리히 신학의 상관관계의 틀인 ‘물음과 답변’, ‘철학과 신학’이라는 전제를 활용하여 그의 신학의 방법론과 주요 내용을 포스트모던 시대와 상관관계로 연결시켜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삶을 살펴보는 것으로 그 출발점을 삼고자 한다. 왜냐하면 일상의 삶과 그 삶의 마당이야말로 상황과 물음의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적 삶과 마당의 문화적 현상을 그리스도교 신학과 상관시키는 방법으로 진행할 것이다. 나아가 틸리히의 신학의 핵심적인 ‘상관관계 방법’을 지속적인 방법론으로 활용하여 틸리히의 주요한 사상인 이성과 존재, 실존과 생명, 역사를 현재 포스트모던 시대에 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따라서 계시와 신,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 나라를 오늘날의 상황에서 틸리히 신학의 답변에 기초하여 연결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방법론을 ‘삼관 방법(三關方法, method of three-correlation)’이라고 부를 것인데, 이 논문의 전체적인 방법론은 바로 이러한 삼관 방법의 틀을 가지고 진행이 될 것이다. 틸리히는 상황과 물음을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 하지만, 풍토와 문화로써 상황과 경계선에 처해 있는 인간의 실존으로써 인간의 물음은 각각의 영역에서 제기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중요성과 인간의 물음에 답변의 원칙이 신학적으로 제시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상황(土)과, 묻는 인간(人)에 답변의 보편성을 하늘(天)에서 찾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삼관 방법’이다. 이러한 삼관의 사고는 우리 선조들의 보편적인 사고이며 기독교 교리의 중심인 삼위일체의 사유, 그 핵심이다. 삼관 방법은 첫째 대지의 상황을 그 관계의 한 틀로 생각하며, 둘째 인간의 물음을 문제 삼으며, 셋째 하늘의 답변을 그 대답으로 관계한다. 이러한 삼관 방법의 신학적 의의는 답변의 원칙과 물음의 장, 상황의 중요성에 놓여있다. 상관방법은 영원한 진리의 진술을 답변의 원칙으로 삼는데, 이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이 그 원칙이 될 것이다. 동시에 물음의 장 역시 진리를 안고 제기되어야 하며, 신학의 해석학적 본질로 상황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틸리히의 ‘상관관계 방법’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삼관방법’을 통해 포스트모던 문화 속에 기독교 진리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1장에서는 연구의 동기와 방법론, 연구사를 살펴보고 논문의 연구 범위를 한정한다. 2장에서는 상황과 물음 답변의 해석학을 제시하였으며, 3장에서는 폴 틸리히 신학의 방법론을 변증신학, 철학적 신학, 케리그마의 신학, 상징의 방법론, 역동적 유형론 등으로 살펴보고 ‘상관관계 방법’의 상황을 분석하였다. 4장에서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물음을 이성과 존재, 실존과 생명,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측면에서 새롭게 도전되는 물음들을 분석하여 5장에선 이러한 폴 틸리히 ‘상관관계 방법’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삼관방법(三關方法)의 답변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으로 ‘삼관 방법’의 신학적 의의를 몇 가지 제시하였다.

      • 틸리히의 그리스도론

        김성엽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국내석사

        RANK : 247806

        폴 틸리히, 그는 일생의 경계선상에 산 사람이다. 그의 일생의 경계선은 바로 신앙과 회의, 철학과 신학, 유럽의 구세계와 미국의 신세계. 기독교와 문화, 기독교와 타종교, 프로테스탄 교회와 가톨릭 교회,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의 경계선이다. 특히 그는 신학과 철학, 종교와 문화 사이를 연결한 신학자였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그의 신학적 방법론을 알 수 있다. 그의 신학의 방법론은 바로 ‘상관 방법’(method of correlation)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철학과 신학, 종교와 문화 가운데 하나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양편을 조정하고 중재하여 양자 모두 수용하는 신학 체계를 건설한 것이다. 상관의 방법은 한마디로 철학적 질문과 신학적 대답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틸리히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상관 방법은 기독교의 메시지와 현대 상황을 결합하는 방법이다. 이와 같이 틸리히는 상관의 방법, 즉 실존적 질문과 신학적 대답의 상호 의존의 관계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말했다. 이같이 신학의 과제를 상황에 대해 대답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틸리히의 신학을 ‘상황 신학’(situation theology)이라고 부른다. 또한 메시지와 상황의 상관성을 강조하는 틸리히의 신학은 자유주의와 정통주의 및 근본주의 신학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틸리히에 따르면 신학은 그 기초가 되는 두 개의 극(pole)을 가지고 있다. 영원한 진리와 이 영원한 진리가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시대적 상황, 즉 메시지와 상황이 그것이다. 그러나 신학은 항상 이 양자 중 어느 하나를 희생시킴으로 균형을 잃을 위험성이 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상황을 강조한 나머지 메시지를 희생시킨 반면 정통주의와 근본주의 신학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틸리히의 상관 방법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여 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틸리히는 종교 또는 신앙을 “궁극적인 관심”(ultimate concern), 혹은 “궁극적인 관심에 붙잡힌 상태”로 정의했다. 틸리히에 말하는 궁극적인 관심이란 우리들의 존재를 결정해 주는 것, 우리들이 존재하느냐 혹은 존재하지 않느냐를 결정해 주는 것 바로 이것이다. 틸리히는 종교적인 관심을 궁극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궁극적인 관심은 태도 뿐 만 아니라 그 대상도 포함된다. 그러면 인간에게 궁극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궁극적인 존재인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만 궁극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틸리히는 궁극적인 관심의 상태인 종교적인 신앙은 상징적인 언어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신앙의 언어는 곧 상징의 언어이다. 상징은 우리에게 닫혀져 있던 실재의 영역을 열어 주는 동시에 그것에 상응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영혼의 차원을 높여 준다. 궁극적인 실재(ultimate reality)인 하나님에 대한 모든 신학적 진술 역시 상징적이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존재의 근거로서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초월하고 있기 때문에 틸리히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간접적 그리고 상징적으로 말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틸리히는 성경은 하나의 상징이므로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성경의 비문자화(deliteralation)를 주장했다. 틸리히의 신학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을 존재 자체로 본 것이다. 존재 자체라는 것은 하나님은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여러 존재 가운데 하나가 아닌 모든 존재의 힘과 근거이며 존재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틸리히는 하나님이 인격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행동, 열정, 기대, 기억, 고난, 기쁨 등과 같은 인격적인 표현은 존재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살아 있는 하나님(living God)으로 만들려는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인격적인 하나님(personal God)이란 말은 “하나님이 하나의 인격”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은 인격적인 모든 것의 근거라는 것과 그 안에 인격성의 존재론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틸리히는 하나님의 인격을 상징적인 의미로밖에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틸리히는 인간의 실존 상황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으로 새로운 존재의 개념을 제시했다. 인간의 실존 해명이 곧 그의 죄론이며, 새로운 존재의 개념이 그의 그리스도론이다. 틸리히는 인간의 실존 상황을 소외의 상태로 규정하는 한편,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실존한다”(to exist)는 말은 어원학적으로 “밖에 선다”(to stand out)는 의미한다. 그것은 비존재로부터 나와서 존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 철학은 실재를 본질과 실존의 두 측면으로 나누었다. 플라톤은 실존을 단순한 의견이나 악의 영역이요 참된 실재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 반면, 본질을 참된 존재요 영원한 이데아의 영역으로 생각했다. 한편 이와 같은 견해가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에서는 실존을 긍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실존을 전락이나 타

      • Heiligungslehre im Werk Paul Tillichs. : Tillichs Heiligunslehre als Interpretation seiner Gesamttheologie in Anthropologischer und pneumatologischer Perspektive

        김판호 Rheinischen Friedrich - Wilhelms - University Bonn 2004 해외박사

        RANK : 247806

        성령의 현존 안에서 영적인 체험이 있을 때 성령과 인간 실존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성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중요한 대답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관계성으로 해석하는 틸리히의 성화론을 논문에서 논하려는 것이다. 곧 이 논문의 목적은 인간론적이며 성령론적인 관점에서 틸리히의 총체적인 신학사상을 해석함으로써 그의 성화론을 고찰하는 것이다. 성령의 임재 안에서 성령과 인간 실존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가 어떤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지를 논증하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 신학에서 연구하고 실천해 온 신학은 대체로 근본주의 신학, 민중신학, 토착화 신학, 오순절주의 신학 등이다. 이러한 신학사상에서 여러 가지로 신학적인 담론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성령의 현존 안에서 체험되는 현상에 대하여 해석하는 체험신학 연구는 미흡하다. 그러므로 성령의 현존 안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영적인 체험 현상에 대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관계로 해석하는 틸리히의 성화론을 고찰하는 것이다. 틸리히의 방법은 철저히 종교철학, 비유와 철학적 신학의 경계선상에서 펼쳐나간다. 틸리히의 광범위한 신학자료로 그의 신학사상을 규명하기에는 논문 전개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그의 유명한 저술인 조직신학 제3권에 있는 "삶과 성령"의 주제를 중심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틸리히는 상관관계법으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와 인간의 실존적인 '삶의 정황'(Sitz im Leben)을 중재하는 변증신학(Apologetische Theologie)을 추구한다. 그의 조직신학 방법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질문에 영원한 말씀으로 답하는 변증신학이다. 즉 그는 철학적인 물음에 신학적인 대답의 방식으로 조직신학을 구성한다. 이 방법으로 그는 철학적인 질문과 신학적 대답을 서로 연결시키고,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와 현재의 상황을 서로 결합시켜서 그 균열의 사이를 중재하여 치유하려는 것이다. 틸리히는 성화론을 해석하기 위해 존재론적인 논증으로서 그의 근본적인 신학사상인 세 가지 개념, 즉 "존재", "삶", "성령"에 대해서 정의하고 설명하고 있다. 본 논문에는 이 세 가지 개념을 상관관계 안에서 해석함으로써 틸리히의 성화론을 해석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틸리히의 삶의 자리에서 체득하고 해석하는 삶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면, 그는 생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삶의 존재를 두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본질적인 것(Essentielles Sein)과 실존적인 것(Existentielles Sein), 잠재적인 것(Potentialtitaet)과 현실적인 것(Aktualitaet)의 개념으로 구별한다. 틸리히의 존재론, 즉 본질적인 존재론과 실존적인 존재론이 그의 철학사상의 이해이다. 그는 삶을 본질적이고 실존적인 구조의 혼합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삶을 "존재의 현실화"(Aktualisierung des Seins)로 정의한다. 곧 삶이란 잠재적 가능성이 실질적 현실화로 되는 변화의 과정이라고 정의하며, 그 과정에는 세 가지 기능으로 운동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통전성, 자기 자신의 변형성, 자긴 자시의 초월설 등이다. 또한 삶의 개념을 유기체의 영역과 연결하여 추론하기를 원하며 더 나아가 모든 실재를 포함하는 우주적인 개념으로 확장시켜나간다. 수많은 삶의 과정과 영역들을 해명하기 위하여 틸리히는 삶의 철학을 인간론적이고 성령론적인 신학용어로 해석한다. 그리고 본질적 요소와 실존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는 인간 실존의 삶은 항상 창조성과 파괴성으로 인하여 일상의 삶 속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 실존의 삶은 늘 모호성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삶의 세 가지 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양극을 하나로 종합하는 통전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 통전의 해결이 바로 영적 현존, 즉 성령의 임재이다. 인간 실존의 삶의 뿌리 박혀 있는 모호성(Zweideutigkeit, ambiguity)이 극복되려면 성령과 하나님의 초월적 차원의 조명과 치유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틸리히는 삶의 모호성을 극복한 치유된 삶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적 현존",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삶"으로 표현한다. 상징은 통전되고 치유된 성령의 현존 안에서 영적인 체험이 있을 때 성령과 인간 실존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성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중요한 대답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관계성으로 해석하는 틸리히의 성화론을 논문에서 논하려는 것이다. 곧 이 논문의 목적은 인간론적이며 성령론적인 관점에서 틸리히의 총체적인 신학사상을 해석함으로써 그의 성화론을 고찰하는 것이다. 성령의 임재 안에서 성령과 인간 실존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가 어떤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지를 논증하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 신학에서 연구하고 실천해 온 신학은 대체로 근본주의 신학, 민중신학, 토착화 신학, 오순절주의 신학 등이다. 이러한 신학사상에서 여러 가지로 신학적인 담론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성령의 현존 안에서 체험되는 현상에 대하여 해석하는 체험신학 연구는 미흡하다. 그러므로 성령의 현존 안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영적인 체험 현상에 대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관계로 해석하는 틸리히의 성화론을 고찰하는 것이다. 틸리히의 방법은 철저히 종교철학, 비유와 철학적 신학의 경계선상에서 펼쳐나간다. 틸리히의 광범위한 신학자료로 그의 신학사상을 규명하기에는 논문 전개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그의 유명한 저술인 조직신학 제3권에 있는 "삶과 성령"의 주제를 중심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틸리히는 상관관계법으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와 인간의 실존적인 '삶의 정황'(Sitz im Leben)을 중재하는 변증신학(Apologetische Theologie)을 추구한다. 그의 조직신학 방법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질문에 영원한 말씀으로 답하는 변증신학이다. 즉 그는 철학적인 물음에 신학적인 대답의 방식으로 조직신학을 구성한다. 이 방법으로 그는 철학적인 질문과 신학적 대답을 서로 연결시키고,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와 현재의 상황을 서로 결합시켜서 그 균열의 사이를 중재하여 치유하려는 것이다. 틸리히는 성화론을 해석하기 위해 존재론적인 논증으로서 그의 근본적인 신학사상인 세 가지 개념, 즉 "존재", "삶", "성령"에 대해서 정의하고 설명하고 있다. 본 논문에는 이 세 가지 개념을 상관관계 안에서 해석함으로써 틸리히의 성화론을 해석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틸리히의 삶의 자리에서 체득하고 해석하는 삶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면, 그는 생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삶의 존재를 두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본질적인 것(Essentielles Sein)과 실존적인 것(Existentielles Sein), 잠재적인 것(Potentialtitaet)과 현실적인 것(Aktualitaet)의 개념으로 구별한다. 틸리히의 존재론, 즉 본질적인 존재론과 실존적인 존재론이 그의 철학사상의 이해이다. 그는 삶을 본질적이고 실존적인 구조의 혼합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삶을 "존재의 현실화"(Aktualisierung des Seins)로 정의한다. 곧 삶이란 잠재적 가능성이 실질적 현실화로 되는 변화의 과정이라고 정의하며, 그 과정에는 세 가지 기능으로 운동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통전성, 자기 자신의 변형성, 자긴 자시의 초월설 등이다. 또한 삶의 개념을 유기체의 영역과 연결하여 추론하기를 원하며 더 나아가 모든 실재를 포함하는 우주적인 개념으로 확장시켜나간다. 수많은 삶의 과정과 영역들을 해명하기 위하여 틸리히는 삶의 철학을 인간론적이고 성령론적인 신학용어로 해석한다. 그리고 본질적 요소와 실존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는 인간 실존의 삶은 항상 창조성과 파괴성으로 인하여 일상의 삶 속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 실존의 삶은 늘 모호성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삶의 세 가지 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양극을 하나로 종합하는 통전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 통전의 해결이 바로 영적 현존, 즉 성령의 임재이다. 인간 실존의 삶의 뿌리 박혀 있는 모호성(Zweideutigkeit, ambiguity)이 극복되려면 성령과 하나님의 초월적 차원의 조명과 치유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틸리히는 삶의 모호성을 극복한 치유된 삶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적 현존",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삶"으로 표현한다. 1. Der dreifache Charakter der Erlösung als Prozess der Heiligung in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Wenn Paulus den Christen als nova creatura (2.Kor. 5,17) beschreibt, spricht er von der Erfahrung des Neuen Seins, während Johannes das Neue Sein als Wiedergeburt (Johannes 3,3) darstellt. Tillich greift drei paulinische Begriffe im Zusammenhang mit der Geistgemeinschaft auf: Teilnahme am Neuen Sein (Wiedergeburt), Annahme des Neuen Seins (Rechtfertigung) und Umwandlung durch das Neue Sein (Heiligung). Damit versucht Tillich sie in ihrem anthropologischen Aspekt zu verwirklichen. Geistgemeinschaft geht zum einen dem Glauben des einzelnen voraus und daran muss festgehalten werden. Zum anderen muss sich der einzelne in der Geistgemeinschaft durch das Neue Sein bestimmen lassen. Das Neue Sein als Erfahrung der Erlösung macht die Korrelation der objektiven und der subjektiven Seite im Blick auf „das Paradox der Erlösung“ zur Voraussetzung, d.h., die objektive Seite stellt dar, dass Gott den Menschen trotz dessen Unannehmbarkeit annimmt; die subjektive Seite stellt dar, dass der Mensch sein Angenommensein durch Gnade im Glauben annimmt. Für Tillich bedeutet auch das simul iustus et peccator nicht nur eine paradoxe Totalaussage, sondern auch bezeichnet den Kampf des göttlichen Geistes in uns gegen den Menschen des zweideutigen Lebens. Hier bleibt noch der Triumph fragmentarisch, denn während seines Lebens bleibt der Mensch simul iustus et peccator. Durch Wiedergeburt und Rechtfertigung wird er ein Heiliger. Sie sind Voraussetzungen, auf die sich der Heiligungsprozess gründen kann. So muss die Heiligung ständig zur begründeten Rechtfertigung zurückkehren. Vom Standpunkt des göttlichen Handelns aus sind Wiedergeburt und Rechtfertigung ein und derselbe Akt, während Heiligung ein Prozess ist, in dem die Macht des Neuen Seins den Menschen und die Gemeinschaft umformt. a. Die objektive Seite der Heiligung besteht darin, dass die Heiligung als göttliches Handeln zu verstehen ist, durch welches sich das Neue Sein in allen Bereichen des Menschenlebens aktualisiert; d.h. die objektive Seite der Heiligung wird von Tillich als die Umwandlung durch das Neue Sein beschrieben. b. Die subjektive Seite der Heiligung besteht darin, dass der Mensch durch Gnade im Glauben vom Neuen Sein ergriffen wird und den Heiligungsprozess annimmt. Hier zeichnet Tillich den Heiligungsprozess deutlich nach, indem er das Verständnis der Heiligung bei Calvin und Luther unterscheidet. Calvin sieht die Heiligung als einen langsam fortschreitenden Prozess, in welchem die Macht des göttlichen Geistes im einzelnen Menschen mehr und mehr zunimmt, wenngleich keine Vollkommenheit erreicht wird. Luther weist ein solches Verständnis der Heiligung zurück, da sich das Menschenleben angesichts des Paradoxes der Rechtfertigung als ein fortwährendes Ergriffensein und wieder in die Entfremdung Zurückgeworfensein gestaltet. Im Gegensatz dazu bezeichnet Tillich seinen eigenen Weg durch vier Prinzipien, den Prozesscharakter der Heiligung zu verteidigen. Schließlich schlägt sich Tillich weder auf die calvinistische noch auf die lutherische Seite, sondern beschreibt seinen Gesichtspunkt folgendermaßen: „Das christliche Leben erreicht niemals den Zustand der Vollendung, es bewegt sich immer auf und ab, aber trotz seiner Veränderlichkeit ist es eine Bewegung zur Reife, wie fragmentarisch der Zustand der Reife auch sein mag“ . Im Prozess der Heiligung erscheint für Tillich das christliche Leben als Überwindung der Entfremdung damit als fortdauerndes Geschen, in welchen sich der Mensch entsprechend der Persönlichkeitsidee mit dem Grund seines Selbst zu verbinden beabsichtigt. 2. Vier Prinzipien der Heiligung als Prozess durch die Erfahrung des Neuen Seins unter der Einwirkung der göttlichen Geistes: Tillich sieht die Heiligung als Prozess des näheren von vier Prinzipien bestimmt, die die Erfahrung des Neuen Seins in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ausweisen, und die in der Vereinigung der sowohl religiösen als auch profanen Tradition das Leben als pneumatologisch charakterisieren. Im Unterschied zur traditionellen Theologie in bezug auf Erleben der Heiligungsprozess stellt er die Frage, „ob wir nicht nach neuen Kriterien für das ‘Leben in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suchen müssen“ . Seine Antwort auf die Frage kennzeichnet vier Prinzipien des Heiligungsprozesses als die Erfahrung des Neuen Seins, warum er Heiligung als Vorgang ansieht. Es sind erstens wachsendes Bewusst-werden, zweitens wachsendes Frei-werden, drittens wachsendes Verbunden-sein und viertens wachsende Selbst-Transzendierung. a. Heiligung ist als Prozess des wachsenden Bewusst-werdens zu sehen, das Tillich heute auch von der Tiefenpsychologie bestätigt sieht, in dem der Mensch sich selbst seine aktuelle Situation stets deutlicher vor Augen führt. Er stellt fest, dass die Heiligung „die Erfahrung des Dämonischen wie des Göttlichen“ einschließt. Diese Überlegung ist bedeutsam, denn die Heiligung führt nicht nur zum Bewusstsein dieser Zweideutigkeit, sondern auch zu der Fähigkeit, „das Leben einschließlich seiner vitalen Kräfte, trotz seiner Zweideutigkeiten zu bejahen“ . Als Prinzip im Prozess des wachsenden Bewusst-werdens ist weiterhin das, was er ein feines Gefühl für die Forderungen des eigenen Wachstums beschreibt. Dieses feine Gefühl, das die Grade der Echtheit im geistigen Leben des anderen und in sich selbst zunimmt, ist bei Tillich nicht ein Resultat von Erziehung, sondern ein „Zeichen des Wachstums unter der Einwirkung des göttlichen Geistes“ . b. Das zweite Prinzip des Heiligungsprozesses als die wachsende Freiheit ist „vor allem Wachstum in der Freiheit vom Gesetz“ , das sowohl bei Paulus als auch bei Luther besonders stark betont wird. Tillich hält die Befreiung des personhaften Selbst „von der Unterwerfung unter die Objekte, die es selbst geschaffen hat“ , für besonders wichtig zum Verständnis dieses Prinzips. Er sieht das Wachstum in Geist-bestimmter Freiheit besonders in einer zunehmenden Freiheit vom Gesetz, insofern es als essentielles Sein des Menschen interpretiert wird, welches seinem existentiellen Sein und seiner Entfremdung entgegensteht. Wenn auch die Freiheit vom Gesetz im Prozess der Heiligung fragmentarisch bleibt, so ist sie doch wirklich, da die Wiedervereinigung mit dem wahren Wesen fragmentarisch ist. Die Freiheit vom Gesetz schafft die Möglichkeit, die eigene Situation „im Lichte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zu beurteilen und über die richtige Handlung zu entscheiden“ , die möglicherweise dem allgemeinen Gesetz widerspricht. Demzufolge besteht das Ziel der Heiligung als Prozess im Lichte der Erfahrung des Neuen Seins darin, einen Grad der Reife und Freiheit zu erreichen, neue Gesetze zu schaffen oder die alten in neuer Weise anzuwenden. c. Das dritte Prinzip, das wachsende Verbunden-sein im Prozess der Heiligung, bildet den notwendigen Gegenpol zum Frei-werden, welches ohne das Verbunden-sein in die Isolierung des Individuums oder in die Willkür führen kann. Freiheit und Verbunden-sein erhalten für Tillich ihre Wurzel in Glaube und Liebe als den Schöpfungen des göttlichen Geistes. Somit kann sich wachsendes Verbunden-sein nur in der wiedervereinigende Macht der Liebe vollziehen. Das Ziel des Heiligungsprozesses richtet sich auf ein Selbst, das jedes empirische Stadium seiner Entwicklung transzendiert, nämlich „die Identität des essentiellen Selbst, das durch alle Zufälligkeiten des existentiellen Selbst hindurchscheint“ . Es geht im menschlichen Leben um ein reifes und geklärtes Verhältnis zu sich selbst: „Je mehr sich der Prozess der Heiligung einem reifen Verhältnis zu sich selbst nähert, desto spontaner und selbst-bejahender (ohne Selbst-Erhebung oder Selbst-Erniedrigung) wird die Person“ . d. Das vierte Prinzip, die wachsende Selbst-Transzendierung, stellt die Konsequenz der vorangegangenen drei Eigenschaften dar. Das Ziel der ersten drei Eigenschaften im Prozess der Heiligung kann nur durch wachsende Selbst-Transzendierung erreicht werden, d.h. nur durch die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Tillich charakterisiert, dass „die Heiligung nicht möglich ist ohne ein ständiges Selbst-Transzendieren in Richtung auf das Unbedingte, mit anderen Worten, ohne Partizipation am Heiligen“ . Hier definiert er Partizipation am Heiligen als identisch mit dem religiösen Leben in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Er beschreibt die Erhebung über das Durchschnittliche, die in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geschieht, als das wichtigste Erlebnis im Prozess der Heiligung. Tillich weist zu Recht mit der Überlegung der vier Prinzipien im Prozess der Heiligung darauf hin, dass der Mensch in Bezug aus seine persönliche und geistige Reife trotz aller eigenen Anstrengung stets bis zum gewissen Grade abhängig von göttlichen Vorsehungen unter der Einwirkung des göttlichen Geistes bleibt, die er sich nicht selbst entwickeln kann. Von daher betont er die Polarität zwischen Freiheit und Schicksal im Sinne ontologisches Zustand. So ist es nötig freilich eine spannungsvolle Gleichgewicht dieser Polarität. Und er stellt damit neben alle Freiheit die Angewiesenheit des Menschen auf Glaube im Sinne von Vertrauen und Gewissheit und der ihm widerfahrenden Geschehnisse dar. Hier bleiben die drei Begriffe, Widergeburt, Rechtfertigung und Heiligung damit transzendent , wenn es um die Ganzheit im Erreichen dieser Zustände geht. Allerdings sind sie entsprechend der Korrelationsmethode für den Menschen doch partiell erlebbar im Sinne richtensweisenden Ziels. So weicht Tillich nicht nur einen Rückfall in dem Determinismus und Fatalismus oder der Selbst-Erniedrigung aus, sondern auch die Selbst-Erhebung in der Selbsttäuschung der Freiheit, die als zerstörerischen Form der Selbstaufgabe charakterisiert werden muss . 3. Die Heiligung als die ständige Überwindung der Entfremdung im existentiellen Menschenleben unter der Einwirkung des göttlichen Geistes: Tillich stellt die Überwindung der existentiellen Entfremdung in seiner Lehre von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dar. Dort, wo der göttliche Geist gegenwärtig ist, wird das entfremdete Menschenleben durch die fragmentarische Einheit von Gott und Mensch überwunden. Zugleich erhält es das Neue Sein und die göttliche oder pneumatische Gestalt als die Folge der fragmentarischen Gott-Mensch-Vereinigung. Das Neue Sein in Jesus als dem Christus kann also von jedem Menschen als Überwindung der Entfremdung erfahren werden. Wenn der Mensch seine Partizipation am Neuen Sein im Glauben durch Gnade bejahen kann, so kann sich der Prozess der Überwindung der Zweideutigkeiten im persönlichen Menschenleben entfalten. Diesen Vorgang bezeichnet Tillich als Lebensprozess, der unter der Macht des göttlichen Geistes steht. Die Entfremdung ist nicht vollständig, sondern fragmentarisch überwunden, solange der Prozess der Heiligung im Gang ist. Zugleich kann die Heiligung keine Verdrängung dämonischer Kräfte sein, wenngleich göttliche Kräfte und dämonische Zweideutigkeiten in der vitalen Kräfte liegen. Somit geht es nicht um Verdrängung, sondern um Überwindung der Zweideutigkeiten durch die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Weiterhin sieht Tillich, dass das Neue Sein in Jesus als dem Christus als Überwindung der Entfremdung in einem personhaften Leben ein Bild für die Persönlichkeitsidee und damit ein Symbol des Selbst für jeden Menschen ist. Im Prozess der Heiligung erscheint das Neue Sein als Überwindung der Entfremdung als ständiges Geschehen. Ursprünglich sind bei Tillich Heiligung und Rechtfertigung zwei Begriffe für dieselbe Erfahrung, nämlich die der Überwindung der Zweideutigkeiten des persönlichen Lebens. Auf Grund der Erlösung im Prozess der Heiligung in Christus sola gratia überwindet das persönliche Leben in Ewigkeit über den Tod. Da das Leben des einzelnen und das Universum haben einen ewigen Sinn, so wird die Sinnkrise umfassend übersteigt. Der göttliche Geist kämpft gegen die Zweideutigkeit und Dämonien des Lebens schon in Hier und Jetzt im einzelnen, auch in den Kirchen und in der Geschichte . Diese Auffassung zum persönlichen Leben lässt sich gewiss nur im Glauben an die Gnade der Rechtfertigung und an die Heiligung ertragen. 4. Die Heiligung als Erfahrung des Heiligen in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Tillich sieht wachsendes Sich-Erheben zu Gott nur durch die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Damit ist bei ihm die Heiligung nur möglich durch die Erfahrung des Heiligen. Beim Begriff des Heiligen knüpft Tillich zwar an die Ottosche Bestimmung des Heiligen als des ganz Anderen im Sinne des mysterium tremendum et fascinosum an. Im Gegensatz zu Ottos Begriff des ganz Anderen stellt Tillich jedoch dar, dass der Begriff des Unbedingten die „ursprüngliche Wesensbeziehung vom Heiligen und den sonstigen Werten zum Ausdruck bringt“ . Tillich kennzeichnet die Erfahrung des Heiligen als Ekstase des religiösen Erlebens auf der subjektiven Seite: „Ekstase (...) weist auf einen Bewusstseinszustand hin, der außergewöhnlich ist in dem Sinne, dass das Bewusstsein seinen bewohnten Zustand transzendiert“ . Dieser Aspekt wird freilich von den Reformatoren (z.B. Luther, Calvin und Barth), für die die Andersartigkeit Gottes selbst im Vordergrund steht, kaum beachtet. Ekstase zerstört allerdings nicht die vorhandenen anthropologischen Strukturen, sondern vollendet sie als nur fragmentarisch und antizipatorisch. Denn die vollendete transzendente Einheit ist nach Tillich ein eschatologischer Begriff. In der Idee des Heiligen zeigt Tillich die innere Zusammengehörigkeit von sittlicher Vollkommenheit durch die religiöse Erfahrung der subjektiven Seite. Zugleich interpretiert er das Heilige und das Unbedingte in wechselseitiger Abhängigkeit: „Nur das, was heilig ist, kann den Menschen unbedingt angehen, und nur das, was den Menschen unbedingt angeht, hat die Qualität der Heiligkeit“ . Von hier aus kann auch die Bedeutung „heilig“ in Bezug auf ein Verhältnisbegriff –wie Martin Honecker richtig gezeigt hat– als „eine der Gottesgemeinschaft entsprechende Lebensgestaltung“ interpretiert werden, da sich die Gottesgemeinschaft als Abkehr von der Sünde vollzieht. Daher betont „das Prädikat der `Heiligkeit´ in fundamentaltheologischer Sicht gerade die Transzendenz Gottes“ . Nach Tillich folgt „eine neue Auffassung des Verhältnisses von Religion und Kultur“ aus der Bestimmung des Heiligen als des Unbedingten. Tillich stellt die Erfahrung des Heiligen als religiösem Leben in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dar, wobei das Heilige sich selbst und das Profane umfasst und der Begriff Religion im weiteren wie im engeren Sinne gebraucht wird. In Bezug auf Religion kann sogar geschehen, dass „eine tiefere Erfahrung der Selbst-Transzendierung zu einer gesteigerten Kritik der Religion als Sonderfunktion führt“ . Obwohl diese Einschränkungen gegeben sind, bleibt die Einheit von Selbst-Transzendierung und religiösem Leben, der Erfahrung des Heiligen, bestehen. Wenn die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erfahren wird, kann die Heiligung im religiösen wie im profanen Bereich erscheinen. Zugleich transzendiert sie beide aber auch in der Macht des göttlichen Geistes. Insofern kennzeichnet die Erfahrung des Heiligen und ständige Partizipation am Heiligen auch eine Perspektive der wachsenden Selbst-Transzendierung als Heiligungsprozess. 5. Die Heiligung als Heilung in der heilenden Kraft des Neuen Seins unter der Einwirkung des göttlichen Geistes: Tillich benennt drei Begriffe Wiedergeburt, Rechtfertigung und Heiligung im Erlösungsprozess, die den drei Elementen im Glaubenakt und in der Liebe entsprechen. Das Neue Sein, das die essentielle Einheit zwischen Gott und Mensch herstellt, wird von Tillich mit dem Begriff Erlösung oder Heilung wiedergegeben. Im Erlösungsprozess wird das Neue Sein als Schöpfung der Wiedergeburt, als Paradox der Rechtfertigung und als Prozess der Heiligung unter der Einwirkung des göttlichen Geistes erfahren. Das Wirken des göttlichen Geistes ist Anfang und Kraft der Heiligung als Prozess im Erlösungsprozess. Nach Tillich ist Erlösung als Umwandlung durch das neue Sein identisch mit Heilung: „Wenn ‘Erlösung’ kosmische Bedeutung hat, dann schließt sie Heilung nicht nur ein, sondern kann als Akt des kosmischen Heilens verstanden werden“ . Vom Anorganische bis ins Kosmische geht der gänzliche Bereich der versöhnenden und heilenden Zuwendung Gottes zur Welt, die für Tillich im Begriff Erlösung verwoben wird. Von daher erweist sich das Stichwort „kosmisch“ vornehmlich als Schlüsselbegriff zur Gleichsetzung von Erlösung und Heilung. Allein in dieser kosmischen Perspektive ist Erlösung mit Heilung identisch. Hier kann Erlösung mit Erfahrung in allen Dimensionen des Menschseins versöhnt werden. Daher ragt Tillichs Soteriologie und Eschatologie von den Auffassungen hervor, die sowohl das christliche Heil auf ein kerygmatisches Ereignis herabsetzten, als auch die in individuellen Heilungen ein ungebrochenes Kennzeichen unter Einwirkung des göttlichen Geistes wahrnehmen wollen. Somit kann Tillichs System mit Hinblick auf die christliche Verkörperung von der heilenden Versöhnung des Kosmos auch „ohne implizite Ganzheitsthorie als bleibender Horizont einer Theologie der Heilung“ interpretiert werden. Schließlich muss Heilung oder Erlösung als Umwandlung durch das neue Sein und als Heiligung im Prozess der Gott-Mensch-Vereinigung verstanden werden. Erlösung wird somit als den Heiligungsprozess zur Vollendung des Menschenlebens interpretiert, wie fragmentarisch der Zustand der Reife sein auch mag. In Bezug auf den Gedanke der Wiedervereinigung mit dem Selbst beschreibt Tillich Heilung folgendermaßen: „Jede Heilung – sei sie physischer oder geistiger Art – schafft diese Wiedervereinigung eines Selbst mit sich selbst. Wo wirklich Heilung eintritt, da ist auch Neues Sein, Neue Schöpfung“ . a. Die Heilung des Individuums im Heiligungsprozess: Individuelle Heilung als Überwindung von der Kluft zwischen Essenz und Existenz in der heilende Macht des göttlichen Geistes oder als kosmische Ganzheit ereignet sich bloß als eine fragmentarische und antizipatorische Verwirklichung der Heilung, d.h. als„Schon-Jetzt“ und zugleich „Noch-Nicht“, und die vollendete transzendente Einheit gibt es erst im Eschaton. Insofern beschreibt die Heilung des Individuums auch eine Perspektive des wachsenden Bewusstwerdens und Freiwerdens im Sinne eines Heiligunsprozesses. b. Die Heilung des Sozialen im Heiligungsprozess: Tillich entwickelt den Gedanken des religiösen Sozialismus als Heilung des Sozialen: „Die Rettung der europäischen Gesellschaft vor der Rückkehr in die Barbarei ist in die Hand des Sozialismus gegeben. Nur er kann bewirken, dass die unbegrenzten Möglichkeiten technischer Weltbeherrschung, die die bürgerliche Periode geschaffen hat, in der Gewalt des Menschen bleiben und von ihm in den Dienst des Menschen gestellt werden“ . Es ist bei Tillich der Sinn des religiösen Sozialismus „durch die Idee des Kairos die Grenzen, aber auch Recht und Sinn der konkreten Erwartung deutlich zu machen“ . Der Religiöse Sozialismus meint, dass „die Erschütterung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ihrer geistigen und gesellschaftlichen Prinzipien“ eine neuen Theonomie mit dem Kairosbegriff beschreibt. Nach dem Ende des zweiten Weltkrieges 1945 ist die Zeit nach Tillich eher als heilige Leere, die auf einen Kairos wartet, zu interpretieren. Von der kosmischen Perspektive her bezeichnet Tillich deshalb diese Heilung des Sozialen entsprechend dem Heiligungsprozess folgendermaßen: „Not much citation is needed to prove that the idea of salvation, in the sense of making whole or healing, is applied to the social disruption of mankind as much as to cosmic disintegration” . In diesem Zusammenhang kennzeichnet die Heilung des Sozialen auch einen Aspekt des wachsenden Verbundenseins als Prozess der Heiligung. c. Die Heilung der Natur im Heiligungsprozess: Tillich folgt dem Denken seines großen philosophischen und theologischen Lehrers Schelling bei seinen naturphilosophischen Überlegungen. Die Natur partizipiert am Fall des Menschen, wie auch die Erlösung der Natur von der Erlösung des Menschen abhängig ist. Tillich beschreibt das Symbol des Falls „über seinen vorherrschenden anthropologischen Sinn hinaus auch in einem umfassenden kosmologischen Sinn“ . So verstanden partizipiert die Natur an der Erlösung. Er bezeichnet die Erlösung der Natur in bezug auf das verwendete religionsgeschichtliche Material als Heilung von Krankheit, Desintegration und als Schaffung der Freiheit. In dieser Sicht bietet die Natur ihrerseits dem Menschen einen Schüssel zur Erlösung an, da sie in den Sakramenten schon am Prozess der Erlösung partizipiert. Damit ist eine „Erlösung des Menschen ohne Erlösung der Natur undenkbar und umgekehrt“ . Die Erlösung als heilende Versöhnung im Sinne Gottes geht somit ein vieldimensionales, sozial, ökologisch und kosmisch verwobenes organisch System an. Schließlich entspricht die Erlösung im Prozess der Heiligung einer neuen konstituierten Zentriertheit, die das Paradox von Partizipation und Individuation überwindet. 6. Die Heiligung als das zentrierte Selbst in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Tillich beschreibt die Polarität von Selbst und Welt als ontologische Grundstruktur im ersten Teil seiner Systematischen Theologie. Der Mensch partizipiert nicht nur an der Seinsstruktur, sondern er nimmt auch in der Ontologie eine überragende Stellung ein. Der Mensch ist „das voll entwickelte und völlig zentrierte Selbst. Er ‘besitzt’ sich in der Form des Selbst-Bewusstseins“ . Von daher erscheint das Selbst bei Tillich als inneres Kriterium aller Inhalte des Gewahrwerdens. Das zentrierte Selbst ist „die konkrete Totalität alles dessen, was mein Sein konstituiert“ . Tillichs zentriertes Selbst ist das Zentrum einer Lebenseinheit. Aus diesem Zusammenhang sind „zentriertes Selbst“ oder auch „Selbst“ „ontologische Begriffe“ . In der ontologischen Grundstruktur von Selbst und Welt ist das zentrierte Selbst als unteilbares Ganzes die Quelle aller Lebensprozesse, in welchen das Leben durch Selbst-Integration, Sich-Schaffen und Sich-Transzendierung über sich hinausgeht und zu sich zurückkehrt. Hier wird doch Tillichs System der vieldimensionalen Einheit fragwürdig, wenn Tillich eine vieldimensionale Einheit allen Lebens postuliert und als deren Grundstruktur eine allen Lebenseinheiten innewohnende teleologische Zentriertheit erfassen möchte. Zugleich wenn das Postulat auch eines bis ins Anorganische hinein zu verfolgenden Lebenssystems der Zentriertheit verworfen werden muss, so lässt sich aber Zentriertheit als anthropologischer Horizont zweckmäßig sein. Dieses System der vieldimensionalen Einheit wird stets zweifelhaft, wenn Tillich deren System im spannungsvollen Gleichgewicht der ontologischen Elemente aus den Augen verliert. In seiner Überlegung setzt er über die dialektischen Lebensprozesse „die Existenz von Ganzheiten in allen Dimensionen“ voraus, die den Grundstruktur der Zentriertheit leiten lassen, womit „der gestalttheoretisch vorgegebene Terminus `Gestaltqualität´ begrifflich abgelöst, der Sache nach aber beibehalten wird“ . Tillich formuliert Bewusstsein und Selbstbewusstsein in bezug auf die Beschreibung der Entfremdung im dritten Teil seiner Systematischen Theologie. Der Mensch allein hat „nicht nur Bewusstsein – einen hohen, aber nicht vollkommenen Grad von Zentriertheit – , sondern Selbstbewusstsein, d.h. vollkommene Zentriertheit“ . An anderer Stelle verdeutlicht er das Konzept des Selbst im Sinne des Ich: „Das Zentrum eines Lebewesens unter der Herrschaft des Psychischen kann das ‘psychische Selbst’ genannt werden. (...) ‘Selbst’ kann auch nicht als Teil eines größeren Ganzen aufgefasst werden, ‘Selbst’ ist vielmehr der Punkt, auf den alle Bewusstseinsinhalte bezogen sind“ . Dies verdeutlicht er folgendermaßen: „Unter den Bedingungen der Existenz gibt es kein zentriertes Selbst, das völlig mit sich identisch wäre. Wo aber der göttliche Geist die zentrierte Person ergreift, stellt er die Identität unzweideutig (wenn auch fragmentarisch) wieder her (...), weil die Spaltung des Selbst in ein beherrschendes Subjekt und ein beherrschtes Objekt nur in der Vertikalen überwunden werden kann“ . Weiterhin spricht Tillich davon, dass die Worte, z.B. Selbst-Bezogenheit, Selbst-Integration problematisch sind, da die Vorsilbe „Selbst“ sprachlich zweideutig ist. Als Beispiel für diese Zweideutigkeit zieht er den Begriff der „Selbst-Zentriertheit“ heran: einerseits kann er die Größe des Menschen als ein völlig zentriertes Selbst kennzeichnen, andererseits eine ethisch zu verwerfende Bindung an sich selbst bezeichnen. Aus diesem Zusammenhang wird deutlich, dass die Begriffe Selbst-Liebe und Selbst-Hass von zweifelhafter Zweckmäßigkeit sind, „da es schwierig ist, das Selbst als Subjekt von Liebe und Hass vom Selbst als Objekt von Liebe und Hass zu trennen“ . Tillich formuliert somit den Gedanken der Wiedervereinigung mit dem Selbst auch in Hinblick auf Heilung. Die Wiedervereinigung mit dem ganzen Selbst ist bei ihm der Grund, warum die neue Wirklichkeit heilende Schöpfung ist. Denn sie hat zugleich auch die Wiedervereinigung mit anderen Menschen zur Folge. Im Heiligungsprozess vollzieht sich die Wiedervereinigung des Selbst mit sich selbst. Solch eine Wiedervereinigung wird dadurch verwirklicht, dass das Selbst als Subjekt und das Selbst als Objekt transzendiert werden. Das reife Verhältnis zu sich selbst ist „ein Zustand des Versöhntseins zwischen dem Selbst als Subjekt und dem Selbst als Objekt und der spontanen Bejahung des essentiellen Selbst jenseits von Subjekt und Objekt“ . Während Tillich das zentrierte Selbst an anderer Stelle als vieldimensionales Zentrum beschreibt, stellt er es im dritten Band seiner Systematischen Theologie als die Dimension des Geistigen dar. Hier vollzieht sich die Vorherrschaft des Geistes freilich sowohl in Erkenntnisakten als auch in moralischen Akten, die auf psychischem Material beruhen, „auf (...) Traditionen und Erfahrungen, aus unbewussten und bewussten autoritären Einflüssen, auf Willens- und Gefühlselementen“ . Nach Tillich ist das Subjekt der Selbstbejahung als Aufgabe des Menschen das völlig zentrierte Selbst, das Personsein und Moralität fundiert, weil sich die Person in moralischen Akten konstituiert und sich das Leben in der Dimension des Geistes integriert. Obwohl Tillich seine Struktur der vieldimensionalen Einheit mit der lebendigen Kraft des Erlösungsbegriff in den Aufsätzen und Vorträgen verbindet, bestimmt er wirklich sein System der Pneumatologie ansehnlich von einer Fixierung der Dimensionen von einer das Kognitive betonenden Füllung des Geistbegriffs . Hier erscheint auch fraglich, wie Tillich den einseitigen anthropologischen Geistbegriff mit der pneumatologischen Fassung des Heiligen Geistes verschränkt. Wie sich zeigte, kann nach Tillich es eine direkte Einwirkung des göttlichen Geistes nur für die Dimension des menschlichen Geistes geben, während alle anderen Dimensionen nur indirekt in der Vermittlung durch die Dimension des Geistes beeinflusst werden . Von daher geht er auf die Bedeutung der Elemente, nämlich „Leib“, „Seele“, „Geist“, für eine religiöse Sicht des Menschen ein. So ist bei ihm eine trichotome, d.h. Körper, Psyche und Geist differenzierende Überlegung des Menschen fixiert. Die körperliche und die seelische Dimension sind daher in einer flüchtige Zustand eingeschränkt. Schließlich wird die Einwirkung des göttlichen Geistes gegenwärtig zum Erkenntnisakt in der Ekstase des menschlichen Geistes herabgesetzt . Wegen der verlorenen spannungsvollen Gleichgewicht seines Systems ist Tillichs eigene Absicht wirklich deutlich umrissen. 7. Die Heiligung als die Moralität der Liebe in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Tillich definiert Moralität als die „Totalität derjenigen Akte, in denen ein potentiell Personhaftes aktuell zur Person wird“ , während Ethik für ihn die Wissenschaft von der Moralität ist. Moralität hat bei ihm keinerlei willkürlichen Charakter, sondern wurzelt in der essentiellen Natur des Menschen. Damit erfasst der Moralitätsbegriff für Tillich all das, was den Menschen zum Menschen macht, d.h. was die Person zur Person macht, da das wahre Sein des Menschen Person-Sein ist, „so ist der Inhalt des moralischen Imperatives zunächst: eine Person zu werden“ . Der moralische Imperativ repräsentiert das essentielle Sein des Menschen gegenüber seiner existentiellen Entfremdung, indem er seinen Ausgang nicht in Normen und Gesetzen nimmt, sondern in der Begegnung von Person mit Person erfahrbar wird. Von daher wird bei der Moralität schließlich die Liebe hervorgehoben, die die Person zentriert und das Leben des Geistes begründet, und die auch den kategorischen Imperativ konkretisiert. Liebe ist bei Tillich „der Drang nach Wiedervereinigung des Getrennten“ und die „bewegende Macht im Leben“ , die das Getrennte wiedervereinigt. Liebe ist in allen drei Lebensprozessen wirksam und bewirkt Zentriertheit, Personsein und Moralität. Die Moralität ist eine Moralität der Liebe als Schöpfung des göttlichen Geistes in der Geistgemeinschaft. Diese Liebe hat die Qualität der agape: „Agape als eine Schöpfung des göttlichen Geistes besiegt die Zweideutigkeiten aller anderen Arten der Liebe“ . Agepe ist somit die ekstatische Partizipation an der transzendenten Einheit unzweideutigen Lebens. In der Liebe ereignet sich die Erfüllung des moralischen Imperativs in Form der Bejahung dessen, was der Mensch essentiell ist. Die Moralität der Liebe als Wiedervereinigung des Getrennten im Heiligungsprozess verwirklicht sich in einheitlicher Verbindung mit Macht und Gerechtigkeit. Tillich sieht den Begriff der Macht als eine grundlegende Beschreibung des Seins an sich am geeignetsten, da das Sein gleichbedeutend mit Seinsmächtigkeit ist und es die Macht zu sein ist. Die Seinmächtigkeit kommt in der Selbstbejahung zu ihrem Ausdruck im Lebensprozess: „Macht ist Möglichkeit des Selbstbejahung trotz innerer und äußerer Verneinung“ . Und die Form der Liebe, in der sich die Liebe als die Macht des Seins verwirklicht, ist die schöpferische Gerechtigkeit, die im Zuhören, Schenken und Vergeben ihren konkreten Ausdruck findet. Gerechtigkeit ist letztlich „schöpferische Gerechtigkeit, und schöpferische Gerechtigkeit ist die Form der wiedervereinigenden Liebe“ . So ist das Ziel der Liebe die Überwindung der Entfremdung. Die Moralität der Liebe als die Überwindung der Entfremdung erscheint im Heiligungsprozess damit als fortdauerndes Geschehen unter der Gegenwart des göttlichen Geistes.

      • 틸리히의 교회론 연구 : 한국 교회의 21세기 목회방향을 중심으로

        박준희 협성대학교 대학원 201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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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w that is living 21th century, nowaday church sees Doejipeo if is realizing the duty and mission with essence of church which Gwayeongeuriseudo stands naturally. Established church is in state that lose faithful essential health of church by loan (secularization) of humanism, growth first doctrine, amount of materials doctrine, age commercial courses now and sees renewal of active faith and straight image of growth and church essence though of fall Tilrihi wishes to refer right state of our church in boundary line of real form and chaos by basis. Korean church must correspond on new real with correct theology and church loan in special quality of widespread postmodernism and info-age in society now. Problems of church loan that this treatise relativizes all sorts value including a religion and correspond in change social church enemy of postmodernism and 21th century that seek decomposition and church should studies wish to present direction in fall Tilrihijeok viewpoint. Change of church to occur in 21th century is necessary as that follow in social change. Desirable thing sees that is gone forward that real of Korean church as well as world church corresponds in social change although is that change to direction that church is ideal first and guides society. Straight image of present church and meaning that is searching phenomenon about each church loan to the persons center that wished to argue plan that furthermore present right church loan of correct Korean church in these post-modern age and grope fixing of such church loan and was to boundary line of theology and church before result and see 21th century see Doejipeo. By Tilrihi sees church on real existence that is enemy of a supernaturalness week refusing that church has hierarchic structure and cut in two actuality into sex or black refuses deflective sect understanding that regard as only drawing that is society school register resolutely, as is full to Protestant principle and Jeontung of intervention theology is Banyeongharyo as it is. Also, church of church criticizes that deduce from confession about fixed doctrine that is done and preferably church of church everyone who make friends that it was drafted "New existence", and takes part in community which draft these new existence children that is done that do Gyokwae's community Anepo that is done see. Reason that Tilrihi is divided like this in effort that overcome church and interval of the world that image of Saeroon existence that can be found in Jesus of him has lived vividly from course group within groups plain extracurricular work meeting that is youth movement, education, art, Jeongchiundeung or one by one for instance outside church feet Myeomun was done be. He does not get with child and Tilrihi "Jeongdoeotda that can dare to feel employment of sex power" is grate than someone and reflect in own theology and wears tradition of all starting culture renovation founder of a schools in this point. Tilrihi was two justification Gwajeongeulbos unfolding church loan. The propriety was going to be seen in Christian loan extracurricular work affinity first of all. True territorial air same substance may not be if was not drafted such new existence that community likes appear in Christ as Geureoseudo is like this if Christ does not have a person who recognize Buddhist emblem wheat confidences by Christ ". Then, by Tilrihi church by realistic Reomhyeon of the God country see and explained church to eschatology speaking church by existence that represent country of Hananing by Yeryojeok. We confirm whether church loan of Tilrihi is justified through what or Tilrihi is unfolding own viewpoint how about God Narawaoe relation with church as God's people, materialistic (sichtbar) church and division of (vcrborgen) church which is hidden and ground church which is whole subject of church loan as well as can know clearly within such two relation creations. Is as answer about ultimate meaning and if human summarizes Tilrihi and theological insistence that appear inside church loan that is spread under proposition that is existence that seek ultimate rice from abroad briefly being brought in life that the meaning is ambiguous existence red, and meaning of life is church in essential meaning, indeed, can be realized clearly in 'Territorial air same substance', and existence I been church that reflect only intelligibility of the meaning be. If express this speech differently, form 'Territorial air same substance' that is Hananimon new existence in history and check time oneself also in clearly. Church which is the existence enemy the eschatology enemy who is based in new existence of Choeseongsu, Peul Tilrihi and intends it is speech that can recognize and experience clocking of Bunmyeonghagae God most than other some group or a religion. So that church exists to genuine church, "Reforming church" must become. This was slogan for church renewal of 16th century religion reformers. At that time, rather than there were problem with being old with systems that Western Church is running church the system though did not use Christ by purpose that do the center problem have. So, fundamental innovation plan of historically done religion reformers was grasping faith whole contents by new angle. Understand reveal of God newly in master and Holy Ghost and it was religious reformation that see and reforms that there is that individual's psyche can receive creation newly on worship that is meeting of Christ and direct union. We need to listen to speech of Jones (Ilion T.Jones) carefully. "That time will need spiritual reconstruction as far as emphasize form" Rebirth of worship relationship does not make spiritual rebirth, but make spiritual rebirth happen in back. It may be the size of Muleojyeoya at Tadangseongon such main long wave Panryeonhae of Tilrihi church loan. But, can not be handled here because this may become that examine Nonuirung that is Tilrihi theology whole, especially any 틸리히는 교회가 계층적인 구조를 갖는다는 것을 거부하고 또 현실을 성속으로 양분하는 가운데 교회를 초자연주의적인 실재로 보거나 흑은 오직 사회학적인 제도로서만 간주하는 편향적인 교파 이해도 단연 거부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 원리에 충실하면서 또한 중재신학의 전퉁을 그대로 반영하료 있다. 또한 교회의 교회됨을 일정한 교리에 대한 고백으로부터 도출하는 것을 비판하고 오히려 교회의 교회됨은 "새로운 존재"에 기초되어 있고, 이 새로운 존재애 기초한 공동체에 참여하기를 친하는 모든 사람은 교쾌의 공동체 안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교회와 세상의 간격을 극복하는 노력에 있어서 틸리히가 이렇게 구분하게 된 이유는 교회 밖의 단체들 예컨대 청년운동, 교육, 예술, 정치운등이나 또는 개개인들과외 만남 속에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새로온 존재의 모습이 과 단체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발편하게되었기 며문이었다. 그는 그 안애서 "성력의 사역을 감히 느낄 수 있을 정도었다" 틸리히는 그 누구보다도 앞서 있고 이 점에 있어서 모든 비롯한 문화 개신교주의의 전통을 자신의 신학에 반영하고 입다. 교회론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틸리히는 두 가지 정당화 과정을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먼저는 기독론과외 밀접한 관계 속에서 그 타당성을 보여주려 했다. 그리스도는 만밀 자신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러스도가 이런 것과 같이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것과 같은 그런 새로운 존재에 기초되어 있지않으면 참된 영공동체가 아닐 것이다". 그 다음으로 틸리히는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현실적인 럼현으로 보고 교회를 하나닝의 나라를 예료적으로 대표하는 존재로 말하는 가운데 교회를 종말론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두 가지 관계 설정 속에서 우리는 틸리히의 교회론이 무엇을 통해서 정당화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론의 전체적인 주제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가시적인(sichtbar)교회와 감추어져 있는(vcrborgen) 교회의 구분 그리고 지상의 교회와 하나님 나라와외 관계에 대해 틸리히가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전개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게 된다. 그 의미가 불명료한 실존적인 생명 속에서 제기되는 궁극적인 의미에 대한 답으로서, 그리고 인간은 궁극적인 외미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전제하에 전개된 교회론 안에 나타나 있는 틸리히와 신학적인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생명의 의미는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교회, 즉 '영공동체' 안에서 명료하게 인식될 수 있으며, 실존절인 교회는 단지 그 의미의 명료함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한다면, 하나님온 새로운 존재인 '영공동체‘를 역사 속에 형성하시며 또 그 안에서 명료하게 스스로를 계시하신다. 최성수, 플 틸리히의 새로운 존재에 근거하고 또 그것을 지향하는 종말론적 실존적인 교회는 다른 어떠한 단체나 종교보다 가장 분명하개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교회가 진정한 교회로 존재하려면 “개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교회갱신을 위한 표어였다.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가 영위하고 있는 제도들이 낡은 데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교회가 그 제도를 그리스도를 중심한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하는 종교개혁자들의 근본적인 개혁 의도는 신앙 전체의 내용을 새로운 각도로 파악하는데 있었다.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새롭게 이해하고 개인의 영혼이 새롭게 창조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연합의 만남인 예배에 있다고 보고 개혁한 것이 종교개혁이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존스(Ilion T. Jones)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형식을 강조하는 바로 그때가 영적 부흥이 필요할 때이다” 예배의식의 부활은 영적 부활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나, 영적 부활이 뒤따라 일어나게는 한다. 틸리히 교회론의 타당성온 이러한 주장파 판련해서 물어져야만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틸리히 신학 전반, 특히 그외 기독른좌 퐁말른적인 논의룽 살펴보는 것이 될 것이므로 여기에서 다루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앞으로의 계속적인 연구를 위해서 제시채 본다면-정당성을 검중하는 과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배경을 릉해서이루어질수 있을 것이다. 틸리히는 비기독교적인 단쳬나 종교들이 정외와 사랑의 실련을지향하는 한, 그들온 "잠재적인 교회"라는 개념으로 파악라는 가운데 교회와 세계, 성속의 결졔를 무너뜨렸다. 또한 그는 풍교개뗘 전퉁을 반영하는 소위 "가시적인 교회"와 -U가시적인 교회"라는 개념의 구분은 현재적으로 역사하고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성령의 사역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졔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퇘서, 비륵 '영공동체'란 개념 역시 종말론져인 개념에 해당되지만. '영공동체'는 교회외 찬질로서 혈존하면서 또한 동시에 "실존적인교회"(die Kirchen)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으로서 교회로 하여금' 영공동채' , 즉 새료을 존쟤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 틸리히의 그리스도론 연구

        오동규 목원대학교 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7806

        우리는 이제까지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 한 사람인 틸리히의 그리스도론에 대해 그의 저서 조직신학 2권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틸리히에 있어서 그리스도론은 그의 모든 신학의 가장 중심에 서 있으며 최고의 노력을 보인 부분이다. 먼저 그의 그리스도론을 간략히 요약해보자면 그는 먼저 인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인간은 자유를 가졌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그러나 실존으로의 전이를 가능케 했던 것은 유한한 자유를 가지고 있있기 때문이며 유한한 자유를 가진 본질적 인간은 결국 자기 현실화를 이루려 궁극적인 존재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된다. 이것이 창세기 2~3장에 타락설화로 상징되어 있다. 우리 인간은 내어던져진 존재, 없음으로부터 나와 있는 존재, 본질적인 존재에서 실존적인 존재로 전이된 존재로 보고 있다. 그러면 실존의 현실은 무엇인가? 틸리히는 실존의 상태에 놓인 인간의 현실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며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은 무엇인가? 우리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과 세계를 향하여 적대적 감정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인간은 그렇게 신의 자리에 올라서려 노력하는가? 그것을 틸리히는 우리가 소외의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고 실존의 있음과 없음의 잠재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며 궁극적인 존재의 근거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 대답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편적 대답이 되겠지만 뼈아픈 현실의 조국을 보면서 틸리히의 물음과 답은 얼마나 뛰어난 안목인지 알 수 있다. 요즘 들어 한국 사회는 부쩍 더 절망과 자살이라는 화두로 하루라도 회자되지 않을 때가 없다. 이러한 소외의 결과가 낳은 자기 파괴의 구조 속에 서 있는 인간은 결국 시간과 공간의 덧없음을 느끼며, 관계 속에서 고독을 느끼며, 결국 자기 자신을 집단 속에 묻혀 버리고 자기 존재의 무의미와 회의를 느끼며 절망하게 되고 결국엔 갈등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자살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틸리히의 이러한 통찰은 오늘의 세계를 사는 현대인에게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틸리히는 이렇게 인간의 실존을 위와 같이 적나라하게 분석한 다음, 실존의 극복을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즉 틸리히 식으로 말하자면 새로운 존재로부터 찾는다. 새로운 존재는 완전히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유한성 속에 던져 졌으며, 인간이 갖는 배고픔과 아픔, 슬픔과 고독과 불안, 회의 등을 느끼는 인간이다. 그러나 틸리히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굳이 새로운 존재로 명명한 까닭은 그가 분명히 우리와 같은 실존의 아래 있었으면서도 실존을 극복해 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새로운 존재이다. 만일 그가 실존에 참여하지 않은 존재였다면 우리에게 어떤 위로와 소망의 대상도 되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와 상관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는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실존의 상태에 있었지만 신약성서에서 나오늘 예수의 상에는 어떤 소외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그의 사역과 존재를 분리시키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그가 새로운 존재였기에 그는 그의 사역을 감당해낸 것이지 그가 어떤 일을 했기에 그 공로로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비록 육신을 입고 있었지만 새로운 존재를 그의 전 삶에서 투명하게 보여주었다. 이 것을 틸리히는 하나님과 인간의 영원한 일체성이라는 말로 설명하였다. 이렇게 하나님과 하나 된 그리스도는 인간의 실존 속에 온전히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그 소외를 극복한 새로운 존재이다. 소외의 극복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존재에 참여하는 자도 소외의 극복, 하나님과의 재결합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틸리히는 그리스도의 실존에 대한 복종과 극복의 상징으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든다. 십자가는 예수가 실존에 온전히 참여한 것을 상징한다. 그가 고통을 느낀 것, 불안해하였던 것, 회의를 가진 것, 배고픔을 느낀 것 등은 모두 십자가의 상징아래 귀속된다. 그리고 부활은 소외의 극복의 상징이다. 그의 모든 삶의 흔적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일체성을 잃지 않았던 것은 부활의 상징 아래 모두 귀속된다. 그러므로 이 두 사건은 새로운 존재의 상징이다. 부활의 사건은 그의 소수의 제자들만이 경험한 신비적 사건이었지만 그 사건은 오늘 새로운 존재에 참여하는 모든 자에게 현존(現存)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부활 사건은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끝으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틸리히는 먼저 오직 은혜로만(by grace) 구원 받는 것을 전제하면서 구원의 세 가지 과정인 중생, 칭의, 성화를 새롭게 표현한다. 중생이란 하나님께 붙들리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에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곧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참여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구원 잔치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잔치에 초청하는 임금에 대한 예화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초청에 붙들려 새로운 존재에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 곧 중생의 사건이다. 그러면 칭의는 무엇인가? 하나님께 붙들린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용납해 주시고 용서해주신다. 이것이 칭의의 사건이다. 틸리히는 이를 수용이라 표현하였다. 이 말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나를 용납해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건을 의미한다. 이렇게 칭의 받은 자, 곧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용납되었음을 수용한자는 자기에 대하여, 이웃에 대하여, 그리고 세계에 대하여 자기 속에 현존하시는 새로운 존재의 힘에 의해서 변화된다. 이것이 바로 성화이다. 이로써 구원은 완성된다. 이것이 틸리히가 말하고자 했던 그리스도론이다. 결국 이러한 틸리히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틸리히 사상의 심오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틸리히는 대단한 통찰력을 가지고 현대인에게 말하였다. 틸리히의 저작들을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것은 그가 실재에 접근하는 정직성과 우리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삶의 혼란들이나 기쁨들을 논의하였던 참신성이었다. 틸리히는 사상의 미개척 분야에서 활동하였던 사상가이다. 그는 회의적인 현대인에게 자기 상실의 근거인 자율을 포기하고, 교회의 교리와 권위들에 대하여 복종하라고 권고하는 사람 가운데 한사람이 아니었다. 틸리히에게 있어 현대인은 '지성의 자살'이 곧 신앙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틸리히는 신앙이 의혹을 누름으로써만 가능한 곳에서는, 신앙은 광신주의나 냉소주의로 귀결되기 쉬우며 실제로, 절대적인 진리에 관한 자기의 연구의 효력을 증거하는 것은 바로 현대인의 의심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면서 틸리히는 진리에 관한 현대인의 강렬한 욕망을 무시하지 않고, 이 욕망을 스스로 공유하며, 기독교 교리의 의미를 탐구하였다. 틸리히는 밖으로는 철학적으로 좀더 종교적인 대화를 하길 원했고 그리스도로를 변증하길 원했다. 그는 또한 교회 내에서 만연하고 있는 율법주의와 경건주의, 그리고 교리가 곧 믿음의 수단이 되어버린 민감하지만 부정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단한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비판하였다. 본고를 쓰면서 느낀 것은 틸리히의 사상이 많은 비판들 가운데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균형 있는 신학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남겨진 자들의 몫이 있다면 그의 신학이 더욱 굳건한 진리 수호와 선교적 사명에 있어서 빛이 되도록 풀어서 적용하는 일이라 하겠다. 그것이 신학의 진정한 의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틸리히의 신론에 관한 연구

        양승민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7806

        본 연구는 틸리히의 신론을 공정하게 이해하고, 평가하는데 주된 목적 이 있다. 이에 본 저자는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Ⅰ,Ⅱ(유장환 역)을 중 심으로 연구하도록 하며, 필요에 따라 다른 저서와 논문도 참고하였다. 본 논문은 틸리히의 신관을 알아보기에 앞서 Ⅱ장에서는 틸리히의 생 애를 살펴보겠다. 그의 생애와 사상의 형성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상 관방법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신론 이해를 위해서 필요 로 하는 그의 상관방법을 고찰하도록 하겠다. 틸리히의 신학방법은 상관 방법이라 말 할 수 있다. 그는 철학과 신학, 종교와 문화 가운데 하나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양편을 조정하고 중재한다. 참 신학은 “중재의 신 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인간의 실존적 상황 속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들” 내지 “질문들”을 찾아 내고, 기독교의 영원한 메시지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런데 질문과 대답은 상관관계 속에 있다. 여기서 상관 관계란 “의존성과 독립성의 통일성”을 말한다. 다시 말해 질문과 대답은 분명히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대답에서 질문을, 질문에서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양자는 상대방에 대해 독립적이다. 이와 동시에 질문과 대답은 서로 의존하며 상관관계 속에 있다. 인간의 유한한 존재와 그것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그의 유한한 존재로부터 제기하는 “질문”은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주어지는 “대답”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6) 이와 같이 틸리히는 상관의 방법, 즉 실존적 질문과 신학적 대답의 상호 의존의 관계를 통해 서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말한다. 이같이 신학의 과제를 상황에 대해 대 답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틸리히의 신학을 상황신학(situation theology)이라고 부른다. 틸리히는 이와같은 상관관계의 방법에 따라 그 의 신론을 전개한다. 이에 본 연구자는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을 연구 하고자 한다. Ⅳ장에서는 ‘하나님’이란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그가 시도한 종교 현상학적 신 이해와 그의 기본적 신 관념인 ‘존재자체로서의 하나님 이해를 고찰하고 틸리히의 신론과 그에 대한 비판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끝으로 Ⅴ장 결론 부분에서는 연구 내용을 요약하고 틸리히의 신론 이 지니는 의의를 살펴보면서 연구자의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본 논문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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