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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마스 머튼의 영성 신학에 대한 연구 : 관상기도를 중심으로

        권오상 韓南大學校 學際神學大學院 2006 국내석사

        RANK : 248831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을 찾으려했던 위대한 영성 가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를 시도하였다. 머튼은 관상기도라는 방법을 통해서 새로운 자아 발견의 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머튼에게 있어서 관상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체험을 의미한다. 관상기도를 통해 비로소 인간은 자기의 내적 자아와 이웃과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게 된다. 머튼은 그의 삶을 통해 집요하게 추구한 것은 하나님과의 일치에 뿌리를 둔 이웃과 자연과 하나님과의 일치였다. 머튼에게 있어서 관상과 활동은 나누어지지 않고 더욱 친밀해 진다. 머튼의 일치의 영성은 현대 사회와 교회에 독특한 공헌을 하고 있다. 그는 이분법과 이원론에 지배당하는 사회에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머튼에게 있어서 이원론적인 사고에서 통전적 사고로 전환이 가능함을 보여준 것이다. 머튼의 기도신학의 결정이자 핵심인 관상기도는 단순한 고독 속에서 개인적 경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참여 등의 행동을 추구하며, 어떤 면에서는 그 인식방식에 있어서 동양적인 선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머튼에게 있어서 관상과 활동을 통전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는 역사적 변혁의 의지와 개인 영혼 갱신의 노력을 분리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행동은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 참된 행동의 기초를 이루는 사랑도, 하나님과의 접촉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사랑에 기초하지 않는 무수한 거짓 행동들에 분주한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려 준다. 그는 참된 행동은 사랑에 기초해야 하고 사랑은 관상을 통해 도달하는 최고의 경지임을 알려 주고 있다. 관상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직관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분의 사랑의 활동을 통해서 우리는 인식하고 그분의 활동에 우리는 동의함으로 합일에 이르게 된다. 관상과 행동의 일치를 향한 노력 없이 적당히 양자를 인정하는 차원이나, 외적으로 드러나는 균형과 조화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진정한 일치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머튼에 의하면 일치는 관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합일, 그 깊이에서 맛볼 수 있는 참된 중용의 세계이다. 토마스 머튼은 관상수도회의 수도사이며, 사제이고, 탁월한 저술가로서, 그리고 사회 개혁자와 평화주의자였다. 맋스주의와 대화를 통해 일치를 추구하였으며, 동양의 선(禪)과 기독교와의 대화를 통해, 동양적 기독교의 탄생이라는 새 시대를 예고한 예언자이다. 머튼은 관상기도는 하나님을 찾는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내적 체험을 의미한다. 사랑의 체험인 관상을 통해 비로소 인간은 자기와 동류 인간 그리고 세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즉 관상기도는 나 자신과 이웃과 세계와 하나님을 깊은 사랑의 눈으로 새롭게 보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었듯이 우리는 관상 기도 속에서 이러한 관계의 회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머튼의 관상이해와 그이 영향력은 현대인들이 영적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자아(Self)의 영적 여정 : 토마스 머튼과 융을 중심으로

        최종철 장로회신학대학교 2007 국내석사

        RANK : 248653

        이 논문은 토마스 머튼과 융을 중심으로 자아의 영적 여정을 신학적, 인식론적, 심리학적으로 접근하였다.

      • 그리스도교 관상기도의 재해석과 적용에 관한 연구 :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의 『새 명상의 씨』(New Seed of Contemplation)를 중심으로

        임경수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22 국내석사

        RANK : 232443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경제적·물질적 가치를 중시하여 인간이 가져야할 본연의 가치를 상실해버린 오늘날, 현대인들은 이제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행복과 건강에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채울 수 없는 영적 공허함 속에서, 그들은 이제 영적인 가치에 시선을 돌린다. 허나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영적인 것 마음의 편안을 주는 ‘힐링’(Healing)에 국한된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전인적, 초월적, 영적 특성을 가진 그리스도교 영성은 하느님과의 관계없이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무신론, 종교다원주의, 종교상대주의로부터 비롯한 신(新)영성운동은 하느님 없이, 혹은 하느님이 아닌 다른 존재로부터, 심지어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초월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이라는 그리스도 신앙의 절대적 고백이 상대화될 처지에서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교 세계 유지에만 급급한 대답을 할뿐이다. 지극히 전통적이고 사변적이며 고리타분한 대답은 현대의 영적풍류 속에서 매력이 없음은 단연하다. 하지만 인간은 관계 속에서, 관계로부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신영성운동 역시 영적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 이면에 있는 자기만족과 현실안주는 개인주의로 인한 분열을 야기하고, 결국 하느님 없는 인본주의는 인간을 더욱 비인간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모든 관계와의 단절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 이와 같은 문제의식 안에서 본 연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을 위한 숙고는 결국 그리스도교 영성을 요청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현대인의 영적 갈증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자 목적인 하느님에 대한 요청일지도 모른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스스로부터 멀어진 관계회복이 오늘날의 영적 위기라고 한다면,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그리스도교의 영적가치를 제시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이 연구를 위해 본 연구는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에게 주목하였다. 머튼에 의하면,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인 하느님과 단절되면서 ‘소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소외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본성적인 힘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다. 참 하느님을 만나야만 이 소외는 극복된다. 따라서 머튼은 인간과 하느님의 만남(합일)의 길로써 그리스도교 영성의 정수인 관상기도'를 제시한다. 소외가 하느님을 만나야만 극복된다는 점은 머튼에게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함을 의미한다. 인간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자기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머튼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은 소외의 문제를 넘어 전적으로 새 인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머튼의 위와 같은 통찰들을 접하며 본 연구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고유함과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신학적 의무임을 통감할 수 있었다. 이 의무로부터 본 연구는 머튼의 관상기도 이론을 통합적으로 담아 낸 그의 저서 『새 명상의 씨』(New Seeds of Contemplation)를 분석하고, 이를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고 적용하여 그 신학적 과제를 수행하고자 하였다. 머튼은 관상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명료화하였다. 머튼은 관상의 출발점이 ‘거짓 자아'에서 벗어나 ‘참 자아'를 찾는 것이며, 목표는 하느님과의 일치 혹은 궁극적 실재를 향한 깨어남'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먼저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느님은 왜 인간 존재의 근원이자 목적인가?" “왜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를 요청하는가?" “인간의 “‘거짓 자아'와 ‘참 자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교에서 인간은 어떠한 존재로 이해되는가?" “하느님이 아니면 인간 소외 극복 자체가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 연구의 3장은 그리스도교 인간학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하느님을 거부할 수 없는 ‘하느님의 모상'이다. 머튼에 의하면,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요청할 수밖에 없는 근거이다. 인간은 참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자기 소외를 온전히 극복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하느님 당신 자신이 스스로 인간에게 계시하시지 않으면 인간은 그분의 참 모습을 알 수 없다. 머튼에 의하면 그리스도 신앙이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분, 하느님의 완전한 자기 계시이시다. 인간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온전히 자신의 참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하느님 그분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닮음'을 통해서만 이미 선물로 받은 자신의 온전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3장에서 본 연구가 얻은 결론이다. 본 연구의 4장은 본격적으로 토마스 머튼의 관상이론을 분석한다. 머튼은 인간의 진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영적 여정의 방법으로 관상기도'를 제시하였다. 머튼이 제시한 관상이론의 출발점은 ‘참자아를 찾는 것'이며, 목표는 ‘하느님과의 일치 혹은 궁극적 실재를 향한 깨어남'이고, 열매는 다른 이들을 향한 ‘개방과 자비로운 사랑의 나눔'이었다. 머튼은 하느님을 찾는 것을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자아 내부에서 시작했다. 머튼에게 내적 자아의 의미는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사안이었다. 그는 모든 인간의 깊은 내면과 바탕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기 때문에 내적 자아에 관상의 씨가 뿌려져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머튼에게 가장 깊은 자아는 우리가 매일 의식하는 ‘나' 또는 애고'(Ego)가 아니라 내적이고 숨겨진 자아, 인간의 가장 깊은 실재였다. 머튼은 가장 깊은 자아 안에서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일치함으로써 인간이 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관상을 통해 이룬 하느님과의 합일의 열매는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 여정을 통해 우연적인 존재이며 하느님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인간 존재는 동시에 하느님으로부터 필연적인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참된 자아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다. 본 연구의 5장에서는 머튼의 관상이론의 현대적 의의를 발견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머튼은 ‘관상'이라는 존재론적 의식을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근거로 삼았다. 앞서 2장에서 드러났듯이,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모상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신비적 분가분리성이 논증된다. 따라서 관상 가능하게 하는 ‘관상의 씨앗'은 이미 모든 존재에게 뿌려졌으며, 머튼 이를 근거로 관상의 보편화를 주장할 수 있었다. 머튼은 관상을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로, 그리고 인간 삶의 모든 부분으로 확장했다. 그는 관상적 삶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은 단지 봉쇄 구역 안에서 살아가는 수도승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머튼에게 관상의 목표는 내적 세계를 깊이 파고들어 감으로써 하느님과 일치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깨어난 사람의 삶은 관상의 열매인, 다른 사람을 향한 개방과 자비로운 사랑으로 드러나게된다. 이는 5장에서 ‘관상적 삶'이라는 단어로 현대 사회에 대한 제언으로 제시되었다. 만약 관상생활의 최종적인 완성이 개인적인 직관에 불과하다면, 그리스도교 영성은 앞서 언급한 개인주의적 영성의 노선을 걷게 됨으로써 현대 영성에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머튼은 관상이론을 통해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을 도모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 실존의 물음에 답하고, 타인과의 상호 관계성을 깨닫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이웃 사랑과 하나 됨을 지향하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호소하는 영적 갈증은 사실, 삶의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려는 열망이다. 머튼을 통해 재해석된 관상이론은 결코 탁상공론이거나 봉쇄 수도원 안에서 통용되었던 성과 속의 이분법적 분리가 아니었다. 머튼에 의해 보편화된 관상기도를 통하여 이제 모든 사람들은 ‘힐링’을 바랬던 현대인들은 이제 ‘구원’을 열망하게 되었다. 관상은 시공간을 초월한 비밀스러운 장소가 아닌 오늘의 구체적인 삶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이끌어준다. 일상의 시공간에서 하느님 현존에 대한 믿음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보는 그 전인적 행위가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인 동시에 ‘구원 그 자체’다. 인간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사건들과 세상 속 모든 피조물들, 보이지 않는 미래와 불명확한 삶의 기로 앞에서도 지복직관에 대한 열망, 곧 관상적인 삶을 살아갈 때 구원의 문은 인간에게 열릴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피상적이며 세속적인 개체로서의 옛 인간을 벗어버리고, 인격체로서의 나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바로 머튼 영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 토마스 머튼의 생태 영성에 대한 연구

        고동하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2016 국내석사

        RANK : 232431

        국문초록 고 동 하 호남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이 논문은 삼위일체적 영성에 집중하여 토마스 머튼의 생태적 영성을 연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연구는 한국 개신교 영성의 기초가 유일신관과 개인주의적 영성에 기반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하여 그 사실을 인식함으로서 그 대안으로써 삼위일체적 신관을 유비적으로 사용하여 하나님, 인간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고자 한다. 하나님,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에 대한 개념 정립을 통하여 이 삼자는 동떨어진 관계가 아닌 상호 협력하고 소통하는 존재로 그 의미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을 한국 개신교가 지닐 때 보다 관계 지향적인 신앙을 지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에 유일신론적 신관과 개인중심적 신앙은 비생태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유일신론적 신관은 하나님을 초월적이고 통치하는 군주론적인 왕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신관을 가지고 있는 영성은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그 위치를 대신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교회는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다. 또한 개인중심적 신앙은 개인의 성공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신앙은 물질 지향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한다. 또한 자연을 파괴하는 세속적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동조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존재들을 객체화 하였다. 이러한 신앙을 낳게 한 가장 핵심이 되는 모순점은 창조론에 대한 인간 중심적 해석에서 기인되었다. 이 성서해석은 인간을 최상의 위치에 올려놓고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다스리고 지배하는 행위에 근거 조항을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성서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서구 기독교는 전 세계를 지배하였고 자신들의 야망을 위해 자연을 물질화 시켰다. 데카르트의 사상은 이러한 서구 사상의 핵심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본 논고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토마스 머튼의 영성 속에 있는 생태적 의미들을 통하여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시도했다. 머튼의 영성은 삼위일체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 영성이다. 그의 영성은 첫째, 안식의 영성이다.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는 것이다. 이 쉼을 얻기 위해 관상적 삶이 필요하다. 이 관상적 삶을 완성하기 위해 수도원적 삶을 살아가야 한다. 수도원은 장소적 제한성을 갖지 않는다. 우리가 관상적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가 있는 곳이 곧 수도원인 것이다. 둘째, 함께 하기의 영성이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공동체적 영성이다. 나는 당신이 있기에 존재한다. 이 함께 하기의 영성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삼위일체적 의미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진정한 존재로서의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나를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함께 하기의 영성의 중심되는 의미이다. 셋째, 사랑의 영성이다. 이 사랑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으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가난해 지는 것이다. 이 가난은 부를 획득하기 보다는 사회 속에서 가난해짐을 통하여 공동체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랑은 철저히 사회 속에서 나아가고 이루어진다. 머튼의 이러한 생태 영성의 가치들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에 몇 가지의 의미들을 제안하였다. 첫째는 관상적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삼위일체적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생태적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만들어진 개신교의 교리적 체계는 너무 이론적이고 문자적이다. 그 안에 영성적 가치들이 살아 숨쉬기 어렵다. 그러기에 개신교의 영성이 체험적이고 활동적일 필요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교리라 할지라도 수 세기의 시간적 간극을 극복하기는 어렵다. 그러기에 교리적 신념은 그 시대의 새로운 영역들을 담아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외치고 있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 중심에 생태 영성이 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러나 지속적으로 예배 속에서 고백되어온 삼위일체에 대한 의미가 친 생태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 논문을 통해서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민감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자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우리는 심지어는 우리가 비록 예배를 드림에도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할 때 자연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자연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만큼 잘 가난한자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민감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의 영성은 더 생태적이게 될 것이다.

      • 토마스 머튼의 관상적 영성과 융의 집단무의식 비교

        이영민 서울신학대학교 2007 국내석사

        RANK : 232415

        This thesis is the study to compare the spirituality of Thomas Merton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ness of Carl Jung. The comparison of the self-realization is conducted through the spirituality of Thomas Merton, which is the journey of purification, illumination, and consistency, leading to the unity with God, and the process of individuation of Carl Jung's collective unconsciousness. Especially, Thomas Merton exhibits that the life, consistent with God, is the way to realize the true self of the lost self through the contemplative player in his spirituality. The purpose of contemplative player is to discover the life, consistent with God and true self. That is, it implies that the self is discovered within God and God can be found in the self. Meanwhile, the collective unconsciousness of Carl Jung demonstrates the archetype of meaning. The analytical psychology of Jung provides us with the basis to meet living God of Christianity, along with the internal insight of human beings. For Jung, religious experience is the experience on the archetype, representing God. For Jung, God, which is existed in us, can be identified with the self. In other words, the self, which is called "the center of human mentality" by Jung, has the same characteristics as God and the image of God. In light of it, it is seen that religious experience and the individuation process of Jung are encountered. The reason is that the process of individuation is the experience of realizing the self through meeting the God in the self just as religious experience is to experience the image of God within the life of an individual. Even though the spirituality of Christianity and analytical psychology seem to be totally different, the pursuit of both sides heads for the same direction. This thesis compares and investigates two fields by noticing the spiritual and psychological transformation of individuation process, which is the ultimate objective, through the directional point of contemplative spirituality, experienced by Merton, which is the contemplative player, traditionally transmitted from the Christianity, and the experience of archtype image, which is the center of Jung's collective unconsciousness. Therefore, it aims at finding the way to lead the holistic and whole freedom. Self realization of the integration of opposite poles between contemplative spirituality of Thomas Merton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ness of Jung can greatly contribute to carrying on the life freedom by reconsidering the insight on the internal world of the self.

      • 토마스 머튼의 고독 이해 : 그 사상적 발달과 실천적 의의

        이소명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14 국내석사

        RANK : 232383

        본고는 토마스 머튼의 고독 이해 발달을 연대기적으로 고찰하면서 각각의 시기에 고독과 관련된 중심적인 주체를 고찰하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실천, 즉 영성적이고 신앙공동체적이며 사회 정치적인 영역에 있어서 어떠한 의의가 있지를 고찰한다. 머튼은 어린 시절 부터 고독으로 자연스럽게 끌렸으나 회심 이후 머튼의 고독은 하나님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려는 열망이 된다. 하지만 머튼은 고독 가운데서 수도원 안과 밖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 안에 있는 그의 형제들과 자연, 세상을 발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온 우주 가운데 현존하고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머튼으로 하여금 그의 생애 후기에, 고독 가운데서 길러진 관상적 시각을 세상에 풍성하게 나누어 현대 문화와 사회, 냉전과 핵문제, 베트남 전쟁, 인종문제, 아메리카 인디언 정책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해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본고는 머튼의 고독 이해가 지닌 실천적인 의의를 그리스도인의 실천이 지닌 세 가지 차원, 즉 영성적 차원과 신앙 공동체적 차원, 사회 정치적 차원으로 구분하여 종합하여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고독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가운데 영적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중요한 영성 훈련으로서 제도화되고 화석화된 신앙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본질적인 측면을 일깨워 주고, 비폭력주의와 현대 문화 비평, 환경 위기 등에 대한 심원한 영적 전망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을 논하였다. 본고에서는 이를 토대로 머튼의 고독 이해가 한국 교회에 주는 의의를 역시 그리스도인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조망하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고독과 침묵의 훈련을 통해 신앙의 직접적이고도 경험적인 영역을 향하는 가운데 자기 초월을 이루어가고, 타종교 및 타문화와의 소통을 이루어가며, 공공신학이 지녀야 할 영성적 기초와 생태 의식을 함양할 필요가 있음을 논하였다.

      • 토마스 머튼의 관상기도 개념에 대한 연구

        허용화 부산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32383

        우리는 대개 성직자(수도자)와 평신도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다. 평신도의 삶의 자리를 세속으로, 그리고 앞선 이들은 탈세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 관상기도를 성직자와 수도자에게만 해당되는 ‘우월한 기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곧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나 허용된 기도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평신도들은 관상기도가 ‘자신들과 무관한 기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기도’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관상기도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기도를 ‘평신도가 할 수 없는 기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의 물음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관상기도는 성직자나 수도자에게만 필요하고 평신도에게는 불필요한 기도인가? 그리고 관상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니고 성직자나 수도자만 할 수 있는 기도인가? 이 질문들에 올바르게 답하기 위해서는 ‘관상기도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여야 한다. 관상기도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 가에 따라 ‘관상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도’라고 이해되어질 수 있고, 또한 ‘수도자나 성직자에게만 허용된 기도’라고 이해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관상기도에 대한 올바른 개념 정립은 너무도 중대한 문제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관상기도의 개념’을 연구한다. 특히 관상기도 개념을 토마스 머튼을 중심으로 다루어 보는데, 토마스 머튼은 관상기도 개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현대 영성가들 가운데 단연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관상기도를 연구함으로써 ‘관상기도의 개념’에 대해 보다 올바른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1장에서는 영성생활과 관상기도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제1절에서는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먼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영성을 다루고, 그 다음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의 정의, 목표를 다룬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영성은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것으로써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인가’의 문제와 관계한다. 그래서 영성에 대해 언급한 신학자들 가운데 핵심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샌드라 슈나이더(Sandra Schneiders)는 ‘소외나 자기 몰두가 아니라 궁극적인 가치를 향한 자기 초월을 통해서 삶의 통합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의식적인 경험’을 영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궁극적인 가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되고, 교회라고 하는 제자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나타난 하느님께 그 뿌리를 둔다면 이를 그리스도교 영성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은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삼위일체의 생명에 참여하는 삶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수직적 일치를 통하여 사람들과의 수평적 일치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2절에서는 그리스도교 영성생활 안에서 관상기도의 위치를 다루고 있다. 기도는 구송기도와 묵상기도, 그리고 관상기도의 세 가지의 종류로 구분되는데, 관상기도는 이 기도들 중에 첫째가는 위치를 차지한다. 구송기도는 입술의 기도로고도 하며, 말을 강조하고 읽거나 노래로 하는 기도를 말한다. 그리고 묵상기도는 정신이 중심이 되어 하는 기도로써, 이때 정신은 하느님과 그의 경이로우심을 생각하고 상상하고 성찰하고 숙고한다. 끝으로 관상기도는 마음과 의지의 기도이며 하느님의 현존을 향하여 나아가는 기도이다. 입술과 정신은 쉬면서 마음으로 주님께로 나아가고 의지는 주님의 의지와 하나 되기를 추구하면서 다만 단순히 주님을 응시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관상기도를 ‘순수한 믿음과 사랑으로 하느님과 친밀함을 이루는 기도’라고 정의한다. 관상기도는 두 가지의 종류로 구분된다. ‘우리가 하느님에 의해 깨달아질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항상 열리게 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행하는 능동적인 노력’인 능동적 관상기도와 ‘하느님과의 일치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수동적 관상기도가 그것이다. 이러한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관상기도가 영성생활 안에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관상기도는 성화의 강력한 수단이며, 하느님과의 사랑을 기르는데 이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제2장에서는 그리스도교 영성사 안에서의 관상기도 개념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관상’(contemplation)이라는 용어는 그 의미가 매우 광범위하다. 그 이유는 여러 세기를 거쳐 오는 동안 이 용어가 많은 영성가들에 의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상기도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이 관상이라는 용어가 영성사 안에서 어떻게 이해되어 왔는지를 살펴보아야한다. 제1절에서는 성서 안에 나타난 관상기도를 살펴보고 있다. 성서 안에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에 응답함으로써 정신과 마음으로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구약성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지식(Gnosis)

      • 참 자아실현을 위한 관상의 필요성에 대한 고찰 : 토마스 머튼을 중심으로

        하태성 가톨릭대학교 202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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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dern society is richer than ever before, and the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has increased communication and convenience between people. However, in reality, an individual's life is a constant struggle in infinite competition and shackles himself according to social standards. This trend is due to the materialistic social atmosphere that considers 'consumption' more importantly than 'existence' itself. Within this social trend, individuals have degraded others as tools to achieve their own goals, and has come to live a life of ‘human alienation’ that from a value centered trend it has transfered to neglecting God, our neighbors and even ourselves. In order to be free from the world's standards that instrumentalize human dignity, individuals must be able to recognize their true identity. Faith is the unshakable source and foundation of human identity. In particular, known as the ‘children of God’, the self-awareness of Christians restores the perspective of oneself and the world to be centered on ‘existence.’ ‘Children of God’ view the world from a God-centered perspective, not from an egocentric perspective. This is because God, the source of existence, is the One who loves the world as existence itself. As being the child of God, in order to see the world through God's eyes,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Him must be formed through experiences that correspond to Him. Thomas Merton suggests ‘contemplation’ as the most effective method for this. Contemplation, a complete encounter with God, restores the relationship with Him and helps people discover their lost true self. The recovery of true self is the achievement of true freedom. As a result, humans no longer seek recognition from the world, and can achieve a compassionate view of the world and social participation for the common good rather than competition. Above all, the reason why Thomas Merton attracts attention as a representative spiritualist and contemplative of the 20th century is because he explained contemplation in a language appropriate for the modern era and presented the possibility of applying it to the actual lives of modern people. Contemplation is a traditional prayer that has existed in Christianity since the early church, but over time, the perception that it is too mystical, static, and closed has become widespread. Because of this perception, contemplation was considered not to be a method of prayer that could be particularly applied to the busy lives of modern people. However, through his writings and through his life, Merton showed that contemplation is not far from the world, but is realized and completed within the world. Thomas Merton's teachings on contemplation will be an effective guide to the spiritual growth of today's Christians as well as healing the wounded world. 현대 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우며, 과학기술의 발달은 사람들 간의 소통과 편의를 증대시켰다. 하지만 실상 개인의 삶은 무한한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투쟁하며 사회적 기준에 따라 자신을 속박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존재’ 그 자체보다 ‘소비’를 중요시하는 물질만능주의적 사회 분위기에 따른 것인데, 이러한 사회적 흐름 안에서 개인은 타인을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켰으며, 가치의 중심에서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참된 자신마저 등한시하는 ‘인간 소외’를 살아가게 되었다.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도구화하는 세상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개인은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 인간 정체성의 원천이며 기반이다. 특별히, ‘하느님의 자녀’라는 그리스도인의 자기 인식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존재’ 중심적으로 회복시킨다. ‘하느님의 자녀’는 세상을 자기중심적 지평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왜냐하면 존재의 원천이신 하느님은 세상을 존재 그 자체로서 사랑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분과 일치하는 경험을 통해 그분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관상’(Contemplation)을 제시한다. 하느님과의 온전한 만남인 관상은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잃어버린 인간의 참 자아를 발견하도록 한다. 참 자아의 회복은 달리 말하면, 참 자유의 쟁취이다. 이로써 인간은 세상의 인정을 갈구하지 않으며, 경쟁보다 세상을 향한 온정어린 시선과 공동선을 위한 사회적 참여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토마스 머튼이 20세기의 대표적인 영성가이자 관상가로 주목받는 이유는, 관상을 현대 시대에 걸맞은 언어로 설명했으며, 현대인의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관상은 초대교회부터 그리스도교에 존재했던 전통적인 기도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너무 신비적이고 정적이며 폐쇄적이라는 인식이 만연해졌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관상이 특별히 분주한 현대인의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기도 방식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머튼은 그의 저서를 통해, 또한 그의 삶을 통해 관상이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실현되고 완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토마스 머튼의 관상에 대한 가르침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은 물론 상처 입은 세상을 치유하는 효과적인 지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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