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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정 한국유교학회 2022 유교사상문화연구 Vol.- No.87
Zhuxi's philosophical system is characterized by "penetration into the category of one's nature as metaphysical source", which is established as "Zhonghe (中和)" theory. The term Zhonghe refers to true characters of nature, society and human life and it serves as the foundation of human life as the supreme principle and at the same time, represents features of an ideal world. Thus, a question of how Zhonghe as the metaphysical source is realized is naturally connected with another question on Zhizhonghe as a way of one’s study. ‘Zhizhonghe (致中和)’ is the study on the root of cultivation and introspection. It is also definite proof as to validity in unfolding self-cultivation study along with clarification of metaphysical source with Zhonghe theory in Zhuxi's philosophical system as its starting point. This study is to examine meanings in interpreting Zhonghe in the two categories of Zhonghe regarding metaphysical source and Zhonghe in terms of axiological mind and; to look in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se two categories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Zhonghe theory in order to identify features of Zhuxi philosophy. The notion Zhizhonghe is to be set as directing point of Zhuxi's self-cultivation theory while Zhuxi's self-cultivation study is to be examined from two angles of the term Zhizhong (致中, reaching Zhong) and Zhihe (致和, reaching He). This progress would be to understand that Zhuxi’s self-cultivation study is in order for achievement as it is in the realm of one’s mind starting from moral perception of metaphysical source and furthermore, it would have significance to confirm the constant rationality of Zhuxi's self-cultivation system. 주희 철학 체계는 “형이상학적 본원의 심성범주에의 관통”이라는 특징을 지니는데, 이는 ‘중화(中和)’설로 확립된다. 중화는 기본적으로 자연, 사회, 인간의 삶의 본연의 모습이며, 최고원칙으로 인간 삶에 근간이 되면서 동시에, 이상세계의 특성을 나타낸다. 때문에, 형이상학적 본원의 중화가 어떻게 실현되는가에 대한 물음은 자연스레 공부 방법으로서의 치중화에 대한 물음으로 연계된다. ‘치중화(致中和)’는 함양(涵養)과 성찰(省察)로 나누어지는 연원에 대한 고찰이며 동시에 주희 철학 체계의 중화설을 기점으로 형이상학적 본원에 대한 규명과 함께 수양공부의 전개에 있어서 그 타당성에 대한 확증이다. 필자는 우선 중화에 대한 해석을 형이상학적 본원에 대한 중화와 가치론적 심성에 대한 중화로 나누어 그 의미를 살펴보고 치중화를 주희 수양론의 지향점으로 삼고, 중(中)에 이르는 치중(致中)과 화(和)에 이르는 치화(致和)의 두 가지 각도에서 주희 수양공부를 고찰할 것이다. 이 과정은 주희 수양공부는 형이상학적 본원에 대한 도덕적 자각을 기점으로 그것을 심성의 영역 안에서 그대로 이루는 과정임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중용』 치중화<SUP>致中和</SUP>의 공효 실현 과정에 대한 율곡과 다산 해석의 현대적 함의
박병만(Park, Byung-mann) 한국국학진흥원 2020 국학연구 Vol.0 No.42
이 글에서는 『중용』 1장의 “致中和, 天地位焉萬物育焉.”에 대한 율곡 이이와 다산 정약용의 해석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율곡과 다산 해석의 특성을 볼 수 있었고, 나아가 오늘날 시대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주자는 천지‧만물은 나와 한 몸이므로 나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기氣를 순順하게 하면 ‘천지위‧만물육’이라는 공효功效를 얻을 수 있다고 주석하였다. 만물일체론과 기론적氣論的 사유에 근거한 논리임을 알 수 있다. 율곡은 주자와 같은 논리 방식을 취하였으나, 만물일체론이 아닌 천인교여론天人交與論을 근거로 제시한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반면에, 다산은 만물일체론을 비판하며 군주‧경상卿相의 지위와 정치 행위로써 그 공효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율곡의 관념적 해석에 비해 현실적이고 실증적인 성향을 볼 수 있었다. 율곡의 천인교여론은 생태학적 인식론으로 재해석하여 자연의 파괴를 멈추지 않는 오늘날의 문명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산의 해석에서는 오늘날 정치의 주체인 시민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또한, 현대에도 여전히 계승해야 할 유학적 가치가 치중화에 담겨 있다. 치중화는 발동하는 감정의 적절성을 온전히 하는 것으로 욕구의 절제를 요구한다. 이는 수양공부의 과제이며 유학의 기본 이념이다. 주자는 물론 다산도 치중화는 수양을 전제로 한다고 인식했다. 인간 삶의 모든 문제는 무절제한 욕구와 관련한다. 욕구의 절제를 통한 치중화의 실현은 이러한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답이 될 것이다. This paper is an overview of the interpretations of Yulgok Yi Yi (李珥) and Dasan Jeong Yak-yong(丁若鏞) on the verse “When the mean and harmony are actualized, Heaven and Earth are in their proper positions, and the myriad things are nourished”(致中和, 天地位焉萬物育焉.) found in Chapter 1 of Joongyong(_中庸_). Through an overview of this nature, the characteristics of Yulgok and Dasan’s interpretations can be examined, and furthermore, some meanings applicable to modern day issues can be found. Zhuxi’s annotations state that Heaven and Earth, all myriad phenomena, and the self are as one body. Therefore, if one straightens their mind and smooths out their qi(氣), they can attain the efficacy of ‘Heaven and Earth are in their proper positions’(天地位) and ‘the myriad things are nourished’(萬物育). He presented this logic based on his concept that ‘all things in the world are one body’(萬物一體) and additional reasoning from his theory of qi. Yulgok took up the same logical methods as Zhuxi, yet he revealed a difference by presenting a theory of ‘Mutual Participation between Heaven and Human Being’(天人交與) rather than a theory of ‘all things in the world are one body’. On the other hand, Dasan criticized the theory of ‘all things in the world are one body’ and argued that its efficacy can be realized through the statuses and political actions of the monarch and prime minister. Compared to Yulgok’s ideological interpretation, Dasan highlighted realistic and empirical tendencies. I believe Yulgok’s theory of ‘Mutual Participation between Heaven and Human Being’ can be reinterpreted through ecological epistemology, and this can provide an opportunity to reflect on today’s civilization which fails to stop the destruction of nature. In Dasan’s interpretation, it was possible to find the meaning of why citizens, who are the subject of today’s politics, are actually in need of active participation. In addition, the ‘actualization of the Mean and Harmony’(致中和) contains Confucian values that continue to be a valuable inheritance in modern times. The ‘actualization of the Mean and Harmony’ is the perfection of emotional propriety and requires the moderation of desires. This is the task of spiritual cultivation, and the basic idea of Confucianism. Zhuxi and Dasan recognized that ‘actualization of the Mean and Harmony’ presupposes cultivation. Every problem in human life stems from uncontrolled desires. The realization of ‘actualization of the Mean and Harmony’ through the moderation of desires can serve as a fundamental answer to these problems.
방경훈(房敬勳)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17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71 No.-
주자의 중 개념은 미발의 중을 성으로 보는 관점과 적연부동을 심으로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이는 미발에서 본원을 먼저 체득해야 한다는 의식을 다시 갖게 되면서, 하나의 심이 어떻게 함양과 체인을 하느냐에 있다. 주자는 미발을 본원성과 심의 활동으로 인한 미발이발로 구분하여, 본원의 입장에서 미발은 이(理)이지만 미발이발을 구분한 마음의 측면에서 미발은 중이 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미발에서는 중을 함양하고 이발에서도 미발의 중을 체험하는 것이다. 하나의 심이 갖는 함양과 체인의 문제를 미발에서도 함양하면서 체인해야 하고, 이발에서도 보존하면서 체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바로 미발함양이란 본성을 기르면서[養性] 그대로 본성을 보존하는[尊性] 일관된 공부가 된다. 그 결과 중을 구하는 방법은 미발에선 ‘경계하고 삼감[戒愼恐懼]’하는 것을 본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하여, 이때 중을 구하는데 ‘천지의 중’을 체인함이 핵심이다. 이는 연평의 ‘미발기상체인’의 뜻이며 맹자의 존심양성과 이천의 평일함양과 같다. 미발에 바른 기상의 함양은 하늘이 준 본성을 존양하는 노력이며, 이는 중도로서 실체화되어 천하의 대본에 이를 수 있다. 주재와 존양함은 미발과 이발 모두에 관통하며, ‘홀로 삼감[愼獨]’은 이발의 공부로 간주한다. 이로써 미발에 중을 어떤 실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사사로이 집착하지 말고, 평일에 천리를 함양하는 함양과 인식의 질서를 세운다. 결국 중은 함양하는 심과 천명의 성과의 매개역할을 하는 개념으로서 ‘중에 이른다.[致中]’는 함양의 실재가 완전히 온전하여 지속되는 경지이며, 심의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는 것[寂然不動]’은 이것의 실재이다. 중은 극(極)이라는 지극한 이치가 강유의 기품을 머금어 사방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우주원리의 지극한 모습인 미발의 본체와 기품을 품은 이치를 중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중에 머무르는 것[中焉止矣]은 곧 지극한 선에 이르는 것[止於至善]을 뜻하게 되었다. 또한 송대에 인간 본성은 기질과 함께 거론되는데, 그 목표는 강함과 부드러움으로 타고난 본성을 항상 성(誠)하도록 함에 있다. 이 성은 선악과 강유로 드러나며 정(情)의 이치로서 중을 실현한다. 그래서 주자는 중이 중화로서 실현되기 위해 인간의 타고난 성품을 분별하여 중에 이르러야만 완전한 선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천리의 함양은 미발을 위주로 하는데 이 미발의 중이 마땅함을 얻을 때가 때에 맞는 중[時中]이다. 따라서 중의 이치에 이른다는 것[致中]은 본성의 이치가 때에 맞도록 중절되어 지극함과 정중앙의 상태를 잃지 않게 실천하는 것이다. 이 경지를 바탕으로 이치가 실재 화합[致和]에 이르게 되면, 이는 때에 맞는 중의 이치를 미루어서 항상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실천이며 천인합일의 경지이다. 중의 이치가 완전히 화합하여 전체가 잘되도록 하려면 본성의 바름이 온전히 실현된다는 중을 확립함에서 시작하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The Jung-concept of Chu Hsi’s started off with the differences in these two views of Mibal(未發) being considered Seong(性) and Jeokyeonbudong(寂然不動) being considered Sim(心). This depended upon how Hamyang(涵養) and Chein(體認) could go along with the one-Sim, Chu Hsi having conscious of the origin of a thing in the Mibal. Chu Hsi divided the Mibal into the origin-side and Mibal-Ibal due to the sim , s activities , understanding that Mibal is the I(理) in the origin-side and Mibal is the Jung(中) in the will-side of Sim being separated Mibal-Ibal . So, in the Mibal the Jung could be done hamyang, in the ibal taken chein. Rightly, the one-Sim has Hamyang and chein, So in conclusion, the hamyang and chein must be done in the Mibal, the bojon(保存) and Chein being done in the ibal. So-called Mibal-Hamyang is the study that is taking hamyang and bojon-Bonseong(本性) together. As a result, the method of looking for Jung is that tightening guard and abstaining are accounted no losing Bonseong in the Mibal,and looking for Jung has the point taking chein the Jung of cheonji(天地) . This has the same means with Mibalgisangchein(未發氣象體認) o f Lee Yeon pyeong (李延平), Pyeongil (平日) - Hamyang of Jeong Icheon(程伊川) and Jonsim-Yangseong(存心養性) of Mencius(孟子). To develop Gisang(氣象) of Mibal is is introspection-effort[存養] about the Bonseong given from Cheon(天),being substantialized as Jung-Do(中道) to reach at Daebon(大本) of the world[天下]. Jujae(主宰) and Jonyang(存養) go through Mibal and ibal , and Sindok(愼獨) is treated as a joke Ibal-study. Judging from this, get rid of one’s obsession over an entity of Jung(中) in the Mibal, the Order of hamyang and awareness which build up Cheon-I(天理) in the Pyeongil would be set up. Ultimately, Jung(中) is the concept of mediation rolebetween hamyang-sim and Cheonmyeong(天命)-seong. ‘Getting to Jung[致中]’is the stage that the contents of hamyang is fully sustainable, and the sim’s Jeokyeonbudong(寂然不動) is the Jung-Entity(中體) . Jung is the Geuk(極) of the utmost reason[理致] which has the Gang-Yu(剛柔) reacts on every side. Thus, the Mibal of principle in nature and the utmost reason of the Gang-Yu could be explained by the Jung, stay at the Jung meaning being very Good all the time. The Human-Bonseong would be always mentioned with Gijil(氣質) in the Song Dynasty, the aim consists in making keeping Bonseong having Gijil of Gang-Yu into Seong(誠) the whole time. This Seong that turns out good-evil and Gang-Yu , fulfills the Jung of the Jeong(情)’s principle. In this respect, Chu Hsi insisted knowing the Human-born nature[性品] rightly to achieve the complete Good so that the Jung can come true to Jung-Hwa. Doing Hamyang for Cheon-I with the the Mibal, the Time of the Mibal-Jung’s being suitable is the SiJung(時中) . So Getting to the Jung[致中] means making the Bonseong the right Time[中節] for accomplishing the status of the center[正中央] without loss. By this method, coming to getting to the Jung-Hwa[致中和] , this aims at the Cheoninhapil(天人合一) always meaningthe Jung-principle without loss. Ultimately, first of all set out from establishing the Jung to have the Jung-principle get to the Jung-Hwa[致中和] for the whole.
이혜영(Hye young LEE)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문화연구소 2014 철학과 문화 Vol.28 No.-
율곡 이이(栗谷李珥: 1536-1584)는 인간의 본성을 리(理)로 규정한다. 그는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선한 본성의 리를 지니고 있음을 언급하여 성인으로 변화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였다. 따라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완전하게 실현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질의 변화를 통한 본성의 회복'은 율곡의 수양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시된 방안이다. 율곡은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의 리기론적 구조에 초점을 맞추어 리와 기의 역할을 구분함으로써 기의 정화를 통해 리의 본연이 드러나게 하는 수양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선한 본성으로부터 유발된 칠정이 선과 악으로 나뉘는 것은 기의 품질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즉 맑은 기가 본연지성을 온전하게 담아내면 이는 칠정의 중절(中節)이 되는 반면, 흐린 기가 본연지성을 가리면 이는 칠정의 부중절(不中節)이 되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수양과 실천의 핵심은 치중화(致中和)이다. 치중화는 각자가 처한 상황의 변화에 알맞게 대처하여 진리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율곡은 인간의 본성이 일상성 즉, 구체적 현실에서의 책임을 통하여 드러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외물, 즉 사물과의 관계를 항상 염두에 두는 본성을 기르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이처럼 성선의 리, 즉 본연지성을 지향하는 동시에 이를 드러내기 위한 현실적 노력으로서 기질의 수양 및 치중화를 중요시 하였다. 이는 내면의 본성 추구에 있어 항상 현실과의 조화를 고려하는 특징을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Yulgok Yi Yi(栗谷李珥: 1536-1584) defines man's human nature as li (理). Moreover, he presents a basis for the possibility that an ordinary person can transform himself into a sage by stating that all men are born with own nature which is good. Therefore, becoming a sage means the perfect realization of man's own nature. 'Recovering one's own nature (本性; original nature) by changing qijil (氣質; physical substance)' is a important way in Yulgok's cultivation. Yulgok took notice of the theoretical structure of li-qi in the Original Nature (本然之性) and the Physical Nature (氣質之性), and the Four Beginnings (四端) and the Seven Emotions (七情), and clearly divided the roles of li and qi in them. So he argued his cultivation theory that people could exhibit the original character of li by the purification of qi. The difference in the quality of qi (氣) is given as the root of the Seven Feelings, which arise from originally good human nature, diverging into the good and the bad. In other words, the state of "pureness" is when pure qi (氣) contains the original human nature in its entirety, from which arises proper Seven Feelings. In contrast, the state of "impureness" is when impure qi (氣) conceals the original human nature, from which arises improper Seven Feelings. The core of moral culture and practice is Chijunghwa (致中和) in real life. Chijunghwa (致中和) means each of us meets the change of the present situation reasonably and practices the truth. Yulgok supposed one's own nature is exposed through the responsibility of the specific reality. So he suggested that how to grow one's own nature as the things in their relation in mind. He followed li (理)- 'human nature is good', at the same time, emphasis on 'Recovering one's own nature (本性; original nature) by changing qijil (氣質; physical substance)' and Chijunghwa (致中和; moderation). This is the consideration of balance the pursuit of one's own nature and reality.
『중용(中庸)』의 치중화(致中和) 사상을 통해 본 동래학춤 비약태(飛躍態)의 생명미
강기화 사단법인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9 한국문학과 예술 Vol.32 N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beauty of life in Biyaktae (飛躍態) of Dong‐Rae Crane Dance seen through “Zhi‐Zhonghe (致中和)” thought of “Zhongyong (中庸)“. The beauty of life in Biyaktae of Dong‐Rae Crane Dance is a symbolic representation of the crane's (鶴) sustaining life. The core of beauty of life in the dance movement of Dong‐Rae Crane Dance is a scene of leaping (飛躍) and flying. The leap is expressed as Hwayuk (化育), and it is a form of development that originates from the harmony between ‘heaven and earth’ and nature. Biyaktae of Dong‐Rae Crane Dance, which contains the continuity and harmony of life, expresses the beauty of stirring life, which is the life awareness of all things emphasized in “Zhongyong”. Through Biyaktae of the Dong‐Rae Crane Dance, it is found that the beauty of life is revealed in the dance movements of 'Hwalgatjit‐jumping movement (Naleumsae)' and 'right‐left hwalgae movement'. Therefore, it can be seen that Biyaktae's beauty of life immanent in Dong‐Rae Crane Dance is not different from the life awareness of 'Cheonji‐wieon (天地位焉)' and 'Manmul‐yukeon (萬物育焉)' in “Zhongyong”. 이 논문의 연구 목적은 『중용(中庸)』의 치중화(致中和) 사상을 통해 본 동래학춤 비약태(飛躍態)의 생명미를 분석하는 것이다. 동래학춤에 나타난 비약태의 생명미는 학(鶴)이 생명을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동래학춤의 춤사위에 있어서 생명미의 핵심은 비약(飛躍)하고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그 비약은 화육(化育)이라고 표현하며, 천지자연의 조화에서 비롯되는 생성 발육의 모습이다. 생명의 연속성과 조화로움이 담긴 동래학춤의 비약태는 약동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으로써 『중용(中庸)』에서 강조하는 만물일체의 생명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동래학춤의 비약태를 통하여 생명의 아름다움은 ‘활갯짓뜀사위(날음새)’와 ‘좌우활개사위’라는 춤사위로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동래학춤에 내재된 비약태의 생명미는 『중용(中庸)』에서의 ‘천지위언(天地位焉)’과 ‘만물육언(萬物育焉)’이라는 생명의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先秦儒家에 있어서 時中의 문제 – 孔 ・孟 時中사상의 易庸論的 접근 –
이선경 동양철학연구회 2008 東洋哲學硏究 Vol.55 No.-
이 논문에서는 공・맹 유학의 본령이 시중(時中)에 있다고 보고, 그 이론적 근거를 『역경(易經)』의 역삼의(易三義 ; 不易・變易・易簡)와 『중용(中庸)』의 치중화론(致中和論)을 통하여 고찰하였다. 『역경』과 『중용』은 유가철학형성의 양대 원천으로서 역(易)의 삼의(三義)와 치중화론은 사상적으로 표리일체를 이룬다. 먼저 『중용』에 따르면 ‘중(中)’은 ‘희노애락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것’으로서, ‘이 세상의 큰 근본’이 되며, ‘화(和)’는 ‘이 세상에 두루 통하는 도[達道]’가 된다. 중(中)이 진리의 체(體)로서 성명(性命)을 말한다면, 달도(達道)로서의 화(和)는 성명이 발현되는 구체적 현장성으로서 용(用)을 말한다. 시중(時中)이란 중화(中和)를 구현하는 인간의 행위로서 ‘치중화(致中和)’가 된다. 『역경』의 관점에서 보면 시중(時中)이란 변역・불역・이간이 삼위일체로 어우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불역(不易)은 천도(天道)로서 체(體)의 측면으로, 변역(變易)은 지도(地道)로서 용(用)의 측면으로, 이간(易簡)은 천지의 이치를 실현하는 인간의 문제로 본다. 『중용』에서나 『역경』에서나 시중은 모두 지덕자(至德者)로서 인간의 행위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혐오’ 극복을 위한 방법론적 고찰 − 치중화(致中和)를 통한 서(恕)를 중심으로 −
김준승 동양철학연구회 2020 東洋哲學硏究 Vol.104 No.-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consider the methodology for realizing the ‘harmony’ by examining and overcoming ‘hatred’ in the perspective of Zhi- Zhonghe. The hatred is an emotion derived from complex reasons, instead of a single reason. Even though the hatred is also working as a defense mechanism for protecting oneself, such social problems are generated by separating oneself from others like logics between camps, and the majority’s discrimination against minorities in modern society. The solution as a means by external intervention is not only difficult to apply to the reality, but also limited to become a fundamental solution. Thus, we need to realize the harmful effects of excessive hatred and hateful expressions in social community. In order to overcome hatred and also to achieve the harmony. there should be the approach through ‘benevolence’ focusing on the autonomous character and morality of each individual. For this, we should achieve the moderation by going through the filtering process for the objectivity of information, maintain the justice and objectivity not to be narrow-minded for collecting, utilizing, or inciting lots of information in real time, and perceive the fact that the recognition of others is not led to the decline of our self-esteem or denial of ourselves, but led to the expansion of ourselves. Once such things are fulfilled, we could move from the logic of camp based on a belief emphasizing only what we want to see, toward the logic of character that perceives situations and views character without ulterior motives. 이 논문의 목적은 혐오감에 대해 살펴봄과 동시에 ‘혐오’를 극복해 ‘화(和)’를 실현하는 방법론을 치중화(致中和)를 통한 서(恕)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데 있다. 혐오는 단순하게 한 가지 이유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혐오가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의 역할도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진영 간의 논리, 다수에 의한 소수자 차별 등 자신과 타자를 구분함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해 외부적인 개입에 의한 해결은 실제로 적용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해결책을 찾는다면 자기 안에서 구해야 하며(求諸己) 사회 공동체에서의 과도한 혐오감과 혐오 표현(Hate Speech)의 폐해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혐오를 극복하고 화(和)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자율적 인성과 도덕성을 키워야 하는데, 이는 서(恕)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정보의 객관성을 위한 필터링을 거치며 중(中)을 이루어야 하며, 실시간으로 접하는 많은 정보에 대해 공평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나와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中)과 화(和)를 이루어내는 근본이 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이런 것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을 강조하는 신념의 진영논리에서 사심 없이 상황을 인식하고 사람됨을 보는 공심(公心)의 논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현(Kim, Ji-Hyun) 동서미술문화학회 2015 미술문화연구 Vol.7 No.7
인간 삶 속에서 예술은 생명적 감동을 느끼게 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하여 인생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며 긍정적 영향력을 끼친다. 이러한 예술범주 가운데 회화는 외부 사물들과의 감정 교류에서 감성이 풍부하게 작용할 때 내재된 정감(情感)들을 화면에 표현하는 장르인데, 그 때에 드러내는 미적가치를 중화미(中和美)로 드러내는 회화적 표현을 연구해 보려는 것이다. 이 중화미를 이루려면 우선 내재적 형상으로서 집중(執中)해야 하고, 집중을 회화적으로 구현하는 치화(致和)의 단계를 거치면 다음단계는 저절로 회화적 완성단계로 치중화(致中和)에 이르러 중화(中和)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기에 본 연구는 중화미에 관한 예술적 근거를 유가(儒家)의 중화이론(中和理論)을 통해 연구하여 중화의 사상적 배경이나 미학적 측면을 고찰한 후, 예술작품과 관련하여 그 예술적 근거를 찾아 치중화로서의 회화표현을 이론적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논문이다. 중화미의 회화적 표현에 관하여 연구해 본 결과 회화표현을 하는데 있어 중화가 집중, 치화, 치중화의 과정을 거쳐 즉, 작가의 내재적 형상이 균형 잡힌 형식과 내용으로 구현되었을 때 중화미의 가치를 드러내는 회화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로써 현대인과 미술 분야에도 중화적 아름다움이 긍정적 영향을 끼쳐 보다 바람직한 예술활동을 하는데 적용되어 회화표현에 있어 이상적 아름다움이 현시되게 함으로써 현대미술에 기여하였으면 한다. Art has a positive influence on life by letting people feel live impression and emotional stability, and by making life richer. Among these categories of art, painting is a genre that expressing inherent emotions, when the artist is influenced by emotional exchanges between himself or herself and external objects, to the screen. I am going to study picturesque expression that discloses aesthetic value through the beauty of Supreme harmony at this moment. To reach the beauty of Supreme harmony, first the author needs to holding fast mean and emotion (執中) as an inherent form. After the stage of attainment of harmony(致和)which realize this holding fast mean and emotion to a pictoral form, next step is a completion phase that naturally complete Supreme harmony by reaching attainment of the supreme harmony to the fullest(致中和). Considering this phases, this study will focus on theoretical establish of picturesque expression as a attainment of the supreme harmony to the fullestby reviewing artistic base of the beauty of Supreme harmony from Supreme harmony theory of Confucianism(儒家), studying ideological background and aspect of esthetics of Supreme harmony, and finding artistic basis regarding specific art works. As a result of the study regarding picturesque expression of beauty of Supreme harmony, I found author can create an art work that reveals the value of Supreme harmony when Supreme harmony is expressed through holding fast mean and emotion, attainment of harmony, and attainment of the supreme harmony to the fullest stage-in other words, author’s inherent shape is expressed to balanced form and content. I hope this study can contribute to the contemporary art by the beauty of Supreme harmony influencingour contemporaries and field of art positively, by being applied to desirable art works, and by showing ideal beauty from picturesque expression.
율곡의 이기지묘(理氣之妙)와 치중화(致中和) -기질변화의 도덕교육적 함의를 중심으로-
신순정 ( Soon-jeong Shin ) 한국철학사연구회 2016 한국 철학논집 Vol.0 No.50
본 논문은 한국유학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7~1584)의 사상을 통해 현대 도덕교육에의 적실성 여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율곡이 송대의 성리학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성을 발휘하여 이기(理氣)관계를 ‘이기지묘(理氣之妙)’로 정립하고,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과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통해 심(心)·성 (性)·정(情)·의(意)의 관계를 연속선상에서 요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율곡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심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이상적 인간이 되는 길을 제시하였고, 다른 한 편으로는 변통의 묘리를 발휘하여 현실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율곡사상의 특징은 형식적으로는 그가 중국 정주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본질 적으로는 『중용』과 『주역』의 시중(時中)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율곡은 때(時)의 적의성이라는 점에서 시중의 중용의 의미를 중시함과 더불어 ‘치중화(致中和)’를 실천론적 이상으로 설정하였던 것이다. 이 논문은 송대 성리학의 연장선상 위에 선 율곡이 어떠한 인식[앎]의 지평에서 현실성[때]을 담보해냈는지를 살펴보고 그의 심성정의일로설(心性情意一路說)과 기질변화의 교육적 태도를 통해 도덕교육방법론의 현대적 함의를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This thesis aims to suggest probability of modern confrontation of Yulgok YiYi’s thought. For this, find out the meaning of Li-Qi-Zhi-Miao(理氣之妙) and through the Qi-Fa-Li-Cheng-Yi-Tu(氣發理乘一途), and Li-Tong-Qi-Ju-Shou(理通氣局說), Yin-Xim-Do-Xim-Shou(人心道心說), he creatively reveal the relation of Xin(心)·Xing(性)·Qing(情)·Yi(意) continually. On one side he suggested the way of ideal man, on the other side he was showed adaptablity to the real world. So I think Yulgok had placed emphasis on the Zhongyong(中庸) and Yijing(周易), so he point out the meaning of ShiZhong (時中). Then he had high ideals practical Zhi-Zhonghe((致中和). So This paper is to find out his foundation of epistemology, and then to know It‘s modern meaning of methodology of moral Education’s Implication on the relation of Xin(心)·Xing(性)·Qing(情)·Yi(意). So We ca find out Ji(機) is very important the transition of Qi-Zhe(氣質).
이동준 (사)율곡학회 2009 율곡학연구 Vol.19 No.-
율곡사회사상의 원리적 배경을 거시적으로 살핀다면, 우선 우리는 그의 『성학집요(聖學輯要)』 <통설(統說)>에서 볼 수 있다. 율곡은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강령이 되는 첫 부분을 들어서 말하고, 이것이야 말로 “체(體)와 용(用)을 다 들어서 하는 말[體用摠擧之說]”이라 한다. 그 가운데 핵심적 내용은 『중용』의 “‘중’과 ‘화’를 다한다[致中和]”라 함과 『대학』의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힌다[明明德於天下]”에 나타나 있다. 율곡이 이루려 희구(希求)하였던 사회는 인인개개(人人個個)가 명덕을 밝혀 자기의 인격(人格)을 누리며, 중화(中和)가 실현되는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난날에는 가족본위(家族本位)에서 부족(部族)으로, 사회국가로 성장하였으며 이제는 국제화ㆍ세계화의 지구촌의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가정과 민족국가가 엄존한다. 어떠한 시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우리가 성취하려는 사회는 명명덕(明明德)과 치중화(致中和)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 지난날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을 돌이켜 보며 율곡사상에서 유의할 사항을 들어 보면 첫째, 오늘날은 민족국가적으로,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상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새 시대에 맞도록 개혁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반드시 인륜대도(人倫大道)와 인도정신이 내재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오늘날은 폐쇄사회가 아니다. 우리가 국내외로 지난날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모든 것을 개방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개방에 앞서 개방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행위자인 인간 자신의 주체적 각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인류 공영(共榮)의 대동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사회적,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연구하고 추진하는 공동기구가 설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