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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seignement de la Gestion en France et Programmes de la Formation a la Gestion de L'universite de Paris Ix-Dauphine

        Bark,Woo Young 啓明大學校 産業經營硏究所 1983 經營經濟 Vol.16 No.1

        I. 佛蘭西 經營學의 成立과 그 古典的 意義 불란서 經營學의 시대적 變化와 그 과정 속에서 經營學의 지위와 意義를 알아본다면 독일에서는“불란서 經營學은 빈곤하고 未發達된 상태에 있고 精神的, 科學的, 統一的인 學派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近來에 독일학자들은 불란서에는 經營學을 뜻하는 말도 없었고 경영학이란 H. Fayol에 依한 管理學說이 代表할 뿐이고 美國의 經營學이 실은 經營管理學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불란서 經營學도 決코 經營管理學에 지나지 않는다고 흔히들 말하고 있다. 또한 모든 學者들은 經營學이란 말할 必要도 없이 그것은 美國經營學을 뜻하고 또한 독일 經營學이라고 主張하고 있다. 그러나 經營學의 歷史에 있어서 佛蘭西는 선구적 役割을 해왔다. J. Savary(1922∼1690)는 처음으로 “完全한 商人”(Le Parfait Negociant 1675年)을 써서 經營學 硏究의 선구자로서 등장했다. 당시 商業學의 전문서적이란 商業經營者가 자기체험 또는 실천적 知識과 見聞을 제자들에게 再敎育시킬 目的으로 남겼지만 商人學의 商品學인 商業經營學이란 存在치 않았던 것이다. 이것을 300年前에 集大成, 體系化한 것은 J. Sarary 의 商業經營學에서 成立된 것이다. J. Sarary(1622∼1690)의 활약은 루이 14세의 절대 王政期에 있어서 重商主義 政策의 發展期에 그는 統一的 佛蘭西 商法典을 초안 作成하여 1873年에 商業經營을 확립하고 1875年 “完全한 商人”을 저술하여 全 世界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특히 독일 經營 學의 體系확립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19C 後半에 와서 佛蘭西 資本主義의 확립과 生産의 비약적 發展을 이루었을 때 H. Fayol(1841-1925)의 管理學은 이러한 基本的 환경 속에서 成立되었으며,1861년에는 "生産과 一般管理論"을 저술하여 組織은 支配的인 힘을 갖는 基本的 인식임을 主張했다. 즉 管理者의 직위가 높을수록 管理職能의 重要性을 必要로 하는 實證的 管理에서 組織의 基本活動을 豫測, 組織化, 命令, 調整, 統制로 分類하여 불란서 經營學이 管理學으로서의 체계를 確立하였다. 佛蘭西 經營學者 ST-SIMON(1760-1825), J. B. Say(1767-1832), Dunoyer(1780-1862)들은 企業의 管理와 企業의 經營을 지도하는 機能을 연구하였고 또 이들은 H. Fayol 經營學의 硏究的 先祖들이었다. 商業이든 工業이든 産業革命을 거쳐 규모도 커지고 從業員도 增加되었으므로 당연히 行動原則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것이 새로운 經營學을 成立시키게 한 것이다. 사용자와 피사용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他人에게 일을 시키는 것, 他人의 일을 計劃, 統制시키고 監督, 比判하는 것 그 自體가 管理인 것이다. 이러한 管理는 管理學을 탄생시켰던 것이었다. 이러한 管理學的 要素는 Savary의 商業學에도 있었지만 Fayol은 經營學의 中核을 이루는 管理學의 起原을 쓴 것이다. 즉 經營은 대규모화 되면 필연적으로 管理作用을 要求하게 되고 이것이 充分히 作用되지 않는 한 成長은 있을 수 없다는 主張이었다. Fayol 管理學의 重要性을 資本主義的經營의 成長에 따라 점점 認識化되며 Taylor의 科學的 管理法은 그 적용범위를 넓혔고 Fayol의 창시적 管理學 이 美國에 소개되며 美國에서 管理學으로서 개화해 갔던 것이다. 佛蘭西 經營學은 歷史的 轉換期에 있어서 선구자的 位置를 確保해 왔으며, 또 언제나 先進的, 急進的, 革新的 性格을 나타냈다. 즉 近世의 轉換期인 産業革命時에 있어서는 Savary의 "完全한 商人"에서 世界처음으로 商業學에서 商業經營學의 發展에 重大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近代의 轉換期인 産業革命時代에는 Fayol의 “産業과 一般管理”에 따라 世界에서 처음으로 經營學의 中心 內容인 管理學說의 원류가 되었고 現代의 轉換期인 産業經營 革命社會時代에는 Campion의 “私企業論”에 依해서 經營管理說과 經營·經營學과의 統一로서의 經營學의 동향을 과시하게 되었다. 이것은 불란서 經營學은 時代에 따라 時代가 형성하는 指導的 役割을 하였고 선구자적 地位를 정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美國의 Koontz는 “管理學의 先祖는 Taylor(1856-1915)가 아니고 Fayol 이다”라고 主張하였고 불란서의 Fayol은 “商業學과 一般管理論”이 Taylorism에 대한 열광적인 태도로 인하여 은폐되지 않았다면 오늘의 管理論이 더욱 發達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독일의 經營學者들이 불란서 經營學의 침체성과 後進性을 指摘하는 것은 편견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現代 佛蘭西 經營學의 과제가 Fayol의 管理學을 초월하여 經營學으로서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佛蘭西의 管理論의 經營學으로 具體化한 것은 戰爭後 佛蘭西 經濟의 發展, 經營의 대규모의 重要性이 본격적으로 分析하게 되었을 때이다. 그중 G.Campion(1947年)의 “私企業論”에 의해 佛蘭西 經營學이 침체성과 후진성의 누명을 벗게 되었으며 本來의 經營學的 位置를 높이 평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독일 經營學의 代表 E. Gutenberg. 美國 經營學의 代表로 보는 J. Dean의 그것들을 초월하였으며 實로 經營學의 동향을 最初로 나타낸 것이다. 經營學 硏究는 必然的으로 經營學의 本質論에서 유도되어야 한다 傅統的인 古典的 經營學과 革新的, 近代的 經營學의 方法論的 批判을 통해서 經營學의 本質을 이해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經營學의 本質을 다루게 되며 문제시 하게 된다. 經營學은 結論的으로 論理的 해결에 머무는것도 아니며 經營學의 歷史的 發展의 동향에서 고려되고 또한 그것은 近代經營의 構造分析的 고찰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된다. 불란서 經營學의 선구자들에 依한 商業 經營學의 確立과 企業理論의 經濟學化의 전환과 管理學으로서의 불란서 經營學의 成立은 經濟의 計劃化와 經營의 民主化를 中心으로 戰爭後 經濟發展과 관련하는 새로운 經營學 屍臺로 접어든다. G. Campion은 1956年 巴里大學에 經營硏究院을 設立하여 經營學敎授가 되었고 그는 Sarary와 Fayol의 전통적 立場에서 現代企業經營의 分析을 다루었고 새로운 경영학의 동향을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經營管理學과 經營經濟學의 영역을 초월하여 一般 經濟學의 世界的인 重要性을 고찰하였다. 또한 그는 1956年 파리대학의 經濟學部에서 獨立하여 불란서에서 처음으로 企業經營大學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企業經營大學의 창립은 經濟學에서 파생한 個別科學으로서 經營의 理論化와 學問으로서 經營의 체계화의 成熟, 發展, 意義를 가져온 것이다. 그 후 1962年 J. Aubert-Krier 敎授의 著書 “企業管理論”에 依해서 生産物을 中心으로 企業의 經濟學的 分析을 전개시켜 企業은 獨立的 存在가 아니며 “市場”이라는 환경 가운데 社會的으로 存在하며 企業活動의 본질 부문인 購買, 生産, 販賣의 相互存在關係에 生産物을 中心으로 分析함으로써 企業의 經濟學과 管理學의 統合을 主張했다. 1970年代에 들어서 불란서 경영학의 目標는 組織의 諸問題, 個人과 組織의 문제. System-意思決定 情報의 諸問題管理의 戰略展開의 諸問題들이 활발히 硏究되고 있으며 現在 巴里-Dauphine 經營大學의 “行政 및 政治的 意思決定硏究”에서 意思決定論을 활발히 硏究·展開하고 있다. 그 代表的 硏究者인 L. Sfez 敎授에 依해 활발히 전개하고 있으며 동시에 戰略論的 管理의 理論은 P. Tabatoni 敎授에 依해 硏究 强調되고 있는데 그의 共者 “管理 System 論 政第과 構造”에서 三重性格을 강조하여 管理組織의 삼중성 즉 協同, 規範, 自律的 目標을 主張했다. 불란서의 古典的 企業經營은 實族의 社會的 위신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主張할 수 있으나 이러한 견해는 불란서 企業의 全部를 代表할 수는 없으며 또 美國型 거대 企業에 비할 만한 大企業은 기대할 수 없지만 건실한 中小企業 經驗을 바탕으로 오늘의 佛蘭西 企業經營體制의 硏究課程에서 배울 수 있는 要素는 많은 것이다. 오늘날 世界的으로 불란서의 經營學 연구에 있어서 極少數의 部分的 硏究가 進行되고 있을 뿐 美國의 企業經營硏究에 비해 침체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 企業經營의 發展과 企業經營理論의 革新的인 再轉換은 불란서 經營理論에서 찾아야 할 줄로 生覺된다. Ⅱ. 佛蘭西 經營學의 硏究 方法 19C의 美國 經營學의 起原的, 理論的 展開는 美國의 풍부한 未開發 資源을 利用하는 大 工業化를 위한 含理的 要素가 經營學의 發達을 촉진 시켰다면 17세기 佛蘭西 經營學이 생기게 된 含理的, 科學的 要素는 商業化를 爲한 管理經營學的 理論 展開를 바탕으로 촉진된 것이다. 大學에서 經營學을 가르치는데 있어 오랫동안 의존해왔던 美國經營學을 벗어나, 구라파 特히 佛蘭西 經營學 敎育方向을 응용 發展시켜 앞으로 우리나라 經營學의 大學敎育 科目들을 必須로 이수해야 할 學生들에게 가르칠 폭 넓은 敎授要目을 도입 利用하여 經營理論의 發展을 爲한 수단으로 活用할뿐 아니라, 오늘날 복잡한 經營學敎育에 필요한 資科의 확보가 될줄 믿는다. Ⅲ. 佛蘭西 經營大學의 經營學 硏究目的 급속한 경영교육의 확대와 우리나라의 企業社會에 있어서 經營學 硏究者의 수요증대에 따른 經營學敎授와 硏究者의 절대적인 부족은 커다란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급속한 産業發展에 따라 經營管理人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巴里大學의 經營敎育 현황을 分析하여 우리나라의 當面한 大學 經營敎育에 대한 참고 硏究資科로 活用하게 될 目的으로 本 硏究는 國立 巴理大學 經營敎育을 分析한 것이다. 本 硏究에서 分析한 불란서 국립파리大學의 經營 學 敎授要目의 硏究內容은 다음과 같다. 1) 불란서 大學 經營學 敎育의 組織 2) 佛蘭西 大學 經營學 敎育의 大學科程 3) 佛蘭西 大學 經營學 敎育目標 및 發展에 對한 大學行政의 役割 Ⅳ. 佛蘭西大學의 經營學 敎育成長 科程과 그 役割 二次 大戰 以前에는 專門大學이나 高等商業專門大學에서 經營學敎育이 商業從事者들을 爲한 敎育機能 役割을 담당하여 왔으며 企業들의 管理經營問題는 商學科, 經濟科, 法學科와 類似한 學問으로서 專門大學 또는 高等商業專門大學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같은 編制속에서 佛蘭西 經營敎育은 40年代까지는 經營敎育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經營學의 講義는 專門私立大學에서 經營學敎科 科目을 習得하였으며 國公立大學에서는 이러한 機會를 갖을 必要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50年代에 접어들면서 經營學은 過去 商學科와 經濟學科에서 分離區別해야 한다는 要求와 國際的 企業환경의 變化에 적응한 現代的 大企業들이 當面할 問題들을 中心으로 한 經營敎育을 責任져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特히 1968年에 새로운 敎育法律이 制定되면서 지난 過去의 經營敎育編制를 바꾸어 經營大學으로 獨立되거나 또는 綜合大學에서는 經濟學와 商學科에서 分離하여 經營敎育機能을 발휘하게 되었다. 오늘의 佛蘭西 經營學敎育의 量的 質的成長過程은 私立大學 過程 즉 專門大學이 었으며,지금도 佛蘭西에서의 經營學 敎育機關은 國公立敎育 機關과 私立敎育機關으로 나눌 수 있겠다. 國公立敎育機關은 初級大學, 學部大學, 大學院 및 博士科程이 있으며 非公立敎育 機關의 다른 점은 企業體 附設과 經營 및 商業關係 硏究 機關에 依해 設立 運營되고 있다는 點이라 하겠다. Ⅴ. 佛蘭西 大學의 經營學 敎育要目 作成基準 說定 理念 1) 企業에서 필요로 하는 經營敎育을 大學에서 經營敎育의 目標로 삼아 장차 전문경영자를 養性하고 高立管理者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必要한 管理一般에 관한 광범위한 기초교육을 실시한다. 아울러 經營大學의 敎授要目과 學科設定은 企業의 目標에 따라 經營敎育을 立案한다. 2) 企業의 특징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문 敎育目標에 따라 智識을 습득케하는 敎育을 大學에서 실시한다. 이들이 高立 最高經營者로서 要求되는 經營管理 分析力, 판단력을 갖는데 主力을 둔 敎授要目을 設定하여 전문敎育을 실시한다. 즉 한정된 특정분야에서 보다 깊은 專門的 知識의 범위를 넓히는 現實的 必要에 依해 敎授要目이 設定되는 것이다. 3) 大學의 敎授要目은 經營學科에 지원하는 學生들 自體의 뚜렷한 目的에 依해 經營敎育의 目標가 부과된다. 즉 學生들의 수준과 經營敎育目的에 따라 교수진이 構成 및 經營敎育 方針이 달라진다. 또한 學生들의 질적수준과 意向에 따라 수준에 맞도록 하고 아울러 학생들의 특정 方向을 基準으로 科目과 敎授要目을 定한다. 4) 大學의 敎授要目의 設定과 經營敎育의 目標를 名 大學이 처해있는 現地의 地域 또는 環境의 特色에 따라 經營敎育科目이 設定된다. 5) 名 大學은 上記 열거한 要目作成基準의 目標設定 理念의 하나를 택하고 또 經營學科科程의 方向과 경영교육의 內容說立은 敎育行政을 責任지고 있는 大學에서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Ⅵ. 佛蘭西 經營學 敎育의 目標와 大學敎育政策의 多目的性 佛蘭西는 名 大學과 部市와 地方마다 事情이 다르고 社會的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經營學敎育目標를 이러한 特殊한 事情에 적합한 目標를 세워 經營學敎育方法이 展開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同時에 名 大學에서 共通的으로 認定해야 할 經營學 敎育目標의 한가지 重要한 點은 被敎育者로 하여금 大學所在의 企業 會社活動에 成功的으로 일을 할 수 있는 專門人을 養成함과 아울러 地方 社會人으로서 有用한 知識人이 되도록 基本目標를 세워 敎育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基本的 多目的 目標下에서 名 大學의 學部 過程은 一般的 또는 專門 經營人을 主로 養成하는 經營學科程을 마련하고 있으며, 碩士過程은 硏究要員 배출을 主目標로 하고 博士過程은 硏究롸 敎育要員을 대 保하는데 그 目標가 세워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經營學 內容을 講義하는 것은 그 科目과 敎養科目, 專功科目의 構成比는 名 分野別로 決定되어 있지만 名 大學마다 經營學 科目의 分野는 統一되어 있어서는 안되며 그것은 역시 名 地方과 都市 所在地의 特性에 따라 바람직한 經營學 講義 分野가 달리 決定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首都와 都市와 地方에 따라 大學所在別, 學年別, 專攻科目別로 經營學의 專攻分野를 달리 決定하게 되는 特殊한 方法으로서 名大學에 따라 經營學 課程 이수 條件과 必要한 총 學點數도 달리 편제되어 있다. Ⅶ. 佛蘭西大學의 經營學 敎育科目의 選定要領과 그 背景 名 大學에서 經營學 敎育이 學生主體에게만 限定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國家 및 企業社會의 次元에서 經營學 敎科 課程이 開發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名 大學에서 經營學 敎育科目의 選定 要領에는 國家 즉 文敎部와 企業體의 直接的 참여도 있지만 敎授 즉 大學自體가 選定하는 科目도 同時에 고려되어 三位一體의 協一的 敎育을 그 배경으로써 促進되어 經營學科目이 開設되어 있다. 즉 國家 經營發展企劃에 따라 必要한 經營科目을 選定 開發하고 또 企業社會의 人力 需給 現狀에 對應하기 위한 專攻性을 고려하여 敎育 課程이 要求되어 開設되는 것이다. 또한 經營學 敎科目 選定 決定에 있어서 名 大學의 自律的 行政 構限의 獨立性을 절대로 認定하면서 國家的 次元에서 고려함과 同時에 企業社會, 文化的환경에 적합한 經營課程으로 開發되어 있는 것이다. 經營學 分野別 開設科目은 文敎部에서 그중 一部를 選定하고 또 本格的인 專門經營人을 養成하기 위한 科目을 企業體에서 選定, 그 나머지는 學生들이 必要로 하는 科目을 敎授들이 選定해서 決定하게 된다. 佛蘭西 經營學 講義科目은 三重星의 特色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經營學 講義科目의 三重星의 理由는 國家的 연元에서 必要로 하는 主張과 企業에서 必要로 하는 現實的 機能分野의 科目에 置重하는 評價와 大學을 이수하는 成人敎育에 必要로한 知識 전달이 大學生 自身에게 基本科目 이수가 可能하게 하는 次元높은 敎育政策이 그 배경目的이 되는 것이다. 즉 經營專門人이 되기 前에 건전한 社會人을 배출하기 爲한 基本的으로 必要한 科目도 이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佛蘭西 經營大學 敎授要目은 經營學을 전공 分野別로 區別하고 名 學年別 基準으로 해서 學科別 또는 學士, 碩師, 博士 課程別로 교과과목이 수록되어 있으며 본 硏究論文에 수록된 佛蘭西 經營大學의 敎授要目은 담당 교수들이 年別, 科目別로 학생에게 주어지는 강의를 敎授要目으로 選定 정리 종합 편집한 것이다. Ⅷ. 結 論 佛蘭西 經營學의 敎授方法을 導入 革新的으로 發展시켜 우리나라의 大學에 적합한 敎授方法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앞으로의 必要한 經營敎育의 課題라고 하겠다. 아울러 이를 토대로 韓國의 經濟發展 및 産業社會에 부응하기 위한 具體的인 方向提示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本 論文이 敎授 여러분께 參考가 되어 우리나라 經營學 敎育의 확대와 經營學 敎育의 發展을 爲하여 도움이 된다면 다행으로 생각될 것이다. 本 硏究는 다음 敎授들과 전문인사들의 協力에 依한 것이므로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 Jean Claude Cuzzi 局長 佛蘭西 國立 經營敎育委員會 · Georges Berlioz 敎授 國立巴里經營大學校 · Brigitte Berliog-Houin 敎授 國立巴里經營大學校 · Paul Didier 敎授 명예 總長 國立巴里經營大學

      • 韓國纖維産業의 現況과 生産性向上

        李炳贊 啓明大學校産業經營硏究所 1986 啓明大學校ㆍ挑山學院大學國際學術세미나 Vol.1986 No.-

        問(1) 韓國 纖維産業의 生産性에 관한 지표(表 4)를 보면 從業員 1人當附加價値는 1974年에서 1981年에 걸쳐 일관해서 증가하고, 勞動分配率도 이 기간중 거의 일정한데, 從業員 1人當 純利益은 低下하고 특히 1980∼81年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答) 이것은 ①附加價置와 純利益의 槪念의 차이에서 오는데, 더욱 ②1979年은 政治不安定으로 各經濟指標가 흐트러 졌기 때문이다. 1981年 이후 이러한 지표는 安定的이다. 問(2) 日本 纖維産業의 構造改善政策은 效果的이었는가 어떤가, 약간 問題가 비록 있었다고 하더라도, 日本 纖維産業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또 日本 纖維産業의 將來性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라고 하는 質問이, 啓明大學側에서 挑山大側에 대하여 있었다. (答) 日本 纖維産業은 초반 工程인 紡績部門, 중반工程인 織布部門, 종반工程인 縫製加工·어패럴部門에 業態가 다르므로, 纖維産業 一般에 대해서 「構造改善」의 效果를 논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지 마는 織布業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織布業의「構造改善」은 당초 계획대로 실행되지 못하였다. 具體的으로 말하면 設備近代化는 발전되었지마는 企業數를 줄이고 企業을 集約化하는 計劃은 成功하였다고 할 수 없다. 그 結果 企業數가 줄지 않고, 設備 近代化가 慢性的構造不況에 빠졌다. 더욱 絹織物業界에서는 中國·韓國에서의 輸入問題를 안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 實情이다. 日本纖維産業의 將來方向으로서 이 産業의 「知識集約化」가 제창되고 있다. 즉 纖維産業 內部의 勞動集約部門은 될 수 있는 대로 發展途上國에 넘기고, 技術集約的인 附加價置가 높은 部門 -예컨대 어페럴 部門 등-의 比重을 높이려고 하는 構造改革이다. 그러나 日本 纖維産業에서 일하는 就業者도 많기 때문에 轉廢業을 포함하는 經營者나 勞動者의 産業部門간의 移動은 社會的摩擦도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 Tempo는 결코 빠를수도 없다고 본다. 問(3) 生産性 向上 대책으로서 다섯가지 假說이 있고 그 第2의「經營合理化에 의한 企業의 充實度가 높아지면 生産性은 向上한다」라고 하는 假說에 대해서는 實態調査에서 經營者의 評價가 낮았으나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答) 第2의 「經營合理化」가 生産性向上에 영향에 미치는 것은 否定할 수 없다. 實證分析에 있어서 第2의 假說에 대해서 相關關係가 낮았으나 實態調査의 限界性도 있다. 즉 ① 調査企業의 標本數가 적었는 점, ② 다섯가지 假說中에서 重要度가 고려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 ③ 回答者 回答內容의 正確度에 약간의 의문이 있는 점 등을 지적할 수가 있다. 問(4) 韓國 纖維産業의 離職率이 높은 것은 무엇때문인가, 資金管理·勞使關係에 問題는 없는가. 또 離職하면 어디로 이직하는가. (答) 纖維産業에서 他産業에 대한 勞動力 移動의 이유는, 韓國의 1970年代의 高度成長에 의하여 纖維産業 중의 有能한 人材가 他産業에 移動했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纖維産業의 技術畜積이 안되었다. 그러나 纖維産業의 1人當賃金은 上昇하였으나 生産性向上은 거기에 따라 가지 못하였다. 그 結果 收益性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日本은 終身雇用制를 彩用하고 있으나, 韓國은 好不況에 따라 勞動力의 移動이 심하다. 問(5) 生産性向上 대책으로서 다섯가지 假說을 듣고 있으나 그의 相互關聯은 어떠한가? 纖維産業의 全體의 發展策과 生産性向上의 다섯가지 方策을 綜合的으로 進行시켜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또 生産性향상을 위한 第5項目인 「政府次元에 의한 incentive制」라 함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答) 生産性向上에 유효한 다섯가지 要因은 각기 서로 관련되어 있으나 企業經營者에 대한 質問表에서는, 각기 독립적으로 生産性向上에 유효하다고 생각해서 질문하였다. 또 政府에 의한 生産性 incentive制라 함은, 生産性이 높은 企業에 대하여 政府는 金融面에서 지원하기도 하고 (制度金融에 있어서 金利面에서 優待한다든가, 工業團地에 우선적으로 들어가게 한다든가), 稅制面에서 優待하는 (技術革新에 적극적인 企業에 대해서 投資面으로 優待한다)制度를 말한다. 以上의 質疑應答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經濟政策으로서의 産業構造政策과 개개企業의 經營戰略(특히 生産性 向上을 위한 對應策)에 걸친 문제, 또 生産性向上을 위한 여러 方策, 相互關聯性에 대해서 토론을 행하였는데 時間的制約때문에 충분히 核心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報告者가 報告의 最後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纖維産業의 生産性向上에 대해서, 日本과 韓國의 實證的 比較 硏究가 앞으로 더욱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겠다. 또 纖維産業 이외의 각 産業에 대해서도 勞動生産性 등의 문제에 대하여 兩國을 比較硏究하는 것이 기대된다. 그리고 이 報告에 관해서는, 挑山學院大學의 庄谷邦幸·津田直則·黑田兼一·管井勇藏·植村省三의 여러분 및 啓明大學校의 金鏞淇氏로 부터 質疑가 있었다.

      • 中小企業協洞小組合의 連營實태와 展望

        朴命鎬 계명대학교産業經營硏究所 1989 韓日經濟의 諸問題 Vol.2 No.-

        中小企業이 當面하게 되는 諸問題는 主로 두가지 測面에서 起因되는데,그中 하나는 中小企業自體의 特性에서 誘發되는 것과 다른 하나는 中小企業을 둘러싸고 있는 諸般環境要因, 特히 大企業과의 關係나 政府의 中小企業에 관한 政策方向에서 비롯된다. 먼저 中小企業의 固有特性인 規模나資金의 零細性 때문에 高級技術 및 人力의 열세를 가져오거나, 또 市場에 서의 鏡爭力이 弱하려 經營上 여러 가지 隘路點이 露出되기도 한다. 또한 大多數의 中小企業은 大企業과의 下請關係에 놓여져 있어 經營上의 獨自性이나 彈力性도 결여되기 쉽고 나아가서 産業構造上의 問題點 등도 지니고 있다. 더욱이 過去 政府當局의 中小企業에 대한 보다 積極的이고 一實性있는 支援政策이 不在했던 點등도 그동안 中小企業의 經營上 심각한 問題누적에 一因이 된듯하다. 이렇게 볼 때 中小企業의 健全한 育成發展을 沮害하는 여러 가지 問題點의 解決을 위하여는 個別中小企業者自身의 努力은 물론이고, 大企業과 政府 모두의 役割이 同時에 要請된다고 보겠다. 多幸히 近來 中小企業 經營者들의 不斷한 努力과 大企業 및 政府當局의 積極的인 協調 및 支援에 힘입어 그동안 痼疾化되어온 우리나라 中小企業經營의 落後性과 産業構造의 취약성이 最近 크게 改善되고 있다. 一例로서 1987年 11月 中小企業協同組合中央會가 調査 發表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中小企業의 賣出規模는 86年末 現在 38조백9억원을 시현하여 지난80年末 11조백79억원에 비해 무려 3.4倍로 늘어났다. 또한 中小企業의 고용창출력도 크게 據大되어 지난 80年 中小企業從業員이 1백7만2천명 水準에서 86年末에는 1백54만3천명으로 늘어났음이 밝혀졌다. 한편 中小企業의 産業構造도 지난 5年間 賣出願面에서 볼 때 음식료품 및 섬유, 의복둥 輕工業分野의 比重이 상당히 낮아진 反面, 조립금속, 기계 및 化學, 石油동重化學部門의 비중이 크게 높아져 産業構造가 점차 高度化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지난 1986年度의 경우 제품판매시장구조변에서도 輸出飯賣比重이 29.7%, 內需飯賣가 70.3%로 나타나 輸出願賣比重이 前年對比 2.9%포인트나 增大되었다. 中小企業의 設備投資도 政府의 投資足進策 및 설비금융의 擁大에 힘입어 前年對比 31.7%가 늘어난 것 으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結果는 앞서 指續한대로 中小企業 經營者들의 經營合理化努力과 政府當局의 政策的 配慮에 힘입은바가 크며, 그 중에서도 特히 1979年부터 시작된 政府의 中小企業近代化 政策의 投害이 크게 作用한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本 硏究에서는 政府當局이 1979年度이래 추진해 온 中小企業 協同化事業의 主要한 主體로서의 中小企業協同小組合(以下 小組슴이라고 부른다)의 性格과 그 運營實態를 事例를 中心으로 分析하고, 앞으로의 健全한 小組合育成發展을 위한 政策方案을 간략히 提示하고자 한다. 本 硏究의 目的 達成을 위하여 第Ⅱ 章에서 그동안 推進되어온 中小企業協同化 事業의 內容과 小組合에 관한 全般的인 實態를 要約하였다. 第Ⅲ章은 事例硏究로서 韓國經濟新聞(1987年4月9 日~同年6月23 日)에 播載된 全國의 38個 小組合 및 여타 組合들을 對象으로, 그들의 主要事業과 成果 및 隘路要因 등을 綜合,分析하고, 이를 토대로 第Ⅳ章에서 앞으로의 건전한 小組合育成 方案을 提言하였다.

      • Research Park Project와 新産業 Complexes

        後藤邦夫 啓明大學校産業經營硏究所 1989 啓明大學校ㆍ挑山學院大學國際學術세미나 Vol.1989 No.-

        日本에 있어서도 最近理念이라고 생각되는 이 發表의 內容은, 韓國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고 하겠다. 특히 日本에 있어서의 第2次 大戰後 經濟發展狀況을 歷史的으로 검토하고, research Park의 理念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 과정을 해명한 것은 매우 印象的이었다. 특히 park라는 表現이, 工業地帶가 가지는 오염된 image를 전환시키고자하는 意圖에서 시작하여, 이제야 地域開發·都市政策·産業政策分野에 있어서 定着되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주목을 끈다. 그리고 具體的인 事例硏究로서 日本의 「關西學術硏究都市」project를 상세히 紹介하고, 이것이 research Park의 集積으로서 파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發表者는 이 Project에 실지로 관여하고 있으므로 그 報告에는 더욱 실감이 났다. 아무리 實質的이고 經濟的인 目前의 成長에 汲汲하더라도, 그 底邊에 항상 이와같은 遠大하고 高邁한 理念을 가지고 있어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發表者인 後藤邦夫敎授가 부득이 한 사정으로 참석못하고, 伊代田光彦敎授가 代讀하는 방법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眞意는 충분히 전달 되었다고 생각한다. 發表가 끝나고 전지한 討議가 있었다. 質疑應答 內容要旨를 다음에 기록하기로 한다. 李炳贊敎授로 부터의 關西學術硏究都市를 推進하는데 있어서 政府의 役割이 무엇인가의 질문에 庄谷邦辛敎授의 答辯이 있었다. 本人의 硏究가 아니기 때문에 명확한 答辯은 할 수 없다. 日本에 있어서는 關西計畵에 앞서 筑波學術硏究都市 建設이 있었다. 그 당시 通産省硏究所, 遞信省硏究所, 農林省硏究所가 老朽되어 뭔가 새로이 建設하지 않으면 안되어서 筑波大學이 있는 곳에 科學團地를 設定하여 推進 했었다. 現在 關西計劃은 日本의 財政狀態가 그 당시 보다 어렵기 때문에 國家에서 全的으로 推進하는 것은 不可能하고 民間의 協力에 의해서 推進하고 있다. 國土廳과 民間이 共同으로 推進하기 때문에 意見이 一致되지 않는 傾向도 있다. 다음에 東邱織物 李泳凞社長으로 부터 産業狀況 變動의 時期區分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또한 高度成長期에 이미 여러가지 問題가 發生 했을 것이다. 그러면 最近에 이와 같은 問題가 提起된 理由는 무엇인가에 관한 質問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庄谷邦辛敎授의 答辯이 있었다. 日本의 社會變動은 학자에 따라서 歷史的으로 時期區分을 다르게 하고 있다. 後藤邦夫敎授는 工業發展에 초점을 맞추어서 時期區分을 행했다고 생각한다. 本人의 見解에 의하면 高度成長은 1966年부터 1973年까지로 본다. 高度成長기에 필연적인 問題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時期區分을 이렇게 한 것은, 社會問題로 表面化 되었다는 것이다. 公害問題로 田中首相이 日本列島改造論을 提示할 정도로 社會的으로 충분한 理由가 있었다. 18年동안 問題가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潛在的이었던 것이 社會的인 이유가 되어 顯在化된 것이 이 時期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 伊代田光彦敎授의 보충 답변이 있었다. 이 問題를 생각하는 데는 日本經濟의 變遷에 대해서 基本的인 背景을 考察해 볼 필요가 있다. 終戰直後에는 成長을 빨리 해서 國民生活을 豊富하게 해야 되겠다고 하는데 國民的인 合意가 이루어진 狀況이었다. 그래서 高度成長을 이룰 수 있었고 物質的인 生活은 높은 水準에 도달했으나 國民生活에 다음과 같은 問題點이 나타났다. (1) 高度成長으로 인한 公害 때문에 國民健康을 해치게 되었다. (2) 統計的으로 높은 成長을 기록하면서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實質的인 國民生活은 풍요롭지 못했다. (3) 人口過密 또는 過疎地域이 생기고 범죄와 교통사고가 增加하는 등 社會的問題가 發生했다. 그래서 國民들은 GNP가 올라가고 高度로 成長한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것인가에 대한 問題意識을 갖고 그 意義를 轉換하게 되었다. 이것이 1970年代의 오일쇼크에 즈음하여 1975年경 사이에 일어난 日本經濟의 轉換點이 되었다. 즉 量보다 質에 더 重點을 두게 된 것이다. 最近에 와서는 財政赤字가 많기 때문에 社會福祉政策에 대하여 또한 反省을 하지 않으면 안될 立場에 있으나, 經濟成長 보다 福止優先主義를 취해야 겠다는 생각이 重要하게 대두되었다. 後藤邦夫敎授의 論文中에 特히 강조된 것과 같이, 高度成長 때문에 自然環境을 파괴 해서는 안되겠다고 하여 世界 어느나라 보다 公害에 대해서는 엄격한 規制를 加하는 立法이 體系的으로 完備되어 있다. 産業構造面에서 資源을 많이 消費하는 構造에서 資源을 적게 消費하는 産業構造 즉 서비스産業, 頭腦産業으로 轉換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에 國民的인 合意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 이와같이 公害를 規制하고 頭腦産業에 置重하다 보니 産業自體가 國際的으로 强한 競爭力을 形成하고 있다. 또 金漢圭敎授로 부터의 開發途上國에서는 여러가지 環境與件으로, 이 理論과 實際를 活用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 않겠는가에 대한 質問에 庄谷邦辛敎授의 答辯이 있었다. 리서치파크(Research Park)는 歷史的인 連繫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前提로 한다. 즉, 그 前身인 工業團地가 있었다는 것이다. 日本에서는 大企業을 中心으로 해서 1950年代부터 1960年代까지 工業團地가 이루어 졌다. 1958년 堺市를 中心으로한 臨海工業團地가 하나의 例다. 또한 中小企業에 의한 工業團地가 政府의 65%의 支援을 받아서 1961년에 이루어 졌다. 堺市 工業團地 造成에는 스텐포드大學의 A tool of industrial state란 著書를 활용 했었다. 開途國인 인식 뿐만 아니라 先進國의 實證調査를 根據로 한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有益하다고 생각한다. 日本에서는 炭鑛産業이 斜陽化되자 再開發하는 면에서 工業團地가 되기도 하고 公害를 防止하기 위한, 또는 住宅을 짓기 위한 目的등을 가지고 地方政府와 協力하여 工業團地가 상당한 發展과 效果를 보았다. 韓國에서도 工業團地는 상당한 發展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工業團地는 散發的으로 工場을 設置하는 것보다 集團的으로 設置하면 規模의 利益을 얻을 수 있고 또 現實的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리서치파크(Research Park)가 그러한 工業團地를 前身으로 하여 建設된 것 이라고 한다면, 工業團地의 內容이 高度의 技術을 要求하는 尖端技術産業으로 바뀌어 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工業團地를 發展 시켜야 한다는 것은 開發途上國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理論과 實際가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韓 ·日經營比較硏究의 比較經營學的 方法

        金鏞淇 啓明大學校産業經營硏究所 1986 啓明大學校ㆍ挑山學院大學國際學術세미나 Vol.1986 No.-

        韓國 및 日本의 經營比較硏究의 基本的 方法을 提示하려고 하는 이 報告는, 統一論題의 最初의 것으로서 참으로 적당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같은 東洋文化를 基底에 가지는 兩國文化의 共通性과, 그것을 基礎로 하면서도 그러나 相異한 文化面을 파악하여, 거기에서 經營의 差異를 析出하여 비교하려고 하는 基本的 方法을 논하였다. 이 報告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논의가 전개되었으나, 이것을 정리하면, ① 比較의 기본적인 방법에 관한 문제 ② 文化와 經營의 樣相과 관계를 인식하는 方法에 관한 문제 ③ 兩國 企業의 성격 差異에 관한 문제 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통역을 介在시키면서 행한 토의이었기 때문에, 각기 중요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토론을 다하지 못하고 미진한 것이 아쉬웠다. 韓·日 兩國 經營 楊相을 비교하는 경우, 兩國의 基層文化의 共通性을 인식하고, 그 기반위에 經營의 差異를 대비해 나간다고 하는 생각이, 報告에서 제시되고 있다. 基底에 儒敎精神에 대표되는 東洋文化를 가지고, 日本의 武士道에 유사한 「선비道」라고 하는 理念이 대치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면, 基層文化의 共通性을 가지면서, 왜 經營에서 差異가 現實的으로 나타나는가. 文化 文題에서 直接的으로 經營의 特徵을 인식해 나간다고 하는데에 대하여 문제가 첫째로 논의되었다. 하기는 基層文化의 共通性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派生되는 文化는 다른 것이 되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 經營의 差異도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렇더라도 文化의 特徵에서 經營을 설명하는 데에는 무엇인가의 媒介環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러한 疑問에 대하여 報告者는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文化는 經營의 基盤임을 다시 강조하였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日本 企業의 대부분이 大規模化하여 이미 「所有와 經營의 分離」가 명확해지고 있는데 대하여, 韓國에서는 아직도 同族經營이 많고, big business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육성되지 않는 사실, 그 때문에 企業內에 유보되어야 할 利潤이 同族에 귀속되어 간다고 하는 사태는 어떻게 하여 초래되는가 하는 質問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대하여 報告者는 大規模化가 進行되면 이러한 사태는 점차로 없어지리라는 見地에서 회사에 있어서도 이것을 하나의 동족 家庭의 것이라고 보는 韓國에 있어서의 생각은 경제발전이 앞으로 진행됨에 따라 점차로 희박해지리라고 하는 답을 제시하였다. 文化는 經營이 기반이고, 그 文化(人間의 思考를 그안에 포함한다)는 또 經濟發展에 따라 변화한다고 한다. 經濟發展과 文化의 相互關係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성인가. 그것은 더욱 깊이 생각하여야 할 중요 문제일 듯하다. 企業의 樣相, 經營의 內容은 文化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이지마은 동시에 經濟·政治 그리고 國際的諸環境에 종합적으로 영향을 받고 전개된다고 하는 한 出席者의 발언은 생각하여야 할 중요한 지적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 比較의 方法에 관련하여, 啓明大學校에서의 出席者의 한분인 金南炫氏가 「무엇을 무엇에 관해서, 무엇 때문에 比較하는가」라고 하는 세가지일을 명확히 하여야 할 중요성을 강조하고, 더욱 둘째 점의 「무엇에 관해서 比較하는가」에 대해서, 經營者(經營理念 등), process로서의 經營(經營者·從業員의 行動樣式 등), 經營의 構造(所有와 經營의 關係 등), 機能(經營活動의 效果)및 環境과의 관련이라는 다섯가지 문제를 지적한 것이 주목된다. 이 硏究會에서는 주로 이 다섯가지 중의 「經營의 構造」(所有關係의 特質)에 관해서 논하는데에 그쳤다. 앞으로 논하여야 할 문제로서 다른 네가지 문제를 순차로 취급하여, 경영 내부의 문제에 대하여 더욱 깊이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 기대된다. 그럼으로써 이 報告에서 그 基本方向을 제시한 비교연구를, 더욱 內容이 풍부한 것으로 발전시킬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 大邱地域 中小企業經營者의 意識構造 : 經營理念을 中心으로 Focused on the Managing Ideology

        金柄夏 啓明大學校 産業經營硏究所 1990 經營經濟 Vol.23 No.1

        Ⅰ. 머리말 Ⅱ. 硏究方法 Ⅲ. 最高經營者의 類型 1. 事業體의 形態 2. 創業時機別 類型 3. 年齡別 類型 4. 學力別 類型 5. 動機別 類型 Ⅳ. 最高經營者의 意識構造 1. 企業目標 2. 企業家의 役割 3. 個人的 生活에 있어서의 價値觀 4. 組織生活에 있어서의 價値觀 5. 社會生活에 있어서의 價値觀 6. 最高經營者의 資質觀 7. 事業成功觀 8. 從業員觀 9. 企業發展觀 Ⅴ. 經營理念 1. 社訓에서 본 經營理念 2. 經營方針에서 본 經營理念 3. 企業觀 Ⅵ. 맺음말

      • Office Automation 과 日本의 經營

        이도순이 啓明大學校産業經營硏究所 1986 啓明大學校ㆍ挑山學院大學國際學術세미나 Vol.1986 No.-

        伊藤 敎授는 "Office Automation(OA)과 日本의 經營"이라는 題目으로 發表하였다 (金鏞淇 통역). 여기에서는 日本 企業의 OA에 대하여, 1) 機器論, 2) 시스템論, 3) 精神論이 있음을 제시하고 機器論은 機器의 도입에 그치는 것, 시스템論은 事務의 生産性을 올리는 것, 精神論은 業務의 生産性을 올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3)의 段階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經營에 있어서는 業務의 착오를 방지하는 業務情報, 業務의 낭비를 방지하는 管理情報外에 業務의 效果를 높이는 企劃情報의 요구가 높아졌음을 지적하고 OA는 이 企劃情報를 제공하는데 적합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생각하는 經營, 情報의 活用이라는 口號가 스텝部門에 그치지 않고 라인 部門에서 실천성을 가지게 되고 이에 따라 情報시스템의 中央集中 大型時代에서, 現場分散 小型時代로 변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OA機器가 低廉해지고 操作이 容易해지고 機能이 小型化될 뿐 아니라 會話型非定型處理 및 文章·畵象情報의 處理가 可能하게 되어 일층 촉진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OA의 발전에 따라 雇用問題 動機賦與問題가 나타나게 되고 이의 해결이 중요한 課題라고 하였다. 이러한 發表를 마치고 質疑應答이 행해졌다. 그 내용은 다음고 같다. 먼저 경영학과 교수로부터 OA에 의하여 무인 office가 나타나는 現象과 특히 日本에서의 終身雇用制와의 관계에 대해서의 質問이 있었는데 여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應答이 있었다. OA에 의하여 사무실 人員이 적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無人 office라 함은 하나의 꿈과 같은 理想이지, 아무도 전연 人員이 없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人員이 없어지더라도 복사·集計·對替 등의 書記的 일을 담당하는 人員이 없어질 것이며 이러한 人員은 現在도 많이 없어졌다. 그러나 그 대신 人間이 아니면 할 수 없는 創造的 일을 담당하는 人員은 오히려 늘게 된다. 그러므로 이 轉換을 위한 敎育訓練이 필요하다. 日本에 있어서 1960年代에서 70年代의 高度成長時代에 걸쳐 2次産業에 있어서 로보트化가 진전되고, 또 3次産業의 발달에 따라 blue collar에서 white collar로 넘어가는 職種變化 및 配置轉換이 많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은 日本의 終身雇用制와는 전연 마찰이 없었고 오히려 이 制度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矣軟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美國과 같이 職務給에 의한 契約雇用制 같으면 그 職務가 없어지면 退社를 해야 되겠지마는 日本에 있어서는 終身雇用制이므로 配置轉換이 오히려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日本에서는 여기에 대하여 성공한 經驗을 가지고 있다. 다만 문제는 配置轉換 등을 위하여 敎育·訓練을 행해야 하는데 當事者가 이러한 敎育을 받을 수 있는 意欲과 能力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敎育에 대해서는 自社內에서 企業訓練을 행하기도 하고 企業外의 여러 機構를 통하여 일반 社會人에 대한 成人敎育의 일환으로 실시하기도 한다. 桃山學院大學 經營學部에서도 이러한 敎育을 행하여 많은 反應을 얻었다. 大學도 앞으로는 高敎出身의 新入生을 敎育하는데 만족하지 말고 일반 社會에 대한 役割도 담당하여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觀光科敎授로부터 OA의 발달에 따라 2次産業에서 3次産業으로의 발전이 많아지는 現象이 일어나리라고 생각되나 3次産業 自體에서도, 예컨대 호텔 事業같은 경우 1室 1.5人의 종업원이 필요하였던 상태에서 business호텔의 경우에 20室에 1人 정도가 필요한 정도이고 여러 부문에 機械化가 진전되어 큰 호텔에도 프론트에 몇사람 있으면 되는 상태인데, 이러한 雇用問題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겠는가 하는 質問이 있었다. 여기에 대한 應答은 다음과 같았다. 그점이 사실 가장 염려되는 점이다. 日本에 있어서도 macro的으로 高速成長期에 있어서는 micro的으로 감원된 人員을 일반적인 成長部門에서 吸收할 수 있었다. 그러나 日本에 있어서도 이제는 이러한 吸收가 不可能하게 되었다. 自身의 個人的 試案으로서 人員數의 減小보다도 勞動時間의 短縮을 제창하고자 한다. 週 5日制 勤務는 지금도 상당히 시행되고 있으나 이것을 더욱 短縮하여 4日制로 한다든가 하루의 勤勞時間도 7時間혹은 6時間으로 短縮하기를 바란다. 觀光事業과 같은 leisure industry에 있어서의 그 自體에 부득이 人員數가 減小되더라도 일반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勞動時間이 短縮되어 여가시간이 늘게 되면 그 市場이 확대되므로 이러한 면에서 해결의 길이 열리리라고 생각된다. 또 經營學科 敎授로부터 1) 日本의 OA그룹에 있어서 機器論·시스템論·情神論의 3그룹이 있는데 현재 情神論의 그룹은 機器論·시스템論을 거쳐서 도달하였는가, 아니면 바로 情神論에 도달하였는가. 2) 日本의 OA발달과정에 있어서 試行錯誤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3) 일본의 OA機器會社·商工會義所·政府 등의 機構를 통하여 OA 발전을 위하여 강구한 지원 施策이 있었다면 어떠한 점이었는가. 4) 美國의 OA 와 日本의 OA 수준을 비교하여 우열이 있다면 그 理由 및 앞으로 추세전망은 어떠한가에 관한 質問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대한 應答은 다음과 같았다. 1)에 대하여 답할 정확한 資料가 없다. 그러나 見聞한 事例에 대하여 그 내용을 보면 먼저 高價인 機器를 도입하여 採算이 맞는 그 利用方法에 급급하다가(機器論 段階) 單體機器의 硏究를 아무리 하여도 그 주변의 書式의 定型化 행동의 統一 등의 背景이 되는 시스템 全體를 改善하지 않으면 能率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經驗하게 되었다. 특히 on line system에 있어서 生産性을 올리도록 이러한 硏究가 진행되었는데(시스템論 段階) 이것이 이루어짐으로써 다음 段階로 또 넘어가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그 利用이 EDPS에 의하여 事務的 staff부문에서 事務의 生産性을 높이는데 그치던 것을 經營·制度와 같은 line부문에까지 미치게 하고 全社的으로 활용하여 業務의 生産性을 높이게 되었다(情神論 段階). 그러나 이러한 것은 선구적으로 처음 시작한 企業에서 일어난 일이고,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企業에 있어서는 - 이러한 企業은 대체로 小企業이라고 생각되지마는- 처음부터 情神論 段階부터 들어가야 되겠고 또 마땅히 그러리라고 생각된다. 컴퓨터 會社의 세일즈 活動도 활발하므로 그말만 듣고 별도 準備도 없이 機械부터 도입하였다가 그것이 거의 無用之物化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韓國에서 이러한 일이 없기를 바란다. 2)에 대해서는 機器論的으로 시작한 것 그 자체가 失敗이었다. 3)에 대해서는 基本的으로 機械의 개발을 컴퓨터 메이커 1社만으로 이룰수 없고, 數社 共同으로 개발하는데 이 共同機構에 대하여 政府가 支援하였다. 또 一般的으로 規格·機種을 統一하여 規格化를 추진하고 있다. 관련기업의 利害가 수반되므로 어려운 점이 있으나 꼭 實現되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지원이란 現實的으로는 敎育·訓練인데 여기에는 메이커가 이용자에 대해서 행하는 것, 商工會義所·市·府·懸에서 행하는 것, 大學에서 公開講座로서 행하는 것 등이 있다. 4)에 대해서는 아직도 다같이 시작 段階이므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다만 日本은 처음 電卓과 같은 작은 것에 printer memory 등을 부착시켜 점차 키워서 personal computer까지 이르렀는데 대하여, 미국은 cumputer가 小型으로 또 超小型으로 발달하여 家庭에서 사용할 수 있게까지 되어 日本의 것과 一致하였다. 즉 日本에서는 작은 것이 커졌고 美國에서는 큰 것이 작아진 發達過程의 차이가 인정되나 現在 兩國의 水準차이를 논하기는 어렵다.

      • 李德懋의 經濟經營思想

        金柄夏 啓明大學校産業經營硏究所 1986 啓明大學校ㆍ挑山學院大學國際學術세미나 Vol.1986 No.-

        먼저 이날 午前中에 있었던 두 報告內容에 관해서 報告者인 長谷川 彰·金柄夏 兩氏로 부터 補充說明이 있은 후·金氏로 부터 長谷川氏로 부터 金氏에게 서로 質問과 그에 대한 應答이 있었다. 이 質疑應答을 통하여 각기 다른 테마로써 이루어진 두 報告 사이에 논하여야 할 公通的인 問題가 明白하게 된 것을 먼저 적어야 하겠다. 그 논점으로는 各 報告의 독자적 내용 그 자체에 관한 것 말고는 다음 세가지로 이것을 요약 할 수가 있다. ① 經營史의 대상 및 方法에 관한 문제 ② 日本的 經營·韓國的 經營을 논함에 있어서 比較의 대상을 어디서 구하여야 하는가의 문제 ③ 經營思想이라고 하는 어떤 특정思想家의 思想이 現代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의 문제 以下의 討論도 대체로 이러한 여러가지 문제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①의 문제에 관해서는 啓明大學校側의 參席者로 부터 長谷川氏에 대한 質問으로서 經營史라고 하는 學問에 대한 接近 方法을 중심으로 다른 學問과의 관련 방법, 經營史의 段階區分을 經濟發展의 時期區分과 어떻게 관련지워야 한는가에 대하여 문제가 제기 되었다. 여기에 대하여는 經營發展의 時期區分을 基底로 하면서도 文化構造의 파악과의 관련으로 經營方法의 계속성 까지도 具體的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대답이 있었다. 經濟史에 대비한 經營史硏究의 특성을 여기에서 제시한 셈이다. 또 이 문제에 대해서도 金氏도 다 같이 문제시하고 經濟學者 보다도 經營學者에 의한 經營史硏究에 주목하고자 하는 뜻을 주장하였다. ②및③의 문제는 서로 관련되어 있고 ③의 문제에 대한 討論을 통해서 ②의 문제에 대하여도 討論이 전개되고 그 진행중에 討論이 점차 熱氣가 높아졌다. ③의 문제에 관해서는 3人의 出席者로 부터 金氏의 報告에 관련한 質問이 있었다. 그 內容은 經營思想과 經營理念과의 구별과 관련의 문제, 思想 전개의 배경에 있는 經濟活動 內容 如何의 문제, 報告에 있는 李思想의 어떠한 데가 現代에 연결되는가의 문제, 옛날 日本商業活動에 있어서 思想의 役割과 李思想의 韓國에 있어서의 그것과의 대비 등이었다. ②의 문제에 관해서는 金氏의 補充說明에도 있으나 예컨대 日本的 經營을 논하는 경우 比較의 대상을 西歐 특히 美國 經營에서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대단히 가까운 文化를 가진 韓國·中國 등과의 比較는 예컨대 儒敎의 영향을 파악함에 있어서, 또 イエ(이에-家)·ムラ(무라-村)의 문제와의 관련을 생각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意義를 가진다. 토의중에 제시된 經營의 국제비교를 행하는 경우의 共通의 기반을 어디에서 구하는가의 문제도 比較方法에 관련하여 중요한 뜻을 가진다. 또 經營理念이 韓國에 있어서 담당하는 役割과 日本의 그것과의 차이에 관한 문제제기도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논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討論의 최후에 제기된 日本 戰後 經濟發展 중에 아직도 존속하는 韓國의 文化的 特質과의 類似性과 差異를 具體的으로 어떻게 파악하여야 되겠는가의 문제는 지금까지의 토의를 집약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것은 早急히 結論을 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앞으로의 硏究推進에 큰 課題를 남기는 것으로서 銘記하여야 할 중요한 意味를 가진다.

      • Theoretical Perspective on Industrial Relations : A Critical Assessment for Building a Modified System Model

        Jon, Kyong-Tae 啓明大學校 産業經營硏究所 1988 經營經濟 Vol.21 No.1

        다른 學問分野와 달리 産業關係學은 아직 硏究의 基築이 될만한 一般的인 理論이나 分析모델이 定立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여러 側面에서 接近이 試圖되고 있으나 本 硏究에서는 本 論者가 意圖하는 모델 設定에 必要하다고 思料되는 (1) 單一모델, (2)시스템모델, (3) 多元모델을 紹介하고 이들 모델의 批評을 통해 相對的인 强點과 脆弱點을 提示, 補强하므로 "修正시스템모델"을 開發하는데 그 目的이 있다. (1) 單一모델: 이 모델에서 모든 利害集團은 公同目標를 위한 統合된 調和의 實體로 看做한다. 그래서 資本家 또는 經營者와 勞動者 利害集團 사이에는 葛藤的 要素가 없고 生産, 利益 및 分配面에서 共同目標를 위한 補完的 同伴者의 槪念에서 組織을 把握한다. 이 모델하에서는 家父長的인 經營이나 權威主義的藤意思統治構造가 代表的인 例이다. (2) 시스템모델: 하바드大學 Dunlop敎授가 처음 그 體系를 定立한 이래 많은 批評이 가해지고 있다. 그는 Talcott Parson의 社會組織理論에 根據하여 經濟的 側面의 生産性問題와 社會的側面의 分配問題를 說明하고 있다. Dunlop敎授에 의하면 生産關係는 어떤 生産主體, 주어진 環境, 이데올로기가 서로 結合된 것으로 보고 産業關係는 이들 産業主體를 管理하는 一連의 rule을 創造하는데 있다고 主張하고 있다. 그는 生産主體를 政府, 勞動者, 經營者로 區分하고 있고 주어진 環境으로는 技術環境, 市場環境, 權力環境을 提示하여 이들 産業主體와 環境의 相互作用 속에 産業主體의 이데올로기가 形成되고 이에 따른 rule이 만들어지는 力學關係에 있다고 主張하였다. 그러나, Dunlop의 모델은 3가지 側面에서 그 脆弱點이 있다는 批判이 가해지고 있다. 첫째, 社會的 生産機構로서 이들 세産業主體는 rule에 의해 統制가 可能하다고 봄으로 rule이 만들어지기까지의 過程에서 人間關係를 無視하여 社會心理的 變數가 排除되었다는 批判이 있고, 둘째, 그런고로 構造的 혹은 停滯現象에 集中하여 意思決定의 動的인 過程을 無視하므로 葛 的要素가 排除되었으며, 셋째, rule을 從屬變數로 規定짓기에는 너무 偏狹하다는 批判을 받고 있다. (3) 多元모델: 單一모델과 對照的인 것으로 企業은 生産現場에서 서로 相異한 利害集團이 그들 自身의 目標達成을 위해 葛藤의 過程을 거치는 政治的 組織으로 看做하고 있다. 따라서 産業葛藤을 旣存事實로 받아들이고 制度的으로 統制하고 있는 戰後資本主義社會의 槪念을 받아들이고 있다. 즉, 多元主義者들은 産業葛藤은 必要不可缺한 것으로 受容하면서 이들 葛藤은 團體交涉, 和解 및 仲裁 등의 社會的 메카니즘을 통해 그 解答이 可能하다고 보고 있다. 이상의 세 모델 중 單一모델은 混合經濟體制下에서 利害集團의 目標가 同一하다고 믿기 어려우므로 分析의 對象에서 除外하였다. 그러나 Dunlop의 시스템모델과 多元모델을 統合하여 그 相對的 强點을 補完하므로 새로운 分析모델이 可能하다고 思料된다. 즉, 産業關係體制는 rule을 만듦으로 管理可能하도록 槪念을 提示한 Dunlop의 시스템모델과 이 모델에서 排除된 社會心理的 側面의 葛藤要素가 産業關係制度 속에 內在해 있다는 前提下에 그 解決策을 摸索한 多元모델을 統合하므로 새로운 모델을 設定할 수 있을 것으로 思料된다. 換言하면 시스템 目標設定에 있어 構造的인 側面의 制度와 機能的인 側面의 葛 的要素를 統合하여 새로운 "修正시스템모델"을 開發함으로 서로 다른 利害集團이 共存하는 産業關係分野의 經驗的이고 觀念的인 體系의 複雜性을 理解하는데 貢獻할 수 있다고 思料된다. 그리하여 "修正시스템모델"은 産業關係制度 속에 共存하는 葛藤과 安定의 動的이고 靜的인 社會現象을 同時에 受容할 수 있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그 理論的 妥當性을 主張할 수 있다고 思料된다.

      • 日本的 經營組織과 「集團主義」

        植村省三 啓明大學校産業經營硏究所 1986 啓明大學校ㆍ挑山學院大學國際學術세미나 Vol.1986 No.-

        植村敎授는 "日本的經營組織과 「集團主義」"라는 題目으로 發表하였다. 여기에 있어서는 經營管理시스템이 나라에 따라 그 類型이 달라지는 原因을 ① 經營發展段階의 差異, ② 最高度로 발달된 모델에서의 距離의 差異 ③ 文化의 差異의 3가지에서 구할 수 있다고 보고 日本의 文化的 特徵을 集團主義라고 논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日本의 이 集團主義는 歐美的 視點에서 말하는 集團主義는 아니다. 歐美에서는 個人은 기조로 하여 그 「個」의 確立을 위하여 이룩된 組織으로서 集團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集團은 언제든지 個人을 前提로 하는 槪念이다. 그러므로 個人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組織한 集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단 成立된 후에는 個人의 利害關係와 相反되는 立場으로 化하는데 대하여 가장 깊은 關心을 가지게 되고 문제시 된다. 그러나 日本에 있어서는 集團主義를 기조로 하면서 集團이 個人을 吸收하게되고 個人은 集團에게 吸收되어 가는 관계가 成立된다. 그러므로 集團의 團結力이 더욱 强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集團主義는 여러가지 缺點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結合은 단순한 職能關係를 넘은 인격적 結合集團으로서의 性格을 띠게 된다. 그리고 그 核이라고 볼 수 있는 經營者의 個性이 經營 風土 형성에 중요한 要因이 된다. 이 發表를 마치고 質疑應答이 행해졌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朴佑龍敎授는 日本的經營이 日本에 있어서 戰後 새로이 나타난 것인지 혹은 옛날부터 있었던 것인지에 대하여 質疑가 있었다. 여기에 대하여 植村敎授는, 日本的經營이 日本의 오랜 文化的인 傳統을 背景으로 하여 발달한 것이기 때문에 戰後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고 볼수는 없다. 그러나 戰後에 QCC와 같이 外國 특히 美國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새로운 形態의 것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根本은 역시 오랜 傳統을 背景으로 한다. 또 金炳夏敎授는 日本的 經營의 설명을 들었는데 그것은 마치 韓國的 經營의 설명을 듣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러한 特徵은 日本的이라기 보다 東洋的인 것이 아니겠는가, 또 缺勤者가 있더라도 남은 사원들이 서로 협조하여 일이 원만히 처리되도록 하는 것은 꼭 日本의 特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데 대한 質問이 있었다. 여기에 대하여는, 日本과 韓國은 文化史的으로 보아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확실히 같은 점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미묘한 점에 있어서는 또 相異한 점도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컨대 儒敎를 韓國과 日本이 다같이 받여들여서 그 뿌리가 같다 할지라도 좀 다른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다. 韓國과 日本의 關係에 있어서 미묘한 부문에 있어서 相異한 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찾는 것은 앞으로의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 缺勤者가 있을때의 문제에 대해서는 美國에서도 나머지 社員들이 協調精神을 발휘하여 잘 처리되어 나가는 경우도 있겠지마는 일반적으로 보아서 그것이 美國에서는 잘 안되는데에 비하여 日本에서는 일반적으로 보아서 잘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 金鎭卓敎授는 日本的 經營의 特徵이라고 볼 수 있는 終身雇用制·年功序列制등과 같이 集團主義와의 關係 및 現況·展望에 대한 質問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應答이 있었다. 終身雇用制와 年功序列制는 밀접한 關係가 있고 또 그것은 集團主義와 不可分의 관계가 있다. 集團的으로 일하기 때문에 個人의 業績을 評價하기 어렵고 자연이 能力에 따른 昇進이 안되고 年功序列制가 된다. 個人別 能力主義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日本에 集團主義가 무너지지 않는 한, 終身雇用制·年功序列制도 유지되리라고 본다. 日本에서 高度成長이 끝난, 지금부터 7.8年前에 社長交替가 있었다. 그런데 그 交替는 年功序列的으로 이루어졌다. 단 한 會社인 松下電氣만이 序列25位의人物이 社長이 되었다고 하여 話題꺼리가 되었다. 이와같이 話題꺼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일반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最近 또 高度技術이 요청되는 시기에 즈음하여 또 社長 交替現象이 일어났는데 7.8年 前보다 약간 序列式이 아닌 발탁의 경우가 많았으나 아직도 그 主流는 변함이 없다. 終身雇用制·年功序列制에 의하여 人件費가 浪費되는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이로 어려울 때는 本人의 自進辭退를 암시로서 종용하는 일이 있다. 「어깨두드리기」(譯者註, 조용히 원만하게 회유하여 그것을 종용한다는 뜻)「窓門쪽자리 무리들」(譯者註, 閒職으로 돌린다는 뜻)라든가 하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말이 있는 것은 制度的으로 사임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하면 우선 浪費가 절감되겠지마는 內部 人事에 혼란이 와서 더 큰 浪費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물론 무조건 序列式만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一定한 條件下에서의 年功序列式 終身雇用制가 發展하리라고 본다. 또 鄭基淑敎授는 經營管理시스템이 나라에 따라 다른 점을 經濟發展段階, 最高度로 發展된 모델에서의 距離, 文化의 差異에서 그 原因을 찾고 그것을 綜合함으로써 그 眞相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發表內容은 文化에 대해서만 논하였는데 이를 綜合하는 見解는 어떠한가, 그리고 文化問題에 있어서 戰後 혹은 占領등의 경우에 있어서, 敗戰國 혹은 被占領國에 戰勝國의 文化가 물밀듯이 침범하여 들어 올 때 自國의 傳統的인 文化를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 더우기 그것이 長期間에 걸쳐서 占領을 당하고 自國의 文化가 斷絶되는 狀況 下에서 그것을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어떠한 대책이 필요하겠는가, 라는 質問이 있었다. 여기에 대한 應答은 다음과 같았다. 이 發表가 文化的 原因에 대하여 置重하였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文化를 企業經營의 行動에 대해서 논하였는데, 企業은 環境에 대응해서 行動한다. 그런데 이 環境은 經濟的 環境이 주가 되어있고 여기에서 그 段階 및 모델에서의 距離 문제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內容에 있어서는 綜合的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 文化의 斷絶 問題에 대해서는 文化라고 하는 것은 人間의 意識構造·價値觀 등의 特徵에 의해서 形成되기 때문에 급격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랜 歲月에 걸쳐서 이루어지므로 약간의 충격으로 무너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日本의 集團主義가 形成된 歷史的 過程을 分析해 보면, 먼 옛날의 農耕時代까지 소급할 수 있다. 日本은 本來 農耕生産이 主이었고 그 方式은 灌漑施設 등 集團的協同을 必然的으로 요청하였고 여기에 이 觀念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德川幕府 時代에 儒敎精神이 들어오고 그것이 260年에 걸쳐서 日本流로 發展하여 獨特한 家(집)의 意識이 발달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몇 世紀에 걸쳐서 形成된 것이다. 이것은 어느나라라도 그 나라의 文化의 形成은 數百年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數年 혹은 數十年 정도의 衝擊에 의하여 根本的變化가 오지는 않는다. 물론 戰後에 있어서 약간의 變化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根本的變化가 될 수는 없다. 數十年의 기간의 差異도 傳統的文化가 형성된 數百年의 歷史에 비하면 정도의 差異가 있을 뿐이다. 또 參加者의 한분은 經濟發展 모델에서의 差異에 의하여 구분하는 方法에 있어서 그 모델을 어떻게 設定하는가, 또 그것은 設定되어 있는지, 設定되어 있다면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韓國은 거기에 비하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의 質問이 있었다. 여기에 대한 應答은 다음과 같다. 그 모델의 設定은 一應工業化라고 본다. 그러나 工業化라고 하더라도 막연하다. 工業人口의 農業人口에 대한 比가 높다고 하여 發展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또 그 生産高의 比가 높다고 하여 發展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대단히 막연하다. 또 近來에는 脫工業化社會가 提起되고 發展된 第3次産業의 사회가 發展된 社會라고 보는 見解도 있다. 韓國의 發展에 대해서는 個人的인 느낌에 불과하지마는 最近 3年間에 많은 發展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日本에 있어서는 東京올림픽을 마친 후 高度成長을 이룩 韓國에서도 5年 後에 서울올림픽이 개최될 것을 생각할 때 앞으로 높은 成長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金南炫敎授로 부터 集團主義는 凝集性이 강하고 團結力이 강한 長點을 나타내지마는 몇가지 缺點이 있다. 첫째, 對外的으로 閉鎖性이 강하다. 日本全體가 集團主義로 나타났을 때 外國商品에 대해서 또는 商品輸出에 대해서 여러가지 國際的 葛藤을 일으킨다. 둘째, 內部凝集性이 강할수록 意思決定에 있어서 創造性이 결여되는데 여기에 대해서 QCC로서 對應이 충분한가, 셋째, 組織 風土가 歐美와 같이 個人主義에 의하여 個人의 集約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特有한 集團主義를 취하였을때 어떤 리더 個人의 性格에 의하여 組織風土가 좌우되는 경우가 있겠는데, 이것은 缺點이 될 수도 있다. 리더의 敎育 訓練 育成이 중요한 데 여기에 대한 對策 그 理想型이 있는가, 하는 質問이 있었다. 이에 대한 應答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閉鎖性의 問題인 데 그러한 缺點은 확실히 있다. 안(內)와 밖(外)의 논리에 대하여 설명하였지마는, 이 안(內)의 논리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뜻한다. 個의 積上이 아니고 위에서 包容하게 되었을 때 閉鎖性이 나타난다. 이것이 日本全體가 集團主義가 되고 閉鎖性이 나타났을 때 여러가지 國際的葛藤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이것을 막도록 노력하여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問題가 확실히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오늘날 實例를 볼 때, 예컨대 日本과 美國間의 自動車問題, 즉 日本自動車가 美國에 大量 輸出되어 美國의 雇用의 減退시키고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問題를 보더라도 이것을 이 閉鎖性의 問題만으로 돌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美國에서 얼마나 그 메이커들이 市場變化에 適應하여 競爭에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姿勢를 취하였는가 하는 것이 問題이기도 하다. 둘째, 集團主義的으로 責任이 全體에 있고 個人의 能力을 충분히 발휘못할 때 個人의 創造性이 不足하게 되는 것은 確實하다. 여기에 대해서 日本에 있어서는 QCC와 같은 活動을 통하여 그것을 보완하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 그것 外에도 制案制度의 활용을 들 수 있다. 지난 여름에 啓明大 敎授 一行과 함께 도요다 自動車工場을 가 보았는데 거기에서는 提案制度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提案件數도 많고 또 採澤率도 높고 賞金도 많았다. 이러한 方法 등을 통하여 創造性을 끌어 내도록 노력한다. 集團性과 創造性의 두가지가 合하는 經營管理시스템이 고려되고 있다. 셋째, 美國에서 발달되고 있는 리더쉽 理論, 資質管理, 敎育訓練 方法등을 그대로 適用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日本의 集團에 있어서는 그 長이 核으로서 特有한 能力을 나타내야 하므로 이 敎育이 특히 重要視되어야 하겠다. 日本의 社員敎育은 新入社員敎育과 中間管理者敎育으로 나누어 진다. 新入社員敎育은 全體的 會社狀況을 案內하는 程度이므로 여기에 큰 問題는 없다. 이 中間管理者 敎育이 대단히 중요하다. 中間管理者에 대해서는, 集團의 中心이 되어서 원만하게 綜合하는 能力을 敎育하여야 한다. 일하면서 訓練하는 OJT의 方式이 취해진다. 日本의 中間管理者는 처음부터 그 能力이 있어서 그 자리에 採用된 것이 아니다. 年功序列的으로 昇進해서 된 경우가 많다. 管理者의 能力은 管理者가 되어서 점차로 體得해 나가야 한다. QCC는 自主的이고 또 全員參加의 運動이다. 自主的인데 어떻게 全員參加일 수 있겠는가, 自主的이면서도 全員參加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中間管理者의 能力이다. 自進하여 參加할 수 있는 風土를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核으로서의 리더인 中間管理者 敎育의 目標이다. This paper consists of four segments. At the beginning, I considered porblems on the relationships between business management systems and "culture", Culture is the basic factor which brings about the specific appearances of activities of the enterprise as the economic unit of society in on nation or region. Second, I inquired into the "collectivism" as the fundamental characteristic of Japanese culture. Third, I characterized the Japanese way of management as the "group oriented management," which arose from Japanese collectivism. Finally, I analyzed some phases of Japanese management organization as the important part of the Japanese way of management. These descriptions are the main contents of this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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