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야율초재(耶律楚材)의 《서유록(西游錄)》 연구(硏究)

        張美卿 한국중문학회 2019 中國文學硏究 Vol.0 No.76

        본고는 9세기 이후 중국과 서역을 잇는 동서교통로를 실제 여행하며 남긴 기록으로는 최초의 것으로 꼽히는 蒙元時期 학자요 정치가인 耶律楚材(1190~1243)의 《西游錄》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찰함으로써 향후 이 분야의 연구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중국 고대에 游記 작품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특히 이 《西游錄》이 중요한 것은 耶律楚材가 칭기스칸을 수행하여 이동한 고대 교통로에 대한 문헌 기록이 《西游錄》 이전에는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耶律楚材에 대하여는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西游錄》 자체에 대한 연구로는 하편의 내용을 중심으로 儒佛道 논쟁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이 있고, 역사지리학, 문화학, 游記文學 등의 관점에서 다룬 연구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이에 본고는 우선 《西游錄》에 대하여 그 학술적 가치를 언급하고, 판본과 잔본을 소개, 비교한 후 내용에서는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 주요 내용과 내용상의 특징을 정리하였다. 상편의 내용 분석에서는 耶律楚材가 여행로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서역인들의 생활상과 초보적 단계이기는 하나 칭기스칸 시기에 군사적 측면과 물자의 運輸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驛站 제도에 대해 서술하였다. 하편은 구성과 내용을 살핀 후, 야율초재가 구처기를 비판한 이유를 위주로 서술하였다. 본 연구가 중앙아시아 지역의 문화에 대한 연구 자료를 제공하고, 이 지역에 대한 국내의 인문학적 관심 영역을 확대하는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西游錄》, 蒙元時期著名學者耶律楚材(1190~1243)所撰寫的西遊記錄。關於耶律楚材, 學界已經有不少的硏究, 比如對他在蒙元初期的歷史作用, 政治思想、經濟思想乃至宗敎思想等, 中國內至今已有近40篇論文從不同角度進行硏究。只不過就耶律楚材的《西游錄》從沒有人專門進行探討。 耶律楚材1218年應成吉思汗召至蒙古, 第二年隨成吉思汗大軍征西域。1224年成吉思汗班師, 耶律楚材亦隨之東歸, 前後旅程爲長達四年。《西游錄》刊行於1229年在燕京, 全書可分成兩個部分, 第一部分專門記錄自北京出發以及西域各城情形, 第二部分專門抨擊長春眞人丘處機, 第一部分記游踪的一倍, 全書重心, 於此可見。《西游錄》保有著衆多方面的價値, 比如東西交通、西域文化、蒙古、蒙古軍隊的進擊路, 13世紀儒彿道的思想和爭議以及游記文的文學成就等, 値得以各方面進行硏究。 耶律楚材經過的路線可以說當時的主要東西交通路之一, 但這《西游錄》之前沒有對這路線的文獻記錄, 我們通過這本記錄, 可以考察當地的地理環境、文化特色。具有這麼寶貴資料的《西游錄》在國內有關《西游錄》之硏究目前幾乎沒有。這篇文章首先敍述西遊錄的學術價値, 介紹和比較版本和殘本。主要內容和特徵分爲上部和下部進行探討。這次主要以‘綜合考察’的方式介紹幷整理《西游錄》之基本內容和資料, 將提供有關中亞文化的硏究資料, 預計該硏究將在擴大該地區人文學領域發揮一定作用。這篇文章未涵蓋的具體地名的識別等的問題將作爲未來的後續論題。

      • KCI등재

        한계 이승희(韓溪 李承熙)의 북경행의 배경과 교유시의 일면 -「서유록(西游錄)」을 중심으로-

        한길로 ( Han Gilro ) 성균관대학교 인문학연구원(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1 人文科學 Vol.- No.80

        을사조약이 늑약 체결된 1905년 이후, 나라의 붕괴와 균열상을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지식인들은 국외 이주를 도모하게 된다. 이 행렬은 이민족의 지배 하에서 유가적 이상을 실현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했던 유림들이 중심이 되었다. 한주학파를 이끌며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한계 이승희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1908년(당시 62세) 해삼위로 향해 그곳에서 유교 공동체 구성과 독립운동 기지 구축에 전념했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에는 ‘공교(孔敎) 운동’의 중심에 서며 이른바 ‘재중(在中) 유림’을 대표하는 인물로 거듭난다. 1913년 그는 당시 한인 사회의 갈등과 국난극복 해결을 기대하며 동삼성한인공교회를 설립하였다. 지회 승인을 위해 직접 북경으로 건너가 공교 간부들과 만난 이승희는 공교 문제와 더불어 세계정세나 중국의 현안, 그리고 ‘근대(성)’에 관한 문제를 놓고 진지한 필담과 문필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서유록(西遊錄)」 속의 시문들에서 이승희는 ‘소중화나 모화(慕華)사상’의 견지를 넘어, 확고한 ‘(유교적) 주체의식’을 표출하였다. “아동(我東)”이 아닌 “아화(我華)”로 진화한 것이다. 또한 중국의 중심으로 건너가 자신의 이상을 직접 실천하고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던 근대 유림의 사상적 무장과 실천적 면모를 잘 보여줬다. 그리고 「서유록」은 양국 유림(문인)들의 교유 국면에서 한국유림에 대한 달라진 위상을 담고 있는데, 과거 다소 고압적이었던 중국 관료(문인)들의 모습은 사라졌고 이승희는 유도의 담지자 및 전수가로서 매우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즉 이 자료는 이승희로 상징되는 근대 유림의 새로운 방식의 중국기행과 변모된 위상을 보여주는데 특히 한국 공교 운동의 배경·전개·추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근대 한중 유림의 인적교류 국면과 그 이면에 담긴 내면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요컨대 이 책은 이른바 ‘연행’루트를 벗어난 근대기 유림의 중국 기행(체험)을 잘 보여주는 ‘근대 중국(북경) 기행문’의 시원(始原)에 해당되면서 근대기 한중유림의 합작과 공조의 초기 모습을 선명히 증언하고 있다. In 1905, Japan forcibly signed a treaty with the Korean Empire. The fall of the country and the collapse of Confucianism were so shocking that intellectuals at the time considered immigration. Lee Seunghee (李承熙), the leader of the Hanju School (寒洲學派), was also one of the intellectuals who considered immigration. In 1908, 62-year-old Lee Seung-hee took a ship bound for Vladivostok, the border between Russia and China, where he devoted himself to establishing a Confucian community and building a base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1911, when the Xinhai Revolution broke out in China, he became a central figure in the Confucius Religion Movement (孔敎運動) and also grew to represent the Confucian scholars living in China. In 1913, he founded the Korean Organization of Confucius Religion Church of the Three Provinces in Northeast China (東三省韓人孔敎會) in anticipation of overcoming the conflict and national crisis in the Korean community at that t ime. I n the w orks in Seoyoulok (西遊錄; The Records of Travels in the West), Lee manifested his own Confucian spirit and active will to put it into practice, neither resorting to minor Sinocentrism nor showing a trait of a Sinophile. At the same time, the book vividly records the reappearance and the elevated status of Korean Confucians in modern China. In short, the book marks a new beginning of the Modern China (Beijing) Travel Literature, which records the Korean Confucians’ travel to China in the new modern period, not based on the so-called previous routes, and shows an early appearance of the collaboration and cooperation between Confucians in Korea and China of the modern period.

      • KCI등재

        한계 이승희의 곡부(曲阜) 방문 소회와 현실인식 고찰 - 『서유록(西游錄)』 소재 한시를 중심으로 -

        한길로 ( Han Gil-ro ) 한국문학언어학회(구 경북어문학회) 2021 어문론총 Vol.87 No.-

        과거 연행로 밖의 중국 지역을 방문하는 조선 지식인은 매우 드물었다. 유교의 본향(本鄕)이라 할 수 있는 산동성 곡부를 다녀온 인사들도 또한 극히 소수로, 곡부는 그 상징성에 비해 관련 작품 또한 대단히 적었다. 하지만 20세기라는 특수한 환경이 도래하면서 곡부에도 한국 유림의 발걸음이 점차 다다르게 되었다. 『서유록(西遊錄)』(1914)은 한계 이승희(韓溪李承熙, 1847∼1916)의 곡부 방문을 담고 있는, 근대 초기 곡부 관련 한문학 작품이다. 본서는 곡부를 방문하여 그곳 인사들과 교류하며 향후 한 · 중 유림의 협력과 합작의 기초를 닦던 이승희의 모습과 함께, 풍전등화와 같던 시대 배경 하에서 곡부를 바라보는 한국 근대 유림의 시선을 대표적으로 담고 있다. 즉 근대기 한국 유림의 곡부방문의 맥락과 실정을 담고 있는 초기의 기록이자, “연행록” 이후 중국과 관련된 한문 기행문 창작 양상을 대단히 잘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특히 그의 시에는 선현(先賢)들의 자취를 직접 몸소 체험하게 된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의 감정과 함께, 신해혁명 이후 세도의 변천으로 위기에 빠진 ‘현실적’ 상황에 대한 우려와 불안이 누차 표출되었다. 더욱이 목도한 곡부의 실상 역시 그의 예상과 다소 어긋나자, 성지에 대한 기대에는 점차 실망과 한탄이 더해져 보다 복잡해져 갔다. 즉 이제 곡부(曲阜)는 과거와 같은 단순한 동경이나 사모의 대상이 아닌 한·중 유림의 ‘합작’을 통해 지켜야 할, 존망의 기로에 놓인 불안한 ‘성역(聖域)’임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In the past, Korean intellectuals could not visit China, which was not an official route. The Qufu of Shandong Province, which is regarded as the sacred place of Confucianism and the origin of Chinese civilization, was also not easily accessible. It was a space that could not be easily visited unless it was under special circumstances, but it was a place of longing for many intellectuals to visit. In other words, after the 20th century, there was an opportunity to visit Qufu. Lee Seung-hee is a Confucian scholar of the modern era who visited Qufu for the first time, and 「Seoyoulok(西遊錄)」is the first book related to Qufu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is book is a literary work that records the exchange of Confucian scholars from Korea and China and the appreciation of visiting Qufu. Lee Seung-hee, who visited Qufu in 1914, witnessed the Confucian holy site and expressed his feelings through poetry. However, the 20th century was a crisis in Confucianism and a time when Confucius' authority fell. Therefore, he expressed his concerns and anxiety about the present and future. For him, Qufu was a place of admiration, but it was a sacred place to be preserved at the same time.

      • KCI등재

        20세기 초 강릉 김씨 부인의 여행기 <경성유록> 연구

        김경미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17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Vol.0 No.35

        Seo-Yu-Rok西遊錄 is a travelogue of lady Kim who traveled from Gangneung to Seoul with her husband and daughter in 1913. This local lady’s record of her travel appeared in a book entitled Kyungseong-Yurok京城遊錄 where the translation of some articles of a newspaper, Capital Gazette皇城新聞 were also included. This essay tried to analyse the route of this lady’s travel, the organization of her travelogue, her thoughts on Western and Japanese civilization and her self-representation. While traveling in Seoul, she saw with her own eyes Japanese military forces and commerce, and Japanese style houses, which led her to get feeling of resentment toward these Japanese power on one hand, and needs to advance enlightenment and civilization of Korean people on the other hand. When she visited schools, she came to think the development of civilization could be realized through education. It is notable that she recorded her ideas and thoughts in a logical and confident way. It seems that her journey to Seoul gave her not just a chance to realize the necessity of enlightenment and civilization in Korea, but also the motivation to enlarge her sense of self. Through this journey, she came to realize her female identity and nation identity beyond her familial identity. These thoughts of hers seem to reflect the currents of thoughts at that times. Her thoughts and attitudes shown in her travelogue is meaningful in that it presented the new image of traditional women, which had been represented as the old-fashioned whose consciousness was limited to conventional thoughts. 이 글은 <서유록>에 나타난 노정과 글의 구성, 당시 새롭게 접하는 서구나 일본의 문물에 대한 태도, 자기재현 양상을 분석하여 강릉 김씨 부인의 문명의식과 여성의식을 살펴본 것이다. <서유록>은 강릉 김씨 부인이 1913년 강릉에서 서울로 여행한 기록으로, <경성유록>이라는 책에 <황성신문> 기사를 번역한 것과 함께 묶여 전한다. 강릉 김씨 부인은 서울 여행을 통해 일본 군대, 일본 사람들의 장사, 일본 사람들의 주택 등을 보고 분개하는 한편, 놀라워하며 문명개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릉 김씨 부인은 문명개화를 위해 여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논리와 어조는 당당하고 적극적이다. <서유록>은 향촌 출신의 여성이 서울 여행에서의 문명 체험을 통해 문명개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가족의 일원에서 여자계의 한 여성,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강릉 김씨 부인의 이러한 적극적인 태도와 인식은 전통적인 의식에 갇혀 있는 것으로 재현되던 구여성의 타자화된 이미지를 벗어난 새로운 구여성상을 재현한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KCI등재

        「西游錄」 所在 漢詩에 나타난 韓溪 李承熙의 文明意識

        송지현 영주어문학회 2023 영주어문 Vol.53 No.-

        This study is to figure out Lee Seung-hui’s Civilization Consciousness(文明意識) in the poem of 「Seoyurok(西游錄)」. Lee seung hui is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during the colonial period. In 1909, He established a base of independence movement which is called ‘Han heung dong(韓興洞)’ in Mishan of Jilin province, but he m oved a base of independence movement to Andong of Fengtan province. He found out Gonggyo Movement(孔敎運動) in Andong, so he established Korean Organization of Confucius Religion in Manchuria(東三省 韓人孔敎會). His branch was officially approved by Gonggyohoe (孔敎會) where there is a main branch in Beijing, which made him visit Qufu. 「Seoyurok」 is the record of journey in Beijing and Qufu. It is the travel essay, and he expressed his feeling about his journey in the poem . We found out Lee Seung-hui’s Civilization Consciousness in the poem of 「Seoyurok」. When he moved from Andong to Beijing, he mentioned Dangun and Gija. He said that Dangun founded the country and Gija is the person who transmitted civilization and gave edification. In addition, it showed that Consciousness of Native Land(故土意識) which recalls previous territory that was part of Korea through Dangunand a sense of self-esteem(自尊意識) that Korea is the only one country with authenticity of confucian culture through Gija. He had a pride of Confucian culture through Dangun and Gija. When he experienced westernized china and western culture, he worried about the future, but at the same time he accepted westerniz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Sinocentrism. Lee Seung hui tried to keep korean history and tradition, even though he was in difficult situation. A lot of his works he had performed in China could be highly appreciated as a kind of independence movement that dreamed of new beginning and revival of our nation. 이 연구는 한계 이승희의 「서유록」 소재 한시에 나타난 문명의식을 찾기 위해 시도되었다. 이승희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통치를 받게 되자, 중국으로 망명했던 인물이다. 그는 1909년 길림성 밀산부에 ‘한흥동’이라는 정착촌을 건설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1913년 봉천성 안동현으로 이동하였다. 안동현에서 중국의 공교 운동에대해 알게 된 이승희는 동삼성한인공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는 곧장 북경으로 가서 공교회의 지부로 승인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하여 곡부도 다녀오게 되었다. 안동현을 떠나 북경과 곡부를 둘러본 여정을 담은 기록이 바로 「서유록」이다. 「서유록」 은 이동 경로와, 각 공간에서 느낀 바를 쓴 한시를 수록한 일기체 기행문이다. 「서유록」의 한시를 통해 이승희의 문명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안동현에서 북경으로 이동할 때 단군과 기자가 종종 언급되었다. 기본적으로 단군은 나라를 세운 국조로, 기자는 문명을 전달하고 교화를 펼친 인물로 인식하였다. 단군을 통해 고대의 영토를 떠올리는 고토의식이 주로 드러났으며, 기자를 통해 우리나라가 유교 문화의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는 자존의식이 나타났다. 이승희는 단군과 기자를 통해서우리나라의 오랜 역사를 잊지 않고 유교 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이승희는 서구화된 중국의 현실을 맞닥뜨리고 서양인을 직접 접하면서, 서구화에 대한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출하였다. 동시에, 중화의식의 기준에서는 서구를 인정하는 유연한 태도도 보였다. 서구에 대한 낯섦과 거부감을 중화의식으로 극복하며,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는 의식을 드러냈다. 이승희는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과 험난한 타국에서의 현실 속에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 의식을 지키려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가 우리 민족의 새로운 시작과 부흥을꿈꾸며 펼쳤던 중국에서의 다양한 활동들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 KCI등재

        1910년대 강릉 여자의 서울 구경 : <서유록>의 경우

        서인석 우리말글학회 2001 우리말 글 Vol.23 No.-

        This essay is the study on 〈서유록(SEO-YU-ROK〉which is the record of a woman's Seoul tour in 1913. She, aged 52, lived in Kangnung, Kangwondo and has been sightseeing of Seoul for 35 days with her husband and daughter. The writer Lady Kim's family was civilized enough to subscribe to a newspaper. Through this work we can see the way from Kangnung to Seoul, customs of those days, and Japan's encroachment to Chosun, And her sightseeing of Seoul shows us various interesting features (for example school, train, bank, theater and shops which sell modern things). Though there are no insights about the difference between the Japan's invasion and the development of modern civilization, it shows us the images of Seoul through the eyes of an intelligent woman who had lived in country during 1910s. I think this work is important as a representative prose of a woman in 1910s. Usually women had been alienated from the world of prose which was written by criticism. So this work, as a woman's Hangeul prose which is rare those days, is very accountable. (Yeungnam University)

      • KCI등재

        신광하(申光河) 기행시의 몇 가지 국면

        이은주 ( Yi Eunju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8 漢文古典硏究 Vol.36 No.1

        이 글은 신광하의 기행시에 나타난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본 것이다. 전 생애에 걸쳐 여러 차례 여행을 떠났던 만큼 신광하는 여행으로 유명하고, 그의 시문 역시 주로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연구되었다. 다만 그동안 신광하의 기행시에서 주목된 점은 주로 백성의 피폐한 삶을 고발하고 현실비판적인 서사시 창작의 맥락이었고, 논의대상은 주로 「북유록」과 「백두록」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신광하의 기행시권은 단일하지 않고 「사군록」, 「서유록」 등 다양한 관심사와 성격을 보여주는 시들이 많다. 이 글의 목표는 신광하의 기행시가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광하가 맏형 신광수에게서 일정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다. 「북유록」과 「백두록」에 수록된 시는 주로 함경도 백성들의 피폐한 삶과 그 참상을 보여주는 데에 있지만, 여타의 시에 비해 좀 더 구체적이고 특수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신광하는 이 일대를 다닌 뒤에 관료들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을 정도로 관의 수탈과 백성의 고통, 임금의 은혜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수준을 넘어서 구체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서유록」은 평양을 유람한 일반적인 시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떠난 신광수의 흔적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때로는 신광수의 시가 남아있는 곳에서 감회를 느끼며, 때로는 신광수의 예전 시를 염두에 두고 시를 짓고 있으며 때로는 신광수가 평양에서 지었던 시를 환기시키는 내용의 시를 지었다. 「사군록」의 경우에는 인문 경관보다는 기이한 장관을 형상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렇게 신광하의 기행시는 다양한 편차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평생 여행에 몰두했던 신광하가 가지는 개성일 것이다. This article examines several aspects of Shin Kwangha's travel. He had traveled all over the country for many years, and he was famous for his trip, and his poems were also studied mainly from the perspective of travel. However, in the meantime, Many studies on Shin Kwangha's travel poems have been mainly focused on the "Bugyurok" and "Baekdur ok" in the context of the creation of epic poetry, which criticizes the life of the people. However, there are many poems that show various interests and personality, such as "Sagunr ok". The point of this essay is that Shin Kwangha has various levels of travel and Shin Kwangha is influenced by his older brother Shin Kwangsu. The poems in "Bugyurok" and "Baekdurok" mainly show the depraved life of the people of Hamkyung Province and their devastation, but they are more specific than other poems. Shin Kwangha has been dealing with concrete issues beyond the typical showing of the grief of the people, the suffering of the people, and the grace of the king so much that he tried to present a solution to the bureaucrats after attending this area. "Seoyurok" seems to be a general poem that traveled to Pyongyang, but it is trying to discover the traces of Shin Kwangsu, who left the world. Sometimes he felt relieved in the place where Shing Kwangsu's poetry remains, sometimes making poetry with Shin Kwang-soo's poe m in mind, and occasionally making poem that reminds us of Shing Kwangsu's Pyongyan g masterpiece. In the case of "Sagunrok", the use of natural products was prominent. In order to emphasize the rugged natural scenery, Shin Kwangha focused the poetic expressi on on maximizing this point.

      • KCI등재

        노산(老山) 심의식(沈宜植)의 삶과 서간도 기행문 고찰

        한길로 한국문학언어학회 2023 어문론총 Vol.98 No.-

        Nosan Shim Eui-sik, a Confucian scholar from Cheongsong, Gyeongsangbukdo, is an independence activist who participated in the righteous army of Shim Seong-ji, which started from Cheongsong in 1896. After japans colonization of korea in 1910, he gave up his social activities and considered moving abroad. In March 1911, he and his colleague crossed the Ap-lok River to observe Chinese cities. They thought it was a good place to live, so he returned home 77 days later. However, he couldn't move because of opposition from his family and later chose to live a quiet life in Nature. His Chinese travel literature 「Seo-Yulok」 is a special work that records his first and last overseas experience. In his records, his values, attitudes in life, and aims are very detailed content, and records on China are also noted. In particular, his special experience of visiting there hoping to immigrate but ending his life in Korea was reflected.

      • KCI등재

        19세기 한강 이북 도읍의 문학적 형상화와 의미

        정선희 ( Sun Hee Jeung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12 동방학 Vol.24 No.-

        본고는 19세기 영남의 한미한 문인 목태림이 전국 여행을 하면서 쓴 기행문 <서유록(西遊錄)>에서 한강 이북의 도읍지 네 곳, 즉 한양, 송도, 평양, 의주에 관한 기록과, 이곳들을 장편의 부(賦)로 형상화한 <설경부(雪京賦)>, <송경부(松京賦)>, <기성부(箕城賦)>, <용만부(龍灣賦)> 네 편을 집중적으로 살핀 연구이다. 이 도읍들은 모두 한강 이북 지역으로, 사행(使行)의 경로이면서 옛 왕도(王都)였고 국경 인접 지역이며 유배나 파견이 잦았던 곳이다. 소설에서는 전쟁터에 나가는 경로로 설정되거나 일상적인 공간과는 다른 색다른 공간으로 형상화되기도 하는 등 그 중요성이 인정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글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말미암아 연구에서 소외되었던 곳이다. 특히 영남지역에 세거하면서 그곳의 문화만을 향유하던 향촌의 문인이 경험한 도읍들의 모습을 고찰함으로써 그 도읍들의 실상과 특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 전승되던 신화와 설화 등의 양상도 알 수 있다. ‘한양’은 조선왕조의 왕도(王都)이기에 그 웅장함과 번성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왕조를 칭송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특히 <설경부>에서는 도읍의 질서 있고 풍성하고 도회적인 면모를 사실적으로 그려내었으며, 궁궐과 관청 주변의 활기찬 분위기와 대신들의 호기롭고 영화로운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송도’에서는 옛 왕조를 위해 순절(殉節)한 사람들의 단심(丹心)에 눈물 흘리기도 하고 왕조가 망했음을 안타까워하였다. 또한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 작제건 탄생 설화, 고려 망국의 주범 신돈 설화, 최영 장군 설화 등을 채록하였고, <송경부>에서도 이런 내용들을 시화(詩化)하면서, 이곳의 정기(精氣)가 좋아 충신과 의사(義士), 효녀가 많이 났다고 칭탄하는 등 지역적 특색도 이야기하였다. ‘평양’에 대해서는 단군이 내려왔고 기자가 창업한 곳이면서도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였다. 또 동명왕 신화, 온달 장군에 대한 이야기, 임진왜란과 관련된 이야기 등 역사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으며, 연광정, 을밀대, 능라도, 대동강 등 승경(勝景)을 노래하기도 하였고, 상인과 물화가 번성한 곳임을 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연광정 8경’, ‘기성 10승’을 포함한 <기성부>로 형상화하였는데, 이는 고려나 조선의 문인들이 송도, 평양, 울주, 한양 등지에서 짓던 팔경시의 전통을 잇는 것이었다. ‘의주’는 청나라와 접한 땅이어서 그곳 사람들을 볼 수가 있고 상인들이 북적이는 곳, 사신들이 연경에 가기 전에 대기하는 곳으로서의 특징이 있었다. <용만부>를 지어 이곳이 고구려의 수도였음을 이야기하고 승경 여덟 곳을 ‘용만 8경’이라고 하여 읊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왕이 피해 있던 곳이라는 비감함도 함께 담았지만, 지배적인 이미지는 부유하고 상인이 많은 곳, 사신과 관리가 왕래하는 국경지대라는 점이었다. 아직은 여행이 어려웠던 시기인 19세기 초에 영남의 평범한 선비가 전국을 여행하면서 자신이 본 대도읍들의 특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유적과 역사에 얽힌 설화들을 적극적으로 채록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특히 한강 이북 지역인 관서지역 도읍들에 대한 기록이 희소하기에 더욱 주목할 만하였다. This paper aims to explore the context about four big capitals; Hanyang, Songdo, Pyongyang, Uijoo of <Suh Yoo Rok> written by Mok Tae Lim, a novel writer of Kyung-Nam. This book is about a trip from Kyung-Nam to Uijoo in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These cities were on the north of the Han river. They were the paths of envoys and the old royal capitals, and were of importance as border areas. The author wrote what he had seen and heard and expressed his heightened feelings by writing long Boos in these cities. He described Hanyang as the Royal capital with affluence while Songdo as an old, lonely capital out of luck. He described Pyungyang as a beautiful capital founded by Dangun and Gija and Uijoo as a border capital that envoys and merchants passed by. It is significant in the sense that an ordinary scholar of Kyung-Nam described the features of capitals he traveled realistically and recorded tales related to relics and history when it was difficult to travel.

      • KCI등재

        호고와好古窩 류휘문柳徽文이 쓴 기행일기의 전존傳存 양상과 자료적 가치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 2022 국학연구 Vol.- No.48

        본고는 현전하는 일기 자료가 저자 친필본부터 문집 수록본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과 때로는 같은 저자의 같은 기간 같은 경험의 일기가 서로 다른 형태로 함께 전해진다는 사실을 일차적으로 주목한 것이다. 더불어 일기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인 현장성과 즉시성을 감안할 때 일기자료의 전승과 보존 과정에서 그 특징이 어떻게 유지되고 또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살펴보려 한 것이다. 그 사례로서 호고와 류휘문이 직접 작성한 필사본 기행일기 5종과 류휘문 사후 문집에 수록된 기행일기 4종 그리고 문집에 수록된 관련 시 작품을 함께 검토 분석했다. 그리고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차이점을 포착했다. 필사본 기행일기 5종 가운데 1종은 현장성과 즉시성이 두드러지는 친필 초고본이었으므로, 류휘문의 기행일기는 동일 기간 동일 여행의 일기 4종이 현장에서 작성한 초고본과 여행 직후 손수 정리한 편집본 그리고 류휘문 사후 간행된 문집에 수록된 것까지 총 3개의 형태가 모두 남아있는 셈이었다. 살펴본 결과 류휘문의 기행일기는 현장 초고본에서 문집에 실리는 과정까지 역동적인 전승 보존의 양상을 거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 초고본은 여행 도중 작성한 것으로 그때그때의 주어진 상황 속에서 기본적인 체계 없이 날짜의 흐름대로 즉석에서 바로 기록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생생한 현장감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류휘문이 여행을 마치고 손수 정리한 편집본의 일기는 현장 초고본보다 현장감은 다소 떨어졌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자료적 활용 가치가 극대화되었다. 일단 여행 지역에 대한 다방면의 지식 정보를 포함해 그 내용이 풍부했고, 다음으로 지인들과 여행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여행 지침서의 성격이 두드러졌으며, 마지막으로 여행을 매개로 또는 여행을 소재로 창작한 시문詩文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작문 동기와 배경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크게 부여할 수 있었다. 더불어 여행을 매개로 주고받은 지인들의 시문도 같이 실려 있어 그 연결 고리를 읽어내는 것도 용이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적 경향의 자료적 가치는 후손들의 노력으로 문집에 수록되면서 크게 약화되었다. 문집의 기본 체제에 맞추기 위해 하나의 저술을 해체해 문체에 따라 별도로 수록했고, 지면의 한계로 인해 내용을 대폭 산삭했으며, 여행을 매개로 주고받은 지인들의 시문이 모두 누락된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 문집 수록 일기는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의 기록 배경에 대한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