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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학문론ㆍ공부론의 탈근대학문 언어체계로의 적용 가능성에 관한 연구
오세근(Oh Se-Geun) 동양사회사상학회 2006 사회사상과 문화 Vol.13 No.-
이 글은 근대학문이라는 범주 설정?패러다임적 특징?한계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근대학문에 대한 성찰적 반성으로서 나타난 이른바 탈근대학문의 생성 배경 및 근대학문과의 관계가 지닌 성격은 무엇인가, 또한 탈근대학문의 내재적 한계를 넘어서면서 보다 풍부한 사유방식을 생성할 가능성을 유교 학문론은 함의하고 있는가, 있다면 그 내용을 어떻게 다시 재구성해 제시할 수 있는가 등을 살펴보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BR> 이에 대해 우선, 탈근대학문은 과학적 이성의 작용에 의한 진리 획득이라는 근대학문의 성립 기반을 해체하는 과정 자체이자 그것을 대체하려는 새로운 학문 패러다임의 생성임을 밝힌다. 그러나 세계와 개별자, 자아와 대상, 안과 밖의 고유성을 승인하면서도 상호교섭적 관계형식에 의해 그것들이 일체화하는 과정의 의미까지 포착할 수 있는 대안적 언어체계 구상이 탈근대학문의 과제임을 지적한다. 그래서 ‘해체와 차이’라는 개별성을 넘어서 행위의 관계망과 규범 생성에 근거해 학문적 의사소통의 맥락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공公적 학문 언어체계로서 유교의 학문론 혹은 공부론을 검토한다. 그 작업은 유교의 학문관, 학문에 대한 정의, 학문의 목적 설정, 학문하는 방법 등을 중심으로 수행한다. This study purports to get a clue for the new paradigm of learning through reconfiguration of Confucianism’s thoughts. This effort could be meaningful in the sense that first, it could expand the conventional Western learning toward ethical and moral areas, and second, it also helps investigate a new perspective on learning.<BR> Specifically this study examines; 1) a genealogical record of modern and post-modern Western learning thoughts, 2) the potential limits of those Western thoughts theoretically as well as practically, 3)and finally Confucius’ thoughts on learning in order to overcome the limits of Western learning and explore the possibility to contribute to the expansion of learning in general.
근대 전환기 지식인들의 학문관 변화의 이론적 기반 -대구 경북 문집 중 중국학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김영문 영남중국어문학회 2003 중국어문학 Vol.0 No.41
這篇論文具體探討在近百年大邱慶北的整個知性史領域當中學問觀念變化的實際情況, 所以可以說這篇硏究意味着對於大邱慶北知性史的根底探索. 廣義地說來, 無論傳統社會還是近代社會所謂學問爲知識分子的知行提供合理的指向點. 這篇論文意識到學問包含着的這個意思, 探素了從傳統到近代學問觀念變化的理論基礎. 首先嶺南學派性理學思想的本體論(卽主理論)在西歐近代的衝擊和日帝植民地的壓迫下開始顯露出變化的朕兆. 近百年大邱慶北的知識分子以原則强思辨深的主理論爲底子, 逐漸包容現實性實踐性比較强的主氣論, 甚至於在根本上抛却性理學的原理, 積極受容西歐近代的認識論. 所謂理氣論可以說是相當於性理學的本體論的基本原理, 對於這個基本原理的懷疑和批判必然伴隨對世界的認識變化, 接着對世界的認識變化終於促進知識分子對於學問觀念, 學問辦法, 學問對象的認識變化. 因此, 在西歐近代的衝擊和日帝植民地的壓迫同時幷進的過程當中, 大邱慶北的知識分子不得不仔細地審査硏究幾百年繼續固守着的性理學原理. 他們爲了恰當地了解不斷輸入的新學問的內容, 迫切需要??新的認識結構. ??傳統的理氣論顯露出新變化的樣相同時, 大邱慶北的傳統曆史觀念也顯露出近代轉換的開端. 衆所周知, 嶺南學派歷來以性理學的主理論爲他們思想的根底, 所以他們的歷史觀念也主要注重以中國爲中心的尙古主義或復古主義. 然而從開港期到日帝强占期, 這個復古主義歷史觀念不能對付急速變化的嚴重現實, 却是露出了又頑固又保守的弊病. 因此, 這個時期進步性强的知識分子, 根本懷疑着復古主義的傳統歷史觀念, 夢寐以求地追求祖國的解放和民族國家的建立. 在同樣的立場上, 大邱慶北的知識分子也主動地接受中國變法維新運動的理論基礎卽`公羊三世說`. `公羊三世說`就是一種歷史進化觀念, 堅決否定`貴古賤今`的固陋觀念, 不斷追求未來的希望. 結果, 隨着歷史進化觀念明顯地揭示了未來的多種多樣的藍圖, 大邱慶北的知識分子超越了??着古人言行單純學習的範圍, 進一步探求未來社會的希望. 這樣, 歷史進化觀念促使大邱慶北知識分子的傳統學問觀念發生根本性的變化. 幷且, 近百年大邱慶北知識分子的對中國的認識變化也密切地聯系到學問觀念的新變化. 對中國的觀念漸漸從以中國爲中心的事大慕華思想向以韓民族爲中心的民族自主思想移動了, 知識分子對學問的觀念也越來越開放了. 他們開始覺得中國不是世界唯一的中心, 只是世界繁多國家之一罷了. 加上認識到我們韓國也是??中國一樣的自主獨立國家, 或者强調到我們韓國民族比中國漢族更優秀的天降天孫. 伴隨着這樣的認識變化, 大邱慶北知識分子的學問觀念, 民族自主的因素更加顯得??突出. 同時以中國經傳爲主的學問活動??快轉移到以西歐近代代學問爲主的開放性硏究.
學問 개념의 근대적 변환 - ‘格致’, ‘窮理’ 개념을 중심으로
이행훈 동양고전학회 2009 東洋古典硏究 Vol.37 No.-
근대 이전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지적 체계와 학문은 인간과 자연을 통일체적으로 사유하는 가운데 인간의 본성을 발현함으로써 사회적 실천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특히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 송대 신유학은 ‘理氣’ 개념으로 인간과 사회, 우주와 자연을 일통의 유기적 구조로 설명하였으며, 이러한 철학체계 내에서 인간학과 자연학은 통합되어 있었다. 동서의 충돌과 교류는 동아시아의 지적 체계에 균열을 일으켰고, 전통적 학문 개념의 전이와 변용을 가져왔다. 개화와 진보의 욕망을 내면화하고, 東道와 西器, 新學과 舊學 논쟁을 거치면서 유학은 비판과 쇄신, 부정과 폐기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 본성의 자각과 도덕 실천의 理想은 문명개화와 근대 국가 설립의 제한적 수단으로만 논의될 뿐 더 이상 학문의 본령으로서 위상을 갖지 못했다. 서구 근대의 광휘는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를 규준했던 학문의 내용과 방법은 물론 목적까지 변화시켰다. 근대 계몽기 서구 문명 수용과정에서 한자(어)로 구성된 전통 학술 용어나 개념은 외래 학문을 번역, 소개하는데 여전히 유효한 기제였다. ‘格致’와 ‘窮理’는 자주 인용되었는데, 인간과 우주 만물에 내재한 본성을 탐구하는 전통적 의미는 점차 퇴색되고, ‘格致學’, ‘窮理學’ 등 개별 학문을 지칭하는 명사로 변환되었으며, 때때로 철학(philosophy), 과학(science) 등 상이한 학문 영역을 넘나들며 사용되었다. 학문 개념과 지적 체계의 이러한 변동은 외래 학문의 수용 양상을 보여주는 한편 동아시아 전통 학문이 지닌 특성을 드러낸다. 이제 가치와 사실의 분리, 인간학과 자연학의 분리, 학문의 분과화를 진행해 온 근대 학문은 또 하나의 전통이 되었고, 계승과 극복의 양가적 대상이다. In the East Asian Confucianism society, Hakmun was aimed to bring human beings and nature into harmony, and to explore a unity between knowledge and conducts. For example, Neo-Confucianism aspired they could explain the human existence and society through a single concept of Iki(理氣, the basic principles and the atmospheric force of nature). In this philosophy, humanics and natural sciences had not been differentiated at all. The East-West cultural interchanges at the beginning of modernity caused a crack in the traditional academic concepts. Through the Hundred Days of Reform(變法自疆運動, a movement of Strenuous Efforts through Reforming the Law), the Western Affairs Movement(洋務運動) in China, Meiji Restoration(明治維新) in Japan, or Innovation Movements(開化運動) and the Patriotic Enlightenment Movement(愛國啓蒙運動) in Korea, the traditional meanings of Hakmun was degraded while it became a target of the criticism of the enlightenment movements. Accordingly, East Asians' perception of Hakmun rapidly began to change. Although there had been the Silhak(實學, practical science) movement in Korea, which tried to differentiate its conceptualization of Hakmun from that of Neo-Confucianism during the 18th and 19th century, the fundamental shift in meaning occurred with the influx of the modern Western culture. This change converted the ultimate objective of Hakmun as well as its methods and substances. The separation of humanics and natural sciences, rise in dignity of the technological sciences, and subdivision of learning into disciplines and their specialization were accelerated during the Korean enlightenment period. The inflow of the modern western science, humanized thought, and empiricism functioned as mediators in these phase and they caused an irreversible crack in the traditional academic thoughts. Confronting the western mode of knowledge, however, the East Asian intellectuals had to explain their new learning by using traditional terms and concepts; modification was unavoidable when they tried to explain the newly imported knowledge and concepts. This presentation focuses on the traditional concepts of ‘gyeogchi’(格致, extending knowledge by investigating things) and ‘gungni’(窮理, investigation of principles), pervasively used in philosophy, physics and many other fields of study. These concepts will mark the key point with which to trace changes of knowledge and to understand the way how the concept of Hakmun was converted into a modern one.
유교 학문론?공부론의 탈근대학문 언어체계로의 적용 가능성에 관한 연구
오세근 동양사회사상학회 2006 사회사상과 문화 Vol.13 No.-
This study purports to get a clue for the new paradigm of learning through reconfiguration of Confucianism’s thoughts. This effort could be meaningful in the sense that first, it could expand the conventional Western learning toward ethical and moral areas, and second, it also helps investigate a new perspective on learning. Specifically this study examines; 1) a genealogical record of modern and post-modern Western learning thoughts, 2) the potential limits of those Western thoughts theoretically as well as practically, 3)and finally Confucius’ thoughts on learning in order to overcome the limits of Western learning and explore the possibility to contribute to the expansion of learning in general. 이 글은 근대학문이라는 범주 설정․패러다임적 특징․한계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근대학문에 대한 성찰적 반성으로서 나타난 이른바 탈근대학문의 생성 배경 및 근대학문과의 관계가 지닌 성격은 무엇인가, 또한 탈근대학문의 내재적 한계를 넘어서면서 보다 풍부한 사유방식을 생성할 가능성을 유교 학문론은 함의하고 있는가, 있다면 그 내용을 어떻게 다시 재구성해 제시할 수 있는가 등을 살펴보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이에 대해 우선, 탈근대학문은 과학적 이성의 작용에 의한 진리 획득이라는 근대학문의 성립 기반을 해체하는 과정 자체이자 그것을 대체하려는 새로운 학문 패러다임의 생성임을 밝힌다. 그러나 세계와 개별자, 자아와 대상, 안과 밖의 고유성을 승인하면서도 상호교섭적 관계형식에 의해 그것들이 일체화하는 과정의 의미까지 포착할 수 있는 대안적 언어체계 구상이 탈근대학문의 과제임을 지적한다. 그래서 ‘해체와 차이’라는 개별성을 넘어서 행위의 관계망과 규범 생성에 근거해 학문적 의사소통의 맥락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공公적 학문 언어체계로서 유교의 학문론 혹은 공부론을 검토한다. 그 작업은 유교의 학문관, 학문에 대한 정의, 학문의 목적 설정, 학문하는 방법 등을 중심으로 수행한다.
이상 시에 나타난 근대 학문의 의미 고찰- ‘과학’, ‘수학’, ‘의학’을 중심으로
유현수 이상문학회 2021 이상리뷰 Vol.- No.17
이상의 시에는 과학, 수학, 의학 등 다양한 근대 학문적 요소들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때 등장하는 근대 학문적 이론들은 단순히 시적 수사로 활용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구성하는 주요 방법론이자 모티프로서 기능한다. 그런데 이렇게 근대 학문적 이론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모습은 이상이 근대 학문에 대한 반감을 작품에서 드러냈던 것과 상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상이 자신에게 부정적 대상이었던 근대 학문에 오히려 몰입하고 있는 모습에 대하여 근대 학문의 부정성을 마냥 회피하거나 거부할 수만은 없었던 근대적 주체로서의 노력으로 파악해 보았고, 그러한 태도를 ‘투신’이라고 규정하였다. 그의 이러한 ‘투신’적 태도는 헤겔이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주체의 역할을 고민하였던 것과 상통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헤겔에게 주체성이란 부정적인 것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그 곁에 머무름으로써 그 부정성을 진정한 ‘존재’로 뒤바꾸는 일종의 마력(魔力)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결국 근대인 이상이 근대 학문이란 낯선 조류(潮流) 앞에서 선택한 대응 방식은 도리어 근대 학문에 직접 ‘투신’함으로써 부정성과 함께 머물고 궁극적으로 그 부정성을 초월하려는 분투였다는 것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이상이 근대 학문의 부정성에 ‘투신’한 결과를 ‘과학’, ‘수학’, ‘의학’을 중심으로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중에서도 ‘과학’과 ‘수학’은 이론적 초월을 통해서, ‘의학’은 실천적 행위를 통해서 학문적 부정성을 극복하고자 하였음을 보였다.
홍승표 동양사회사상학회 2007 사회사상과 문화 Vol.15 No.-
Science has enjoyed the ruling status for the past several hundred years. However, the identity of learning should be changed at the time of great turning point of civilization. Because the consciousness of modern men is seized with modernity, the conversion of the identity of learning is not being processed successfully. This is the essential point of the crisis of modern learning. At the end of middle age, theology could not play the leading role to open a new civilization. By the same reason, at the end of modern age, science can not play the leading role to open a new civilization. We need a new type of learning to contribute to the construction of new civilization. In this sense, this paper attempts to sketch a new type of learning that can lead post-modern era. The characteristics of the unified world view that is the basis of new learning will be described in this paper. And the identity of new learning will be discussed, too. 과학은 지난 수백 년 간 지배적인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누려왔다. 하지만, 문명의 대전환기를 맞은 지금, 학문 역시 대전환을 이루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대인의 의식 전반이 근대에 사로잡혀 있음으로 말미암아, 학문의 정체성 대전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과학으로 대표되는 현대 학문 위기의 본질이다. 중세 말 신학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주역이 될 수 없었음과 마찬가지로 현대 말 과학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주역이 될 수는 없다. 과학은 미래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용한 학문이겠지만 더 이상 시대를 선도하는 학문이 될 수는 없다.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 과학이라는 신학문이 필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탈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삶과 문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신학문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탈근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학문 유형에 대한 스케치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신학문의 새로운 세계관적 토대로 통일체적 세계관의 특징을 서술하고, 통일체적 세계관의 바탕 위에 구축된 신학문의 정체성에 대해서 앎의 목적․앎의 의미․앎의 방법을 중심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논문(論文) : 중국 근대 지식지형의 형성과 패러다임 -전문지식과 전문가집단의 탄생을 중심으로-
김수영 ( Soo Young Kim ) 중국사학회 2011 中國史硏究 Vol.71 No.-
專業知識和專家成爲中國近代知識版圖的中心, 引進西歐以學科分類體系爲基礎的高等敎育制度是必不可缺的. 因此本文主要通過專業知識和知識分子群體的産生, 以中國高等敎育的學科分類體系爲分析對象, 硏究中國近代知識版圖的形成. 本文通過分析中國高等敎育機關的學科分類體系, 硏究中國近代知識版圖的範式, 針對知識和國家權力, 各學科專業知識的版圖結構, 知識與社會構造這三大領域進行比較分析. 這三大領域都在1937年完成了中國近代知識版圖範式的轉換. 1937年, 在高等敎育機關的公私立比例上, 私立敎育機構超過了公立敎育機構, 因此, 在南京政府時期民間知識領域生産達到了最高峰. 抗日戰爭以前的南京政府時期, 國家權力嘗試把知識生産中央集權化, 知識分子群體則追求學問的獨立性, 因此, 兩者之間的利益關系尖銳對立. 在這兩種互相對立的1931-1937年間, 中國近代知識生産的範式由國家主導轉爲民間主導. 령外, 1937年也是各學科專業知識的版圖構造範式産生變化的時期. 因爲在這個時期, 理工學科領域的在校生人數超過人文社會科學領域的在校生人數, 傳統的支配-邊緣式知識秩序也隨之開始崩潰. 從專業知識和社會構造的關系角度看, 1937年也是範式轉換的一年. 以1937年爲起點, 之前法學和文學畢業生占50%以上, 之後法學和工程學的畢業生占40%以上, 是培養出畢業生最多的學科, 在這種情況下, 中國社會的知識分子群體的構造開始産生變化. 在中國近代知識版圖的形成過程中, 這種範式的轉換, 對國家權力和民間領域的所有方面, 産生了推動作用. 因爲在國家權力和民間領域的所有方面, 專業知識的生産和知識分子群體的成長都被看做是中國近代化的必須條件. 在中國近代知識版圖專業知識生産方面, 國家的主導與民間主導幷駕齊驅, 然而與此相反, 在專業知識消費(創造就業機會)方面, 國家權力則遠遠地凌駕於民間領域之上.
이상혁(Lee, Sang-hyeok)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14 아시아문화연구 Vol.35 No.-
이 논문에서는 전통 시대, 즉 조선 시대와 구별하여 우리말을 바라보는 목적 의식적 연구와 활동에 근거한 19세기말 20세기 전반을 ‘근대 학문 형성기’로 규정했다. 그 전제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국어의 특징과는 달리 새롭게 제기된 거시적인 근대 국어의 성격의 문제를 문체의 변주와 착종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했다. 또한 형태주의와 음소주의의 길항의 모습을 어문규범의 태동과 역사적 굴절이라는 미시적인 언어 양상을 중점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했다. 우선 거시적 관점에 바탕을 두고 ‘근대 국어’용어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근대 국어 의식, 혹은 근대 국어관에 입각한 근대 국어의 성격을 논의했다. 또한 미시적 문제에 천착하면서 전근대 시대에 주목 받지 못하던 문체의 문제를 제기하고 국문 의식의 태동과 함께 국문 표기 문체와 국한문 표기 문체의 다양한 문체 변화와 그 섞임을 근대 어문 지식인이 저술한 중요한 논설의 문체 구현 양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전근대를 포괄적으로 지배하던 규범에서 벗어나 새로운 규범이 태동하고 성립하는 과정에서 어문규범의 문제를 조선인 연구자의 형태주의와 일제 총독부의 음소주의라는 근대적인 길항 관계의 측면에서 논의해 보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근대 학문 형성기에서 근대 국어의 성격은 문체, 규범을 중심으로 그것이 이전 시대와 다르게 변모한 점에 주목하고 그 요소들이 바탕이 돼 근대 국어 성격과 특징이 규정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This article examines diverse characteristics of modern Korean language in the end of 19<SUP>th</SUP> to the first half of 20<SUP>th</SUP> century. It focused on diversity of style and antagonistic relations of orthography. It points out the necessity modifying ‘time’ and ‘term’ of modern Korean language based on modern Korean consciousness, and discusses the characteristics that may be raised in regard to diversity of style and antagonistic relations of orthography from the microscopic point of view. With this background information, we first demonstrate the nature on the modern Korean language in the end of 19<SUP>th</SUP> to the first half of 20<SUP>th</SUP> century. We then categorize the styles into two groups based on their consciousness (only Korean vs. mixing Chinese character), and inquire into the differences between the morphophonemic and phonemic point of view in orthography(Korean vs. Japanese). We found that there are several characteristics deeply rooted in the historical and linguistic views. Since these are more difficult to deal with, we suggest that the research must first and foremost focus on the description of historical facts. We believe that our claim is a desirable consideration, particularly because our focus is on issues that can be interpreted objectively based on modern Korean consciousness of text at that time. As a result it is emphasized the clarification of diverse characteristics of modern Korean language in modern era.
김천학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5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2
본고는 일본 메이지시대 이후의 불교학을 일본이 패전하는 1945년까지로 한정하여 화엄학 연구를 정리하고자 하였다.일본이세계 패권주의로 치달리는 가운데서도 각 학문분야의 순수학문은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가마타시케오(鎌田茂雄), 「화엄학연구자료집성」(東京大學東洋文化硏究所,1983)와 일본에서 제공하는 근대디지털라이브러리와 불교연구 문헌목록을 제공하는 inbuds를 검색함으로써 근대 일본의 화엄학 연구상황을 파악 내지 분석하였다. 본고에서는 이 세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근대 일본의 화엄학 연구동향의 의의와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쟁점의 핵심을 설명하고, 현대 화엄학 연구와의 접점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였다.근대 일본의 화엄학 연구를 고찰할 때 놀라운 사실은 현대에 연구된 거의 전분야의 문헌학적,사상적 토대가 거의 완성되었다는 점이다.또한 당시의 학문적 문제의식은 현대까지 이어지며, 오히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점조차 있다.이것은 현대의 학자들이 당시의 쟁점에 대해서 보다 철저히 접근하려는 태도가 약화된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문헌의 출현이 절실히 요구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일본 근대의 문헌학적 소양은 반드시 유럽의 영향으로만 형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에도시대의 전통적인 학문이, 아니 더 올라가서 고대의 전통적인 주석 방식이 지금의 문헌학과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근대불교학은 그 바탕 위에 유럽의 언어학적 연구의 도입으로 그 학문적 수준을 끌어올 릴 수 있었다. 이러한 근대불교학 연구가 현대의 일본의 불교연구 수준을 세계적으로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메이지시대의 학문에 대한 열정의 덩어리가 현대에 까지 미친 것이라고 해석된다.
중국 근대 지식지형의 형성과 패러다임 -전문지식과 전문가집단의 탄생을 중심으로-
김수영 ( Soo Young Kim ) 중국사학회 2011 中國史硏究 Vol.71 No.-
專業知識和專家成爲中國近代知識版圖的中心, 引進西歐以學科分類體系爲基礎的高等敎育制度是必不可缺的. 因此本文主要通過專業知識和知識分子群體的産生, 以中國高等敎育的學科分類體系爲分析對象, 硏究中國近代知識版圖的形成. 本文通過分析中國高等敎育機關的學科分類體系, 硏究中國近代知識版圖的範式, 針對知識和國家權力, 各學科專業知識的版圖結構, 知識與社會構造這三大領域進行比較分析. 這三大領域都在1937年完成了中國近代知識版圖範式的轉換. 1937年, 在高等敎育機關的公私立比例上, 私立敎育機構超過了公立敎育機構, 因此, 在南京政府時期民間知識領域生産達到了最高峰. 抗日戰爭以前的南京政府時期, 國家權力嘗試把知識生産中央集權化, 知識分子群體則追求學問的獨立性, 因此, 兩者之間的利益關系尖銳對立. 在這兩種互相對立的1931-1937年間, 中國近代知識生産的範式由國家主導轉爲民間主導. 령外, 1937年也是各學科專業知識的版圖構造範式産生變化的時期. 因爲在這個時期, 理工學科領域的在校生人數超過人文社會科學領域的在校生人數, 傳統的支配-邊緣式知識秩序也隨之開始崩潰. 從專業知識和社會構造的關系角度看, 1937年也是範式轉換的一年. 以1937年爲起點, 之前法學和文學畢業生占50%以上, 之後法學和工程學的畢業生占40%以上, 是培養出畢業生最多的學科, 在這種情況下, 中國社會的知識分子群體的構造開始産生變化. 在中國近代知識版圖的形成過程中, 這種範式的轉換, 對國家權力和民間領域的所有方面, 産生了推動作用. 因爲在國家權力和民間領域的所有方面, 專業知識的生産和知識分子群體的成長都被看做是中國近代化的必須條件. 在中國近代知識版圖專業知識生産方面, 國家的主導與民間主導幷駕齊驅, 然而與此相反, 在專業知識消費(創造就業機會)方面, 國家權力則遠遠地凌駕於民間領域之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