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석보상절』 권11과 『월인석보』 권21의 한문과 언해문의 대응 양상

        김성주 국어사학회 2015 국어사연구 Vol.0 No.20

        『석보상절』의 권차 배치와 『월인석보』의 권차 배치는 서로 다른데, 그 중에서도 『석보상절』 권11의 주 요 내용이 『월인석보』에서는 권21에 배치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 석보상절』 권11에서 부처님의 열반에 대해 암시하는 부분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석보상절』이나 『월인석 보』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다룬 문헌이므로 ‘부처님의 열반’은 비교적 후반부에 나와야 할 내용이다. 그런데 부처님의 열반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는 부분이 전체 24권인 『석보상절』에서 권11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전 체 25권인『월인석보』에서는 비교적 뒷부분인 권21에 배치하게 되었다. 또한 『석보상절』은 간경도감 언해본에 비해 의역이 많은 문헌으로 인식하여 왔고, 『월인석보』는 『석보 상절』보다는 직역에 가깝지만 간경도감 언해본들보다는 다소 의역되었다고 인식해 왔다. 그런데 『석보상절 』과 월인석보 를 절략 양상의 관점에서도 규정할 수 있다. 절략의 정도는 게재율 즉 저본의 내용을 얼마 나 충실하게 게재하였는지에 대한 비율을 비교함으로써 밝힐 수 있다. 『석보상절』 권11의 게재율은 49%, 『월인석보』 권21의 게재율은 97%이다. 『석보상절』 권11이 『석보상절』을 대표하고, 『월인석보』 권21 이 『월인석보』를 대표한다고 가정하고 간경도감 언해본의 게재율을 100%라고 가정하면 『석보상절』, 『 월인석보』, 간경도감본 언해본의 게재율은 각각 49>97>*100%로 나타낼 수 있다. The aim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a characteristics of between SeokBoSangJeol (釋譜詳節) and WolInSeokBo(月印釋譜) through doing a survey of in what proportion their texts were translated from the original texts. SeokBoSangJeol is the first translated prose literature after invention of HunMinJeongEum(訓民正音). WolInSeokBo is a literature which has Wolincheonganjigok (月印千江之曲) as a main text and SeokBoSangJeol as an explanatory note. Generally speaking, we can say that SeokBoSangJeol is a liberal, WolInSeokBo is a slightly literal, the translated literatures published in Gankyeongdogam(刊經都監), are the very literal translation. We can, by the way, find out a characteristics between SeokBoSangJeol and WolInSeokBo through investigating their abridged proportion form their original texts. The printed ratio of SeokBoSangJeol vol. 11th is 49%, whereas that of WolInSeokBo vol 21st is 97%. If we assume that each SeokBoSangJeol vol. 11th and WolInSeokBo vol 21st represents the complete SeokBoSangJeol and WolInSeokBo and if we assume the printed ratio of the TLPKs is 100%, we can display their abridged proportion as belows; SeokBoSangJeol 49>WolInSeokBo 97>TLPKs *100%

      • KCI등재

        석보상절의 간행과 정음청의 역할

        이근우(Rhee Kunwoo)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21 인문사회과학연구 Vol.22 No.2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과 석보상절은 모두 1450년 경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종교 관련 문헌으로 여러 가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석보상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석보상절의 편찬과정, 간행 시기나 간행 장소 등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특히 간행시기와 관련하여 편찬이 완료된 직후인 1447년 혹은 1448년 경까지는 간행이 완료된 것으로 인식해 왔으나, 1450년까지도 금내(禁內)에 설치된 정음청(正音廳)을 중심으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인쇄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간행하는 역할을 맡은 정음청은 세종이 설치하였으며, 그 산하에 책방(冊房), 조각방(雕刻房), 화빈방(火鑌房), 묵방(墨房)이라는 하부 조직이 있었다. 또한 인판장인(印板匠人)과 장책서원(粧冊書員) 등 책을 인쇄하고 제본하는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조직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건물의 규모도 컸던 정음청은 불경을 인쇄한다는 사실과 환관 등이 간여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단종 즉위년에 폐지되었다. 석보상절을 인쇄하기 위해서는 3종류의 새로운 활자가 필요하였는데, 이는 정음청과 그 부속기관에서 주조하였고, 책방은 활자와 먹 그리고 세종이 제작을 지시한 印經紙를 이용해서 석보상절을 인쇄하였다. 석보상절 간행과 관련된 일련의 작업을 주도한 것은 수양대군이다. 석보상절을 간행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우리말과 한자 음가를 나타내기 위한 활자들은 방점과 일부 모음에서 둥근 점을 사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 활자는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사리영응기에서만 사용되었고 그 이후에는 전혀 쓰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 활자들은 만들어진 장소와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정음청자(正音廳字)라고 부를 수 있다. Gutenberg s 42-line Bible and Seokbosangjeol(釋譜詳節, The Precise and Concise Biography of Sakyamuni), were both printed in metal type around 1450 s and have many commonalities in religious literature. So far, despite its great importance, not enough research has been done on the compilation process, publication director, publication period, publication place, etc. Seokbosangjeol has been recognized to be published in 1447, shortly after the book was compiled or 1448 at least. But the printing of Seokbosangjeol had been carried out at the Office of Correct Sound(正音廳) around 1450. The Office was set up by King Sejong, which had several sub-organizations called Book Room, Sculpture Room, Type Casting Room and Ink Stick Room, and manpower printing and bounding books belonged to the Office of Correct Sound. Three new types of type, needed to print Seokbosangjeol, were also made at the Office of Correct Sound and the ssub-organizations, and Book Room printed the literature with types and ink. Prince Suyang led the series of works related to Seokbosangjeol publication. The types in Seokbosangjeol and, having the characteristics of rounded dots to express the tone of Chinese characters and some Korean vowels, were only used in Seokbosangjeol, Songs for the Buddha s Moon Reflected on Thousand Rivers(月印千江之曲) and A Record of the Spiritual Response of Sarira(舍利靈應記). Therefore, these types can be called types of the Office of Correct Sound.

      • 釋譜詳節の刊行とその背景

        河瀬,幸夫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09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

        이 글은 필자가 지금 출간의 기회를 찾고 있는 일본어역 석보상절의 머리말로서 쓴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에게는 내용적으로 별달리 새로운 사실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글은 필자가 동국대학교에 유학한 5년 동안에 한국인 연구자가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에 관해서 기술한 내용을 읽고 정리한 것을 일본인에게 소개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석보상절을 국문학적 관심에서 부분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외국인인 필자에게는 문학적이나 어학적 관심보다 불교학적 관심이 더 많다. 불교학 입장에서 보면 석보상절이야말로 15세기의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의 불교 이해의 전체상을 보여 주는 둘도 없는 좋은 자료라고 보인다. 그것은 한역 대장경의 전체를 정확히 이해한 결과 나온 것이라 보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는 모든 권수가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일본에 석보상절과 같은 뛰어난 책의 번역이 없었다는 첫번째 이유라고 보인다. 그러나 1990년대에 새로 많은 권수의 월인석보가 발견된 후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이라면 필자가 입수 한 석보상절과 월인석보, 그리고 월인천강지곡 모두를 번역해 보면 어 느 정도 석보상절의 전체상에 접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법화경 부분의 결권에 관해서는 법화경언해도 참조할 수 있을 것 이다. 그렇게 하면 내용적으로는 석보상절 전체의 80% 정도는 복원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이런 방법에서는 석보상절의 올바른 전체상을 알 수 없겠다고 해도 남아 있는 것만이라도 충분히 석보상절의 재미있는 내용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월인석보 중의 협주는 불교 교리의 보고다. 월 인석보 편찬자들의 불교 교리 이해가 놀랍게도 20세기 일본의 불교학 연구자들의 이해와 많이 달라지고 있지 않는 점이 필자에게는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 견해에 입각해서 필자는 석보상절의 간행에 관해서 그 배경을 포함하고 이 개설문을 써 봤다.

      • 釋譜詳節の刊行とその背景

        가와세 유키오 일본불교사연구소 2009 일본불교사연구 Vol. No.1

        이 글은 필자가 지금 출간의 기회를 찾고 있는 일본어역 석보상절의 머리말로서 쓴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에게는 내용적으로 별달리 새로운 사실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글은 필자가 동국대학교에 유학한 5년 동안에 한국인 연구자가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에 관해서 기술한 내용을 읽고 정리한 것을 일본인에게 소개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석보상절을 국문학적 관심에서 부분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외국인인 필자에게는 문학적이나 어학적 관심보다 불교학적 관심이 더 많다. 불교학 입장에서 보면 석보상절이야말로 15세기의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의 불교 이해의 전체상을 보여 주는 둘도 없는 좋은 자료라고 보인다. 그것은 한역 대장경의 전체를 정확히 이해한 결과 나온 것이라 보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는 모든 권수가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일본에 석보상절과 같은 뛰어난 책의 번역이 없었다는 첫 번째 이유라고 보인다. 그러나 1990년대에 새로 많은 권수의 월인석보가 발견된 후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이라면 필자가 입수한 석보상절과 월인석보, 그리고 월인천강지곡 모두를 번역해 보면 어느 정도 석보상절의 전체상에 접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법화경 부분의 결권에 관해서는 법화경언해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용적으로는 석보상절 전체의 80% 정도는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이런 방법에서는 석보상절의 올바른 전체상을 알 수 없겠다고 해도 남아 있는 것만이라도 충분히 석보상절의 재미있는 내용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월인석보 중의 협주는 불교 교리의 보고다. 월인석보 편찬자들의 불교 교리 이해가 놀랍게도 20세기 일본의 불교학 연구자들의 이해와 많이 달라지고 있지 않는 점이 필자에게는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 견해에 입각해서 필자는 석보상절의 간행에 관해서 그 배경을 포함하고 이 개설문을 써 봤다.

      • KCI등재

        『월인석보』 권두 부속문자의 서지

        이호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11 민족문화논총 Vol.48 No.-

        The front matters of Worinseokbo(月印釋譜) Volume I includes Hunminjeongeum- Eonhae(訓民正音諺解), Palsangdo(八相圖), the Preface of Seokbosangjeol(釋譜詳節序), the Preface of Worinseokbo(月印釋譜序) and Paegi(牌記). This study examined the binding order of these front matters and the philological nature of each front matter. Among the five front matters, the first three came from Seokbosangjeol, and the last two were inserted newly in the compilation of Worinseokbo. In Worinseokbo, the Preface of Worinseokbo is placed after the Preface of Seokbosangjeol, but in order to produce a visual effect as the preface of this book, it used different number of characters per line and bold style compared to the other front matters. Hunminjeongeum Eonhae came from the front of Seokbosangjeol, but was published as a block‐printed edition with drafts rewritten in accordance with the format of Worinseokbo. In the engraving process, the draft was revised by adding ‘Sejongeoje(世宗御製)’ in front of the title ‘Hunminjeong- eum(訓民正音).’ The revision is related with the fact that the authors of Worincheongangjigok and Seokbosangjeol were specified in following Paegi. Palsangdo of this book reused the printing blocks of that of Seokbosangjeol. The Preface of Seokbosangjeol came from Seokbosangjeol, but ‘Yu(瑈)’ at the end, which is the name of Prince Suyang, was changed to ‘Hwi(諱).’ The way of adding the pronunciation of Chinese characters and the oral particles of the original texts in the Preface of Worinseokbo was changed from that in HunminjeongeumEonhae or the Preface of Seokbosangjeol, and this change reflects the alteration of the Hangeul text edition format over time. What is called Paegi is the drawings of wood plates dedicated on the Buddhist altar. These wood plate drawings played two functions as ‘sutra label’ and ‘wish plate’ and, at the same time, played the role of title page. 「월인석보」 권1 앞에는 「훈민정음언해」, 「팔상도」, 「석보상절서」, 「월인석보서」, 「패기」가 실려 있다. 본고에서는 이들을 권두 부속문자로 지칭하고, 이들 부속문자의 편철 순서와 각 부속문자에 대한 문헌 서지적 성격을 밝혔다. 권두 부속문자 가운데 앞의 셋은 「석보상절」에서 온 것이고, 뒤의 둘은 「월인석보」 편찬 시에 새로 들어간 것이다. 「월인석보」에서 「월인석보서」는 「석보상절서」의 뒤에 놓여 있지만, 이 책의 서문으로서의 시각적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다른 부속문자들과 행당 자수를 달리하고 굵은 서체를 사용하였다. 「훈민정음언해」는 「석보상절」의 권두에 실려 있던 것을 가져온 것인데, 「월인석보」의 체재에 맞추어 版下를 새로 써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판각 과정에서 수제에 ‘世宗御製’를 덧붙이는 판하의 수정이 있었다. 이 수정은 뒤의 「패기」에서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의 지은이를 명기하게 된 사실과 관련된다. 「팔상도」는 「석보상절」의 「팔상도」 판목을 재사용한 것이다. 「석보상절서」는 「석보상절」에서 온 것이지만, 말미의 수양대군 이름자인 ‘瑈’만을 ‘諱’로 바꾸었다. 「월인석보서」에서 한자 독음과 원문 구결을 다는 방식이 「훈민정음언해」나 「석보상절서」와 달라진 것은 한글문헌 편집 체재의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그동안 「패기」라 불러온 것은 佛壇에 봉헌하는 木牌를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이 목패 그림은 經牌와 願牌의 두 가지 기능을 겸하며 동시에 書扉의 역할도 담당한다.

      • KCI등재후보

        『월인천강지곡』의 국어사적 가치와 문헌적 성격에 대한 재조명

        정우영(Chung, Woo-young)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 장서각 Vol.0 No.32

        이 글은 『月印千江之曲』을 연구 대상으로 國語史的 價値와 文獻的 性格 및 位相을 재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국어학적, 문헌학적 관점에서 이 문헌을 ‘훈민정음’ 창제 초기문헌들과 다각도로 비교·분석하여 이 문헌의 역사적 가치를 재평가하였다. 그리고 불교경전 중 하나인 『妙法蓮華經』의 서술 방식과 대비해봄으로써 이 문헌의 성격과 위상을 새롭게 밝혔다. 월인천강지곡에 적용된 국어 음운의 문자화 양상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제자원리와 비교해 볼 때 初聲 자형은 原型的 이미지가 그대로 유지·계승되었다. 그러나 中聲자형은 원형적 이미지가 일부만 유지되고(‘·’와 ‘ㆎ’), ‘·’와 결합한 나머지 모든 중성 글자는 圓點(·)이 짧은 劃(? ??)으로 모두 변경되었다. 이는 書寫의 실용성이 강조된 발전적 변화이지만, 훈민정음 창제자가 의도한 重母音 [‘ㅐ’(ㅏㅣ), ‘ㅒ’(ㅑㅣ) 등]의 繼起的 음성 실현 양상을 文字化하려던 목표는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문헌의 국어 표기법을 훈민정음 초기문헌들과 비교해 보면, ①分綴, ②종성 표기, ③사이시옷 표기, ④한자음과 한자·한글 표기 면에서 특징적 양상을 보인다. 國語史의 관점에서, ‘분철 표기’는 훈민정음 표기법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일관성 있는 조건에서 可讀性을 고려해 시도되었으며, ‘종성 표기’도 가독성을 고려하되 훈민정음 ‘例義篇’의 “종성부용초성” 규정을 철저하게 적용한 대표적인 문헌이다. 특히 ‘종성 표기’와 관련해서는 훈민정음 ‘예의편’의 “終聲復用初聲” 규정을 이론과 실제 면에서 분석하였다. 그 결과, 비록 문장은 하나이지만 실제로는 ‘종성 制字에 관한 규정’과 ‘종성 표기에 관한 규정’을 겸한 重義的 규정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혔다. 한편, ‘사이시옷 표기’는 ‘ㅅ’ 하나로 통일되었는데, 실용성에 기초해 표기법의 간소화를 실천한 선도적인 문헌이다. ‘한자음과 한글·한자 표기’는 두 가지 독특한 표기 양상을 보인다. 첫째, 국한혼용문에서 ‘한글ː한자’ 형식으로 한글을 앞에 크게, 한자는 그 뒤에 작게 표기하였다. 둘째, 15세기 보편적 문헌과 달리 한자음의 종성에 후음 ‘ㅇ’를 표기하지 않았다. 이 두 특징은 ‘한글(훈민정음)’의 문자론적 지위를 다른 문헌들보다 높게 인식한 증거로서, 한글 중심 문자생활의 최초의 전범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으며, 자주의식의 반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헌학의 관점에서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 등 세 문헌의 제작 경위를 재구성하고, 번역의 관점에서 석보상절과 그것의 底經, 그리고 월인천강지곡 등 3자의 상관관계를 ‘라후라의 출가’ 부분과, 또 다른 불경 『妙法蓮華經』의 서술 방식을 분석해 대비·검토하였다. 그 결과, 석보상절은 관련 저경이 존재하며 이 한문 불경을 ‘詳·節’하여 正音으로 번역한 불경언해이고, 월인천강지곡은 국어로 번역된 석보상절을 토대로 그 내용을 압축·생략하여 韻文化(詩歌化)한 운문 불경임을 실증하였다. 또한 『妙法蓮華經』을 분석하여 월인천강지곡과 관련된 선행·후행 텍스트의 성격과 위상을 새롭게 밝혔다. 『묘법연화경』의 서술 방식은 長行과 重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석보상절은 관련 底經을 ‘正音’으로 번역한 불교경전의 長行에 대응되며, 월인천강지곡은 장행으로 되어 있는 석보상절을 기반으로 ‘훈민정음’으로 그 내용을 요약·압축해 韻文으로 표현한 운문 불경집 곧 重頌集에 대응된다. 이와 같은 성격의 문헌은 우리나라 최초의 것이고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과 석보상절을 합편한 월인석보(1459)는 조선 세조 대에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훈민정음 대장경’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 KCI등재

        「釋譜詳節」의 저경과 저경 수용 양상

        김기종 한국서지학회 2005 서지학연구 Vol.30 No.-

        The present study, as a part of research on based scriptures, examined the structure and based scriptures of extant Seongbosangjeol and the pattern of accepting based scriptures. Discussion in this study is summarized as follows. First, in the process of examining the structure and based scriptures of each volume of extant Seongbosangjeol, new based scriptures were found and based scriptures that had been misunderstood in previous discussions were corrected. For episodes, the based scriptures of which had not been discovered, the contents of similar scriptures were suggested for subsequent studies. Second,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main based scriptures were examined and, particularly, the contents of Seokgabo(釋迦譜) were intensively analyzed. There are two kinds of Seokgabo. One is a fivevolume edition from the Koryo Dynasty and the other is tenvolume edition from the Sung(宋), Yuen(元) and Ming(明) Dynasty. It was pointed out that the chapter of ‘Seokgagangsaengseokjongseongburyeonbo’ (釋迦降生釋種成佛緣譜) has differences in quoted scriptures and contents between the fivevolume edition and the tenvolume edition.Third, the pattern of accepting based scriptures in Seongbosangjeol and its significance were examined. According to the result, Seongbosangjeol divided the contents of several based scriptures into episodes and restructured them fittingly to the whole context according to the order of time. In addition, multiple based scriptures were contained in an episode, and the editors minimized the breaks of contexts caused by the acceptance of various scripture through the coincidence of vocabulary, the use of connective suffixes, rearrangement of phrases and clauses, etc. 이 글은 본격적인 저경 연구의 일환으로, 현전 석보상절의 구성 및 저경과 그 수용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논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현전 석보상절 각 권차의 구성 및 저경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저경을 찾았고, 아울러 기존 논의에서 잘못 파악한 저경을 바로 잡았다. 아직 저경을 찾지 못한 삽화의 경우에는, 후속 연구를 위해 그와 유사한 경전의 내용을 제시하였다.둘째, 주요 저경의 내용 및 성격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특히 석가보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석가보는 5권본인 고려본과 10권본인 宋元明본의 두 종이 있으며, ‘釋迦降生釋種成佛緣譜’ 항목은 5권본과 10권본에 따라 그 인용 경전 및 내용에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였다.셋째, 석보상절의 저경 수용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 결과, 석보상절은 여러 저경들의 내용을 삽화 단위로 분리하여 그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체 문맥에 맞게 재구성하고 있음을 보았다. 또한 하나의 삽화 안에 여러 저경이 수용되어 있는 양상을 살펴보았는데, 석보상절의 편자는 어휘의 일치, 연결어미의 사용, 구절의 재배치 등을 통해 여러 경전의 수용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문맥의 단절을 최소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KCI등재

        세종시대 편찬물 체재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 -『삼강행실도』 ⋅『명황계감』⋅『용비어천가』⋅『월인석보』의 체재를 중심으로 –

        김승우 한국한문고전학회 2018 漢文古典硏究 Vol.37 No.1

        본고에서는 『삼강행실도』⋅『명황계감』⋅『용비어천가』⋅『월인석보』가 지닌 체재상의 특징을 개관하고, 편찬물들 상호간의 상관성 내지 영향 관계를 분석하였다. 『삼강행실도』는 그림과 해설로 짜인 구성의 선례를 제공했다는 의의가 있다. 백성들에게 삼강의 덕목을 홍포할 목적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그림을 통해 내용을 인상 깊게 전달한 후 관련 사적을 한문으로 풀이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왕실 후손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명황계감』에서는 그 같은 『삼강행실도』의 체재가 준용되었으며, 문건 제작에 수양대군이 깊이 관여하였다. 세종은 백성 들에게 소용되는 삼강행실도와 왕실 후손들을 위한 명황계감의 쌍을 상정 하여 상호 동일한 체재를 갖추고자 의도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창업의 위업을 공식화하기 위해 제작한 『용비어천가』는 노랫말만 존재하던 단계에서는 『삼강행실도』 및 『명황계감』과 별반 관련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세종은 이내 노랫말 각 장에 일일이 해설을 달아 풀이하도록 지시한다. 이러한 개편 체재는 『삼강행실도』⋅『명황계감』에서 그림이 차지하던 위치에 노랫말이 대신 들어간 형상이다. 한편, 소헌왕후를 추천할 목적으로 편찬한 석 보상절은 명황계감과 마찬가지로 왕실 내부의 문제에 관계되는 문건인 만큼 그 제작에도 역시 수양대군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내용상으로도 명황계감과 석보상절은 각각 당 현종과 석가모니라는 단일 인물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친연성이 있다. 『용비어천가』는 상기의 편찬물들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편찬물의 제작을 추 동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세종은 이미 편찬이 완료된 명황계감의 내용을 바탕으로 168장에 달하는 장편의 노랫말을 지어 내었는데 각 장이 대우로 짜여 있다거나 감계를 영탄으로 드러내었다는 설명으로 미루어 용비어천가 한문 가사의 형식을 활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유사한 작업은 석보상절에 대 해서도 이루어진다. 세종은 석보상절을 받아 보고서 그 내용에 의거하여 곧 583장 규모의 『월인천강지곡』을 지었으며 이때에는 『용비어천가』 국문가사의 형식을 활용하였다. 이들 노랫말은 세종대까지는 별도로 존재하였다가 세조대 에 들어 노랫말이 원 전적과 합편된다. 이때의 합편은 용비어천가의 체재를 재현하는 양상으로 귀결되어, 『삼강행실도』⋅『명황계감』⋅『용비어천가』⋅『월인석보』의 체재가 기본적으로 동일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편, 세조는 『삼강행실도』나 『용비어천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반면 명 황계감을 개편하고 『월인석보』를 제작하는 데에는 진력하는데, 이는 자신이 처음부터 두 문건의 편찬에 관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교롭게도 이들 두 문건을 바탕으로 세종이 직접 노랫말을 지어 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업과 부왕 의 작업을 한데 합침으로써 세종의 유지가 자신에게로 이어진다는 뜻을 공고하 게 드러내기 위한 의도가 간취된다. 아울러 세조는 합편한 전적을 온전히 국문 화하려는 가외의 시도도 하였다. 이는,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사례에 서처럼 국문으로써도 만족할 만한 문건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면 서, 국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의도를 현창하려는 의지가 개입된 결과로도 해석된다. Yongbieocheonga, which was produced to Justify the establishment of Joseon dynasty, did not have any relation with Samganghaengsildo or Myeonghwanggyegam in the beginning when only its lyrics existed. However, King Sejong promptly instructed Choe Hang to give a commentary on each verse of the lyrics. Through this reorganization, in the place where the pictures occupied in Samganghaengsildo and Myeonghwanggyegam, lyrics were substituted in Yongbieocheonga. Seokbosangjeol(釋譜詳節), compiled to commemorate Queen Soheon(昭憲王后), is a document related to the internal problem of the royal family as well as Myeonghwanggyegam, so Prince Suyang also played an active role in its composition. In context, Myeonghwanggyegam and Seokbosangjeol are also similar to each other in that they deal with a single character: Emperor Xuanzong of Tang and Shakyamuni. Yongbieocheonga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the above-mentioned compilations to be increased or new ones to be produced. Based on the contents of Myeonghwanggyegam, King Sejong composed 168-verse lyrics, using the form of the lyrics in Chinese characters of Yongbieocheonga. Similarly, based on the contents of Seokbosangjeol, he also composed 583-verse lyrics named Wolincheongangjigok, using the form of the lyrics in Korean vernacular of Yongbieocheonga. These lyrics, which had existed separately until the reign of King Sejong, were integrated into the original texts in the reign of King Sejo. Such reorganizations resulted in a pattern of reproducing the style of Yongbieocheonga, leading to the result that the formats of Yongbieocheonga, Myeonghwanggyegam and Wolinseokbo are basically the same. King Sejo intended to reveal the meaning of his father King Sejong’s continuity to himself by combining his work with that of his father’s. Besides, King Sejo made extra efforts to translate all the combined works into Korean vernacular as well. He was confident that satisfactory documents could be made in Korean vernacular as in the case of Seokbosangjeol and Wolincheongangjigok. It is also understood that he actively used Korean vernacular to praise King Sejong’s intention to newly create the Hunminjeongeum(訓民正音).

      • KCI등재

        필사본 『금강경언해』와 『월인석보』의 관계

        김기종 한국서지학회 2013 서지학연구 Vol.56 No.-

        This article, taking the new material, the manuscript version of Geumganggyeong Eonhae, examines its system and characteristic, and the reason or meaning of the method of Gwonsu Malje. Also, as a preliminary review, it takes a look at the conditions of the edition/ publication and versions of Geumganggyeong Eonhae published by Gangyeongdogam. The manuscript version Geumganggyeong Eonhae is a manual copy of the main texts of ‘Yukjohaeseo’, ‘Huseo’, and Geumganggyeong Eonhaeas well as Yukjo Haeui with the Ansim Copy, the second publication of Geumganggyeong Eonhae in the late 16th century as its finalized version. Different from the Korean version published by Gangyeongdogam, this book does not contain Gakjabyeongseo letters and ㅿ, reflects the actual sounds of Chinese characters at that time, and is characteristic as all instances of ‘-이’ are written as ‘ㅣ’. As such, the manuscript version Geumganggyeong Eonhae in Boseong Seonwon can be well evaluated for its values and significance in that it shows linguistic facts in the late 16th century and it is the first case that shows the distribution of manuscript version Buddhist bibles in Korean. On the other hand, from the clear mention of Seokbosangjeol and Worincheongangjigok in the manuscript version Geumganggyeong Eonhae, we can conjecture that it suggests parts or all of Geumganggyeong is put in Worinseokbo. That is to say, it can be said that the copier put Worinseokbo together with Geumganggyeong in as Gwonsuje and Wonmalje with the Ansim Copy as its finalized version in order to reveal that Geumganggyeong is also contained in Worinseokbo. However, given that the head title of Worinseokbo is ‘Woringchoengangjigok/ Seokbosangjeol’ and the frequency of ‘Worincheongangjigok’ is higher than ‘Seokbosangjeol’ in the manuscript version, we can conjecture that there was no copy of ‘Worincheongangjigok’ in which Geumganggyeong was chanted or the latter’s portion was very limited. 이 글은 신자료인 필사본 『금강경언해』를 대상으로, 그 체재 및 특징과, 卷首․末題 기재방식의 이유 내지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예비적 고찰로, 간경도감본 『금강경언해』의 編刊 및 이본의 현황을 검토하였다. 지금까지의 논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필사본 『금강경언해』는 16세기 후반에 중간본인 안심사본을 대본으로 하여, 「六祖解序」․「六祖口訣後序」와 『금강경』의 본문 및 六祖 解義의 언해문을 필사한 것이다. 이 책은 간경도감본 『금강경언해』와 달리, 각자병서와 ‘ㅿ’이 보이지 않고, 당시의 현실 한자음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가 모두 ‘ㅣ’으로 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이렇듯 보성선원 소장 필사본 『금강경언해』는, 16세기 후반의 언어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과 필사본 언해불경의 유통을 보여주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그 가치 및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한편, 필사본 『금강경언해』의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 명기는, 『금강경』의 일부 내지 전체가 현재 전하지 않는 『월인석보』에 수록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곧 이 책의 필사자는 안심사본을 저본으로 하면서도, 『금강경』이 『월인석보』에 수록되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권수제와 권말제에 ‘금강경’과 함께『월인석보』의 권두서명을 기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월인석보』의 권두서명이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이고, 필사본에 ‘월인천강지곡’보다 ‘석보상절’의 출현 빈도가 높다는 점에서, 『금강경』을 노래한 「월인천강지곡」이 없거나 그 비중이 매우 적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無住相布施’를 강조하고 있는『금강경』과, 권20~23에 보시 관련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는 『월인석보』의 내용적 특징 및 권22․23․25의 일부 내용이 결락되어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금강경』이 수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권차는 권22․23․25 중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는 『금강경』의 『월인석보』 수록 여부의 진위와 상관없이 不傳 『월인석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만으로도 그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 KCI등재

        『訓民正音』언해본의 성립과 원본 재구

        정우영(Chung Woo-Young) 국어국문학회 2005 국어국문학 Vol.- No.139

        This paper is to find out the publishing periods of the Korean version of Hunminjeongeum (訓民正音 諺解本) in the beginning parts of Worinseokbo (月印釋譜), Volumes 1 and 2 published in 1459 (currently kept in Loyola Library at Sogang University) and reconstruct its original texts published in each period.<br/> Chapter 2 performed the textual analysis of the Korean transcription system and the handwriting system and examined Sejong Sillok (the Chronicles of King Sejong : 世宗實錄). It is found that the Korean version of Hunminjeongeum underwent three stages of changes: (i) translation, (ii) addition and (iii) revision of its original texts, thereby establishing itself to the present text.<br/> It is supposed that by translating the main parts of the Chinese version of Hunminjeongeum (訓民正音 漢文本) into Korean, the first version of the Korean version of Hunminjeongeum was published in book form during the period from September to the end of December in 1446, but not later than April 1447.<br/> By translating the system of transcribing the Chinese dental sounds and adding it to the first volume, the second version of Hunminjeongeum was published as a part that precedes Seokbosangjeol (釋譜詳節), Volume 1 in July 1447, the same time when Seokbosangjeolseo (the Preface of Seokbosangjeol : 釋譜詳節序) was, it is supposed.<br/> The third version of Hunminjeongeum is a prefacing volume in Worinseokbo published in 1459, that has been passed down on to us. By appending to the head title〈世?솅宗종御?엉製?졩〉after the death of King Sejong and by adding annotations to the second version, the third version had the lines 1-4 of page 1 established in present form.<br/> Chapter 3 reconstructed the original texts of Hunminjeongeum on the basis of the previous researches into the 15th century Korean and what we found in Chapter 2. Section 3.1 reconstructed the beginning parts of Worinseokbo, Volume 1, which have been handed down in damaged form. Section 3.2 reconstructed the prefacing volume of Seokbosangjeol. Finally, Section 3.3 reconstructed the first Korean version of Hunminjeongeum. The reconstructed material is reduced and presented in photograph.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