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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관 동의대학교 인문사회연구소 2004 인간과 문화 연구 Vol.- No.9
晩淸小說硏究的重点当然是梁啓超和他倡導的"小說界革命"的理論,但是這一重要的文學變革幷非僅由梁啓超一人所決定的。"小說界革命"的口号,雖然直到1902年才由梁啓超在《新小說》雜志創刊号上發表的《論小說与群治之關系》一文中正式提出來,可是戊戌前后文學界對西洋小說的介紹,對小說社會价値的强調,以及對別具特色的"新小說"的呼喚,都可以看做是"小說界革命"的前奏。卽使一般史家公認影響"小說界革命"的极其重要因素: 西方文化的傳入,也不僅僅指的是西洋小說的翻譯和西洋或日本的文學、美學理論的介紹,它同樣需要追溯鴉片戰爭以來西學東漸的整个歷史, 特別是以往爲人們所忽視的傳敎師的作用。但對晩淸小說的影響而言,傅蘭的征文活動、林樂知翻譯《文學興國策》和李提摩太与梁啓超的交往等,都對"小說界革命"理論的提出産生了直接的影響。 作爲"小說界革命"理論的主要創制者,梁啓超的思想也有一个變化發展的過程。盡管他的小說活動時間幷不長,理論、創作或翻譯的數量也不多,可是影響之广、貢獻之大,同時代的小說理論家根本不能与之相比。梁啓超對晩淸小說的影響力与他對報刊的掌握密切相關的,近代媒体在中國的興起造就了梁啓超式的"輿論界的驕子",他也很快形成了一套适應于報刊的文風,這一特点与晩淸小說逐漸書面化的傾向是一致的。而粱啓超理論的發生、發展和完成,同樣与他的辦報經歷緊密相關,直至1902年他創辦"中國唯一之文學報"《新小說》雜志,在該雜志上梁啓超不僅發表了中國第一部政治小說《新中國未來記》,而且發表發"小說界革命"的綱領性文章《論小說与群治之關系》,從此晩淸小說變革開了序幕。 本稿(報刊、雜志的發展對梁啓超的晩淸"小說界革命"的影響)圍繞着報刊、雜志的發展集中討論"小說界革命"運動的整个發展過程. 小說是比較晩起的文學体裁, 因爲結构复雜、文字繁多、篇幅龐大,它的流通方式,不同于詩歌口口相傳, 必須經過抄寫或印刷等加工過程, 然后到達讀者手中才開始流傳。小說的這种特性決定了它的命運, 与印刷術的發展和出版業的發達結下了不可解之緣。因此, 小說或多或少都帶有文化商品的意味, 不僅近代小說如此, 明淸以來白話通俗小說也是如此。 到了淸代, 出版業主要以三种形式發展: 一是官辦書局, 二是書院書局, 三是民間經營的書坊。 适應市民階層需要的小、戲曲、小唱、鼓詞等,也都是書坊大量出版的品种。上述的出版業到了晩淸, 正如当時社會的其他方面一樣,隨着西方先進科學和西方文化的輸入, 發生了很大的變化。同時這些變化与当時政局的變化緊密的聯系在一起。 第二次鴉片戰爭失敗, 促使統治階級中一部分人也想了解西方,幷且學習西方的技術。 1862年,淸政府中洋務派官僚在北京成立了淸末最早的洋務學堂京師同文館。1863年在上海成立了广方言館, 在广州成立了广州同文館。 此外, 在福州成立了船政學堂。這些机构一方面培養譯員, 另外一方面館內設有印刷机, 翻譯了西方科技書籍, 刊行數學、物理、化學、語言等譯書。 再次, 穿敎師的活動對中國出版業得發展起了很重要的作用。他們很重視用書籍來宣傳敎義, 全國傳敎中心地都設立了印刷厰和出版社。其中上海的"广學會"的創立和《万國公報》的發行, 最引人注目。他們除了印刷出版大量如《圣經》、禱文等有關宗敎的書籍以外, 還出版了西方的自然科學和社會科學等書籍。 在這方面成就最突出的傳敎師有傅蘭雅、李提摩太和林樂知等。他們在上海《万國公報》上發表了譯作和著作。傳敎師帶進來代表現代文明的新的傳播手段(媒介)---報紙和雜志。近代中國報刊是西學東漸的産物。据權威統計,從19世紀40年到90年的半个世紀內,外國人在中國創辦的中、外文報刊近170种,約占中國同一个時期報刊總數的95%。由于它們大多是以敎會或傳敎師各人名義所創刊,因此較集中在宗敎和科技方面,文學方面偶有所見,例如《六合叢談》中的《希腊詩人略說》、《羅馬詩人略說》、《和馬傳》等、《万國公報》中的《館中述怀二首》、《除日試士竹枝詞二十首》、《解組歸田感賦四律》等、《上海新報》中"西人"和"華友"們投寄的隨筆、游記、詩詞和短篇小說。当然, 這些散見的作品在其載体的報刊中僅僅占着微乎其微的一角之地,自然也就談不上這些報刊對文學的影響。直到《申報》創刊幷于当年出版《瀛寰瑣記》以后,才標志着文學找到了大衆傳播媒介的新形式,幷利用其出版周期快、讀者覆盖面广的獨特优勢擴大了文學的影響。 《申報》的創刊是划時代的一件大事, 意味着商業性報刊的出現。擁有印刷、出版力量的外國資本家,見書報、雜志有利可圖, 就投入資財人力,興辦出版企業以占領中國文化市場,英國美査是最突出的一个。 第二个轉折就是甲午戰爭和戊戌變法的失敗。甲午戰爭的失敗加深了中國的民族危机,喚起了人民的覺醒。洋務運動以徹底失敗告終,新興的維新派,1895年在北京組織了强學會,宣傳維新主張,継而改爲强學會書局, 出版《中外紀聞》: 又在上海設立分會, 刊行《强學報》,鼓吹變法,但很快被淸政府封
미국건설계약에서 다른 현장 조건 조항에 관한 연구 - 우리법과의 비교와 시사점을 중심으로 -
김태관 동아대학교 법학연구소 2023 國際去來와 法 Vol.- No.43
The U.S. construction industry and public and private owners have responded to the risk of unexpected subsurface conditions by including a “differing site conditions clause” in most standard form construction contracts. This paper examines the legal requirements and meanings of differing site condition clauses that are commonly used in U.S. construction contracts, and furthermore, compares and examines the legal requirements and meanings of differing site condition clauses in general conditions currently used in Korea to seek ways to improve differing site condition clauses in general conditions. We summarize them as follows: First, it is necessary to separate the differing site conditions clause from the change of design clause and make it its own clause. This is because the differing site conditions clause and the change of design clause have significant differences in their components, and the change of design clause is often insufficient to address the risk of differing site conditions. Second, the creation of a separate differing site conditions clause would require the creation of a Type II differing site conditions under U.S. construction contracts, which does not exist under our law. Third, if the general conditions govern the differing site conditions as a separate clause rather than as a design change clause, it is appropriate to adjust the contract price only for substantial or material differences.
김태관 아주대학교 법학연구소 2012 아주법학 Vol.6 No.2
건설공사도급계약과 관련한 분쟁 중 추가·변경공사로 인한 분쟁의 원인은 당사자 간의 불명확한 합의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추가·변경공사에서 도급인이 일방적으로 추가·변경공사를 지시하고, 수급인이 공사대금의 산정에 관하여 합의 없이 이를 수행한 다음, 공사대금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 논문에서는 추가·변경공사를 도급인이 일방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지, 수급인은 일방적으로 도급인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지, 추가·변경공사가 시행된 경우에는 그 공사대금의 산정은 어떠한 기준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는 바, 원칙적으로 추가·변경공사는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야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급인은 도급인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하여야 한다. 그리고 추가·변경공사계약의 성립이 인정되는 경우 당초 공사도급계약에서 공사대금에 대한 내역 또는 견적을 기준으로 공사대금이 결정된 경우에는 추가·변경공사대금의 산정에서도 그와 같은 내역 또는 견적을 기준으로 하고, 당초 공사도급계약의 내역 또는 견적을 기준으로 삼기에 부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추가·변경공사의 합의 당시의 시가를 기준으로 하되, 합의시점을 확정하기 어려운 때에는 추가·변경공사 완료 당시의 시가를 기준으로 공사대금을 산정하여야 한다.
김태관,김의숙,윤준로,황병현,이철우 대한마취통증의학회 2006 Korean Journal of Anesthesiology Vol.50 No.1
Perioperative cerebrovascular accidents after general anesthesia are rare but devastating, and are often fatal. We experienced a case of acute cerebral infarction found at 2 days after general anesthesia. A 64 year old, ASA physical status II, hypertensive male patient underwent radical neck dissection due to right thyroid cancer. Anesthesia was induced with propofol and succinylcholine and maintained with vecuronium-enflurane-nitrous oxide-oxygen. No special event occurred during anesthesia, except for of three hypotensive events that required ephedrine. On the second day after the operation, he complained dysarthria and left facial weakness. Brain CT and MRI revealed an infarction of the right middle cerebral artery territory. He was transferred to the department of neurology and received conservative care. Fortunately, he was discharged at 20 days after surgery with much improved symptoms. (Korean J Anesthesiol 2006; 50: 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