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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陳凱歌의 문인영화 연구

        宋蓮玉 淑明女子大學校 大學院 2004 국내석사

        RANK : 251695

        The 5th generation's movie of China in the 80's has an important timely meaning. At that time, China was opening an economic system to foreign countries while still keeping their socialism policy. The free ideology came into China with the opening flow, and it was influencing Chinese emotions and values. The influence is well shown in the 80's Chinese movie. Movie supervisors of the 5th generation had grown in the time of The Cultural Revolution(文化大革命). They are the main group, who have produced movies with a responsibility for the age, when culture and education became ruined after The Cultural Revolution. The movies are connected to literature. Those consist of the spirit of literary man that have the responsibilities, critical thoughts on the low class, and reality of the society. Chen Kai Ge(陳凱歌) is leader of the movie supervisors of the 5th generation, and is a thick literary man's spirit possessed person. He was raised by the parents, who were literary, and in movie fields. He had loved literary since he was young and then he betrayed his dad in The Cultural Revolution. Later on, this event gave him eyes to see Chinese society, individuals and thus become the motivation of his movies. His color as a literary man is well shown in his movies, such as ≪Yellow Earth≫, ≪King of the Children≫, ≪Life On a String≫, and ≪Farewell My Emperor≫. ≪Yellow Earth≫ promoted the Ke Lan's Sim Gok Hwoi Seong(深谷回聲: The Echoes Coming from the Deep Valley), a tragic ancient history about a wedding to Shan Bei(陝北)'s local - 96 - culture, and the Chinese history. ≪King of the Children≫ has dramatized the same title of a novel by A Cheng(阿城) and it analyzed the reality of education, and the symptom of culture that very keenly follows up. Chen Kai Ge made the life value of Shi Tie Sheng(史鐵生)'s novel, Myung Yak Geum Hyun (命若琴弦: The Life is The String) as the basic frame to his movie, ≪Life On a String≫. Then he made self-story movie through adding artificial idolizing, which was happening in The Cultural Revolution. ≪Farewell My Emperor≫ has adopted the same titled novel by Lee Bi Hua(李碧華). Chen Kai Ge confessed about The Cultural Revolution in this movie very clearly. Besides his dramatizing stories with scenarios, he wrote an essay, which describes vividly about each of his movies that was made through creative process. His creative power is originated in The Cultural Revolution and he mentions the influence of The Cultural Revolution and individuals based on his experience. He approaches the point little by little, then he speaks very plainly on his experience in the movie, ≪Farewell My Emperor≫. Also Chen Kai Ge movies show strongly the literary man's thought, with respect to the independence and freedom of individuals. The main characters of the movie are the weak and unfortunate in society. The audience falls in love with the main characters of the movie watching their lives just like the producer through identifying with the main characters. It makes the audience look back on the resources of their unfortunate life, which is the reality of society and history. But after he gushed out The Cultural Revolution, and unresolved knots in ≪Farewell My Emperor≫, he could not make movies with any depth. His movies rushed into formal idealism, and they became commercialized. I wish that Chen Kai Ge makes movies like he made before, which are taking the depth of literature, and giving life in movies which analyze the change of society and the nature of human beings. 1980년대 중국의 제5세대 영화는 시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고수하면서도 경제개방을 실시했다. 개방과 함께 전해진 자유사상은 중국인들의 정서, 가치관 등에 영향을 끼쳤고, 80년대 영화속에는 이러한 정서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이 담겨져 있다. 제5세대 감독들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성장기를 보냈으며 문화대혁명 후에 폐허가 된문화, 교육의 현장에서 시대적인 책임을 가지고 영화제작에 주력한 一群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이 文以載道 정신으로 그들의 뜻을 펼쳤던 것처럼 제5세대의 영화는 하류계층, 사회현실에 대한 책임감, 비판정신이 담아내어 영화를 통해 시대적인 책임을 나타내었다. 또한 형식적인 면에서 가히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인 특징이 보인다. 陳凱歌는 문학과 영화에 종사한 부모에게서 자랐고 어릴 적부터 문학을 사랑해왔다. 문화대혁명 시절에 아버지를 배반한 사건은 이후 중국사회와 개인을 깊게 통찰하는 계기와 영화창작의 모티브가 되었다. 훗날 그는 유명한 제5세대 감독의 리더가 되었으며 문인정신이 가장 농후한 감독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그가 문인감독이라 칭해지는 까닭은 영화 원작인 문학작품이 영화로 각색되는 과정 속에 중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가미되고 다듬어져서 깊이 내용의 영화가 되기 때문이다. 陳凱歌의 영화 ≪黃土地≫, ≪孩子王≫, ≪邊走邊唱≫, ≪覇王別姬≫는 그의 문인적인 색채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黃土地≫는 柯藍의 ≪深谷回聲≫이란 비극적 혼인고사를 陝北지방의 문화와 중국의 역사로 승화한 영화이다. ≪孩子王≫은 阿城의 동명소설을 각색하여 교육현실과 문화 답습현상에 대해 예리하게 해부한 영화이다. 陳凱歌는 영화 ≪邊走邊唱≫에서 史鐵生의 인생 哲理를 기본틀로 삼았다. 그리고 여기에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인위적인 우상화 현상을 접목시켜 陳凱歌의 자전적 영화로 만들었다. ≪覇王別姬≫는 李碧華의 동명소설을 각색하였다. 이 영화에서 陳凱歌는 문화대혁명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고백한다. 그는 영화 시나리오 각색 외에도 각 영화의 창작과정을 담은 수필을 적어 영화의 생명이 살아나기까지의 과정을 생생이 적어내었다. 그의 창작 원동력은 문화대혁명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문화대혁명이 개인과 사회에 끼친 영향을 언급한다. 그는 처녀작에서부터 조금씩 접근해서 영화 ≪覇王別姬≫에 이르러서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陳凱歌 영화는 개인의 가치와 자유를 존중하는 인문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사회적 약자, 불행한 사람들이다. 관객들은 이들의 삶 속에서 창작자와 동일하게 이들에게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는 사회현실과 역사를 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陳凱歌는 영화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중국과 연관시켜 과감하게 표현해 내었다. 그러나 ≪覇王別姬≫에서 문화대혁명과 얽힌 응어리를 모두 분출한 후에는 이전의 영화만큼 깊이 있는 영화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영화가 점점 형식적으로 치닫고 상업 영화화된다. 필자는 陳凱歌가 이전의 작품처럼 문학의 깊이를 영화로 잘 살려내고, 시대의 변화와 인간이 본성을 분석하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

      • 《左傳》에 使用된 《詩經》詩 硏究 : 外交辭令을 중심으로

        이현정 숙명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51695

        《詩經》은 중국문학의 시조로 西周 초인 B.C. 1100년 무렵부터 春秋 중엽인 B.C. 600년 무렵에 이르는 약 500년 사이에 지어진 민간가요와 사대부들의 작품 및 왕실의 연회 ? 의식이나 종묘에서 제사지낼 때 부르던 노래의 가사들을 후세 사람이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다. 《詩經》詩는 文辭가 아름답기 때문에 문학적 가치는 일찍부터 세계적으로 인정되었고, 연구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詩經》이 발생할 당시에는 이러한 문학적 가치보다는 실용적 가치를 더 중요시 하였다. 孔子는 타국에 사신으로 파견되는 자는 詩三百을 외우고 운용할 수 있어야 專對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로 미루어 春秋時代 《詩經》은 외교사령의 기능을 수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左傳》에 외교사령으로 사용되고 있는 《詩經》詩에 대해 연구하여 《詩經》詩가 가진 언어로서의 기능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였다. 《詩經》이 외교사령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 사회적 배경, 그리고 詩가 가진 특징과 외교사령이 가진 특징과의 부합성에 의한 것이다. 이에 먼저 春秋時代의 시대적 배경을 그 전 시대인 西周時代와 함께 고찰해봄으로써 어떻게 하여 외교가 성립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西周時代로부터 이어진 春秋時代의 禮樂文化를 통해 《詩經》詩가 외교사령으로 발전해 간 과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외교적인 석상에서 사용되는 특수언어인 외교사령이 가지는 특징과 이에 부합하는 詩가 가진 특징들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詩가 외교사령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내적 요인들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詩經》이 외교사령으로 발전한 원인들을 알아본 후 《左傳》중 외교석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詩經》詩를 살펴보았다. 외교는 두 개 이상의 국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정의에 근거하여 《左傳》에 사용되고 있는 《詩經》詩 중 양국의 국가대표들이 만나는 상황에서 사용된 것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리고 《詩經》詩가 어떤 방법으로 쓰이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방법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설명하고, 각 방법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도표로 정리해 보았다. 또한 이렇게 사용된 詩들이 어떤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지에 대해 《左傳》에 기재된 외교상황, 詩의 내용, 十三經注疏에 나타난 설명, 詩를 사용한 사람과 수용자 간의 대화 등을 참고로 하여 분석하였다. 《左傳》에 사용되고 있는 《詩經》詩는 詩의 전체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한 章 또는 2句내지 4句에서 뜻을 취하는데 이를 斷章取義라 한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斷章取義분석이라고 하여 詩를 읊은 사람의 뜻이 담긴 章과 句를 찾아내어 詩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詩를 통해 크게 요청, 거절, 승낙, 환영, 우호, 찬미 비판, 설득 등의 다양한 뜻을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春秋時代 《詩經》詩가 언어의 기능을 가지고 외교사령으로 사용된 것은 春秋時代가 가진 특징과 당시의 詩에 대한 인식 그리고 詩가 가진 특징 등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또한 斷章取義의 기풍은 詩가 광범위하게 운용될 수 있는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詩經》발생 당시 《詩經》詩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고, 아울러 《詩經》의 실용적 가치에 대해서도 재고해 보게 될 것이다. 《Shijing》 is a founder of Chinese literature and it is the book that future generations had arranged and edited folk songs, the nobility`s poems, and words which was song when the royal family hold a banquet or perform a ceremony for 500years from early XiZhou B.C.1100 to the middle of the time of Chunqiu B.C.600. Although the literary worth of《Shijing》is acknowledged all over the world and study of it has been done actively, but at the time of originating 《Shijing》 practical worth was more important than literary worth. Kongzi said that the envoy who dispatch foreign have to memorize 《Shijing》poems and can apply them at will after then they can have diplomatic ability. From his word we can guess that 《Shijing》has diplomatic function in Chunqiu period. On this I study about 《Shijing》poems which were used as diplomatic language in 《Zuozhuan》. The reasons that 《Shijing》 could be developed as diplomatic language are in historical and social background, and by correspondence poem`s feature with diplomatic language`s feature. Therefore first I study how diplomacy come into being by researching about historical background of Chunqiu period with its post period Xizhou period. Also I could understand progress of 《Shijing》 developed as diplomatic language by studying about culture which is combine etiquette with music(Lile Wenhua) from Xizhou to Chunqiu period. And I study about 《Shijing》`s internal causes which can develope as diplomatic language by researching how poem`s feature is coincide with the feature of diplomatic language. After study about reasons which 《Shijing》 was developed as diplomatic language, I study about 《Shijing》poems which were used in 《Zuozhuan》. I chose 《Shijing》poems which were used at diplomatic situation in 《Zuozhuan》. The diplomatic situation is the situation which representative of two or more country meet. And I explain about methods of using 《Shijing》poems and feature of those methods, then according each method I made a chart. Also I analyzed what these 《Shijing》poems which is used in 《Zuozhuan》 mean by studying situation which is written in 《Zuozhuan》, substance of poem, annotation of 《Shisanjingzhushu》 and a dialogue. 《Shijing》poems which were used in 《Zuozhuan》 take meaning in one chapter, 2 verses or 4verses not adhering entire poem`s contents, and this is called ‘Duanzhangquyi’(taking meaning in part). Therefore I tried to grasp the intention of poem user by finding the chapter and verses which contain intention of poem user and I named this progress as ‘Duanzhangquyi analyzing’. As a result of this analyzing I found that 《Shijing》poems represent various meaning for instance request、rejection、acceptance、welcome、friendship、praise、criticism、advice、persuasion and so on. The reasons that《Shijing》poems could be used as diplomatic language in Chunqiu period is combination of feature of Chunqiu period, viewpoint of poem and poem`s feature. The custom of ‘Duanzhangquyi’ also played important role which made 《Shijing》poems were applied widely. This study can help understanding of viewpoint of 《Shijing》 at the time of its originating, in addition through this study we can reconsider practical worth of 《Shijing》.

      • 品第法硏究 : 詩·書·畵를 中心으로

        김명희 明知大學校大學院 1994 국내석사

        RANK : 251695

        在中國文學史上, 魏晋南北朝是批評文學發展的最活潑時代. 劉□的 《文心雕龍》, 鐘嶸的 《詩品》 是代表當時批評文學的典型作品. 尤其鍾嶸的 《詩品》 是關於詩批評的專門理論書籍. 《詩品》 用品第法來批評詩人, 在當時 藝術批領域也在用品第法來批評作家. 這樣用品第法來批評作家的作法, 不是-時形成的, 而是由先素時代的人物品評, 如漢代的班固的 《漢書·古今人表》, 魏晋時代的九品中正制, 才性理論凌的才性論等, 人物品評書籍出現以後才形成的, 因此鑛嶸所著的 《詩品》用品第法來批評詩人不是偶然的. 還有人□發現鍾嶸的 《詩品》□書法論, 繪畵論在批評用語上有許多共同點. 所以推側這三個不同領城的批評書籍相互有一定的關係.

      • 「妻妾成群」과 「大紅燈籠高高掛」의 비교연구

        백현주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51695

        蘇童是代表1980年代後半的中國先鋒派的作家. 他的代表作品是《1934 年的逃亡》《紅粉》《妻妾成群》等等. 其中張藝謀選擇了《妻妾成群》然 後改編成電影《大紅燈籠高高掛》. 張藝謀爲這個蘇童的, 頗有后現代意味 的歷史故事選取了一個博物館作爲?呈現的舞臺. 本來原作的主要內容是陳家 內的妻妾間的鬪爭與悲劇. 張藝謀改編的時候創造紅燈 ? 四合院 ? ?脚這些 三個要素加以主題意識. 張藝謀經驗過文化大革命與天安門運動和失敗, 所 以借陳家內的妻妾間的鬪爭與悲劇, 他表達了中國社會主義的矛盾和這樣的現 實內中國知識分子的無能力和悲哀. 這片電影不僅受西方的電影專門家和觀衆 的讚揚而且提名了美國第64??斯?金像?最佳外語片. 本稿以對中國電影第五代之一的張藝謀電影《大紅燈籠高高掛》與當代先鋒 作家之一蘇童的《妻妾成群》比較硏究爲主要目的. 爲了弄淸這兩個作品的 創作背景, 第二章分成了三個部分. 首先考察了文學在中國電影, 然後探討了 第五世代電影的主要特徵與1980年代先鋒作家之風格. 下次仔細考察了張藝 謀與蘇童的生平和創作世界. 第三章從總體的比較角度來分析《妻妾成群》與《大紅燈籠高高掛》. 首 先, 考察了這兩個作品的結構. 則在這個部分始終探討了原作的結構??改 編電影的結構. 其次探討了語言方面的特點. 考察了把小說的語言??融合 電影的語言. 再次考察了在作品主要人物. 分析了以頌蓮與陳佐千爲主, 探討了張藝謀 在他的電影把原作的主要人物形象??再創造. 最後考察了含有對於原作與電影的女性人物壓迫和慾望的象徵. 除去廢井 以外紅燈 ? 四合院 ? ?脚都是張藝謀創作的. 上面所說, 張藝謀爲了表達主 題意識在把小說改編成電影時加進紅燈 ? 四合院 ? ?脚. 通過以上的探討, 可以知道, 《妻妾成群》??改編成《大紅燈籠高高掛》 和 改編電影以後的成就, 而且《妻妾成群》和《大紅燈籠高高掛》的主題意 識.

      • 越劇 《梁山伯與祝英臺》硏究 : 悲劇性을 中心으로

        김세경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51695

        具有一千六百多年悠久曆史的《梁山伯與祝英台》被人們稱爲東方的《羅密歐與朱麗葉》,與《白蛇傳》、《牛郞織女》、《孟姜女》一同被列爲中國四大民間傳說,不僅在中國廣爲流傳,甚至在國外也是倍受許多人喜愛的故事。梁山伯與祝英臺故事形成于浙江一帶,起初爲口頭流傳,后來出現了小說、戱曲等多種文學形態,在明、淸年間進一步得到了發展。在衆多的文學形態中,尤其是在戱曲形態中的發展更加引人注目。其中,以地方戱-越劇最具代表性,作爲表演藝術,也受到了許多觀衆的喜愛。相對于其家喩戶曉的知名度來說,本人對作品的硏究還相當欠缺。本論文正是圍繞着這部作品的悲劇性進行硏究的,把作品的悲劇視爲當時中國古代女性的悲劇縮影,以本作品的女主人公祝英台爲中心,對作品進行分析。越劇≪梁山伯與祝英台≫以祝英台熱衷于學業展開了故事的開端,描寫了祝英台女扮男裝、與當時家長式保守社會之間的摩擦,以及在此過程中演繹出的愛恨情仇、生死別離,反映了其反封建意識和崇尙愛情自由的思想。 本作品以悲劇色彩的女主人公祝英台爲中心展開故事情節,在了解中國古代女性的悲劇之前,首先讓我們了解一下有別于西方悲劇的中國式悲劇的特点,幷根据中國悲劇的特点和槪念來分析本作品的悲劇結構,可以肯定的說本作品具備了中國古典悲劇的特点和完整的悲劇結構。首先了解了祝英台這一悲劇性女性出現的當時那年代傳統的女性觀念和女性的實際情,就完全可以理解祝英台在本作品中所呈現出的悲劇,其罪魁禍首便是當時中國封建社會男女不平等的觀念和不合理的偏見。 本作品反映出女性在接受敎育方面的局限性,卽,在男女敎育機會不平等的當時社會中,雖然祝英台用女扮男裝的方式試圖實現對學業的追求,但實際上女扮男裝本身也在男尊女卑的意識 架之內,幷不能解決根本性問題,這也正是導致女性悲劇的主要原因。本作品中體現的女性局限性是婚姻和愛情問題。在以家長式意識形態爲主的當時社會中,祝英台未能克服與社會的矛盾,最終選擇了死亡。但祝英台的死去也幷非問題的解決方法,反而成爲又一反映女性局限性的悲劇。 在本作品中,祝英台身爲女性爲了擺脫當時封建禮敎的枷鎖做出了努力,但均爲消極性的方法,却不能解決當時社會的根本性弊端,仍然存在着局限性。但祝英台至少與當時以三從四德爲美德的普通女性不同,意識到了自己所處的不合理的現實環境,幷試圖跨越現實的鴻溝,僅這種嘗試本身卽是一種極具价値的行爲。 약 千六百 여년의 긴 역사를 갖고 있는 <梁山伯與祝英臺>는 동양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불리며 ≪白蛇傳≫, ≪牛郞織女≫, ≪孟姜女≫와 함께 중국의 사대민간 전설중 하나로 중국내뿐 아니라 국외로까지 전래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사이다. 梁山伯與祝英臺고사는 浙江일대에서 생성되어 구전되어 오다 소설, 희곡등의 다양한 문학 장르로 나오며 明, 淸代에 이르러 더욱더 발전을 보이게 된다. 여러 문학 장르중 특히 희곡장르에서 두드러진 발전을 보이는데 이중 지방극인 越劇의 대표작으로 알려지며 공연 예술로서도 많은 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본 논문은 우리에게 알려진 인지도에 비해 연구가 상당히 미미하게 이루어진 본 작품을 비극성 중심으로 연구한 것으로 작품의 비극을 당시 고대중국 여성의 비극으로 보고 본 작품의 여주인공인 祝英臺를 중심으로 본 작품을 분석하였다. 越劇 ≪梁山伯與祝英臺≫의 구성은 祝英臺의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펼쳐지는 남장사건과 당시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와의 마찰을 보이며 일어나는 사랑의 갈등, 반봉건의식과 숭고한 애정의 자유의지를 그려내며 죽음의 재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본 작품은 비극의 주체가 되고 있는 여주인공 祝英臺를 중심으로 전개 되어가고 있는데 먼저 여성의 비극을 살펴보기에 앞서 일반적인 서양비극과 차이점을 보이는 중국비극의 특징을 살펴보고 중국비극만의 특징과 개념으로 본 작품의 비극적 구조를 분석하여 본 작품이 중국고전 비극의 특성과 完整한 구조를 갖춘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祝英臺의 비극성을 이해하기위해 작품속의 비극적인 여성이 탄생하기까지의 배경이 되었던 당시 시대의 전통적인 여성관과 여성들의 실상을 살펴보며 祝英臺가 본 작품에서 보이는 비극은 봉건적인 당시 중국사회의 남,녀의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편견에 의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 작품에서 보이는 여성의 교육수혜의 한계는 남성들과 동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사회에서 祝英臺는 남장이라는 방법을 취하여 학문의 뜻을 이루려 하나 사실 祝英臺가 선택한 남장이라는 방법 역시 남성이라는 역량 안에서 해결되고 있으며 근본 적인 문제는 해결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여성의 비극이 되고 있는 것이다. 본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비극은 혼인과 애정 문제의 비극인데, 가부장적인 당시 사회와 갈등을 보이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여 결국 英臺는 죽음을 택하게 된다. 바로 이 英臺의 죽음이 문제의 해결책이 아닌 여성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본 작품 속에서 祝英臺가 여성이라는 신분으로 당시의 봉건예교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취하는 행동들은 소극적인 방법들로 당시 사회의 근본적인 병폐는 해결하지 못하고 여전히 한계성을 보이고 있으나, 오로지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며 사는 일반 여성들과는 달리 자신 앞의 불합리한 현실을 자각하고 이러한 현실의 벽을 넘어서려 하였던 英臺의 시도만은 상당히 높이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元雜劇 《竇娥寃》과 《햄릿》의 比較硏究 : 悲劇性을 中心으로

        안지영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51679

        The aim of this dissertation is to consider Za-ju(雜劇) of Gaun Han-Qing(關漢卿), dramatist of Yuan-dai(元代) and Hamlet, a representative masterpiece of English tragedy, focusing on the their tragic aspect. Tragedy in China has a shorter history as compared to that in West. Consequently, its theory has not been established in an perfectly organized form. Contemplating on Chinese Classical tragedy is not the major aim of this article, but the general characteristics of Chinese Classical tragedy will be mentioned if necessary in the analysis of the tragic aspect of Dou-E Yuan(竇娥寃: The Grudge Of Dou-E). In Chapter 2, I gave a detailed account of the author Gaun Han-Qing(關漢卿) and the life and works of W. Shakespeare. In that process, I found that the two writers had lived in turbulent social atmosphere and pursuing two careers of writer and actor made it possible to create pieces full of life. In Chapter 3, I had a brief review of the general meaning and definition of tragedy, analysing and comparing Dou-E Yuan(竇娥寃) and Hamlet on the basis of plot and major characters. Dou-E Yuan(竇娥寃), a story of the tragic life of Dou-E(竇娥), is a representative work of 13th century Yuan-dai(元代), She was born in a lowest class in feudal society. Losing her mother at the age of 3, she came to be brought up by the family of her husband-to-be. Living with her future mother-in-law and getting married at the age of 17, she had to face her husbands early death. On the contrary, the hero of Hamlet came from the highest rank, a royal family. He is a prince who is guaranteed wealth and prosperity. They seems to have nothing in common, but with a closer look, a couple of common features can be found: Both Dou-E(竇娥) and Hamlet did their best to tend their parent with filial duty in times of utmost trouble, even though when it is impossible not to resent their mother or mother-in-law. Ghosts are one of the major motives shown in both works. They are the victims of wicked men, taking the essential role of developing story and elevating tragic mood. Through the analysis and comparison above, I conclude that the two works of tragedy, Dou-E(竇娥) and Hamlet, representative of East and West respectively, share many common features. And different manifestations of those by the two author should also be noted. 本稿의 목적은 中國 古典 悲劇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元代 關漢卿의 雜劇《竇娥寃》과 英國 古典 悲劇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햄릿》을 悲劇性을 中心으로 考察하는 데에 있다. 中國에서의 悲劇에 관한 논의는 西洋에 비해 그 역사가 짧은 편이며 中國 나름대로의 체계적이고 완정한 悲劇 理論은 아직 정립 되어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本稿에서는 中國 古典 悲劇의 特性을 考察하는 것을 주된 目的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竇娥寃》의 悲劇性을 分析하는 過程에서 中國 古典 悲劇의 일반적인 특성에도 접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 2장에서는 작가 關漢卿과 셰익스피어의 生涯와 創作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하여, 두 作家는 모두 격동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살았으며, 그들은 극작가이자 배우를 겸하여, 더욱이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쓸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그 작품들이 현재까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며 연구되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 3장에서는 悲劇의 一般的인 意味와 中國 文學에 나타난 悲劇性을 간략히 살펴보았고, 《竇娥寃》과 《햄릿》을 플롯과 人物形象으로 나누어 比較 分析해보았다. 《竇娥寃》은 13세기 元代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竇娥의 悲劇的인 일생을 다루고 있다. 竇娥는 봉건 사회의 최저 하층민으로 세살에 모친을 여의고, 일곱 살에 부친을 떠나 민며느리로 들어가게 된다. 어린 나이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열일곱 나이에 혼인하였으나 두해를 넘기지 못하고 남편과 死別하게 된다. 이에 반해 《햄릿》의 주인공인 햄릿은 최상층인 한 나라의 왕자이며, 부귀를 누리며 살아왔다. 이들 주인공에게서 공통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여러 가지의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竇娥와 햄릿은 시어머니나 어머니를 원망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과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道德觀念을 遵守하고 孝를 다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두 작품에서 보여지는 魂鬼는, 모두 사악한 무리의 희생물이었고, 줄거리를 촉진 시키는 역할을 하였으며, 비극의 분위기를 과장하여 비극 효과를 증강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비교 분석을 통하여, 《竇娥寃》과 《햄릿》은 비록 다른 시대와 다른 문화권을 가진 두 작가에 의해 창작된 작품이나, 동 서양의 비극을 대표하는 두 작품 안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 공통점이 각 작가에 의해 사뭇 다른 면모로 드러나는 것도 살필 수 있었다.

      • 《石點頭》 연구

        송현정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51679

        《石點頭》這部擬話本小說集創作於明代崇禎年間,作者天然痴 . 馮夢龍爲《石點頭》寫的序文中稱作者爲浪仙, 從馮夢龍爲張瘦郎的曲集《步雪初聲》所作的序文中,我們可以得知浪仙卽席浪仙,爲張氏門徒.《石點頭》最早由金 葉敬池書坊刊刻, 目前韓國漢城大學校圖書館藏有此刊本.《醒世恒言》也是由金 葉敬池書坊刊刻的. 韓南認爲天然癡 應該參與了馮夢龍《醒世恒言》的創作. 崇禎朝是明代最後一個朝代. 內憂外患加劇, 外有後金的屢次入侵, 國內則由於稅金·賦役超重激起民變. 政治上宦官與東林黨之間衝突不斷, 整個社會上至皇帝, 下至百姓, 法度松懈, 風俗混亂. 雖然《石點頭》的作者在創作中, 大多假託前代爲時代背景, 但小說內容反映了當時明代的社會情況. 特別如卷十一〈江都市孝婦屠身〉, 記戰亂中人食人的慘狀. 可使讀者窺見明末慘烈的社會現實. 由於卷十四〈潘文子契合鴛鴦塚〉有關於同性戀內容的描寫, 此書被淸代列爲禁書.《石點頭》大力强調孝道和貞節, 作者的思想 保守. 通過孝子烈女等人物形象的刻畵, 表明了自己的思想意圖, 作者希望敎諭民衆, 使頑石點頭, 端正世風. 爲此, 作者不斷在作品中强調因果報應, 勸人爲善, 稱頌屈原·田橫一類有道義的人物, 以期達到立綱紀, 正倫常的目的. 在創作上, 作者采取了諷刺的藝術手法, 對腐敗的社會現實進行了批判, 運用夢幻的創作手段, 表現了自己對理想社會的追求. 《石點頭》雖然在思想上沒有超越傳統價値觀念之處, 甚至顯得落後保守, 但由於 深刻地反映了當時的社會現實, 對於我們了解明末社會, 有着較高的認識價値. 《石點頭》는 명대 崇禎년간의 話本小說集이다. 작자는 號를 天然癡?라 하 고 馮夢龍이 쓴 이 책의 서문에는 號를 浪仙이라고도 했다. 또한 馮夢龍이 序 文을 썼던 張瘦郞의 曲集《步雪初聲》注에서는 浪仙을 席浪仙이라 했다. 최초 의 판본은 金?葉敬池書坊에서 간행되었고, 한국의 서울대학교 도서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이 書坊은 馮夢龍이《醒世恒言》을 간행한 곳이기도 하다. 미 국의 韓南(Patrick. hanan)은《石點頭》의 저자가《醒世恒言》을 공동 창작한 협력자 중 한사람이라고 보았다. 이 작품이 창작된 崇禎년간은 명나라가 멸망 하기 직전의 시기였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後金의 외침이 잦고 대내적으로는 조세와 부역이 과중하여 백성들이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고, 宦官과 東林黨 간의 黨爭이 끝없이 계속 되었다. 사회적으로는 황제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 지 기강이 해이해지고 풍기가 문란했다. 비록 작자가 前代의 일이라 假託했지 만,《石點頭》에는 명말 당시의 혼란한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江都市 孝婦屠身〉권11에서는 반란의 와중에 남의 人肉을 먹는 참상을 그렸고,〈潘文 子契合鴛鴦塚〉권14에서는 동성애를 다루었고 청대에는 禁書조치되었다. 《石點頭》는 孝道와 貞節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다. 작자는 孝子와 烈女등의 인물을 내세워 亂世를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방 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해이해진 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백성들에게 宿命論과 因果應報를 강조했고, 屈原과 田橫처럼 의리 있던 故人을 神聖시했 다. 諷刺를 통해 부패한 사회에 일침을 가했고, 夢幻의 수법을 동원해 작자 자 신이 바라는 理想사회의 모습을 제시했다.《石點頭》가 封建禮敎의 통념을 깨는 색다름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당시 사회를 엿볼 수 있는 기록으로써의 가치를 지닌다.

      • ‘發憤著書’에서 ‘窮而後工’까지

        김지민 中央大學校 大學院 2009 국내석사

        RANK : 235343

        In all ages and countries, the hardship of a writer often becomes an opportunity for him to create an excellent literary work. A man in adversity exerts every effort to break through his reality in general. A writer also can make the most of his distress and then positively create a more refined and elaborate work. In this regard, the aim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influence of a writer's situation upon his creative activities and looked into the positive effect of a writer's distressing environment upon his creation of work as well. Simaqian(司馬遷)'s 'fafenzhushu (發憤著書)' theory is a literary philosophy some literary persons in his posterior generations have invented by combining his tragic life and his work of Shiji (史記). This theory demonstrates the intimate relationship between the writer's painful situation and his creative activities. Among the theories of literature which concretely connecting both sides together, the 'fafenzhushu' theory seems to be the earliest. The literary theory of Simaqian's 'fafenzhushu' can be traced back to Shijing (詩經) or Huainanzi (淮南子) as its origin. In addition, in Shiji, Simaqian lists a variety of figures who sublimate their historically distressing situations to the creation of works and then proves the sense of 'fafen (發憤)'can be functioned as a sufficient motive for the creation of works. Thus, Simaqian's 'fafenzhushu' theory has been handed down to numberless literary persons in later generations and then improved and developed toward different directions. In this study, the investigator examined the connectivity of Hanyu (韓愈) and Ouyangxiu(歐陽脩)'s advanced theory with 'fafenzhushu' theory in detail by making both persons as representative literary men in the Tang and Song Dynasties respectively. Based on his distressing life and his friends and acquaintances' desperate life whose representative is Mengdongye, Hanyu raises a literary theory of 'bupingzeming (不平則鳴)', that is 'If there is inconvenience in the heart, one cannot but cry.' In this study, in relation to the literary theory of 'shiyanzhi (詩言志)' among a variety of literary origins of 'bupingzeming', the investigator regards both fields of 'pleasant (樂)' and 'sadness (哀)' as having to do with the creation of literary works, which are developed from the aspect of 'fafen' that is regarded by Simaqian as a motive of creation of literary works. However, Hanyu contrasts a peaceful situation with a distressing situation and then views that the latter can make the expressiveness of work more excellent. In this vein, the investigator thinks that Hanyu's pinpoint of argument is in the sense of inconvenience generated from 'sadness' and then verifies its literary connectivity with 'fafenzhushu' theory. Having the literary influence of Hanyu, Ouyangxiu clarifies the 'qiongerhougong (窮而後工)' theory on the basis of his life and Meiyaochen(梅堯臣)'s life. Being theoretically established by his former generations, the theory that a writer's distressing situation and his creation of literary works are closely related makes Ouyangxiu analyze the causal inevitable relationship between both things. He implies numberless distressing circumstances a writer happens to encounter as 'qiong (窮)' and clarifies how the achievement of works appears as 'gong (工)' from the aspect of environment, thought and literature in detail. Thus, Simaqian's literary theory of 'fafenzhushu' of which philosophy is to write a book with the explosion of indignation becomes to broadly understand the motive of creation via Hanyu's 'bupingzeming' and claims that the work which presents distressing emotion becomes better. By the time of Ouyangxiu, the theory can objectively clarify the reason why a writer's desperate situation can positively function for his works. 古今中外,作家逆境出成果之事屢見不鮮。大凡身處逆境之人,爲擺脫困境而更加努力。對一&#20010;作家而言,困境可成爲使其作品更加細&#33193;、更加精湛的積&#26497;因素。因此,本論文旨在了解作家的處境對其創作活動所産生的影響,幷分析困境能&#22815;如何對作家的創作活動起到積&#26497;作用。 司馬遷的“發憤著書”說是后世文人將《史記》&#19982;其悲劇性的一生結合而提出的文學理論。該理論表明作家痛苦的處境&#19982;其創作活動緊密相關,是最初將兩者具&#20307;地聯系在一起的文學觀。司馬遷的“發憤著書”文學理論,其文學起源可追溯到《詩經》和《淮南子》等。司馬遷在《史記》中也曾言及以創作克服困境的各類人物,幷&#35388;明“發憤”之感情在著述活動中可成爲充分的創作動机。 上述的司馬遷的“發憤著書”說,流傳于无數后世文人之中,在不同時代分別向不同的方向得到了深化和發展。本論文將韓愈和歐陽修分別作爲唐代和宋代的代表文人,更加詳細地談論了他們的理論&#19982;“發憤著書”之間的聯系及經發展后的理論。 韓愈根据自己窮困的一生和以孟東野爲代表的周圍人物不得志的一生爲基&#30784;,提出了“不平則鳴”的文學理論。在“不平則鳴”的各&#31181;文學&#28170;源中,本論文聯系“詩言志”的文學觀念,從司馬遷認爲的文學創作的動机&#8212;&#8212;“發憤”這一角度出發,進一步提出了“樂”和“哀”兩方面均可影響到文學創作的觀点。而韓愈對作家安恬的生活狀&#20917;和窮困的生活狀&#20917;進行比較后,發現后者使作品的表現力更加出色。因此本人認爲韓愈的論旨在于因“哀”而生“不平”之感情,進而理解了&#19982;“發憤著書”說的文學聯系。 受到韓愈影響的歐陽修,總結自己和梅堯臣的生涯而得出了“窮而后工”之說。前人總結出的作家的不幸處境&#19982;其創作之間的關系,使歐陽修分析了兩者因何具有必然的因果關系。歐陽修將作家所處的无數的不幸遭遇槪括爲“窮”,從&#29615;境、思想、文學角度詳細地分析了他們的作品表現出“工”的過程。 如上所述,因憤發而著述的司馬遷的“發憤著書”這一文學理論,經韓愈的“不平則鳴”之后,更加&#24191;泛地理解了創作的動机,幷提出了表現出不得志之感情的作品更加出色的主張;后來歐陽修通過“窮而后工”的文學理論,能&#22815;客觀地說明了作家所處的“窮”境起到積&#26497;作用的原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작가가 처한 어려운 환경은 오히려 그들에게 더욱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게 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대개 사람이 역경에 처하게 되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더욱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바, 작가에게 있어서도 작품을 더욱 섬세하고 정교하게 하는 곤궁한 환경은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의 처지가 창작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 작가의 곤궁한 환경이 어떻게 작품 창작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분석하는 것을 본 논문의 목적으로 삼고자 했다. 司馬遷의 ‘發憤著書’說은 후대 문인들이 그의 비극적인 삶과 『史記』라는 저작을 연관시켜 언급한 문학이론이다. 이는 작가의 고통스런 처지와 창작활동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내며, 양자를 구체적으로 관련지어 나타낸 문학관 중 가장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司馬遷의 ‘發憤著書’ 문학이론은 『詩經』이나 『淮南子』 등으로 그 문학적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또한 司馬遷은 『史記』 속에서 역사적으로 곤궁한 처지를 창작으로 풀어낸 다양한 인물들을 언급하며 ‘發憤’의 감정이 저술활동에 있어서 충분한 창작의 동기로 작용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司馬遷의 ‘發憤著書’說은 수많은 후대 문인들에게 전해져 각각의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방면으로 심화 및 발전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韓愈와 歐陽脩를 각각 唐代와 宋代의 대표적 문인으로 삼아 그들의 이론이 ‘發憤著書’와 갖는 연관성 및 발전된 이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언급하였다. 韓愈는 그 자신의 곤궁했던 생애와 孟東野를 대표로 하는 주위 인물들의 不得志한 삶을 바탕으로 “有不得已者而後言”이라는 ‘不平則鳴’ 문학이론을 제기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不平則鳴’의 다양한 문학적 연원 가운데 ‘詩言志’ 의 문학 관념과 연관하여, 司馬遷이 문학 창작의 동기라고 간주했던 ‘發憤’ 측면에서 발전하여 ‘樂’과 ‘哀’의 두 방면이 모두 문학창작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韓愈는 작가의 평화로운 상황과 곤궁한 상황을 대비하며 후자의 경우에 작품의 표현력이 더욱 뛰어나다는 점을 밝혀내었다. 때문에 ‘哀’로 인해 생겨난 ‘不平’의 감정에 韓愈의 논지가 있다고 파악하여 ‘發憤著書’說과의 문학적 연관성을 이해하였다. 韓愈의 문학적인 영향을 받은 歐陽脩는 자신과 梅堯臣이 겪었던 생애를 총괄하여 ‘窮而後工’說을 밝혀냈다. 전인들이 개괄해 낸 작가의 불우한 처지와 그들의 창작 간의 관계는 歐陽脩로 하여금 양자가 어떠한 이유로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가지게 되는지를 분석하도록 했다. 歐陽脩는 작가가 처하게 되는 수많은 불우한 처지를 ‘窮’으로 함축하고 작가의 환경적·사상적·문학적 측면에서 그들의 작품성과가 ‘工’하게 나타나게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밝혀냈다. 이처럼 분을 발하여 저술한다는 司馬遷의 ‘發憤著書’ 문학이론은 韓愈의 ‘不平則鳴’을 거치면서 창작의 동기를 폭넓게 이해하는 한편, 不得志한 감정을 나타낸 작품이 더욱 좋아진다는 주장을 제기하였으며, 歐陽脩에 이르러 ‘窮而後工’ 문학이론을 통해 작가의 窮한 처지가 작품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원인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 孔尙任의 文學理論과 實際- 詩와 傳奇를 중심으로 : 詩와 傳奇를 중심으로

        김은주 전남대학교 대학원 2003 국내박사

        RANK : 235343

        공상임은 淸왕조 정권이 공고했던 康熙년대에 생활하였던 문인이다. 淸代는 전통문학을 집대성했던 시기로 모든 문학이 구현되고, 정리되었던 시기이다. 따라서 중국의 고전 문학양식이 모두 등장하여 연구·검토되었으며, 이론 역시 온갖 방법과 방향이 동원되고 있었다. 이런 淸代 康熙 년간에 孔尙任은 理論과 戱曲, 詩, 散文 등 다방면에 걸쳐 문학활동을 했던 문인이다. 그러나 지금껏 공상임에 대한 연구는 《桃花扇》에 편중되어 왔다. 《長生殿》의 작가 洪昇과 더불어 《桃花扇》의 작가로서 "南洪北孔"이라 일컬어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처럼 대표작 《桃花扇》만을 통한 주시는 작가와 작품 전반의 이해에 편향성을 초래하였다. 첫째 《桃花扇》이 悲歎離合을 빌어 國家興亡을 묘사한 극이라는 전제이다. 따라서 悲歎離合의 주제를 도외시한 채 國家興亡만을 주제로 여겨왔다. 둘째, 작가 공상임에 대한 연구 역시 지나치게 明에 대한 애국만을 강조하여 민족주의 시각으로 보려는 경향이었다. 따라서 본 고는 공상임과 그의 문학 전반에 대한 객관적인 재평가의 요구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필자는 공상임의 문학이론과 실제를 통하여 중국 전통문학이 어떤 흐름으로 어떻게 천착되었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서 그의 문학론과 문학 작품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하고자 하였으며, 아울러 청대를 대표하는 문인으로서 공상임의 올바른 자리 매김을 하고자 하였다. 孔尙任은 공자의 64대 손으로 일찍이 유가의 훈도를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는 俗文學인 傳寄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孔子의 가문이라는 사실을 놓고 보면 실로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正統文學인 詩와 散文에 있어서도 뚜렷한 업적과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 이것은 공상임의 문학이 모든 전통 문학을 구현했던 청대 문학의 특징을 보여주는 분명한 예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고대 문학 창작에서 결렬한 논쟁을 거쳤던 緣情과 言志라는 두 전통을 집약하여 융합시켜 내고 있다. 필자는 이를 性情과 敎化로 서술하였는데, 공상임은 이 둘이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결국은 하나로서 융합하고 있다. 이는 공상임이 고전문학을 집대성했던 청대 문학의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공상임은 성정과 교화를 하나라고 생각하는 관점은 그의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 《桃花扇》은 애정과 역사 두 축이 융합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小忽雷》극은 역사가 평정되고, 남녀 주인공의 애정 또한 황제가 결혼까지 시켜주어 大團圓을 이룬다. 그러나 《桃花扇》극에서는 남명이 亡國에 이르고 남녀 주인공 또한 헤어져 각자 入道한다. 이와 같이 두 작품의 상이한 결말은 바로 극이 애정과 역사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공상임의 극에서 성정과 교화가 결국은 하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시문학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시 1600여수를 살펴보면 교화를 지향하는 시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정을 읊은 시도 같은 비중으로 표출되고 있다. 요컨대 공상임의 문학에 있어서 성정과 교화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결국은 하나이다. 다음으로 공상임은 시가 창작에 있어서 구체적인 창작기법을 논한 적은 없지만, 자기의 경험을 중시할 것과 자신의 성정을 자유롭게 읊을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시는 경험과 자신의 진실한 감정이 조화를 이루어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은 그의 문학 작품 활동이 대단히 성공적인 것임을 말해준다. 그는 자신의 성정을 읊는 기본방법으로 산천풍토와 독서를 주장하였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산천풍토로, 그의 시는 산천풍토를 읊는 시를 바탕으로 하여 나아가 정경융합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이 점은 그가 극문학에서 말했던 唱詞의 내용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공연에서 唱詞는 노래지만 극본문학으로 보면 唱詞는 넓은 의미에서 詩이다. 그는 《凡例》에서 가슴속의 정감과 경치를 묘사할 때는 詞曲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극의 장면이나 정경을 표현함에 잘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두 극 《小忽雷》과 《桃花扇》에서는 자연사물과 인간사의 합일로 잘 묘사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악기 小忽雷와 부채 桃花扇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부채 桃花扇과 악기 小忽雷는 시종 일관 두 극에서 애정과 역사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있으며, 아울러 애정·역사와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공상임이 극 創作論에서 부채 桃花扇을 용의 여의주에 비유하여 말했던 결구의 중심의의라고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入道의 결말은 그가 創作論에서 주장했던 舊套脫皮의 연장선에 있다. 이를 통해 그의 문학이론이 실제에 잘 부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데 바로 공상임의 문학에서 시문학과 극문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문학에서 시와 극은 표리관계이며, 유기적인 관계이다. 곧 공상임 문학에서 詩와 劇의 문학 작품의 세계는 구조적으로 性情과 敎化, 그리고 創作이라는 큰 틀에서는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 張岱 散文 硏究

        이은진 서울大學校 2015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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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소품문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장대의 저작을 전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명말 청초 산문이라는 영역에 내재적 변화와 확장의 움직임이 있었음을 고찰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의 중심에 장대의 문학이 있다는 추론 하에 각 영역에서 발견되는 변화의 요소들을 추출함으로써, 장대의 산문 속에 드러나는 다양한 인문학적 글쓰기와 지적 활동들을 총괄하여 규명하고자 하였다. 17세기의 문인이었던 장대는 80세가 넘는 긴 생애 동안 총 30여종의 책을 썼다. 장대는 시와 산문에서의 문학적 성취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폭넓은 지식과 탁월한 식견으로 전문가적 견해와 다양한 정보를 글 속에 실어놓았는데, 주목할 점은 그의 저작 범위가 문학의 여러 장르와 학술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는 점이다. 다원적 사상과 문화가 융성했던 명청교체기는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던 시기였으며, 장대 역시 그 시기 문화적 거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또한 이 시기는 출판의 급증과 함께 다량의 학문과 지식의 수준이 제고되었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문화와의 빈번한 교류를 통해 문화적?사상적으로 다양한 것들이 혼융되고 실험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정치와 교화, 내면 수양의 도구로 여겨지던 지적 활동은 점차 군사, 과학, 예술 등 실제적인 효용과 결합되면서 지적 활동의 욕구와 소통도 증폭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지식인들의 지적 활동은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게 되는데, 장대의 문사철을 아우르는 광범한 지적 활동 역시 당시의 시대적 요인과 자신의 지적 취향이 결합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장대는 뛰어난 소품문 작가로만 알려져 있으며, 그에 관한 연구 역시 소품문 창작의 업적과 평가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1930년대에 문학의 근대성을 찾기 위한 시도로 학자들이 만명소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장대의 소품문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자연스런 결과이다. 하지만 장대 자신이 가장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분야는 歷史書였으며, 經學을 비롯한 학술 방면의 성과 역시 간과할 수 없다. 1980년대 이후로 장대의 소품문에 대한 연구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어왔지만, 이에 비해 장대의 저작들에 대한 전면적인 연구에는 한계가 있었다. 장대가 인생의 후반을 살았던 淸朝는 明의 민족의식이 표출될 수 없었으며, 학문 역시도 주관적?직관적 방법과는 유리된 考證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淸의 정치적?학술적 분위기 속에서 장대의 사학적?학술적 성취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외면을 당해왔다.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변동, 만주족의 침입과 지배라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있었던 明과 淸 사이의 ‘틈새 시대’로서의 명청교체기의 문학과 사학과 학술은 그 위기와 혼란 속에서도 다양한 글쓰기 담론과 학술 활동을 통해 생기 있고 진보적인 하나의 독자적 성취를 이루어낸 것은 분명하나, 청대의 이질적인 학술 사상과 문학 관념의 영향으로 인하여 왜곡되고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본고는 이제까지의 단편적 고찰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文史哲을 아우르는 장대의 전체적인 산문 연구를 통해 명청교체기 산문의 독자적 성취의 양상 및 내적 변화와 확장의 요소들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장대는 그의 긴 생애 동안 총 30여 종의 책을 썼다. 그 중 현존하는 저서로는 ≪四書遇≫, ≪石?書≫, ≪石?書後集≫, ≪史闕≫, ≪古今義烈傳≫, ≪陶庵夢憶≫, ≪西湖夢尋≫, ≪快園道古≫, ≪瑯?文集≫, ≪夜航船≫, ≪明於越三不朽名賢圖贊≫, ≪琯朗乞巧錄≫ 등 12종으로, 經史子集의 영역을 모두 포괄하는 저자의 폭넓은 저작범위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경전을 연구하고 설명한 해설집과 다양한 방식으로 서술된 역사서, 그리고 백과사전식 類書와 시문집 등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더 나아가 현존하는 저서 이외에도 장대는 의학과 지리학, 언어학 등 다양한 실용지식을 담은 지식서와 저자의 詩的 취향이 드러나는 시선집들, 그리고 희곡작품 등에 이르기까지 학문과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지적 다양성을 갖추고 있었다. 아쉽게도 현존하는 12종의 저작 이외의 책들은 모두 유실되어 그 내용을 볼 수는 없지만, 다행히 각 책에 실려 있던 自序들이 ≪낭환문집≫을 통해 그대로 남아있어 책의 체례와 수록된 판본이나 저술 동기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소품문의 대가로서의 장대의 위상도 중요하지만, 역사가로서의 평가 및 시대에 대한 사명감을 지녔던 지식인으로서의 평가도 다시 재고되어야 한다. 장대는 명말에 그 시대의 부패와 모순을 직접 목격하며 나라가 몰락해가던 격변의 시대를 살았다. 그가 처해 있던 명말청초라는 당시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 나라를 잃은 설움, 그리고 역사 편찬에 관여했던 집안 내력 등은 장대로 하여금 더욱 치열하게 역사 집필을 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또한 문학적으로 사상적으로 다양한 사조와 현상이 혼재되어 있던 시대를 살았기에, 장대는 자신을 서재 속에 가두지 않고 시대의 조류나 변화와 함께 자유로운 사상을 흡수하고 융합하여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를 하게 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의 글쓰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먼저 명말청초라는 시대적 배경 위에서 장대가 쓴 산문체의 텍스트들을 세 가지의 범주로 분류하고, 장대 산문이 가지는 ‘문학성’?‘역사성’?‘학술성’이라는 각 영역의 특성들을 탐색하였다. 장대의 산문을 ①“公的” 글쓰기로부터 이탈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담론을 추구하는 “私的” 글쓰기로서의 문학산문과 ②역으로 ‘민족사상’과 ‘충의사상’을 남기고자 하는 집념이 반영된 철저한 “公的” 글쓰기로서의 역사산문, 그리고 ③유가적 체계 안에 있던 지식들이 민간 사회나 더 많은 독자들에게 지식을 공유하고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학술산문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토대 위에 ①전통 산문과는 차별화된 장대 문학산문의 특색을 살펴보고, ②역사 서술의 다양한 기술 방식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 드러나는 서술 방식의 다양화를 살펴보았으며, ③지식 공유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지식이 대중지향화 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장대 산문의 세 영역이 이루어내는 변화를 고찰함으로써, 각 체재의 흥성 배경 및 문학적으로 도출해낼 수 있는 특징과 더불어 중국 산문사에서 장대의 산문이 지니는 산문사적 의의를 탐색할 수 있었다. 장대의 자전회고록인 ≪陶庵夢憶≫과 여행지리서인 ≪西湖夢尋≫, 그리고 개인 문집인 ≪瑯?文集≫ 등의 문학산문에서는 형상성과 서정성이라는 양면의 동전과 같은 문학적 요소가 서로 조화되며 극대화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으며, 다양한 인물들의 性靈이 재현되는 양상도 볼 수 있었다. 장대의 문학산문은 서정성만을 담보로 개인의 일상이나 감회만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았으며, 정치적?문화적 상황을 감지할수 있는 많은 양의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과 사건의 등장을 통해 변화하는 시대 조류를 느낄 수 있었다. 장대의 역사산문에서는 역사서술의 다양화된 서술방식과 아울러 장대의 역사 해석의 의지와 역사산문 속에 표출된 문학적 형상성이 돋보였다. 정통 기전체의 방식으로 쓴 역사서 ≪石?書≫와 ≪石?書後集≫의 역사 서술에는 각 편마다 總論과 史贊을 첨부함으로써 장대만의 역사 해석과 인물에 대한 평가가 서술되어 있었으며, 그의 論贊에 드러난 엄중한 해석과 평가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史家로서의 기량을 보여줌과 동시에, 풍부한 감정과 이색적 비유 등 문학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인물을 중심으로 엮은 단독 열전 역사서 ≪古今義烈傳≫과 正史와 野史가 혼합된 ≪史闕≫, 그리고 인물의 초상화 모음집인 ≪三不朽圖贊≫을 통해 역사서술의 획일화가 아닌 전문화되고 개성이 넘치는 역사 서술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장대의 학술산문에서는 개인과 지식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지식 공유의 방법으로 학술 저서들이 탄력 있게 활용되는 점을 살펴보았다. 당시의 축적된 독서량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지식 관련 서적들이 출현하면서 명대에는 백과사전식의 類書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 장대가 자신의 지식과 학문적 경험을 바탕으로 인문학적 지식을 여러 방법으로 활용했던 점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이는 명청교체기라는 시대가 낳은 현실에 대한 책임감과 역으로 새로운 질서 이데올로기를 낳고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이 산문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明代 陽明學, 淸代 考證學이라는 단편적 도식을 넘어서 ‘틈새 시대’로서의 명청교체기에 나타나는 역사 저술 및 지식의 수용과 변화 양상을 추적하는 작업은 명청 시기의 지성사를 조망하는 데 하나의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장대의 산문에는 문학과 철학과 역사가 혼융되어 있고, 문인 문화와 통속 문화가 결합되어 있으며, 명말의 개성 해방과 인도주의적 색채를 지닌 새로운 사조와 실증적이고 실학적인 사고가 융합되어 있다. 270여 년의 역사를 갖는 명대 문학의 다양한 지평과 축적된 지식들을 단일한 틀로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장대의 문학 속에서는 문학과 사회, 문화, 역사, 사상 등을 총괄하는 다각적 그림을 그려보는 일이 가능하다. 문학과 역사와 사상을 연관 지어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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