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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한국목간 연구의 현황과 전망

        朱甫暾 한국목간학회 2008 목간과 문자 Vol.1 No.-

        이 글은 지난 2007년 1윌 韓國木簡學會의 출범과 동시에 개최된 국제학술회에서 基調로 發題한 글을 바탕으로 같은 해 12윌 일본목간학회에서 ‘韓國木簡學會의 出帆과 展望’이란 주제로 발표한 글로 보완하여 정리한 것이다. 한국목간학회가 출범하게 된 배경과 함께 그 동안 목간의 출토 상황과 배경, 그를 근거로 한 연구의 동향 및 나아가야 할 방향의 전망 등에 대한 大綱을 커다란 시각과 관점에서 제시해 보았다. 최근 비교적 많은 수량의 목간이 잇달아 출토되고 있다. 목간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 출토된 것은 1975년 慶州의 ?鴨池에서이다. 이후 경주를 비롯하여 扶餘, 仁川주, 金海, 益山, 咸安 등지에서 목간이 출토되어 현재 전체적으로 거의 500점을 헤아리게 되었다. 전국에 걸쳐서 출토되고 있다고 하여도 좋다. 그 가운데 가장 양적으로나 내용상으로 각별히 주목해 볼 만한 것은 경남 함안의 城山山成에서 출토된 목간이다. 도합 200여점에 달해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같은 곳에서 앞으로도 나올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다. 목간을 포함한 層位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목간이 文字資料이기에 앞서 考古資料임을 입증하어 주었다. 木簡學이 다양한 여러 학문 분야간의 긴밀한 협조가 요구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判讀에서부터 分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학문간 學際的인 연구가 이루어지면 결국 한국고대사 방면에 크게 도움되리라 예상된다. 다만 이는 基礎的 整地作業이 치밀하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해질 일이다. 목간은 기존의 문헌에 근거한 역사 연구가 지닌 한계를 극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앞으로 줄기차게 관심을 기울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자료의 양은 물론이고 연구의 역사가 매우 日淺하다. 그들과의 교류가 긴요한 실정이다. 따라서 목간학회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연계가 크게 요망되는 분야이므로 이 방면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 KCI등재

        한국 출토 목간의 분류와 정리 및 표준화 방안

        이재환 한국목간학회 2019 목간과 문자 Vol.0 No.23

        Since studies on wooden documents excavated in South Korea have been advanced, issues regarding ‘standardization’ and ‘systematization’ were raised in terms of organizing and categorizing wooden documents. However, they were still individual proposals, so it was not possible to draw conclusions by exchanging opinions constructively. First of all, the definition of ‘wooden document’ is not fully agreed on yet. Even the quantity of wooden documents in South Korea can vary widely according to the definition. In the past, wooden document was often defined based on the purpose or form of it. But figuring out the creator’s intent or guessing its purpose without text can be arbitrary. Therefore, I propose to define wooden document as “wooden item on which text has written” and to add a provisory clause such as “except one made for printing and stamping”. The number that identifies each wooden document is the name of it. Making easy to identify and search, that is why numbering fundamentally. Therefore, we should not give the same name to different wooden documents, and should not give several names to one wooden document. So far, it has been very confusing to identify wooden documents in Korea, for one wooden document has more than three names. The most basic direction is to follow the number in the excavation report, but it is not possible practically because a lot of research are carried out on excavated wooden documents before the publication of the excavation report. As a general rule, it should be recommended to use the number assigned at the initial disclosure in all subsequent studies, catalogs, reports, etc. Nevertheless, the manner to display the assigned numbers may also vary. It can lead to confusion in search in the future. The Korean Society for the Study of Wooden Documents must list all the numbers and titles used for wooden documents so far, and specify the standard notation in the journal each year. The standardization of terminology should also be established by the society. And categorization criteria are not uniformed yet, so they vary from researcher to researcher. I proposed a code system by appearance for wooden documents in this paper. More important than proposing a criterion or method is the further discussion and conclusion. In Korea, the Korean Society for the Study of Wooden Documents could be the center for those discussions. Through the process of ‘consensus’ and ‘accreditation’, standardized results would be produced soon, I hope. 한국 목간의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그 정리나 분류에 있어서 ‘표준화’나 ‘체계화’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의견 교환 및 결론 도출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우선 ‘목간’의 정의조차 충분히 합의되지 못한 상태로서, 정의에 따라 한국 출토 목간의 수량 파악 자체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기존에는 제작 의도나 형태에 기반하여 목간을 정의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 의도 파악이나 묵서가 없는 목제품의 성격 추정에 있어서 자의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에 ‘文子가 書寫된 木製品’으로 정의하고 ‘捺印·印出을 위한 것은 제외한다’ 등의 단서를 부가할 것을 제안한다. 각 목간들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일련번호는 그들의 이름에 해당하는데, 일련번호를 부여하는 근본적 의의는 식별과 검색의 용이성이라는 측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이름이 여러 개의 목간에 부여되거나, 하나의 목간에 여러 개의 이름이 붙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한국의 목간 정리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하나의 목간에 여러 개의 이름을 붙여 버렸다는 점이다. 가장 기본적인 방향성은 발굴보고서의 일련번호를 따르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발굴보고서가 발간되기 이전에 이미 해당 유적 출토 목간에 대한 연구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발표되므로, 발굴보고서 이전 단계의 일련번호가 사용되지 않을 수 없다. 발굴기관에서 목간을 최초 공개·보고할 때 부여한 번호를 원칙적으로 이후의 모든 연구서와 도록·보고서 등에서 가능한 한 바꾸지 않고 사용할 것을 권고해야 하겠다. 일련번호가 하나로 확정되어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기하는 방식이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향후 검색에 있어서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한국목간학회에서 지금까지 공개된 목간들의 호칭들을 정리하고, 표준 표기 방식을 지정하는 표를 학회지에 만들어 싣는 것이 좋겠다. 아울러 한국목간학회의 판독문 범례 및 용어 표준화안 또한 확정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유형의 목간을 모을 분류 기준 또한 연구자 별로 각자의 기준을 제시해 둔 정도의 상태이다. 특히 통일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은 형태에 따른 분류 방법이다. 日本의 형식 분류를 참조하고, 한국 출토 목간의 특징을 고려한 외형 코드 및 상·하단 형태 코드를 만들어 보았다. 기준이나 방법을 제안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 논의의 진행이다. 한국에서 그러한 논의의 주체는 역시 한국목간학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식으로든 ‘합의’와 ‘공인’의 절차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많은 연구자들이 따를 만한 표준화의 결과물이 만들어져 나오기를 희망해 본다.

      • KCI등재

        『한국사』 교과서 속의 고대 목간 자료의 활용 -『日本史B』 교과서와의 對較를 중심으로-

        정선화 한국목간학회 2018 목간과 문자 Vol.0 No.21

        Starting with the 2007 revision of the curriculum, middle school history (issued in 2011), the school considered the description of the ancient wooden tablets contained in the revised curriculum (issued in 2013) of high school year. In March this year, Japan’s history textbooks were published after reviewing descriptions of the wooden tablets of middle school history textbooks. In response, he examined the history textbook of Japan as a comparative example to examine whether the description of the wooden tablets in the high school history textbook reflects the latest achievements of the history studies in the right place. From the 1990s, which was earlier than Korea, Japan has included the ancient wooden tablets in its history textbooks. 『Korean history』 textbooks contain more wooden tablets than Japanese textbooks. However, there were considerable differences in the method of writing wooden tablets and the method of selecting them. While Japan clearly described the value of the wooden tablets as the primary historical materials in its history textbooks, it can be seen that Korean history textbooks contain many descriptions that are not limited to the achievements of history studies. The description of the wooden tablets should clearly describe the characteristics of the primary data and accurately reflect the achievements of the history studies. From a perspective, the descriptive features of the ancient wooden tablets in the 『Korean history』 textbook were reviewed to suggest problems and improvements. 본고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2013 발행) 『한국사』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고대 목간의 서술 현황을 검토하는데 목적이 있다. 올해 3월 역사교육연구회를 통해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목간 관련 서술 내용을 검토한 글을 게재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한국사』 교과서에 목간 관련 서술이 역사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를 적재적소에 잘 반영하고 있는지를 검토하기 위한 비교 사례로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살펴보았다. 일본은 우리보다 빠른 시기인 1990년대부터 고대 목간 자료를 역사교과서에 수록하였다. 山川出版社, 東京書籍, 実敎出版에 기재된 고대 목간은 「長屋王家」 관련 목간, 「郡·評論爭」 관련 목간, 「天皇」 호 관련 목간 등 3종류로 대별된다. 『한국사』 교과서는 고대 목간이 수록된 6종의 교과서에 6종류의 고대 목간이 등장한다.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목간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목간의 기재 방식이나 목간의 선정 방식에서부터 상당한 차이를 있음을 발견하였다. 일본은 역사교과서를 통해 1차 사료로서의 목간의 가치를 분명하게 나타나도록 서술한 반면,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단순한 소개차원이거나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에 반하는 서술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목간 관련 서술은 1차 자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잘 나타나도록 서술하면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정확히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면 측면에서 『한국사』 교과서 속의 고대 목간 관련 서술상의 특징을 검토하여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 KCI등재

        일본 고대 목간의 계보

        三上喜孝 한국목간학회 2008 목간과 문자 Vol.1 No.-

        본고는 일본 고대목간의 계보를 더듬어 찾고자 하는 관점에서 한국의 출토목간에 주목하고, 양자를 비교 검토함으로서 그 특질을 부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선 기록간에 주목하면, 첫머리에 날짜를 기입하고 그 아래 인명에 할주를 나란히 쓰는 기재양식이, 한국출토의 6세기 목간과 일본의 7세기 목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목간에 보이는 독특한 용자법도 한국 출토목간과 일본의 7세기 목간에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더욱이 『논어』를 기재한 목간이 한국과 일본에서 출토하고 있는 사실은, 『논어』가 백제에서 자져온 것이라고 하는 『고사기』의 전승과 아울러 문자문화의 수용이 한반도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출토목간과 일본 고대목간을 비교하면, 7세기의 지방목간과 많은 공통점을 보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현저한 것이 近江지역(현재 滋賀현)에서 출토된 7세기 목간이다. 한자를 일본어의 어순으로 나열해서 기록한 西河原森ノ/內遺跡 출토목간은 한국의 壬申誓記石에서 볼 수 있는 문체를 상기시킨다. 湯ノ部遺跡 출토의 『牒』 문서양식을 가진 목간은 6세기대로 추정되는 신라 月城垓子 출토 목간인 『牒』목간의 계보를 이어받는 것으로 봐도 좋다. 7세기 近江지역 출토의 목간과 한국 출토목간 사이에 이러한 공통성이 보이는 배경에는, 이 지역이 한반도의 도래인이 집주하고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지만 단지 이것이 近江지역만의 특수성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일본 고대사회에서 목간이 왕성히 사용된 것은 같은 시기에 한반도에서 목간이 사용되고 있었던 사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열도에 문자문화를 가져온 도래인이 그와 동시에 목간에 의한 정보 전달기술도 가져온 결과, 정보 전달매체로 목간의 유효성이 확인되고 일본의 율령국가 통치기술의 하나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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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한국 습서 목간의 사례와 그 의미

        權仁瀚 한국목간학회 2013 목간과 문자 Vol.11 No.-

        본고는 한자문화의 수용과 학습에 초점을 두고서 고대한국의 습서 목간이 지니는 의미를 집중 고찰한 것이다. 본론에서의 논의 결과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제2장에서는 한국 고대목간의 출토 현황을 소개하였다. 현재까지 남한내 20개 유적지에서 600여 점의 목간이 출토된 바, 이 중 묵서 목간의 숫자는 400여 점에 달하고 있음을 보았다. 제3장에서는 습서 목간의 사례들에서 찾을 수 있는 고대한국 한자문화의 구체적인 모습을 추적하였다. 그 결과 습서 목간은 크게 경전 학습에 관련된 것과 문서 작성에 관련된 것으로 나눌 수 있었다. 먼저 경전 학습에 관련된 백제의 사례들은 종류를 특정하기는 어려우나, 성왕대에 양나라로부터 경전류를 수입하여 범국가적으로 경전의 학습에 힘쓴 시대적 배경에 부합됨을 알 수 있었다. 경전 학습에 관련된 통일신라의 사례를 통해서는 당시의 고등 교육기관인 국학에서『毛詩正義』와 같은 유교 경전류를 학습한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문서 작성에 관련된 백제의 사례에서는 종결사 등 문서 작성에 필요한 요소들을 연습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문서 작성에 관련된 통일신라의 사례들을 통해서는 책사 제도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문서 작성을 연습함에 있어서 서두부인 작성 시기와 종결부인 사업 참여자에 관한 정보가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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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신라 목간의 집계와 범례의 제안

        오택현,이재환 한국목간학회 2023 목간과 문자 Vol.- No.30

        한반도 발견 목간 연구의 본격화와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정리와 표준화 작업이 필수적이나, 아직 가장기본이 되는 목간의 정의조차 합의되지 못한 상태이다. 본고는 목간의 정의와 표준 호칭 및 범례를 제안하고, 그에 따라 백제·신라 목간을 집계·정리해 본 것이다. 먼저 목간의 정의로, ‘문자를 쓰기 위해 가공한 나무 조각에 문자가 서사된 것’을 기본으로 하여, 몇 가지단서 조항을 부가할 것을 제안한다.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된 것을 대상으로 하며, 날인이나 인쇄를 목적으로 한 것이나 문자 서사 이외의 목적이 분명한 목제품에 문자가 부기된 경우는 제외한다. 최대한 가능성을살리는 방향성을 취하여, 목적을 명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나 문자의 판독이 어렵더라도 서사의 흔적이 확인된다면 일단 목간으로 간주하되, 문자가 아니라 그림·도형 등만 그려졌음이 명확한 경우는 제외한다. 일반적 문자가 아닌 符籙이나 署名·手決 등도 광의의 문자로 간주한다. 이 정의에 따라 재집계한 결과, 백제 목간은 삭설 141점을 포함하여 총 254점이며 신라 목간은 현존하지 않거나 행방을 알 수 없는 4점을 포함하여 410점이다. 망실된 4점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백제·신라 목간은 총 660점이 된다. 한편 현재 하나의 목간에 여러 호칭이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목간의 일련번호를 확정하고호칭 표기의 典範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이에 나름의 원칙에 따른 제안 호칭을 만들었다. 제안 호칭과 집계내용을 담은 파일을 한국목간학회 홈페이지에 업로드하여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향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 KCI등재

        경산 소월리 목간의 성격에 대한 기초적 검토 - 신라 촌락문서와의 비교 및 형태적 특징을 중심으로 -

        HASHIMOTO Shigeru 한국목간학회 2022 목간과 문자 Vol.- No.29

        이 글은 경산 소월리에서 출토된 목간의 성격에 대해 기초적인 검토를 시도한 것이다. 검토하는 전제로 목간의 연대를 6세기로 단정하기 어려우니 6~7세기경 신라의 것이라고만 봤다. 그리고 목간은 이차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같은 유구에서 출토된 인면장식옹을 비롯한 유물들과는 별도로 검토되어야 하는 것을 지적했다. 이 글은 목간의 내용과 형태에 주로 주목하여 검토하였다. 먼저 목간의 기재 내용을 정리하고 신라촌락문서와 비교해 봤다. 목간에는 ‘지명+토지 종류+토지 면적’이 기록되어 있다. 한 촌 전체의 토지에 대해 기록한 촌락문서와 비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인데 토지 종류에 麻田이 없고 또 토지 면적에서 束 단위가 없는 등 정확도가 낮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목간에 기록된 토지 면적은 합계해도 촌락문서 한 촌의 15~26%에 불과하다. 촌락문서를 통해서 목간의 토지 범위를 계산해 보면 1.3~2.2㎞ 정도였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면적이나 범위는 새로 개간했다고 추정되는 B촌 薩下知村의 掘加利何木杖谷地와 비슷한 규모이니 목간에 기재된 토지가 새로 개간된 지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에 목간이 장대한 막대기형인 것에는 어떠한 시각기능이 있었다고 추정하여 일본에서 출토된 막대기형 목간을 참조하였다. 일본의 막대기형 목간에도 토지와 관련된 고지를 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팡이가 경계 표지나 토지 점유 표지의 영적·주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소월리 목간이 장대한 막대기형인 것도 그러한 영적·주적인 힘과 관련되었다고 생각되며 한국에서 토지 경계에 나무나 돌의 기둥을 세우는 사례로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확인되는 장생·장생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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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 城山山城 출토 新羅木簡 연구의 흐름과 전망

        이경섭(Lee, Kyoung-sup) 한국목간학회 2013 목간과 문자 Vol.10 No.-

        성산산성 출토 목간은 한국 목간 연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목간이라는 출토문자자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목간 연구의 방법론에서부터 성산산성 목간이 지닌 역사상의 복원에 이르기까지 목간 연구를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성산산성목간에 대한 연구는 목간의 연대와 용도, 製作地와 村의 성격 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되어 왔다. 이를 통하여 목간에 내재된 역사상이 어느 정도 복원될 수 있었지만, 정작 짐꼬리표[荷札]목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취의 문제가 심도있게 다루어지지 못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나아가 수취가 이루어지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시 촌락의 내부 구조에 대한 문제도 만족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고 생각된다. 한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목간의 폐기처였던 성산산성이 신라의 가야 복속과 지배에서 차지했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문제도 보다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The wooden tablets excavated in the Sungsan Mountain Fortress hold an important position in the research on Korean wooden tablets. Not only did they stimulate new interest in excavated materials in letters in the form of wooden tablet, but they also took a leading role in wooden tablets research from the methodologies to the restoration of their historical image. The previous studies on the wooden tablets excavated in the Sungsan Mountain Fortress addressed the date and purposes of the wooden tablets and the nature of their manufacture site and village. The research findings contributed to the restoration of the historical image inherent in them to some degree, but they failed to deal with the issue of acquisition, the core of the wooden tablets for the name list of supplies, in-depth. Furthermore, the researches on the internal structure of villages, where the acquisition took place, those days did not reach a satisfying level. It is also needed to elucidate more actively the status and roles of the Sungsan Mountain Fortress where wooden tablets were disposed of in Silla"s subjugation and rule of G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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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代日本의 荷札

        馬場基 한국목간학회 2008 목간과 문자 Vol.2 No.-

        본고는 하찰목간을 통해 알 수 있는 일본 고대의 物流 상황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축으로 소개·검토하여, 한국에서도 다수 출토되고 있는 하찰목간의 분석방법과 그 성격, 이용방법에 관한 연구를 한일 양국에서 공유하고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선 하찰목간을 통해 在地社會에서의 물류 상황를 검토하였다. 安芸國分寺 출토 하찰목간에서 國分寺의 경영 실태 등을 大宰府 출토 목간에서 大宰府 주변 물자의 움직임과 하찰목간의 양상 등을 밝혔다. 이것은 하찰목간을 樹種과 가공방법 그리고 書風을 아울러 검토한 결과로 도출된 물류의 구체적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도성출토 하찰을 검토하였다. 하찰의 작성주체를 둘러싼 논의와 하찰의 기능론 등, 도성출토 하찰의 선행연구를 정리함으로서 몇 가지 사견을 제시하였다. 첫째, 하찰목간 중에서도 특히 강한 지역적 특색을 가진 ?岐國 하찰목간이 天平연간에 그 양상이 크게 전환되는 것을 지적하였고, 이러한 양상이 재지 사회와 그 지배방법의 변화와 대응할 기능성을 지적하였다. 둘째, 同文荷札(묵서 내용이 동일한 하찰이 複數 발견된 예)의 분석에서 하찰목간의 제작상황 및 荷物에 대한 장착상황을 복원하여, 목간이 작성된 장소와 기능에 대해 검토하였다. 동문하찰은 어느 한쪽을 하물 속에 봉입하여, 바깥의 하찰이 떨어져 없어지거나 바꿔 달릴 우려를 없애려고 사용하였다고 생각된다. 셋째, 부찰목간과 하찰목간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서 하찰목간이 부착되어 도성까지 운반되어 온 물품에 새로운 부찰이 제작되어 장착된 경우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 부찰들이 聖武天皇·光明皇后 夫妻의 신변에서 이용되었던 것도 확인하였다. 넷째, 하찰에서 복원된 일본고대의 소금 생산·수탈·유통 등 여러 가지 모습들을 검토하였다. 문헌사료 등에서 알 수 있는 고대 소금의 상황, 유적에서 알 수 있는 소금 생산의 상황, 하찰목간에서 알 수 있는 소금의 소비기한과 하찰목간의 형태와 장착방법, 또한 목간출토 유적의 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若狹國에서는 보존용의 固形?(덩어리 소금), 周防國에서는 소 비용 散狀?(가루 소금)이 납입되었고, 이러한 소금들은 생산방법을 포함해 국가적인 규제 아래 대량생산되었다는 것, 또 이렇게 공납된 소금 이외에 제염 토기에 채워져 도성주변에서 유통하는 소금도 존재하였던 것 등을 규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검토를 근거로 하여 하찰목간의 기능·성격과 물자의 공납·운송시에 수행했던 역할을 분석하였다. 調荷札은 「帳簿의 分身」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장부라는 데이터와 실제 물품 내용을 결부시키고 整合하게 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었음을 규명하였다. 그리고 贄하찰에 대한 분석에서는 「進上狀」이라 불리는 문서로 다루어지는 목간과 대단히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물자를 수송할 때의 구두 연락과 물자에 대한 부찰의 장착이라는 원초적인 모습이 율령제적으로 전개되었음을 지적하였다.

      • KCI등재

        고대 동아시아 서예자료와 월성 해자 목간

        정현숙 한국목간학회 2018 목간과 문자 Vol.0 No.20

        This paper is to explore the calligraphic characteristic of the Wolseong Moat wooden tablets of Silla, to find out the calligraphic relationship with two village documents of the United Silla, and to search for the calligraphic influence to the wooden tablets of Aska, Japan. First, calligraphy of the document wooden tablets among all the Wolseong Moat wooden tablets shows round turning brush and square turning brush, fluidness and strongness, and change and restraint. Especially, by the end of the 6th century the Northern Wei style showing the changeable process from the ancient Silla style to the Chinese style clearly appears on the tag wooden tablets. The Northern Wei style of Wolseong Moat wooden tablets is more fluent than that of Iseongsanseong Fortress wooden tablets of the early 7th century. It tells us that the writing of capital officials is superior to that of local officials. Next, the regular and running scripts on the two village documents of the United Silla from the late 7th to the early 8th century are more advanced than those of Wolseong Moat wooden tablets of Silla. It reveals the calligraphic change of Silla for more than one hundred years and means that calligraphy culture was transmitted from the Silla to the United Silla. Lastly, we can confirm that the calligraphy of wooden tablets of Aska, Japan, in the 7th century was influenced by that of Baekje and Silla. Especially, the Northern Wei style on Hujiwarakyo wooden tablets in the early 8th century seems to be the influence of Silla. Ancient Japan produced numerous wooden tablets compared to ancient Korea. It means that the administrational documents using wooden tablets were actively used. Nonetheless, the writing of wooden tablets of Aska in the late 7th century does not reach that of Wolseong Moat wooden tablets of Silla in change and skill. Wolseong Moat wooden tablets showing the excellent writing by capital officials are outstanding calligraphic materials holding a dominant position in the history of East Asian calligraphy. 본고는 신라 월성 해자 목간 글씨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것과 두 종의 통일신라 촌락문서 글씨와의 연관성을 알아보고, 일본 아스카 목간 글씨와의 비교를 통해 그 영향관계를 고찰함으로써 월성 해자 목간 서예가 동아시아 서예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살피기 위한 것이다. 먼저 월성 해자 목간 가운데 문서 목간 글씨는 원전과 방절, 유려함과 힘참, 변화미와 절제미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6세기 말경 하찰 목간에 북위풍이 나타나 신라의 서풍이 고풍에서 중국풍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그 북위풍은 7세 초 이성산성 목간의 북위풍보다 더 능숙하여 왕경 관리의 글씨가 지방 관리의 글씨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다음으로 7세기 말, 8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의 두 촌락문서 해서와 행서의 노련함과 출중함은 월성 해자 목간 글씨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이는 100년 신라 서예의 진전을 보여 주는 것으로, 서예가 신라에서 통일신라로 계승되었음을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7세기 일본 아스카 목간은 문장의 양식이나 글씨에서 백제, 신라를 계승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8세기 초의 후지와라경 목간에는 북위풍이 쓰여, 이는 100여 년 전 신라에서 성행한 북위풍이 전승되었음을 말해 준다. 고대 일본은 고대 한국보다 출토 목간의 수가 월등히 많아 목간을 통한 문서 행정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세기 후반 아스카 목간의 글씨는 6세기 후반 월성 해자 목간 글씨의 변화무쌍함과 능수능란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신라 왕경 관리 글씨의 출중함을 그대로 드러낸 월성 해자 목간은 동아시아 서예사에서 우위를 점하는 서예 자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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