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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하곡철학에서 주자학과 양명학의 융합 : 지식과 도덕을 중심으로

        권상우(權相佑) 한국동양철학회 2010 동양철학 Vol.0 No.34

        본 논문은 하곡철학의 정체성을 주자학과 양명학의 관계성에서 논의해 보았다. 주자학과 양명학의 분기점은 ‘致知’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주자학은 ‘致知’를 심과 물리의 ‘對列적 관계’로 해석하였다면, 양명학은 도덕심에 물리를 포섭하는 ‘포섭적 관계’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주자학은 지식형태의 이론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양명학은 도덕형태의 이론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곡은 이 양자의 해석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중심으로 그의 철학적 특징을 규명해 보았다. 하곡은 ‘互爲體用’적 사유구조에 근거해 양명학을 수용하면서도 주자철학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또한 주자철학을 인정하면서 양명철학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하곡은 주자학의 지식론이 體가 될 때에는 양명학의 도덕철학을 用으로 해석하고, 반대로 양명학의 도덕철학이 體가 될 때에는 주자의 지식론을 用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전자를 ‘지식적 도덕’으로, 후자를 ‘도덕적 지식’으로 명명하였다. 하곡은 이러한 해석을 통해 모순적인 형태의 두 철학체계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그래서 하곡철학의 정체성은 바로 주자철학과 양명철학의 유기적인 융합에서 찾아 질 수 있다. 本文是要在朱子學和陽明學的關係之線上討論霞谷哲學的特徵. 朱子哲學和陽明哲學的分岐点在于對于心和物的解釋. 所以, 在本文里討論過霞谷??解釋這兩學派的立場, 而??克服和融合兩者的差異. 霞谷一方面吸收朱子學的工夫論而不否定陽明學的工夫論. ?一方面也吸收陽明學的工夫論, 而不否定朱子學的工夫論. 這種學問態度明顯于他的‘互爲體用’的思惟構造. 所以, 在霞谷哲學里一方面把朱子的知識做爲體, 而把陽明學的道德哲學做爲用. ?一方面把陽明學的道德心做爲體, 而朱子學的知識哲學做爲用. 他試圖用這種方法融合兩者之間所矛盾的思想體系. 霞谷根據這種方式解釋爲‘道德的知識’和‘知識的道德’. 因此, 霞谷哲學的特徵可以?到于朱子學和陽明學的融合.

      • KCI등재

        하곡 생리설의 철학사적 의의

        박홍식(朴洪植) 한국양명학회 2011 陽明學 Vol.0 No.30

        17-18세기의 조선양명학자 하곡 정제두는 양명의 ‘양지설’을 수용하면서도, 인간 존재에 대한 설명에 또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곡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인간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그 中心테마였다. 여기에서 하곡은 ‘生理’라는 개념을 도출하였다. 하곡은 세계의 중심으로서 그리고 도덕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근원이 곧 ‘良知’ 라는 王陽明의 사유를 수용하였다. 양명도 ‘良知說’에서 生生의 원리를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곡은 좀 더 生生한 모습의 인간을 원했던 것이다. 하곡은 인간 정신만이 아니라, 생명력(生氣)이라는 부분까지 확실하게 부각시키게 되었다. 하곡은 양명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지향이 인간이 인간됨일 수 있는 근거에 기초하면서도 ‘人?物’의 차이를 생리와 물리의 관점에서 설명하였다. ‘생리설’이 지니는 이러한 특징은 하곡이 양명의 학설을 단순하게 수용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적인 입장에서 생동감 있게 논리를 전개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인물성동이론’의 관점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하곡의 생리설은 인?물의 차이를 ‘본연지성’이나 ‘기질지성’이 아니라 ‘생리’에서 구분함으로써 논거에 대한 재론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이 점에서 하곡은 성리학자들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또한 하곡의 人?物의 구분에 대한 관심과 논설이 시기적으로 ‘인물성동이론’의 논쟁보다 앞서 표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물성동이론’을 하곡의 ‘人?物구분론’과 더불어 <人?物의 구분론>에 대한 한국철학사적 시각에서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성리학적 입장에서의 ‘인물성동이론’은 한국철학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17세기 후반 18세기 초엽에 나타난 <人?物의 구분론>에 관한 철학적 관심의 성리학적 표출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곡의 ‘생리설’은 조선철학사의 관점에서 본 다면 당시 조선철학의 흐름 곧 학문관을 포함한 인간관과 세계관의 변화에 대한 욕구와 시도를 상당부분 수용 종합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또한 ‘생리설’에 의한 하곡의 ‘人?物구분론’은 ‘인물성동이론’에 대한 한국철학사적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 KCI등재

        하곡의 미발설과 공부론

        정인재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2010 철학연구 Vol.0 No.40

        이 논문은 하곡 정제두의 미발론과 그 공부론을 살펴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곡은 미발심체를 양지라고 보았는데 그의 논적(論敵)인 민성재와 최여화 등 주자학자들는 양지를 본체가 아닌 작용의 차원에 떨어트려 놓고 양지를 지각이라고 보았다. 하곡은 이들의 오해를 풀기 위하 양지가 바로 마음의 본체인 동시에 그 작용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양지는 마음의 본체인 전체적 생명의 원리[생리]를 말한 것이므로 염려 찰식하는 지각작용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하곡은 생리와 물리를 구분하여 후자는 외물에 다가가서 이치를 캐묻는 지각의 대상이지만 전자는 활발하게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의 원리이다. 따라서 남의 고통을 보았을 때 불쌍히 여기고 아파할 줄 아는 것은 이미 남과 감통하여 하나가 된 앎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앎을 양지라고 한 것이다. 하곡은 이러한 측은지심이 양지이며 인(仁)이라고 하였다. 인이 천지만물과 감통할 수 있는 것은 양지의 영명 때문이라는 것이다. 양지는 본체인 동시에 작용이기도 하다. 이것을 체용일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곡은 양지가 미발지중의 본체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그 중절된 작용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대본과 달도가 하나가 되고 본성과 정감이 하나가 된다. 하곡은 정감이 양지인 이(理)에서 나온 것이면 식색 이해(利害)라 하더라도 지선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말해 양지가 현실의 정욕에 얽매이지 않고 식색과 이해를 그대로 현실에 감통한 것을 지선하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양지의 실현[致良知]이며 실심의 표현인 것이다. 하곡은 체용일원의 관점에서 이기도 역시 하나라고 보았다. 따라서 퇴계가 조용할 때 `기`가 아직 작용하지 않아 마음의 본체가 자재하다고 본 것에 대하여 비판하기를 기(氣)의 감추어진 병근이 아직 남아 있다면 이체(理體)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곡은 이 이체를 가리고 더럽히게 하는 원인을 기막에 있는 명문상화라고 하였다. 이 기막을 깨끗이 하면 미발지중의 이체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공부론을 제시하였다. 어떻게 하여야 기의 동요를 막아 상화를 다스릴 것인가? 하곡은 중극이 상화를 제어하여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균형을 이루는 중극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중화론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그는 성의 정심공부를 통하여 중화의 체용을 확립하는 공부론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그는 미발지중의 양지 본체의 수립과 동시에 양지를 현실에 꼭 알맞게 실현하는 실(實)의 작용을 체용일원으로 설명하였다 이렇게 실(實)을 중시하는 그의 철학은 250여 년간 하곡학파를 형성하여 조선시대 학자들의 허위와 가식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던 것이다. 本論文之目的在重建吾人所已忘記的霞谷學派之前 將欲解明霞谷鄭齊斗(1649-1736)之未發論及其工夫論的意義 霞谷以未發心體爲良知 然而其論敵閔彦暉與崔汝和等 朱子學者主張良知只不過爲知覺作用 而幷不能爲心之本體 霞谷欲解決此誤解 力說良知不但是心之本體 亦是心的作用 良知幷不等於念慮察識之類的知覺及知識. 霞谷分別了卽物窮理的物理與活潑潑的生理 前者是朱子所言的知覺對象 而後者是與物感通的惻隱之心 此卽是仁 亦是良知所發露的不忍人之心也 仁之所以與萬物感通之理由 就是因良知的靈明故也 良知如上所言 有體有用 體中有用 用中有體 體用一源矣霞谷認爲良知是未發之中的大本 亦是中節之和的達道也 大本達道爲一 性情不二 理氣不離的形上實體 由此而出 他認爲情出於理 則雖食色利害 亦爲至善 換而言之 良知不累於現實情慾 則因良知如實感通於現實食色 故爲至善也 此卽致良知 又是實心的表現也從體用一原的觀點看 則理氣亦爲一 然退溪的工夫方法 以理氣爲二物 故曰氣未用事 故理得自在霞谷批判退溪云雖왈氣未用事 其氣之未嘗純正淨潔而病根藏在 不可以其未用事也 而直以謂之理體也明矣霞谷認爲蔽遮汚染此理體的原因 就是在氣膜中的命門相火也 此乃指人的根本慾望 如何防止氣的動搖以治相火? 他提出淸淨氣膜以回復未發之中的理體之工夫論 霞谷提示中極制御相火 以常維持無過不及的均衡之中極論 此乃中和論的령一表現 故他提出由誠意正心以立中和的工夫論 他非但樹立未發之中的良知本體 亦致中節之和的實的作用 如此重視實的哲學 形成霞谷學派 以痛烈批判朝鮮時代學者的虛僞假飾 而在250年間 其後學實踐實心實學矣.

      • KCI등재

        普照 知訥과 霞谷 鄭齊斗의 工夫論에 대한 비교 연구

        김종용 한국불교연구원 2022 불교연구 Vol.57 No.-

        This thesis compares and analyzes the performance theory of Seon Buddhism and Yangminghak[陽明學]. To this end, this thesis continued the discussion by focusing on Jinul [知訥] and Hagok [霞谷], and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Jinul [知訥] presupposes realization prior to practicing, but Hagok [霞谷] did not say that it was premised on experiences such as realization of one's own character in cultivation. In other words, Jinul [知訥] believed that prior to practicing, one must first have the experience of realization [先悟‧解悟] that one's own disposition and the Buddha's disposition are no different. Because he saw it impossible to brush, find, or maintain his teeth without knowing what his character was. Meditation before realizing this is laborious and fruitless, says Jinul [知訥]. However, in the cultivation of Hagok [霞谷], there is no such premise as transcendental experience. This is because Hagok [霞谷] believed that humans can naturally practice the will of Heaven if they do not lose their character and keep it. Therefore, from the perspective of Hagok [霞谷], if there is no excessive greed, Si-Duan [四端] mentioned by Mencius [孟子] and Liang-Zhi [良知] spoken by Wang-Yang-Ming [王阳明] were naturally revealed. Second, the ‘ultimate purpose’ of the performative theories of the two characters is different. The purpose of the practice of Jinul [知訥] is to get rid of ignorance, to thin out the three poisons, and to solve the problem of life and death in the past. However, the purpose of Hagok [霞谷] cultivation is to guard against and eliminate excessive greed, to protect the original nature of the heart, to realize heavenly liabilities, and to achieve harmony in all things as a mediator between heaven and earth. In other words, if the practice of Jinul [知訥] is to solve the problem of life and death by realizing the truth and the principle of all things in the world by acquiring the wisdom of banya, Hagok [霞谷] is to inherit the will of heaven and fulfill it. Thus, although both figures were identical in their emphasis on inner practice, their purpose was different. Third, both ideas were considered as a method of performing not only internal performance, but also practical and external performance. However, there is a difference in the logic of the two practical implementation methodologies. Jinul [知訥] believes that wisdom can be obtained through the Buddha's deeds, but In Hagok [霞谷], an act such as Yukye [六藝] has a greater meaning as a check-and-training practice to check and control one's own mind. In other words, the Buddha's actions must be carried out together with the inner practice. By analogy, Seon meditation and the Buddha's actions are like the wings of a bird. The external practice of Hagok [霞谷] is like the knot of the internal training. By analogy, inner practice is like two legs, and external practice is like eyes. Therefore, the Buddha's actions of Jinul [知訥] have the meaning of the practice itself. And Hagok [霞谷]'s six Yukye [六藝] is to keep and confirm that one does not lose his pure heart. 본 연구는 한국 선불교와 양명학의 공부론을 비교 분석한 글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지눌(知訥)과 하곡(霞谷)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갔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눌은 수행에 앞서 깨달음[先悟‧解悟]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하곡은 수양 공부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어떠한 단계도 말하지 않았다. 즉 지눌은 수행하기에 앞서 부처의 성품과 자성이 본디 차별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본성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모른 채 막연히 수행을 이어가는 것은 수고스러울 뿐 그 어떠한 이익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곡은 수양에 앞서 자신의 심성에 내재되어 있는 천리(天理)를 깨닫거나 체험하는 등의 전제를 말하지 않는다. 이는 하곡이 인간의 심성이라는 것은 객기와 습염(習染)만 아니라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고 이는 천리(天理)와 다름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하곡의 입장에서 마음에 객기와 습염만 없다면 맹자(孟子)가 말하는 사단(四端)과 왕양명(王陽明)이 말하는 양지(良知)가 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에 수양에 있어 그 어떠한 전제는 없으며 다만 지나친 인욕[暴氣]을 경계하는 것을 공부의 요체로 보았다. 둘째, 공부를 통한 궁극적 ‘목적’에 대한 차이가 보인다. 지눌 수행의 목적은 무명(無明)을 여의고 실상(實相)을 깨달음으로 종래에는 생사(生死)의 문제로부터 자재함을 얻는 것이다. 반면 하곡 수양의 목적은 부동심(不動心)‧무폭기(無暴氣)가 없도록 하여 본래의 심성을 지켜 하늘과 땅의 매개자로서 하늘을 뜻을 계승하여 땅에 천도(天道)를 실현함에 만물의 화육(化育)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었다. 즉, 지눌의 수행은 반야의 지혜를 밝혀 세상 만물의 진리와 실상을 깨달아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하곡은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루는 것이었다. 셋째, 두 인물 모두 내적 공부뿐만 아니라 실천적 공부 또한 공부의 주요 요소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논리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지눌의 보현행은 성불(成佛)에 있어서 필히 이해되어야 하는 수행이라 보았고, 반면 하곡은 육예(六藝)와 같은 행위를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경계하는 점검적(點檢的) 수양을 말하였다. 다시 말해 보현행은 선수행과 더불어 행해져야 하는 수행이다. 비유하자면 선수행과 보현행은 새의 양 날개와 같은 것으로 함께 나아가야 하는 수행인 것이다. 반면 하곡의 육예와 같은 수행적 실천은 내적 공부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하곡은 기본적으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 보았기 때문에 모든 행동은 마음의 표상(表象)이라 보았다. 자신의 만행이 곧 마음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라 보았음으로 모든 행동에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반성하여 공부를 이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지눌의 보현행은 그 자체로 수행의 의미를 갖는다 할 수 있고, 하곡의 육예와 신독은 본래의 심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점검적 공부인 것이다.

      • KCI등재

        하곡의 양명사상에서 나타난 개체의 정치사상적 의의

        정차근(鄭次根) 한국양명학회 2010 陽明學 Vol.0 No.25

        정치사상은 인간의 정치 현상에 대한 사상이기 때문에 인간의 근원이 되는 인성의 문제는 정치사상의 현상이나 전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 논문은 하곡의 양명사상 관점에서 인성론을 중심으로 개체의 논리를 살펴보는 것이다. 특히 하곡이 한국 최고의 양명사상가로서 개체가 중시되지 않았던 성리학 정치 이념의 조선왕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개체성의 논리가 나타날 수 있었던 정치 상황과 사상상의 연계와 관련지어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하곡의 개체성 논리가 한국 정치사상에서 어떠한 의의를 지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첫째, 하곡의 양명사상에서 보인 개체 논리는 16세기 이후 인간의 개체성이 부각되었던 실학사상과 그 궤를 같이하면서 개체의 주체성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개체성의 강조는 『理』 중심의 성리학적 보편 질서에서 주관적 『氣』 중심의 양명학적 개체성 부각으로 나타났다. 둘째, 하곡 양명사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民』 본위의 治者政治가 인간의 내면적 수신이라는 주관적 이상론의 방법만 가지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논리로, 『制度』라는 객관적 방법으로 근대적 이상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셋째, 하곡 말년에 나타난 개체성은 민중의 생존 문제와 국가의 수호라는 愛國保民에 이르는 愛國主義까지 진전시키고 있다. 특히 박은식의 『致良知』는 주체적인 도덕적 자아의 완성으로서 개체 수준이 민족 단위의 수준을 넘어 개인 단위의 수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결국 하곡의 양명사상에서 나타난 개체성의 논리는 조선왕조 후기 사회의 격변과 병행하였고, 가정적 불우와 자신의 인간적 고뇌, 성리학 정치 이념에서의 당쟁의 격화와 성리학 통제 기능의 약화, 민생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지배층의 문란, 그리고 성리학의 허명에 따른 당시 양명학의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복합적인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곡은 초기 양명학자인 남언경ㆍ최명길ㆍ장유 등과 가정적 관계와 學承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초기 양명사상가와 연계되면서 개체성이 더욱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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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곡학파의 지역적 전개와 사상사적 의미

        이남옥(李南沃) 한국양명학회 2021 陽明學 Vol.- No.60

        이 글은 18~19세기 하곡학의 계승과 지역적 확산에 대해서 검토하여 조선후기 사상 지형에서 하곡학파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곡학파는 하곡 정제두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한 일군의 학자를 말한다. 영일정씨 정제두 가계, 전주이씨 이경직 가문의 이광명 가계ㆍ이광사 가계ㆍ이광신 가계, 평산신씨 신대우 가계 등 하곡학파 주요 가계의 족보ㆍ가승ㆍ묘도문자ㆍ행장 등을 분석한 결과 18~19세기 하곡학파는 대체로 강화에서 경기와 충청 지역으로 전개되어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영일정씨 정제두 가계는 강화와 통진을 주요 거점으로 하면서 천안 등지로 확산되어 갔고, 전주이씨 덕천군파 이경직 가문의 이광신 가계도 충주ㆍ은진ㆍ노성 등 충청 지역으로 확산되어 가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전주이씨 덕천군파 이경직 가문의 이광명 가계는 강화에 세거하였고, 평산신씨 신대우 가계는 광주 이거 후 세거하였다. 이 과정에서 강화ㆍ광주ㆍ진천은 하곡학파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정제두의 묘와 거처를 비롯해 하곡학파 관련 유적이 있는 강화는 하곡학을 계승하는 공간이 되었고, 신작과 정약용의 학술교류가 이루어졌던 광주는 하곡학과 다산학이 접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19세기 말 소론계 인물 다수가 교류한 진천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하곡학이 새롭게 부상하는 공간이 되었다. This article aimed to enhance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Hagok school in the thought topography of the late Joseon Dynasty. To this end, the present study reviewed the succession and regional spread of Hagokhak in Joseon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The Hagok School refers to scholars who succeeded Hagok Jeong Jedu’s scholarship and thought. The analysis results of the genealogy, family tree, inscriptions, and biography of major Hagok school families are as follows.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some of the Hagok School, represented by the Yi Gwangmyeong family, gathered around Ganghwa, and most of the families except for this spread to Gyeonggi and Chungcheong areas. In this process, Ganghwa, Gwangju, and Jincheon were used as major bases for the Hagok school. Ganghwa, where Hagok school-related ruins, including Jeong Jedu’s tomb and residence, were located, became a place to inherit Hagokhak; and Gwangju, where academic exchanges between Sin Jak and Jeong Yakyong were held, became a place where Hagokhak and Dasanhak met.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Jincheon, where the Soron(小論) exchanged, became a place where Hagokhak newly emerged according to the situation of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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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 : 율곡학의 심학적 계승과 변용

        김세정 ( Sea Jeong Kim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11 율곡학연구 Vol.23 No.-

        다양성과 유연성 그리고 비판의식과 창조정신을 율곡과 율곡학파의 주요한 학문적 특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율곡학의 이러한 특성을 함축하고 있는 흐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율곡학의 심학적 계승과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明齊 尹拯을 징검다리로 하여 霞谷 鄭齊斗를 통해 완성된다. 본 논문에서는 율곡학이 명재를 거쳐 하곡에 이르러 어떻게 심학적으로 계승되고 변용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2장에서는 율곡의 양명학에 대한 입장과 율곡의 誠 사상을 중심으로 율곡학에 내재된 심학적 요소에 대해 고찰하였다. 3장에서는 율곡-명재-하곡으로 이어지는 학문적 연원 관계에 대해 살펴보면서 명재를 통한 하곡으로 계승된 誠 사상의 특징에 대해 고찰하였다. 율곡으로부터 발원하여 명재를 통해 하곡으로 이어지는 심학적 변용과 창조의 밑바탕에는 ``誠``과``寬``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그들에게 있어``誠``·``寬``은 우주자연과 인간의 진실한 생명본질이자 또한 역동적인 삶의 표현방식이다. 명재가 율곡의 誠과 寬의 계승이라는 바탕 위에 務寬寬學을 꽃피웠다면, 하곡 또한 이들을 계승하여 良知心學을 꽃피웠다. 4장에서는 율곡 이기론에 대한 하곡의 비판과 더불어 하곡의 心理說에 대한 고찰을 통해 하곡의 良知心學으로의 변용적 측면을 살펴보았다. 하곡은 율곡과 주자의 物理와 차별화된理氣一體的 존재로서의 생리生理를 제시한다. 生理는 존재 원리와 도덕규범을 창출하는 주재자임과 동시에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도덕 실천력으로서 율곡에 비해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으로 한 발 더 나아간다. 또한 하곡은 體用一源·體用合一體로 서의 良知를 제시한다. 양지는 知行合日體로서 하곡의 良知心學은 知行竝進을 주장하는 율곡에 비해 인간의 주체성과 능동성은 물론 실천성을 보다 더 강조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變容되었다고 할 수 있다. The main characteristics of Yulgok and the Yulgok school are diversity, flexibility, critical consciousness and creativity. One of the characteristics that contain such feature is the Simhak succession and transformation of the Yulgok philosophy.` This trend was completed by Hagok Jeong Jaedu through Myeongjae Yoon Jeung. In this area, it examined how the Yulgok philosophy was succeeded and transformed in terms of Simhak to Hakgok through Myeongjae. The common features of such Simhak transformation and creativity were ``Seong(誠)and ``Sil(實)``. ``Seong`` and ``Sil`` are dynamic expression of life and the true essence of life. While Myeongjae blew practical Silhak based on the succession of ``Seong`` and ``Sil``, Hagok also produced flowers of ``Yangji Simhak`` by succeeding it. Hagok suggested the natural laws and life laws. Life laws are initiators of creating existing principle and moral norms as well as represent subjective and active moral practicality. Thus, it went a step further to more subjective and proactive than that suggested by Yulgok. The Hagok philosophy was transformed to reinforce practicality on top of human subjectivity and activity compared with the Yulgok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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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陽明學派的《論語》解釋

        金容?(Kim Yong-jae) 한국양명학회 2009 陽明學 Vol.0 No.22

        이 글은 수 년 동안 불멸의 신화를 자랑하고 간직해오며 조선왕조를 뒤흔들었던 주자학의 균열 조짐을 17세기 이후로 설정하고 출발한다. 아울러 왜란과 호란 이후, 조선사회는 구시대의 관습과 이념으로 더 이상 새로운 질서에 부응할 수 없는 사상사적 전환기가 다가오고 있었음을 간파하고, 이러한 총체적 위기 속에서 조선의 지식인과 뜻있는 儒者들은 더 이상 오래되고 낡은 관념ㆍ제도ㆍ인물에 얽매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이에 당시 조선사회에서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제반 사항에서 수면으로 떠오르는 현상은 단연코 구시대적 사상과 잔재를 떨쳐버리고 근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내세워 실용적인 학문과 실천적인 선비의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바로 이러한 역사ㆍ철학적 소명 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사상들이 소위 말하는 脫주자학적 계열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중심에 하곡 정제두가 있음을 설정하고 본고의 논의를 시작하였다. 하곡 정제두는 기존의 주자학적 사유체계와는 일정정도 차별화된 철학 논리로 현실에 대응하려 하였으며, 그것은 곧 자신들의 입론의 근거로 삼았던 경학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그 가운데 하곡 정제두는 『논어』에 대한 해설을 주자의 주석과 상이한 견해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측면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논어』에 있어서 하곡의 독창적인 해설은 단지 해석학 상에서의 차이만을 보여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향후 조선후기에 있어서 ‘인간’ 자체에 대한 의미 규정을 달리하며 신분제의 개혁적 의지까지 표출하기에 이르는 중요한 견해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글은 하곡의 『논어』 해석학을 기저로 하여, 추후 하곡의 경세지학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데에 연구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다만 우리나라 경학 연구는 다양한 학문적 접근 방법이 도입되고 개발되면서 상당 수준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국유학사에 있어서 경학연구가 양적 성장에 부합할 만큼 그 내실까지 다져왔는지에 대해서는 엄중히 곱씹어 볼 필요성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한국에 ‘양명학’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가설 또는 문제제기에 머물렀던 사안들을 ‘원전’과 ‘문집’에서 일일이 필요한 문구들을 찾아내어, 그간의 선행연구에 확실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한국에서 양명학은 斯文亂賊으로 취급받으면서 하나의 ‘학파’로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하곡 정제두만이 양명학에 관한 遺作들을 남겼을 뿐이다. 그 가운데 하곡의 『論語』에 대한 해설서는 한국 양명학자의 경학사상을 알아보는 데 보배와 같은 자료라 할 수 있다. 필자의 寡聞과 薄學으로 하곡의 경학사상을 십분 밝혀내지 못함을 못내 아쉽게 생각한다. 아울러 향후 하곡 이외의 한국양명학자의 발굴과 경학사상을 연구하는 학문후속세대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In this paper, I would investigate Jeong JaeDoo(HaaGok,鄭齊斗 : 1649~ 1736)’s understanding on the Analects, who agreed with the theory of Wang Yang-ming in Chosun dynasty, when Cheng-zhu school’s theory had ruled over as only an orthodox Confucianism. He completed the Opinion on the Analects (Non-Eo-Seol), a commentary on the Analects, based on Yang-ming’s Learning of Mind. Since 14C Chosun dynasty was founded on the basis of ideology of Cheng-zhu Orthodox Neo-Confuciansim, Cheng-zhu study had ruled over the whole realm of Chosun’s idea. Japanese[Hideyoshi’s]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the Manchu Invasion of Korea in 1636 brought about the national financial exhaustion and impoverishment condition of rural communities and these had become main cause of continuous political and social unrest. Because Cheongzhu’s learning, however, could not cope effectively with the tense situation, in the end some new trend in the world of thought, which intended to escape from the Cheng-zhu’s monopolism, had come into existence since 17C, and Jeong worked in a key role of the inclination. In response to the difficult situation, Jeong tried to devise means in a different way with that of Cheng-zhu scholars, and he built up his arguments on basis of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s[經學]. Especially, in his commentary on the Analects, the Opinion on the Analects(Non-Eo-Seol), he presented many different views from Zhuxi, laying emphasis on human being’s natures of activeness, spontaneity, individuality, and self-direction. It has important meaning in the histroy of Chosun thought that his creative understanding on the Analects had produced an effect on thought of late Chosun, from giving new definition to human being to expressing the necessity to reform social rank system. Thus, it would also be another main point of this paper to examine that Jeong’s commentary on the Analects emphasized the meaning of governing and admini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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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곡 정제두의 『대학』 해석과 격물치지론

        강보승(Kang, Bo-seun) 한국양명학회 2018 陽明學 Vol.0 No.51

        지식 추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의 「대학설(大學說)」은 격물치지 중심, 객관적 구 중심의 주희 『대학장구(大學章句)』를 부정하고, ‘성의(誠意)’를 중심으로 하는 『고본대학(古本大學)』을 실천·수양의 핵심 텍스트로 환원하기 위한 기획이다. 하곡은 전체 글의 순서는 『고본대학』의 것을 그대로 따르면서 단락을 구분하거나 경(經)과 전(傳), 장(章)과 절(節)을 구분하면서 『고본대학』을 재해석하고 있다. 하곡이 이렇게 『고본대학』의 장·절 구분을 다각도로 시도한 것은 주희가 변질시킨 옛 경전의 회복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 회복은 주희 「격물보전(格物補傳)」을 부정하고 양명학의 입장에서 격물치지를 해석함을 의미한다. 이에 하곡은 경문(經文)이 그 자체로 격물치지장(格物致知章)이라고 주장한다. 경문에서 이미 지선(至善)과 격물·치지의 관계와 의미가 온전히 드러났으므로 따로 격물치지에 대한 전문(傳文)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곡은 『고본대학』의 장·절을 여러 유형으로 구분하였는데, 이러한 구분들에 두드러지는 통일성이 있으니 바로 ‘성의’를 중심으로 경(經)과 전(傳)이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하곡은 성의를 중심으로 『대학』을 재편(再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은 경문을 성의를 중심으로 바라보겠다는 의도, 공부(工夫)에 있어 성의가 핵심임을 밝히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 하곡이 보기에 격물ㆍ치지는 성의의 본체이고 지선(至善)의 공부여서 위아래로 통하는데, 그 격물치지의 실제 공부는 대개 성의장(誠意章)에 갖추어 설명되어있고 『대학』은 마지막까지 이 성의로 관통한다. 경문(經文)에서 는 격물치지의 요체(要諦)를 말하고 전문(傳文)에서는 격물치지의 공부를 말하고 있는데 결국 그 실제 ‘공부’는 성의로 귀결되는 것이다. 성의를 바탕으로 실제 행하는 공부에 있어 하곡이 아울러 주목한 것은 선한 동기의 발출을 가로막는 기(氣, 기질)의 문제이다. 본체는 작용성이 있으므로 기, 곧 기막(氣膜)이 맑으면 본체가 왜곡 없이 사물에 투영된다. 그러므로 기막을 맑게 하는 과정이 성의 공부에 아울러 필요하게 된다. 「Discourse on the Great Learning(大學說)」 by Hagok Jeong Jedu is a plan to change Zhu-xi’s interpretation of the Great Learning which focuses on Investigating things(格物致知) with the old version of the Great Learning which is mainly concerned with practicing and self-cultivation. Hagok tried to reinterpret the old version of the Great Learning by dividing chapters or paragraphs in a new way. And he did this to recover the original meaning of the old classic which has been distorted by Zhu-xi. And by his term, recovering means to interpret Investigating things(格物致知) in Yang ming(陽明)’s way. Hagok argued that the main chapter is the chapter on investigating things(格物致知). That is to say, another chapter on Investigating things(格物致知) is not needed because the relation between the highest excellence(至善) and Investigating things(格物致知) is fully explained. And Hagok divided chapters on the basis of Making the will sincere(誠意) to emphasize that Making the will sincere(誠意) to is the essence of self-cultivation. In Hagok’s view, practical ways for self-cultivation are fully explained in chapter on Making the will sincere(誠意) which is the essence of the book from beginning to end. The main chapter tells the basic of the highest excellence(至善) and other chapters explains the methods of it. Therefore, practicing the methods comes down to Making the will sincere(誠意). Based on this theological consequence, Hagok pays attention to the problem of Ki(氣) which blocks the activation of good intention. If Ki(氣) is clear, then the active Substance(本體) can be fully reflected without distortion. As a result, process of purification of Ki(氣) is also needed with Making the will sincere(誠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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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霞谷 鄭齊斗의 ‘致良知說의 弊’비판에 관한 재검토

        崔在穆(Choi Jae-Mok) 한국양명학회 2005 陽明學 Vol.- No.15

        이 논문은 露谷 鄭齊斗(1649~1736)의 사상 전개상에 보이는 ‘致良知說의 弊’비판 시기를 재검토해보려는 것이다. 2004년 10월 15일~16일 양일간 강화도의 안양대학교(강화캠퍼스)에서 「강화양명학파의 위상과 현대적 의미」라는 주제로 열린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에서 中純夫 교수(일본ㆍ京都府立大學文學部)는 그의 발표문 「初期江華派における陽明學受容一霞谷ㆍ恒齋ㆍ樗村一」(239~241 쪽)에서, 종래 국내 연구에서 추정해온 『致良知說의 弊』비판 시기에 의문을 던지면서 나름대로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된 적이 없는 것이며, 더욱이 종래의 하곡학 연구 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이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객관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예컨대 종래 국내의 연구에서도 中純夫씨가 제기한 일부 내용에 대해서 단편적인 언급은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검토는 하지 않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내용들을 다시 한번 짚어보는 방식으로 中純夫씨가 제기한 문제의 타당성을 재검토해본다. 윤남한과 유명종은 하곡이 양명의 치양지설 비판을 하곡의 만년으로 보고 있다. 이 이후 이것이 거의 정설화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하곡의 사상을 우경화, 우파적으로 변형되었다는 일종의 추정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첫째, ‘양명 치양지의 폐에 대한 비판 내지 평가’는 「존언」 저술 시(43세경)에 ‘23세경에 이루어진 꿈의 기억’과 더불어 기록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존언」이 하곡의 만년 혹은 죽기 직전까지 ‘계속 보완되었다’고 한다면 이 추정 또한 변경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任情縱欲之患」에 자극받아 하곡의 양명학 이해는 결과적으로 중국, 혹은 일본 양명학과 다른 「良知體用論」을 구상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그의 독특한 「良知體用圖」로 구체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만년까지 양명학 이해를 유지하도록 하는 기본틀로서 작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하곡의 良知體用論的 양명학 이해는 중국과 일본에서 볼 수 없는 독자적인 사색의 유형을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해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하곡의 연보적, 사상적 자료가 새롭게 발굴될 가능성도 있으며, 이에 따라 하곡의 양명 치양지설 비판에 따른 양명사상 체계 변화 또한 새롭게 평가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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