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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생 인성교육에 관한 교회법적 고찰

        최광호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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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오늘날 ‘신학생 인성 교육’은 여러 교육 분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의 시대 상황을 들여다보면, 사회가 외형적으로 급격히 발전함에도, 인간의 정신적 삶은 오히려 더 각박해지고, 불평등과 소외현상이 깊어져가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환경 등으로, 인성이 올바르게 성숙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제를 지망하는 신학생들에게, 올바른 인성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요청은 여러 설문조사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08년에 대구대교구가 실시한 신앙생활 실태 설문결과를 보면, 본당 운영을 위해 필요한 교육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가장 높은 비율인 69.5%의 신자들이 ‘인성 교육과 대인 관계 기술’이라 응답한 바가 있다. 그리고 ‘갓등 2020 프로젝트 자료집’에서 교구 사제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살펴보면, 신학생 인성 교육의 필요도에 대한 질문에, 가장 높은 비율인 75.36%의 사제들이 매우 필요하다고 응답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논자는 ‘오늘날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고, 신학생 인성 교육을 위해 어떠한 내용을 가르쳐야 하며, 이를 어떠한 방법으로 교육 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논자로 하여금, 오늘날 요청되는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내용·방법에 대하여 교회법적 연구를 하도록 이끌었다. 논자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본 논문을 통하여, 신학생 인성 교육에 대한 1983년 현행 교회법전의 법원(Fontes)들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을 비롯한 현대의 교회문헌들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현재 수원 가톨릭 대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성 교육을 조명해보고, 오늘날 교회와 사회가 요구하는 인성을 갖춘 ‘영혼의 참된 목자’를 길러내기 위한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제1장에서는, 신학생 인성 교육의 개념에 대하여 고찰해 봄으로써, 교회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신학생 인성 교육’이라는 용어를 명확히 규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formatio’는 피교육자들이 특정한 자격에 합당한 능력을 갖추어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이고, ‘humana’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공동체 안에서 성숙되어가는 인간,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 용어이다. 특별히 ‘humana’는 교회법적인 개념 이해에서 몇 가지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humana’는 각 개인마다 다르기에 그 차이가 인정되긴 하지만, 성직자로 양성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humana’의 성숙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humana’의 성숙은 영성 · 지성 교육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하고, ‘humana’는 끊임없이 완성되어가는 실재이기에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formatio humana’의 개념 이해를 바탕으로 ‘신학생 인성 교육’에 대한 교회법적 개념을 살펴보았다. 이는 현행 교회법을 중심으로 목표·내용·방법으로 구분하여 간략히 살펴보았다. 우선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닮은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신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교육 내용으로는, ‘기본적인 인간적 품성 교육’, ‘올바른 인간관계 형성 능력 교육’, ‘독신 생활에 대한 교육’ 등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인성 교육 내용을 신학생들에게 올바로 교육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올바른 규율이 적용된 공동생활을 통한 교육’, ‘영성· 지성 교육과 함께 이뤄지는 교육’ 등이 있다. 이상의 ‘신학생 인성 교육에 관한 개념이해’는, 이어질 법원과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 제2장에서는 신학생 인성 교육과 관련한 현행 교회법 조항들의 법원 이해가 시도되었다. 즉 오늘날 신학생 인성 교육에 관한 교회법 조항들의 근본이 되는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들과, 현대의 가르침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며 수용되었는지 연구하였다. 간접적인 법원 연구는 성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비록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미 성경과 교부문헌에서부터 신학생 인성 교육의 방향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특별히 서간과 교부들의 문헌을 통해, 초기 교회의 성직자들은 신자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올바른 인성을 갖추어야 함이 명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학생 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라테란 공의회와 트렌토 공의회 때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트렌토 공의회 제23차 회기 때에 신학교 교령이 반포되고, 본격적으로 신학교가 설립되기 시작하며 신학교 교육의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 시기의 교육은 성직자의 직무 수행에 주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즉 사제 직무 수행에 문제가 되지 않는 인성을 갖춘 사제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주된 목표였던 것이다. 이처럼 사제의 직무 수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신학생 인성 교육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사제직 본질에 바탕을 두게 된다. 즉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신학생들의 교육을 바라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제 양성 교령』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 교령은, 합당한 직무 수행을 위한 교육의 차원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로 교육하는 것’이 신학생 교육임을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사제 양성 교령』은 신학생 인성 교육이 영성 교육 과정 안에서 이뤄져야 함을 가르치며, 인성 교육을 영성 교육의 하나로서 언급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제3장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발표된 교회 문헌들을 통해, 현대 사회에 가까워질수록 신학생들의 인성 교육이 더욱 강조되어가고, 결국 독립적인 분야로서 명시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신학생 인성 교육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문헌들을 살펴보며,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와 내용, 그리고 방법이 어떻게 제시되어 가는지 연구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먼저 신학생 인성 교육은 『독신 생활 양성 지침』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약 20년 후에 발표된『현대의 사제 양성』에서는, 인성 교육이 가장 중요한 교육으로서 명시되기에 이른다. 한국 가톨릭교회 역시 이러한 『현대의 사제 양성』의 가르침에 따라, 『한국 사제 양성 지침』을 통해 인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독립적인 교육 분야로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인성 교육을 독립적으로 부각시키며, 교회는 인성 교육의 목표를 더욱 심화시켜 나갔다. 인성 교육의 목표는, 영성적인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사람들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제가 되는 것’까지도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성 교육의 내용과 방법 역시, 영성적인 차원의 교육과 더불어 인간관계 형성 능력에 관련한 교육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4장은 앞선 연구들의 결과를 근거로, 신학생 인성 교육에 대한 실천적 제언을 하였다. 특별히 수원 가톨릭 대학교의 인성 교육 현실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도출한 후, 법원과 교회의 가르침에서 발견한 법 정신을 바탕으로 실천적인 제언을 하였다. 우선 현재 수원 가톨릭 대학교의 신학생 인성 교육 목표가 독립적인 형태로 명시되어야 함을 밝혔다. 그리고 인성 교육 내용은 재정리 및 보완의 필요가 있었기에, 앞선 연구를 근거로 일곱 가지 교육 내용을 제시하였다. 또한 인성 교육 방법은 5가지 분야, 즉 공동체 생활을 통한 교육, 성교육, 영성 교육과 함께 이뤄지는 교육, 지성 교육과 함께 이뤄지는 교육, 세상과의 접촉을 통한 교육으로 구분하여 제언을 하였다. 논문을 마치며, 신학생 인성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인성 교육 지도자와 신학생 각자의 적극적인 노력과, 양자간의 ‘상호 신뢰 및 협력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과 관계 형성이 올바로 이뤄질 때, 다른 교육 방법들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인성 교육의 내용들이 신학생들의 삶에서 체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신학생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완전함을 닮아, 세상 모든 이들과 올바른 사랑의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는 ‘영혼의 참된 목자’로서 성숙되어 나갈 것이다.

      • 한국 가톨릭교회 “교구장 대리제도”에 관한 교회법적 고찰 : 대리구제도를 중심으로

        이형민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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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빠르게 변화하는 사목환경 안에서 가톨릭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 울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안에서 한국 가톨릭교회 역시 각 교구를 중심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급격한 경제 발전과 함께 성장한 한국 가톨릭교회는 1984년 한국 천주교 회 창립 200주년을 기점으로 1990년대까지 양적, 질적인 성장을 거듭하였 다. 그러나 그 이후 한국교회는 선교 의식의 약화,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공동체 의식 약화, 사목자와 신자들 사이의 직접적 접촉기회의 어려움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현대 교회가 직면하게 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교회 내 몇몇 대형교구들은(서울, 대구, 수원, 부산) 교회법 제476-481조에서 언급 하고 있는 ‘교구장 대리’에 관한 내용을 토대로 각 교구의 환경과 실정에 맞추어 제도로 적용시킨 ‘교구장 대리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 다. 그러나 각 교구의 실정에 맞추어 제도로 정착된 대리구제도는 기대했던 장밋빛 미래와 달리 사목환경에 적용되어 시행의 과정을 거치면서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되었고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제들 안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져만 갔다. 이처럼 ‘대리구제도가 꼭 필요한가?’ 하는 목소리는 논자에게 대리구제도 의 필요성에 대한 재인식과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반증으로 들려왔 다.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여 ‘대리구제도는 어떠한 목적에서 설정되었으 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연구의 과정은 대리구제도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 이해를 시작으로 현행 교회법전 제476-481조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구장 대리’에 관한 내용이 한국 교회 안에서 어떻게 제도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는지, 그리고 제도가 시행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점들과 이에 대한 해결책 및 대안은 무엇 인지 연구함으로써 대리구제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필요성에 대한 재인 식, 그리고 더 나은 교회의 모습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함을 목적으로 하 고 있다. 제1장은 ‘대리구제도’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 이해를 시도하였다. 먼저, 대 리구제도 시행 주체인 ‘교구장 대리’에 관한 개념 이해를 통해 교구장 대 리는 주교들의 품위를 유지시켜 주기 위한 방안으로 시작되었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목 환경 안에서 교구장 주교 혼자 담당할 수 없는 여러 분야를 대리함으로써 사목의 효율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하느님 나라 백 성의 영적 선익을 위해서 마련되었음을 살펴보았다. 두 번째로 ‘대리구’는 교구장 대리가 교구장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일정한 지역을 의미하고 있음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대리구제도’는 ‘교구장 대리’와 그가 위임받은 지역인 ‘대리 구’ 그리고 ‘대리구제도 시행 교령’의 시스템을 갖추어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교회의 제도임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그 형태로 교구의 전체적인 부분을 대리구로 이관한 ‘지역적 대리구제도’와 교구의 사목적인 부분만을 대리구로 이관한 ‘사목 적 대리구제도’로 구분할 수 있음도 살펴보았다. 제2장은 대리구제도 시행 주체이며 교구장 주교의 대리직권자인 ‘교구장 대리’에 관한 교회법적 이해를 위해 교회법 제476-481조를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이를 통해 교구장 대리는 ‘교구의 올바른 통치’를 위해 선임되며 자신의 권한으로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교구장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 안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자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따라서 교구장 대리는 자신의 권한을 사용함에 있어 자신의 생각, 판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구장 주교의 정신과 일치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하며 교구장 주교 와의 친교를 통해 일치를 이루어 나가야 함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제3장은 교회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구장 대리에 관한 내용들을 토대로 각 지역 교회의 사목 환경에 맞추어 제도로써의 모습으로 적용시킨 ‘교구 장 대리구제도’의 모습에 대해 바라보았다. 이에 관한 세부적인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현재 한국 교회 안에서 대리 구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4개의 대형교구(서울, 대구, 수원, 부산)의 시행교 령을 비교․분석함으로써 깊이 있는 이해를 시도하였다. 먼저, 한국 교회 안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대리구제도의 시행을 시도하였 던 서울대교구는 교구장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지역인 ‘대리구’ 안에서 교 구장 주교를 대신하여 권한을 행사하는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비록 대리구제도 시행 교령 안에서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는 언급하 고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부분들은 제도를 시행해 나감으로써 수정․보완 해 내갈 것임을 천명하였다. 서울대교구에 이어 대리구제도를 시행하였던 대구대교구는 서울대교구의 제도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교구 상황과 환경에 맞춘 제도의 모습을 갖춰 나갔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대구대교구는 대리구제도 두 가지 유형 중 ‘지역적 대리구제도’의 대표적인 모델로 ‘작은 교구’의 모습을 지향하는 유형의 특성상 대리구에 교구의 모든 부분을 이관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대구대교구에 이어 수원교구는 서울대교구와 대구대교구의 대리구제도의 진척상황을 바라보며 준비한 만큼 교구의 환경에 맞춘 세부적인 내용들이 교령 안에 잘 정리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수원교구의 대리구제도는 대리구에 교구의 모든 부분을 이관하는 ‘지역 적 대리구제도’와는 달리 교구의 사목적인 부분만 대리구에 이관하는 ‘사 목적 대리구제도’의 대표적인 모델로 교령 안에 그 모습이 잘 드러나 있 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산교구의 대리구제도는 앞선 세 교구와는 달리 교구의 전 지역이 아니라 지역의 일부분(울산지역)만을 분리시켜 지역담당 교구장 대리에게 위임하는 형태를 갖추었으며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리구제 도의 모습은 대부분 수원교구의 모습과 유사하였다. 제4장은 지역 교회 안에서 제도로 정착된 대리구제도가 현실에 적용되면 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점을 살펴보기 위해 대리구제도의 두 가지 유형 ‘지역적 대리구제도’와 ‘사목적 대리구제도’의 대표적 모델인 ‘대구대교구’ 와 ‘수원교구’의 대리구제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객관적인 문제점 도출을 위해 대리구제도의 문제점에 관한 본당 사목구 사제들과 교구청, 대리구청 소속 사제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 하였고 이를 통해 두 가지 유형의 대리구제도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문제 들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의 문제들은 한국 가톨릭교회 대리구제도의 문제점이라고 판단되었다. 따라서 이의 해결을 위해 논자는 도출된 문제점들에 대한 보완의 필요성 을 언급하였고 더 나아가 앞으로 대리구제도를 시행하고자 하는 교구들이 과거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더 진일보할 수 있도록 새로운 대리구제도 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총 4장에 걸쳐 진행된 대리구제도에 관한 연구를 통해 대리구제 도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와 쇄신의 과정을 거쳐 야 하는 제도임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교구장 대리 뿐만 아니라 제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교회 구성원들의 노력과 희 생이 필요함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교회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회 공동체가 대리구제 도를 통해 교회 본연의 목적으로 더 잘 이끌어지기를 바라며 부족한 논자 의 연구물이 이러한 노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

      • 배문한 도미니코 신부의 죽음과 성덕에 관한 고찰

        한용희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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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는 물질만능주의와 과열된 경쟁구도 속에서 목적을 쟁취하고 이익을 얻는 데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의식 안에서 남이야 어찌되었건 상관하지 않는 이기주의가 만연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기주의적인 세태 안에서 절망으로 인해 현대인들은 병들어간다. 하지만 이처럼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이웃을 위해서 살신성인한 이들의 미담이 종종 들려온다. 일본에서 취객을 구하고 자신은 열차에 치인 고(故) 이수현씨가 그랬고 화재현장에서 인명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은 소방관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웃을 위해서 선행을 펼치고 때론 목숨까지 내어준 이들의 소식에 관심을 갖는다. 그 이유는 이기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고인들의 태도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더 나은 가치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질문을 교회에서도 던져봄직하다. 신학생들은 사제서품식에서, 거룩한 결심을 하고 세속에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하느님의 종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직자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도 사제가 된다면 신자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들려오는 이야기에 고민하고 방황하기도 한다. 성직자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 직권남용, 평신도와의 반목상황 등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과연 이상적인 성직자상이란 과연 무엇인가? 다시 질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인식하에, 자신을 희생적으로 내어주었던 배문한 신부의 삶과 죽음에 관해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익히 아는바와 같이 배문한 신부는 한때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이웃을 구한 선행으로 언론에 특필된 성직자이다. 특별히 그는 신학교의 학장으로서 스승이면서 아버지 같은 사랑으로써, 사제직을 준비하는 제자들에게 이상적인 모범을 제시했던 성직자로 기억된다. 그는 신자들을 위해서 희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삶으로써 봉사하는 모습으로 다가갔기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문한 신부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거룩한 사제직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모범이 될 것이며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참된 희생과 봉사의 의미를 일깨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게 주목받기도 했던 한 성직자의 죽음과 성덕에 관해서 일목요연한 정리를 시도함으로써, 그가 시복시성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판별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과정에 있어서, 배문한 신부의 삶과 신앙을 바라보기 위해 우선 그가 집필한 저서와 논문을 참고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소중한 육필 강론원고와 일기를 인용했다. 기록과 저서로 구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가까운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가까운 지인들의 증언은 그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원천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신뢰할만한 진술을 바탕으로 그의 덕행과 성덕에 관하여 고찰했다. 제1장에서는 그의 삶과 관련하여, 출생기, 유년기, 청소년기, 사제성소기간, 사제 성무와 영성적인 특징 등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한 부분도 함께 다루었다. 그의 유년 시절의 성장배경과 정서에 관해서 가족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특이할 만한 점은 그의 집 뒤편에 순교자 묘지가 있었고 그는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사제로서의 좌우명을 “순교정신으로 살길”로 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특별히 청년기의 사제성소 동기와 사제로서의 성무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는 사제로서의 양성기간에는 동료들에게 좋은 표양으로 다가갔으며, 짧은 기간이지만 본당에 부임했을 때에는 ‘좋은 아버지’처럼 자상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를 아버지처럼 좋아하고 따르던 신자들과 함께 피정을 하던 중에 이웃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희생했던 안타까운 사연도 조사하였다. 제2장에서는 그의 ‘죽음’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각각 익사인지, 선종인지, 순직인지, 순교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리고 혹여 ‘추문’에 속하는 불명예스러운 죽음인지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사건 정황과 신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평판을 고려할 때에 옳지 않음을 보았다. 그리고 단지 익사로 보아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조사하였다. 그는 신자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물을 많이 마셨지만, 그것이 일차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그는 평소에 수영에 능숙했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신자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탈진했고 숨 쉬러 나오지 못할 정도로 긴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탈진사’로 볼 수 있다. 그의 죽음이 ‘선종’인 이유에 대해서, 교리의 가르침에 따랐으며 착하고 올바르며 거룩하고 복된 삶을 살았고 영생을 예비하는 삶을 살았던 과정을 고찰하였다. 이 모두에 해당되므로 ‘선종’이었다. 그러나 평신도의 죽음에도 이 용어를 사용하므로, 성직자로서의 고유한 의미에서 좀 더 살펴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순직’인지에 관해서도 살펴보았다. 초대 교회에서는 본래 ‘직무’라는 용어는 없었고 다만 ‘봉사’라는 말만 있었다. 이는 직무의 본질인 ‘봉사’로써 종의 역할을 수행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기원을 둔다. 그리고 직무상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목자로서 양떼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내놓는 목자로서의 ‘봉사’에 있었다. 이러한 목자의 상(像)에 비추어 볼 때에 그의 삶과 죽음은 신자들을 위한 봉사로 일관되므로 ‘순직’에도 해당된다. 그렇지만 ‘순교’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에, ‘박해’라는 요소가 없으므로 순교자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최근 논의가 되고 있는 ‘순교의 현대적 의미’에 관해서도 함께 바라보았다. 결론적으로 그의 죽음에 관해서 중요한 요소인, ‘이웃을 위한 희생적 죽음’이 드러나는 가운데 그의 성덕도 함께 고려하는 ‘증거자’로서 그의 성덕과 죽음을 고찰해야 한다.. 제3장에서는 그러한 증거자로서 그의 삶을 바라보기 위해 성덕과 덕행을 고찰하였다. 여기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고전적인 분류에 따른 ‘향주삼덕’과 ‘사추덕’의 개념을 준용하였다. 먼저 신 망 애 삼덕에 각각 부합하는 그의 생애를 살펴보았다. 그의 신덕정신과 망덕, 애덕을 실천한 삶과 함께 그가 갖추었던 사추덕에 관해서도 다루었다. 사추덕에 있어서는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의 보편적인 정의와 함께 배 신부가 이해하고 실천했던 면도 바라보았다. 이와 함께 그의 성덕에 관한 세상의 평판도 살펴보았다. 주로 방송에서 방영되었던 프로그램과 생전에 잘 알고 지낸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서, ‘아버지 같은 사랑으로 다가간 따뜻한 사목자’ ‘행동으로 덕행을 실천한 성직자’로 신자들에게 기억됨을 알 수 있었다. 그가 평소에 강조했던 바와 같이 그는 “사랑의 혁명가”로서 ‘애덕’의 실천에 뛰어난 성직자였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신자들에게 자상하게 다가갔으며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배려하였다. 그리고 이웃이 위험에 빠졌을 때에는 과감하게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살신성인’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그의 덕행에 있어서 ‘애덕’의 실천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러한 애덕이 시성할 만한 것인지, 좀 더 면밀하게 조사하기 위해서는 베네딕토 14세의 ‘덕행의 영웅성’과 ‘영웅적 덕행’의 목록에 부합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4장에서 다루기로하고 3장을 마무리 지었다. 제4장에서는 시복과 시성을 위해 요구되는 7가지 특징에 관해서 다루었다. 7가지 목록 중에 6가지는 영웅적 덕행에 관련된 것이며 그 중 하나인 덕행의 영웅성에 관해서는 다시 네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였다. 그의 애덕 실천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교적인 애덕’ ‘특출하며 예외적인 애덕’에 관해 다루면서 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치는 애덕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과 다른 애덕 사항이 있다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특별히 이웃을 향한 ‘희생의 덕행’이라는 관점에 비추어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애덕은 눈에 보이는 다른 이웃에게 실천하는 행위로써 드러난다. 배 신부는 평소에 묵상을 통해 하느님께 대한 애덕을 키웠으며 이는 그의 육필과 행동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리고 위험에 빠진 이웃을 위해 희생하였으므로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과 남다르다. 왜냐하면 이웃에게 남는 것을 주는 사랑이 아닌 자신의 전부인 목숨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희생적인 사랑의 실천은 아우슈비츠의 콜베 신부와 비견될 정도로 특출하며 예외적이다. 그는 가스를 마셨던 후유증으로 인해서 오랫동안 육체적인 고통을 겪었지만, 묵묵히 학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였으며 이웃에게 노래로써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고 어려운 처지의 신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의 애덕은 ‘습관화 된 애덕’이었으며 ‘어려운 처지’에서 행했으므로 특별히 ‘영웅적’이라 칭송할 만하다. 그가 바다에서 신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희생했던 사건에서 그의 평판중 하나인 “봄비”처럼 그는 메마른 세상에 단비를 내려주는 애덕의 영웅성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부록에서는, 배문한 신부의 생애와 삶에 관련된 자료를 쉽게 활용하도록 그 내용을 담았다. 그 내용상, 우선 지인들의 직접 증언(녹음하였던)한 것을 문서화하여 증인의 확인과 서명을 받았다. 그 원본과 사본은 따로 보관중이다. 그리고 본 논문에서 참고했던 강론과 훈화 가운데, 분실의 위험이 있는 자료도 문자화하였고, 직접 만나기 어려운 지인들로부터 받은 배문한 신부에 관한 편지를 정리하였다. 또한 알아볼 수 있는 편지들은 스캔하여 싣되, 알아보기 어려울 수 있는 내용들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하여 첨부하였다. 마지막으로 배문한 신부의 육필(肉筆) 두 장과, 지인이 보관하던 시(詩), 세례증명서, 수원 가톨릭대학교와 부산의 생가에 세워져있는 비석 사진을 첨부하였다. 이와 같이 배문한 신부의 죽음과 성덕에 관하여 시복시성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배문한 신부는 사제로서 신자들에게 가르친 바를 몸소 희생하여 살신성인을 실천하였다. 이는 비단 한순간에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음을 바라보기 위해 향주삼덕과 사추덕에 근거하여 평소 삶에서 실천했던 면을 알아보았다. 그는 신학생들과 신자들에게 습관처럼 가르친 대로 “사랑의 혁명가”였으며 이웃을 위해서 희생할 줄 아는 “십자가의 프로선수”이고 그 사랑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랑의 수소폭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덕행으로써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의 향기”로 기억된다. 그러므로 삶의 과정 안에서 덕행에 충실하였으며 목숨마저 사랑으로 내놓은 배문한 도미니코 신부의 시복시성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문한 신부의 덕행과 죽음에 관한 고찰을 통하여,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순교’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영웅적인 덕행과 희생에 따른 순교의 의미도 도출될 수 있음을 고찰하였다. 그가 남긴 희생적인 덕행은 크게 알려져서 사랑과 선행에 목마른 우리사회에 “봄비”와 같은 소식이 되었다. 거룩한 삶을 살다간 한 성직자의 죽음을 베네딕토 14세의 시복시성 규준에 맞추어 일목요연한 정리를 시도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에 부합함을 알아보았고 이는 결국 배문한 신부의 시복시성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의 선행이 잊혀 지지 않고 널리 알려져서 각박하고 이기적인 세상에 그리스도교적인 덕행의 정체(正體)가 드러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선교학 관점에서 바라본 가톨릭 다문화 학교의 인성교육 재고

        김선헌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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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기관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지난 2012년 10월 한 달 동안 ‘다문화 가정 자녀’ 와 관련해서 보도된 국내 신문기사의 수는 약 800개로 집계된다. 물론 같은 내용의 기사를 다양한 언론매체들 이 동시에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숫자는 다소 과장되어 보일 수 있 다. 그럼에도 800개의 기사가 ‘다문화 가정 자녀’라는 하나의 소재를 초점으로 다루었음을 통해, ‘다문화 가정 자녀’가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 이슈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도되는 기사 대부분은 ‘다문화 가정 자녀의 저조한 취학률’과 이 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어려움’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에 정부를 포함한 대부분 기관에서 다양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 는데, 운영되고 있는 다수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일회적이고 교착 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결국, 다수 프로그램은 다문화 가정 자녀가 정체성을 형성함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다문화 가정 자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운영될 가톨릭 다문화 학교의 설립과 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함에 목적을 둔다. 특별히 다종교의 상황 안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될 다문화 학교 설립의 방향을 제안함에 목적이 있다. 위의 연구 문제를 위해 본 연구는 질적 연구 방법을 활용하였다. 각 세 곳의 개신교 다문화 학교와 가톨릭 학교를 선별하여 이루어 졌으며, 각 학교의 교사들과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개신교 학교는 면담에 응하지 않아 충분한 연구를 함에 한계가 있었다. 본 연구의 결과, 대부분의 종립학교가 인성교육을 함에 크게 몇 가지의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학교유형에 서 ‘인가’와 ‘비인가’에 따라 서로 다른 부분에서의 한계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례로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세 곳의 가톨릭 학교는 ‘교사들의 역량 부족’을 비인가로 운영 중인 두 곳의 개신교 종립 학교는 학교를 운영함에서 ‘재정적 어려움’을 한계로 지적했다. 둘째, 교내에서 이루어지는 주된 인성교육은 직·간접적으로 특정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이는 종립학교 설립의 목적인 ‘선 교’와 연관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례로 개신교 종립 다문 화 학교를 포함한 일반 개신교 종립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성 교육은 교리교육과 채플, 성경연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 며, 가톨릭 학교 역시 직·간접적 방법을 통해 교내에서 행해지는 공 동체 미사와 다양한 신심행사 그리고 종교수업의 참석을 학생들에 게 부추기고 있었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운영될 가톨릭 다문화 학교 설립의 당위성과 선교학적 입장에서 가톨릭 다 문화 학교의 운영방안을 제언하였다. 주요어: 가톨릭, 다문화 가정 자녀, 다문화학교, 인성교육.

      • 儒家의 君子之道와 가톨릭 司祭 靈性 比較

        김진범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199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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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儒敎의 君子之道와 가톨릭 司祭 靈性의 比較 本 논문은 儒家의 이상적이며 현실적인 인간상인 君子와 가톨릭의 司祭를 比較宗敎學的인 觀點에서 비교하여 현대의 이상적 인간상의 思想的 根據를 마련해 보고자 시도해 보았다. 이 시도의 목적은 미래의 가톨릭 司祭로서, 그리고 東洋人의 한 사람으로서 현대의 바람직한 人間像을 구현하고 재정립하는데 있고, 도한 東洋的 司祭像에 一助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본고는 먼저 君子와 司祭의 신원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이들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본 후, 그들이 자신의 신원을 완성해 가는 수양 방법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그 수양의 완성인 安人과 司牧 활동을 비교 고찰해 보았다. 먼저 군자와 사제의의 신원을 고찰해 보았고, 이들의 정체성의 공통된 완성인 성인을 비교하였다. 첫째,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서로 같다. 유교나 가톨릭이나 성인은 자신의 하느님 또는 하늘로부터 받은 기질을 최대한으로 성장시키고 완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둘째, 孔子의 仁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완성은 같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는 인이 사랑과 대치되는 개념이 아닌 비슷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제나 군자가 인과 사랑을 완성 시키는 것은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에서 같다고 보았다. 셋째, 사제는 성인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구자는 유교에서 가장 중신되는 인물인 孔子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孔子는 사실 겸손하여 자신을 성인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공자를 그 제자들이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사실이기에 현대의 군자는 공자를 사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사제가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과 군자가 공자를 사표로 삼는 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를 닮는 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공자를 사표로 삼는 다는 것은 공자를 본받을 뿐 자기 나름의 성인을 만들어 간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유교나 가톨릭이나 성인은 만 백성을 하느님 또는 하늘이 내려준 그대로를 성장시키고 仁과 사랑의 완성을 통해서 大同社會와 하느님 나라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임은 같다. 즉 군자와 사제의 궁극 목표는 바로 이것이고 여기에서 그 신원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군자와 사제의 수양에 중심이 되는 德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수양과정을 고찰하였다. 먼저 智仁勇 三達德과 信望愛 向主三德을 비교해 보았다. 먼저 ‘知’와 ‘信’을 비교해 보았는데, 한마디로 信德이 知보다는 넓은 개념이라고 불 수 있다. 즉 信德은 知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다. 다라서 알고 行하는 것을 뛰어넘어 온전한 信賴를 요구하는 德이 信德이라고 볼 수 있다. 君子의 ‘知’가 天命을 알고 人間을 알아 迷惑됨이 없는 것을 뜻한다면, 司祭가 갖는 信德은 사제의 온 삶안에서 하느님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인 동시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써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함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勇’과 ‘望’을 비교해 보면, 이것은 望이 勇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거의 비슷하지만 望德이 보다 종교적이라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勇의 특징을 두가지로 보아 부끄러움이 없음과 强하게 끝까지 항구함이라 볼 수 있다면, 망덕 역시 ‘하느님을 바람’이라는 것에서 양심의 가책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뜻하며 過望과 切望없이 항구함이라는 것에서 强한 것이며 끝까지 항구한 것이다. 이와 같이 勇과 望은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君子의 勇이 인간적 사회에서의 성공을 의미한다면, 司祭의 望德은 인간적 사회적 성공보다는 내세에 대한 바람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희망이라는 데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군자와 사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인 仁과 사랑을 비교해 보았다. 仁과 사랑은 거의 비슷한 개념이라고 위에서 보았다. 仁이 知와 勇응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사랑 역시 믿음과 희망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볼 수 있고, 君子의 仁이 克己復禮와 忠恕라는 행동에서 體得된다면 사제의 사랑 역시 자신의 직무수행 속에서 體得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君子의 仁이 자기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 더 나아가서는 인류전체에 대한 사랑을 포괄하고 있다면, 司祭의 愛德 역시 인간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君子의 仁이 司祭의 愛德보다 자기 사랑에 대한 비중을 좀 더 크게 갖는다면 사제의 애덕은 자기 사랑보다 자기포기에 더 큰 비중을 두며 한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 사랑이라는 더 큰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형제자매들인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대명제가 있는 것이다. 즉 유교의 인이 윤리적인 사랑을 나타낸다면 사제의 사랑은 더 크게 종교성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類似點과 相異點에도 불구하고, 君子의 智仁勇 三達德의 修己와 司祭의 信望愛 向主三德의 修德이 갖는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것이 행하지 않고는 體得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양 방법 중 두 번째로 君子三戒와 福音三德을 비교해 보았다. 먼저 戒之在色과 貞潔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君子에게 있어서 色을 경계한다는 말은 女色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즉 獨身을 권고하는 말은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그러나 司祭에게 있어서 貞潔의 德은 獨身으로 대표되는 德이며 獨身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제의 독신생활이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상태, 또는 금욕 생활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 가지 자연적 경향, 즉 생식 기능, 부부애, 자연적인 父性을 하늘나라의 사랑을 위하여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군자의 戒之在色이 갖는 인간적 본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제가 선택하는 독신은 바로 사제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것은 군자가 求色보다는 道에 전력을 다하듯,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갈림 없는 마음의 온전한 투신이 내재된 정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 戒之在鬪와 順命에 대해 비교해 보았다. 君子에게 있어서 戒之在鬪는 忠, 恭敬, 禮, 孝悌의 德들을 包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한마디로 윗사람 공경과 아랫사람 공경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司祭의 順命 역시 윗사람인 主敎와 동료 사제들, 신자들과의 화합을 내포한다. 이러한 화합의 근저에는 겸손의 덕이 밑받침되어 있고, 君子가 偏黨하지 아니하고 화합하듯이, 사제 역시 하느님의 뜻을 쫓으려는 온전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 안에서 화합한다. 이러한 司祭의 順命이 君子의 戒之在鬪와 다른 점은, 司祭의 順命은 양떼에게 언제나 자신을 내어 줄 준비가 된 순명이라는 점이다. 즉 군자의 鬪를 경계함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언제나 平等關係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제의 순명은 군자의 戒之在鬪에 비교해 兼愛의 마음을 더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戒之在得과 淸貧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君子의 得을 경계함이나 사제의 淸貧은 모두 물질에 있어서의 超脫을 포괄한다. 또한 물질에서의 초탈 뿐 아니라 자기중심주의에서의 초탈 역시 같은 맥락을 갖는다. 즉 君子는 安貧樂道함으로써 富貴를 草芥와 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며, 사제 청빈 역시 하느님께 모든 것을 從屬시키기 위해 자기에게 자유로워지고 초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君子에게 있어서 戒之在得은 바로 德을 本으로 삼고 財貨를 末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君子의 戒之在得은 의로운 부귀에 대해서 인정하는 편이다. 즉 君子의 得은 義로운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司祭의 淸貧은 의로운 재화까지도 포기하는 靈性을 추구하게 만든다. 이는 사제 자신이 가난하게 됨으로써 가난한 이들을 쉽게 우선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司牧的 측면에서의 청빈을 의미한다. 君子의 戒之在得과 司祭의 淸貧의 차이점은 의로운 재화를 인정하는가, 아니면 그것가지도 포기하는 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君子三畏와 하느님 말씀의 연구에 대해 살펴보았다. 君子三畏는 畏天命으로 集約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君子의 畏天命을 중심으로 司祭의 하느님 말씀의 硏究와 比較해 보았다. 君子에게 있어서 인간에게 내재된, 득 天이 稟賦한 德을 밝히는 것이 畏天命의 길이다. 따라서 君子가 해야 할 일 중에 제일 첫 번째의 것이 天命을 아는 일일 것이다. 이와 같이 사제가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한다는 것 역시 사제에게 있어서 첫 번째 任務인 것이다. 또한 君子의 畏天命의 길이 天命을 아는 것에 있다면, 그것은 바로 依於仁으로 그 방법을 삼는 다는 것이다. 사제 역시 하나님 말씀의 연구에 있어서 말씀 선포의 열의와 함께 실생활에서의 사랑의 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君子의 畏天命과 사제의 하느님 말씀 연구는 그 방법이 동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儒家의 畏天命의 실현 방법이 孔子가 이야기하듯 下學而上達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면, 사제의 하느님 말씀 연구는 이미 계시되어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익히고 실생활의 삶으로 이어진다는 면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즉 儒家의 방법이 上向的 性格을 가지고 있다면, 司祭 靈性에 있어서 하느님 말씀 연구는 下向的인 性格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에서 다르다. 이것은 바로 啓示宗敎인 가톨릭과 上帝崇拜 보다는 人事를 중시 여기는 儒敎의 큰 차이점을 克明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다. 다음은 君子의 安人과 司祭의 司牧이라는 면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수양을 세상에 펴 나가는지 살펴보았다. 첫째로 君子의 德治나 司祭의 司牧에 있어서 똑같이 중용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군자는 契矩之道로써 백성들에게 솔선수범하여 백성이 본받게 만드는 정치를 해야 하며, 사제는 자신이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목자적 권한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봉사적 권한으로 받아들여 목자적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자의 덕치가 백성들의 修身을 돕는 정치라면 사제의 사목은 신자들의 聖化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구자의 덕치나 사제의 사목은 본질적으로 거의 같은 맥락에서 고찰된다 하겠다. 왜냐하면 군자의 덕치가 仁愛를 실행하는 것이고 사제의 사목이 사랑을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君子의 正人心과 司祭의 靈性指導 역시 거의 같은 맥락에서 통찰 되었다. 먼저 군자가 正心을 통해 正人心에로 나아가는 爲己之學을 指向하고 있다면, 사제 역시 자신이 먼저 진실의 상태와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있지 않으면 영성지도를 할 수 없다는 논리는 서로 상충한다. 또한 군자의 정인심이나 사제의 영성지도는 모든 사람이 본래 하느님 또는 하늘로부터 받은 마음의 손상된 부분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말하는 것에서 같다. 이처럼 군자나 사제의지향점이 모두 같음을 볼 수 있다 하겠다. 그런데 다른 점은 군자의 정인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선하게 하는 인간적 관계에 주안점을 둔다면, 사제의 영성지도는 인간관계 보다는 하느님과 피지도자의 관계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다. 즉 사제가 피지도자와 인간적 관계를 돈독히 하기 보다는 그 일차적 관심사가 하느님과 피지도자의 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인간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군자의 정인심은 군자가 주체가 되어 범인들의 마음을 바르게 하지만, 사제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협력자에 불과하고 객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성지도의 주체는 하느님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인심과 영성지도의 주체가 다르다는 면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고 하겠다. 셋째로 儒家의 大同社會나 가톨릭의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과 모든 인간 또는 天人이 合一된 社會이며 하느님과 一致된 사회이다. 여기서 고찰하고 비교해 본 것은 이러한 이상 사회에 도달하는 과정 중 君子와 司祭의 役割이다. 먼저 군자가 대동사회의 건설을 위해 大公을 실행하고 만민을 사랑한다면, 사제는 구원이신 예수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샘솟는 사랑(Amor fountains)을 전하는 것이다. 또한 군자가 대 사회적으로 경제적인 면에서의 人間愛를 실현해 모두의 平等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사제 역시 경제 정의의 증진을 통해 구조적 모순에 대한 총체적 변형을 이루고자 한다. 즉 모두 세계의 평화와 복지사회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면에서 군자와 사제의 이상사회 건설은 같은 맥락을 띠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군자의 대동사회 건설은 이 지상의 이상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반면, 사제의 하느님 나라 구현은 천상의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은 천상의 하느님 나라에 있다는 것이 크게 다른 측면이다. 즉 이상사회 건설의 시점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군자는 그 시점을 현시대를 지향하는 것이고 사제의 하느님 나라 구현은 그 시점이 세상의 완성인 종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사제는 세상의 완성인 하느님 나라의 도래로써만 이상적인 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것은 군자와 사제의 종교적인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아주 큰 차이점인 것이다. 지금까지 東洋의 理想的 人間像인 君子之道와 가톨릭의 理想的 人間像인 司祭의 靈性에 대해 비교해 본 결과 君子之道나 司祭靈性은 큰 차이점이 없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바라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結論的으로 儒家와 가톨릭의 제일 큰 차이점은 儒家는 下學以上達해 깨달아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고 그리스도교는 啓示 宗敎로써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照明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君子之道와 司祭 靈性이 참인가성 회복에 갖는 意義는 사람이 자신의 본성인 착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인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窮極的인 目標는 하느님 또는 天과 인간이 合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야만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고 大同社會 또는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의 관점에서 본 세례성사에 관한 고찰 :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화 가능성

        손기정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0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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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가톨릭교화와 개신교의 세례에 대한 이해를 세례의 의미, 조건, 예식, 유아세례의 네 가지 구조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 일치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16세기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교회는 분열이라는 아픔을 겪게 되었으며 그 분열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종교개혁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당시의 종교적인 폐해가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사실 이 당시 세례에 대한 교의에 대하여 가톨릭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의 사이에서는 갈등이 없었다. 그러나 개신교의 끊임없는 분열은 세례이해의 방식과 해석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게 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그 간격이 더 벌어지게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교회일치운동이나 대화에 서로 적극적이지 못했던 양측 교회는 '하나의 세례'를 이해 하는데에 있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세례교리는 교회의 전통 속에서 명료하게 정립된 것이었기에 교회분열 초기에는 이렇다할 논쟁이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신교교파들은 그들의 원칙을 세워 세례의 이해의 차이를 벌어지게 하였고 '오직 성서만으로'라는 그들의 이해방식에 맞춰 여러 가지 세례 이해의 전통적 요소들을 배격하기까지 이르렀다. 특히 '유아세례'에 대한 개신교의 입장은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방법으로 성경의 분명한 증거와 또한 유아세례가 시행된 성경 내용 안에서의 실례가 전혀 없으므로 유아세례는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유아들이 신앙고백을 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유아세례의 교회공동체성을 약화시킴으로써 모든 이에게 열려진 하느님의 구원약속과 교회의 전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는 초대 교회 때부터 세례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입문성사'로써 교회공동체의 일치와 화합을 위한 성사로 인정해왔다. 세례의 의미, 조건, 예식, 유아세례 등은 역사 안에서 발전되고 교회 안에서 공적으로 선포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개신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세례이해를 발전시켰다. 또한 너무나 많은 개신교의 교파분열상황은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그리스도교 입문성사인 세례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결과도 초래하였다. 세례의 어떤 요소도 축소되거나 왜곡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지금은 세례 예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오히려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사이의 일치를 방해하고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부딪히는 문제가 되었다. 세례의 일치적 의미에서 본다면 이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일치의 노력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세례이해에 대한 상호이해도 넓어지고 있기에 희망을 갖게 된다. 예수님께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셨듯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세례로써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 희망을 경험하고 있다. 일치는 획일적으로 다른 것에서 하나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다양성 안에서의 대화로 매일 구체적으로 다각적인 협력에로 진행되어야 한다. 다양성 안에서의 협력이야 말로 다른 것에 관해 지배하거나 간섭하려는 의지 없는 일치를 보증하는 것이다. 각각의 교회의 세례이해를 가치 있게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은 충만한 교류와 화해 안에서 가능한 참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협력은 각각의 교회의 가르침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제한되지 않는다. 참으로 이를 위해서는 서로에게 다가가고, 다른 것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나려는 원의를 갖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일치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양 교회가 가질 기본자세가 중요하다. 일치운동을 누가 왜 하여야 하는 것인가? 진정한 교회일치의 원리가 무엇인가? 일치를 이룩하여주는 요소가 무엇인가? 이 같은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하나의 신앙고백과 전례의 공동집전과 하느님 가족의 형제적 화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공의회 문헌이 교회의 일치성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성삼위의 고백과 신망애 삼덕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은 성서적이면서 동시에 세계교회협의회의 선언과도 공통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교회일치의 원리를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구현시키는 것은 거룩한 전례, 즉 본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세례성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전례행위의 공동 집전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회복하기 위하여 분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서도 안 될 것이다. 세례는 본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측 교회의 대화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일치적 관점에서 이제는 서로의 주장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세례에 관한 신학적, 성서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공유해야한다. 또한 현재의 시각에서뿐 아니라 교회의 역사 안에서 세례가 차지하는 역할과 위치를 연구함으로써 세례를 일치적인 차원을 더욱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 수원교구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위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의 활용 가능성 연구 : 폴 리쾨르의 성서 텍스트 해석 이론을 중심으로

        박상일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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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 부흥 이후, 근대의 교리교육은 이성적 합리주의의 영향 아래 정식화(定式化)된 교의와 규범, 교리의 형식으로 대상자에게 제시되었다. 이 때문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계시의 성격에 따라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강압적인 교리교육이 이루어졌다. 이에 20세기부터 교리교육의 부흥운동 안에서 시대 징표적인 반성으로 교리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쇄신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교리교육은 내용에 있어, "구원의 역사를 살아있는 실재처럼" 전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이는 교리교육 안에서 성서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고, 교리교육 방법론적 측면에서 "생활의 궁극 의미를 다루며, 복음의 빛으로 삶 전체를 비추어 삶에 영감을 주고, 삶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계시와 이것이 전달되는 매개로서의 성서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자극하였다. 이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수원교구 청소년 교리교육에 대한 쇄신의 노력으로 제시된 성서 중심 교리교육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수원교구 시노두스 이후의 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교리교육 대상자들의 부정적 평가가 밝혀준 바와 같이, 교리교육 신학은 근본적으로 하느님 계시의 체험을 유발시키는 새로운 교리교육 방법론으로 시대의 징표를 해석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다. 여기에 교회의 교리교육 문헌들은 거룩한 독서를 통한 하느님의 계시와 개별 인간의 직접적인 만남으로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성서를 매개로 개현되는 계시, 계시와 대면한 독자의 체험을 논리적으로 규명하는 폴리쾨르의 성서 텍스트 해석 이론에 의해 그 가치가 재조명될 수 있다.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거룩한 독서가 현대의 청소년에게 갖는 탁월함을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에서 강조한 바 있다. "여러분을 위한 본인의 소망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한 '성장'입니다. 자연과의 접촉과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하느님과의 만남을 간접적으로 도와 줄 수 있지만, 하느님과 만나는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방법은 기도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러분 자신보다 여러분을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에게,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의 양심을 열어 제치십시오. 그분과 대화를 하십시오! 성서를 읽고 묵상함으로써,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깨치십시오. 이것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 그분과 만나는 수단이요 방법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개인의 주관과 감성이 우선시 되고 있는 현대의 청소년에게, 하느님 계시의 매개이자 직접적인 체험의 장이 되는 성서의 탁월함을 드러내준다. 거룩한 독서는 개별 주체의 능동적인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얻는 신비체험이 이성에 의한 이해라기보다는 감성적인 느낌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기도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다양한 형태로 다가가는 부르심 안에서 고유한 신앙으로 응답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상을 지닌 청소년에게 적절한 교리교육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실제의 청소년 교리교육 현장에서 거룩한 독서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제시될 수 있겠는가?"라는 실천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의 연구가 지금까지의 교리교육 방법에 대한 연구들의 한계를 답습하지 않기 위하여, 먼저 교리교육이 근본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성령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즉 앞선 연구들은 교리교육의 현장에서 교육자를 위한 기술(skill, technic)에 대한 새로움을 전해주는 것으로 일관되어 왔다. 이에 따라 또 다른 새로움에 대한 유능함을 가진 교사를 양성하는 과제를 남겨, 교리교육이 대상자가 아닌 교육자를 중심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역설적 상황이 초래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교리교육 신학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숙고함으로써, 이제 교리교육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리교육을 완성시키는 성령의 이끄심에 대한 연구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본고에서 전개한 폴 리쾨르의 성서 해석학을 중심으로 교리교육 안에서의 성령의 작용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폴 리쾨르의 성서 해석학은 교리교육 문헌이 신비체험의 과정으로 제시한 귀납과 연역의 방법으로 거룩한 독서의 수행을 설명해 준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성서 텍스트 세계의 의도에 따라 주체의 자아가 투영되고, 이를 자기화 함으로써 새로운 자기 이해인 신앙으로 나아가게 된다. 여기에서 자아가 투영되는 힘은 주체의 단절과 비판에 의한 개방으로 제시되지만, 투영시키는 텍스트 세계의 의도가 갖는 힘에 대한 설명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성서의 언어가 표지로 작용하여 텍스트의 세계를 지시하고, 독자는 이를 따라감으로써 텍스트의 세계인 계시와 대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주체에게 작용하는 성령의 이끄심은 성서의 언어를 통하여 주체의 실존에 대한 부르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바, 실존에 대한 부르심과 성령의 이끄심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리쾨르의 거리두기에 의해 성서 텍스트는 저자, 상황으로부터 의미적 자율성을 갖으며, 이러한 차원에서 거룩한 독서를 수행하는 주체는 성서의 저자,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성서 자체의 의미로 현재의 자아에 대한 성령의 이끄심을 감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교회의 전통 안에서 낭만주의 해석학에 의해 전개된 양식 비평, 편집 비평, 사회학적 비평 등의 성서 연구 방법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생산적인 기능을 초월하는 기능이 리쾨르의 거리두기 개념에 의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위의 비평 방법들을 초월하여 성령의 이끄심을 감지하게 하는 이러한 기능에 대한 연구가 과제로 남는다.

      • 한국교회의 가톨릭 교육에 관한 교회법적 고찰 : 『교회법』 제794조를 중심으로

        박상진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2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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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교육’의 목표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현시대에서 대두되는 문제로서 물질 만능사회, 이성주의적 사고체계, 그에 따른 사회적 불균형과 사회안정망의 해체 등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 교육분야 또한 현시대의 사조를 흡수했지만, 이에 반해 현대인들은 오늘날의 문제로 야기된 교육의 한계점을 인식 못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존재한다.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 실현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는 신성과 인성을 지닌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영적인 공동체이며 동시에 가시적인 사회를 이룬다. 그러기에 교회는 시대적 징표를 읽기 위해 세상의 흐름에 주목하는 동시에 그 흐름에 휩싸일 수 있는 위험성도 존재한다. 세상의 변화에 치우쳐 내면의 종교성보다 외적이며 물질적인 부분을 중시하고, 공동의 가치, 신앙의 가치보다 개인의 가치가 중요시되는 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교육은 일반 사회의 교육과 어떠한 차이를 가지는가? 사회에서 말하는 교육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인간의 잠재 능력을 일깨워 주기 위해, 그리고 훌륭한 자질, 원만한 인격을 갖도록 이끌어 주기 위한 목적들을 지닌다면, 가톨릭 교육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해 복음적 가르침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인격의 성숙을 추구하며, 최종적으로 영혼의 구원이라는 신비를 깨닫고 살도록 가르치는 목적을 지닌다. 참조: 『교회법』, 제217조. 즉 사회 교육과 달리 가톨릭 교육은 복음적 가치와 기준을 통해 인격을 성숙시키고 나아가 최종 목표인 영혼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논자는 교회만이 지닌 독특한 교육의 목적이 신앙인들 삶 안에서조차 깊숙이 자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이러한 지향은 오늘날 잘 실현되고 있는가?’ ‘잘 실현되고 있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가톨릭 교육이 주는 특별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들을 던지게 되었다. 논자는 가톨릭 교육에 대한 여러 가지 접근들 중 교회법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교회법전은 가톨릭 교육의 차원에서 가정교육에 대한 중요성부터 출발하여 모든 신자들이 지녀야 할 교육의 의무와 권리, 나아가 교회와 사회에서 제공되어야 할 교육의 사명까지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톨릭 교육이 구체적으로 교회 내에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교회법의 가톨릭 교육은 오늘날 교회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가르침과 현실의 괴리를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지 고민하고자 한다. 특별히 논자는 한국교회 안에서도 가톨릭 교육이 실현될 수 있는 여러 장소들 중 본당 사목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래의 사목자를 꿈꾸는 논자의 상황과 더불어 『교회법』 제794조에서 제시하는 영혼의 목자들에 주목하기 위함이다. 본당 사목구 주임의 교육에 대한 막중한 책임과 더불어 교육의 다양함과 유연함을 펼칠 수 있는 본당 사목구를 살펴봄으로써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가톨릭 교육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본고는 현행 교회법전 안에서 나타난 가톨릭 교육을 탐구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니고자 한다. 첫째, 가톨릭 교육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가톨릭 교육을 오늘날 현시대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교육이 현시대로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야기될 더욱 급격한 변화에 우리 교회는 어떠한 자세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가톨릭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으로 한정한다. 현행 교회법전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세례로 그리스도께 합체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성되고, 또한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하느님이 교회에게 이 세상에서 성취하도록 맡긴 사명을 각자의 고유한 조건에 따라 실행하도록 소명받은 자들이다.” 『교회법』, 제204조.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그리스도께 합일되어가며 성숙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시대 상황 안에서 가톨릭 교육의 목표 또한 동일선상으로 점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논자의 관점은 ‘세상 속의 교회’ 안에서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톨릭 교육의 본질과 현대의 쇄신을 불러일으키고자 함이라 할 수 있겠다. 연구 과정으로, 제1장에서 가톨릭 교육의 개념과 기본 원리, 구성원 등 일반적인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구체적으로 가톨릭 교육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제2장에서는 교회법 연구 방법론의 핵심을 구성하는 법원(fontes) 분석을 통해 『교회법』 제794조를 살펴볼 것이다. 이는 법의 제정 이유를 밝힘으로써 법정신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제3장에서는 현행법전 이후 교회 가르침들을 탐구해봄으로써 가톨릭 교육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제4장에서는 한국 교회의 가르침을 살펴봄으로써 현시점에서 가톨릭 교육의 의의가 잘 실현되고 있는지 성찰해볼 것이다. 나아가 오늘날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전환기를 맞을 교회와 교회의 교육에 대한 실천적인 제언으로써 가톨릭 교육의 가치를 드러내고, 오늘날 교회와 본당 사목구 주임을 향한 시대의 요청에 대한 전망을 이어보고자 한다.

      • 사목 양성 중심의 통합적 신학교 양성을 위한 고찰 : 『사제 성소의 선물』을 중심으로

        최재승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2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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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신학교 양성을 사목 양성이 중심이 된 통합적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사제 성소의 선물』이 반포된 이후 통합 양성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사제단 중에서도 젊은 사제단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최근까지 이뤄진 기존 신학교 양성 방법의 제고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사제 성소의 선물』에서 언급되는 통합양성이 기존 사제 양성 관련 문헌들에서 다루는 양성과 어떠한 차이를 가지는지 살펴본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출간된 두문헌 「사제 양성 교령」과 『현대의 사제 양성』에서 언급하는 네가지 양성 차원이 『사제 성소의 선물』에서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했는지 알아본다. 이어서 『사제 성소의 선물』에 언급되는 네 가지 양성 차원이 ‘사목자 양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통합적 관점에서 서로 긴밀히 연결되는지 살펴보며, 궁극적으로 문헌에서 추구하는 사목자 양성에 관하여 고찰한다. 위의 결과를 토대로 3장에서는 수원가톨릭대학교 신학생과 해당 신학교 출신 10년 차 사제단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다. 그리고 설문조사의 결과를 토대로 현재 신학교에서 이뤄지는 네 가지 양성 차원이 ‘사목자 양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에서는 현실진단을 통해 알아본 현 신학교 양성과정이 통합적 관점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하도록 몇 가지 방법을 제언한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다음의 결론에 도달한다. 첫째, 가톨릭교회에서 추구하는 사목자 양성은 공동체 정신과 선교 정신의 함양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기존 문헌에서도 나오지만, 『사제 성소의 선물』에서 더욱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언급된다. 둘째, 신학교에서 이뤄지는 네 가지 양성 차원은 사목 실습기 혹은 방학과 같은 일정 기간을 통해 신학생의 내면에서 통합되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이를 진단하는 보고서(Testimonium)의 작성 방법과 내용 또한 좀 더 통합적 관점에서 양성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기초신학적 관점에서 계시하는 하느님과 신앙하는 인간의 관계가 부르시는 하느님과 성소의 길을 걷는 신학생의 관계로 과연 치환될 수 있는지 과제로 남겨둔다. 그리하여 계시가 양성과정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신앙인의 자세로서 그 양성에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 것인지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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