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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문학 및 친일문인 교육 연구

        정시우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5 국내석사

        RANK : 248703

        이 연구는 그동안 국어교육에서 친일문학과 친일문인에 대한 교육이 오랜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가르쳐지지 않았음과 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여 친일문인과 친일문학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나마 가르쳐야 하고, 그렇게 교육을 시행함이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음을 밝히는 데에 목적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국어과 교육과정을 분석하였다. 또한 이 교육과정에 따라 개발되어 검인정 절차를 거친 11종 『문학』교과서에 실려 있는 문학 작품들 가운데 친일문인의 작품과 저항문인의 작품을 비교하여 분석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친일문학 및 친일문인 교육을 하게 되었을 때 그에 따른 교육적 효과들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국어과 교육과정을 보았을 때, 현재의 상황에서도 친일문인과 친일문학 교육이 충분히 가능함을 보았으며 나아가 교육과정의 세부내용 성취에 있어서도 도움이 됨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한편, 그에 따른 『문학』교과서들을 살펴보았을 때, 친일문인의 작품들이 저항문인의 작품만큼 실려 있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친일문인과 그들의 작품들이 문학사적 위치, 문학적 권위, 성취 등으로 인해 정전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 정전성으로 인해 매우 오랜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가르쳐지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이어서 이러한 친일문학 및 친일문인 교육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과 그 교육 방안을 제시하였고 이러한 교육이 행해진다면 어떠한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연구자는 친일문학 및 친일문인 교육의 교육적 효과로 문학사 교육 목표 구현, 문학적 학생 선택권 정립 및 보장, 친일문인의 정전성 논의, 비판적 문식성 신장, 작가론적 접근의 교육적 가치 고양에 있어서 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 연구는 현재 영교육과정으로 제시되고 있는 친일문학 및 친일문인에 대한 교육이 표면적 교육과정에 의해 공식적으로 가르쳐져야함과 그에 따른 교육적 효과들을 이론적으로 밝히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 논의한 내용을 교육과정 개발 및 교과서 개발에 있어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국어과뿐 아니라 친일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하는 역사과 및 음악과와 미술과등 다른 교과의 친일문제 교육에 있어서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친일반민족문학'에 대한 연구 : 친일시의 전략을 중심으로

        구광모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박사

        RANK : 248703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기관으로 발족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9년 말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정한 문인 31명의 명단(김기진, 김동인, 김동환, 김문집, 김억(안서), 김용제, 김종한, 노천명(女), 모윤숙(女), 박영희, 백(세)철, 서정주, 유진오, 윤두헌, 이광수, 이무영, 이석훈, 이 찬, 임학수, 장덕조(女), 장은중(혁주), 정비석, 정인섭, 정인택, 조용만, 조우식, 주영섭, 주요한, 채만식, 최재서, 최정희(女))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 연구는 친일문인들의 작품 발표에 영향을 준 일제의 정책적 환경요인들과 개별적 내부요인 및 매개요인 등을 파악하여 각 영향요인들과 문인들과의 관계 등을 찾아내고, 일제의 탄압・유인정책과 공작에 대하여 ‘친일반민족 판정 시인’ 15명(김기진, 김동환, 김억(안서), 김용제, 김종한, 노천명(女), 모윤숙(女), 서정주, 윤두헌, 이광수, 이 찬, 임학수, 조우식, 주영섭, 주요한 등)이 어떻게 순응하였으며 또한 어떠한 전략으로 대응했는지를 비교문학적 시각과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를 위해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 작품’으로 판정한 詩 총 138편의 텍스트를 전수(全數) 분석하였고, ‘친일반민족 판정 문인 산문’ 268편중에서 139편을 ‘매개 담론’으로서 함께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주요 연구결과를 얻었다: (1) ‘친일반민족 작품’(이하 ‘친일작품’)의 개념: 문학계에서의 ‘친일’이란 일반적인 개념이 ‘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친일반민족’이란 용어로 과장되게 환치되어 문학작품들과 문인들에게 등가적(等價的)으로 적용되었음이 발견된다. 이러한 적용은 ‘진상규명위원회’가 문인들을 31명이나 ‘반민족행위자’로 양산(量産)한 결과를 만든 ‘문학작품에 대한 국가기관 판정의 구조적인 하자’로 이어지게 되었다. (2) ‘친일반민족 작품’의 발표 시기: 그간 문학계에서는 ‘친일문학’의 시기를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또는 1940년 전후 10년을 기준으로 흔히 설정하고 있으나 이 연구에서 이는 ‘산문’의 경우에나 적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반민족행위’로 판정된 시와 소설의 80%이상은 태평양전쟁 최초 3년간(41.12.~44.12.)에 집중적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3) ‘친일반민족 판정 문인’(이하 ‘친일문인’) 31명의 민족의식: 김문집을 제외하고는, ‘친일문인’들이 조선어와 조선식 필명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등 민족의식이 강했다는 점이 발견된다. 또한 이들 31명 중에는 좌파이든 우파이든 민족주의자로서 항일운동에 참여하여 구속되었다가 출옥한 ‘반일운동 주동자’들이 12명이나 된다는 사실도 발견된다. 일제는 이들을 출옥시키는 대신 조선민족에 대한 배신자라는 이미지로 낙인을 찍고 일본을 위한 ‘전향자’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감시・탄압・동원했지만, 이들은 ‘유사(類似)순응적 불응’ 행태를 은밀히 그리고 자주 나타낸 것으로 드러난다. (4) 일제의 동화정책에 대한 대응전략: ‘친일반민족 판정 시인들’(이하 ‘친일시인’)은 ‘내선일체・황민화’를 선전・선동하는 ‘친일 시’의 발표를 거의 회피했으며, ‘친일소설가들’도 ‘내선일체・황민화’ 문제에 소극적이었음이 발견된다. 이와 같이 조선 문인들은, ‘친일작품’을 발표해야 할 경우라도, 식민통치의 핵심인 일제의 ‘내선일체・황민화정책’을 선전・선동해 주는 역할을 피해 가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드러난다. ‘내선일체・황민화’ 관련 작품을 발표했을 때에도, 작가는 대부분의 경우에 양가적이거나 다의적인 의미를 내장시키는 문학적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나타난다. (5) 일제의 침략전쟁에 대한 인식: ‘친일문인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을 조선민족의 앞날을 위한 ‘대운(大運)’의 ‘기회’와 ‘기대’로 인식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기회’와 ‘기대’가 중일전쟁 기간 중에는 개전 2년차인 1939년도에, 태평양전쟁 기간 중에는 개전 1년차인 1942년에 최고 절정을 이루었다. (6) ‘일본국민’에 대한 인식: ‘친일문인들’이 전쟁 시기에 내세운 ‘일본국민’은 ‘조선민족 2500만 명’과 ‘대화(일본)민족 7500만 명’으로 구성된 ‘1억 국민’을 의미했다. 조선민족의 소멸이나 말살을 요구하거나 기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국가’ 내에서의 조선민족의 역할 및 전체국민의 ‘4분의 1’이라는 2500만 명의 지분(持分)을 내세우는 기능과 전략으로서의 ‘일본국민’임을 활용한 측면이 드러난다. 또한 기성문인들은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일본국민으로서의 충의와 천황에 대한 충성을 외면상으로 강조하긴 했지만, 조선동포와 조선남아로서의 의기(義氣)도 바로 할 것을 덧붙이는 전략도 구사한 사례들이 많이 발견된다. (7) 중일전쟁 중의 ‘친일 시’ 발표 동기: 이 연구는 중일전쟁 기간에 발표된 ‘친일반민족 판정 시’ 총 24편중 23편이 일제의 탄압・유인정책 및 4개 유형의 공작에 의해 대응 창작된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발견했다. (8) ‘친일시인들’의 ‘내선일체・황민화 선전・선동’ 기피 전략: ‘내선일체・황민화’ 유형에 해당된 ‘친일반민족 시’는 두 전쟁 모두 합쳐도 총 6편에 지나지 않으며 해당된 시인도 두 전쟁에서 각각 2명에 불과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문인들은 ‘반민족행위’에 해당되기 쉬운 ‘내선일체・황민화 정책’에 협력하기 보다는, ‘반미・반영・반백인종’ 등을 부르짖는 일제의 ‘침략전쟁 미화・찬양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차원에서 ‘친일의 대안’을 찾은 것으로 드러난다. ‘내선일체・황민화’를 선전・선동해야 할 경우에도 ‘친일시인’은 ‘친일적이고 친민족적인 이중 전략’을 흔히 사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환언하면 친일적이면서도 친민족적인 ‘양가적 틈새 전략’으로 대응했음이 발견된다. (9) ‘친일시인들’의 ‘일본군 전사자 미화・찬양’ 전략: ‘친일시인들’은 ‘일본군전사자를 미화・찬양’하라는 일제의 정책에 대응하여, 1943년 말기부터 ‘조선인 전사자들’을 선택해 이들이 공식적으로 ‘일본군 병사’이지만 조선인임을 은밀히 알리고 추모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드러난다. 결국 일제는 조선에서 일본군 전사자를 미화・찬양하는 작품 발표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제동을 걸게 되었다. 이는 ‘조선 시인들’의 일제에 대한 ‘유사(類似)순응적 불응 전략’이 성공한 사례로 나타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위원회’는 일제의 태평양함대를 총지휘했던 전범(戰犯) 야마모토(山本) 원수의 전사를 대표적으로 미화・찬양한 김소운의 ‘친일 시’는 ‘친일반민족 작품’에서 제외시키는 결정을 만들어 놓은 반면, 일제의 삼엄했던 검열 틈새를 헤치고 조선인 전사자들을 추모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일본군 전사자를 미화・찬양’한 ‘친일반민족행위’로 판정한 카오스를 만들어 놓았음을 이 연구는 발견했다. (10) ‘친일시인들’의 ‘지원병 선전・선동’ 전략: ‘지원병 동원 시들’에서는 네 가지 유형의 전략이 내포되어 있음이 나타난다. 첫째는 일제의 ‘기대에 미치지 않거나 기대와 다른 것’을 발표하는 전략이고, 둘째는 위장술을 활용하여 정보적 가치가 있는 사실이나 실상 등을 후세에 알리는 전략이며, 셋째는 특정 이슈에 대하여 조선인들이 아니라 일본인들에게 직접 조선인들의 역할과 중요성 등을 알리는 전략이고, 넷째는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조선 젊은이들이 해양에 대한 관심과 경험을 축적하도록 해군특별지원병 모병에 응하도록 장려하는 전략으로 드러난다. (11) ‘친일시인들’의 ‘징병 선전・선동’ 전략: 징병은 군무동원의 핵심인데도 의외로 소수(6명)의 시인들이 참가했다. 이에는 ‘친일시인들’이 네 가지의 대응전략으로 임한 것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징병을 소재로만 삼을 뿐 이를 선전하거나 선동하는 것을 회피하거나 기피하는 전략이다. 둘째는 시국적 용어나 친일적인 표현들을 배제하거나 극도로 절제하면서 징병제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젊은이로서는 반드시 짊어져야 되는 국민의 의무라는 ‘일반성’을 부각시키는 전략이다. 셋째는 조선인에게 징병은 국민의 의무이고 특권인 동시에 천황의 위대한 은혜이기 때문에 천황의 방패가 되고 출정병이 되어 죽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영광이 되는 위대한 행위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인식은 임종국이 분류한 대부분의 ‘신인작가’들에게 조국과 징병의 정당성이 그렇게 각인되어 있었다. 넷째는 시각적으로 선동성이 강한 그림의 ‘보조 역할’로서 징병 관련 <시화(詩畵)>에 참여한 전략이다. 1943년 8월 1일 징병제의 공식적인 실시를 맞이하여 '매일신보'가 기획 연재한 <시화>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에는 화가 7명과 시인 7명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중에서 그림 2편과 시 5편만을 ‘친일반민족 작품’으로 판정했다. 그런데 ‘시국적인 친일용어들’과 ‘선동적인 표현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하윤과 김상용의 시가 오히려 ‘친일반민족 판정 작품’에서 제외되었다. 이하윤과 김상용을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로 선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이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되는 조사방법론상의 구조적인 하자 등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 또한 詩가 그림의 ‘보조역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는 5편, 그림은 2편이 ‘친일반민족 작품’으로 판정된 것은 문학계에서 ‘친일반민족 문인’을 31명이나 선정한 반면, 미술계에서는 4명만이 ‘친일반민족 미술가’로 선정되도록 축소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2) ‘친일시인들’의 ‘학병 선전・선동’ 전략: 학병동원은 전쟁 말기 일제의 마지막 이벤트였고, ‘친일시인들’은 대학생들에게 간부후보생으로 응소하라는 전략으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난다. 학병에 불응하여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징용 학도’가 되기보다는 정정당당하게 출정하는 것이 본인이나 민족의 장래를 위해 보탬이 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13) ‘전략적 친일문학’ 개념의 정립 필요성: 이 연구는 ‘친일문인들’의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친일적인 요소’와 ‘친민족적인 전략’이 함께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또한 던컨(Dunkan)의 ‘순응이론’을 일제 강점기의 우리 문학에 적용하면, ‘친일문학’은 외면적으로 친일협력이 드러나는 ‘친일순응문학’ 및 내면적으로까지 친일협력이 용해된 ‘친일수용문학’으로 구별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친일반민족 판정 시’들의 텍스트 분석에서 ‘친일순응행위’를 발견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에 ‘친민족적인 요소’들이 함께 내장되어 있음으로써 내면까지 완전히 친일화된 ‘친일수용작품’은 극히 소수임을 발견했다. 환언하면 대부분의 ‘친일반민족 판정 시’는 ‘친일순응문학’에 속한다. 반면에 ‘친일수용문학’은, 김문집의 산문 사례들과 같이, ‘친일적이고 또한 반민족적인 글’로 구성되어 있거나 조우식(‘친일반민족 문인’에서 이미 벗어난 많은 신인작가 포함)의 사례와 같이 ‘맹목적인 친일협력 詩’로 드러난다. 따라서 앞으로는 ‘친일문학’을 구분해서 정리하고 개념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연구는 ‘친일적이면서 친민족적인 양가성을 지닌 작품군(群)’을 ‘전략적 친일문학’으로 구분할 것을 제의한다. 일제가 개전한 전쟁을 ‘대운(大運)의 기회’로 인식하고 이를 붙잡기 위한 전략적 사고와 고민 하에서 작품들이 창작되었으며 일제의 삼엄했던 전시(戰時)검열의 틈새를 뚫고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친일문학’이란 용어에는 패배주의적이고 열등적인 국가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전략적 전쟁협력 문학작품’까지 우리 스스로 다른 나라의 국가명칭을 붙여 패배적인 의미로 지칭하는 것은 오늘날의 국격(國格)과 국익(國益)에도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일제말기 친일문학의 내적논리와 회고의 전략 : 이광수, 김동인, 채만식을 중심으로

        박수빈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9 국내박사

        RANK : 248702

        본 논문에서는 일제말기(1937년~1945년) 친일문학과 해방기 회고의 전략적 성격을 문인들의 ‘자기규정’과 ‘식민지적 정체성’을 통해 살펴보았다. 일제말기 친일문인들은 대중적 지도자나 사상가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제국일본과 조선 사이의 ‘번역자’로 살아왔다. 그러나 일제의 외부적 압력과 문인의 내부적 혼란이 극대화된 시점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해방은 이들을 순식간에 민족의 죄인이자 평범한 인민의 한 사람으로 끌어내렸다. 해방공간에서 친일문인들은 일제말기 제국일본의 식민지배이데올로기를 조선(인)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이상으로,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자기변호의 텍스트를 생산해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친일문인들의 해방기 ‘회고’는 문인의 내적 욕망과 외부적 압력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는 점, 시대와 이데올로기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문학적, 사회적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행위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일제말기의 ‘친일문학’과 매우 닮아있다. 본 논문의 기본적인 시각은 제국주의와 주체의 관계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탈식민주의적 담론의 자장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선행연구와 차별을 두기 위해 일제말기 친일문학에 영향을 미친 외부적 요인보다는 문인 개개인의 사상적 배경과 문학론, 그들의 식민지적 주체형성 과정에 주목함으로써, 친일문학이 그저 외압에 의한 몰개성한 선전문학이 아님을 규명하려 했다. 이를 위해 각기 다른 사상적 배경과 문학론, 식민지적 주체성을 형성하면서 일제하에서나 해방공간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광수, 김동인, 채만식을 연구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이 세 명의 문인을 통해 친일문학이 일제의 식민지배이데올로기를 문인 각자의 맥락에서 내면화한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취하는 서술전략과 서술방식의 차이점에 주목하였다. 또한 친일의 범위와 의미를 일제강점기에 국한시키지 않고, 이를 해방 후 회고와 연결시킴으로써 친일의 시작과 완결을 철저히 작가 본인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서론에서는 친일문학에 대한 기존 연구사가 갖고 있던 견고한 민족주의적 시각에 대해 정리하고, 이를 돌파하려는 최근 연구 성과에 대해 살펴보았다. 연구사 검토를 통해 최근 친일문학 연구에서 주목하는 ‘식민지적 주체’의 문제를 본 논문의 문제의식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또한 친일문학(연구)의 정치적 성격으로 인해 연구자들이 경직된 태도와 시각을 갖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친일문학 연구의 난점과 방법론의 문제를 정리하였다. Ⅱ장에서는 일제말기 조선문단의 상황과 문인협회의 존재의의를 바탕으로, 세 문인의 ‘친일논리’가 구축되는 과정을 그들의 비평(적)텍스트를 통해 살펴보았다. 일제말기 조선의 문인들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아시아’ 개념 속에서 근대와 동양을 초극하고 서구에 대항할 가능성을 찾았다. 문인협회는 문인들의 친일행위를 집단화・조직화하고, 일본으로부터 ‘국민문학론’을 수용하는 등 새로운 문학의 방향을 모색했지만 문학론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식민지적 주체의 사상적 균열과 분열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였다.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위한 근간인 ‘민족주의’가 친일로 흐르게 되는 양상은 일견 아이러니로 보이지만, 이광수를 통해 보면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는 결코 상반된 개념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의 민족주의는 ‘자강론’, ‘실력양성론’ 등과 결합하면서 자연스럽게 동화주의(assimilation)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김동인의 친일논리는 그의 민족의식의 부재를 잘 보여준다. 그는 일본이 내세우는 식민지배이데올로기에 현혹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내면화하거나 자기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김동인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조선문단의 대표적 친일문인으로 보이기를 원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일제하에서 문인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일찍이 문학의 자율성에 대한 철저한 옹호자였던 김동인은 문학이 가장 중요한 ‘도구’일 수 있다는 자가당착적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일제말기 김동인에게는 주체성이 결여된 식민지 지식인의 수동적인 모습과 식민지배 체제 내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자하는 피식민자의 욕망이 동시에 발견된다. 반면 무력한 니힐리스트이자 체제순응자인 채만식의 사회주의는 ‘전체주의’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일제하 신체제로 빨려 들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채만식의 친일논리는 이광수에 대한 모방으로, 친일소설의 구상은 히노 아시헤이의 영향 하에서 그 기반을 마련하지만, 이광수와 달리 채만식은 조선(인)을 초극하여 사고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조선과 조선문학, 그리고 조선인으로서 자신을 모두 미달된 존재로 규정했던 채만식은 현실적 제조건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시대에 순응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길을 정한다. Ⅲ장에서는 일제말기 문인에게 내면화된 식민지배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인 소설텍스트를 분석해보았다. 특히 이 장에서는 해방 후 삭제된 서사를 복원하고, 지금까지 연구대상이 되지 못했던 친일소설텍스트들을 새롭게 의미화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세 문인의 ‘개성’은 문학작품의 제재(題材)와 장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광수의 친일소설은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제재를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조선인에게는 충(忠)을, 일본인에게는 성(誠)의 정신을 주입시키려 함으로써 계몽의 이중적 의도를 보인다. 완전한 내선일체의 완성은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광수 특유의 도식적인 인물구도는 ‘내지인-조선인’ 사이에서 효과적으로 구현되어 ‘정신적 내선일체’를 완성하고, 원술을 동원한 군인정신의 강조는 징병제 실시를 통한 ‘실질적 내선일체’의 기획을 뒷받침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미완으로 남은 일군의 소설들에서 이광수는 내선일체론과 국민문학론의 허상을 스스로 폭로하고, 불완전한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동인의 친일소설은 모두 백제, 일본,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이다. 김동인의 친일역사소설은 텍스트 자체만으로 볼 때에는 친일적 요소를 발견하기 어렵지만, 컨텍스트와 함께 읽으면 그 안에 숨겨진 식민사관과 텍스트의 진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도의 전략적 글쓰기라 할 수 있다. 그는 서구를 통해 동양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일본중심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뒷받침한다. 아편전쟁을 제재로 삼은 두 편의 역사소설에서 김동인은 중국의 치욕적인 역사를 통해 反서구의 정서를 정당화하고, 친중적인 서술태도로 제국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뒷받침한다. 일본정신을 반영한 예술가소설에서는 국책문학 창작에 대한 일본인 문사의 고민을 담았지만, 그 함의는 조선 문인의 일본어 글쓰기에 대한 고민으로 읽는 것이 옳다. 일제의 고대사복원 계획과 발맞춘 친일역사소설에서는 일본역사관을 바탕으로 백제와 일본의 역사적 친연성을 강조하고, 과거 백제가 일본의 도움으로 당군을 물리친 것처럼 조선이 일본을 도와 중국에 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채만식의 친일소설은 르포문학의 형태를 띤 전쟁소설과 후방의 역할을 강조하는 총후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접 전쟁에 참여하는 용맹한 일본군, 후방에서 이를 적극 지원하는 이상적 ‘총후부인’과 ‘군국의 어머니’를 통해 채만식의 소설은 군국주의적 전체주의를 선전한다. 일제말기 채만식의 소설 가운데 장편 『아름다운 새벽』은 해방 후 단행본으로 엮이는 과정에서 친일적 요소가 의도적으로 삭제되면서 해석상의 혼란을 야기했다. 본고에서는 삭제된 서사를 복원하고, 채만식 친일논리와 해방기의 정치성을 보여주는 텍스트로 의미화 하였다. Ⅳ장에서는 해방공간에서 쓰인 세 문인의 회고를 대상으로 친일문인들의 ‘자기규정’과 반성의 ‘전략’적 측면을 연관시켜 살펴보았다. 특히 복잡한 수사와 정치적 맥락 사이에 숨겨진 텍스트의 ‘진의’를 찾고자 했다. 이광수는 인생의 모든 기간을 대상으로 하는 ‘자서전’이 아님에도 친일협력의 기간을 ‘일제말기’에 한정하고, 그 의미를 희석시키기 위해 자서전 형식의 회고를 썼다. 자의적으로 서술시간을 조절함으로써 ‘민족주의자’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반면 김동인은 이광수를 ‘민족주의를 내세워 자발적으로 친일한 민족적 지도자’로, 자신을 ‘일생 조선문 소설쓰기에만 몰두한 순수하고 무력한 소설가’로 규정함으로써 친일의 그림자를 이광수에게 덧씌우고 자신은 그 비판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특히 그는 자신의 문학적 공로를 과장되게 제시하고, 일제하와 미군정의 ‘지배/점령’을 동일하게 의미화 함으로써 자신을 철저한 피해자에 위치시킨다. 채만식은 스스로를 민족의 ‘죄인’으로 규정하지만, 그의 회고에는 죄의식과 억울함이 동시에 나타난다. 그의 회고에서는 반복적으로 죄에 대한 인정과 동기에 대한 부정이 중첩되어 서술된다. 자신의 친일을 인정하면서도, 본심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 하는 채만식의 회고는 본심과 양심 사이의 팽팽한 힘겨루기를 보여준다. 해방기 채만식의 인식은 ‘조선인 대부분이 민족의 죄인’이라는 것이다. 자기풍자와 자기폭로를 통해 죄의식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그런 면에서 채만식의 회고는 친일에 대한 반성적 텍스트가 아닌 자기변호의 텍스트임이 분명해진다. 문인들의 친일의 동기와 경로, 해방 후 보여준 자기비판과 반성까지 검토한 후 드러나는 것은 식민지적 주체의 모순과 분열의 복잡한 양상이다. 친일문학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텍스트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학’이란 한 인간이 세계를 보는 관점이자, 그 자신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친일문학은 국책을 위한 전략적 글쓰기인 동시에 한 작가의 문학적 지향과 식민지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대상이다. 친일문인은 식민주의 내부의 구조적인 불균등성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정작 자신들의 존재가 이 체제를 상징한다는 것, 나아가 체제를 더 공고히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 논문은 세 문인의 일제말기와 해방기의 텍스트를 통해 식민지적 주체의 형성과 분열, 일제식민지배이데올로기의 환상과 모순, 친일문학에 내재된 피식민자의 욕망과 주체의 한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해방 후에도 여전히 세계의 비주체적 존재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서 ‘식민지 근대성’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일제말 친일문학의 논리 연구 : 최재서·이광수·백철·서인식을 중심으로

        석진 홍익대학교 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8702

        이 논문은 1940년대 전반기 문인들이 남긴 친일 관련 비평과 논설을 통해서 일제말 친일의 논리를 연구하였다. 이 연구는 문학작품을 다룬 소설론이나 시론이 아닌, 비평과 논설을 텍스트 대상으로 한 일종의 비평론이면서 문학사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접학문(사학)과의 연계 속에서 얻어진 사회사적 성격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얻어진 성과는 소설론과 시론에도 적용이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이 연구는 1940년대 친일관련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된 문인들에 대한 평가가 왜곡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논문의 목적이 아니다. 그 보다는 그들이 그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려고 했는가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였다. 서론에서는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란 이름으로 두 개의 단서를 달았다. 그것은 친일파의 분류 속에서 설명된 친일문인의 개념규정과, 친일의 논리 3가지였다. 이 전제조건은 연구의 대상이 된 최재서·이광수·백철·서인식 이외의 다른 문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Ⅱ단원에서는 본격적으로 이러한 친일의 논리들이 문학에 어떤 양상으로 나타는가를 살펴보았다. 1장에서는 최재서의 국민문학론을 고찰하였다. 국민문학론은 일제말 친일문학을 대변하는 용어였다. 당시에는 친일문학이란 용어가 없었고 국민문학 혹은 국책문학이란 용어로 사용되었다 『국민문학』창간을 전후한 시대적 환경과 國民文學 창간 이전의 국민문학론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다음은 국민문학론의 전개과정을 통합화, 동질화, 선전도구화의 세 단계로 구분하였다. 통합화란 당대의 문단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과정이다. 동질화는 통합된 문학의 논리를 일본문학으로 동질화시키는 과정이다. 이는 형식적인 측면과 사상적인 측면에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형식적인 문제에게 가장 큰 난제는 언어의 문제였다. 최재서는 조선어를 버리는 것을 英聯邦문학론에 기반하여 이론을 펼쳤다는 가설을 세워 보았다. 조선어를 버리는 것은 민족문화를 포기하는 매국행위가 아니라 영연방문화권이 실재하는 것과 같이, 일본어를 표준으로 하는 범동양 문화권을 주창하였다고 본다. 사상적으로 국민문학론이 배제하는 대상은 민족주의 문학·개인주의/자유주의 문학·사회주의 문학·사해동포주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동질화된 문학론은 일제에 의해서 조종되는 선전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2장에서는 이광수의 민족주의에 대한 연구였다.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왜 친일의 논리로 전락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였다. 먼저 「민족개조론」과 「민족의 경륜」을 통해서 민족개조에 있어서의 개조의 대상과 목적·방법·방향에 대해서 살피고 그 전략으로 정치결사·산업결사·교육결사 세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먼저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서 연구하고 1920년대에 주장했던 이광수의 민족주의론이 1940년대 일제말에 와서 어떻게 변질되어 갔는지를 살펴보고 그 한계를 고찰하였다. 그 한계의 이유는 3가지였다. 그 이유는 독립의지가 결여된 민족주의였고, 휴머니즘의 수준에 머물고 만 민족주의였다. 그리고 총독부의 자장권 안에서 작동된 온실속의 민족주의였다. 결국 이광수의 민족주의는 타협적 민족주의에서 사이비 동화주의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민족주의와 친일로 2분화시키지 않고, 1920년대 사이또 총독의 문화정책의 기만성에 의한 사이비 민족주의를 살피기 위해서 3분화시켜서 살폈다. 그리고 민족주의 노선이 어떻게 타협안인 자치론자들에 뒤섞여져서 변질되어 가는지를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의 전향의 논리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백철을 통해서 사회주의자들의 전향의 논리를 살펴보았다. 전향이란 자신의 사상을 포기하고 기존 주류체제로의 귀의를 말한다. 이런 사회주의 사상의 전향은 먼저 일본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들의 전향은 변절이나 굴복이라기 보다는 타협의 산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군국주의가 다시 복귀한 1937년 고노에를 중심으로한 거국일치내각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은 나름의 자기합리화 논리를 편다. 원래 정통막시즘은 nationalism이 아닌 internationalism을 주창하였다. 일제의 신체제주의자들은 국제적 사회주의를 국가적 사회주의로 변형시키고 이는 다시 또다른 전체주의인 신체제(국가적 전체주의)로 변절시켰다. 그러나 후사오의 주장처럼 조선인은 이러한 절차를 탈을 수가 없었다. 조선인들이 민족주의를 외치는 순간 사회주의보다 더 강력한 폭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이 국제적 사회주의 > 국가적 사회주의 > 신체제(국가적 전체주의)로 변화되어 간 것과 달리 조선인은 이 사이에 내선일체라는 정화장치를 거쳐야만 했다. 그래서 국제적 사회주의 > 내선일체 > 국가적 사회주의 신체제(국가적 전체주의)로 변절할 수밖에 없었다. 백철은 두 번의 변절을 했다고 비판받는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버리고 또다시 친일을 하였다면 두 번의 변절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의 친일이란 신체제논리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그래서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는 상당히 유사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두 번의 변절로 보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4장에서는 경도된 논리들을 살펴보았다. 먼저 역사철학자들의 경도된 논리의 오류를 살폈다. 일제말기의 조선의 역사철학자들은 정통 역사철학이론가라기 보다는 딜타이의 이론을 바탕한 탈역사철학론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혜겔의 발전사관과 막스의 유물사관이 주장하였던 근대의 낙관적 미래관, 결정론적 세계관을 비판한다. 서양 근대주의자들이 주장한 낙관적 미래의 끝은 1차대전이란 제국주의전쟁의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들은 그동안의 서양문명 중심의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였다. 허지만 이들은 새 대안으로 신체제의 논리를 합리화시키는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서인식의 동양문화사론도 이와 유사한 일제의 근대초극의 논리에 기반한다. 서인식의 동양문화사론은 일본의 경도학파의 사상에 기반하였다. 근대초극 논리는 1943년 일본에서 <문학계>란 동인지에서 개최한 좌담회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역사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대안 모색에 실패하고 신체제의 논리를 엉성하게 뒷받침하는 시녀가 되고 말았다. 김문집의 전통론 역시 조선의 문학을 발견하기보다는 더 큰 범주의 일제의 헤게모니 안에서 작동하는 동양문학의 지방문학으로 전락하고 마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끝으로 결론에서는 이러한 왜곡된 논리를 왜 총독부에서는 문인들에게 강요했는가에 대한 나름의 해석이다. 이는 제국주의가 식민지에 가하는 폭력들을 탄압과 말살, 수탈이라는 개념으로 살펴보았다. 그 폭력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문인들에게 이러한 왜곡된 논리를 강요했다고 할 수 있다. One century of Korean contemporary literature has been passed. We have not been investigated the history of literature in the first half period of 1940's. Unfortunately this period was jumped down. The history of literature from 1940's to 1960's has been investigated except for the first half period of 1940's. That's why this period was the age of pro-Japanese literature. This period was the history of humiliation for literary man. Nobody investigated the history of literature in this age. The half-century has been passed already, we need to discuss and investigated this period. Even though the investigation of history of KAPF literature was a taboo. it was permitted in 1988. because of removal of ban for literary man who went to North Korea. It should be permitted that investigation for pro-Japanese literature. I want to investigate the literature in the first half period of 1940's. There are two way to investigate it. One is study of logic for pro-Japanese and another is study of pro-Japanese literature. I used 3 methods to nivestigate the theory of pro-Japanese. 1st method is view of racism. Because racism is apposite side of Japanese imperialism, I investigated racism, race literature but also criticism of racism. By investigation of independence war, I could find the trace of pro-Japanese. 1st way is the logic that Japan unifies Chosen. This is the policy of adoption to Japanese. 2nd way is the logic that Japan invades the countries of eastern Asia. Japan made a war with China after 1930's and controled continent. Japan needed the logic of rationale that Japan should control the Asian countries. This logic means the control of Chosen including China, Monol and Manchuria. 3th way is the logic of rationalism that Japan should control Chosen. Japan did not merge Chosen through the war. But Japan fought China and Russia defeated them. Because Japan unifies Chosen as dipolmatic skill, they insisted that was not invasion. Unconditionally, the reuisition of Chosen independence was suppresssde in the initial stage of Japanese imperial. After 3,1 independence movements, Japan withholds the requisition of Chosen independence continuossly. It seems like withhold of obligation 4th way is logic of Japanese Fascism. A military party of Japan got a power from age of Meiji, Financial panic in the second half of 1920's. It amde collapse of Japanese Democracy and became age of fascism that suppress Socialism and Nationalism. It si the logic of rationalism of facsism. 5th way is the logic of war. They called a war as holy war not an invasion. Because UK and USA attacked the countries of eatern Asia, Japan insisted that they fought to project the Asian countries. So the people of Korean were forced of participation of this war. Japanese imperial was willing to suppress, plunder and liquidate on the basis of this logic. They enforced colnoialism, change of name and use of Japanese to Chosen. Also, Japan explotied the Chosen people and material for their war. They let Chosen litery men compose to justify it. Many Chosen literary men surrendered to this kind of pressure and cooperated with Japanese imperial. Many composition of them were remained till the now and I investigated it. 3th method is investigation of logic for betrayal. Many literay men paticipated independence movement and another literary men betrayed our homeland. I investigated literary men who betrayed and pursued the step of his betrayal. Some literary man surrendered to violence of Japanese imperial and other literary man were ruined by his wrong logic.

      • 이광수의 내선일체지향소설 연구

        박수빈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0 국내석사

        RANK : 248687

        친일문학이 태어난 배경은 식민주의 억압에 의한 것이었으나 문인들과 지식인들은 친일문학 창작을 통해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을 내면화했다. 그런 의미에서 친일문학은 일본의 식민주의 전반 즉 군사주의와 전체주의, 자원입대와 내선일체 등을 모두 포함할 뿐만 아니라 식민주의를 내면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광수는 스스로가 친일을 했음을 인정했고, 단순히 일제의 외압에 의해 작품 활동을 했다기보다 스스로 내적 논리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친일문학을 창작했다. 평론, 소설, 시, 수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글을 썼을 뿐 아니라, 강연회와 문인협회 조직 등 작품 내적, 외적으로 다양한 친일행위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광수의 친일문학에 대한 연구는 친일행위에 집중한 나머지 문학은 외면하는 양상을 띠어 구체적인 작품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을 논하는데 있어 단순히 친일행위에 집중하여 이를 조명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이 논문에서는 그의 친일문학 형성에 있어서 작가 개인의 창작 욕구에 의한 부분과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에 의한 부분을 함께 살펴보려 하였다. 1910년대와 20년대의 이광수는 정신적 자각에서 기초한 ‘변화’를 꾀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유교를 비롯한 조선의 구습을 비판하고 새로운 지식과 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준비론과 실력양성론을 주장하였다. 이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는 변화를 바탕으로 한 민족성 개조와 실력양성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광수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교육의 중요성이다. 일본의 신지식과 신체제를 조선인에게 교육하는 것, 이광수에게 있어 교육은 일제하 혼란스러운 조선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교육은 조선인을 능히 일본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고, 조선을 일본화(化)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었다. 한편 이광수의 내선일체지향소설의 외부적인 발생요인으로는 국민문학론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이광수의 내선일체논리는 이미 1910년대부터 그 기초가 마련되어 있었고, 1930년대 후반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 중 하나인 국민문학론의 등장과 맞물려 내선일체지향소설로 나타났다. 일본어를 문화어로 규정하는 일본어상용정책을 통해서 문학을 도구로 삼아 일본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여 조선인을 ‘일본적 교양인’으로 양성하는 것이 국민문학의 목적이었다. 2장에서는 이광수의 내선일체지향소설이 이광수의 내적 논리와 일제의 식민지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조선에 대한 여러 정책과 맞물려 이를 홍보하고 선전하는 국민문학의 성격을 뚜렷이 띠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3장에서는 이광수의 내선일체지향소설이 주장하는 바를 살펴보고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광수의 내선일체지향소설이 주장하는 바는 ‘조선인의 일본인화’이며, 이 논문에서는 이를 ‘생활의 황민화’, ‘생활의 임전화’, ‘조선(인)과 일본(인)의 일체화’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민족개조론과 그 궤를 같이 하는 이광수의 내선일체지향소설에는 개조의 대상이 반드시 등장한다. 그 대상은 조선인이며 실제로는 조선 전체를 의미한다. 개조의 방법과 목적은 일본의 앞선 문화, 제도, 사소한 생활양식까지도 모두 이어받아 조선인의 철저한 일본인화를 꾀하는 데 있다. 4장에서는 이광수가 내선일체지향의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 작품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선인(內鮮人)간의 연애와 결혼, 교육을 통한 계몽, 징병제와 참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광수의 작품에서 내선인간의 결혼과 연애는 일본인 남성과 조선인 여성, 또는 조선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의 결합을 통한 總親和가 목적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창씨개명’과 ‘내선결혼’이다. 특히 내선결혼은 이광수가 내선일체지향소설에서 일관되게 나타내고 있는 ‘정(情)을 통한 내선일체’의 방향에도 잘 부합되며, 내부적으로 조선과 일본을 결합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으므로 1940년대에 활발한 국책사업으로 홍보하기도 하였다. 교육은 조선인을 황민화 하는데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광수의 여러 내선일체지향소설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이광수는 훌륭한 교육자 한 사람이 조선인 여럿을 변화, 감화시킬 수 있음을 작품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65378;민족개조론&#65379;에서부터 이어져온 피라미드식 동맹이 조선민족의 개조와 조선인의 변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징병제의 실시는 조선인에 대한 인적 착취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광수의 내선일체지향소설에서 완전한 일본의 국민이 될 수 있는 기회로 포장되었다. 결국 이광수의 내선일체지향소설에 드러난 내선일체의 목적은 ‘조선인의 일본인화’였으며 그 방법론은 ‘정(情)’을 통한 것이었다. 또한 이광수의 ‘내선일체’는 조선인이 일본인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야 하는 것, 조선인이 완전한 일본인이 되는 것이었다. 1910년대 조선의 현실을 비참하게 자각한 이광수에게 있어 일본은 조선의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의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이상향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을 지향하는 내선일체의 기본 논리는 1940년대까지 지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방법론만이 이따금 변화하였을 뿐이다.

      • 친일문학작품 교육방법에 대한 연구 : 서정주의 작품을 중심으로

        남궁경현 동국대학교 2010 국내석사

        RANK : 248687

        This study examines inevitability and the necessity to teach pro-Japanese literature focusing on its insufficiency in real classroom of Korean language education. Pro-Japanese literature which clearly exists in part of Korean history should be included as literature materials to widen and deepen point of view on Japanese ruling era. That is to get out of narrow view adapting only resistance poems as literature works in Japanese ruling era until now, and provide students opportunity to view the time more objectively by themselves. Also, it keeps similar context with the student centered teaching and learning approach, which helps students contemplate more by themselves about that age. After observing the necessity and inevitability of pro-Japanese literature, following steps will be conducted. In chapter 2, after analyzing how the literature presented in current curriculum, the kind of work presented in a literature textbook is inspected. It is to confirm whether the textbooks are fulfilling its roles properly, and also through the procedure more obvious evidence is complemented to support the claim for need of including pro-Japanese literature as an educational material. In chapter 3, it is also studied that how pro-Japanese literature can be comprised in literature curriculum to build the basic form of measure for its settlement in literature curriculum. As a result of research, it is confirmed that pro-Japanese literature can be presented in the domain of ‘the characteristics and flow of Korean literature’ as part of literature history and ‘valuation and attitude of literature’ as part of internalizing of students. In chapter 4, detailed teaching method for pro-Japanese literature is suggested. Firstly, analyzing the approach to present pro-Japanese literature objective and unbiased view is suggested as an alternative. After that, specific teaching-learning plan is discussed - Seo Jeong-Ju’s 「Self-portrait」, and 「Ojang masseui songga」is selected as educational materials, and lesson plan is suggested. Comparing the works of the major work of Seo Jeong-Ju, 「Self-portrait」 and the representative work of pro-Japanese, 「Ojangmasseuisongga」, it aims to develop wise view which sees Korea's representative poets in Japanese ruling era unbiased way. Teaching activity is planed based on reception theory to illicit student’s comprehensive valuation and internalizing process. By choosing pro-Japanese literature as an educational material, the basic foundation can be built to rich educational materials and form objective view on Japanese ruling era. At last, it achieves the object of student centered approach providing opportunity to think about the issues related to 'pro Japanese' and 'Japanese Ruling Era'. I expect their self contemplation will be extended to the direction of overcoming Japan through introspection. I wish it can contribute to be free from the colonial shade switching educational paradigm including literature education.

      • 수용이론에 근거한 ?문학장 교육? 방안 연구 :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을 중심으로

        최유정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201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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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문학교육에 있어 수용이론적 접근·적용이 이전의 신비평에 기댄 문학교육 관행과 문학 교과서·지식 만들기에 관한 문단의 권위 독점 및 검열, 문화제도로서 학교와 교실을 둘러싼 정치행정 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원론적·광의적인 데 그쳐 ‘독자로서 학생’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미진했던 점을 극복하고자 수용이론에 근거한 ‘문학장 교육’을 제안한다. 본고가 제시하는 문학장 교육에서 ‘문학장’은 문학이 사회구성원들 사이 ‘상징권력 획득을 향한 상호 인정투쟁’과 ‘예술적 신용’에 대한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비로소 독자들에게 읽히고, 수용되는 현실을 적시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수용이론적 문학교육이 원론적·광의적이었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유효한 개념이다. 이에 본 연구는 우리 문학사에서 문학적 가치가 높은 동시에 현재 문학장에서도 계속해 문제적 작품으로 읽히고 있는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을 중심으로 한 문학장 교육 방안을 제시해 본다. 교과 관련 텍스트로서 <민족의 죄인>의 적합성을 살피고자 우선 수용이론가 볼프강 이저(Wolfgang Iser)의 사회적 약호와 문학적 약호, 빈 자리의 이론적 준거틀에 근거해 미시적으로 분석하였고, 그 다음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Hans Robert Jauss)의 기대 지평과 역사적 지평, 지평의 전환의 이론적 준거틀에 근거해 거시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민족의 죄인>의 문학장 교육을 위한 발문을 정리한 뒤 발문을 활용한 프로젝트 학습 방안을 제시한 바, 이때 프로젝트 학습은 개별 프로젝트와 역할토론·협동 프로젝트로 나뉜다. 개별 프로젝트 단계에서 웹 기반 독서 및 서평 쓰기의 공유와 역할토론을 위한 준비단계로서의 예비토론을, 이후 역할토론·협동 프로젝트 단계에서는 역할토론과 본토론, 서평 다시 쓰기의 순으로 학습 방안을 강구해 보았다. 본고는 이러한 수용이론에 근거한 ‘문학장 교육’ 방안 연구를 통하여 학생들의 ‘독자로서의 자기 체험’을 넘어 궁극적으로 문학장에 대하여 체감하고, 참여하며 문학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다채로운 문학 경험이 생애 지속하기를 목표로 하였다.

      • 일제 말기 이효석 소설 연구

        조성경 영남대학교 대학원 2010 국내석사

        RANK : 248639

        본 연구는 이효석이 일제 말기에 발표한 일본어로 쓴 작품을 중심으로 엿볼 수 있는 문학적 경향과 양상을 살펴보고자 했다. 일제 말기라는 제한적인 창작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국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 이전 시기와 같이 자유로운 문학활동은 보장되지 않았다. 일제 말기에 접어든 후 이효석에게 발견되는 변화는 일제의 국책 이데올로기로 말미암아 작품에서 보여준 문학적 경향의 변화이다. 조선어로 창작하면서 동시에 일본어로도 창작한 이중어 소설 작품의 경향을 본고에서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일제의 내지인과 조선인의 대표적인 동화 정책인 ‘내선일체’ 정책 노선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두 번째는 ‘조선적인 것’에 대해 이효석의 심미적 취향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세 번째는 당시 일제 정책과 관련한 ‘국민문학’과 관련된 이효석의 작품과 소설관을 언급하였다. 이효석의 전체적인 삶을 조망하였을 때 그의 문학 세계는 여러 가지 성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일제 말기 그의 문학적 경향을 비추어 보았을 때 ‘탈이데올로기’적 성향이 다분했다는 것과 제한적인 소재와 주제로 창작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에 이효석의 심미적 취향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심미적 취향은 일제 말기에 ‘조선적인 것’ 또는 ‘향토적인 것’과 맞물려 일제가 의도하고자 하였던 지배 담론을 역으로 뒤집어 놓는 효과를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이효석의 ‘국민문학론’을 생각해 본다면 세계적 차원에서의 지방 문학으로서 조망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The purpose of this dissertation is to examine literary tendency and aspects in Lee Hyo-seok’s works which were written in Japanese in the last period of Japanese imperialism. The writers under the special internal political circumstances in the last period of Japanese imperialism could not help writing with limited literary creation. Therefore It was clear that Lee Hyo-seok was not guaranteed the freedom of literary activities as of old. The literary changes discovered in Lee Hyo-seok since the last period of japanese imperialism was due to the ideology of the national policy by the Japanese imperialism. The three characteristics of his bilingual novels written both Korean and Japanese are as follows. First, the dissertation examined his works which included the policy of 'Japan and Korea are one', typical assimilation policy between Japanese people dwelling in Joseon and the people of Joseon. Second, the dissertation inspected closely Lee Hyo-seok's aesthetic tastes about the identity of Joseon, Third, the dissertation contained Lee Hyo-seok's viewpoint of novels in light of national literature which was connected to Japanese imperialism. Surveying Lee Hyo-seok's whole life, his literary world can be divided into several aspects. He tried to escape from ideology in the last period of Japanese imperialism, and distinct leaning toward aestheticism was shown greatly in his works with limited materials and subjects of that time. He mixed things Joseon with ‘local color’ using his aesthetic tastes in the last period of Japanese imperialism and overturned dominating discourse and obtained the desired results. And also the Lee Hyo-seok's theory of ‘national literature’ can be discussed as local literature as a world level.

      • 1930년대 전후 문예통제와 대응 양상 연구

        우시지마 요시미 선문대학교 일반대학원 2024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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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전후 문예통제와 대응 양상 연구 선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우시지마 요시미 지도교수 : 문한별 이 연구는 1930년대 전후의 문예통제와 이에 대응하는 문인들의 양상을 살 폈다. 1930년대 일제가 중국에 대한 침략을 진행하는 가운데, 조선은 대륙병참 기지로서의 역할을 짊어지게 되었다. 총독부는 검열과 취체를 강화했고, 문인들 은 합법지에 글을 싣기 위해 검열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첫째, 1929년에 결성된 조선가요협회에 관해서 그 노래에 담긴 민족주의적 요 소에 대해 살폈다. 이는 문인들과 음악인들이 협력하여 노래를 통해 대중계몽을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김동환, 주요한, 이광수 등의 문인들이 참여했다. 문인들 이 이러한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민족주의적 발언을 직접적으로 할 수 없는 상 황에서 노래의 은유성을 이용하기 위함이고, 또 조선의 문맹률을 고려했던 결과 였다. 문인들의 이러한 노력은 검열로 인해 차단되었다. 1937년 조선가요협회 는 학무국에 의해 조선문예회로 개편되어 국책가요를 만들게 되었다. 둘째, 1935년 무렵, 문예통제에 반대하는 신문기사가 검열을 회피한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문예통제에 관한 비판과 옹호가 특집 기사를 통해 신문지면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편 조선에서는 문예통제에 관한 기사는 소극적으로 서술되었다. 조선에 거주하지 않았던 김두용을 제외하 고, 문인들은 직접적인 비판을 피하면서 문예통제에 관련된 글을 썼다. 채만식 은 스스로를 힘없는 존재로 만들어 자기풍자적으로 글을 썼고, 정인섭은 바르뷔 스를 기리는 글을 빙자하며 문예간담회와 어용예술정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밖에 익명으로 서술된 문예란 칼럼은 유머러스한 말투로 문제를 짚으면서도 전 체적으로 무겁고 심각한 인상을 주지 않은 글쓰기를 했다. 셋째, 1930년대에 거론된 풍자문학론을 검열 우회의 관점에서 검토했다. 유 진오는 1932년 조선사회사정연구소 사건으로 피검된 이후 기존의 소설 창작을 접고 풍자희곡을 시도했다. 유진오는 정면으로부터 비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측 면으로부터 비판하려는 했다. 그의 시도는 검열에 의해 핵심부분이 삭제됨으로 써 현실비판성을 잃고 말았다. 한편 최재서는 유진오와 마찬가지로 측면으로 공격할 수 있는 풍자문학의 유 용성을 말했다. 최재서가 문단 타개책으로 제시한 것은 사회나 제도에 초점을 맞춘 사회풍자나 정치풍자가 아니라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자기풍자였다. 이와 함께 최재서는 체제를 수용하지도 공격하지도 않은 중간적 위치에 서는 비평적 글쓰기를 제시했다. 그가 겉에 드러나지 않은 ‘신념’을 강조한 이유는 이와 같 은 글쓰기가 지극히 소극적이고 도피적이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풍자문학론은 소련의 이론을 수입한 프로진영에서도 거론되었지만, 그 처럼 리얼리즘을 중요시한 방법론은 검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 문인들의 검열을 피하는 글쓰기는 지속적으로 검열관에 의해 저지 되었다. 검열을 담당했던 경무국 도서과는 문인들의 우회적 글쓰기를 포착하여 이에 대응했다. 본고는 경무국 도서과가 작성한 검열 자료를 검토함으로서 그 양상을 제시했다. 1940년대 문예통제는 일제가 기획한 선전내용과 소재를 문인들에게 제시하여 창작을 종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최재서는 1935년의 「풍자문학론」에서 ‘비평적 글쓰기’를 주창했다. ‘비평적 글쓰기’에서 글쓴이는 초월적 위치에 서서 당대를 객관적으로 비평했다. 1940년대 최재서는 국책협력을 위해 소설을 썼 다. 이때 1930년대에 비평을 위해서 존재했던 ‘초월적 위치’는 일제의 이론을 정당화하는 ‘역사가’를 위해 존재했다. 최재서는 당대를 역사의 ‘전환기’로 보았 다. 역사적 시점에서 볼 때, 현재적인 분노나 고통은 합리화되어 가볍게 여겨 진다. 최재서의 「보도연습반」과 「민족의 결혼」에는 초월적 위치에 서있는 ‘역사 가’의 시선이 있다. 동시에 ‘역사가’와 섞일 수 없는 분열된 또 다른 자아도 존 재했다. 한편 이광수는 1920년대부터 합법적 글쓰기를 주창해왔다. 그는 “조선인에게 이익을 주는 작품”을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글쓰기는 “검열관이 허할 한도” 로 제한되었다. 1940년대 이광수가 창작한 「원효대사」와 「元述の出征」은 모두 신라의 화랑을 소재로 삼았다. 일제는 징병제 선전을 위해 신라의 상무정신을 일본의 무사도로 둔갑했고 화랑을 소재로 한 선전 작품을 만들게 했다. 이광수 는 「원효대사」에서 자신의 변절을 원효의 파계에 빗대어 정당화했다. 한편 이광 수는 「원술의 출정」의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일본적인 정형의 틀에 맞추어서 표 현했다.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인간적 감정보다 국가를 우선시한다. 이광수 는 일본적으로 표현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일제의 사상과 행동양식의 틀 안에 서 행동해야 하는 당대 조선인들을 풍자했다. 이광수는 일제가 제시한 기획대로 작품을 썼지만 그 작품은 해석에 따라서는 냉소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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