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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冊板의 현황과 특징

        권기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7 규장각 Vol.50 No.-

        본고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판의 현황과 특징을 더욱 상세히 파악하기 위해, 규장각 서고에 있는 책판 실물에 대한 조사와 아울러, 18~19세기 책판 목록들과 규장각 소장 책판을 활용한 인출본에 대한 분석 등을 병행하였다. 책판의 실물 조사 결과 간행기관(內閣, 春坊, 芸閣, 嶺營, 寧邊府 등) 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책판의 외형상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일부 刊記의 미확인으로 부족했던 간행 정보에 대한 보완이 가능했다. 책판 목록과의 대조를 통해 규장각 소장 책판의 간행처들이 동일 서적의 책판들을 장기간에 걸쳐 보관해 왔음을 알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범위의 책판 관리 체계를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인출본에 대한 분석은 규장각 소장 도서에 국한하였는데, 인출본에서 확인되는 印記와 內賜記에 대한 분석을 병행하였다. 그 결과 중앙 관서에서 간행한 책판의 인출본은 주로 중앙정부에서 수집되어 활용된 도서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지방 책판의 인출본은 개인 소장본이 많았지만, 중앙 관서의 수요를 위해서 활용되는 비중이 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규장각 소장 책판은 여러 기준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19세기 순조~고종대와 18세기 영조대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대체로 경전, 성리서, 역사서, 학습서 등 중앙정부와 왕실의 講學을 위한 책들이고, 후자는 국왕의 정치적 의지나 교훈을 담은 御製書라는 점에서 내용상으로 구별된다. 규장각 소장 책판의 간행처와 시기는 매우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지만, 중앙과 外方 사이의 통합적인 체계 속에서 책판의 간행과 인출, 보급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고 그 구체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 KCI등재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 목록․해제 정리사업의 경과(1) - 2018년도 사업결과를 중심으로

        구슬아,우나영,김은슬,서진원,조성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9 규장각 Vol.54 No.-

        ‘규장각 소장 자료 목록․해제 정리사업’은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의 전수조사와 개별 상세서지조사카드 작성을 통해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수정판, 1994) 및 『규장각도서중국본종합목록』(1982)의 정보 오류, 중복․合帙․누락 사항 등을 전면 수정하고 가칭 『규장각 소장 經部 자료 종합목록』을 발간하는 데 1차 목표를 둔다. 동시에 수정을 긴급히 요하는 기해제도서에 대한 수정과 우선해제대상서에 대한 해제 작성을 통해 규장각 소장 경부 자료의 가치를 제고하고 이용과 관리 양측면에 정확성․전문성을 기하는 데 2차 목표를 둔다. 이 논문에서는 목록 오류 수정의 기준 등 주요 사업 방법을 소개하고 2018년도 사업대상인 詩類․春秋類․禮類․樂類․孝經類․四書類 도서 약 1,200여 건에 대한 상세서지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오류 수정의 주요 성과를 제시하였다. 조사 결과 서명․편저자․판사항․발행사항․동판본 및 사부분류 등 주요 항목에서 未詳의 정보를 새롭게 밝혀내거나 정보 오류를 수정하였다. 나아가 규장각 소장 경부 자료의 가치를 발굴하기 위한 심화조사를 새롭게 수행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성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규장각 자료에 국가나 官署 주도의 경서 향유 양상을 드러내는 정보가 많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자료에 기재된 口訣, 諺解 등의 항목을 ‘비고’란에 기술하고 관련 내용을 목록화 하는 한편, 經筵에서 교재로 활용되었음을 증명하는 標識는 심화 조사하여 내용 서지를 대폭 보완하였다. 둘째, 형태서지 및 내용서지에 대한 기술이 미비한 중국본 경부 자료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기술규칙을 수립하고 추후 목록집에 중복 수록을 방지할 수 있는 조사방법을 구체화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古刊本, 희귀본 擧業書 등이 규장각에 다수 소장되어 있음을 새롭게 밝히고, 한국본 경부 자료의 底本이 된 중국본 경부 자료의 구체적 활용 양상을 실증하였다. 이와 같은 심화조사 및 목록화를 통해 이용자들을 위한 정확한 서지 정보 제공, 규장각 소장 자료의 효율적 보존 관리 및 활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 KCI등재

        1915년 조선총독부의 고려대장경 인출 사업

        양혜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3 규장각 Vol.62 No.-

        본고에서는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인출한 고려대장경 관련 자료를 두 가지 범주로 분류하여 그간 불분명하던 자료들의 성격과 특징을 다음과 같이 규명하였다. 자료의 첫 번째 분류는 규장각에 소장된 3종 자료로 ‘1915년 조선총독부 인출 고려대장경 관련 자료군’인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海士일10, 한은40) - 『大藏經綴本目錄』(奎26757) - 규장각 소장 고려대장경 인경본(奎15036)’이다. 두 번째는 ‘1915년 조선총독부 인출 고려대장경 3부’로, 규장각 소장 고려대장경과 그 동일 판본인 일본 東京 宮内庁 書陵部 소장본 및 일본 京都 泉涌寺 소장본이다.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은 1915년 고려대장경의 인쇄 경위와 인쇄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이에 의하면 당시 일본 천황가에 바치기 위해 조선 총독이던 寺内正毅가 해인사 대장경을 절본 1부, 철본 2부로 총 3부 인출하였다. 현재 규장각 소장 고려대장경은 그 중 ‘철본’ 대장경으로, 철본이란 선장본을 뜻한다. 『大藏經綴本目錄』은 규장각 소장 철본 고려대장경의 經名, 卷數, 張數, 冊次 등을 정리한 것으로, 그 내용은 규장각 소장 고려대장경의 현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여기 수록된 대장경의 경전 종수와 권수를 헤아리면 1,511종 6,805권이 되는데, 이는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 수록 小田幹治朗의 「大藏經印刷終了報告」에서 전체 경전이 1,511종 6,805권이라 언급한 것과 일치한다. 즉, 『大藏經綴本目錄』의 정리 결과를 근거로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이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규장각 소장 고려대장경은 위 두 자료의 기록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으며,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에서 서술한 조선 전통의 대장경 제작 기술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국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이 세 자료는 서로가 서로를 설명해 주는 자료인 셈이다. 한편, 『大藏經綴本目錄』에서 고려대장경의 경전 종수와 권수를 각각 1,511종 6,805권으로 정리한 것은 현재 학계에서 통용되는 1,514종, 6,808권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大藏經綴本目錄』에서 「補遺目錄」, 『金剛頂瑜伽念珠經』, 『蓮華眼陀羅尼經』의 3종 3권을 별건으로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임을 밝혔다.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에서 언급한 1915년 조선총독부 인출 고려대장경 절본 1부, 철본 2부는 그 소장처가 불분명하였는데, 실물 조사를 통해 각각 일본 교토 泉涌寺, 서울대학교 규장각, 일본 도쿄 궁내청 書陵部 소장 고려대장경을 가리킨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또한 書陵部 소장 대장경 사이에서 나온 카드를 통해, 『高麗板大藏經印刷顚末』에서 말하는 갑본이 泉涌寺 대장경, 을본이 규장각 대장경, 병본이 書陵部 대장경임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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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 소장 집부(集部) 도서에 대한 조사와 그 결과 -1 -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1994)의 재정비를 중심으로 -

        오세현,김수진,김하라,이경근,유정열,김대중,최천식,박민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규장각 Vol.47 No.-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1994년에 발간한 『규장각도서한국본종합목록』이 소장 자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학계의 지적을 받아온 지 오래되었다. 2013년부터 시작된 규장각 소장 귀중본도서 조사사업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목록의 재정비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목록집의 재정비 외에도 귀중본사업은 1980년대 이후 중단된 귀중본 도서의 선정과 관리, 결본목록에 의거한 규장각 자료의 체계적 확충, ‘선본(善本) 문집 총서’(가칭)의 발간, ‘규장각 장서인(藏書印) 자료집’(가칭)의 발간을 주된 사업 목표로 한다. 본 논문이 지향하는 목록의 재정비에 대한 큰 얼개는 첫째 서명(書名)과 저자(著者)의 오류를 수정하거나 미상을 밝히는 것, 둘째 간사년(刊寫年) 추정, 셋째 분류체계의 재조정이다. 서명과 저자명은 단순 오류를 비롯해 주변 문헌들과의 연계를 통해 저자명 미상을 밝힐 수 있는 사례들인데, 특히 원전 자료에 대한 전수조사와 귀중본으로 분류된 도서에 대한 심층조사, 그리고 귀중본 해제 원고라는 여러 결과물을 토대로 가능했다. 간사년을 추정하는 작업은 서발문 정보에 대한 누락을 바로잡고, 이를 토대로 문집의 간사년을 추정하는 것으로서 문집의 성격을 밝혀줄 수 있는 매우 유의미할 뿐만 아니라 동일본과 이본의 구분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분류체계의 재조정은 특히 학문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경우 문집이 언제 간행된 것이냐에 따라 수록 내용이 다르고, 문집의 성격도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동일본과 이본의 구분, 나아가 중국본(中國本)의 재편집과 누락 문헌 등록을 통해 더욱 정확한 규장각의 소장 자료에 대한 정보를 구축하는 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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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경상우병영의 등록을 통해 본 지방관의 등록 작성과 관리

        김완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1 규장각 Vol.59 No.-

        이 글은 경상우병영의 사례를 통해 등록의 작성 방식을 검토한 연구이다. 19세기 경상우병영의 업무지침서인 『營總』에 수록된 등록의 작성 지침을 바탕으로 같은 시기인 19세기 경상우병영에서 작성한 등록인 『慶尙右兵營啓錄』 및 『慶尙右兵營關牒』을 비교 검토하였다. 『營總』의 各項定式에는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국왕에게 올린 狀啓, 外方啓本을 등서하는 지침인 ‘備局件啓錄謄式’과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비변사 또는 의정부와 주고받은 關文, 牒呈을 등서하는 지침인 ‘備局關牒謄式’이 수록되어 있다. 이와 함께 『營總』에서 문서를 등서하는 세세한 지침들을 검토하여 『경상우병영계록』과 『경상우병영관첩』이 대체로 『영총』의 등서 지침에 맞추어 작성하였다는 점을 밝혔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 중인 『경상우병영계록』과 『경상우병영관첩』은 경상우병영에서 작성하여 비변사로 上納한 등록들이다. 즉 등록을 작성한 관서에서 관리하지 않고 상급 관서에 보낸 등록에 해당한다. 경상우병영은 국왕에게 올린 문서들은 3건을 등서하여 보관하였지만, 비변사 또는 의정부와 주고받은 문서들은 별도로 등서하여 보관하지 않고 다른 문서들과 함께 등서하여 관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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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빈궁일기』와 궁궐 여성 처소의 일상

        정병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7 규장각 Vol.50 No.-

        『혜빈궁일기』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한문한글필사본 자료이다. 한문으로 된 부분도 있고 한글로 된 부분도 있는 필사본이다. 혜빈궁은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또 다른 이름으로, 사람에게 붙은 이름인 동시에 궁궐 처소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혜빈궁일기』는 혜빈궁 처소의 일지인 셈이다. 이는 궁궐 여성 지존 처소의 일지로는 유일한 것이다. 『혜빈궁일기』는 혜경궁 생애 전체에 걸쳐 남아 있지 않고, 1764년과 1765년의 이 년 치 두 권만 남아 있다. 불과 두 해의 기록에 불과하지만 유사한 다른 자료가 없다는 점에서, 궁중여성사, 궁중풍속사 등의 연구에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 자료라고 말할 수 있다. 『혜빈궁일기』는 혜빈궁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있는데, 첫 번째는 문안 인사와 제사 등 궁중 의식이고, 두 번째는 의식(衣食)과 관련된 기본 생활 정보이며, 세 번째는 내관, 궁녀, 여종들에 대한 관리이다. 구체적으로는 궁궐에서 간장이나 김치를 담는 일, 옷감을 나누고 염색을 하는 것, 단오, 유두, 중양절 등에 진상하고 하사한 물건 등을 볼 수 있고, 또 별감과 궁녀 및 여종들이 어떻게 근무했고 어떻게 살았는지 다른 기록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내용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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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대학출판부 설립사 재론: 서울대학교출판부를 중심으로

        정병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9 한국문화 Vol.0 No.88

        Opinions were divided on the first university press of Korea in previous studies. It was both a matter of data, but also a matter of how to define the the university press. This article studied the first university press in Korea by the newly introduced material. Previously, Boseonggwan which was run by the Boseong Special School founded in 1906 was considered as the first university press, or Yeonhui Special School Press which published Choi Hyun-bae's Korean Grammar in 1929 was also considered. However, they were not university press and were inactive. Next came Ewha Womans University Press, which was founded in 1949. But this article first argues that Seoul National University Press founded in 1947 was the first University Press in Korea. SNUP published its first book, the Korean translation of Atomic Energy in the Coming Era by David Dietz in 1948. In the preface of the book, the president Chunho Lee stated that the University Press was launched in 1947. Seoul National University also ran a press facility at its newspaper division, which can also be considered part of the university press. It also published the Korean translation of a part of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by Schumpeter in 1948. Thus, SNUP could be considered the first university pres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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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正祖의 奎章閣臣 書齋肖像 요구 : 정조대 서재초상화의 새로운 양상

        이혜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0 규장각 Vol.56 No.-

        정조대 규장각 제학을 역임한 吳載純(1727~1792)의 아들 吳煕常의 문집 『老洲集』에는 집안의 내력을 밝힌 「家乘逸事」에 다음의 글이 있다. “정조께서 일찍이 內閣[규장각]에 명하여 公(吳載純)의 眞像을 그려 올리라 하셨다. 하루는 또 畵工을 불러 閣臣들이 집에서 기거하는 그림[家居圖]을 그리도록 명하고 畵題를 써서 내리며 이르기를 ‘吳提學이 趺坐하고 習靜하는 모습, 金提學이 손님을 마주하고 불주를 휘둘러 먼지를 터는 모습, 金直學이 술에 취해 책상에 기대어 잠든 모습’이라 하고는, 화공을 시켜 그 집에 가서 작은 초상을 그리고 또한 堂과 들창, 책상, 벼루의 위치를 모두 그려 올리라 하시었다. 김제학은 相公 金鍾秀(1728-1799)이고, 김직학은 相公 金熹(1729-1800)이다.” 이 기록은 강관식교수가 임매의 서재초상과 함께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도상’의 등장으로 소개한 바 있다. 이에 본 논문은 정조대 서재초상화에서 등장한 새로운 양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추적하였다. 새로운 도상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정조의 회화관, 규장각의 화원체제와 정조와 閣臣과의 관계가 작용되었다고 보았고, 이에 텍스트는 3부분의 문구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첫 번째 문구는 <가거도>의 제작주체와 대상에 관한 내용이고, 두 번째 문구는 제작방식과 화제의 내용에 관한 것이며, 세 번째 문구는 작품의 소재와 성격에 관한 것이다. <가거도> 화제는 정조가 생각한 근신들의 성정과 행적을 바탕으로 하는 응축된 이미지였으며, 이를 한 컷의 장면으로 연출하여 시각화한 이미지였다. 사랑하는 近臣들을 이상적인 서재의 표상인 明窓淨几에서 고사적 품격의 이미지로 격상하여 재현하려했던 정조의 시도는 김종수의 화제에서 볼 수 있듯 그 ‘이미지다운’ 실질적인 협력에 대한 암묵적 요구를 의미한다. 오희상의 「가승일사」에 기록된 각신 3인의 서재초상은 이전의 조선 초상화에서 강조하던 전형성에서 벗어나 서재 배경의 속화, 각화, 문방도가 고사적 풍모와 결합한 참신한 방식의 재현이었으며 동시에 18세기 서재 이미지에 일정한 영향을 주는 창작방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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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 소장 집부(集部) 도서에 대한 조사와 그 결과(2) - 장서인(藏書印) 조사를 중심으로 -

        김수진,김하라,오세현,유정열,유종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6 규장각 Vol.49 No.-

        본고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수행중인 ‘규장각 소장 집부(集部) 도서 조사 사업’의 연구결과 가운데 ‘장서인(藏書印) 항목의 조사’에 대한 내용을 발전적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집부 사업의 중심 목표는 규장각에 소장된 약 6,000여종의 문집 자료를 전수 조사해서 21세기형 목록집을 새롭게 발간하는 데 있다. 소장 자료의 체계적 정리, 즉 목록의 지속적 업데이트는 규장각이 완수해야 할 사회적 책무 가운데 가장 핵심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목록 사업은 막대한 양의 원전 자료에 대한 정밀한 실사를 요구하므로, 일개 연구자가 도모할 수 있는 학술 사업이 아닐뿐더러 대규모의 인력이 동원돼 속전속결로 완결하는 일회성 사업도 될 수 없다. 중장기적 시일이 소요되는 목록 사업의 이러한 제약은, 조사 대상 자료의 특성에 맞춘 연계 사업을 발굴해 병행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집부 사업은 2013년 출범부터 집부 목록 사업의 연계 사업으로 『규장각 도서 장서인 자료집』(가칭)과 『규장각 소장 선본문집총서』(가칭)의 발간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다. 집부 목록 사업과 장서인 사업의 연계는, 규장각 소장 자료 중 한국본 집부 고도서의 압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특성을 감안한 것이자, 장서인 자료집이 한국학 연구자에게 필요한 대표적 공구서(工具書)라는 점이 고려된 것이다. 본고의 소개를 통해 집부 사업에서 장서인 조사가 갖는 중요성이 분명히 드러나기를 기대하며, 나아가 집부 사업의 결과로 장서인 자료집이 발간됨으로써 한국학의 견실한 기초가 수립되기를 희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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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릉 봉안 서책과 규장각의 역할

        조계영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0 규장각 Vol.56 No.-

        조선 후기의 왕릉에는 부장품의 하나로 서책을 봉안한 전례가 계승되었다. 특히 원릉에 봉안한 서책은 정조가 장황과 발인반차의 御製채여까지 결정했다. 국장도감과 산릉도감은 왕릉에 서책을 봉안하기 위해 필요한 궤와 石函을 제작했다. 본 논문은 건릉에 서책을 봉안하는 과정에서 규장각이 담당한 역할을 규명했다. 1776년에 정조는 어제의 편찬과 봉안을 주관하는 규장각을 건립했다. 정조의 승하 후 규장각은 건릉에 봉안할 서책을 마련하고 灰函을 제작했다. 건릉 이전의 봉안 서책은 국장도감에서 발인할 때 채여에 싣고 산릉으로 옮겼는데, 건릉에서는 규장각의 검서관이 架子에 싣고 발인 전에 능소로 운반했다. 건릉에는 정조가 생전에 정한 『三經四書大全』을 비롯해 『弘齋全書』와 『四部手圈』을 봉안했다. 19세기의 왕릉에는 건릉이 전례가 되어 규장각이 봉안할 어제를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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