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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록의 국어학적 고찰

        李氣銅(Lee Ki-dong)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9 한국학연구 Vol.30 No.-

        본 연구의 목적은 『한중록』이라 불리는 작품의 이본인 李氣銅本과 一?本을 국어학적으로 비교하여 李氣銅本의 간행 연대를 추정하는 것이다. 『한중록』은 『한중만록』, 『읍혈록』 등의 명칭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21종의 이본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원본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 본고에서는 여기에 새로운 1종을 추가하여 李氣銅本이라고 하고 이를 一?本과 비교하여 李氣銅本의 간행 연대를 추정한다. 이를 위해 두 이본 사이에서 관찰되는 연철ㆍ중철ㆍ분철, 합용병서, ‘ㅎ’종성체언, 높임법의 주격 표지, 음운변화 등의 표기 경향을 살폈다. 李氣銅本의 표기는 근대국어의 일반적 표기 경향에 가까우면서도 궁중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성격 때문에 근대국어 이전의 표기 경향도 반영하는 보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해 一?本은 근대국어의 표기경향을 따르면서도 근대국어 후기의 성격도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 이본의 비교를 통해 李氣銅本이 적어도 一?本보다 앞선 시기의 작품으로 판단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mpare the Lee Ki Dong-version Hanjungrok with the IlSa-version linguistically and to estimate the age of publication. The Hanjungrok has 21 versions and various names such as Hanjungmanrok, Uephyoelrok. But, up to now, there is no version identified as the original. In this paper one version called Lee Ki Dong-version is added to the versions of Hanjungrok and then compared with IlSa-version to estimate age of publication. For that, this paper investigated the notational tendency of both versions. On the one hand the notation of the Lee Ki Dong-version resembles Modem Korean notational tendency, but on the other shows the conservativeness that reflects the notational tendency of Middle Korean because of the particularity as Court literature. In comparison, the IlSa-version reflects the notational tendency of not only Modem Korean but also Late Modem Korean. As a result, the comparison between the Lee Ki Dong-version and the IlSa-version suggests that the former is earlier at least than the l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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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의 현실과 한류문화

        이기동 한국유교학회 2007 유교사상문화연구 Vol.29 No.-

        21세기에 들어와 인류는 커다란 위기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위기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 근본 원인은 서구의 근대에 대두된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근본적으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있다. 그런데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지름길은 바로 한국의 사상과 정서를 다시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인의 역할은 한국의 현실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에서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눈앞의 작은 이익을 따지지 말고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여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인문학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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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釋奠祭禮의 사회철학적 의미

        이기동 한국사상문화학회 2007 韓國思想과 文化 Vol.40 No.-

        ‘석전(釋奠)’이란 글자는 제물이나 폐백을 신에게 받치기 위해 진열해 놓은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석전이란 학문에 공이 있는 성현 또는 선사에 대한 제사를 의미하지만, 고대에는 반드시 학교에서의 제사를 지칭했던 것은 아니다. 산천에 대한 제사도 석전이라 불리어졌으나 점차 학교에서의 제사만을 한정하여 불리어졌다. 그러다가 공자가 과거 동아시아의 학교에서 가장 추앙 받는 성현이 되었기 때문에 성현에 대한 석전제는 차츰 공자에 대한 제사로 압축되었다.조선시대에 행해지던 문묘제례의식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철학적정치적교육적 기능이 지대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행해지는 문묘제례의식의 의미는 과거에 행해지던 문묘제례의식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오늘날 행해지는 석전제례는 박물관의 기능 이상일 수 없다. 따라서 과거의 철학적정치적교육적으로 역할을 했던 지대한 기능이 사장되고 만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석전제례에 오늘날 되살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도 간과되고 있다면 그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석전제례의식이 오늘날 제대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대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해서 사람들이 더 많은 고민을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구 근대에 성립된 개인주의적 삶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동양적 삶의 방법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 날이 온 뒤에야 석전제례의식은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국인들에게는 공자의 사상이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사상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사상이 공자에 의해 정리되고 그것이 다시 역수입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 선행될 때 석전제례의식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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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羅의 國制改革과 骨品制的 權力構造의 諸問題

        李基東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00 동국사학 Vol.34 No.-

        7世紀를 通하여 韓國의 三國과 日本은 모두 外壓의 긴장 속에서 때로는 對外政策의 推進방향을 둘러싸고 執權層내부에서 內粉이 발생했고, 各國 모두 例外없이 권력 集中을 목표로 한 政變이 일어났다. 나아가 이같은 政變 혹은 內亂을 겪으면서 각국 모두 政治改革이 진행되었는데, 나는 本小稿에서 삼국 가운데 新羅만을 對象으로 하여 이를 검토해 보려고 한다. 事寶 7世紀 韓國과 日本에서의 律令國家 형성에 이르는 政治過程에 대해서는 종래 적지 않은 연구성과가 있으며, 최곤근 ?木靖民敎授의 <東アジアにける國家形成>(岩波講盛,《日本通史》第3卷 古代 2, 岩波書店, 1994)에서 詳細히 記述되어 었다. 그러므로, 나는 보다 自由로운 입장에서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몇 가지 事項에 대해서만 간단히 言及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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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오경장이 어문 생활에 끼친 영향 : 교과서를 중심으로

        李氣銅 국립국어연구원 1994 새국어생활 Vol.4 No.4

        어두 위치에 쓰여진 합용병서는 점차 근대국어와 비교하여서도 줄어져 ‘ㅂ’계열은 적극적으로‘ㅅ’계열에 합류되었다. ‘ㅅ’계열의 합용병서와 그 음가를 같이하는 각자병서는 이 시기보다 앞서 발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용빈도는 극히 적어 이에 관한 한 매우 보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ㅅ’과 ‘ㄷ’은 우리의 음운사에서 미파화를 겪음으로서 표기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ㄷ’은 점차‘ㅅ’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데 이때 ‘ㅅ’과‘ㄷ’의 표기상의 혼란은 각각 분철의 형식과 연철의 형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주로 분철의 형식을 보여주어 형태소를 밝히는 입장에 서는 개화기의 자료에서도 ‘ㅅ’과‘ㄷ’의 경우는 이러한 태도를 따르고 있다. 띄어쓰기는 모든 개화기 교과서에서 통일되는 형식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띄어쓰기의 방안은 대체로 세 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권점, 모점에 의한 것과 빈칸에 의한 것. 그리고 이 둘을 혼합하는 절충적인 형식이다. 이러한 띄어쓰기가 단어의 분류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여러 방안과 노력은 이후의 띄어쓰기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여 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갖기도 하는 것이다. 격표지에 대해서는 주격, 처격, 속격 등으로 나누어 보았다. 일부 교과서에서는 주격표시 ‘이/가’가 활발하게 사용되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l'의 쓰임이 더욱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까닭은 이 시기의 국한문혼용체의 형식과 관계되는 듯한데 모음으로 끝나는 일부 한글 표기와도 특이하게 결합하는 것이다. 처격표지는 '에'의 형태가 일반적으로 쓰인다. 극히 일부에 특수어간교체를 하는 어휘에서는 ’/의‘가 드러나지만 이는 매우 한정적이다. 속격표지로는ꡐ의ꡑ로 단일화되어 속격 능력을 가지는 에/애 는 없다. 외국어를 표기하는 경우에는 한글에 의한 음역 표기와 한자에 의한 한자음역 표기로 나뉜다. 한글음역 표기시에도 외국어를 전사하기 위한 인위적인 자형을 따로 만들지는 않고 있으며 대체로 국어의 표기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개화기 교과서에서의 문체는 대체로 국한혼용체를 보여 준다. 이때의 국한문은 전통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 대부분은 개화기 국한문체라고 일컬을 수 잇는데 이는 한자어의 사용이 지나치게 많아 마치 구결의 형식과 유사한 것이다. 문장의 길이는 거의 근대국어와 같이 장형문의 성격이다. 이는 문어체와 구어체의 형식과 관련하여 일부의 자료에서 보여 주는 구어체 및 문답식의 경우에는 단형의 문장이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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