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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말기 친일문학의 내적논리와 회고의 전략 : 이광수, 김동인, 채만식을 중심으로

        박수빈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9 국내박사

        RANK : 247807

        본 논문에서는 일제말기(1937년~1945년) 친일문학과 해방기 회고의 전략적 성격을 문인들의 ‘자기규정’과 ‘식민지적 정체성’을 통해 살펴보았다. 일제말기 친일문인들은 대중적 지도자나 사상가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제국일본과 조선 사이의 ‘번역자’로 살아왔다. 그러나 일제의 외부적 압력과 문인의 내부적 혼란이 극대화된 시점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해방은 이들을 순식간에 민족의 죄인이자 평범한 인민의 한 사람으로 끌어내렸다. 해방공간에서 친일문인들은 일제말기 제국일본의 식민지배이데올로기를 조선(인)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이상으로,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자기변호의 텍스트를 생산해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친일문인들의 해방기 ‘회고’는 문인의 내적 욕망과 외부적 압력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는 점, 시대와 이데올로기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문학적, 사회적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행위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일제말기의 ‘친일문학’과 매우 닮아있다. 본 논문의 기본적인 시각은 제국주의와 주체의 관계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탈식민주의적 담론의 자장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선행연구와 차별을 두기 위해 일제말기 친일문학에 영향을 미친 외부적 요인보다는 문인 개개인의 사상적 배경과 문학론, 그들의 식민지적 주체형성 과정에 주목함으로써, 친일문학이 그저 외압에 의한 몰개성한 선전문학이 아님을 규명하려 했다. 이를 위해 각기 다른 사상적 배경과 문학론, 식민지적 주체성을 형성하면서 일제하에서나 해방공간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광수, 김동인, 채만식을 연구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이 세 명의 문인을 통해 친일문학이 일제의 식민지배이데올로기를 문인 각자의 맥락에서 내면화한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취하는 서술전략과 서술방식의 차이점에 주목하였다. 또한 친일의 범위와 의미를 일제강점기에 국한시키지 않고, 이를 해방 후 회고와 연결시킴으로써 친일의 시작과 완결을 철저히 작가 본인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서론에서는 친일문학에 대한 기존 연구사가 갖고 있던 견고한 민족주의적 시각에 대해 정리하고, 이를 돌파하려는 최근 연구 성과에 대해 살펴보았다. 연구사 검토를 통해 최근 친일문학 연구에서 주목하는 ‘식민지적 주체’의 문제를 본 논문의 문제의식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또한 친일문학(연구)의 정치적 성격으로 인해 연구자들이 경직된 태도와 시각을 갖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친일문학 연구의 난점과 방법론의 문제를 정리하였다. Ⅱ장에서는 일제말기 조선문단의 상황과 문인협회의 존재의의를 바탕으로, 세 문인의 ‘친일논리’가 구축되는 과정을 그들의 비평(적)텍스트를 통해 살펴보았다. 일제말기 조선의 문인들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아시아’ 개념 속에서 근대와 동양을 초극하고 서구에 대항할 가능성을 찾았다. 문인협회는 문인들의 친일행위를 집단화・조직화하고, 일본으로부터 ‘국민문학론’을 수용하는 등 새로운 문학의 방향을 모색했지만 문학론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식민지적 주체의 사상적 균열과 분열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였다.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위한 근간인 ‘민족주의’가 친일로 흐르게 되는 양상은 일견 아이러니로 보이지만, 이광수를 통해 보면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는 결코 상반된 개념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의 민족주의는 ‘자강론’, ‘실력양성론’ 등과 결합하면서 자연스럽게 동화주의(assimilation)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김동인의 친일논리는 그의 민족의식의 부재를 잘 보여준다. 그는 일본이 내세우는 식민지배이데올로기에 현혹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내면화하거나 자기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김동인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조선문단의 대표적 친일문인으로 보이기를 원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일제하에서 문인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일찍이 문학의 자율성에 대한 철저한 옹호자였던 김동인은 문학이 가장 중요한 ‘도구’일 수 있다는 자가당착적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일제말기 김동인에게는 주체성이 결여된 식민지 지식인의 수동적인 모습과 식민지배 체제 내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자하는 피식민자의 욕망이 동시에 발견된다. 반면 무력한 니힐리스트이자 체제순응자인 채만식의 사회주의는 ‘전체주의’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일제하 신체제로 빨려 들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채만식의 친일논리는 이광수에 대한 모방으로, 친일소설의 구상은 히노 아시헤이의 영향 하에서 그 기반을 마련하지만, 이광수와 달리 채만식은 조선(인)을 초극하여 사고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조선과 조선문학, 그리고 조선인으로서 자신을 모두 미달된 존재로 규정했던 채만식은 현실적 제조건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시대에 순응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길을 정한다. Ⅲ장에서는 일제말기 문인에게 내면화된 식민지배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인 소설텍스트를 분석해보았다. 특히 이 장에서는 해방 후 삭제된 서사를 복원하고, 지금까지 연구대상이 되지 못했던 친일소설텍스트들을 새롭게 의미화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세 문인의 ‘개성’은 문학작품의 제재(題材)와 장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광수의 친일소설은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제재를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조선인에게는 충(忠)을, 일본인에게는 성(誠)의 정신을 주입시키려 함으로써 계몽의 이중적 의도를 보인다. 완전한 내선일체의 완성은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광수 특유의 도식적인 인물구도는 ‘내지인-조선인’ 사이에서 효과적으로 구현되어 ‘정신적 내선일체’를 완성하고, 원술을 동원한 군인정신의 강조는 징병제 실시를 통한 ‘실질적 내선일체’의 기획을 뒷받침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미완으로 남은 일군의 소설들에서 이광수는 내선일체론과 국민문학론의 허상을 스스로 폭로하고, 불완전한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동인의 친일소설은 모두 백제, 일본,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이다. 김동인의 친일역사소설은 텍스트 자체만으로 볼 때에는 친일적 요소를 발견하기 어렵지만, 컨텍스트와 함께 읽으면 그 안에 숨겨진 식민사관과 텍스트의 진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도의 전략적 글쓰기라 할 수 있다. 그는 서구를 통해 동양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일본중심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뒷받침한다. 아편전쟁을 제재로 삼은 두 편의 역사소설에서 김동인은 중국의 치욕적인 역사를 통해 反서구의 정서를 정당화하고, 친중적인 서술태도로 제국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뒷받침한다. 일본정신을 반영한 예술가소설에서는 국책문학 창작에 대한 일본인 문사의 고민을 담았지만, 그 함의는 조선 문인의 일본어 글쓰기에 대한 고민으로 읽는 것이 옳다. 일제의 고대사복원 계획과 발맞춘 친일역사소설에서는 일본역사관을 바탕으로 백제와 일본의 역사적 친연성을 강조하고, 과거 백제가 일본의 도움으로 당군을 물리친 것처럼 조선이 일본을 도와 중국에 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채만식의 친일소설은 르포문학의 형태를 띤 전쟁소설과 후방의 역할을 강조하는 총후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접 전쟁에 참여하는 용맹한 일본군, 후방에서 이를 적극 지원하는 이상적 ‘총후부인’과 ‘군국의 어머니’를 통해 채만식의 소설은 군국주의적 전체주의를 선전한다. 일제말기 채만식의 소설 가운데 장편 『아름다운 새벽』은 해방 후 단행본으로 엮이는 과정에서 친일적 요소가 의도적으로 삭제되면서 해석상의 혼란을 야기했다. 본고에서는 삭제된 서사를 복원하고, 채만식 친일논리와 해방기의 정치성을 보여주는 텍스트로 의미화 하였다. Ⅳ장에서는 해방공간에서 쓰인 세 문인의 회고를 대상으로 친일문인들의 ‘자기규정’과 반성의 ‘전략’적 측면을 연관시켜 살펴보았다. 특히 복잡한 수사와 정치적 맥락 사이에 숨겨진 텍스트의 ‘진의’를 찾고자 했다. 이광수는 인생의 모든 기간을 대상으로 하는 ‘자서전’이 아님에도 친일협력의 기간을 ‘일제말기’에 한정하고, 그 의미를 희석시키기 위해 자서전 형식의 회고를 썼다. 자의적으로 서술시간을 조절함으로써 ‘민족주의자’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반면 김동인은 이광수를 ‘민족주의를 내세워 자발적으로 친일한 민족적 지도자’로, 자신을 ‘일생 조선문 소설쓰기에만 몰두한 순수하고 무력한 소설가’로 규정함으로써 친일의 그림자를 이광수에게 덧씌우고 자신은 그 비판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특히 그는 자신의 문학적 공로를 과장되게 제시하고, 일제하와 미군정의 ‘지배/점령’을 동일하게 의미화 함으로써 자신을 철저한 피해자에 위치시킨다. 채만식은 스스로를 민족의 ‘죄인’으로 규정하지만, 그의 회고에는 죄의식과 억울함이 동시에 나타난다. 그의 회고에서는 반복적으로 죄에 대한 인정과 동기에 대한 부정이 중첩되어 서술된다. 자신의 친일을 인정하면서도, 본심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 하는 채만식의 회고는 본심과 양심 사이의 팽팽한 힘겨루기를 보여준다. 해방기 채만식의 인식은 ‘조선인 대부분이 민족의 죄인’이라는 것이다. 자기풍자와 자기폭로를 통해 죄의식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그런 면에서 채만식의 회고는 친일에 대한 반성적 텍스트가 아닌 자기변호의 텍스트임이 분명해진다. 문인들의 친일의 동기와 경로, 해방 후 보여준 자기비판과 반성까지 검토한 후 드러나는 것은 식민지적 주체의 모순과 분열의 복잡한 양상이다. 친일문학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텍스트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학’이란 한 인간이 세계를 보는 관점이자, 그 자신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친일문학은 국책을 위한 전략적 글쓰기인 동시에 한 작가의 문학적 지향과 식민지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대상이다. 친일문인은 식민주의 내부의 구조적인 불균등성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정작 자신들의 존재가 이 체제를 상징한다는 것, 나아가 체제를 더 공고히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 논문은 세 문인의 일제말기와 해방기의 텍스트를 통해 식민지적 주체의 형성과 분열, 일제식민지배이데올로기의 환상과 모순, 친일문학에 내재된 피식민자의 욕망과 주체의 한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해방 후에도 여전히 세계의 비주체적 존재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서 ‘식민지 근대성’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이광수와 노신의 근대의식과 문학관에 대한 비교연구

        송양 중부대학교 일반대학원 2018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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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중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의 선진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은 민중의 각성이다. 양국의 대표적 작가 이광수와 노신은 문학을 통해 민족 계몽운동에 주력하였다. 두 작가는 비판의식으로 민족계몽을 작품에 투영시키며 인도주의를 고양시켰다. 본 논문은 두 작가의 문학에 나타난 근대의식과 문학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고찰하여 그 특질을 밝히고자 한다. 제1장 서론에서는 연구목적, 선행연구에 관한 검토 및 연구방법을 살펴보았다. 본 논문의 연구목적은 첫째는 두 작가의 근대사상의 수용, 현실 비판의식, 계몽사상 등의 비교를 통해 나타난 공통된 인도주의를 고찰하겠다. 둘째는 두 작가의 문학본질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검토할 것이다. 연구방법은 전체적으로 프랑스학파의 ‘영향관계이론’을 중심으로 두 작가에 대한 비교연구 이며, 두 작가의 일본유학, 민족계몽 등 같은 중간교량역할을 통한 미국학파의 ‘평행이론’을 적용할 것이다. 제2장에서는 이광수와 노신의 생애와, 특히 서구문학과 근대사상의 수용양상을 통해 두 작가의 문학과 근대사상의 근대의식을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고찰할 것이다. 특히 서구근대의 진화론사상이 두 작가가 어떻게 나라상황을 맞춰 수용하는 과정, 문학의 자유, 평등, 박애사상이 두 작가에게 끼친 영향 과정을 고찰할 것이다. 제3장에서는 두 작가의 근대의식 중의 사회비판과 계몽의식 사상을 고찰해보았다. 이광수의<민족개조론>과 노신의<문화편지론>를 통해 두 작가의 사회개혁과 민족성개조에 대한 태도를 규명하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고찰할 것이다. 제4장에서 두 작가가 가지고 있는 ‘계몽주의, 현실주의 문학’의 비교를 통해 두 작가의 문학관에서 나타난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한 후, 제5장에서는 구체적으로 두 작가의 소설에 등장한 대표적인 지식인물과 여성인물을 비교했다. 작품의 품격, 주제, 인물성격 등 나눠서 분석했다. 이를 통해 두 작가의 사회개혁과 민주계몽에 관한 태도를 밝힐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반 문학적 비교방법으로 두 작가의 근대성의 표출 양상을 정리했고 두 작가의 문학과 사상성을 살펴보았다. Korea and China accepted many of the advanced Western thoughts in the process of moving to modern times. At that time, the most important task was populace awakening. Lee Gwang-soo and Lu xun, the two represent writers of Korea and China did a lot of literary activities to enlighten their respective countries. Surprisingly, in their social criticism and national enlightenment activities, the two writers showed the same humanitarianism. This research aims to examine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wo author’s modern rituals and literary nature that is expressed in their preserved writings. In Chapter 1, i.e. the introduction part, the purpose of this study, the discussion on precedent studies, and the methodology of analysis were revealed. This paper has two core purposes. Firstly, to present the same humanitarianism shared between two authors, a comparison of their acceptance of modern thoughts, the consciousness of reality criticism, and their shared enlightenments. Secondly, to reexamine the evaluation of the two writers' literary nature that appeared in the precedent studies in a new light. The study method is using the French school's Influence Relation Theory to compare their literatures, and adopting the American school's Parallel Theory through their roles as a bridge, such as studying in Japan and national enlightenment. In Chapter 2, we compared Lee Gwang-soo and Lu xun's life, and explored how the two writers' modern rituals of literature and modern thought were achieved, through the acceptance of western literature and modern ideas. The process, how the two writers fitted in the situation of their country and accepted the modern western thought of evolution and how the freedom, equality, philanthropy of Tolstoy's literature influenced the two writers were particularly examined. In Chapter 3, social criticism and enlightened thought among the two writers' modern rituals were considered. From Lee Gwang-soo’s "National reconstruction theory" and Lu xun's "The Theory of Cultural Bias", we examined the two writers' attitudes toward social reform and ethnic modification, as well as their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In Chapter 4, by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two writers' literary concepts were analyzed by comparing the enlightenment and realism literature that they wrote. In Chapter 5, the educated characters and females that appeared in the two writers' novels were concretely compared. And this part was analyzed from the style of the work, themes, characters' personality. Through this, the two writers' attitudes toward social reform and democratic enlightenment were portrayed. At last, with the general literary comparison means, the expressions of the two writers' modernization were summarized, and their literary and ideological aspects were evaluated. Key word: Yi Kwang-soo, Lu xun, modern ritual, enlightened thought, literary nature, novel character, humanitarianism

      • 이광수 문학에 나타난 ‘조선’의 의미

        정성훈 서울대학교 대학원 202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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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1930년대 초반까지의 춘원 이광수(李光洙, 1892-1950) 문학에 나타나는 ‘조선(朝鮮)’의 의미 변화 양상을 분석하였다. 그간의 이광수 연구에서 ‘조선’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추구된 관념적 가치, 요컨대 ‘민족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오고는 했다. 그러나 이광수 문학에 나타나는 조선은 그가 그 속에서 추구하고자 한 ‘장소/자리(place)’의 문제, 즉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를 규명하는 것은 애시당초 이광수에게 왜 그토록 ‘조선’이 문제되었는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르게 주어진 조건들이 이광수로 하여금 끊임없이 조선을 새롭게 의미화하게 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광수가 모색했던 이상적인 장소들이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 이에 따라 1921년 상하이 임시정부로부터의 ‘귀국’을 기점으로 그의 문학을 대별하였다. 2장에서는 1919년 전까지 방랑과 일본 유학을 비롯한 국외 체류 기간에 이광수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 나갔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의 이광수는 ‘문명’을 준거점으로 조선을 평가하면서도, 그 자신은 조선 바깥에서 조선을 바라보고자 했다. 「상해서」나 「해삼위로서」에는 국제 정세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이 그러한 세계 속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유자(遊者)’로서의 자의식이 발견된다. 이 ‘유자’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조선은 계몽의 대상으로 위치지어져 갔고, 이때 아직 문명에 미달된 조선이 도달해야 할 모델로 서양이 상정되었다. 「동경잡신」, 「용동」, 「농촌계발」은 모두 ‘유학생’의 입장에서 조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거나’, 혹은 미래의 조선이 지녀야 할 가치를 ‘그려내는’ 데 집중한 텍스트이다. 이는 조선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 확보가 조선의 현실을 하나의 이미지로 인식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어디까지나 그가 조선 바깥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에 일시 귀국하여 남부 지방을 여행하고 쓴 「오도답파여행」이나, 조선의 현실을 구체적인 배경으로 그려내야 했던 『무정』에서는 오히려 그러한 의도를 넘어서는 조선의 복합적인 의미가 나타난다. 가령 『무정』에서는 근대적인 시공간 질서에 편입되지 않은 칠성문 밖의 공간이 제시되거나, 문명을 척도로 하는 직선적 시간축에 배치되기 어려운 황주라는 공간이 제시된다. 한편 「오도답파여행」에서는 경주와 같이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소들에서 과거를 상상하거나 향토적인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의 조선 체험은 상상의 조선과 실제 조선 사이의 차이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는데, 이는 조선을 하나의 심상지리로 환원하여 이해하는 방식을 의문시하고 유학생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3장에서는 상하이 임시정부를 거쳐 조선으로 귀국한 이후까지를 살펴보았다. 「방황」에서 나타나는 ‘조선’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고뇌는 귀국 전후까지 계속된다. 특히 귀국 당시 이광수는 변절자로 이해되어 조선에서 자신의 자리를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따라서 ‘민족’을 매개로 조선의 민중들과 관계맺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는 그가 조선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환대받지 못함으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획득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이광수가 다시 조선에서 문필활동 혹은 사회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선행에 이유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장소/자리’를 얻기 위해 귀국의 의도에 무엇이든 기입해야 했던 이러한 상황에서, 이광수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해결책을 내세운다. 하나는, 기존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조선에 대한 심상지리를 폐기하고 조선의 민중들 속으로 적극 투신하는 것이었다. 「감사와 사죄」와 「어떤 아침」에서 주로 나타나는 이 방식은 민중과 자신을 관계짓기 위한 새로운 논리를 요구했는데, 여기서 금강산이라는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의 경험이 하나의 돌파구가 된다(『금강산유기』). 금강산에서 이광수는 개체인 ‘나’보다 더 큰 우주의 존재를 경험함으로써 민족이라는 특수가 아니라 ‘인류’라는 보편을 매개하여 조선 민중과 관계맺을 수 있게 되고, 이러한 사유는 『재생』의 금곡과 금강산이라는 두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다른 하나는, 자신과 조선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고향’이라는 연결관계를 강화하고 그럼으로써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가실」과 「허생전」에서 발견되었던 이 방식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공고히 해야 했던 1930년대의 상황 속에서 다시 극대화된다. 『흙』에 나타난 조선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이를 잘 보여주는데, 이러한 방식은 주인공인 허숭이 살여울에 정착하게끔 하는 손쉬운 방법이면서도 조선이라는 공간을 ‘고향’이라는 하나의 단일한 이미지로 환원해 버릴 여지가 있다. 조선을 ‘과거의 고향’이라는 호모토피아적 성격이 강한 공간으로 그려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방법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1920년대 이후 이광수 문학에서 새롭게 발견된 장소들은 그가 조선에서 자신의 ‘장소/자리’를 얻기 위한 모색의 결과물이었다.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이광수는 조선이라는 공간의 체험을 통해 자신과 조선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어나갔으며, 반대로 그러한 경험이 텍스트화되면서 조선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광수의 문학에서 찾을 수 있는 ‘조선’의 다양한 의미는 단순히 ‘조선’을 ‘민족’ 혹은 민족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독해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또한 이광수의 귀국을 단순히 ‘안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는 한 작가의 문학을 산출하는 기반 혹은 조건으로서 ‘조선’이라는 공간이 개개인에게 일정하게 혹은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관점은 식민지기 조선 안팎에서 다양한 공간 경험을 지녔던 문인들에게 있어 ‘조선’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本稿は、李光洙の1930年代初期までの文学における「朝鮮」の意味の変化を分析する。今までの李光洙研究で「朝鮮」は、特定の目的を果たすために追求される観念的な価値、いわば「民族的なもの」として理解されてきた。しかし、李光洙文学における朝鮮は、李光洙がその中で追求した「場所/居場所」(place)の問題と結びついている。この質問は、そもそも李光洙にはどうして「朝鮮」が問題だったのかを問うことでもある。従って本稿は、時期ごとに異る条件から李光洙が朝鮮を繰り返し再意味化しつづけてきたということを、また、その中で李光洙が摸索した理想の場所が李光洙文学を理解するために重要であることを解き明かそうとする。このような観点から本稿は、上海臨時政府からの「帰国」(1921年)を中心に李光洙の文学を大きく分ける。 第2章では、李光洙が放浪や日本留学などの国外在留の間、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どのように定立していったかを確認する。この時期の李光洙は、「文明」を基準にして朝鮮を評価しつつも、自分自身は朝鮮の「外」から朝鮮を眺めようとした。「上海から」や「海蔘威から」では、国際情勢を客観的に把握しているようだが、実際に自分はそのような国際社会に参加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遊者」としての自意識が見られる。この「遊者」の状態を切り抜けるなかで、朝鮮は啓蒙の対象として位置づけられるようになる。また西洋は、文明に達さなかった朝鮮の到達するべきのモデルとして想定された。「東京雑信」、「龍洞」、「農村啓発」などのテキストで李光洙は「留学生」の立場から朝鮮の現実を客観的に「眺めたり」、もしくは未来の朝鮮の持つべき価値を「描き出す」ことに集中する。朝鮮との物理的・心理的な距離の確保が朝鮮の現実を一つのイメージとして認識することを容易にしたのである。 しかし、このような認識はあくまでも李光洙が朝鮮の「外」にいる時にだけ可能なものであった。従って、朝鮮に一時帰国して朝鮮の南部地方を旅行して書いた「五道踏破旅行」や、朝鮮の現実を具体的な背景とする小説『無情』では、むしろそのような意図を超えるような、複合的な朝鮮の意味を見い出すことができる。たとえば『無情』では、近代的な時空間の秩序に編入されていない七星門の外や、直線の時間軸の上に配置されにくい黃州という空間が描かれる。一方、「五道踏破旅行」での李光洙は、慶州などの、過去の物語が込められている場所で過去を想像したり、郷土という価値を見つけたりする。朝鮮の体験は想像の中の朝鮮と実際の朝鮮の差を確認することでもあったが、このような経験は朝鮮を一つの心象地理として理解することを疑問にして、それまで持ち続けてきた留学生としての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見直す切っ掛けとなる。 第3章では、上海臨時政府を経て朝鮮に帰国した後までを分析する。「彷徨」に示されている、「朝鮮」と自分との関係についての苦悩は帰国前後まで続く。特に、帰国当時の李光洙は「変節者」とみなされて、朝鮮の中で自分の居場所をみつけにくい状況であって、「民族」を媒介して朝鮮の民衆と関係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のような状況は、李光洙が朝鮮という共同体の構成員として歓待を受けられず、自分の「場所」が得られなかったことを意味する。李光洙がもう一度朝鮮で文筆活動に携わったり社会運動をしたりするためには、自分の帰国に理由を与える必要があった。自分の「場所/居場所」を持つために、帰国の意図という空欄にどの答案でも記入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この状況で、李光洙は二つの解決策を立てる。 一つは、それまで自分が持っていた朝鮮の「心象地理」を棄て、朝鮮の民衆の中に積極的に身を投げることであった。「感謝と謝罪」や「ある朝」で示されているように、この案は民衆と自分とを結びつく新しい論理を要求するが、ここで金剛山というヘテロトピアの経験が突破口となる。個体の「私」よりもっと大きい「宇宙」を経験することによって、李光洙は民族という特殊ではなく、「人類」という普遍をてがかりに民衆との関係がつけられるようになる。このような考え方が金谷と金剛山という『再生』の二つの空間に形象化される。 もう一つは、自分と朝鮮との間にすでに存在していた「故郷」というつながりを強化し、それによって朝鮮人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再確認することであった。「嘉實」や「許生傳」から見い出せるこの仕方は、民族主義者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再び固め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1930年代の状況の中で極大化する。これは『土(흙)』で朝鮮へのノスタルジアという形に現れるが、このようなノスタルジアは主人公の許崇をサルヨウル(살여울)に定着させるたやすい方法である同時に、朝鮮という空間の複合性を「故郷」という単一のイメージに還元させる余地がある。言い換えると、「過去の故郷」というホモトピア的性格の強い空間として朝鮮を描くことによって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固めることであった。 結論として、1920年代からの李光洙文学の中に新しく描かれ始めた場所は、李光洙が朝鮮での自分の「場所/居場所」を得るための摸索の結果だったと言えよう。変っていく条件の中で、李光洙は朝鮮という空間の体験を通して、自分と朝鮮との間の距離を調整したり、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変えたりした。また逆に、そのような経験がテキスト化することによって朝鮮には新しい意味が与えられた。李光洙の文学で見つけられる「朝鮮」の様々な意味は、「朝鮮」を単なる「民族」に置き換えて読めることが不可能であること、また、李光洙の帰国を単なる「安定」と理解することが不可能であることを証する。さらにこれは、ある作家の文学を産む土台や条件としての「朝鮮」という空間が、各々に同じく与えられてはいなかったということをも示唆する。このような観点は、植民地朝鮮の内外で様々な空間を経験した文人たちにとって「朝鮮」で文学することが何を意味するかを解き明かす研究に繋がるべきである。

      • 이광수의 종교사상 : 그의 전기(傳記)에 나타난 종교사상을 중심으로

        이정심 이화여자대학교 2002 국내석사

        RANK : 247807

        이 연구는 한국 근대·식민지시대 지식인이었던 이광수의 종교사상에 관한 것이다. 근대의 문학가였던 이광수의 종교사상은 그의 문학사상의 배경으로 주로 연구되어왔고, 그것이 어떤 종교의 영향을 받아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 있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이광수의 종교사상이 그의 종교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기반으로 인생관·민족관·세계관·우주관이라는 종합·철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밝히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이 연구는 이광수의 종교사상을 하나의 고정된 사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더욱 발전하는 것으로 보아 시기적으로 1920년대까지를 전기(前期)로, 1930-40년대를 중심으로 후기(後期)로 나누었고, 각각 그 종교사상의 특성을 '이상주의'적 종교사상과 '생의 원리'로서의 종교사상이라고 보았다. 이 종교사상들은 동학·기독교와 톨스토이주의·진화론·도산 안창호·불교 등의 영향으로 형성되었지만, 이광수는 이들 기존종교와 사상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닌 자신의 독특한 종교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로써 형성된 그의 종교사상 역시 어떤 종교적 범주로 나누어질 수 있는 소지의 것이 아니라 그 종교사상의 특성과 내용을 중심으로 고찰해야 하는 것이었다. 전기의 과도기적인 이상주의적 종교사상은 '인생이 불행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그 원인이 '사랑'의 결핍에 있다고 보고, 그 '사랑'을 이상으로 추구하는 종교사상이었다. 그것에는 '인간이 신'이고, 신의 본질은 '사랑과 진리'라는 이광수의 종교인식이 기반하고 있었다. 그것은 동물적인 저차원적 인격에서 신의 완전함과 사랑이라는 최고의 인격으로 진화해간다는 것이 윤리적 진화론을 갖춘 종교사상이었다. 후기의 '생의 원리'로서의 종교사상은 자신의 병으로 인해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며 생기기 시작한 종교사상이었다. 이광수는 죽음을 각오함으로써 무상(無常)을 깨닫고,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생명의 신비를 깨달았으며, 그 자식의 죽음을 통해 인생과 우주의 궁극적 문제가 생사(生死)임을 깨달았다. 이광수는 그 생사의 무수한 반복 속에 결국은 생(生)하나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그 생의 주체자가 '생명'임을 깨달았다. 또한 생명의 사명은 자신의 생명을 다른 생명을 위해 바치는 것이며 그러한 '희생정신'을 최종목표로 삼은 것이 '생의 원리'로서의 종교사상이었다. 이러한 종교사상들은 작가, 민족주의자, 친일파로서의 그의 다양한 활동과 관련지어질 때야 비로소 그 역할과 본질이 드러나게 되었다. 즉 그의 종교사상들은 그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 이광수 자신의 인생관·문학사상·민족관·세계관·우주관이 되었던 것이었다. 이 연구는 이러한 대략적 내용으로 이광수가 독특한 종교사상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그 종교사상이 그의 모든 활동에 관련되어 그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이 연구는 이광수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종교에 입각하여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방향을 모색하여 제 분야의 활동을 전개한 지식인들의 종교의식의 단면을 밝히고자 하였다. 독특한 종교적 신념이나 사상을 형성하고, 그것에 바탕 하여 민족운동을 모색하고 활동을 전개한 것은 비단 이광수만의 것이 아니라 윤치호, 한용운, 김교신, 박중빈 등의 지식인에게도 공통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을 연구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Yi Kwangsu(1892-1950), well-known as a modern author in colonial Korea, was an intellectual who wrote novels and treatises in newspaper, launched an enlightenment- and national reconstruction movements, and was at last active as one of the pro-Japanese group. His religious thoughts have been studied as a background for his literary works focusing on what religions had influence on him and his religious thoughts. However, I saw that his religious thoughts were not merely his personal faith and a background for his literary works; rather, his religious thoughts and their significance have to be investigated in association with the situation in colonial Korea. It was my contention in this study that Yi had his own peculiar religious understanding, all of his activities were derived from his religious thoughts, and his activities involving nationalism, modernity, literature and colonialism were on the basis of his religious belief. Yi was influenced by various thoughts, teachings and persons like Tonghak(Eastern Teaching), Christianity, Tolstoyism, the evolutionary theory, Thought of An Changho and Buddhism. But it is noticeable that Yi understood all of them in his own way, and accepted them selectively, rather than followed the established interpretations. Therefore, his religious thoughts had to divided by the characteristic and content, rather than the category of religions. To my thinking, his religious thoughts were not fixed but transformed and developed. Hence, I divided them into two parts; Part I(-1920s): the "idealistic" thoughts and Part II(1930s-1940s): the religious thoughts as the "Fundamental of Life". Part I: The "idealistic" started with his awareness of "bitters of life" as a result of "lack of love". He set up love as an ideal, and tried to achieve the goal of human happiness. Here, the "idealistic" reflected his religious perception "Human being is God, and an intrinsic attribute of God is love." It was a religious thoughts with an ethic evolutionary theory: personality can evolve from a low-level into the most elevated divine love and divine perfection. Part II: The concept of "Fundamental of Life" was result of his own suffering of fatal diseases. After acknowledgement of his diseases and mortality, he realized the transitoriness of life. He perceived mysteries of life through his own love as a father for his children: sentient and insentient have Buddha-nature in themselves. His son's death led him to rang over an extensive literature concerning religion and philosophy. In the end of his deep consideration, he reached a conclusion: the ultimate of life is "production and annihilation", the repetition of life and death results in only life is in existence, and its supervisor is the "true self"(Saengmyoung). As a result of this he sought out the significance of devotion of life to others: spirit of self-sacrifice. His religious thoughts bore great significance when they were applied to his activities as a writer, a nationalist and one of pro-Japanese group. Namely, I showed that his activities were based on his religious thoughts; his religious thoughts worked as outlooks on life, nation, world, and universe. This study reveals a cross section of religious beliefs of the then intellectuals in colonial Korea, who grappled with Social Darwinism, invasion and colonialism, and unfolded their activism in education, economy, literature and religion on the basis of their religious beliefs. Yun Chiho, Han Yongun, Kim Gyosin, Pak Jungbin i.e. all represented these intellectuals. In this respect, I hope that this study may be a slight contribution to study religious beliefs of intellectuals in colonial Korea.

      • 이광수의 자서전적 글쓰기 연구

        유승미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1 국내박사

        RANK : 247807

        본 논문은 해방을 전후하여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는 이광수의 자서전적 글쓰기를 대상으로 하여, 자신의 삶을 반복적으로 서사화하는 이광수의 ‘자서전적 욕망’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서사구조와 서술방식의 변화를 분석한다. 필립 르죈에 따르면 ‘자서전(Autobiography)’은 저자와 화자 그리고 주인공 간의 동일성이 성립한다는 전제하에, 한 실제 인물이 자신의 개인적인 삶, 특히 자신의 인성(人性)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한, 산문 형식으로 된 과거 회상형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러나 르죈의 이 엄격한 정의를 적용할 경우, 다양한 양식으로 발현되는 이광수의 ‘자서전’ 기획들이 모두 논의에 포함되기 어려울뿐더러 대부분의 텍스트가 자서전의 미달태로 분류되어 생산적인 논의를 도출하기 어렵다. 이에 본 논문은 이광수의 자서전과 그 주변적 텍스트를 아울러 ‘자서전적 글쓰기(Autobiographical writing)’라 지칭한다. 문제는 이러한 자서전적 글쓰기가 이광수의 삶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인데, 그는 삶의 고비나 중대한 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자서전적 글쓰기를 통하여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이광수의 자서전적 글쓰기는 정치적이고 목적지향적인 성격을 띤다. 작가 자신의 삶을 반복적으로 서사화하는 까닭에 서술된 내용만 봐서는 이들 텍스트가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이야기의 형식과 서술 양태를 따져보면 전혀 다르게 쓰여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정」 발표 20주년 즈음해서 발표된 「그의 자서전」은 1인칭 동종소설의 형식으로 그의 생애를 정리하는 ‘회고체(Memoir)’의 글쓰기이고, 연작 형태로 기획된 󰡔나󰡕는 참회와 반성의 정조를 강하게 띤 ‘고백체(Confession)’의 오토픽션 형식이다. 한편, ‘저자=화자=등장인물’의 요건을 충족하여 엄격한 의미에서 이광수의 유일한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나의 고백󰡕은 반민특위의 소환을 앞두고 ‘변증체(Apology)’로 쓴 일종의 변호문이다. 이에 본 논문은 이상의 세 텍스트를 본론의 각 장에 배치하고 각각의 텍스트를 탄생시킨 자서전 기획과 서사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폈다. 먼저 2장에서는 단순 회고담에 가까웠던 이광수의 자기 서사가 1930년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자서전적 글쓰기로 변모하는 양상에 주목하고 인정욕구의 실현을 위한 성취의 서사로서 직조된 「그의 자서전」의 서사 전략을 분석한다. 「그의 자서전」은 안창호의 투옥, 조선일보 이직 논란, 아들 봉근의 죽음 등 그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일련의 부정적인 사건들로 인해 유실된 삶의 의미를 복원하고 인정욕구를 실현할 방편으로 기획한 이광수의 첫 번째 자서전 기획이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문단에서 서구의 자서전에 대한 양식적 관심이 높아졌다는 사실과, 미국에서 자서전형 소설을 발표하려 큰 성공을 거둔 강용흘의 뉴스는 그가 자서전적 글쓰기를 기획하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자서전」에서 이광수는 자신의 형성사를 조망하고 문단에서의 성취를 정리하는데, 대중 독자들에 익숙한 고전소설 영웅담의 이야기 틀을 차용하여 비범한 주인공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여로형 서사구조를 도입하여 주인공의 성장담을 대중 독자들에 효과적으로 어필한다. 또한, 그는 「그의 자서전」에 삽입된 허구의 서사를 통해 자신의 허물을 대리청산하고, 도덕성이 검증된 작중 인물의 삶을 자기에 동일시하여 도덕적 자기완성의 경지에 이른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구현한다. 3장에서는 해방 이후 반성의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고 문단에의 복권을 도모하기 위하여 기획된 오토픽션 󰡔나󰡕 연작을 분석하였다. 「그의 자서전」이 문인으로서 이광수의 형성사를 조명한 성취의 서사라면, 󰡔나󰡕는 이광수의 타락과 회개의 과정을 그린 회심의 서사이다. 그러나 󰡔나󰡕에서 기술된 생애가 그의 공적 활동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유년기와 청년기의 일부에 국한되어 있어, 독자들이 기대한 죄의 구체적인 죄의 고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자기 성찰을 통해 참회의 포즈를 취한다. 특기할 것은 󰡔나󰡕의 전편을 관통하는 회심(回心)의 서사인데, 문의 누님과의 불륜 사건을 기점으로 맞물린 전편과 후편이 각각 타락과 구원을 테마로 한 하강의 서사구조와 상승의 서사구조를 보인다는 점이다. 텍스트에 서술된 기억의 가공되거나 그 배치 순서가 바뀌는 것도 구조화된 회심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또한 이광수는 등장인물에 대한 화자의 비판적 시선을 일관되게 유지함으로서 고백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한편, 불편한 진실에 대한 고백을 완수할 방편으로 알레고리적 에피소드를 삽입하기도 한다. 이는 속악한 자신을 뉘우치고 양심의 고백을 완수하여 종교적 구원의 길을 모색하려는 󰡔나󰡕의 서사 전략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이광수의 유일한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나의 고백󰡕을 분석한다. 󰡔도산 안창호󰡕 전기와 구조적 상동성을 보이는 󰡔나의 고백󰡕은 그의 롤모델이었던 안창호의 삶을 경유하는 이광수의 자기탐구라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민족 반역자의 자리에 서게 된 이광수는 자신의 현재 위치가 자서전적 글쓰기의 의미를 손상시킬 수 없는 새로운 글쓰기 방법을 모색한다. 이에 󰡔나의 고백󰡕에서는 세간의 지탄을 받는 해방공간의 ‘나’를 대신하여 해방 후에도 꺾이지 않은 그의 ‘민족주의’ 사상을 서사의 종착지에 배치하고, 그의 과거사를 대신하여 그가 견지해 온 사상의 발달사를 써 내려간다. 그는 사상 형성의 과정과 그에 기반을 둔 공적 행보를 중심으로 자기의 서사를 재편하는 한편, 민족주의의 지형 안에서 자신의 사상이 놓인 자리를 확인하고 자신이 살아낸 삶에 대한 가치 평가의 참조점을 마련한다. 또한, 주관적 진실을 강조하고, 자신의 친일에 대한 재평가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면서 자신의 죄과를 축소하고자 한다. 이 같은 서술전략의 변화는 민족의 반역자가 되어버린 현실의 ‘나’를 극복하고 지난 삶의 가치를 복원시키고자 했던 이광수의 열망을 확인시켜준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광수의 자서전적 글쓰기는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도 매번 새롭게 다시 쓰여진다. 기왕의 자서전적 텍스트가 획득했던 서사적 정합성이 글쓰기 이후의 삶에 의해 곧잘 상실되고 마는 까닭에 이광수는 계속해서 자서전적 글쓰기를 다시 시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포착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된 작업인 동시에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자서전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매 순간 그의 자기 해석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이상적인 자기 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서술의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자서전 작가에게 과거의 삶이란 역사적 시간 속에 존재하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자서전을 쓰는 현재의 ‘나’로 수렴되는 욕망의 시간 속에서 지극히 주관적인 의미를 획득한 사건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논의에 접근할 때, 이광수의 자서전적 텍스트는 그의 가장 솔직한 욕망을 투영한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텍스트로 재평가될 수 있다.

      • 이광수와 루쉰 소설에 나타난 현실의식 비교 연구

        곡초 명지대학교 인문대학원 2017 국내석사

        RANK : 247807

        본고의 연구 목적은 이광수와 루쉰 소설에 나타나는 현실의식을 찾아서 비교하는 데에 있다. 먼저 2장에서 이광수와 루쉰의 생애와 창작을 검토하고 그들의 계몽 사상의 근원을 고찰해보았다. 그 다음에 이광수와 루쉰 각각의 계몽 사상이 어떤 서구 사상의 영향을 받는지, 어떤 구체적인 생각이 가지고 있는지를 검토해보았다. 3장에서 이광수와 루쉰의 각 4편의 단편소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작품에 나타난 봉건성 비판과 근대성 추구를 찾아서 고찰해왔다. 4장에서 위에 내용을 토대로 이광수와 루쉰 소설에 나타난 현실의식을 비교해봤다. 이광수와 루쉰의 소설을 분석해 보니 이광수와 루쉰은 근대성 비판하는 대상이 다르다. 그리고 비판하는 실각과 깊이도 다르다. 이광수의 계몽 사상은 주로 봉건적 낙후한 풍습과 도덕을 대상으로 비판하였다. 루쉰은 봉건 예교 자체와 그의 본질을 대상으로 비판하였다. 루쉰은 개인 자유를 보다 사회의 진보를 추구하였다. 이광수가 비판하는 대상과 근대성 추구는 루쉰보다 지엽적인 문제에 치중하고 정치적 혁명에 관심이 없다. 반면에 루쉰은 비판하는 대성은 본건 본질이다. 그는 민중들을 계몽하는 데에 노력하는 목적이 민중들을 단결하여 혁명으로 국가와 민족을 구하는 것이다. It is the purpose of this thesis to compare and study the realistic meanings in Yi Kwangsu and Lu Xun's Novels. In the second chapter, the life and works of Yi Kwangsu and Lu Xun are compared. And examined the root of their enlightenment. It analyzes the Enlightenment ideas of Yi Kwangsu and Lu Xun, and what concrete content has been influenced by Western ideas. In the third chapter, each of the four stories of Yi Kwangsu and Lu Xun is analyzed. The critique of feudalism and the pursuit of modernity are analyzed. On the basis of the previous content, the realistic thoughts of Yi Kwangsu and Lu Xun's novels are analyzed. Through analysis, we found that Yi Kwangsu and Lu Xun criticized different objects. Their critical perspectives and depth are different. Yi Kwangsu mainly criticized the backward customs and morals in feudal society. The object of Lu Xun's critique is the feudal system itself and its essence. The object of Yi Kwangsu criticism belongs to detail. He does not care about the political revolution. It is the purpose of Lu Xun's ideological enlightenment to unite the masses and carry on the political revolution.

      • 이광수의 톨스토이 수용과 번역 양상 고찰

        김미연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2 국내석사

        RANK : 247807

        이 논문은 이광수의 번역에 대한 인식과 방법을 살펴보고 근대 한국문학을 촉발시킨 톨스토이의 수용과 관련하여 그 번역 양상과 의미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이광수와 톨스토이에 주목한 것은 우선 이광수가 ‘문학’이라는 개념이 번역을 통해 자리 잡았음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 한국문학에 번역문학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한 바 있다. 이 시기에 번역은 ‘근대성’과 ‘문명’을 학습하는 데 핵심적인 것이었고, 그 영향은 문학, 사회 등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쳤다. 근대 초기 한국문학에 러시아 문학의 소개가 가장 많았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작가로 톨스토이가 위치해 있다. 이광수 역시 자신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톨스토이를 꼽는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이 논문의 본론에서는 이광수의 번역관을 분석한 뒤 이광수에게 톨스토이의 영향이 끼치게 된 배경에서부터 번역 행위로 나아가는 흐름에 따라 고찰하였다. 이 논문의 2장에서는 「문학이란 何오」를 중심으로 ‘문학’의 개념어가 정립되고, ‘조선문학’에 대한 정의로 도달되는 과정 그리고 ‘조선문학’의 실천 방향을 모색하였다. 이광수는 서양의 ‘literature’의 역어로써 ‘문학’을 정의하며, 번역으로 성립된 ‘문학’은 그간 사용하였던 문학에 대한 관념을 뒤틀고 근대적 의미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서양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번역된 ‘문학’은 재래 사용하던 의미에서 벗어나 근대적 성격을 띤 ‘조선문학’을 규명하기에 이른다. 이어 이광수는 ‘조선문학’의 발전에 ‘번역문학’이 한 축을 담당함을 언급한다. 본 장에서는 이광수의 번역에 대한 의식과 관점을 중심에 두고, ‘번역문학’이 조선의 문학보급과 조선문의 근대화를 촉진시키는데 큰 역할 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논문의 3장에서는 톨스토이 초기 수용에 관한 부분을 다루었다. 최초의 근대적 잡지라 평가되는 『소년』을 중심으로 톨스토이에 대한 작품과 사상소개에 대한 면을 고찰하였다. 최남선의 톨스토이 수용과 번역은 이광수의 톨스토이에 대한 의식 형성에 기반이 된 것으로 전제한다. 『소년』의 편집인 최남선이 톨스토이를 각별하게 다룬 것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사상적 취향에 따른 것이겠지만 동시에 톨스토이의 작품을 배우고자 하는 최남선의 열망과 ‘근대문학의 모범’을 민중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계몽의 의지가 담겨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최남선은 『소년』에서 톨스토이를 ‘그리스도 이후의 최대 인격’이라 지적하는데 이는 이광수가 톨스토이를 회고하는 부분과 흡사하다. 최남선과 이광수에게 톨스토이는 ‘예수’에 비할 수 있는 존재였으며, 최남선과 이광수의 이와 같은 언급은 문학적 수용 이상의 지점을 설정해야 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4장에서는 이광수가 쓴 톨스토이를 주제로 한 논설을 통해 이광수가 근대 한국에서 대표적인 톨스토이안으로 불리는 점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최남선과 일본의 톨스토이 유행에 의해 형성된 근대 한국의 초기 톨스토이 형상을 바탕으로 홍명희, 김억 등 다른 작가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수용된 톨스토이의 형상을 비교 고찰함으로써 이광수의 톨스토이 수용의 특수성을 고찰하였다. 이어 이광수가 톨스토이의 작품을 직접 번역한 『어둠의 힘』을 중심으로 작품의 구성과 내용 뿐 아니라 에크리튀르(&eacute;criture)의 구성방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위해 문자사용의 비율, 통사 구조, 사유 방식에 따른 어휘 및 구문 양상을 기준으로 번역과 번역자의 사상적 굴절을 추적하였다. 근대적 지식으로서의 톨스토이가 신문·잡지의 매체를 통해 생산되고 유통된 공간에 대한 접근은 학술운동의 흐름과 번역자 개인의 실천을 통한 상호작용에 따른 구조적 접근을 요청한다. 이를 위하여 세 과정을 통해 본 논문에서는 이광수의 톨스토이 수용과 번역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 이광수 장편소설의 연애관 연구 : 『무정』『 재생』『 흙』『사랑 을 중심으로

        쩐티란 아잉 韓國學中央硏究院 2019 국내박사

        RANK : 247807

        As far as we have known, there are almost no works in all Lee Wang Soo's novels without mentioning the theme of love and affection. It can be said that his novels all started from love affairs between men and women. All 4 works Heartless(1917), Rebirth(1924), Soil(1932), Love(1939) are the ones conveying the love in male and female relationships. Not only that, as a nationalist writer in the early stage of modern Korean literature, Lee Wang Soo put aside the political viewpoint of his national consciousness, he showed his viewpoint about love and the nature of love as well as his attitude towards the male and female love affair in his works instead. This study aims to reproduce the meaning of the love perspectives expressed in Lee Wang Soo's important long stories and analyze the change in perspectives of love in each of those works. Subjects of the study include 4 works, namely Heartless(1917), Rebirth(1924), Soil(1932), Love(1939). These four works are long stories reflecting the reality of Korean male and female love life in the past 20 years after 1917 to the 1940s. Furthermore, these four works also express the most obvious views about the author's love and thoughts about his marriage ‘s purpose and conditions. In a nutshell, this dissertation focuses on self-love issues, through which the researcher would like to find out how Lee Wang Soo understands and accepts the love in modern times. It is undeniable that Lee Wang Soo’s conception of love is related to the political and social issues as well as the nationalist ideals he pursues. According to these four works, we can see the consistency of his viewpoint about love which reflects the national consciousness. For nationalism, Lee Wang-soo advocates criticizing feudal society and upholds the implementation of social moral reform from personal moral reform. Nevertheless, at the same time, he advocates the promotion of the agricultural economy and considers education as the foundation to nurture the nation's strength, national development and to bring national independence. The nurturing of the nation's strength and ethnic reform that the author aims to follow are expressed in the following four works. In Heartles, he advocates that education should be laid as the foundation; in Rebirth and Soil, he is dedicated to the rural movement and to farmers; in his work Love, he has devoted himself to the social movement. Hence, the characters he entrusted with the mission to dedicate himself to nurturing the national strength are the four main male characters of four works: Lee Hyong-sik, Kim Bong-gu, Ho seung and An Bin, respectively. They are seen as characters embodying the author and representing his thoughts. They have aspirations for the nation and pursue the ideal life. Therefore, their viewpoint of love always has a problem, which is that they are always in conflict between personal feelings and obligations towards the country and the people. This implies that all four works repeat the same motif, that is suppressing personal feelings to pursue obligations to the nation and common obligations to the people. In addition, Lee Wang-soo promotes for the freedom of love, however, the thought of traditional virginity remains in his works. He dramatically criticizes the love after personal and physical sensuality, but rather he follows spiritual love, even a religious love that combines the ideals of Buddhist and Christian. On the one hand, he calls for equality and freedom in love. On the other hand, he shows a negative view of love that values materiality and sexuality more than spiritual values. 이광수의 소설에서 사랑과 연애에 대한 주제로 다루어지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소설은 남녀 간의 연애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무정』 (1917), 『재생』(1924), 『흙』(1932), 『사랑』(1939) 이광수의 네 장편소 설에서 남녀 간의 연애관계를 그리고 있고 각 작품마다 연애가 가장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관점을 빼고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민족주의 문학자로서 이광수의 민족주의사상과 더불어 그의 성장을 계속 이어지는 그의 창작과정에서 연애의 태도나 성격, 연애관점을 볼 수 있다. 이 연구는 이광수의 중요 장편소설에 나타난 연애관의 의미와 그 소설적 구현 및 변화상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무정』, 『재생』, 『흙』, 『사랑』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네 편의 작품 속에는 1917년대 전후부터 1940년대 전후까지 20여 년 간 남녀의 연애 생활이 대한 현실이 나타나며 더욱이 이광수의 연애관이 가장 잘 담겨 있어 그가 생각하는 혼인의 조건과 목적을 볼 수 있다. 해장 작품들은 사랑의 문제를 서사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이를 통하여 작가 이광수가 근대적 사랑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광수의 연애관은 그가 추구한 민족주의 사상과 정치적·사회적 문제와의 상관성을 부정할 수 없다. 연애를 주제로 다룬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민족의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연애관의 일관성을 보인다. 민족주의에 대해서 이광수는 봉건적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비판하고, 개인의 도덕적 개조를 통해 사회의 도덕적 개조를 실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농업 경제를 강조하고 동시에 민족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교육을 강조하고 모든 것을 기본으로 여겨 근대적 지향 민족을 발전하고 민족의 독립을 얻는다고 주장하였다. 이광수가 지향하는 민족 개조와 민족 실력 양성은 작품 네 편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바로 『무정』에서 계몽의지로서의 교육을 주장한다거나 『재생』과 『흙』에서 농민과 농촌을 위해 농촌 사업에 헌신한다거나 『사랑』에서 민중을 위한 사회적 사업에 헌신하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무정』, 『재생』, 『흙』, 『사랑』에서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고 민족의 사명을 맡은 인물은 이광수가 설정한 남주인공 이형식, 김봉구, 허숭, 안빈이다. 이들은 이광수 작가와 사상적으로 유사한 면모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즉 민족에 대한 갈망을 품고 이상적 삶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이들의 연애관에는 항상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의무와 개인적 사랑에 대한 욕망 사이의 갈등이다. 이 갈등 구조를 통해서 이광수 작가의 민족주의와 관련된 그의 삶이 구체화되고 구조화된다. 『무정』, 『재생』, 『흙』, 『사랑』 네편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티프의 하나로서, 개인적 사랑에 대한 욕망을 누르고 나라와 민족, 더구나 민중을 위한 공적인 활동에 대한 의무를 추구한다. 또한 이광수의 연애관은 자유연애를 추구했지만 아직 전통적인 정조관념에 벗어나지 못했다. 육체적 물질적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연애를 비판하면서, 사회적 자아와 종교적 자아를 지향하는 불교사상과 기독교 사상을 통합하는 정신적 연애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이며 육체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랑에 대해 이광수는 부정적인 관점을 나타낸다. 한편에서는 자유연애를 부르짖기도 하지만, 기존의 성 도덕을 강조하는 입장이었던 이광수는 다른 한편에서 육체적 욕망의 충족에 대한 사랑에 관해 부정적인 관점을 나타낸다.

      • 이광수의 문학.종교.정치의 연관에 대한 연구

        서희원 동국대학교 2011 국내박사

        RANK : 247807

        This study is intended to clarify how ‘literature,’ ‘religion,’ and ‘politics’ in Lee Gwang-su's life and works are interrelated and corresponded, which I argue is a one of the crucial keys to the interpretation of his texts. In one of his news columns addressing issues on the political values and uses of literary works which can be said to be politically meaningful, he asserted that literature should be independent from politics as if both have definitely separated boundaries in academic disciplines. In addition, he made the characters in his novels express their thoughts that their actions are neither political nor intent on reforming a current social system. The same is true for his attitude about ‘religion’. He extracted the basic principles required for ideal politics from dwelling on the power of religion mediating in the conflicts of the human world and at the same time the absolute obedience the congregation show in front of religious leaders and authorities. Besides, he judged that the social sufferings or grievances against the regime, which can lead to rebellious uprisings, can be relieved and dissolved by disciplining and cultivating our minds on a religious level. For him, this emphasis on the personal cultivation through literature or religion could be rendered as one of the effective rhetorics. This was also a feasible means to express the causes of national movements indirectly because it was impossible to reveal political messages overtly, not to mention advocating a nationalist cause, under the oppression of Japanese colonial rule. However, there can be no literature or religion which is not political, so the crucial points we should focus on are to examine ‘the aestheticization of politics’ and ‘religionized politics’ by which his works are organized. It is notable that most of the characters in his literary texts during the colonial period are trying to identify real selves by internalizing their submission to a super-ego. This would be a political destination the plots of his novels cannot help arriving at. Religion and literature dealing with the ethics and aesthetics of life provided him with tools to achieve this purpose. For example, the main character Lee Hyung-shik of The Heartless in 1910s is depicted as an elevated romantic subject who is gazing at the stars across the sky. In this scene, he reaches the final conclusion that there can be no personal developments outside the community, reflecting on the experiences of Sam-rang-jin which can be called ‘sublime’. The characters of Jaesaeng in 1920s are pursuing the satisfaction of their personal desires and the revenge of love in the setting of the city of Kyungsung that was transformed into a secular and vulgar city, but they wind up being punished by being dead or isolated from the community. In The Soil of 1930s, Huh Sung rising to fame, after realizing that his mission is not in the pursuit of his happiness but in the service of his own people, decides to go into a rural life. Also a snobbery elite Kim Gap-jin is greatly inspired by him to decide to dedicate his knowledge to agricultural movement. Lee Gwang-su in 1940s saw what the Japanese called their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as a holy war human beings should strive to win to the last moment. He envisioned the Greater East Asia as a utopian society, and encouraged people to take part in this plan. Maybe aside from only one exception, To a Little Friend, we are unlikely to find his works in which individual freedom is valued positively. Beside his career as a novelist, it is necessary to take into account the fact that he played a role like a leader in Suyangdonguhoe, the domestic branch of a Young Korean Academy. He based his political activities as well as literary writings on the thoughts and organizing principles of Suyangdonguhoe which can be summarized as ‘Skill Cultivation Theory.’ For him, a novel was a test field experimenting with a social model where it could be possible for a modern man to find out his real self in a super ego as a nation(or people). At the same time, it was a stage where an intellectual who believes in the rational evolvement of history could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the community, and where for political purposes the unification of national members could be achieved. However, unfortunately he turned a blind eye to the fact that the model he pursued is almost equal to the Japanese imperialism and the political system based on ‘the sameness of interests’ he hoped to be realized is similar to the rationalization of the oppressive rule of the Japanese General Government. Lee Gwang-su has been regarded as a novelist who stands for the politics of right-wing nationalists, and he has been known to have tried to implant the key thoughts of Suyangdonguhoe’s nationalism movement in his works. This study characterizes his nationalism as a version of a secular religious movement. He maintained that the ideal political community could be constructed through ‘the Millennium Movement’ a form of thought merging a nationalist movement with Christian eschatology. He already knew that the important concepts which laid the foundations for the modern state had been the secularized versions of religious concepts, so he could use the religious concepts to express his nationalism. In other words, he could build his version of nationalist politics depending on the religious concepts which could match a current state controling people by means of positive law. The examples of desirable leaders he dreamed about in his literary works were not real politicians, but characters such as Jesus, Ghandi and John the Baptist who based their authorities on the ethics of internal authenticity. Even though he criticised capitalism on the ground that it paralyzed people's ethical perception and made the community degenerate into a place only seeking for pleasures, he never affirmed as an alternative Lenin's Russian Revolution rejecting the value of religion. The fact that he was fascinated by Italian Fascism filled with religious elements shows us the hidden aspects of his nationalism. In light of his decision to support the Planning of the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which was without doubt the betrayal to his Korean people, his claim that he was involved in pro-Japanese activities to help his own Korean people is nothing but an obscene justification. Anyway, it is certain that his position was rooted in his political orientation which highly valued individuals' submission to a whole, and in his Christian and teleologic view of history from which he longed for the advent of nationalist utopia promising permanent prosperity and happiness. Lee Gwang-su hoped to be a national leader. Following the Liberation, the result was that he, along with Choe Nam-sun, was arrested and put into prison under the Anti-national Activist Punishment Law. In a colonial period, his works had widely appealed to public readers. There are several reasons for that: his writings had strong aspects of enlightenment and melodrama; he kept a lot of spaces to publish his works because he had worked as an editor with lots of journals and newspapers for many years; and he created attractive characters in his novels created from his first-hand and biographical experiences, so readers felt familiar with them. In fact, his real life was consistently re-written and revised by his texts, so his fatal mistakes sometimes became obscure through his repetitive confessions to the extent that we cannot be sure of boundaries between truth and falseness. Eventually, his real life was removed and only his works became final texts that allow us to take a glimpse at his real life. He rose to his fame as a writer by representing his real life in his novels, and at the same time he couldn't refuse aesthetic judgements and actions required for literature when reflecting on real life. This can be a very interesting element to researchers who try to analyse his works. To sum up, his literature, religion and politics form a crucial structure penetrating into his life while his texts are combinations of them. 이 연구는 이광수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사항이라고 판단한 ‘문학’ &#8228; ‘종교’ &#8228; ‘정치’의 연관을 구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광수에게도 해당되는 경우겠지만, 많은 문학 연구자나 창작자는 ‘문학’이 정치와 무관한 ‘순수’한 것을 지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데올로기와는 관계없는 보편적 인간의 감정과 그것의 미적인 제시를 언어로 형상화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문학자들이 문학에 대해 이렇게 말할 때, 그 안에는 보수적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도덕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긍정과 문학을 언어의 활용에 능한 엘리트만의 것으로 한정짓는 방식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광수는 논설을 통해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 문학의 가치나 효용에 대해 설명할 때 이는 개별 분과 학문에서 문학과 정치가 구분되는 것처럼 서로 무관하다고 주장하였다. 소설의 경우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그들의 행위가 정치적 활동이 아니며 지금의 사회체제를 변혁하려는 조금의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발화하게 하였다. 문제의 관점을 ‘종교’로 돌려도 이광수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65378;민족개조론&#65379;에서 이광수는 예수나 부처를 민족개조운동의 선구자로 지칭하며, 종교적 집단의 결속력과 생명력을 민족을 개조하려는 단체가 배워야 할 필수적 요소로 제시하였다. 이광수는 종교가 지닌, 인간 세상의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과 종교적 지도자의 권위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신도들의 모습에서 이상적 정치가 선취해야 할 덕목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는 현실 정치에 대한 변혁의 요구나 저항으로 제기될 사회적 고통과 체제에 대한 불만이 종교에서는 개인의 인격과 수양에 대한 강조를 통해 내면적 영역에서 해소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식민지라는 억압적 상황 때문에 정면으로 정치를 주장하거나 민족이라는 결사를 옹호할 수 없는 이광수의 입장에서 종교나 문학을 통한 개인의 수양은 민족운동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사였다. 하지만 정치적이지 않은 문학이 없듯이, 정치적이지 않는 종교도 존재할 수 없다. 종교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지속된 공동체의 통치 원리였으며, 지금도 국가와 비견할 수 있는 대중적 파급력을 유일한 정치적인 원리이다. 이광수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항은 문학과 종교의 방식으로 제시되는 ‘정치의 미학화’와 ‘정치의 종교화’이다. 식민지시기를 관통하는 그의 문학텍스트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근대적 자아는 초자아에 복속되고 이 과정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 이는 이광수 소설의 플롯이 귀결되는 종착역이었다. 1910년대의 &#985172;무정&#985173;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한껏 고양된 이형식의 낭만주의적 주체는 ‘숭고’라고 부를 수 있는 삼랑진의 경험을 통해 공동체를 벗어난 개인적 성장이란 없다는 궁극적 결론에 도달한다. 1920년대 &#985172;재생&#985173;의 주인공들은 3&#8228;1운동 이후 세속도시로 변해버린 경성을 배경으로 개인적 욕망의 충족과 사랑의 복수를 선택하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단죄되거나 공동체에서 유폐된다. 1930년대의 &#985172;흙&#985173;에서도 출세의 가도를 달리던 허숭은 자신의 본분이 개인적 일신의 영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농촌으로 투신하며, 속물 지식인 김갑진도 이에 대오각성하며 농촌운동에 자신의 지식을 쏟는다. 1940년대 이광수는 대동아공영권을 인류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총력을 쏟는 성전으로, 이를 통해 건설될 대동아를 일종의 지상천국으로 인식하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광수 문학에서 공동체를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를 긍정하는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65378;어린 벗에게&#65379;뿐이다. 소설가로의 이력과 함께 고려해야 할 사항은 1921년 상해임시정부에서의 귀국과 함께 그가 흥사단의 국내 지부였던 동우회의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실력양성론으로 대표되는 동우회의 이념과 조직을 통해 식민지 제도 내에서 허락된 최대한의 정치적 활동을 시도하였고 이를 문학적으로 창작하였다. 그에게 있어 소설은 근대적 개인이 국가(민족)라는 초자아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는 사회적 모델의 시험장이었으며, 역사의 합목적적 진화를 신뢰하는 지식인이 공동체의 발전을 실천하는 무대였고, 정치적으로 민족의 구성원에 대한 결집을 시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민족주의의 구체적인 형태가 일본의 제국주의이며, 그가 이익의 동일성을 역설하며 펼치고자한 통치의 방식이 총독부의 강압적 지배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광수는 민족주의 우파의 정치성을 대변하고 있으며, 수양동우회의 민족운동 방식을 문학에 재현하려고 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이것의 특징을 기독교에서 분파한 ‘민족’이라는 세속 종교운동으로 파악한다. 이광수는 민족주의 운동에 기독교의 종말론을 결합시킨 ‘천년왕국운동’의 형태로 자신이 사유한 정치적 공동체의 실현을 역설하였다. 이광수는 법으로 대변되는 현대 국가론의 중요 개념들이 세속화된 종교 개념이었다는 사실을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고, 이것이 종교적 수사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유용하게 활용하였다. 그는 실정법을 통해 국민을 통치하는 국가와 경쟁할 수 있다고 사유한 민족주의의 정치학을 대부분 종교적인 개념에서 도출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65378;농촌계발&#65379;의 김일과 &#985172;흙&#985173;의 허숭이 각각 판사와 변호사라는 법의 세계(국가의 통치)에서 아련한 과거에서 발견한 민족의 세계로 이동하는 이유와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985172;흙&#985173;은 대부분의 서사가 농촌계몽이 교육 받은 식민지 지식인 청년이 일생을 투자할 가치를 가진 사업임을 입증하고, 인생을 세속적으로 향락하던 인물들의 자각을 보여주는 데 집중이 되어 있다. 그렇기에 방대한 분량이지만 농촌에서 협동조합사업을 진행하는 모습에 할애된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보다 세밀하게 살펴보면 허숭이 실천하는 문화운동이 사실은 정치적 활동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은 그들의 사업이 지극히 사변적이며 이상적이라는 사실과 농촌으로의 이동이 도시지식인의 ‘여행’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985172;흙&#985173;에서 주로 서술하고 있는 살여울의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시간 조화로운 삶을 영위해 온 농민의 노동, ‘고귀한 야만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조선인에 대한 미적 찬미는 이광수가 1920년대 행한 조선학의 작업에서 대부분 상상적으로 창안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골로 향하는 허숭이나 김갑진의 이주는 자신의 이념과 열망이 창안한 상상적 공간으로 떠나는 지식인의 소영웅주의적 모험의 성격을 가진 ‘여행’이다. 게다가 허숭이 살여울에서 하는 계몽 사업은 그 목적에서는 비록 식민지 정부와 다를지 모르지만 그 방법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허숭이 언덕 위에 일종의 파놉티콘을 짓고 마을의 대소사를 쉽게 파악하는 방식으로 이를 관리감독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통치가 식민지 정부보다 훨씬 직접적임을 말해준다. 이광수는 식민지의 통치를 인민을 노예화하는 강압적 지배라는 면에서 비판하였다. 그가 추구한 통치는 현실적 삶의 개선과 행복에 대한 약속을 통해 구성원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종교적 형태였다. 이를 살필 때 중요한 것은 유순의 죽음과 허숭의 투옥이다. 이광수는 한갑의 입을 통해 유순의 죽음에 살여울의 모든 사람이 관여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하지만 현실의 법은 오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한갑만을 구속할 수 있을 뿐이다. 허숭은 유순이 죽은 후 치안유지법 위반과 살인교사를 죄목으로 검거되지만 일체의 변론을 하지 않는다. 이는 국가이성으로서의 가치와 책임을 망각하고 타락한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세속적 기술이 되어버린 법에게 도덕적 정당성과 권위를 가진 민족지도자가 침묵하라고 외치는 준엄한 일성(一聲)이다. 이광수의 문학에서 찾아보자면 그가 상상했던 정치적 지도자의 형상은 국민국가의 실질적인 정치가라기보다는 내면적 진정성의 윤리에 권위의 기반을 두고 있는 ‘예수’, ‘간디’, ‘세례 요한’ 등이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인민의 윤리적 감각을 마비시키고, 공동체를 향락의 공간으로 타락시킨다는 점에서 비판하였지만, 종교의 가치를 부정하는 레닌의 소비에트 혁명을 대안으로 긍정한 적은 없다. 오히려 종교와 결합한 이탈리아의 파시즘에 매혹을 느꼈다는 사실은 그가 추구한 민족주의의 진면을 알려주는 일화이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광수의 결정을 판단할 때, 이를 ‘변절’이나 ‘민족 반역’ 같은 방식으로 파악하려고 한다면 ‘민족을 위해 친일을 하였다’는 이광수의 논리는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해서는 안 되는 외설스런 변명이다. 이는 전 생애를 걸쳐 전체에 대한 개인의 복속과 희생에서 참된 가치를 찾았던 이광수의 정치적 지향과, 영원한 번영과 행복을 약속하는 민족주의적 유토피아의 재림을 궁구했던 기독교의 목적론적 역사관에서 그 이해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이광수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를 희망했었고, 그가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해 최남선과 함께 체포되고 수감되었다는 사실은 지도자가 되려했던 희망이 나름의 성취를 이룬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식민지 시기 이광수가 대중독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문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는 그의 문학이 가진 계몽성이나 통속성의 짙은 호소력, 안정된 지면을 확보할 수 있는 잡지와 신문의 편집장으로 오래 근무하였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그가 많은 텍스트에서 독자들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자전적인 일화를 소설의 인물을 통해 구현했다는 사실이다. 이광수는 작중인물과 겹쳐지는 모습을 통해 하나의 문학적인 신화로 자신을 구성하였다. 그의 실제 삶은 텍스트에 의해 다시 기술되고, 수정되며, 치명적인 실수는 중복되는 내면의 고백을 통해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없을 지경까지 불투명해 진다. 이를 통해 실제의 삶은 소거되고, 문학이 그의 진실한 삶을 보여주는 궁극적인 텍스트가 되어 버린다. 이광수는 소설의 인물을 통한 자신의 재현이, 그리고 출판시장을 통한 예술의 광범위한 유통이 작가와 인물을 신화화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중 인물을 질식할 것처럼 억누르는 도덕적이며 금욕적인 모습은 결국 그 자신의 삶을 억압하는 기제가 되었다. 문학이 되려는 인간에게 문학은 미학적 삶을 요구한다. 이광수는 소설에 자신의 실제 삶을 투영하고 이를 통해 작가적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문학이 실제 삶에게 요구하는 미학적 판단과 행동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이는 이광수라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 흥미로운 이해의 한 면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광수의 문학 &#8228; 종교 &#8228; 정치는 그의 삶을 일관하고 있는 중요한 구조이며, 그의 텍스트는 이러한 것들의 결합이다.

      • 이광수 소설 연구 : 애정 삼각 관계의 양상과 그 의미를 중심으로

        최주한 서강대학교 대학원 2000 국내박사

        RANK : 247807

        본 연구의 목적은 작가로서의 이광수의 면모에 관심을 두고, 그의 소설 전반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이광수 소설의 구성 원리와 그 의미를 조명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이광수가 그의 평생에 걸친 소설 쓰기를 통해 일관되게 추구했던 작가로서의 주제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서 어떠한 방식의 소설 쓰기를 택했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자하는 것이다. 이광수의 소설은 그 시기만 하더라도 1910년대에서 일제 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걸쳐져 있으며, 그 양으로만 보더라도 장편만 대략 20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광수에 대한 논의는 대개 사상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져 왔을 뿐, 그의 작가로서의 면모에 대한 논의는 미미한 형편이다. 이는 이광수의 문학은 근대문학의 개척자라는 문학사적 위치를 제외하고는 문학적인 관점에서는 평가해줄 것이 별로 없다는 기존의 통념이 그의 소설에 대한 진지한 접근의 가능성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이광수 소설에 대한 논의는 그가 계몽주의 작가라는 통념과 더불어 「무정」이나 「흙」과 같이 몇몇 계몽주의적 색채가 짙은 작품에 제한되는 경향이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애정 통속 소설로 폄하되어 진지한 연구 대상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그가 일제 말기 보여주었던 친일 행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또한 여기에 한 몫했던 것은 물론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그의 다양한 작품 전체를 꿰뚫어 논의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의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구조화되고 있는 <애정 삼각 관계>의 특징적인 양상에 주목하여 이광수 소설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논의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광수 소설에서의 <애정 삼각 관계>의 특징으로 주목되는 것은 그 애정 삼각 관계의 중심 인물이 한 편으로는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반드시 <욕망>의 축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거기에는 반드시 그에 대한 <자책감>이 수반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소설에서 이 <애정 삼각 관계>는 항상 동일한 양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기적인 전환점을 보이면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작품 내적인 논리만으로는 왜 그의 평생에 걸친 소설 쓰기가 그처럼 <의무>와 <욕망>간의갈등과 그에 대한 <자책감>의 문제에 강박되어 있는지, 그리고 왜 각각의 소설에서 <애정 삼각 관계>는 어떤 시기적인 전환점을 보이면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구조화되고 있는지, 한 마디로 말해 이광수의 소설에서 <애정 삼각 관계>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이었는지를 밝히기 어렵다. 흥미롭게도, 그것은 작가의 자전적 삶 가운데서 특히 정치적 행로와 관련된 삶의 굴곡과 그대로 대응되는 바, 이는 이광수 소설에서 <애정 삼각 관계>의 구조가 그의 <자전적 삶의 구조>와 서로 상동적이거나 이해 가능한 관계에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에 본고에서는 <애정 삼각 관계>를 그 구조적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광수의 소설이 그의 정치적 행로의 문제와 관련된 자전적 삶을 구조화하고 있는 일종의 <자전적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함으로써, 이광수에게 있어서 소설 쓰기란 그의 일생을 지배했던 정치적 타협의 문제와 거기서 비롯된 내적 갈등과 대면하는 작업이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정당한 관계>라는 <항변>의 구조화: 「무정」(1917)에서 애정 삼각 관계의 갈등은 그 주체가 한 편으로 <욕망>을 지향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데 대한 딜레마에서 비롯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처럼 한 편으로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그 <욕망>의 선택은 <자책감>을 수반한 것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정」의 경우 그것은 정당한 것으로 의미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스토리 구조 자체가 그 <욕망>의 선택을 궁극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그에 대한 <자책감>을 항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구조화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작가의 자전적 맥락과 관련하여 보자면, 이 같은 애정 삼각 관계의 양상은 이광수가 1916년을 전후로 하여 <매일신보>를 통해 총독부와 타협한 시점과 대응하며, 그 <항변>의 구조화는 그 같은 타협이 식민지하 조선의 민족 생존권을 주장하기 위한 하나의 정당한 방편이 된다는 작가의 신념과 관련이 있다. <과도한 관계>에 대한 <변명>의 구조화: 「재생」(1924), 「흙」(1932), 「유정」(1933)에서 애정 삼각 관계의 갈등은 그 주체가 <의무>를 저버리고 <욕망>을 선택한 데 대한 <자책감>에서 비롯된다. 「무정」과는 달리, 이들 작품에서 <욕망>의 선택은 그 처음부터 명백한 과오로 관주되고 있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들 애정 삼각 관계는 이미 정당하지 않은 관계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작품에서 그에 대한 <자책감>은 변명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스토리 구조 자체가 그 같은 과오를 극복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구조화함으로써, 그에 대한 <자책감>의 무게를 덜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작가의 자전적 맥락과 관련하여 보자면, 이 같은 애정 삼각 관계의 양상은 이광수가 1921년 상해에서의 귀국을 계기로 하여 이후 지속적으로 일본 총독부와 타협한 시점과 대응하며, 그 <변명>의 구조화는 총독부와의 타협과 민족 운동에 대한 작가 자신의 신념간의 긴장 관계와 관련이 있다. <부정한 관계>에 대한 <참회>의 구조화: 「그 여자의 일생」(1934)과 「애욕의 피안」(1936)에서 애정 삼각 관계의 갈등은 그 주체가 그간 <욕망>에 이끌러 <의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데 대한 회오를 수반하고 있다. 「재생」, 「흙」, 「유정」의 경우 <욕망>의 선택과 그에 대한 <자책감>이 정당하지는 않되 극복의 여지가 있는 한때의 과오로서 자리매김되고 있었다면, 이들 작품에서 그것은 이제 되돌이킬 수 없는 무게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처럼 되돌이킬 수 없는 과오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기에, 이들 작품에서 그에 대한 <자책감>은 변명의 여지 없는 부정한 것으로, 참회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스토리 구조 자체가 <욕망>에 이끌린 파멸을 전적으로 인물 자신의 과오에서 비롯된 응당한 죄가로 자리매김하고, 그 파멸의 끝에서 현재를 있게 한 과거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작가의 자전적 맥락과 관련하여 보자면, 이 같은 애정 삼각 관계의 양상은 1934년 동우회 사업의 실패와 사랑하던 아들의 죽음 등의 불운을 한꺼번에 맞게 되는 것을 계기로 실의에 빠져 법화경 행자의 길을 걷게 된 시점과 대응하며, 그 <참회>의 구조화는 이러한 불행이 그간 총독부와 떳떳하지 못한 관계를 맺어온 데 대한 죄가로서 주어진 것이라는 작가 자신의 회오와 관련이 있다. <불가피한 관계>라는 <합리화>의 구조화: 「사랑」(1939), 「원효대사」(1942)에서 애정 삼각 관계의 갈등은 그 주체가 <의무>를 위하여 불가피하게 <욕망>을 선택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비롯된다. 이전까지의 소설에서 그 선택이 개인적인 <욕망>에 좌우된 만큼 과도하거나 부정한 것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었다면, 이들 작품에서 그것은 개인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이미 운명지워져 있는 어떤 불가피한 것이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처럼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기에, 이들 작품에서 그에 대한 <자책감>은 존재하지 않으며, 혹 존재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합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스토리 구조 자체가 그 <욕망>의 선택을 <의무>의 완성을 위한 한 계기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그에 대한 <자책감>을 합리화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작가의 자전적 맥락과 관련하여 보자면, 이 같은 애정 삼각 관계의 양상은 이광수가 1939년 동우회 사건을 계기로 총독부에의 전향을 선언한 시점과 대응하며, 그 <합리화>의 구조화는 총독부에의 전향이 궁극적으로는 민족보존을 위한 길이라는 작가의 역설적인 신념과 관련이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광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구조화되고 있는 <애정 삼각 관계>는 애정 관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 그의 자전적 삶에서 정치적 행로의 문제와 관련된 <자책감>이라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책감>이라는 감정은 정치적 행로의 문제와 관련된 이광수 자신의 내면의 것이되, 그것은 그와는 무관한 듯이 보이는 <애정 삼각 관계>라는 허구의 틀에 비추어 설명되고 있었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소설에서 <욕망>에 이끌려 <의무>를 돌보지 못한 데 대한 <자책감>은 한 편으로 이광수 자신의 정치적 타협의 문제와 관련된 내적 자괴감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자, 동시에 그의 양심이 자신에게 수여한 윤리성의 기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광수의 소설에서 <자책감>은 자신의 과오를 자인하고 고백함으로써 구원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그 <자책감>의 무게에 따라 <항변>이나 <변명>, 혹은 <참회>나 <합리화>의 방식으로 모색되고 있었음은 이미 살펴본 대로이다. 말하자면 그의 소설에서 <자책감>과의 대면은 조선에 대한 심정적 의무와 일본의 후원을 등에 업은 야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데 대한 내적 자괴감과 대면하면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광수에게 있어서 평생에 걸친 소설 쓰기는 자신의 정치적 삶의 부침에 대한 자기-의식적인 반성의 산물이자 자기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숙고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organic principle of Leekwangsoo's novels and its meaning, regarding his status as an author. In other words, I concentrate my attention to what Leekwangsoo's coherent theme he pursued through the life-long writings of novels is and which method of writing he choosed to achieve this goal. Leekwangsoo' writings of novels spanned from 1910' to the after years of the Liberation(1945) and his writings amounted to twenty works when stricting to long novel. Nevertheless arguments on Leekwangsoo are restricted to his thoughts, and debate on his status as an author is not active. I think it. is because the generally accepted idea that Leekwangsoo's literature has nothing but some contribution to Korean literature as frontier of modem literature has not allowed access to sincere study of Leekwangsoo's novels. In fact, explorations on the Leekwangsoo's novels have been restricted to the works like Heartlessness or The Soil, regarded as having a leaning toward enlightment an the basis of the aceeped idea that Leekwangsoo's is an author of enlightment. Otherwise they has been degraded to popular novels handling love affairs, and his novels have not received object of research. In addition what he did in favor of Japan in the latter years of the Japan colonial rule have allowed his novels to be disparaged. Therfore I need a new perspective penetrating diverse works of his, and would make a foundation to examine the majority of his novels, noticing the characteristics of <love triangle> constantly structualised in his novels. Noticeable characterirtics of love triangle in his novels are that main chracters of the relation have tendency to choose <desire> nevertheless under an obesession of <duty> choose <desire>, consequently they suffer from a <guilty conscience>. What attracts us is that this love triangle is not repeated the same but changed structuralising differently according to the periods. It is difficult to say why his life-long writings are under an obsession of conflicts between <duty> and <desire> and consequent <guilty conscience>, why the love triangles are structuralised differently according to the periods, and breefly saying what the meaning of love triangle to him is when intrincing study of Leekwangsoo's novels. Interestingly, these love triangles are related to his biography, especially to his political deeds. This shows that the structure of love triangle in his novels and that of personal life are homologous or in intelligible relationship. I would start with the hypothesis that his novels based on the structure of love triangle constitute an <autobiographycal space> which structualise personal life relating his political deeds. I would prove this hypothesis and show that through writing novels he confronted what bothered him in the course of political compromise. The strutualisation of <protest> for <fair relation>: In Heattlessness(1917), the conflict of love triangle results from the dilemma which the subject has to face on one hand pursuing <desire>, on the other hand not being free of <duty>. It is noticeable that choice of <desire> signifies fair in spite of the <guilty conscience> accompanied by betrayal. This signification results from the structualisation of protest for <guilty conscience> through story structure making the choice of <desire> fair. When we consider Leekwangsoo's personal life, this love triangle's aspect corresponds to his compromise with Japan colonial goverment general through the medium of (Daily news) in 1916. And the structualisation of <protest> bears much relation to the author's belief that the compromise be necessary for survival of Chosun People under the Japan colonial governing. The strutualisation of <excuse> for <excessive relation>: In Resurrection(1924), The Soil(1932), Humaneness(1933), the conflict of love triangle results from the subject's <guilty conscience> accompanied by the choice of <desire> not <duty>. Unlike Heattlessness, the choice of <desire> is considered obvious fault at the first place. In this sense love triangle has undue relation implicitly. It is noticeable that nevertheless <guilty conscience> is considered to have room for excuse. This results from the structualisation of excuse for the excessive relation through story structure diminishing the weigh of <guilty conscience>. When we consider Leekwangsoo's personal life, this this love triangle's aspect corresponds to his continual compromise with Japan colonial goverment general after return from Shanghai in 1921. And the structualisation of <excuse> bears much relation to the tension between the compromise and his belief in national independance movement. The strutualisation of <repentance> of <undue relation>: In Life of Her(1934), The other shore of passion(1936), the conflict of love triangle accompanies the subject's repentance of betrayal in the course of pursuing <desire>. In Resurrection, The Soil, Humaneness, the choice of <desire> and <guilty conscience> are regarded as redeemable mistakes. But in these works, these mistakws are regarded as unredeemable at the first place. It is noticeable that nevertheless <guilty conscience> is object of repentance having no room for excuse. This results from the structualisation of repentance of undue relation through story structure downfall of character fair punishment, thus making the character reflect on past fault. When we consider Leekwangsoo's personal life, this this love triangle's aspect corresponds to his asceticism caused by continual misfotunes of failure of Tongwoo Association and his loved sons sudden death in 1934. And the structualisation of <repentance> bears much relation to the author's repentance of undue relation with Japan colonial goverment general. The strutualisation of <rationalisation> of <inevitable relation>: In Love(1939), Saint Wonhyo(1942), the conflict of love triangle results from the paradoxical situation that the subject should choose <desire> for <duty> inevitably. In the previous novels, the choice is regarded as excessive or undue for the choice is due to private <desire>. But the choice in these works is regarded as inevitable not. rather disposable at the first place. It is noticeable that nevertheless <guilty conscience> of inevitable choice does not exist, if so rationalised finally. This results from the structualisation of <rationalisation> of inevitable relation through story structure making the choice of <desire> necessary for fulfillment of <duty>, thus rationalising the <guilty conscience>. When we consider Leekwangsoo's personal life, this this love triangle's aspect corresponds to his conversion to Japan imperialism at the Tongwoo Association accident in 1939. And the structualisation of <rationalisation> bears much relation to his paradoxical belief that the conversion is inevitable for survival of Chosun People. As I have said, it is considerable that the love triangle constantly structualised in Leekwangsoo's novels bears much relation to his <guilty conscience> caused by his political deeds in his life rather than to intinsic value of love triangle in the novels. In other words, he cofront his <guilty conscience> caused by his political deeds through seemingly irrelevant to it love triangle, a fictional frame in his novels. It is noticeable that his <guilty conscience> is moral code endowed by his conscience as well as straightforward expression of sensw of shame caused by political compromise. In fact, the <guilty conscience> has posibility of relief by approval and confession in his novel. Theses approval and confession are performed by <protest>, <excuse>, <repentance>, and <rationalisation> according to the weight of <guilty conscience>. In other words, the confrontation of <guilty conscience> in his novels is effective controlling of his sense of shame caused by oscilliation between duty to Chosun and ambition sponserd by Japan colonial general in his real life. In the sense, Leekwangsoo's life-long writing of novels is the outcome of self conscious reflecting on his politicaliy up-and-down life and the result of mediation an possibility of self-rel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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