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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 필사본 고소설의 지역별 유통과 문화지도 작성

        김재웅 ( Jae Woong Kim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4 大東文化硏究 Vol.88 No.-

        전국에 유통된 필사본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후반까지 511종이 분포한다. 영남은 120년 동안 222종, 호남은 80년 동안 83종, 충청은 100년 동안 132종, 서울과 경기는 56년 동안 50종 등과 같이 작품은 유통시기와 유통량의 차이를 보여준다. 영남에는 작품이 풍부한 반면에 서울과 경기에는 작품이 빈약한 실정이다. 필사본은 삼남 지방에 풍부하지만 서울과 경기에는 빈약하다. 필사본은 유교문화적 전통이 오랫동안 유지된 농촌에 풍부한 보편성을 보여준다. 필사본의 지역별 유통과 문화지도 작성은 향촌사회의 문학생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필사본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기슭에 풍부하다. 이곳에는 양반 집성촌과 선비집안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기 때문이다. 필사본 고소설은 농촌에 풍부한 반면에 어촌이나 해안가에는 상당히 빈약하다. 필사본은 제주도와 울릉도의 섬과 어촌 및 해안에는 필사본의 유통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필사본은 삼남 지방의 농촌에 풍부하여 농촌문화권의 유교문화적 전통을 내포하고 있다. 작품의 유형은 영웅소설이 가장 풍부하게 유통되었다. 영웅소설(79)은 <유충렬전>, <조웅전>, 판소리계 소설(44)은 <춘향전>, 가정소설(36)은 <황월선전>, <정을선전>, 장편소설(37)은 <구운몽>, <옥루몽>, <유씨삼대록>, <창란호연록> 등의 필사본이 풍부하다. 필사본의 향유층은 영웅소설, 판소리계 소설, 장편소설, 가정소설 등을 선호했지만 영남은 장편소설, 호남은 판소리계 소설, 충청 및 서울과 경기는 영웅소설 등을 각각 선호했다. 그 덕분에 필사본은 <유충렬전>, <춘향전>, <창선감의록>, <조웅전> 등의 순으로 풍부한 실정이다. 필사본은 방각본이나 활자본과 관계없이 고소설 필사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필사본과 판본의 이본을 비교한 결과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영향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사본 고소설은 방각본과 활자본의 향유층과 일정하게 구별되었다. 이러한 필사본은 한문본(22)보다 국문본(489)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여성은 국문본을 선호한 반면에 남성은 한문본을 선호하고 있다. 더욱이 필사본 향유층은 남성(87)보다 여성(265)이 풍부하다. 영남과 충청은 여성이 풍부한 반면에 호남, 서울과 경기는 남성이 점차 증가한다. 고소설은 농번기(53)보다 농한기(181)에 집중적으로 필사되었다. 삼남 지방에서는 농한기에 작품을 필사한 반면에 상업이 발달한 서울과 경기는 농사주기가 별다른 의미가 없다. 필사본 향유층의 신분계층은 양반집안(90)과 선비집안(121)로 나타난다. 선비집안의 여성은 농한기에 단편소설을 필사하고 양반집안의 여성은 농번기에 장편소설을 필사했다. 이러한 필사본 고소설의 유통 문화지도 작성을 통해 당시 향촌사회의 문화적 기반과 문학생활을 실증적으로 비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There are 511 kinds of handwritten novels distributed over the country from the mid-19th century to the late-20th century. Youngnam has 222kinds, Honam 83 kinds, Chungcheong 132 kinds, and Seoul and Gyeonggi 50 kinds. Samnam(三南) provinces are rich in handwritten works, but Seoul and Gyeonggi are poor. Especially the foots of the Sobaek(小白) and Noryeong(蘆嶺) mountain chain are rich in handwritten novels. That is because clan villages of Yangban are intensively distributed there. Agricultural villages are rich in handwritten novels, but fishing villages are fairly poor. Agricultural villages where confucian tradition was maintained have rich handwritten novel. The types of works are regionally different. Youngnam is rich in long novels, Honam in Pansori novels, and Chungcheong, Seoul and Gyeonggi in hero novels respectively. Especially there are plenty of novels such as <Changseongamuirok(彰善感義錄)>,<Chunhyangjeon(春香傳)>, <Yuchungryeoljeon(劉忠烈傳)>, and <Joungjeon(趙雄傳)>. Novels handwritten in Korean(國文) are much more than ones handwritten in Chinese(漢文) characters. Moreover, female readers(265) enjoyed handwritten novels are more than male ones(87). Youngnam and Chungcheong are rich in female readers, but Seoul and Gyeonggi in males. Classic novels were handwritten during the agricultural off season(53) more intensively than the busy season(181). Works of Samnam(三南) provinces were handwritten during the agricultural off season, but Seoul and Gyeonggi were not related with the agricultural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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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원중회연』 한글 필사본의 서지학 고찰과 서사기법

        이정자(李正子) 한국서예학회 2015 서예학연구 Vol.27 No.-

        韓文書法是昇華韓國文字成了文化遺産的. 考察這樣韓文書法話, 可能直到18世紀極發達國文小說. 在18世紀文學上一批出來的大變化是飜譯成韓文的小說. 這樣時代的變化形成國文小說的一些讀者, 而 出現了爲充足讀者的筆寫者. 到現在傳來當時筆寫國文本. 其中現在以韓文書法家爲範本小說是韓國學 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玉鴛重會緣』. 因此對這小說要硏究幾個問題. 第一, 首先訪問首兒大學校奎章閣, 而考察了『玉鴛重會緣』的韓文筆寫本. 這筆寫本卷末有添記. 所以由這筆寫本能可知書名 · 書體 · 筆寫者 · 筆寫時期 · 分量 · 添記 · 連作有無 · 所藏處 · 圖書的大 小. 第二, 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玉鴛重會緣』看不見添記和後人題跋. 因此參考所藏處的筆 寫本考察了書名 · 書體 · 分量 · 所藏處 · 圖書的大小. 第三, 在延世大學校所藏本『옥원재합』的標題同一首兒大學校奎章閣本『옥원재합긔연』的. 但 因相異內面題目, 而分別了首兒大學校奎章閣本是『옥원재합긔연』, 延世大學校所藏本是『옥원재 합』的. 『옥원재합』卷末有添記, 據添記內容可知筆寫時期, 而不知筆寫者. 還在添記中可知個紹自 身的內容, 而不知他的性別 · 職業 · 年齡. 因此對書誌學的側面來說, 只可知書名 · 書體 · 分量 · 所藏 處 · 圖書的大小而已. 第四, 梨花女子大學校所藏本的標題同一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玉鴛重會緣』. 但兩本的 書體不一致, 卽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是正書和行書, 而梨花女子大學校所藏本是混合正書和行書 的書體. 而且在梨花女子大學校所藏本『玉鴛重會緣』中看不見添記和後人題跋. 因此參考所藏處的韓 文筆寫本, 只可知書名 · 書體 · 分量 · 所藏處 · 圖書的大小而已. ?外判斷還沒發現的有異本下, 要搜輯在全國博物館 · 大學校 · 圖書館, 而到現在還沒發現的. 有 機會的話, 不斷要搜輯日本圖書館和俄國博物館等的韓文筆寫本. 若發現『玉鴛重會緣』的異本, 在韓 文書法史有意義. 第五, 韓國學中央硏究院藏書閣本的價値和影響. 在漸漸提高書法文化意識的當代, 現存朝鮮後期的韓文筆寫本是極感謝的事情. 特別直接能看到的事情是眞光榮. 雖然別時代而變文化, 當時筆寫者和現代韓文書法家皆通過韓文的筆?創造韓文美. 其中是韓文的好範本. 因 國文小說最高潮發達時筆寫本, 極端雅?勁, 分間布白勻麗. 但各異本有差, 而可能韓國學中央硏究院 藏書閣本是最好範本. 本硏究主題的主要目的是在分別書誌學的資料. 因爲首先執筆前一定有對範本正確理解, 才可能正 活用範本. 한글서예는 우리글을 예술로 승화하는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한글서예의 원류를 살펴보면 국문 소설이 가장 활발하였던 18세기를 만날 수 있다. 18세기 문학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한글로 된 소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국문 소설의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시켰고, 독자층을 충족시켜야하는 필사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당시 필사한 한글 필사본들이 현전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 가운데 현재 한글서예인들이 가장 범본으로 삼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옥원중회연(玉鴛重會緣)』을 포함한 5종류의 서지학과 서사기법의 특징 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 대하여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연구 한 결과로 삼고자 한다. 첫째, 먼저 서울대학교 규장각을 방문하여 서울대학교 규장각본 『옥원재합긔 연』,『옥원전해』의 한글 필사본을 살펴보았다. 이 도서에는 권말에 첨기가 있다. 이에 소장된 필사본을 참고로 서명 · 서체 · 필사자 · 필사시기 · 분량 · 첨기 · 연작의 유무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등을 알 수 있었다. 둘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옥원중회연』은 본 내용 어디에도 첨기나 후 인들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소장처의 필사본을 참고로 하여 서명 · 서체 · 분량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등을 살펴보았다. 셋째, 연세대학교 소장본 『옥원재합』은 표제명이 서울대학교 규장각본 『옥원 재합긔연』과 동일하였다. 그러나 속 제목이 다르므로 서울대학교 규장각본은 『옥 원재합긔연』, 연세대학교 소장본 『옥원재합』으로 구분하도록 하였다. 이 소설의 권말에는 첨기가 쓰여 있었다. 첨기의 내용으로 보아 필사시기는 알 수 있었으나 필사자 자신이 누군지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내용이 첨기에 보이기는 하지만 성별이나 직업 또는 나이 등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서지 적 측면은 서명 · 서체 · 분량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정도만 알 수 있었다. 넷째, 이화여자대학교 소장본 『옥원중회연』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옥원중회연』과 표제명이 동일하다. 그러나 두 도서의 서체는 다르게 필사하였는데 한 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은 ‘정자’와 ‘흘림’이고, 이화여자대학교 소장본은 ‘정자’와 ‘흘림’을 섞어 쓴 ‘흘림’의 형태이다.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소장본 『옥원중회연』은 권두나 권말에 첨기나 후인들이 쓴 내용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소장처의 한글 필사본을 참고로 하여 서명 · 서체 · 분량 · 소장처 · 도서의 크기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이외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본이 있을 거라는 추측 하에 전국의 박물관과 대학교 및 도서관 등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으나, 아쉽게도 같은 이름의 고서나 이본은 현재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수 없기에 일본 도서관이나 러시아 박물관 등에도 한글 필사본이 존재하고 있는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생각이다. 이유는 한글서예의 범본으로 삼고 있는 『옥원중회연』의 낙 질이나 새로운 이본이 발견된다면, 이는 한글서예학에 큰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이 기 때문이다. 다섯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권지십일을 선택하여 서사기 법의 특징을 몇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이는 국문 소설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의 정점에 필사되었기 때문에 가장 단아하 고 힘이 있으며 공간의 분배 비율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본들의 글씨 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과 조금의 차이가 있으므로 아마도 오랫동안 서체의 모본으로써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을 범본으로 삼고 글씨를 쓸 것 같다. 다음은 『옥원중회연』의 가치와 영향이다. 서예의 문화의식이 점차 가치를 높여 가는 이 시대에서 조선후기의 한글 필사본이 현존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 필사본을 직접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은 진실로 영광스러운 일이 었다. 비록 시대는 다르고 문화도 바뀌었지만 당시의 필사자들이나 현대의 한글서예 가들은 한글의 필획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의 도구로 한글을 채용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 의 글씨는 본보기로 삼기에 훌륭한 범본이다. 이 글의 연구 목적은 서체의 모본으로 사용하기 전에 가장 기초가 되는 서지학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필법을 기술하였다. 왜냐하면 이는 가장 기본적인 연 구로 초학자들이 붓을 잡기 전에 먼저 범본으로 삼아야 할 교재에 대한 정확한 분별력이 있어야 비로소 이를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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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光淳 所藏 筆寫本 韓國 古小說의 現況과 資料的 價値

        김광순 택민국학연구원 2013 국학연구론총 Vol.0 No.11

        This paper examines five hundred fictional stories of hand-writing edition in the Kim Kwangsoon collection of premodern fiction and provides an index to this collection. First of all, this study traces sources of fictional stories, which help us understand the reception and circulation of traditional fiction, and locates that most stories appearing in the collection are from Yôngnam province. Second, this study addresses the significance of the collection as a precious cultural asset of Korean tradition. The stories have potentials to be made into various forms of media and art such as new story-telling, film, drama, animation, and also they can be used in visual media. Third, it is necessary to make this collection more available to the modern readers. Since most texts exist in a form of hand-written manuscripts, it is also important to translate these texts into modern Korean. In terms of preservation and circulation of premodern source, I suggest that we should discover and collect premodern fiction at a place and also secure a space for reading the collected works in order to make the stories readable and accessible not only for scholars but also for the younger generations. 첫째, 金光淳 所藏 筆寫本 韓國古小說 474 종의 작품명과 각 작품에 대한 현황을 작품 解題에서 밝히고 있다. 따라서 筆寫本 古小說이 韓紙에 붓으로 쓴 흘림체로서 전문가가 아니면 읽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들 각 필사본 한국 고소설의 줄거리를 소개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붓으로 쓴 필사본의 가로 세로 크기, 각 필사본의 페이지 수, 각 페이지의 行間數, 각 行의 字數를 조사 기록하였다. 수집 과정이 분명한 경우는 流通過程을 이해할 수 있도록 出處를 밝혀 놓았다. ‘김광순 소장 필사본 한국 고소설’의 출처는 전국적이지만 대체적으로 영남지역에서 수집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밝혔다. 둘째, 김광순 소장 필사본 한국 고소설은 모두 국가 문화재급의 작품으로서 독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들 고소설은 스토리텔링,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DVD, CD, 컴퓨터 자료, E북 등 영상산업에 있어 새로운 문화 상품으로서 문화콘텐츠 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 셋째, 김광순소장 필사본 한국고소설은 대부분 韓紙에 붓으로 쓴 흘림체의 필사본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는 쉽게 접근 할 수 없다. 그래서 김광순소장 필사본 한국고소설의 당면과제는 애독자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현대어로 번역해야 한다. 김광순소장 필사본 흘림체 한국 고소설은 각 異本마다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귀중한 국가문화재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국가문화재로 관리 보존해야 한다. 외국으로 밀반출되어 잃어버린 필사본『金鰲新話』와 같은 前轍을 밟기 전에 국가에서 문화재로 관리 보존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들 필사본 고소설은 영상산업의 바탕이며 새로운 문화 상품으로 문화콘텐츠 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기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필사본 한국고소설을 한자리에 모아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전국에 散在해 있는 필사본 고소설은 소장자들의 무관심으로 지금도 消失되어가고 있다. 필사본 고소설을 한 장소에 모아 관리 보존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의 場과 학자들이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일정한 공간을 확보해야 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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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herung – Bewahrung – Verfügbarkeit : Die Nibelungenlied-Handschriften A, B und C als Weltdokumentenerbe der UNESCO

        엘케 브뤼겐 서울대학교 독일어문화권연구소 2012 독일어문화권연구 Vol.21 No.-

        1200년경 생성된 『니벨룽족의 노래 Nibelungenlied』(이하 『노래』)는 가장 대표적인 독일 중세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 현재 모든『노래』연구와 번역작업은 칼 바르취와 헬무트 드 보어의 판본(1870 년 1 쇄)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 판본은 장크트갈렌 수도원도서관의 코덱스 857 에실린 『노래』(이른바 필사본 B)를 재구성한 것으로 원문을 가장 충실하게 잘 재현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노래』의 대표적 필사본으로는 A(뮌헨 바이에른국립도서관), B (장크트갈렌 수도원도서관), C(칼스루에 바덴주립도서관) 판본을꼽습니다. 필사본 B 는 다른 필사본의 서두와 달리 크림힐트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지만 (Fol. 6), 칼 바르취의 첫 판본(1870 년도 1 쇄)은 원문과 달리 “alte maeren” 연(聯)이 맨 앞에 있습니다. 즉 그의 판본이 다른 필사본(Fol. 7:필사본 A, 필사본 C)을 참조해서 재구성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필사본 B 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진 최근 대역본도 마찬가지로, “alte maeren” 첫 연이 마치‘『니벨룽족의 노래』의 로고’처럼 문학사에 오랫동안 각인되어 있음을 반증합니다. 『노래』의 필사본 A, B, C 는 2009 년 7 월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천을 받은 후 2010 년 1 월 25 일 인증서를 받았고, 여러 차례 전시회를 통해 일반대중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Fol. 9-11) 현재 세계기록유산으로 대한민국 9 개(Fol 12-22), 독일 13 개(Fol. 23-36)를 포함해 현재 193 개 기록물이 등재되어있습니다. 『노래』의 등재신청서를 보면, 표제 “The Song of the Nibelungs -a heroic poem from mediaeval Europe”부터 그 의도가 잘 축약되어 있는데, 『노래』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차원에서도 진귀한 대표 텍스트 유형 중 하나로(Fol. 30), 중세 유럽문학에서는 고대영어로 쓰인 『베오울프』, 고대불어로 쓰인 『롤랑의 노래』와 견줄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Fol. 31) “고대의 종식과 유럽의 탄생을 특징짓는다.”란 표현으로 그 중요성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Fol. 32)『노래』의 필사본들이 중고독일어로 기록되었다는 역사적 사실, 5-6세기민족이동기에 뿌리내린 지크프리트 신화 등에 근거하여 형성된 전설들이 수백 년간 구술로 전승되었다는 점이 『노래』의 귀중한 가치를 입증합니다. 또한 13-16 세기에 걸쳐 광범위하게 전승된 필사본들 가운데 선정된 이 세 필사본 모두가13 세기에 생성되어 실제 작품의 생성시기와 상대적으로 매우 근접할 뿐만 아니라 ‘온전하게’ 전승되었기 때문에, 텍스트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필사본이기도 합니다. 유럽차원의 중요성으로 『노래』의 소재는 유럽 예술사 및 사상사 여러 분야에서 수용되어 활용되고 있으며, 중앙유럽과 북유럽지역까지를 그 무대로 삼고있습니다. (Fol. 33) 또한 스칸디나비아 지역과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니벨룽족의‘사가’ 가 재가공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FOl. 34) 등재 근거에서 문학적 내용으로 용의 전사 지크프리트, 즉 “신화적 영웅인물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Fol. 35) 구성과 형식 측면에서, 『노래』는 39 개의 ‘무용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운율의 형식은 이른바 “니벨룽겐 연(聯)”으로 되어있습니다. “니벨룽겐 연”은 네 개 쌍운으로 된 장행(長行)으로 되어 있고, 다시 장행은 휴지부로 나눠진 전구와 후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노래』는 영웅서사시의 장르에 속합니다. 영웅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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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본 『고려도경(高麗圖經)』의 유포와 의의

        장남원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2009 한국문화연구 Vol.17 No.-

        이 논문은 조선후기에 제작된 『고려도경』 필사본의 몇 예를 중심으로 세부적인 특징과 함께 고려를 이해하는 텍스트로서 어떻게 소장되고 읽혀졌으며 활용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그 대상은 이화여대도서관, 고려대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등이 소장하고 있었던 『고려도경』의 서로 다른 3가지 필사본이다. 활자 인쇄본 자료의 제작과 유통이 원활치 못했던 조선후기, 중국으로부터 급격하게 전래되었던 많은 사서와 문학서적, 지리서, 백과서적 등은 특히 관료 사대부 및 문인 계층을 중심으로 유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 활자본 외에 많이 활용되었던 방식이 필사본의 제작이다. 고려 이후 조선중기까지도 국내에서 별로 활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고려도경』은 18세기 이후 여러 문인의 문집에서 그 이름과 내용에 대한 설명들이 발견되며, 새롭게 씌어진 고려 관련 역사서들에서도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고려도경』 필사본들의 존재는 앞서 살펴 본 조선후기 문인들의 독서 경향과 고려에 대한 지식 정보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19세기 이후 증대되는 『고려도경』에 대한 독후감이나 장서목록의 작성, 필사본의 제작과 유통은 조선후기에 고려를 바라보는 중요한 텍스트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고려사는 조선의 지배층이 만든 역사이다. 고려사는 조선 건국 후 100여 년이 흐른 뒤에야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유통되면서 재구성된다. 처음 고려사가 저술되었을 당시 고려사의 기억과 실제의 기억이 충돌하며 경합하였지만, 시간이 흐른 뒤 고려사의 기록은 사대부들의 기억을 지배하기 시작하였고, ‘정전’과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되면서 ‘문화적 기억’의 터가 되었다. 이 때 고려 관련 사서와 문집 등이 주요했다면, 『고려도경』은 빼 놓을 수 없는 자료였을 것이다. 『고려도경』에 기재된 고려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은 반복·지속적으로 고려에 대한 정형화된 관점을 형성하는데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18세기 이후부터 고려에 대한 새로운 역사서들이 출간되고 특히 『고려도경』을 비롯한 고려에 대한 역사서나 문집 등이 다시 읽히고 필사·수장되는 과정에서 고려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면서 고려에 대한 이해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라고 본다. Gaolitujing(高麗圖經) is the book written by Xu Jing, a scholar diplomat, who recorded a itinerary of envoy of Northern song in 1123, and devoted it to their emperor Huizong(徽宗). It is survey report of Chinese envoy over approximately 3 months from May 26th to August 27th. In this journey, Xu Jing(徐兢) was in charge of managing the administrative work such as vessels, personnel, and gifts, etc. Therefore in every process, Xu Jing recorded the information with illustrations that he saw and heard, and devoted it to Huizong in August 5th, 1124. It was favored by Huizong so that he gave Xu Jing a high government position. Today there are not illustrations anymore, but the book which were consisting of information and illustrations at that time, was quite valid document about living space and style of Goryeo royal palace centering around Gaegyeong. This is very important historical document to quate that writing year is sure and also the purpose and circumstance are clear. Because currently known historical record of Goryeo period is not many, actually it is very rare. And the types and materials of various vessels described in Gaolitujing have provided crucial evidence to study of the craft history occasionally. Particularly, three different types of copies in libraries of Ewha Womans University and Korea University, Seoul National University Kyujanggak(奎章閣) were investigated in the process for the first time. Therefore significance of Gaolitujing as a text that helps better understanding Goryeo can be known.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various information transcribing about Goryeo in Gaolitujing has been provided a rigid point of view on Goryeo consistently and repeatedly. Gaolitujing was read through the repeatedly reading, copying, garnering of various histories and anthologies of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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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본 천주가사집 출현의 배경과 의의 : 천주가사의 연장선상으로 Studio Circa Chungiugasa Relatae

        김영수 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 2003 인간연구 Vol.- No.5

        본 고는 천주가사의 연장선상으로 필사본 천주가사집의 출현 배경에 대한 문화사적 접근을 통해 19세기 후반 한국 가톨릭 교회와 우리 사회와의 관련성을 고찰하고 그 의의를 규명하고자 하는 논의이다. 17세기 이후 유입된 천주교 사상은 18세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과정에서 적지 않게 우리의 문화로 대표되는 사회상이나 민속 등과 결합되어있기 때문에 보편 교회의 시각을 넘어 우리의 문맥 안에서 이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본 고의 대상이 되는 천주가사나 연로위령 기도), 옹기의문양의 외적 형태나 한국 가톨릭 신심의 다양함 등은 그 구체적인 예가된다. 이 중 본 고에서는 천주가사의 연장선상으로 필사본 천주가사집을 대상으로 한국 교회와 사회, 나아가 시대적 관련성을 추적하였다. 현전하는 필사본 천주가사집은 총 53종으로, 여타의 단일 작품의 필사본에 비해 그 수가 상대적으로 많아 그만큼 천주가사의 수용이 활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중 필사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이 32종이며, 그 가운데 종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제작되었다는 점은 이 시기 우리 사회의 변화가 천주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점에 착안하여 그 출현의 배경과 의의를 각각 문화사, 교회사적 관점에서 추적하였다. 천주가사의 출현은 우리 문화적 풍토에서 가사라는 대중적인 문학 갈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17세기 이후 지속되어진 변화에 따라 19세기에는 각종 필사본과 상업적 유통을 위한 방각본이 간행되는 등 문화적 욕구의 발현이 일반화되었는데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필사본 천주가사집은 출현하게 된다. 한편 교회 내에서는 신교의 자유를 맞이하여 피폐된 교회의 재건을 위한 교리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천주가사는 근대 문학이나 근대 음악을 형성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였으며, 여기서 필사본 천주가사집은 근대로의 전환에서 재생산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외래 문화를 한국적 양식속에 수용함으로써 우리 문화 담당층의 주체적 역량을 담아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박해를 견디는 자기 강화의 방법이자 신자들 사이의 결집력을 높이던 천주가사와 필사본 천주가사집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점차 소멸된다. 이는 크게는 서구 지향의 급격한 사회 변화와 관련이 있다. 한편 자국의 문화에 대한 우월감으로 한국의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파리외방전교회를 비롯한, 교회 지도층의 무관심에도 기인한다. 천주가사에 대한 당시 지도층의 언급이 없는 이유나, 활발한 출판 활동에도 불구하고 간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천주가사는 천주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천주교 교리를 담고 있다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한국의 문화 속에서 나타난 한국어로 된 교리서로, 한국인이면서 가톨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도전받는, 위기의 시대에 이를 해결해 줄 토착화 신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Articulus storico substrato sensuique productionis scriptorum Chungiugasanorum operam dat, studio culturae Chungiugasanae relatae. Usque ad praesens tempus LII genera manu scriptorum transmissa sunt, quorum tantummodo XXXII productionis tempus proponi potest. Haec XXXII genera scriptorum XIX saeculo exeunte vel XX saeculo ineunte condita sunt. Unde contextum storicum et sensum huius scripti quoad culturam vitamque ecclesialem statuere possumus. Productio scriptorum Chungiugasanorum contextu culturali Coreano fieri potuit, praesertim litteraria forma ;Gasa; appellata. Huius generis litteraria ratio a XVII saeculo usque ad XIX saeculum orta et propter culturalem placitum diffusa est; quamobrem multa manu scripta producta sunt, quorum exemplaria commercii causa multiplicata sunt. Et Chungiugasana scripta hoc contextu orta sunt. Eodem tempore Coreanae Ecclesiae nuper religiosam libertatem adeptae atque post martyrum spatium nova structuratione egenti libris ad catechesim opus esse inciperat. Scripta Chungiugasana maximi momenti ad institutionem hodiernae litteraturae musicaeque fuerunt. Insuper in his scriptis supra ordinem Coreanae culturae dominium documentari potest, ita ut extraneae culturalis formae in Coreana cultura acceptatio formas particulares originalesque produxit, quibus similes formae difficile in storia universalis Ecclesiae inveniri possunt. Scripta Chungiugasana ratio fuerunt qua primi Coreani christifideles propter persecutionem firmari temptaverant, ad invicem hoc angustiarum tempore coniuncti. Sed horum scriptorum momentum a XX saeculo infeliciter imminutum est. Haec res ob propensionem ad occidentalizationem eiusque consequentiam probabiliter tribuenda est. Forsitan tamen processus hic ob mentem missionariorum gallica origine ortus est, qui superiorem culturam possidere putantes culturam Coreanam non recce intelligerunt et ruinam culturalium formarum illis non propriarum effecerunt. Forsitan hoc et propter parvam sollicitudinem auctoritatis Ecclesiae factum est. Revera in huius temporis documentis reliquia culturalis Chungiugasana vitae vel Chungiugasanorum scriptorum absunt, et quamquam litteraria vis magna fuit, Ecclesia tamen illorum scriptorum edendorum minime curavit. Scripta Chungiugasana testimonia sunt catholicorum Coreanorum fidei Christi adhaesorum, tam originali modo-coreano simul et totaliter fideli doctrinae catechismi catholicae Ecclesiae. Quamobrem Chungiugasanae rei notitia et eius scriptorum editio, Coreana lingua exaratorum et intra Coreanam culturam ortorum, non modo magni sunt momenti tamquam testimonia fidei servatae in aetate confusionis circa propriam identitatem, verum etiam nobis hodie perutiles esse possunt ad quaestionem verae inculturationis intelligendam et ad inculturatam theologiam elaborandam, quae nobis adsit ad nostram Coreanam identitatem adhuc non evidentem comprehenden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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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제기된『花郞世紀』필사본 조작설에 대한 비판적 고찰

        李熙眞(Lee Hee-Jin)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10 한국고대사탐구 Vol.5 No.-

        ??花郞世紀?? 필사본이 발견된 이래, 이 사료를 두고 진위논쟁이 계속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화랑세기?? 필사본을 사료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신라 역사에 대한 이해와 서술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화랑세기?? 필사본의 진위논쟁에 관한 한,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상식적인 기대만 하고 있기 어렵게 흘러가는 듯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치밀한 검증보다 자기 학파가 원하는 결론을 조작해 나아가는 경향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화랑세기?? 필사본에 대한 진위논쟁은, 1990년대를 중심으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2003년 ??역사비평??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다룬 시점을 기점으로 하여 아이러니컬하게도 논쟁이 수그러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03년과 2007년, ??화랑세기?? 필사본을 조작으로 보는 김기흥과 박남수의 논문이 각각 나왔던 이래,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론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필자가 검토해본 결과 이들의 논리에는 맹점이 있었다. 그래서 필사본 수정 내용 비교, ??화랑세기?? 원본의 존재 여부에 대한 조사, 이른바 ‘殘本’의 특징과 위작론, ??화랑세기?? 殘本과 1·2본 비교를 통한 위작설의 문제점, ‘碧海上白波歌’와 ‘波浪歌’를 근거로 한 위작설의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설득력 있는 근거와 논리를 갖춘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화랑세기?? 필사본이 조작이건 아니건 어느 쪽을 선택해도 무조건 50%의 확률은 보장되어 있다. 그러니까 어쩌다 결론을 맞추었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학문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근거나 논리 없이 아무 내용이나 갖다 붙인 최근의 연구는, 나중에 ??화랑세기?? 필사본이 조작임이 밝혀진다고 해도 연구 업적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본고에서는 바로 이런 성향을 비판하고 싶은 것이다. 혹시라도 본고의 비판 대상이 된 연구자들이 그때 미처 생각하지 못하여 충분한 근거나 논리 없이 글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부족한 내용을 보충해서 발표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과거의 불찰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 해도 현 상태에서 학계에 주는 폐해는 만회할 수 있다. 그렇게 되어 본고 역시 ??화랑세기?? 필사본을 둘러싼 진위논쟁의 질을 한 차원 높이는데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Since the discovery of the manuscript in ??Hwarangsegi(花郞世紀)??, it is a well-known fact that there has been the argument of authenticity with this historical material. That is because the understanding and description on history of Silla cannot help being varied completely depending on whether recognizing the manuscript in ??Hwarangsegi?? as historial material. Therefore, it is natural to thoroughly verify on this. However, as far as the argument of authenticity in the manuscript of ??Hwarangsegi?? is concerned, it seems to flow difficultly just for such sensible expectation given looking in the inside. That is because of the occurrence of tendency, which proceeds with fabricating the desired conclusion by own school, rather than close verification as time passes. As for the argument of authenticity on the manuscript in ??Hwarangsegi??, the fierce dispute was spread centering on the 1990s. However, the argument is showing tendency of being subsided ironically based on the point of time when having addressed by spending many pages in the criticism of history for 2003. Especially, since having been revealed, respectively, the theses by Kim Gi-heung and Park Nam-su, who see the manuscript in ??Hwarangsegi?? as fabrication, in 2003 and 2007, it is the real situation that anyone hasn't argued against this. However, as a result that a writer examined, there had been weak point in these people's logic. Thus, it examines by dividing into themes such as the comparison of the modified contents in manuscript, the survey on the appearance of existence in the original of ??Hwarangsegi??, the characteristics and forgery theory of the so-called ‘Janbon(殘本),’ the problem of a forgery theory through comparing Janbon(殘本) in ??Hwarangsegi?? and copy 1·2, and the forgery theory based on Byeokhaebaekpaga(碧海上白波歌) and Parangga(波浪歌). As a result, it is thought to have been possibly confirmed not to be equipped with persuasive ground and logic. The probability of 50% is secured even if selecting which one regardless of being whether or not fabrication in the manuscript of ??Hwarangsegi??. Thus, even if having guessed rightly conclusion somehow, it cannot have academic significance just with it. Accordingly, the recent research, which attached any contents without ground or logic, cannot have significance as the research achievement even if the manuscript in ??Hwarangsegi?? is clarified to be fabrication. This study is what desires to criticize just this propensity. If the researchers, who accidently became the target of criticism in this study, couldn't help having announced writing without enough ground or logic due to failing to think in advance at that time, they will need to supplement and announce the insufficient contents even if being now. Given being so, the harmful effect will be able to be recovered that gives to the academic circles in the present situation, even if the past carelessness isn't disappear. By becoming so, this study is also desired to be probably contributed to enhancing the quality in the argument of truth one-dimension further of surrounding the manuscript in ??Hwarangse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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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본 〈쌍열옥소록〉과 활자본 〈삼생기연〉의 특성과 변모 양상

        최윤희(Choi Yun-hi) 우리문학회 2009 우리文學硏究 Vol.0 No.26

        〈쌍열옥소록〉은 명나라 건문제와 성조대를 배경으로 하고 위명과 양옥소가 주인공인 한글 소설 작품이다. 본고는 필사본과 활자본의 대비하여 양자의 각각의 특성을 밝히고 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핀 후 그 변모 양상에 대해 고찰하였다. 현재 〈쌍열옥소록〉은 필사본 4종과 활자본 1종이 전한다. 완질본은 계명대본, 국도본, 활자본 3종으로, 선본(善本)은 계명대본이다. 5종 이본의 작품명은 제각각 다른데, 선본의 작품명을 따라 ‘쌍열옥소록’이라 명명한다. 필사본은 두 계열로 나뉜다. 두 계열은 계명대본과 고려대본, 국도본과 박순호본이 그것이다. 필사본의 두 계열은 서사적 맥락과 관련한 정도가 심한 변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인 부연이나 첨가, 필사 시 누락 현상까지 일치하는 점도 보여, 두 계열로 나뉜다. 아울러 계명대본 계열은 국도본 계열에 비해 위명의 건문제에 대한 절의와 양옥소의 위명에 대한 절의를 강조하려한 서술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활자본은 이들 필사본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활자본은 필사본의 기본적인 서사 구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으나, 역사적 사실이나 진실을 이탈하는 현상이 심하다. 보다 주목되는 점은 필사본과 달리 위명과 양옥소가 한 쌍의 좋은 짝임을 보여주는 서술 의식이 강하다는 점이다. 위명과 양옥소의 뛰어난 자질과 용모에 대한 서술이 첨가ㆍ부연된 점, 양옥소와 위명의 결연 과정을 필사본과 달리 구성한 점, 위명이 양옥소가 죽은 줄 알고 애통하는 마음을 표현한 점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요컨대, 〈쌍열옥소록〉은 필사본에서는 위명과 양옥소의 결연과 재합보다 위명의 충절과 양옥소의 절의에 대한 관심에 중점을 둔 반면, 활자본은 위명과 양옥소의 결연과 재합으로 관심이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활자본의 제목을 ‘삼생기연’이라 한 것도 이에 기인한다. This study aims to find out he characteristics, common features and difference of the manuscript and the printed book of 〈Ssangyeolok-sorok〉 by comparing them. There are 4 kinds of manuscripts of 〈Ssangyeoloksorok〉 - Gyemyung University version, national library version, Korea University version and Park Soonho version - and one kind of printed book. The complete works are the Gyemyung University version, national library version, and the printed book. The original copy is the Gyemyuug University version. The manuscripts are divided into 2 categories: one is the Gyemyung University version and the Korea University version and the other is the national library version and Park Soonho version. Among the 2 categories of the manuscripts, the description of the Gyemyung University version puts emphasis on the loyalty and the integrity of Yangokso. The basic description structure of the printed book is similar to that of the manuscripts. However, it is farther from the historical facts or truths than the manuscripts. Especially, the printed book has all interest in the relationship and reunion of Wimyung and Yangokso, which can be seen from the addition of the character sketch of Wimyung and Yangokso, the process of the forming of their relationship unlike the manuscripts, and the affection between Wimyung and Yangokso. In short, the manuscripts of 〈Ssangyeoloksorok〉 have more interest in the loyalty of Wimyung and the integrity of Yangokso than the printed book, and the printed book puts emphasis on the relationship and reunion of Wimyung and Yangok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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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의 『논어』 주석서 전승에 대한 연구

        박종천 재단법인다산학술문화재단 2013 다산학 Vol.- No.23

        In this Article, I have made an attempt to investigate the history of transmission of Tasan Cheong Yagyong(丁若鏞, 1762~1836)’s commen-taries of Confucian canons and his commentaries of the Analects. My conclusions through some critical textual analyses are as follow:1. Youngho Kim’s collection of Tasan’s commentaries of Confucian canons and his commentaries of the Analects and Tankook Unverisity’s collection of them are author’s own organized drafts. They showed the format of Yeoyudangjip(與猶堂集) written by Cheong founded on “Au-tobiographical epitaph”(Jachan myohimyeong)2. Kyujanggak’s colletcion of Yeoyudangjip(與猶堂集)represented the latter stage of reproduction copies of his works. 3. In case of Noneokokeumju(論語古今注, Old and New Commentar-ies of the Analects), all copies of Tasan’s manuscripts go through the fol-lowing steps and developed accordingly: author’s own organized draft stage(Youngho Kim’s collection and Tankook Unverisity’s collection)→revised reproduction version(Kyujanggak’s colletcion of Yeoyudangjip and Osaka Prefectural Nakanoshima Library’s collection)→Complete Writings of Yeoyudang(與猶堂全書) 다산 정약용은 경집經集을 문집文集보다 앞에 배치하는 「자찬묘지명」 체재의 여유당집을 구상했다. 그는 각각 별도로 저술된 단행본들을 여유당집 체재로 묶으면서 여유당집 권차와 책차를 부여했다. 그런데 규장각본 여유당집은 「자찬묘지명」과는 달리 문집을 앞에 두고 경집을 뒤로 돌리는 구성을 취하는 새로운 여유당집 체재를 선보였다. 규장각본 여유당집은 초기 정고본 계열의 필사본들로 구성된 「자찬묘지명」 체재의 여유당집에서 파생된 후기 전사본 계열의 필사본들을 새롭게 묶는 과정에서 「자찬묘지명」 체재에서 비롯된 권차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새로운 권차를 부여하기 위해 권차를 비워둠으로써 여유당집 책차와 맞지 않는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필자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여유당집의 책차와 권차를 종합함으로써, 다산이 「자찬묘지명」을 썼을 때 구상했던 체재의 여유당집이 경집을 중심으로 실제로 존재했음을 증명했다. 이를 통해 경집-시문집순으로 책차와 권차가 일정하게 체계화된 「자찬묘지명」체재의 여유당집이 초기 정고본 계열의 필사본인 데 비해, 조선시대 문집의 일반적인규례에 따라 여유당집을 시문집-경집 순으로 변화시키면서 책차와 권차가 어긋나게 된 규장각본 여유당집은 후기 전사본 계열의 필사본임을 증명했다. 또한 필사본의 수정과 보완이 여러 차례 이루어진 경우에는 후기 전사본은 물론, 초기 정고본 계열의 필사본도 두 가지 이상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확인했다. 아울러 상례사전을 중심으로 단국대본과 김영호 소장본 등으로 이루어진 초기 정고본 계열의 필사본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여유당집 혹은 사암경집의 책차와 권차에 대한 분석과 함께 내지의 권수제가 나타나는 방식 등을 비교 검토했다. 이를통해 여유당집 체재에 편입되기 전인 초기 필사본과 여유당집체재에 편입되어 가는 초기 수정본 및 편입이 확정된 정고본 등 정고본 계열의 필사본들이 전승되는 몇 가지 양상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논어고금주에 대한 분석과정에서 단국대 소장본 1책과 김영호 소장본 12책이 한 세트를 이루는 초기 가장본이자 정고본임을 밝혔고, 규장각본 여유당집과 오사카본 논어고금주 등이 정고본에서 파생된 후기 전사본 계열의 필사본임을 증명했으며, 여유당전서는 후기 전사본 계열의 필사본을 저본으로 작성되었음을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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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재동(史在東) 소장(所藏) 필사본(筆寫本) 한국고전소설(韓國古典小說)의 현황(現況)과 자료적(資料的) 가치(價値)

        사재동 ( Jae Dong Sa ) 택민국학연구원 2014 국학연구론총 Vol.0 No.14

        이 논문에서는 사재동 소장 필사본 소설의 전통적 지역성과 그 유통범위를 추적하였다. 경산문고의 필사본은 국문소설이 필사·유전된 이래, 면면한 전통을 이어 대전·충남 중심의 기호지방에서 생성·정착됨으로써, 그 시대를 통관하고 이 지역을 망라하여 각계 각층에 유통되었다. 따라서 경산문고 필사본의 유통범위가 그 분포도에 근거하고 입체적인 분포망을 따라서 확실하게 부각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경산문고의 이본적 현황과 자료적 가치를 검토하였다. 단독 이본은 400책의 22% 정도인데 그 중 「김용주전」이나 「갑진녹」·「왕조열전」·「쇼듕화역□셜」·「소강절실긔」·「셔부인젼」·「쳥암녹」·「쳥월당영화록」 등 10여개 작품들은 미발표 자료로 가치가 높다. 이들 필사본은 그 유통과정에서 강독과 강담, 강창과 가창의 방편을 타고 민간 대중에 연행되면서,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유통망을 형성하고 이끌어 옴으로써, 다른 장르와 관련하여 국문학유통사상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여 왔던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또한 경산문고의 문화사적 위상을 파악하였다. 먼저 경산문고의 필사본은 생성·유통의 역사적 도정에서 국문소설사 그 자체의 역할을 감당하여 왔다. 더구나 이 필사본의 여러 이본들이 위와 같은 유통의 방편으로 연행·교접하는 가운데 희곡장르나 시가장르 내지 평론장르를 생산함으로써, 당시의 국문희곡사나 국문시가사·국문평론사와 합류되었으니, 그 국문학사상의 위상이 높이 평가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경산문고의 필사본은 다양한 기술·표현 가운데 그 시대에 상응하는 문어체와 구어체의 음운·어휘·어법, 그리고 방언 등을 통하여 그 시대의 국어사를 정립·체계화할 수가 있고, 그 국자·국문장을 통하여 훈민정음 교습·보급의 교과서적 원전으로서 국자·국문보급사 내지 국문문장사를 계통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필수적 원전 자료가 되었다. 또한 경산문고는 그 시대의 민간·대중에 유전·보급된 국문문헌으로서 보편적인 전형성과 지역·계층적인 특이성을 다양하게 갖추었기에, 그 문헌사를 고찰·정리하는 데에 중요한 원전·자료가 된다. 겸하여 경산문고는 다양·다기한 국문필체를 구비하였기에, 그 시대 국문필체사를 체계화하는 데에더 직접적인 원전·자료가 된다. 이와 같이 경산문고는 고전소설·국문학의 연구 원전으로서 자료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국문소설유통사 내지 국문학유통사의 체계화에 필수되는 그 원전이라고 본다. 전국에 유전되는 모든 필사본의 이본을 총체적으로 집성해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값진 민족문화유산으로 높이 평가될 보전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유일본은 국가의 문화재로, 희귀본도 국가문화의 문화재로, 기타 필사본은 국민문화유산으로 영구 보존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five hundred fictional stories of hand-writing edition in the Sa Jae-dong collection of premodern fiction and provides an index to this collection. First of all, this study traces sources of fictional stories, which help us understand the reception and circulation of traditional fiction, and locates that most stories appearing in the collection are from Giho province. Second, this study addresses the significance of the collection as a precious cultural asset of Korean tradition. The stories have potentials to be made into various forms of media and art such as new story-telling, film, drama, animation, and also they can be used in visual media. Third, it is necessary to make this collection more available to the modern readers. Since most texts exist in a form of hand-written manuscripts, it is also important to translate these texts into modern Korean. In terms of preservation and circulation of premodern source, I suggest that we should discover and collect premodern fiction at a place and also secure a space for reading the collected works in order to make the stories readable and accessible not only for scholars but also for the younger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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