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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에 관한 모색 : ‘욕망의 생성’에 관한 연구

        김영희 대동철학회 2008 大同哲學 Vol.43 No.-

        욕망 개념의 변화와 생성은 전통적인 욕망 개념에 대한 일종의 문제제기이며, 들뢰즈의 욕망 개념은 자신의 문제에 대한 일종의 문제풀이이다. 이 논문은 욕망 개념에 대한 들뢰즈의 문제제기를 통해 기존 욕망 개념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취하고, 욕망의 생성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논문은 크게 두 영역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영역에서는 들뢰즈의 문제제기와 관련하여, 전통적이라고 지칭하는 욕망 개념의 특징과 문제점에 관해 검토한다. 비록 들뢰즈가 ‘전통적’이라고 지칭하는 내용이 모든 전통적인 욕망 개념을 일반화한 것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를 통해 ‘억압’과 ‘결여’로부터 정의되는 욕망 개념을 문제 삼고자 한다. 두 번째 영역에서는 들뢰즈의 문제풀이를 통해서 ‘욕망의 생성’을 긍정하는 ‘생산’으로서의 욕망 개념을 분석한다. 우리는 들뢰즈 욕망 개념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를 벗어나서, 그의 사유를 현대 사회의 욕망을 모색하는 하나의 실마리,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본 연구는 들뢰즈의 욕망 개념에 대한 이해를 넘어, 변화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욕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문제제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Cette étude a pour l'object de étudier la théorie de la désir chez Deleuze. Deleuze a posé le problème de la désir et résolu le problème de la désir. Je voudrais rechercher le problème de Deleuze et examiner la résolution chez Deleuze. il y a deux partie dans cette étude. En premier partie, je voudrais analyser la traditionnelle conception de la désir. Cette conception est en rapport étroit avec le manque et le refoulement dans la psychanalyse. Deleuze critique la conception de la désir chez Freud. Freud comprend la désir par le tabou et Il fait pression sur inconscience. Deleuze a hérité la tradition de Reich et Foucault. Reich n'est pas d'accord pour Freud. Foucault fait opposition à la hypothèse de refoulement. En deuxieme partie, je voudrais examiner la conception de la désir chez Deleuze. Cette conception se lie à la production désirante et la machine désirante. La machine désirante n'est pas une mécanisme, c'est une machinisme. Par la machine désirante, Deleuze affirme le devenir de la désir. Dans le devenir de la désir chez Deleuze, je prend le clef d'un problème pour le tâtonnemnet de la désir dans la scciétés contemporaine.

      • KCI등재

        욕망의 정치/욕망의 종교와 학문함의 의미

        윤상헌 기독교학문연구회 2014 신앙과 학문 Vol.19 No.4

        Having noticed the widespread and deeply rooted phenomena of ‘imitation desires’ in the current Korean society, under the surface of which the so-called ‘politics of desire’ and ‘religions of desire’ lie, this paper is concerned with the inquiries of the significance of learning in a Christian perspective in connection with René Girard’s proposal & Jacques Lacan’s theory on the causes and aspects of human desires. While politics of desire innately is a system of “simulation” in Jean Baudrillard’s sense, in which realities are replaced with images, aiming at the gratification of materialistic and worldly desires, Christian faith has an essential calling for discerning the ordered system of images and de-constructing its idolatrous characters. Once being deviated from the position of the calling, Christianity might have fallen into a religion of desire, befriended with politics of desire. Politics of desire and religions of desire have become the subjects and mediators of desire so reciprocally that through the process of double mediation imitation desires have been reinforced and reproduced in our society. The metaphysics of politics of desire and religion of desire leads into situations with absurdity, which dictates the loss of the awareness of realities and a sense of self-sovereignty. In this vein, searching for the significance of learning between politics of desire and religion of desire corresponds to taking steps toward restoring the Christian worldview paradigm of Creation-Fall- Redemption as well as securing contact points through recognizing concrete and specific aspects of the world (=Weltbild). Understanding human beings and their conditions & experiences based biblical narratives of Creation-Fall-Redemptive restoration gives rise to understanding the nobility and dignity of human existence, which in turn results in laying a cornerstone for establishing human freedom and dignity based on the incarnational humanism compatible with the biblical doctrines. 이 소고는 인간 욕망의 근원과 양상을 다룬 르네 지라르와 욕망의 현상과 그 증상을 살핀 라캉의 논의와 관련지어 한국사회에 ‘모방 욕망’의 현상이 매우 광범위하고 심층적으로 존재하며 이러한 사회문화적 현상의 이면에 소위 욕망의 정치와 욕망의 종교가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욕망의 정치는 이미지가 실재를 대신하는 시뮬라시옹의 체제로 물질적이며 현세적인 욕망 충족을 목적으로 한다. 기독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이 이미지의 질서체계를 분별하고 그 우상 숭배적 속성을 해체시켜야 하는 본질적 소명을 지니고 있다. 그 소명의 자리를 이탈하게 되면 기독신앙은 욕망의 종교로 전락하여 욕망의 정치의 짝패가 되어 서로가 욕망의 주체와 매개자(모델)로 작동하는 이중 매개 현상을 초래한다. 이러한 욕망의 정치와 욕망의 종교의 결탁은 우리 사회에 편만해 있는 ‘모방 욕망’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며 실재의식과 주체의식의 상실로 나아가는 부조리한 상황을 결과한다. 욕망의 정치와 욕망의 종교 사이에서 기독교적으로 학문함의 의미를 모색하는 것은 다름 아닌 창조-타락-회복의 기독교세계관의 패러다임의 전제 하에 구체적인 세계상의 인식을 통해 회복과 변혁을 위한 접점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성서적 내러티브에 의거한 인간 이해의 해석적 균형에 입각하여 타락의 실존과 함께 창조와 구속(회복)을 통한 인간의 존귀함에 대한 이해는 진정한 자유와 존엄을 향한 초석이 된다.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자유와 존엄이 무시되고 인간의 생명과 삶이 화폐의 가치로 환산되는 야만의 시대에 기독교적으로 학문함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궁극적으로 기독학문공동체인 기독교대학의 의미에 대한 본질적 질문과 직결된다고 믿는다. 본고는 그에 대한 예비적인 답변으로 기독교적으로 학문함의 내포적 의미를 성서의 구원 서사인 창조-타락-회복의 패러다임에 근거한 세계관의 구축과 이 세계관의 구체적인 접점인 세계상의 확보에 바탕을 두고 기독교적으로 학문함의 외연을 ‘지금 여기’의 구체적인 의제와 쟁점을 포함하여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공시적 상황과 ‘식민지와 전쟁을 경유한 한반도의 근현대사’라는 통시적 정황까지 확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기독신앙이 욕망의 정치에 포획된 욕망의 종교가 되어 개인적이고 사적 영역에서만 소환되는 종교 소비재로 변질되지 않고 개인과 공동체의 전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다.

      • KCI등재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 -욕망에 대한 형이상학적 본질 탐구-

        박병준 ( Park¸ Byoung-jun ) 한국가톨릭철학회 2019 가톨릭철학 Vol.0 No.32

        고대로부터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된 감정의 문제요 몸(신체)의 문제로 인식됐다. 이 글은 욕망의 근원과 원리를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구명하고, 현대 사회에서 욕망의 현상을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인간의 욕망은 우선 생물학적 필요와 요구로부터 자연스럽게 생성되지만, 근본적으로 한계를 모르는 정신의 무제약적 행위에 근거한다. 인간이 욕망하는 주체인 것은 인간이 신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체적 욕구(physiological needs)는 생리적 한계를 갖지만, 정신적 욕구(mental greed)는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욕망은 인간에게 있어서 필연적으로 몸을 매개로 하는 정신의 표현이기에 육체의 기능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욕망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지만, 또한 사회 구조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다양한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오늘날 현대 사회의 욕망은 지각 체험을 넓혀주는 ‘신체의 확장으로서 욕망’, 욕망을 감추고 이데올로기화하는 ‘욕망의 이데올로기’, 존재와 소유 사이에서 소유를 지향하는 ‘과대 소비 욕망’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Since ancient times, desire has been perceived as a matter of emotional and physical (bodily) problems that arise from deprivation. This article aims to disclose the origins and principles of desire from a metaphysical point of view and explore the phenomenon of desire in modern society. Human desires initially arise naturally from biological needs and demands, but they are based on the unrestrained movements of the mind as essentially unaware of human limitations. Desire arises not because human beings have bodies, but more so because they have minds. Physiological needs have physical limitations, but mental greed is unlimited. It can never be fully satisfied. Of course, mental desires inevitably use the body a medium; without the body, they cannot pursue their desired goal. Human desire is based on human nature; but because it depends on physical activity, it is greatly influenced by social structures; and it can take various forms in social interaction. Desire in today’s modern society can be characterized as “desire as an extension of the body” that broadens the perception of experience, as an “ideology of desire” that screens desire by making it ideological, and as “desire of overconsumption.”

      • KCI등재

        주희와 왕부지의 욕망관 분석 -『논어집주』와 『독논어대전설』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철승 동양철학연구회 2010 東洋哲學硏究 Vol.61 No.-

        욕망이란 `하고자 하는 것`으로 생리적인 욕구인 본능(本能)과 생리적인 욕구를 채우는 과정에 좋은 것으로 더 하고자 하는 마음인 가욕(加欲)과 이성적인 바람[希望] 등의 의미를 포함한다. 본 논문은 주희의 『논어집주』와 왕부지의 『독논어대전설』에 나타난 욕망관의 분석을 통해, 욕망에 대한 주희와 왕부지의 이론적 특징을 살펴보는 글이다. 주희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도덕성과 인간의 자연적인 본능에 해당하는 생리적 욕구를 천리로 여긴다. 그러나 그는 생리적 욕구를 채우는 과정에 좋은 것으로 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가욕은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기에 사욕의 근거가 된다. 곧 그는 이 가욕과 사욕을 도덕적 천리와 대립하고 있는 인욕으로 여기며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한편 왕부지는 가욕을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긴다. 그리고 사욕에 대해서도 우주의 운행 주체인 기가 날마다 생하고 날마다 이루어지는 과정에 기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형성되는 비균형적인 마음이기에 근원적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적 의로움으로 무장하여 천리의 운행 질서에 동참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곧 그의 관점에 의하면 가욕은 사욕의 근거가 아니고, 사욕 또한 가욕의 직접적 결과가 아니다. 따라서 가욕과 사욕을 포함하는 인욕은 본래적으로 천리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기에 근원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에게 인욕은 천리가 실현되는 욕망의 토대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욕망에 대한 주희의 관점은 사사로운 이기심의 제거를 통해 선험적으로 주어진 보편자로서의 도덕 원리를 회복하여 현실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한편으로 이기심과 이기심의 충돌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증대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 공공의 질서 확립 측면에 의의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선험적인 도덕성을 부정하고 다원적인 가치관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사상적 제약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한편 욕망에 대한 왕부지의 관점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기의 운행이 인간의 삶에 구체적으로 관여하면서 생리적인 욕구의 발현과 그 욕구를 채우는 과정에 좋은 것으로 더 하고자 하는 심리 상태와 사사로운 욕심등을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조율의 대상으로 여긴다. 곧 그는 인간이란 선험적인 불변의 도덕 원리에 의해 규정되는 삶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욕구의 발현이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는 도덕적 원리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공의로움이 펼쳐지는 삶을 이루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구체적인 현실의 중요성을 깊게 인식하는 것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품 생산과 경제 활동의 측면에 이론적 기여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욕망관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한 혼란을 민주적으로 조율하는 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성과 이성의 유기적인 조화에 의한 이상 세계를 지향한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所謂欲望包含"想要"的, 生理性欲望[本能]和滿足生理性欲望過程中用更好的來實現欲望[加欲]及理性的所望[希望]等意義. 本文將通過分析朱熹的≪論語集注≫與王夫之的≪讀論語大全傳說≫里出現的欲望觀, 探討朱熹與王夫之對欲望問題的理論性特征. 朱熹認爲先驗具有的道德性和屬于人之自然本能的生理性欲望是天理然而, 他指出存在滿足生理性欲望的過程中用更好的來實現欲望的加欲. 在他看來, 加欲必然朝向有利于自身的方向發展而成爲私欲的根据. 卽他把這種加欲和私欲看成與道德性天理相對立的人欲, 是應該加以消除的對象. 與之相反, 王夫之認爲加欲不是要消除的對象, 而是一種自然現象. 對私欲也是如此, 宇宙運行自身的氣, 每天都在生成·發展和變化. 當氣的疏通不能實現時所形成的非均衡性之心不是消除的對象, 而是應通過武裝公益的天理, 使之同時參與天理的運行秩序. 卽根据王夫之的觀点, 加欲不是私欲的根源, 私欲也不是加欲的直接結果. 因此, 包含加欲和私欲的人欲因不是與本來的天理相對立, 因此從根源上說, 人欲不是消除的對象. 在他看來, 人欲是實現天理的欲望基礎. 如上所述, 朱熹想通過消除利己心恢復先驗地存在的普遍者之道德原理來解決與現實相關的諸多問題. 只今社會, 私心與私心的 衝突所引起的社會混亂越來越增大. 他的這種觀点不僅在解決這樣的現代社會問題有意義, 而且在確立公共秩序也有意義. 但是他的這種觀点對否定先驗性的道德性而重視多元的价値觀的人來說, 也能구被認爲思想的制約. 然而, 王夫之把不斷變化的氣之運行與人類的生活緊密聯系, 認爲生理性欲望的發現和滿足生理性欲望的過程中用更好的來實現的加欲和私人欲望的私欲等不應是被排除的對象, 而應是被調整的對象. 卽在他看來, 所謂人生不是由先驗不變的道德倫理構成, 生物學的欲望與不停地重新形成的道德原理有机結合, 實現公共義的人生. 這種觀点深刻考慮到不斷變化的具體現實之重要性, 對生活中必要的物質生産和經濟活動等能구作出理論上的貢獻. 因此, 這種欲望觀可以說是不僅能구對按照民主的方式調整相異的价値觀所引起的混亂有幇助, 而且指向由感性和理性的有机調和而形成的理想世界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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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욕망과 생태주의 문학의 상관성

        손민달(Son, Min-dal) 문학과환경학회 2017 문학과 환경 Vol.16 No.1

        한국 생태주의 문학 연구에서 소비욕망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예는 많지 않다. 그것은 산업화와 자본주의 발달이 가져온 욕망의 비대화와 물신화가 생태 파괴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상식적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생태 파괴의 주요 원인인 소비욕망이 문학 속에 어떻게 형상화되었고 한국 생태주의 문학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지 연구할 때가 되었다. 보드리야르와 부르디외는 현대 산업사회가 어떻게 소비사회로 규정되는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들의 해석을 통해 본 연구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소비욕망이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장정일과 유하는 ‘아비투스’와 ‘기호’라는 소비욕망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을 남겼다. 장정일이 계급과 취향에 의한 아비투스의 시라면, 유하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기호의 소비욕망을 작품화했다. 유하의 경우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원시 생명과 여유로움에 대한 추구를 통해 소비욕망을 극복하고자 한 작품이 유의미하다. 이들의 시는 소비욕망이 후기자본주의의 부정적 산물이라는 점은 잘 형상화하였지만 이로부터 파생되는 문제와 이에 대한 극복 방안으로까지 구체화되지 못했다. 최승호의 시는 소비욕망의 비대화가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발달에 기인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소비욕망의 비대화를 문명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그의 시는 소비욕망에서 생태 파괴의 문제를 견인하고 이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하여 생태주의 문학으로서 미적성취를 보여주었다. 비대한 소비욕망은 한국 생태주의 문학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사회 문제로 표면화되었으며 한국 생태주의 문학은 소비욕망의 문제를 형상화하면서 깊이를 더하였다. There are not many cases of full-fledged mention about the issue of consumption desire in the study of ecologism literature in South Korea, which is because it is common sense that the enormous size of desire and reification brought about by the development of industrialization and capitalism are the main culprits of ecosystem destruction. It is time, however, to classify the types of desire in further details and conduct critical analysis of effects of consumption desire, which is regarded as the culprit of ecosystem destruction, on ecologism literature. Baudrillard and Bourdieu gave clear explanations about the ways that modern industrial society was defined as consumption society. Based on their interpretations, this study analyzed critically the way that consumption desire was embodied in the South Korean society since the 1990s. Jang Jeong-il and Yu Ha left Habitus and Signs, which exhibit the characteristics of consumption desire nicely, respectively. While the former wrote a poem of habitus according to the social classes and tastes, the latter went further from it and created a work out of consumption desire of signs. His works were significant in that they tried to overcome consumption desire by pursuing primitive life and leisure even though the pursuit was not full blown. Their poems were good at embodying consumption desire as the negative product of postcapitalism, but they failed to propose the resulting problems and specific plans to overcome them. Clearly recognizing that the enormous size of consumption desire derived from the development of industrialization and capitalism, Choi Seung-ho criticized it from the perspective of civilization in his poems. In fact, his poems pulled out the issue of ecosystem destruction from consumption desire and embodied it in an effective fashion, thus making aesthetic achievements as ecologism literature. The enormous consumption desire rose to the surface as a more specific social issue through the ecologism literature of South Korea. Given that the ecologism literature of South Korea embodied the issue of consumption desire and added theoretical depth to it, the issue of overcoming consumption desire holds its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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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先秦)시기 유가와 도가의 욕망론

        김백희(Kim, Baik-hui) 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 인간학연구소 2011 인간연구 Vol.0 No.22

        본고는 선진(先秦)시대 유가와 도가의 욕망관을 비교하고, 그것이 현대적으로 반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중국 제자백가의 유가와 도가에서 바라보는 욕망은 다 같이 인간 또는 생명의 존재 지속성을 향한 힘이며 의지이다. 그러나 이것이 유가의 진리관이나 도가의 진리관에 비추어 볼 때, 우주자연의 진리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면 병든 욕망으로 변질될 수 있고, 진리의 길에 따라 욕망이 일어나게 되면 건강한 모습을 지닌다. 그런데 욕망은 현실적 삶에서 충족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순간보다 불행한 순간을 더 많이 느끼고 산다. 인생의 불평과 불안 또는 분노와 슬픔 등의 불만스러운 욕망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내가 바라는 욕망을 일으킬 때, 그 욕망이 진리에 따라 일어나도록 수양하고 관리하는 것이 유가와 도가의 충고이다. 유가와 도가의 지혜로운 충고는 세속의 욕망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가는 윤리적 가치가 전제되는 인간의 욕망을 위하여 도덕적으로 감정을 절제하고 관리할 것을 주장하였다. 도가는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모습으로 실현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인위적 가치에 물든 욕망을 버리거나 완전히 인위적 욕망을 버릴 수 없다면 적어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현대의 상품소비사회가 주도하는 대중문화 속의 대중들에게 병든 욕망에 찌든 자아의 질주에 경종을 울리고, 새로운 욕망관을 제시 할 철학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이런 점에서 유가와 도가의 욕망에 관한 이론이 현대에도 의미 있게 반추될 수 있다. Desire in Confucianism and Taoism in Pre-Chin China is a kind of energy or will regarding the sustainability of life. This desire can be one of two different types of vital energy If this energy follows the rule of the right to do, then is sound desire. On the contrary, if the energy does not follow this rule, it often degenerates into unwholesome desire. According to Confucianism, Humans need to understand the abstinence(節欲) of desire because desire is easily polluted with worldly greed. According to Taoism, social beings keep themselves in nondesire(無欲) because desire must follow the rules of nature. A mass culture in a capitalistic consumer society always incites humankind to follow unwholesome desire because society only seems to be interested in due to the insatiable desire of mass culture. Therefore a sound social norm needs to include taking time for self-reflection on desire. Desire in Confucianism and Taoism in this regard is worthy of consideration in contemporary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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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소설교육적 의미 탐구

        유리(Yu Ri) 국어문학회 2017 국어문학 Vol.64 No.-

        본 연구는 욕망의 소설교육적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라캉과 지라르의 욕망 이론을 중심으로 소설에서 욕망이 드러나는 양상을 살핀다. 라캉은 욕망을 억제할 무엇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으로 본다. 그리고 지라르는 욕망의 중개자를 통한 모방의 과정으로 욕망을 설명한다. 근대 이전 욕망은 억제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학습자들은 자신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욕망에 대한 재인식이 요구된다. 따라서 배경이 현실과 유사한 장르인 소설을 통하여 무엇이 바람직한 욕망인지 판단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소설에서 드러나는 욕망의 양상을 타자와의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발생하는 욕망으로 나누고, 박완서의 『꿈꾸는 인큐베이터』를 중심으로 소설에 나타난 욕망의 소설교육적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공감을 통한 욕망에 대한 재인식과 공감에서 벗어난 욕망의 분리와 재설정의 과정으로 나누어 제시하였다. 학습자는 소설에 나타난 욕망을 객관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욕망에 대한 재인식의 과정을 거치고, 타인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분리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본 연구를 통해 학습자들에게 욕망의 근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바람직한 욕망 인식을 가능하게 하여 소설교육에서 욕망의 교육적 의미가 밝혀질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This paper aims to explore the meaning of desire in novel education. Desire exists in human life. It was considered during the pre-modern times that desire was a thing to be controlled, but desire should be considered as a natural thing rather than just trying to control it because it inevitably occurs in human life and is made to function properly in our lives. In this paper, the purpose is to understand desire focusing on two major theories: Jacques Lacan’s desire theory, in which he saw desire from the relationship with others, and René Girard’s desire that occurred by imitating others’ desire. In addition, based on these desire theories, this paper analyzes in which patterns desire is revealed in novels, centering on Park Wan-Seo’s The Dreaming Incubator , from two different desire perspectives: desire that was made in the relationship with others and desire that was made by imitating a mediator. This paper aims to reveal the meaning of desire in terms of novel education by exploring the educational meaning of desire in novel education from two desire perspectives: a new understanding process of desire and a separation process of desire into other’s and my own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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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교의 욕망 이해와 욕망 다스림

        이재영 한국종교교육학회 2009 宗敎敎育學硏究 Vol.31 No.-

        통일교는 “욕망은 본래 인간의 창조성이었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타락성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해와의 타락 사건이 인간이 죄성을 갖게 된 동기가 되었고, 이 죄성이 근성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이 선보다 악을 지향하게 된다. 따라서 구원의 보충적 기능을 갖는 종교교육에서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는 것을 종교교육의 한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 통일교에서 이해하는 욕망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욕망의 이중성이다. 욕망은 본심을 따라 작용하면 창조의 원동력이 되지만 사심을 따라 작용하면 파괴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욕망은 확장성을 갖는다. 욕망은 제어하지 않으면 나선형으로 계속 확장된다. 셋째, 욕망은 주관성을 갖는다. 욕망은 대상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이러한 욕망을 제어하는 것이 인간의 양심이다. 양심은 욕망을 항상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선의 절대기준을 모르기 때문에 양심은 자신이 선이라고 하는 기준대로 욕망을 이끌어 간다. 양심을 절대 선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심정이다. 심정은 하나님의 창조성으로 대상을 사랑하고 기쁨을 돌리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과 심정 일체를 이루고 살면 욕망은 늘 본심대로 작용할 수 게 된다. 통일교에서 욕망을 다스리는 수행방법으로 (1) 위하는 삶의 실천 (2) 절제와 금욕생활 (3) 훈독의 생활화 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 종교교육의 과정이 된다. 명상, 묵상, 기도, 헌신과 봉사 등의 종교적 수행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기 위한 종교교육의 실천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KCI등재

        순수욕망을 향한 여정, 영화 <후쿠오카>

        한귀은(Han, Gwi-Eun) 한국문학회 2020 韓國文學論叢 Vol.86 No.-

        장률의 영화 <경주>,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후쿠오카>는 결핍의 주체 멜랑콜리커가 주인공이다. 이들이 욕망하거나 상실한 대상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우정과 연대를 경험한다. 특히 <후쿠오카>에서 상실한 대상인 ‘순이’는 욕망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욕망의 원인인 ‘대상a’이다. 순이는 그 기의 때문이 아니라 텅 빈 기표 그 자체로 제문과 해효에게 대상a가 된다. 그들은 대상a로 인해 상실과 고통을 향유하는 주이상스를 겪게 되지만 또 그 때문에 소담과 우정의 관계를 맺게 된다. 제문과 해효, 소담은 대상a의 환유적 장소에 머무는 디아스포라이다. 그들이 실재계적인 순간에 마주치게 되는 것도 상실한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결핍감 때문이다. 실재계는 재현될 수 없고, 언어로도 포착되지 않으며, 환상으로 접근할 수 있을 뿐이다. <후쿠오카>는 핸드헬딩의 비인칭 시점의 카메라와 미장아빔 구조를 통해 실재계의 징후를 암시한다. 비인칭 시점의 카메라는 익명적 쇼트를 구성하면서, 마치 상징계의 틈으로 드러난 실재계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을 연출해낸다. <후쿠오카>의 주요인물들과 사물은 틈이나 구멍을 통해 보여질 때가 많다. 누구의 시점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비인칭의 응시는 유령이 출몰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실과 꿈과 실재가 뒤섞이는데, 그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다. 미장아빔 구조는 그 구별 자체가 무화되는 지점에서 의미를 띠며 다수의 장면들이 서로 반향된다. 이런 경계의 해체는 외화면과 내화면의 절합 몽타주를 통해 더 강화된다. 제문, 해효, 소담은 상징계의 질서 속에 적당히 편입되지 못한 주체이다. 이들은 결핍감 속에서 실재계의 징후를 감지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라캉이 말한 윤리와 접목된다. 윤리적 욕망은 현실과 상징계에 근거한, 쾌락과 연동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혹은 상징계에서 벗어나 존재의 결여를 긍정하는 순수욕망이다. 실재계로 향하는 여정에 순수욕망이 발생하고, 이런 순수욕망을 지향하는 태도가 존재 회복에 이르게 하는 윤리인 것이다. <후쿠오카>는 이러한 순수욕망의 윤리를 비인칭 시점의 카메라와 미장아빔 구조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의 봉합작용을 차단하면서 이 시대의 욕망과 상실, 향유에 관해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후쿠오카>의 동시대성을 논할 수 있다. The main characters are melancholikers, the subject of lack in Zhang Lu s films <Gyeongju>, <Ode to the Goose>, and <Fukuoka>. What they desire or lose is unclear. However, they experience friendship and solidarity in the process of finding the object. In particular, ‘Sooni(순이)’, ‘the object lost’ in the film <Fukuoka>, is not the object of desire, but rather ‘objet a(objet petit a)’, which is the cause of desire. Sooni becomes ‘objet a’ to Jemoon(제문) and Haehyo(해효), not because of that signifier, but by the empty signifier itself. They suffer from loss and pain due to ‘objct a’, but also form a friendship with Sodam(소담). Jemun, Haehyo, and Sodam are diaspora that stay in the metonymic place of ‘objet a’. What they encounter in the Real moments is due to their constant lack of lost object. ‘The Real’ cannot be represented, it is not captured in language, it is only accessible as an illusion. <Fukuoka> implies signs of the Real through a handhelding camera of a non-personal perspective and a mise en abyme structure. The camera of a non-person perspective creates an anonymous shot, creating a scene as if showing the Real revealed through a gap in ‘the Symbolic’. The main characters and objects in <Fukuoka> are often seen through gaps or holes. The non-personal gaze, where it is difficult to determine whose point of view, creates an atmosphere of haunting ghosts. In this atmosphere, reality, dream, and the Real are mixed, and it is difficult to distinguish the boundaries. A mise en abyme structure takes on meaning at the point where the distinction itself becomes atomized, and a number of scenes echo each other. The deconstruction of these boundaries is further strengthened through the articulation montage of off-screen and on-screen. Jemun, Haehyo, and Sodam are subjects that have not been properly incorporated into the system of the Symbolic. They live by sensing the signs of the Real in a sense of lack. This is combined with the ethics that Lacan said. Ethical desire is not a desire of others, based on reality and the Symbolic linked to pleasure, but a pure desire that affirms the lack of existence out of reality or the Symbolic. Pure desire arises on the journey to the Real, and this attitude toward pure desire is an ethic that leads to the restoration of existence. <Fukuoka> talks about the ethics of pure desire through a camera of a non-personal perspective and a mise en abyme structure. It is possible to discuss the contemporaneity of <Fukuoka> in that it blocks the audience s suturing and makes them think about the desire, loss and enjoyment of this era.

      • 존재를 향한 욕망의 윤리

        김석(KIM Seok)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2011 人文 科學 Vol.23 No.-

        라캉에 따르면 정신분석의 윤리는 오직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순수 욕망은 대상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정념이기 때문에 양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외된 욕망은 상상계에 자리 잡은 자아가 주체를 대신하면서 타자의 욕망을 맹목적으로 좇거나 대상을 통한 만족에 매달리는 것을 말한다. 라캉은 말하는 주체가 경험하는 근본적인 존재 결여의 관계로 욕망을 정의하면서 욕망은 충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구적이라고 말한다. 존재는 말의 경험 속에서 구멍처럼 생기는 것으로 실재와 통하기 때문에 욕망의 윤리는 실재에 대한 열정이기도 하다. 실재의 형상이 바로 "물"이다. 주체가 영원히 잃어버린 대상처럼 느끼는 "물"은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욕망은 결국 불가능한 욕망인 향유로 발전한다. 불가능하고 금지된 실재에 대한 향유 의지는 평범한 사물을 물의 지위에 올리는 승화를 통해 구체화된다. 결국 윤리적 지평에서 욕망, 향유, 승화는 결국 존재에 대한 열정의 양상이라 할 수 있다. Selon Lacan, l"ethique de la psychanalyse n"est rien d"autre que d"agir conformement au desir. Il ne faudra pas ceder sur son desir, parce que celui-ci n"est pas la passion des objets, mais celle de l"etre. En revanche, l"ego a la place de sujet soit poursuit aveuglement le desir de l"autre, soit se tient a la satisfaction par des objets dans le desir alienant. Lacan dit que le desir est constant, parce que le desir qui est un rapport d"etre a manque ne peut jamais se satisfaire par des objets. Nous pouvons dire que l"ethique du desir est aussi la passion du reel. En effet, l"etre qui se creuse dans l"experience de la parole se rapporte au reel. Le reel que le sujet eprouve comme l"objet perdu a jamais est l"objet impossible a approcher. La figure du reel est la Chose. Le desir se developpe enfin a la jouissance pour autant que le desir vise a la Chose meme. La volonte de jouissance pour le reel se concretise dans la sublimation. Elle est cette operation eleve l"objet a la dignitie de la Chose. En fin de compte, nous pouvons dire que le desir, la jouissance, la sublimation sont tous la passion de l"etre au niveau de l"eth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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