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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소목제도와 역장의 사례 연구

        박정해(Jeonghae Park) 바른역사학술원 2024 역사와융합 Vol.- No.18

        본 연구는 명·청대 황릉에 나타난 소목제도의 적용과 예외적인 상황을 통해, 조선시대 역장의 역사와 사례의 특징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무덤의 조성에는 예제적인 특징과 풍수가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예제적인 이유에는 소목제도와 유학적 사고에 바탕을 둔 위계질서가 자리한다. 반면에 풍수적인 특징은 길지를 찾고자 하였으며, 길지를 통한 후손의 발복을 기원하였다. 이러한 특징들은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여러 특징적인 모습을 연출하게 되는데, 명·청대의 황제릉을 비롯하여 조선의 왕가 그리고 사대부들의 묘역 조성에 반영되고 있다. 조선 중기이전에는 역장이나 도장과 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풍수적으로 뛰어난 곳이라면, 비록 조상의 묘 뒤쪽이라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 중·후기로 가면서 역장과 도장 그리고 압장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으며, 이를 문제시하는 문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역장은 성리학적 위계질서의 정착과 함께 여러 상황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풍수의 금기사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history and cases of Nizang(逆葬, locating the graves of descendants behind those of ancestors) during the Joseon Dynasty through the application of the Zhaomu system and exceptional situations in the imperial grave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When building graves, ritual features and Feng Shui play an important role. Ritual features include the Zhaomu system and the hierarchy based on Confucian thought. On the other hand, in terms of Feng Shui, they wanted to find an auspicious place and prayed for the success of descendants through propitious places. These characteristics meet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s and create various characteristic phenomena. It was reflected not only in the construction of the imperial tomb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but also in the graves of the royal family and nobles of Joseon. Before the mid-Joseon Dynasty, the issue of Nizang or Daozang was not a problem, so it seemed to be accepted naturally. They used any place excellent for Feng Shui, even behind their ancestors’ graves. However, in the middle and late Joseon Dynasty, antipathy toward Nizang, Daozang, and Yazang grew, and a culture that took issue with it began to appear. Therefore,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Neo-Confucian hierarchy and the complex effect of various situational factors, Yeokjang became a taboo in Feng Shui.

      • KCI등재후보

        7~8세기 唐代 譯經場의 체계와 新羅學僧

        곽뢰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0 동국사학 Vol.48 No.-

        불교가 중국에 공식적으로 전해진 시기는 後漢 明帝 永平 10年으로 알려져 있다. 명제가 꿈에서 금빛의 사람이 서쪽으로부터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서 인도에 불교가 있음을 알고 사신을 보내 불교를 구하게 하였는데, 사신들이 인도로 가던 도중에 마침 중앙아시아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던 迦葉摩騰, 竺法蘭 등을 만나 중국으로 데려옴으로써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에 온 迦葉摩騰, 竺法蘭은 『四十二章經』 등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중국 사람들에게 불교를 가르쳤는데 이것이 최초의 한역경전이다. 범어로 된 불경의 한역은 중국불교의 출발을 알리는 가장 구체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역은 송나라 때까지 1000年에 걸쳐 지속되었으며 한역된 경전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역경사업에 종사한 역경승도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 중에서 5세기 초의 鳩摩羅什, 6세기 중엽의 眞諦, 7세기 중엽의 玄奘, 8세기 중엽의 不空이 가장 뛰어난 역경가로 손꼽히고 있다. 흔히 이들을 4대 역경가라고 부른다. 唐代 역장의 조직 또한 긴밀해져 갔다. 北宋 贊寧이 쓴 『宋高僧傳』 권3, 「譯經篇」에 의하면, 職制가 총10개로 세분화 되어 있었다. 이 새로운 역경 방식을 통해 번역 사업은 이전보다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 신라의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이라는 토양을 거쳐 한번 정화된 것을 다시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의 수용에는 중국 승려들과 함께 신라 유학승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리고 수용된 불교를 신라화하는 작업 역시 유학승의 역할 중 하나였다. 신라유학승들의 불교교리와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깊어지고 풍부해짐에 따라서 唐代부터 점차 역경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나라의 東京과 西京의 주요한 역장에서 활약한 신라학승들로는 神昉, 智仁, 圓測, 玄範, 惠日, 勝莊, 無著, 慧超 등 여덟 명이 있다. 역장에서 譯主 이외에 필수, 철문, 증의가 가장 중요한 직책이었다. 그 일은 반드시 한문과 범문에 모두 능통하고 大小乘, 內外學, 經律論에 모두 익숙한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번역에 참여한 8명의 신라 승려들 가운데 대부분이 필수, 철문, 증의의 직무를 담당하였던 것이다. 당 정관 19년(645)~정원 12년(796) 연간 역경사업 속에서 신라학승들이 참여한 역경사업의 내용과 그들의 저술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그들이 중국불교, 번역사업 및 중국문화 전반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음을 보여준다.

      • KCI등재

        7~8세기 唐代 譯經事業과 新羅學僧

        郭磊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0 동국사학 Vol.48 No.-

        불교가 중국에 공식적으로 전해진 시기는 後漢 明帝 永平 10年으로 알려져 있다. 명제가 꿈에서 금빛의 사람이 서쪽으로부터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서 인도에 불교가 있음을 알고 사신을 보내 불교를 구하게 하였는데, 사신들이 인도로 가던 도중에 마침 중앙아시아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던 迦葉摩騰, 竺法蘭 등을 만나 중국으로 데려옴으로써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에 온 迦葉摩騰, 竺法蘭은 『四十二章經』등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중국 사람들에게 불교를 가르쳤는데 이것이 최초의 한역경전이다. 범어로 된 불경의 한역은 중국불교의 출발을 알리는 가장 구체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역은 송나라 때까지 1000年에 걸쳐 지속되었으며 한역된 경전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역경사업에 종사한 역경승도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 중에서 5세기 초의 鳩摩羅什, 6세기 중엽의 眞諦, 7세기 중엽의 玄?, 8세기 중엽의 不空이 가장 뛰어난 역경가로 손꼽히고 있다. 흔히 이들을 4대 역경가라고 부른다. 唐代 역장의 조직 또한 긴밀해져 갔다. 北宋 贊寧이 쓴 『宋高僧傳』 권3, 「譯經篇」에 의하면, 職制가 총10개로 세분화 되어 있었다. 이 새로운 역경 방식을 통해 번역 사업은 이전보다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 신라의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이라는 토양을 거쳐 한번 정화된 것을 다시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의 수용에는 중국 승려들과 함께 신라 유학승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리고 수용된 불교를 신라화하는 작업 역시 유학승의 역할 중 하나였다. 신라유학승들의 불교교리와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깊어지고 풍부해짐에 따라서 唐代부터 점차 역경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나라의 東京과 西京의 주요한 역장에서 활약한 신라학승들로는 神昉, 智仁, 圓測, 玄範, 惠日, 勝莊, 無著, 慧超 등 여덟명이 있다. 역장에서 譯主 이외에 필수, 철문, 증의가 가장 중요한 직책이었다. 그 일은 반드시 한문과 범문에 모두 능통하고 大小乘, 內外學, 經律論에 모두 익숙한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번역에 참여한 8명의 신라 승려들 가운데 대부분이 필수, 철문, 증의의 직무를 담당하였던 것이다. 당 정관 19년(645)~정원 12년(796) 연간 역경사업 속에서 신라학승들이 참여한 역경사업의 내용과 그들의 저술을 구체적으로

      • KCI등재

        사회 프로그램 기획을 위한 모형으로서의 니즈사정(Needs Assessment)에 관한 연구

        이석민(Seog-Min Lee) 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 2011 政策分析評價學會報 Vol.21 No.2

        This study aims to exploreneeds assessmentas a social program planning models. Needs assessment means a tool for social program models which include needs identification and prioritization, solutions identification and prioritization, and implementation planning. The generic model of the needs assessment is the three -phase model which are composed of preassessment, assessment, and postassessment, and various methods can be used for each step.On the other hand, this article intends to apply needs assessment toservice improvement program planning for public administration education. The result of needs assessment which integrates educators' solutions into students' needs suggests that the expansion of practical education is a viable alternative to service improvement of public administration education. In addition, this article shows that adding the practical curriculum, resource investment, and work experience or internship are needed for solutions to expansion of practical education.

      • KCI등재

        中韓司法協助的現狀及其未來

        ??(HUANG Jin),曾濤(ZENG Tao) 한국국제사법학회 2009 國際私法硏究 Vol.- No.15

        The first treaty executed between China and Korea in modern era is the “China-Chosun Commercial and Civil Waterway Trade Rules” of 1882. From then, 100 years have passed. The relationship between China and Korea is opening a new era. The essence of judicial assistance between China and Korea is the Agreement between China and the Republic of Korea on Judicial Assistance in Civil and Commercial Matters. This treaty solved many problems in judicial assistance. However, it is difficult to avoid disappointment in view of the whole theme of coordinating civil judgment execution in China and Korea. For example, the two parties failed to reach, in theoretical aspect, a uniform position on jurisdiction and mutual recognition of judgments, and therefore failed to execute bi-lateral rules. On November 19, 2008, the Department of Commercial Affairs, the Department of Foreign Affairs, the Department of Public Security and the Judiciary jointly legislated “Directive on Trans-Border Pursuit or Lawsuit against Foreign Investment Enterprises Due to Their Abnormal Retraction from China.” This Directive also mentions the judicial cooperation between China and Korea regarding the problem of Korean enterprise’s fleeing and othe rproblems. We should continuously make efforts to develop transactions and development between China and Korea.

      • KCI등재

        온난화와 청어

        김문기(金文基) 부산경남사학회 2014 역사와 경계 Vol.90 No.-

        소빙기 동안 한류성 어종인 청어는 동아시아 바다에 대거 출현하여, 동아시아 3국을 풍요롭게 했다. 소빙기라는 기후변동(天)은 해양환경(海)의 변화를 초래하여, 청어어업(人)이 크게 발전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가 다시 온난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19세기 중후반부터 기후는 소빙기에서 온난기로 전환되었다. 이런 기후변동은 해양환경의 변화를 초래했다. 청어의 이동은 근대 동아시아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후의 온난화로 인한 청어의 이동은 조청어업분쟁의 발단이 되었다. 1850년을 전후하여 중국의 바다에서 청어가 사라져갔다. 청국어선들은 청어를 쫓아 바다를 건너 조선의 바다로 몰려들었다. 이로 인해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는 심각한 국제적인 어업분쟁이 발생했던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청어를 둘러싼 어업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청무역장정 제3조에 어업규정이 포함되었다. 청은 조선바다에서 자국어민들의 불법적인 청어어업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것을 아예 조청무역장정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제3조 각주의 “산동의 바다에서 조선의 바다로 옮아간 물고기”는 바로 청어였다. 그렇지만 1880년대부터 청어는 조선의 서해에서도 사라져갔다. 1890년대에는 남해에서도 ‘絶種’되었고, 1940년경에는 동해에서도 사라져갔다. 이런 현상은 중국에서도 벌어졌다. 1830년경부터 줄어들었던 청어는 20세기에는 “옛날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물고기가 되었다. 일본도 1958년경에는 홋가이도에서 청어가 사라졌다. 지구적인 온난화는 소빙기가 가져온 ‘청어의 풍요로움’을 거두어들였던 것이다. 청어는 ‘천·해·인’의 관계를 보여주는 ‘무언의 증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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