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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시대 21세기에 지역과 문화가 상생하는 길은 문화예술의 지역축제화이며, 그 가운데 세계적 축제화가 가능한 비엔날레가 있다. 비엔날레 역사 속에서 도시 인지도가 높은 비엔날레라고 할지라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하면, 지역적 특색을 잘 살리거나 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아이템으로 위상을 높이는 것도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마케팅 믹스전략인 6가지 요소는 첫째, 조직 전략으로 도심의 대표장소들과 협약 및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교류와 만남의 공간이 되었고, 둘째, 이미지 전략으로 5·18이라는 광주의 정체성을 포지셔닝하여 각 행사 때마다 이 범주 내에서 각 이슈가 전개되었으며, 셋째, 포인트 전략으로 광주비엔날레의 중외공원 문화벨트와 광주 지역의 브랜드 가치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장소 연계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고, 넷째, 타깃 전략은 각 관람객 연령층 구분에 따라 관람에서의 도슨트와 프로그램 개발이 달리 나뉘어졌다. 다섯째, 채널 전략으로 광주비엔날레의 커뮤니케이션적 실질적 수단과 방법이 되어 각기 장소성에 따라 다른 매체가 활용되고, 여섯째, 지역 전략은 온라인상의 사이버 매체와 더불어 오프라인의 국제적 학술행사 및 교육프로그램과 비슷한 시기의 개막을 하는 아시아권 내의 비엔날레와의 연계로 진행되었다. 특히 향후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건립으로 시너지 효과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은 전시공학으로 인하여 관람의 최적 효과와 광주비엔날레의 접근성을 높이는 장소성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하는 것이다. 또한 수용제반시설과 충분한 기간의 밀도 높은 홍보작업 장소마케팅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이다. 이에는 지역 주민과 외부 관람객을 위한 각기 적절한 전략으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고,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전략이 고려되어야 하며, 장소성의 차별화를 위한 브랜딩은 광주의 정체성이 공감되도록 전제되는 장소성 연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에 대한 개방적 사고방식과 그에 합당한 처우가 필수적이며, 정책 및 실행에 있어서 투명성이 요구된다. 그리하여 문화예술행정 및 정책 개발과 함께 제3섹터 방식의 전문가 집단과 전문 마케터의 위탁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중앙정부의 특정 담당 부서에 의존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지역 행정을 수행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문화를 창달하기 위하여 스스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여 여러 타 행정 분야 및 다양한 사회적 네트워크와 장소들이 연계되는 복합적 추진이어야 한다. 그러면 양적·질적 성과로 확산 및 발전되어 아시아 국가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장소마케팅 전략의 변화는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타지역, 나아가 타국가로까지 번창할 수 있다. 설사 외부의 입장에서 볼 때, 극단적으로 다른 문화권의 영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국적이어서 이색적인 것 자체가 독창적 수용이 되는 문화로 재창출 되며, 문화 및 예술의 콘텐츠가 담긴 건축물도 장소마케팅의 랜드마크적 활용이 된다. 정치적 권력구조가 쇠퇴하고 경제중심, 문화적 가치가 증가하면서 이러한 장소마케팅과 관련한 문화산업이나 이벤트는 앞으로도 훨씬 더 매력적이면서도 위력적인 랜드마크로 설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미지는 경제적 효과에도 파생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하여 해당지역과 그 인근 지역에서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비엔날레 및 예술문화의 중심지로 도약하여 총체적으로 통합되면서도 다양성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과 활발한 흐름으로 문화적 맥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광주비엔날레의 역할이자 미래의 중요한 좌표이고 모든 이들이 배우고 공감할 수 있는 장소성으로 계속 움직이고 이어지는 원동력이 되어 세계 비엔날레에 미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기점이 될 수 있다. <Key Word> 지역 문화, 정체성, 장소성, 장소마케팅, 마케팅 믹스 전략, 광주비엔날레,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제미술행사, 메가이벤트, 지역 축제, 네트워크. In the 21st century which is the era of culture, the way in which the region and the culture coexist is to make the culture and art as the regional festival and there is the Biennale for which creating as international festival is possible among them. In the history of Biennale, while there is a thing which does not exist at present even if it is the Biennale that the profile of city is high, there is also a thing which enhances the status by making the best of regional traits or the artificially created items. As for six constituents which were the marketing mix strategies for Gwangju Biennale, firstly, as the organizational strategy, it became a space for the exchange and the meeting by arranging with representative places of downtown and building the partnership and secondly, as the image strategy, each issue was developed within this category in every each event as positioning the identity of Gwangju which was May 18 movement and thirdly, as the point strategy, it established a strategy that linked the place with the culture belt of Jungwae Park of Gwangju Biennale and the spots which had the brand value for Gwangju region as the center and Fourthly, as the target strategy, the docent and the program development for viewing were split according to separating the age group of each audience. Fifthly, as the channel strategy, a different medium was used in accordance with each place as becoming the communicative practical means and ways for Gwangju Biennale and sixthly, the regional strategy was carried out with connection to Biennales within the sphere of Asia which opened in the similar period with international academic events and educational programs in offline with online cyber-medium. Especially, it is considered that it would show the synergy effect with building the Asian Culture Complex in the future. The point is to give the maximum amount of effort for optimum effect for the viewing due to the display engineering and the place’s characteristic that enhances the accessibility to Gwangju Biennale. Moreover, studying about various accomodations, dense promotion operation having the enough time and the place marketing also are the one of the tasks. For this, the consensus-making is needed by each proper strategy for regional residents and the external audience and the strategy for the ordinary people not only for experts has to be considered and as to the branding for differentiating the place’s characteristic, the connection for characteristic of place that is assumed in order that the identity of Gwangju could be sympathized is required. For that, the open ways of thinking about the professional manpower and the proper treatment for that are essential and the transparency is needed in terms of policy and execution. Accordingly, the consignment to the expert group of the way of third sector and the professional marketer with the administration of culture and art and the policy development has to be devised. Therefore, It has to be a complex prosecution in which many other fields of administration, various social networks and places are connected each other as the local government which carries out the regional administration comprehensively is in charge of a leading role by itself to develop the regional culture rather than depending on a certain division in charge of it. Then, it would be able to spread and developed as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results to grow as the nation brand in Asia. In fact, the change of the place marketing strategy could thrive not only in related region but also to other countries, furthermore. Even if having the influence from other cultural area to the extreme when seeing at the external position, the unique thing itself due to being exotic is recreated as the culture which becomes the original accommodation and the structure in which cultural and artistic contents are embodied also is used in the marketing with landmark attribute. As a political power structure declines and economy-oriented and cultural value increases, the possibility that such a place marketing and related cultural industry or event would be set as the sight better attractive and at the same time, powerful landmark is high. Such an image would have a derivative effect on the economic effect, too. So, as leaping not only as our country in the relevant area and the nearby area of that but also as the center for Biennale and the art and culture in Asia, cultural context has to be formed as the catholicity with which it is combined generally and is able to embrace it with the diversity at the same time and the lively flow. Being able to offer such a vision is the role for Gwangju Biennale and an important coordinate for the future and as becoming a driving force that continuously moves to and is connected to the place’s characteristic in which everybody could learn and identify with, it could be a starting point that forms the network of the art in world Biennale. <Key Word> regional culture, identity, the characteristic of place, the place marketing, the marketing mix strategy, Gwangju Biennale, the culture central city in Asia, Asian Culture Complex, international art event, mega event, regional festival, network.
廣域地方議會의 運營改善에 관한 硏究 : 光州廣域市議會를 中心으로
신이섭 全南大學校 行政大學院 2004 국내석사
지역주민의 대표기관이자 지역사회 정책결정기관으로서 지방의회가 어떻게 지역주민의 입장과 의견을 성실하게 반영 할 것인가 하는 점은 지방의회 출범당시나 13년이 지난 현재나 똑같은 과제이다. 지방의회의 발전방안을 제도개선 등 외부적인 요인에서 찾는 연구는 많이 있어 왔고 이제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지방분권 시대를 맞아 지방의회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시선을 의회 내부로 돌려 그간 의회 내의 운영은 민주적이며 효율적으로 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였다. 광주광역시의회의 운영상 문제점으로서 첫째, 상임위원회 선임과 구성, 표결절차 생략의 문제점, 둘째, 의결전 간담회 관행, 셋째, 사무처 인사권독립 문제 등을 들 수 었다. 지방의회의 운영에 대한 제도적 개선 방안으로는 첫째, 상임위원회를 보완하기 위해 전원위원회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의회의 기능 강화를 위해서는 사무처 인사권의 독립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의회직렬을 신설하는 등 제도개선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또한, 상임위원회 활동 강화를 위해 직무소관의 균형있는 배분과 정수의 조정도 고려되어야 한다. 지방의원의 운영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의원의 전문성 향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내실 있는 의원 교육활동을 추진하고,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지원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의원 보좌제도를 강화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의원 유급화보다 우선적으로 유급보좌관제를 도입하고 의안심사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 활용 제도도 적극 운영하여야 한다. 셋째, 지방의원의 정책형성 기능과 지방의원들의 정책결정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지방의정 평가단을 설치 운영과 실적 평가제 도입이다. 의정평가단은 지방의회의 쇄신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으며, 부당한 정파주의를 방지 할 수 있고 또한 예산심의와 행정사무감사기능의 약화를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1년 단위로 실적화하여 공개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고려할 점은 평가주체가 누가 되느냐 하는 점과 평가기준을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의회 스스로가 평가주체가 되면 좋을 것이나 현실적으로 운영의 공정성과 관리상의 문제가 있는 만큼 그 지역의 공신력 있는 기관이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본 연구자는 광주광역시 의회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정책제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광주시의회 상임위원회의 표결과 기록화이다. 광주광역시 의회의 위원회는 의회운영위원회, 행정자치위원회, 교육사회위원회, 산업건설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위원회는 본회의 정책결정에 앞서 정책결정의 중심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각 위원회에서는 안건심사 과정에서 적극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토론 후 의결을 위한 표결에서는 거수나 기립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고 대부분 이의 유무를 묻는 약식 표결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결과정에서 반드시 거수나 기립의 방법으로 표결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각 위원회의 회의록에 대한 기록을 본회의나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개하여 심도 깊은 토론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 입법기능 강화를 위해 의원 입법활동을 전문적으로 보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셋째, 본회의 의결전 간담회 폐지 및 의원의 전문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광주광역시의회는 본회의에 상정된 안건을 해당상임위에 배정하고 본회의는 상임위의 보고사항을 청취하고 통과 의례적으로 의결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방의회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본회의에서 활발한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광주광역의 의회의 경우 본회의 의결전 정례적으로 의원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는 바, 이는 전국 어느 의회에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이다. 따라서, 내부운영 차원에서 의견조율을 위한 간담회를 매회 개최 할 것이 아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본회의의 자유로운 의견개진과 활발관 토론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본다면 충분히 검토의 여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상임위 심의 결과는 사전에 개별적으로 보고 받으면 될 것이다. 토론이 없는 의회는 거수기로 전락하게 될 수밖에 없다. 지방의회 운영 부실결과는 결국 시민들에게 돌아온다고 볼 때 의회운영의 효율성제고 측면에서 건전한 토론문화 정착은 시급한 과제라 할 것이다. 이제 지방의회가 그 동안의 운영실태를 냉철히 돌아보고 불합리한 관행들은 하루빨리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합리적 정책결정이라는 민주주의적 일반원칙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시점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1930년 3월까지 250여 개 학교에서 54,0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였던 학생독립운동이다. 이 운동이 교외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였다. 당시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국적인 조직을 가지고 있었던 신간회였다. 이에 본고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신간회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광주지역 학생들은 성진회와 독서회라는 교내단체를 통해 활동하고 있었다. 성진회는 회원들 간의 사회주의 연구모임이었지만, 독서회는 사회주의 관련문서와 격문을 배포하는 등 대외활동을 통해 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보급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독서회는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소비조합도 설치하는 등 성진회보다 치밀한 움직임을 보였다. 또한 광주학생운동 당시 성진회원들은 대부분 졸업생들이었기에 광주지역 만세시위에는 독서회원들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독서회는 교내단체였기 때문에 광주지역 만세시위를 교외로 확산시키기 어려웠다. 당시 광주지역에서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남청년연맹과 신간회 광주지회였다. 1923년에 설립된 전남청년연맹은 창립 초기 때부터 전남지역 청년단체 통일운동에 힘썼으며, 일제가 집회를 방해하였음에도 끝까지 항의하는 등 민족운동 단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929년 4월에는 학생지도부도 설치하였다. 전남청년연맹은 학생지도부를 통해 독서회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한편, 신간회 광주지회는 일제의 합법단체로 시작되었기에, 창립 초기부터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1927년 10월의 창립대회는 일제의 통제로 이루어졌으며, 재만동포 권익옹호운동과 관북지방 수재민 지원활동을 시도하였지만 모두 일제의 방해로 좌절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간회 본부와의 갈등으로 1929년 9월 말에 신간회 광주지회는 停權을 당하였고, 주요간부들도 제명처분을 받았다. 신간회 본부와 광주지회의 갈등은 광주지역 만세시위가 일어난 후에도 해결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광주지회의 간부들은 신간회 본부의 명령으로 광주에서의 상황을 신간회 본부에 보고하였을 뿐, 그 이상의 활동은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광주지역 만세시위는 전남청년연맹원들의 주도적인 계획과 독서회원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남청년연맹은 전남을 벗어나 전국을 연결할 조직망이 없었다. 따라서 광주학생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당시 전국 조직망이었던 신간회와의 협력이 필요하였다.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인물은 전남청년연맹원이자 신간회원이었던 장석천이었다. 1929년 11월 9일 신간회 본부 조사단은 광주지역 만세시위를 전국적으로 확산하자는 장석천의 제안하였지만, 격문인쇄에 필요한 자금제공만을 약속할 뿐,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지도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상경한 이후에도 신간회 본부에서는 서울지역 학생들과 만세시위 계획을 하지 않고,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비판연설회를 하겠다는 논의만 하였다. 그 방법도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통해서였다. 이러한 신간회 본부의 모습은 장석천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장석천은 서울지역 1차 만세시위 계획을 신간회 본부가 아닌 중앙청년동맹원 차재정·이항발·황태성·곽현 등과 하였던 것이다. 장석천이 접촉하였던 중앙청년동맹원들도 대부분 서울지역 만세시위에 직접 나서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랬기에 학생들을 만나 만세시위를 권유하는 것은 장석천에게 맡겨졌다. 장석천이 접촉하였던 각 학교의 학생들도 만세시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제2고보가 먼저 일어나면 각 학교의 사정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1929년 12월 5~9일까지 서울지역 8개 중등학교에서 만세시위가 있었지만, 교외 만세시위에 성공한 학교는 2개교(경신학교·보성고보)뿐이었다. 이처럼 서울지역에서 학생들의 시위열기가 고조되면서 각 학교간의 연합시위로 발전하였음에도 신간회 본부는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였다. 12월 10일에야 만세시위에 대한 대책으로 13일에 민중대회 개최를 시도하였지만 이미 대부분의 학생이 검거된 이후였다. 결국 12월 13일 개최예정이었던 민중대회도 무산되었고 주요간부들도 대거 검거되었다. 이 사건으로 신간회 본부의 활동은 마비상태에 가까웠다. 그래서 1930년 1월 15일의 2차 만세시위가 일어났지만 신간회 본부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서울에서의 좌절은 지방에서의 만세시위 양상과 신간회의 역할에 영향을 미쳤다. 신간회는 전국적으로 141개 지회가 있었는데, 만세시위가 있었던 곳은 서울과 광주, 그리고 15개 지역이었다. 이들 지역은 신간회가 주도적 역할을 했던 곳, 소극적 역할을 했던 곳, 역할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분류된다.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곳은 3개(김해·함흥·어주)였다. 이들 지역은 경남과 함경남북도 지역으로 전국적으로도 신간회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김해·함흥은 도지회연합회의 중심지였으며 어주는 함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간회 지회였다. 이러한 조건들은 3개 지역 신간회 지회들이 광주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신간회 지회가 참여 내지 소극적 역할을 했던 곳은 6개(목포·나주·진주·원산·주을·회령)지회였다. 참여 내지 소극적 역할을 했던 지역들에는 주도적 역할을 했던 곳에 전남의 목포와 나주가 추가되었다. 목포지회와 나주지회가 소극적이나마 역할을 했던 것은 만세운동이 시작된 광주와 가까웠던 지리적인 요인 때문이었다. 특히 나주는 광주학생운동의 진원지였으며, 목포는 신간회원 김면수가 광주고보 독서회원 김보섭의 부친이었다는 점도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신간회는 내분에 휩싸여 결집력에 상당한 한계를 보였기 때문에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줄 수 없었다. 목포에서는 신간회 목포지회와 목포노동연맹의 갈등, 나주에서는 신간회 나주지회와 유림들의 갈등이 이에 해당되었다. 만세시위에 신간회 지회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 곳은 5개 지역(전주·청주·개성·평양·신의주)이었다. 이들의 신간회 조직비율을 보면 함북 경성을 제외하고 [전북(67%)·충북(50%)·경기(43%)·평남(19%)·평북(40%)] 대부분 신간회 활동이 부진했던 지역이었다. 이는 창립 이후 광주학생독립운동 기간까지의 각 지역 신간회 활동을 통해 확인된다. 또한 청주·신의주·개성지역의 만세시위에는 기소자들이 없었는데, 이를 볼 때 학생들의 역량이 부족하였고, 신간회지회도 만세시위를 지도할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141개 신간회 지회가 있었던 지역 중 만세시위가 일어났던 15개 지역에서 3개 지역에서만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즉, 당시 최대 민족운동단체였던 신간회는 광주학생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따라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운동이었지만 운동의 주도층이었던 학생들을 뛰어넘어 전민족적·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없었다.
광주민주화운동 사적지는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지켜온 항쟁의 장소를 말한다.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정부 수립과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했던 장소이며, 상징적인 장소로는 주로 옛 전남도청 앞 광장을 떠올리지만, 사적지 1호는 광주민주화운동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전남대학교 정문이다. 혼란한 시국 상황에서 교수 및 학생들의 성토가 많이 있었던 곳이었고 그로 인해 교수들과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힘을 모은 곳이기도 하다. 사적지 1호라는 특성 덕분에 사적지 조형물 사이즈도 매우 크고 장엄해 보인다. 광주민주화운동 사적지 앞에는 대부분 횃불 모양의 조형물을 세웠다. 사적지를 찾아 가기 쉽도록 설치한 것이다. 해당 조형물에는 사적지에 대한 설명이 한글과 영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광주민주화운동 사적지가 잘 관리 되고 있는 반면,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기관의 이전 등으로 변화가 진행 중에 있다. 도시개발로 인해 없어지거나 훼손된 곳들도 늘어나면서 사적지 관리의 문제점이 성토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가운데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아프고 의미 있는 광주민주화운동 사적지인 국군광주병원은 지금까지 방치된 채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점점 퇴화하고 폐허가 되어 우범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사적지가 방치되어 점점 폐허가 되어 가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구 국군광주병원 사적지를 사진으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특히 언론에 보도된 증언에 따라 일부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을 소각해 버렸고 전해지는 구 국군광주병원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곳의 역사적 의의를 규명하고 보존해야할 가치 있는 사적지가 되도록 하기 위해 현재의 모습을 철저하게 사진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한다.
임무택 광주대학교 경상대학원 2000 국내석사
한국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광주민중항쟁은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그후 20년이 지나면서 정확한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다른 역사적인 사건에 비해 빠르게 진실의 실체에 다가가고 있는데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들이 모아졌으며 그 중에서도 당시 기록된 사진들은 영향력 있게 활용되었다. 사진은 사실을 기록한다는 신뢰성 때문에 인간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역사적인 물줄기의 큰 흐름을 바꾸어 놓기도 하였던 것이다. 또한 사진은 기록으로써 뿐만 아니라 예술적 표현의 매체로 활용되기도 한다. 광주민중항쟁 당시 사진은 언론사의 기자와 무영의 시민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세상에 드러난 것은 나경택, 황종건, 김녕만 기자, 독일의 슈테른□, 그리고 무명의 시민들이 촬영한 사진뿐이지만 각각의 사진들은 나름대로의 시각과 테크닉, 대상에 대한 해석 방법에 따라 기록사진으로써 설득력을 달리하고 있다. 나경택의 사진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에 충실한 반면 황종건의 사진은 정보를 전달하면서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적 기법이 가미되어 있으며, 김녕만의 사진은 다큐멘터리적 이미지를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시킨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무명의 시민들이 제공한 사진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인간의 기록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광주민중항쟁의 진상을 규명하는 노력들 속에서 효과적이고도 영향력 있게 활용되었는데, 특히 국회의 5.18진상조사 청문회에서 명백한 증거로 사용되었으며, 천주교 광주정의평화위원회의 오월사진전시회와 사진자료집으로 묶어져 왜곡된 진실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광주 5.18 당시 기록된 사진들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기록적 가치를 부여받게 되었고 역사 속에서 기록사진으로써 자리 매김 하게 되는 것이다. Gwangju people's struggle for democracy occurred for 10 days from May 18 to 27, 1980 and new military authority extended the martial law to the whole country, committed the military to Kwangu and suppressed civil army by force, which resulted in total 3,421 damages including 154 victims, 47 missing persons, 2,711 injured persons and 509 persons under detention in spite of the people's desire for democratization. Photographes documented in those days of May 15 Democratic Uprising were published by Catholic Gwangju Justice & Peace Committee entitled May Photograph Exhibition and Photo Collec-tion in the process of tracing the fact of this matter, which played the important roles in correcting the distorted truth and acted as the initial explosive for the pent-up desire of democratization These photographes were presented to the hearing for examining the fact by the National Assembly as the clear material evidence and it obtained the answers of admission from the witnesses who were injurers. Especially, Cho Cheon-Ho, the bereaved family of 5.18 had the severe mental conflict because his photo was published and it was known that a photo can have a great influence. Also the comparison of these photographes and documentary photographes of history can define the documentray value and nature of 5.18 photographes and show the political and social functions. Conventional or formal documentary photographes cannot be expected in Gwanju because of the lack of poor interest in photo and that of professional photo education agency until Gwangju People's Democratization Movement. Then the photographes of Gwangju 5.18 Democratic Uprising cannot help depending on the photos from the journalists and general public and it has the nature of journalism, but it exusts as the documentary photographes of Gwangju People's Democratization Movement in history and it is true that as these are published to many people in the process of tracing the fact of 5.18 Democratic Uprising, people's interest in photo has been increased. Examination and analysis of photographes of 5.18 Democratic Uprising establish the developmental direction and documentary value of documentary photographes and are for increasing the artistic value by widening the applications of documentary photographes.
광주전남지역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활용방안 연구
한국의 항일독립운동은 열강에 의해 국권(國權)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19세기 구한말을 시작으로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독립을 향한 열망은 광주·전남에서도 예외 없이 이뤄졌다. 광주·전남 지역의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는 212건으로 문화운동, 사회운동, 의병, 3·1운동 등 다양한 성격의 독립운동이 지역에서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는 ‘광주·전남의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의 현황’을 고찰하고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의 활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의 개념에 대한 이해와 대한민국의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의 현황 및 광주·전남지역의 독립운동 사적지와 유공자의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는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장소나 문화유산이 아닌 독립운동과 관련된 건물이나 집터, 기념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 현장을 정의된다.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는 1차적으로 국내 독립운동 사적지와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로 분류할 수 있으며, 2차적으로는 독립운동의 방향성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독립운동 사적지의 현황은 원형보존 보다는 멸실되었거나 혹은 단순 표지물 설치에만 그치고 있는 실정으로 이러한 이유는 사적지 관리주체의 다양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리주체가 지자체, 기념사업회, 문중 등 다양하게 지정됨에 따라 책임 관리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관리주체의 법적 성격이 지자체, 법인, 비영리민간단체, 개인 등 다름에 따라 사업관리방식 및 관리역량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 사적지는 총 1457건이며 이를 행정구역별로 살펴보면 서울특별시가 144건, 경기도 234건, 강원도 90건, 전라도 212건 등으로 나타난다. 사적지를 운동성격별로 분류하면 3·1운동과 관련된 사적지가 가장 많고, 의병운동, 사회운동, 학생운동 순으로 나타난다. 광주·전남의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의 현황분석은 지역의 독립운동 유공자의 현황을 먼저 알아본 뒤 자치구별 사적지 현황 및 보존상태, 현충시설 지정여부 등을 통해 살펴보았다. 광주의 독립운동 유공자는 2020년 기준으로 총 112명으로 3·1운동과 관련된 유공자가 가장 많고 근소한 차이로 학생운동이 뒤를 잇고 있다. 광주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자치구별로 살펴보면 동구가 13건, 남구가 6건, 북구 3건, 광산구 3건, 서구 2건 등으로 분포하고 있다. 전남의 경우 독립운동 유공자는 총 1,139명으로 전체 유공자의 27%가 의병운동 관련 유공자이다. 이는 1906년부터 1909년까지 호남에서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진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남의 사적지를 권역별로 살펴보면 동부권이 42건, 서부권이 54건, 북부권이 49건 등으로 분포하고 있다. 제 3장에서는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의 보존의 문제점과 활용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적지의 보존사례를 조사 후 분석을 통해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의 보존의 문제점과 개선사항에 대해 알아보았다. 현재 광주·전남의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는 표지석의 설치 비율이 약 20%에 불과할 정도로 지역주민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표지석의 일부가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의견 및 일부 글자가 환경에 의해 변형되어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는 한계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주·전남의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활용을 위해서 SWOT분석을 진행하여 강약점 및 기회·위협을 진단하여 활용전략에 종합적으로 반영하였다. 제 4장에서는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의 활용 사례를 바탕으로 활용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였다. 먼저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의 활용은 국가보훈처 주관 아래 이뤄지고 있지만 주로 교육자료 및 사적지 탐방이라는 직접적 활용과 MZ세대들을 위시한 활용 방안인 SNS를 이용하여 독립운동가 및 사적지를 홍보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활용 방향을 직접적 활용 방안과 광주·전남의 의향(義鄕) 이미지를 활용한 간접적 활용방안으로 분류하여 모색해보았다. 직접적 활용방안으로는 독립운동가, 유적, 유물, 기록물 등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는‘광주·전남 항일독립운동자료 아카이브 구축’과 메타버스 기술 중 대표적인 AR·VR기법을 활용한 ‘AR스캐닝을 활용한 호남의병 다크투어리즘 개발’이라는 구체적 프로그램안을 제안하였다. 간접적 활용방안으로는 광주·전남의 의향(義鄕) 이미지를 활용한 지역화폐 디자인 개발과 지역의 독립운동사 및 독립운동가를 기반으로 하는 창작뮤지컬 개발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타 지역의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았다. Since its beginning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imperialists imposed restrictions on its sovereignty,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launched in Korea had continued until its independence in 1945. The desire for independence from Japan became widespread across the country including Gwangju and Jeollanam-do. For now, there are 212 historic sites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gainst Japanese colonial rule in both regions. These sites suggest that a variety of independence movements such as cultural movement, social campaign, soldier protest and the March 1st Movement took place there. The present study aims to examine the current status of historic sites of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in Gwangju and Jeollanam-do, and also seek various ways to boost effects of utilizing the historic sites. Chapter 2 examines how historic sites of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are understood and reviews the current status of the historic sites in Gwangju and Jeollanam-do and number of honored independence patriots. A historic site of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generally refers to a historic place designated by the government or one where relevant building, home, monument and traces associated with independence movement, not cultural heritage. First up, the historic sites can be divided up into domestic historic sites and overseas ones. Secondly, they can be grouped based on the aim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Unfortunately, the current historic sites were not preserved, but disappeared. Instead, only posts mark the former presence of historic sites. These problems are attributed to too many institutions in charge of managing these sites. As the government granted the management rights to local government, commemorative organization and families as, management and responsibilities have become difficult to handle. Furthermore, business management and management capabilities vary greatly as local government, corporation, non-profit organization and individuals have different legal positions in managing historic sites. As of 2021, a total of 1,457 historic sites of independence movement are located in South Korea. By administrative district, there are 144 sites in Seoul, 234 sites in Gyeonggi-do, 90 sites in Gangwon-do and 212 sites in Jeolla-do. By movement features, historic sites of the March 1st Movement represent the most part, followed by soldier protest, social campaign and student movement. In order to analyze the current status of the historic sites in Gwangju and Jeollanam-do, the author checked the number of local independence patriots. Also, the authored reviewed the current state of historic sites in districts, preservation and whether memorial facilities were established. A total of 112 independence patriots, most of whom are those related to the March 1st Movement, lived in Gwangju in 2020. The number of patriots related to student movement is slightly close to that of independence patriots. By district, 13 historic sites are situated in Dong-gu, six in Nam-gu, three in Buk-gu and Gwangsan-gu, respectively, and two in Seo-gu. In the same year, a total of 1,139 independence patriots lived in Jeollanam-do. Patriots related to soldier protest represented 27 percent in the total number of patriots. These numbers are based on historical evidence of soldier protest that had taken place between 1906 and 1909. By district, there are 42 historic sites in eastern Jeollanam-do, 54 sites in western district and 49 sites in northern district. Chapter 3 takes a look at the problems of preserving the historic sites and use. The author examined preservation cases. With the findings, the author reviewed problems of preserving the historic sites and what parts are needed for improvement. The findings revealed some limitations that the historic sites in Gwangju and Jeollanam-do are less known to local residents given only about 20 percent of posts set up in both districts, and that it is necessary to change some letters were eroded by surroundings so these letters are unreadable. In order to make the historic sites available, the author performed SWOT analysis, confirmed strength, weakness, opportunity and threat, and comprehensively applied them into strategies. Lastly, Chapter 4 explores ways to promote use of the historic sites based on actual cases. First, utilizing the historic sites of independence movement is supervised by 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However, a variety of ways are put into use such as providing educational materials and visiting historic sites, and using online platforms for young millenials and Z generations to promote Korean independent patriots and historic sites. Also, it is possible to take into account both direct and indirect use with outstanding local images in both districts. Direct use includes building an archive of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in Gwangju and Jeollanam-do based on historical records on independence patriots, sites, relics and documents, and a dark touring program designed to allow visitors to see local soldiers with metaverse technologies such as AR and VR scanning. While presenting possible options of designing local currency based on outstanding local images in Gwangju and Jeollanam-do and making creative musical on the local history of independence movement and local independence patriots, the author compared them with other cases developed in other regions as indirect use.
1995년 태동한 광주비엔날레는 2016년 제 11회 전시까지 마쳤으며 23년 역사 동안 국제 현대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변화·발전해왔다. 광주비엔날레는 뉴욕 기반 예술매체인 아트넷(www.artnet.com)에서 2014년 5월 19일 발표한 세계 비엔날레 순위에서 베니스비엔날레(1895년), 카셀도큐멘타(1955년), 휘트니비엔날레(1932년), 마니페스타(1996년)에 이어 5위 안에 선정됐으며, 역대 누적 관람객 수는 광주비엔날레 20주년 백서 기준 약 7백만 명으로 집계되면서 내적‧외형적 확장을 이뤘다. 특히 광주비엔날레는 국제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제 3세계권 비엔날레 신설에 있어서 벤치마킹(Benchmarking)대상이자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현대미술 담론 형성의 국제미술전이라는 비엔날레 개념 정의에도 불구하고 광주비엔날레의 미술사적·미학적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광주비엔날레 선행연구를 보면 도시 마케팅 및 관광, 정책 등의 관점에서 대부분 진행되면서 비엔날레의 본질에 대한 점검과 평가가 간과된 측면이 있다. 또한 광주비엔날레는 서양 위주 현대미술 맥락 속에서 등한시 됐던 아시아 현대미술을 알리고 발전시키려는 정치‧역학적 창설 배경도 자리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분석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논문은 광주비엔날레의 미술사적 의미와 아시아 현대미술과의 연관성이라는 두 축의 연구 주제 아래 국제 미술계에 던진 미술사적 의미에 대한 모색, 전시 담론 속에 드러난 아시아적 가치 구현과 표출 방식, 아시아 현대미술 창구로서의 역할 점검, 아시아 현대미술의 정체성 도출을 문제로 설정하고자 한다. 문제제기에 대한 연구 방법으로 역대 도록에 근거한 객관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진행하면서 여타 논문과는 다른 아카이브적인 면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총 11회 전시를 역대‧권역별 참여 작가 현황, 참여 당시 연령대, 역대‧권역별 작품 주제 현황, 아시아권 참여 작가 및 출품작 현황 등을 데이터화하였다. 광주비엔날레의 미술사적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 참여 작가 연령대와 역대 출품작의 주제를 분석해보았다. 역대 참여 작가 중 30대 비율이 1/3을 차지하면서 젊은 작가들이 실험적인 미술을 선보이는 장이 됐으며, 역대 출품작의 절반가량이 기존 체제와 권력 등에 첨예한 비판의식과 시사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전시 담론 속에 아시아적 가치가 구현되고 표출됐는가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역대 기획자들의 아시아 정체성 논의를 비롯해 담론과 전략을 분석해보았다. 창설 배경 아래 매 회마다 아시아성에 대한 탐구가 진행되어 왔으나 2008년 이후로 외국인 감독이 연이어 선임되면서 보편적인 지구촌 현상에 보다 주목하면서 광주비엔날레 만의 차별화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광주비엔날레가 아시아 현대 미술 창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는가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 역대 참여 작가 중 아시아권 비율을 분석해 본 결과 1/3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되면서 아시아와 세계를 잇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아시아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도출하기 위해 아시아권 작가들의 출품작을 분석해본 결과, 아시아 현대미술의 정체성은 역사·사회·경제 등의 시대적 상황을 반추하고 서구 중심 체제에 제동을 가하면서 공동체의 담론을 다양한 기표와 도상으로 시각화했다. 즉 서구권 작가들이 삶과 예술에 천착하며 보편성과 세계성을 추구한 것과 달리 아시아권 작가들은 식민 지배, 고도 경제 성장, 동양적 사상 및 자국의 역사 등 아시아 만의 공통 경험이 투영된 지역성과 문제를 자각하고 제시하는 비판성을 지니면서 차별화된 정체성을 형성했다. 이 논문을 토대로 아시아에 기반한 정체성에서 한 단계 나아가 역사적 굴레와 프레임에서 벗어난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이 창출되어 아시아의 현대미술이 국제무대에 더욱 진출하기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논문이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 가치를 발휘하고, 서구 중심 미술계에서 저평가됐던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다양한 학술적 연구가 활성화되고 관심이 증대되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
공동주택 구매의향 영향요인에 관한 실증분석 : 광주광역시 사례를 중심으로
본 연구는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공동주택 구매의향이 있는 20세이상 남녀를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아파트 구매 관련 주요 구매의향(입지적 여건, 브랜드적 여건, 부대시설적 여건, 경제적 여건, 단지적 여건, 실내환경 여건)과 주거만족도, 삶의 질 간의 영향관계를 실증분석 하였으며, 주거환경 만족도의 매개 효과의 유의성을 Soble test 테스트를 통해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공동주택 구매의향에 대하여 관념적으로 인식되어 온 주거환경 만족도와 삶의 질 간의 관계를 실증분석을 통해 검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연구의 한계점이 있다. 첫째, 본 연구에서는 광주광역시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으나, 이렇게 선택된 대상이 공동주택의 구매의향을 대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연구의 대상지를 타 지역으로 확대하여 진행할 필요성과 구매의향에 대하여 타 지역과 비교하여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둘째, 본 연구에서는 주거환경 만족도라는 매개변수를 선정하여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구매의향과 삶의 질의 매개효과 부분은 통계적으로 추정된다. 향후 구매의향요인과 삶의 질의 항목에서 매개변수를 좀 더 추가하여 연구한다면 좀 더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셋째, 본 연구에서는 신규 공동주택 구매의향에 대해 20대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구매의향요인과 주거환경 만족도, 삶의 질에 관한 영향관계를 측정하였다. 그러나 표본의 샘플을 좀 더 확보하고 더 구체화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향후 실제적으로 공동주택 구매의향 요인 이외의 주거환경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확인하고 구체화하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광주형일자리의 경로진화에 관한 연구 : 역사제도주의를 중심으로
양정하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테크노인력개발전문대학원 2021 국내박사
In order to analyze Gwangju-type jobs, the period was divided, and the reference point for dividing the period was divided by how much social dialogue which is the basic idea of Gwangju-type jobs, was applied to the framework of Gwangju-type jobs. This reference point became an important driver of the start and change of a new job policy called Gwangju-type jobs, and it is a major factor that differentiates them from existing Gwangju-type jobs. These reference points divided by the time were as follows. As the period to lay the foundation for the establishment of the ideology for jobs, the first term was the “Gwangju-type job creation period”, when the Korea Labor Institute's Gwangju-type job creation model report was published in 2015. The second term was the entire sixth term of civil city mayor elections which was “Governance Establishment and Social Agreement Period (second term)”, till June 2018, when the 6th civil city mayor service ends. The 3rd term was divided into the period from the beginning of the 7th period to the present when the basic agenda of Gwangju-type jobs took place and also divided into “Investment Agreement and GGM Establishment” Again, the “Investment Agreement and GGM Establishment Period” is a period in which the crisis of Gwangju-type jobs was maintained, and by overcoming these crises, the change of launching the entity of GGM with a result transformed from the ideology of the initial Gwangju-type jobs. Based on the situation changes, it was classified into the first half and the second half. The first half can be divided into the period of closing the conflict with the laborers from July 2018 to December 2019, and the second half is from then to the present By dividing the characteristics of each period divided in this way, the researcher found the results that specifying the term by the interests of each stakeholder and the dynamics of major players As a result of the historical institutionalism point of view analysis, which was intended to be studied in this paper, the Gwangju-type job was considered to be path evolution. In order to analyze the typification of institutional change, according to the theoretical basis of institutional typification of Streek & Thelen (2005), a qualitative result is different from that of the existing system and the result of changes is discontinuous. The subject of jobs, gradual process, new job development ways, political struggle against the existing system drove the different result. According to this analysis, the researcher analyzed types of Gwangju-type jobs out of 4 types as proposed. Next, according to the classification method of Mahoney & Thelen, the types of path evolution were classified for each period. According to two factors of political rejection possibilities and the degree of discretion of the operator, the process of change for each period of Gwangju-type jobs was classified to know whether it falls under layering, drifting, correction, or conversion. Reviewing the path evolution by time, the generation period of Gwangju-type jobs was a "Conversion" because they set up the new local job policy from the unilateral policies of the central government in the past and set up the labor agenda in local. It was analyzed "Layering" because some achievement was made through broadened governance and social agreements among participation of stakeholders over various social dialogue mechanisms and attempts to settle the agenda of Gwangju-type jobs in the public sector. It was analyzed "drifting" for the early period of the 7th civilian city mayor which corresponds to the investment agreement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GGM, during this period, At this time, the conflict between each stakeholder reached its peak due to the independent negotiations of the local government and the Gwangju-type job itself faced a crisis of failure. In the second half of the 7th civilian city mayor was analyzed as " Conversion" because the conflicts of each stakeholder were again sealed, but the agenda of the first Gwangju-type job was changed due to investment negotiations, and the direction of the Gwangju-type job was changed with the operating system of GGM, the real party of Gwangju-type jobs. The research found that the key stakeholders of Gwangju-type jobs were local governments and labor, and their dynamics compositions acted as the main drivers for each period. It was analyzed that the main drivers were a conflict to collaboration, and then conflict, collusion, or partnership. It is not a simple job creation policy of Gwangju-type jobs but for human beings to create labor as a life that is respected. It demands social dialogue and social cooperation as a tool for achieving these policies. Gwanju-type jobs was not born by Gwangju's specialty, but it is the feasible policy that if there are local residents with ideas in the region, organizational proactiveness that supports systematically, and a local organization that shares a sense of urgency of the region. 광주형일자리를 분석하기 위해 시기를 구분하였으며, 시기를 구분하는 기준점은 광주형일자리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대화가 얼마나 광주형일자리 라는 틀거리에 적용되었는지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기준점은 광주형일자 리라는 새로운 일자리정책의 시작과 변화의 중요한 동인이 되었으며, 기존의 광주형일자리와의 차별되는 주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점으로 나누어진 시기 구분은 다음과 같다. 일자리에 대한 이념 정립의 기초를 다지는 시기로서 1기는 “광주형일자 리의 생성기”로, 한국노동연구원의 광주형일자리 창출모델 보고서가 나오는 2015년을 기준으로 하였다. 2기는 민선 6기 전체가 해당하는 기간으로 “거버넌스구축과 사회협약기(2기)”로 구분하였으며 민선 6기가 끝나는 2018년 6월까지로 하였다. 3기는 광주형일자리의 기본적 아젠다의 변화가 발생하는 민선 7기 시작부터 현재까지로 구분하였으며 “투자협약과 GGM 설립기”로 구분하였다. 다시 “투자협약과 GGM설립기”는 광주형일자리가 좌초될 위기가 유지되던 기간과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여 초기의 광주형일자리와의 이념과는 변형된 결과를 가지고 GGM이라는 실체를 출범 시키는 변화가 일어난 상황을 기준으로하여, 초반기와 후반기로 분류하였다. 초반기는 노동계와 갈등 봉합 시기로 나누어 질 수 있으며, 2018년 7월부터 2019년 12월까지로 후반기는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구분하였다. 이렇게 구분 되어진 각 시기별 특성을 구분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각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 주요 플레이어들의 역학관계를 분석하여, 어떠한 동인들이 그 시기를 특정하는 결과물들을 도출하였는지 분석하였다. 이 논문에서 연구하고자 했던 역사제도주의적 관점으로 분석한 결과 광주형일자리는 경로진화에 해당 되었다. 이는 제도변화 유형화를 분석하기 위해 Streek & Thelen(2005)의 제도 유형화의 이론적 근거에 따라 진행 과정이 점진적이고, 변화의 결과적 측면에서 불연속적인면을 가지고 있었고, 일자리 주체의 변화, 새로운 일자리 수행방법, 기존 제도에 대한 정치적 투쟁을 통해 기존 제도와는 다른질적인 결과를 도출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에 따라 광주형일자리가 제시된 4가지 유형중 어디에 해당 하는지 분석했다. 다음으로 Mahoney & Thelen의 분류 방식에 따라 경로진화의 유형을각 시기별로 분류하였다. 정치적으로 거부가능성과 운영자의 재량 정도이 두 가지 요인에 따라 광주형일자리의 시기별 변화과정을 분류하여, 가겹, 표류, 수정, 전환 중 어디에 해당되는지를 분석했다. 시기별로 경로진화를 살펴보면 광주형일자리의 생성기는 과거의 중앙정부의 일방적 정책이 아닌 지방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지역에서 노동 의제를 설정하는등 새로운 일자리 정책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전환’에 해당 되었다. 거버넌스 및 사회협약기는 각종 사회적대화 기구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의 폭을 넓혔으며, 공공부분에 광주형일자리의 의제를 정착시키려는 시도를 통해 일정 부분 성과를 얻었기에 ‘가겹’으로 분류하였다. 투자협약 및 GGM 설립기에 해당하는 민선 7기 초반기는 ‘표류’로 분류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지방정부의 단독적인 협상으로 인해 각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였고 광주형일자리 자체가 실폐의 위기에 봉착하였기 때문이다. 민선 7기 후반기는 다시 각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은 봉합 되었으나, 최초의 광주형일자리의 의제가 투자 협상으로 인해 변화되 었고, 광주형일자리의 실체인 GGM의 운영체계로 광주형일자리의 방향성이 변화되어 ‘전환’으로 분석되었다. 연구자의 연구결과 광주형일자리의 주요 핵심 이해관계자들은 지방정부와 노동계였으며, 이들의 역학 구도가 각 시기별 주요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주요 동인으로는 갈등 관계에서 협력 관계로 다시 갈등 관계 또는 담합 관계나 동업 관계로 변환이 주요 요인이었다. 광주형일자리는 단순한 일자리 정책이 아니라 노동이 존중받는 삶, 삶의로서의 노동을 만들어가는 인간에 대한 정책이다. 이러한 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협치를요구하고 있다. 광주형일자리는 광주가 특별해서 생기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진 지역민이 존재하고, 이러한 지역민의 아이디어를 제도적 으로 뒷받침하는 조직의 적극성이 존재하고, 지역의 절박감을 공유하는 지역의 행정 조직이나 자발적인 추진 집단이 존재한다면 가능한 정책이다.
김화무 광주대학교 경상대학원 2001 국내석사
현대의 대도시 내에서는 기능적 공간구조와 함께 3차 산업적 경제활동 중심지들이 다수 형성되면서 이러한 중심지들이 일련의 핵의 형태로 산재하는 다핵구조 형태가 나타난다. 본 논문에서는 대도시 공간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적 틀로 다핵구조적 관점에서 광주시의 도시구조를 살펴보았다. 제2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중심지체계에 대한 이론과 선행연구들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제3장에서는 분석지표별 변수를 추출하였고, 제4장에서는 개별지표 중심지와 다수지표를 고려한 중심지를 통해 광주시 중심지의 위계를 설정하였다. 광주시 중심지체계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광주시 행정동을 단위로 하여 고용, 사무실, 상업, 통행량, 지가의 지표를 사용하여 중심지 위계를 설정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999년 광주시 현재 중심지는 도심(충장동, 서남동, 중앙동 등)과 부심(백운, 송정, 우산, 첨단, 용봉, 학, 화정)으로 나타났다. 중심지 설정 결과 주요한 특징으로는 첫째, 광주시의 도심은 도심과 도심보다는 기능의 강도가 낮게 분포하는 도심주변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었고 그 주변지역은 도심의 북서쪽방향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광주시의 도시공간구조의 변화방향을 예상할 수 있다. 둘째, 기존 도심 기능의 유출로 인한 감소현상은 그동안 도심지역에 편중되어있던 기능들이 기존도심의 영향력을 잃으면서 교외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광주시 부심으로 설정된 지역들 중 그 성격이 약하게 드러나나 증가율이 매우 높게 나타난 지역은 부도심으로서의 성장가능성을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분석을 통하여 설정한 광주시 중심지의 특성으로 볼 때 광주시 도시공간구조의 정책 수립에 기존도심과 신도심들의 기능을 차별화하고 특성화하여 도심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심부의 문제점 파악과 동시에 도시외곽에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지역들과의 균형개발에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As the forming a lot of the tertiary industrial economic activity metroplises with functional space structures, the pattern of multinuclear structure that is scattered as a series of nuclear is showed in the metropolises.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urban structure in Kwangju city from the point of view of multinuclear structure as new conceptual frame that can explain the metropolis space structure. In the chapter 2,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theories and precedent researches about the metropolis system from now on. And in the chapter 3, it is to extract the variables by analysis index. Also in the chapter 4, it is to establish the rank of metropolis in Kwangju city through the metropolis considering the individual index and multiple indexes. For grasping for the characteristics of metropolis system in Kwangju city, it is to establish the metropolis rank using employment, offices, commerce, quantity of passages and the index of land value by unit of administrative Dong in Kwangju city. The results from that are as follows. It shows that the present metropolises in Kwangju city in 1999 are the downtown like Chungjang-dong. Seonam-dong and Jungand-dong, etc. and the uptown like Baekun-dong, Songjung-dong, Usan-dong, Chomdan, Yongbong-dong, Hak-dong and Hwajung-dong, etc. The main characteristics after establishing the metropolis are as follows. First, the downtown in Kwangju city can be classified as the downtown and the uptown where the strength of function is distributed in a low. Also the changed direction of urban spatial structure in Kwangju city can be estimated because the outskirts are located on the direction of northwest of the downtown. Second, as for the decrease phenomenon by outflow of existing downtown function, it starts to appear the suburbanization phenomenon while the functions laying disproportionate emphasis on the down town area from now on become losing the influence of existing downtown. Third, among the regions selected as the uptown in Kwangju city, the region where the characteristics are reveled as weak things but are showed high increasing rate can have a possibility of growth as the uptown. As for the characteristics of metropolis in Kwangju city selected through the analysis above, it should be differentiated and specialized of functions between the existing downtown and new downtown to the policy establishment of urban spatial structure. As a result of it, this study is to grasp the problems in the downtown area in order that the function of downtown is executed properly. At the same time, it is to study the concrete plan of execution about the balance development with the regions where have rapidly developed in the outski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