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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종기의 시 연구

        김주연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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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종기 시인은 1939년에 태어나 1958년 『현대문학』에 등단하였으며, 50여년 이상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는 재미한인으로서 디아스포라 정신을 시로 표현해왔으며, 시인이자 의사로서의 이력도 지니고 있다. 마종기가 지닌 독특한 이력은 그의 시들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빛을 발한다. 마종기 시작(詩作)의 근원은 고국에의 그리움과 죽음과의 마주함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그의 초기 시부터 중기 시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20대 때 도미하여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살아오고 있지만, 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길 꿈꾸었다. 고국을 떠나 외국 생활의 어려움과 고국에의 그리움은 점차 진정 돌아갈 그곳인 보이지 않는 세계, 즉 본향을 향한 그리움으로 변모해간다. 또한 그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을 통해, 또한 생사의 치열한 현장인 의사로서의 경험을 통해 죽음과 마주해왔다. 죽음에 대한 성숙한 고찰은 그의 시세계를 성숙시켰으며, 종교적 초월성으로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마종기의 중기 시세계는 타자를 향하는 따뜻함을 담아내고 있다. 이는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과 맞닿아 있다.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은 자기성을 내려놓은 타자 지향의 윤리이며, 바로 이 윤리가 “제1의 철학”이라고 선언한다. 마종기는 세상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마주하고자 하며, 타자를 향한 환대와 내어줌에 시인의 소명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타자를 향한 마음은 기독교의 박애 정신으로도 살펴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관통하여 타자에의 사랑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그의 시에서 타자를 향한 사랑은 기독교적 신성을 띄게 된다. 마종기는 후기 시로 향하면서 점차 종교적 초월을 통하여 경계를 허물고 확장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가 오랫동안 고뇌해왔던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서, 발디딘 모든 곳이 고국이요 한 형제라는 인식을 갖게 되며, 보이지 않는 세계인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서, 죽음과 삶의 길은 하나이며, 참 자유의 길은 절대자를 향함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와 같이 본고에서는 마종기 시의 전반에 걸쳐 살펴 보았다. 이민자로서의 삶과 죽음의 경험들이 타자정신과 기독교 박애정신으로 이어져 ‘따뜻한’ 시 세계를 구축하였으며, 후기 시에 와서 종교적 초월을 통한 인식지평의 확대, 경계의 허묾으로 나아감을 조명하였다. 한 시인의 생애에 걸친 시세계를 고찰하며, 고통과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성숙한 인간의 자세와 종교적 초월을 통한 참 자유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정호승 시 연구 : 주체의 수동성 양상에 대한 고찰

        박신영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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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에서는 정호승 시에 드러나는 주체의 수동성 양상을 레비나스 이론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정호승의 시는 주체의 감성적 수동성을 바탕으로 윤리적 주체성을 지향하고 있다. 그의 시는 주체의 감성적 수동성을 바탕으로 자아 중심적 주체의 단계에서 벗어나 타자에 대한 열림의 단계로 나아가고, 마침내 ‘윤리적 주체성’을 지향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단순하게 선조성(線條性)을 보이면서 단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전반적인 흐름이 나선형 형태의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본고에서는 그의 시에 드러난 주체의 수동성 과 관련하여, ‘부정적 현실로 인한 주체의 감성적 수동성’, ‘자기중심적 주체의 삶에 나타난 수동성’, ‘타자에 대한 열림과 윤리적 주체성의 지향’ 등의 세 가지 양상을 레비나스의 개념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Ⅱ장에서는 부정적 현실로 인한 ‘주체의 감성적 수동성’의 양상을 역사 현실, 경제 현실, 정치 현실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여기서 다루어진 주체의 감성적 수동성은 타자의 부름에 응하는 윤리적 주체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1절에서는 식민지․전쟁․분단의 역사 현실로 인한 상실감의 양상이,「낫」에서는 ‘한’의 계승으로,「감자」에서는 비극적 역사의 수용으로 표상되어 있다. 2절에서는 물신주의적 경제 현실로 인한 결핍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사회는 물질 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인간성 상실, 분배의 불균형 등의 모순과 부조리를 보이게 된다.「柳寬順 9」,「아버지의 무덤」에서는 가치전도의 사회 속에서 가난과 소외로 신음하는 주체의 양상이 드러나고, 불안과 위기가 상존하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통해 「서울의 예수」에서는 인간 예수의 ‘목마름’이 상징화되었다. 3절에서는 강압적 정치 현실로 인한 비애가「옥중서신 1 - 8」,「그날 밤」,「개망초꽃」등을 통해 형상화되었다. Ⅲ장에서는 ‘자기중심적 주체’의 삶에 나타난 수동성의 양상을 고찰해 보았다. 1절에서는 1인칭 존재로서 인간이 갖는 근원적인 고독에 대한 탄식이「수선화에게」,「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등에서 나타나고, 「수의」에서는 인생에 대한 무상감이 나타나고 있다. 2절에서는 연인과의 사랑과 그리움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자국눈」에서는 첫사랑의 설렘을,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에서는 사랑의 실패로 괴로워하는 시적 주체가 늙은 어머니의 품에서 위로 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절에서는 삶의 고통에 처절하게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주체가, 「칼날」에서는 극한적 고통을 겪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고,「도요새」에서는 소금밭에 앉아 울고 있는 도요새를 통해 묘사되고 있다. 「끈」은 인간의 운명적 수동성을 상징하고 있고,「빈틈」은 생의 세계에서 죽음의 세계로 던져진 존재의 비극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Ⅳ장에서는 ‘자기중심적 주체’가 자아성찰을 통해 타자에 대한 열림의 단계로 나아가고 마침내 ‘윤리적 주체성’을 지향하는 단계로 승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1절에서는 자아 성찰과 인간에 대한 반성이 나타났다. 「가릉빈가에게」에서는 윤리적 주체를 지향하는 자기중심적 주체의 불완전한 모습이 ‘인두조신(人頭鳥身)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고「불면」,「연꽃 구경」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추한 면을 부각시키면서 반성과 참회의 정서를 보이고 있다. 2절에는 타자에 대한 열림과 타자를 향한 초월의 욕망이 나타나 있다. 주체는 「문 없는 문」에서 자기중심 세계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한다. 문을 열고 나가서 타자의 부름에 응답할 때 타자와 주체의 관계는 결코 시혜자와 수혜자의 관계가 아니다. 타자들은「성의(聖衣)」,「걸인」에서 형상화된 것처럼 성인(聖人)과도 같다. 「빈 벽」에서 시적 주체는 자아 중심의 주체에서 타자 중심의 주체로 전환하면서, 중심에서 자아를 제거한 상태를 ‘빈 벽’으로 상징화한다. 3절에서는 앞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났던 주체의 감성적 수동성이 윤리적 주체성을 지향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늪」에서 시적 화자는 사랑해야 할 타자들에 대한 욕망을 느끼고 있다. 「오병이어」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무리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다는, 기독교 신화의 모티프를 통해 가난하고 굶주린 타자의 부름에 응답하고자 하는 욕망을 형상화하고 있다. 「벼락에 대하여」,「숟가락에게」,「다시 벗에게 부탁함」에서 시적 주체는 ‘대속’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탄생한 ‘눈사람’과 눈사람의 정신을 계승한 ‘소년’은 이상적 윤리적 주체의 화신이며, 순수한 소년의 동심을 통해서 눈사람의 ‘대속’ 행위가 계승되고 있다.

      • 함민복 시에 나타난 ‘일상성’ 연구

        허현경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201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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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함민복 시에 나타난 ‘일상성’에 대한 것이다. 함민복은 1990년대 이후부터 꾸준히 4권의 시집을 발표했는데 현대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일상성’의 폭력과 환멸을 드러내면서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세계인식을 통하여 근원적인 삶이 살아 있는 일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작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일상성’의 개념과 시적 수용을 살펴보았다. 앙리 르페브르의 견해에 따르면‘일상성’은 단순히 먹고 자고 일어나서 생활하는 문제가 아니라 도시화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 구조의 통제와 감시 아래, 반복되고 지속되는 삶의 양식이다. 또한 끊임없는 욕망과 소비로 인해 인간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성격이다. 그래서 함민복 시에서는‘일상성’에 대한 태도가 파괴적이고 냉소적이며 그것에 대한 저항마저 드러내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꾸준히 현실에 대한 구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공동체적이고 손상되지 않은 일상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과 삶의 진정성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희망적이다. 두 번째 장에서는 함민복의 시에 나타난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도시적‘일상성’의 양상을 고찰하였다. 본래적인 일상의 분열을 가져온 도시의 삶은 농촌까지 파고들어 현대사회의 삶은 곧 도시에서의 삶이 되었다. 또한, 자연과 인간이 합일된 시간은 이제 과거의 추억이 되었으며 자본주의적 삶은 인간의 삶을 자본에 예속시켰다. 그러한 삶은 은폐되어 은밀히 작동하는 권력에 의해 감시당하고 통제당하는 비인간적인 삶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도시 속의 ‘일상성’은 허구적 욕망과 조작된 소비문화를 재생산하는데 특히 텔레비전과 광고를 통해 거대한 지배력을 행사함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현대사회의 ‘일상성’이 낳은 가장 심각한 현상인 소외가 일어나는데 이는 자본주의적 산업체계에 의한 노동자의 소외 현상과 계급분화, 권력, 사회적 힘에 따른 가난한 사람들의 소외 현상, 비개성적 생활방식에 의한 자기소외 현상, 물질주의 팽배로 인한 인간성 상실에서 오는 소외 현상 등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소외 현상은 무엇보다 일상인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허무감과 슬픔의 감정들을 양산하며 비인간화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세 번째 장에서는 긍정적인 세계인식을 통해 본래적 일상을 회복하는 방안을 어떻게 모색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우선, 그는 인간과 자연, 문명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세계관을 극복하고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자연을 인식한다. 또한 자연과 어머니가 포용과 위안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모성을 확대시켜 모든 생명의 탄생과 죽음, 즉 재생과 순환의 이미를 지닌 근원적인 고향으로 표현한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모성의 본질인 사랑을 다른 대상에게도 전이시킨다. 다음으로 시인은 자주적인 힘을 내면화한 부드러움으로 ‘일상성’을 넘어서려 한다. 이 때 부드러움은 강한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한 의지적인 힘이자 자본주의적 ‘일상성’에 깃들여져 있는 환멸과 부정의 정신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이다. 나아가 자신의 역할과 운명에 대해 책임지는 것. 곧, 타협이 아닌 자주관리로서의 부드러움이다. 그런데 그 부드러움은 시 속에서 수직적이고 강제적인 힘에 대응되는 자연적이고 생태적인 환경,‘뻘’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시인은 갯벌에서 우리를 둘러싼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수직적인 힘과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하는 수평의 힘이 서로 맞대응하지 않고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는 관계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삶에 대한 긍정과 따뜻한 인간성의 발견을 바탕으로 우리의 의식에 적절하게 통합되지 않은 그림자를 감싸 안으려 한다.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아와 그림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다. 또한, 공동체의 유대감이 살아 있던 축제의 삶을 회상하고 ‘일상성’이 지배하지 않는 세계, 민중의 활력이 넘치는 세계를 꿈꾼다. 이처럼 함민복 시에 나타난‘일상성’을 고찰할 때 우리사회가 얼마나 자본주의가 심화되었으며 끊임없는 욕망의 반복 속에서 얼마나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시인이 형상화시키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함민복은 그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따뜻한 시선과 세상에 대한 긍정을 버리지 않고 건강하고 본래적인 가치가 살아 있는 일상을 회복하고자 하였으며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그의 시를 고찰하는 의의가 있다.

      • 기형도 시의 실존 의식 연구

        박경진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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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형도에 관한 기존의 논의는 부정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고 연구되고 있다. 이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한 시인의 불우한 운명이 시 속에서 빈번히 발견되는 죽음과 쇠락의 이미지들을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형도 시에서는 불안 의식이 드러나고 있기에 그의 시 세계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규명할 수 없다. 그는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에 뛰어듦으로써 자신의 실존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즉, 기형도 시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불안 의식들은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탐색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그는 필연적으로 다가올 불안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이 빠져 살아왔던 일상적 공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일상적 공간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래적인 모습을 찾고자 한다. 이는 주체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시 세계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는 부조리한 일상 공간에 빠져서 자신의 본래적 존재성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더불어 이러한 비본래적 존재의 삶에서 벗어난 본래적 자기 존재로의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일상적인 도시 공간은 생명력이 소멸하여 황량하고 삭막하다. 화려한 도시의 겉모습과는 달리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폐쇄적인 건물에 갇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기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진심어린 이해나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기득권은 은폐된 정보를 제공하여 사람들을 현혹하여 자신들의 아래로 귀속시켜 버린다. 또한 시적 화자들은 일상적 공간에서 가족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죽음 곁에 서 있을 뿐 그의 본래적인 끝을 경험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타인들의 죽음을 통해서는 자신의 유한성에 대해 인식할 수가 없다. 또한 죽음에 대한 인식은 이전까지의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삶을 결정해야 함을 의미하기에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 기형도는 일상적 공간 속에 빠져 자기 존재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본래적 자기 존재로의 회복을 모색한다. 부조리한 일상적 공간에서의 소외는 이상적 공간의 세계로의 지향으로 인해 극복되어진다. 안정된 공간을 꿈꾸는 시적화자는 어머니의 아늑함과 아버지의 강인함이 존재하였던 유년기의 공간으로 회귀하거나 평화로운 동화적 환상 공간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또한 일상적 공간 속에 빠져 자신의 고유성을 잃고 살아가던 비본래적 존재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인간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봄으로써 가장 극단적인 존재의 가능성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결단을 통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시적 화자들은 완전히 죽음의 세계에 들어가 죽음의 혼으로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경계에 서서 나의 타자인 또 다른 자아의 죽음을 직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시 속에서 나타나는 죽음은 재생의 의미를 지닌 죽음의 모습보다는 죽음을 그 자체로 맞아들이는 모습에 머무르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시에서 빈번하게 드러나는 노인의 모습 또한 미리 늙어버림으로써 죽음에 다가가보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본래적 자기 존재의 회복은 인간 자신의 본래성 회복뿐만 아니라 인간들에 의해 황폐화되었던 세계를 그것 자신의 참됨으로 회복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래적 자기 존재의 회복은 부정적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체성의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세계에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게 한다.

      • 김선우 시 연구 : 에코페미니즘적 특성을 중심으로

        이유정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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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우는 참신하고 육화된 언어를 사용하여 유년 시절 고향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연과 여성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에코토피아를 구현한다. 나아가 남성 중심의 위기적 상황이 초래한 당대의 역사적, 사회적 문제들과 그 속에서 고통 받는 타자들의 아픔을 다룸으로써 자칫 관념적, 신비주의적으로 흐를 수 있는 에코페미니즘 문학의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여 구체적 실천성을 갖추었다. 본고는 김선우의 작품이 에코페미니즘 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보고, 이러한 그의 시세계를 살펴보는 것에 그 목적을 두었다. 제Ⅱ장에서는 김선우 시를 분석하기 위한 토대가 되는 에코페미니즘 이론의 흐름과 특징, 국내 에코페미니즘 문학의 현황에 관하여 알아보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에코페미니즘을 기본 인식으로 하여 문학을 연구하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이고 소극적인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선우는 그의 작품에 에코페미니즘 담론을 깊이 있게 사유하여 수준 높은 결과물을 창조하였다. 에코페미니즘의 이론적 시도는 형성 중에 있기에 에코페미니스트의 수만큼 다양하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김선우의 작품은 자연과 여성을 동일시하는 에코페미니즘의 본질주의적인 측면과 함께, 자연과 여성에 대한 억압을 다른 타자들에 대한 억압으로 까지 확대하여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는 사회를 구현하려는 후기 에코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이상향 까지도 잘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Ⅲ장은 김선우 시의 에코페미니즘적 상상기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에코페미니즘은 단순히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의 결합이 아닌, 여러 담론을 결합해 놓은 잡종적인 이론이다. 즉, 에코페미니즘은 이론적으로 정교화 되는 과정에서 많은 방법론의 영향을 받게 된다. 마찬가지로 김선우의 작품에서도 에코페미니즘적인 시세계가 구현되는데 영향을 주었던 방법론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김선우의 작품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 만물이 순환하는 과정 속에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과 비움을 통해 완결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학과 불교 담론, 노장 사상 등을 자양분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본고는 이것을 크게 생태학적 감성과 불교 담론의 영향,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 의식 이라는 3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생태학적 감성은 김선우에게 만물을 영성이 깃든 존재로 파악하게 하고, 이러한 만물이 서로 교감하고 순환한다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이는 에코페미니즘적인 김선우의 시에서 ‘순환하는 몸’의 모티프가 되고 더불어 순환의 일부로써 ‘죽음’에 관한 그의 인식은 Ⅳ장에서 ‘노년의 어머니의 몸’에 대한 강한 긍정성을 담보한다. 생태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반자연적이고 비순환적인 세계에 대한 반성은 에코페미니즘적인 그의 작품에서 현대문명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거나 정신적 스트레스, 생명포태가 불가능한 시적 상황으로 까지 제시된다. 불교 사상과의 관련성은 크게 방법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방법적 측면에서 불교와 관련된 소재나 화두를 작품에 끌어들이는 패러디와 인생의 깊은 깨달음의 순간을 직관적 통찰로 드러낸다. 내용적 측면으로는 불교의 연기론과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생태주의적 차원의 ‘순환’이 보여주지 못했던 타자들의 아픔과 희생을 돌아본다. 그 중 직관적 통찰과 같은 불교의 ‘이성적 언어의 거부’는 에코페미니즘적인 그의 시에서 여성화자들이 구사하는 ‘여성적 언어’와 상통하고, ‘업의 논리’ 와 ‘자비의 발현’은 그가 Ⅳ장에서 ‘사랑’을 통해 타자에 대한 '연대의식'을 표명하는 밑바탕이 됨을 알 수 있다. 한편, 에코페미니즘은 가부장제적 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김선우에게 있어 이러한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 의식은 담론의 영향 이전에 유년기 가족사적 상처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러한 상처는 그의 작품이 ‘부성이 부재’ 하고, ‘모성성’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Ⅳ장에서는 본격적으로 김선우의 에코페미니즘 시세계를 살핀다. 이는 본질주의적 측면, 미학적 측면, 실천적 측면으로 나누어 보았다. 먼저, 김선우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의해 핍박받는‘자연’과 억압받는 ‘여성’을 동일한 관점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것은 에코페미니즘 문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본질주의 차원의 특징이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과 여성은 ‘모성성’을 공통적으로 발현하고 만물의 근원이 된다. ‘남성성’을 속성으로 하는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현대 문물들은 이러한 자연과 여성을 파괴하고 시인은 이를 강하게 비판한다. 나아가 이러한 억압구조에서 타자화 된 자연과 여성은 ‘여성성’을 통해 자신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타자화 시켰던 남성문명까지도 치유하고 회복시킨다. 김선우의 작품은 기본적인 세계관에서 뿐만 아니라 미학적 감성이나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에코페미니즘의 입장과 일치한다. 에코페미니즘은 근대의 이성 중심적인 사고로 억압되었던 ‘몸’의 ‘감각’과 ‘영성’을 중시한다. 정신과 육체를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대상으로 보고 ‘몸을 사유하는 주체’로 인식한다. 이에 김선우의 시는 감각의 총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감각적 체험들을 재현해 내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사물이나 사건의 내력을 인식하는 주체로서 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김선우의 작품에서 여성은 육체를 통해 자연과 연결된다. 자연은 여성의 관능적인 신체에 비유되고, 관능성을 모성화 하여 관능성이 극대화 될수록 모성성은 증폭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몸은 주로 모성성을 환기하는 ‘어머니의 몸’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강한 성적 메타포를 내재함으로써 노년기 여성의 몸과 증상들에 건강한 활력을 부여한다. 또한 김선우는 여성의 유방, 성기, 자궁, 월경 등이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하여 여성의 몸에 강한 긍정성을 부여한다. 그의 작품에서 여성의 몸은 삶과 죽음의 통로가 된다. 생태학 사고와 불교의 윤회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김선우의 작품에서 ‘몸’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순환은 ‘자궁’을 통해 이루어진다. 월경(月經)하는 자궁은 몸을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월경(越境) 할 수 있도록 하기에 여성의 몸은 삶과 죽음의 통로인 것이다. 실천적 차원의 측면으로 김선우 시의 에코페미니즘적 요소가 현재적 관점에서 주는 의미와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김선우의 작품 중에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토대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도 있지만, 과거의 아픈 역사나 당대의 황폐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많다. 이 작품들에는 남성중심 사회가 초래한 현재의 위기 상황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타자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때 이와 관련된 작품들의 지배적인 정서가 바로 타자들에 대한 ‘연민’ 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인이 제시한 실천적 강령을 ‘사랑’ 이라고 보았다. 이에 김선우 시의 에코페미니즘적 요소가 갖는 실천적 의미를 연민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주제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김선우의 작품은 ‘어머니’를 주요 모티브로 하여 시인 자신이 어머니의 몸과 삶을 닮아가는 과정을 육화된 언어를 통해 잘 형상화 하고 있다. 진보적인 색채를 띄는 그의 작품은 자연과 모성이 갖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통해 파괴와 부정의 세상을 회복하고 치유한다. 만물들의 관련성과 공감을 중요시 하는 그의 작품은 죽음을 뛰어넘어 생의 궁극적인 경지를 얻으려는 자기 구도의 산물인 것이다.

      • 나희덕 시에 나타난 모성성 연구

        한태희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RANK : 247615

        본고는 나희덕 시의 핵심적 특성인 모성성의 양상을 연구하고자 하였다. 시인의 모성 경험과 모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 모성적 본능이 억압적 현실 및 여성적 자의식과 어떻게 길항하며 모성의 양면성으로 드러나는지 그 양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동시에 모성적 본능이 여성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모성적 원리를 실현하며 적극적 의지적 모성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나희덕 시의 모성이 지닌 특성을 입체적으로 규명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나희덕은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뿌리에게」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6편의 시집과 1편의 산문집, 1편의 평론집을 펴내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흔히 그를 따스한 모성적 태도로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는 시인으로 평가한다. 시인은 세상을 따뜻하고 친근하며 연민에 가득 차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를 단정하고 절제된 형식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Ⅱ장에서는 모성에 대한 이중적 인식과 모성론의 전개 과정을 통해 모성성이 지닌 함의를 살펴보았다. 모성은 그 희생성과 허여성으로 찬양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모성이데올로기로 작용하여 가부장제적 체제질서를 강화하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여성시인에게 있어 모성에 대한 경험과 인식은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Ⅲ장에서는 시인의 모성경험과 모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 모성적 본능이 주체적 자의식과 어떤 긴장관계를 형성해 나가며 여성적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지 고찰하였다. 이는 주로 어머니-여성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갈등의 양상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시인에게 있어 모성은 어린 시절 보육원 총무를 하며 이타적인 헌신을 보여주었던 시인의 어머니로부터 절대적 희생의 이상적 모성으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성상은 현실에서는 고통받는 어머니로 나타나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시인은 어머니-되기의 경험을 통해 모성적 본능을 척박한 현실 속에 수용하며 내 안의 어머니와 만난다. 그러나 억압적 현실은 어머니를 끊임없는 갈등과 고뇌 속에 내몰며 어머니-여성을 가정과 세상의 경계에 서게 한다. 또한 모성으로 수렴될 수 없는 존재론적 고뇌는 현실에 순응하고 체념하지 않고 회의하고 고뇌하는 모습으로 존재론적 탐색을 계속해나간다. Ⅳ장에서는 Ⅲ장에서 살펴본 갈등하는 모성이 적극적 모성으로 나타나 창조적 힘을 발휘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나희덕 시의 모성은 억압적 현실 속에서 고뇌하지만 순응하고 체념하는 소극적 모성이 아니다. 시인은 모성에 내재된 갈등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모성공포나 모성거부로 나아가지 않고 의지적 적극적 자세로 모성을 창조적 힘으로 전화시켜 나간다. 시인에게 있어 모성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 모든 생명을 생명답게 키워내는 대모적 모성으로 작용하여 대상을 화육하고 길러내는 힘으로 나타난다. 또한 대상에 대한 모성적 태도는 사회의 소외받는 타자에까지 확대하여 그들에 대한 연민과 공명을 드러낸다. 이는 레비나스의 타인의 얼굴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유사하다. 또한 철저한 자기부정과 소멸을 통해 새로운 대상으로의 갱신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통해 수동적이며 희생적인 억압받는 모성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힘으로 주체와 세상을 변용시켜 나가는 능동적 모성을 지향한다. 모성 또는 여성이 지닌 힘은 이성중심의 사회가 파생시킨 폭력적인 타자의 소외에 대항하여 타자를 지향하고 수용하는 타자지향의 윤리를 실현함으로써 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사점을 지니고 있다.

      • 이형기 시에 나타난 연금술적 상상력 연구

        이자영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RANK : 247615

        이 논문은 이형기 시에서 나타나는 ‘허무’가 연금술적 상상력과 관련하여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는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형기의 시에 대한 선행 연구는 그의 시세계를 시집의 구분과 연결시키는 연구가 대부분이이며, 이형기 시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허무에 대하여 허무가 나타나고 있는 양상을 파헤치는 것에 한정되어 있는 실정이다. 또한 그의 시세계에 나타난 허무의 극복과정에 대한 연구가 소홀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고는 이형기 시에 나타나는 ‘허무’의 극복 과정이 연금술의 죽음-통과의례-재생의 과정과 연관됨을 밝히고자 한다. 연금술과 관련된 시 해석의 대부분의 논문들에서 ‘용해’와 ‘합일’을 통한 ‘황금’의 물질적 이미지 분석에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본고는 융(C.G.Jung)의 정신적 측면에서 분석한 연금술의 이론을 참고하여 이형기 시에 나타난 연금술적 상상력을 통해 ‘용해’와 ‘합일’을 토대로 이형기 시의 ‘허무’의 극복 의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2장에서는 이형기 시에 나타나는 소멸의 이미지에 관해 살펴본다. 이형기의 ‘허무’는 초기시인 『적막강산』에서 자주 나타나는 소멸의 이미지에서 비롯된다. 소멸은 죽음과 관련된 ‘용해’의 상상력인데, 이 용해는 ‘물’의 하강과 침잠으로, 소리의 소멸인 ‘적막’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물’은 하강적 이미지와 함께 존재를 소멸시킨다. 그의 초기 시세계는 ‘무거운 물’로 ‘침잠’되며 죽음의 애상적 정서로 가득 차게 된다. 소리의 소멸인 ‘적막’ 또한 『적막강산』의 시집 제목처럼 그의 초기 시세계를 지배하고 있는데, 소리는 외부로 발산하지 못하고 내면으로 ‘침잠’된다. 이때 ‘울음’은 소리가 제거되어 시적 화자의 내면으로 스며들게 된다. 존재의 유한성을 인식하며 ‘허무’는 ‘물’과 ‘소리’로 녹아 흐르며 이형기의 초기시에 허무가 나타나게 된다. 3장에서는 초기시에 인식했던 존재의 유한성에서 오는 허무적 애상감이 중기시에 이르러 통과의례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탄생하는 연금술적 변화를 살펴보았다. 이형기의 초기시에서 나오는 ‘적막’은 이후 둘째 시집인 『돌베개의 詩』부터 적막을 깨뜨리기 위한 큰 ‘울림’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초기시에 나오는 죽음의 의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나타난다. 소리의 역동성은 이형기의 시에서 허무가 갇혀 있는 벽을 깨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허무의 대결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준다. 이러한 소리의 역동성은 죽음의 유한성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재생하기 위해 통과의례를 거쳐가는 몸부림으로 나타난다. 2절에서의 ‘병, 부패, 살해’는 새로운 존재로 탄생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의 관문이 된다. 이러한 관문을 통과한 몸은 보석, 편자, 맑은 정신, 별 등의 생명력 있고 가치있는 존재로 연금술적 변신을 하게 된다. 4장에서는 후기시이자 이형기의 마지막 시집인 『절벽』에 이르러 허무는 돌고 도는 순환적 세계로 나타나게 된다. 이를 통해 천상과 지상, 생과 사, 완성과 미완성, 유와 무, 의식과 무의식은 돌고 돌면서 대극의 합일을 이루게 된다. 이 대극의 합일은 허무의 유한적 굴레를 벗어나서 초월성이라는 결정체를 맺으며 그동안 이형기 시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허무는 이 초월성으로 극복하게 된다. 2절에서 마음은 대우주인 자연을 담아내는 연금술의 용광로인 ‘그릇’의 역할을 한다. 인간의 마음에 담긴 자연은 물아일체가 되며,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되는데, 이는 연금술의 최종 결정체인 ‘정신적 성숙’을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물아일체된 마음의 ‘그릇’은 허무를 담아내며, 허무적 세상은 ‘창’, ‘안경’, ‘돌’ 등을 통해 대우주와의 합일을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성숙을 실현하게 된다. 이로써 이형기는 존재의 허무를 극복하고 초월하여 연금술의 영원의 삶, 자아실현의 삶을 추구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 한국 현대시의 환상성 연구 : 황병승, 김민정, 이민하를 중심으로

        김민경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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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환상의 전통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평가되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환상성이 두드러지는 세 시인 황병승, 김민정, 이민하를 통해 ‘환상시’의 양상을 고찰하려는 데 목적을 둔다. 이 세 시인들은 ‘환상’을 통해 기존의 질서체계를 벗어난 탈주의 형식을 극단적으로 취하고 있다. 캐스린 흄은 이를 『환상과 미메시스』에서 “사실적이고 정상적인 것들이 갖는 제약에 대한 의도적 일탈”로 정의내린 바 있다. 이러한 일탈은 고착된 낡은 관념들을 조롱하고 위반하는 즐거움을 제공할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의 토대를 꿈꾸는 전복의 매개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파괴적인 동시에 생성적이다. 따라서 이들이 보여주는 시적 환상은 그야말로 허황된 환상이 아닌 새로운 리얼리즘이 되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현실과의 깊은 연대감을 바탕으로 창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끊임없이 교란시킴으로써 자신들이 만들어낸 ‘환상’이 일종의 백일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황병승, 김민정, 이민하의 교란 작전은 각각 ‘새로운 주체의 출현’, ‘그로테스크한 세계의 등장’, ‘실체적 대상으로의 형상화'로 나타나고 있다. 독특한 작품 경향만큼이나, 이들의 ‘환상시’는 기존의 시 형식을 해체하는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전통서정시에 대한 부정 정신과 새로움에 대한 가치 추구라는 실험적인 의도를 제시하는 한편, 그 이면에서는 부조리한 현실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형식을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황병승, 김민정, 이민하의 ‘환상시’를 대상으로 하여, 시인들이 표출하고자 한 주제의식과 그 표현방식을 분석하고자 한다. Ⅲ장 1절의 황병승은 ‘새로운 주체의 출현’이라는 주제 의식과 이를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리좀적 글쓰기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먼저 새로운 주체의 출현에서는 ‘나’, 즉 자아의 내부에서 ‘내 안의 타자들’을 자아의 검열 없이 드러냄으로써 전통서정의 자아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적 실험을 보여준다. 한편 표현론적 측면에서는 ‘환유’의 방법과 단편적인 이미지의 모음인 ‘파편적 문체’, 기존의 언어질서를 벗어난 ‘언어유희’의 수사법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는 황병승의 시가 해체적 세계를 제시하기 위해, 중심 없는 체계를 지향하는 ‘리좀적 글쓰기방식’을 선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Ⅲ장 2절에서는 김민정의 시가 카니발적인 언어를 통해 그로테스크적인 환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로테스크한 세계는 지배적 문화 속에서 은폐되고 억압된 타자적 요소들을 기괴하고 끔찍한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공포와 혐오감을 준다. 이처럼 김민정의 ‘환상’은 일상적 평온에 대한 불안감을, 나아가서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강렬한 부정의식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이는 허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러한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문학에 표현한 심미적 양식을 일컬어 ‘카니발적 글쓰기'라고 한다. 이러한 ‘카니발적인 글쓰기’의 주도적인 특징은 이성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것을 물질적, 육체적 차원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김민정은 특유의 욕설, 비속어 등의 ‘구어체'사용과 ‘장광설','요설'을 선택하고 있다. Ⅲ장 3절에서 이민하의 ‘환상성’은 동화적 상상력과 식물성의 에너지 등을 매개로 하여 지배문화에 대한 반기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민하의 시는 부조리한 현실을 탈주하여 창조적인 공간으로 회복하기 위해 ‘탈구조적인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 즉 ‘열리는 문’과 ‘닫히는 문’이라는 서로 결합될 수 없는 두 영역을 자유롭게 매개하는 ‘연속성’을 발명함으로써 현실 속에 ‘또 다른 현실’을 창조한 것이다. 이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조직 · 배치하는 위치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황병승, 김민정, 이민하의 ‘환상시’는 일상적 욕망의 허위성과 기존 질서의 자기 기만성을 공격하고 조롱하는 전복적 상상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리얼리티를 획득한 ‘환상’은 일상의 이면으로 숨겨진 사실을 들추어내고, 부인하고 싶었던 사실들을 환기시킴으로써 진실과 대면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환상’은 현실에 대한 연대의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적 가능성을 지닌다.

      • 고진하 시 연구

        김형태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2 국내석사

        RANK : 247615

        본 연구는 신(神)을 잃어버린 시대에 신에 대한 사유를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고진하의 시 세계를 주목하고, 고진하 시를 형성하는 기독교적 사유를 통해 그의 시가 지니는 진정한 의미를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고진하의 시는 기독교, 불교, 도교, 유교, 힌두교 등을 모두 아우르고 초월하는 통(通) 종교적인 성격을 띠지만 그의 본질적 사유의 뿌리는 기독교적 사유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이러한 기독교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여 타자와 세계, 그리고 신(神)과의 관계가 비틀어지고 왜곡된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하나되는 ‘참된 사귐’을 소망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고진하 시에 드러난 사유를 ‘타자와의 사귐’, ‘세계와의 사귐’, ‘신과의 사귐’ 등 세 영역으로 나누고, 각각을 현대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과 중세 신학자 마이스터 엑카르트(Meister Johannes Eckhart)의 기독교적 사유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Ⅱ장에서는 고진하 초기 시에 드러나는 고통당하는 ‘타자와의 사귐’에 대하여 ‘신정론’(Theodicy)’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위르겐 몰트만은 그의 초기 연구부터 신의 존재와 악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다루었는데, 그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 속에서 이 땅의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당하는 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고통 속의 타자와 연대하는 가운데 신의 구원을 기다리는 희망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실존적으로 소외된 80년대 말 강원도 농촌의 ‘빈 들’을 경험하는 고진하의 초기 시에서 신정론적 문제는 중요한 시적 주제가 된다. 고진하는 신의 부재 속에서도 여전히 고통 속에 현존하는 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인간의 고통 속에 고통당하는 신과 함께 타자의 고통 속에서 하나됨을 이루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고진하 시에 드러나는 ‘세계와의 사귐’을 ‘만유재신론(Panentheism)’과 ‘생태신학(ecological theology)’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만유재신론은 ‘세상이 신 안에 있고 신이 세상 안에 있다’는 기독교적 사상으로, 모든 것이 신이 되는 범신론(Pantheism)과는 구별된다. 몰트만과 엑카르트는 모두 이러한 만유재신론적 사유를 바탕으로 기독교적인 ‘생태 신학’을 발전시켰는데, 고진하의 시에는 이러한 사유가 잘 드러나고 있다. 고진하는 병든 문명과 파괴된 자연으로 인한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연을 ‘상처 입은 치유자’, ‘여명의 지식을 담은 경전’, ‘우주적 가족공동체’ 등으로 인식하고 ‘일상의 성화’와 ‘안식의 회복’을 노래한다.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과 진보를 위한 자본주의적 착취를 정당화하는 서구 근대의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 할 수 있다. Ⅳ장에서는 고진하 시에 드러나는 ‘신과의 사귐’을 ‘신비주의(mysticism)’와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중세 신비주의 신학자 엑카르트는 ‘돌파와 초월’, ‘낳음’, ‘하느님 아들의 삶’이라는 신비주의적 사유를 통해 ‘신비주의적 신화(神化)’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사유는 만유재신론적 사유와 맞물려서 모든 유형론적인 종교를 초월하는 종교다원주의적 사유로 나아간다. 고진하는 현대인이 경험하는 신성의 상실과 세속화된 종교의 부패, 종교문명 간의 충돌 등을 신비주의적 신화(神化)와 종교다원주의적 사유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데, 이는 일체의 형상을 버리고 종교 간의 울타리를 허무는 동시에 절대적 신성과 합일하여 신적 존재로의 초월을 상상하는 것이다. 요컨대 고진하의 시는 기독교적 사유 중심의 종교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에 잃어버린 신적 가치를 회복하고, 인간․세계․신 등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하나되는 참된 사귐의 꿈을 노래하면서, 탈근대 시대의 고통당하는 타자, 파괴된 자연과 병든 문명, 신의 죽음과 왜곡된 종교 등의 문제에 대한 구원의 길을 모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장정일 시의 정신분석학적 연구

        박윤선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RANK : 247615

        지금까지 장정일 문학을 읽어내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개인적 체험으로 말미암은 아버지에 대한 저항과 불신으로, 그의 시는 체험에서 우러나온 구체성을 띄고 있다. 거기에 그가 살았던 19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은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동기부여를 한다. 1980년대는 아버지를 상징계와 연결시키고 문화와 법을 부여하여 세계의 질서를 세우는 존재로써 아버지 권위를 철저히 부정하고 이를 해체시키는데 혼심의 힘을 기울였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정일의 아버지에 대한 저항과 불신이라는 개인적 체험이 1980년대라는 시기적 상황과 맞물리고, 자본주의 사회와 하나로 접합되면서 오이디푸스 구조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를 만들어내게 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이제 세계이자 세상이 되고, 그 세상은 현실이 되어 악으로 나타나는 등가가 성립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장정일의 시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상징질서가 합법화시킨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일탈하며 탈주를 꿈꾼다. 그래서 그의 이러한 사유들을 정신분석학과 연결시키고 그의 작품이 추구하고자 했던 의미를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주체존재에 대한 분석과 타자와의 관계성을 설명하고, 이를 토대로 가족구조와 사회구조까지 확장시켜나가는데 이런 구조적 상황은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와 라캉을 지나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오이디푸스를 완벽하게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 정신병리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는 이들이 오이디푸스 구조를 꼭 이행해야하는 구조체계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 구조적 상황자체를 문제시하고 거부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론은 이와는 상반되게 된다. 그들은 이러한 오이디푸스적 구조 자체를 부정하고, 이로 인해 나타나는 정신병리적 증상까지도 자연스러운 현상인 욕망 자체의 자유로운 흐름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프로이트와 라캉이 구조적 현상을 드러내기만 했을 뿐,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 사유로 분열분석이라는 새로운 실천방안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들은 모든 제도적인 구조들, 법률들 등의 재배치를 이룩하고자 자기자신, 즉 주체에게 있어서 발언권을 갖도록 만들어 개체성을 제거하지 않는 하나의 신체를 구성해 나가는 것, 또한 주체들이 스스로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 속에서 자율적 권력을 구성해 나가는 것으로써 기표적 행위의 메커니즘을 깨버린다. 그들의 이러한 점은 시인 장정일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합되는 면모를 보인다. 장정일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절대라는 명제였다.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결코 생부적인 측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억압과 금지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절대적 기표의 독재자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절대권력이라는 현상의 거부로 이어지고, 절대권력의 현실에 대한 세상의 증오로 전이되게 된다. 따라서 그는 생활 도처에 실현되거나 잠재된 형태로 편재하고 있는 부성적 은유들에게서 벗어나고자 전면적으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문제를 드러낸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그의 시를 안티오이디푸스로 규정짓고, 들뢰즈와 가타리의 관점으로 크게 세가지로 분류하여 구조적 체계를 잡았다. 오이디푸스 현상에 대한 비극성을 인식하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주체는 모멸과 혐오의 자기인식으로, 자궁으로 퇴행하는 양상을 통해 오이디푸스적 구조를 거부하며, 거부를 토대로 독립적 주체로 이행하기 위해 매저키즘을 통한 환상적 자기세계로, 포르노그라피를 이용한 욕망적 공간으로의 탈주를 통해 자기구원의 가능성을 엿본다. 이러한 주체의 모습은 타자로부터 벗어나는 삶에 대한, 그리고 주체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으로 이끌어준다. 그래서 본고는 그가 사회의 위악에 주목했고 그를 폭로하는 데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당당히 아버지로 표상되는 이 사회의 체계에 맞서도 있다는 사실과 그 사유의 편린들이 정신분석학과 연결되어 현실적 대응방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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