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김만일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3 泰東古典硏究 Vol.31 No.-
정약용이 저술한 『매씨서평(梅氏書平)』은 매색(梅賾)본 상서가 위작임을 고증하려는 것이 그 저술의 목적이다. 그중 에서도 「집전(集傳)」편은 위서고증의 시원이 된 주희의 상서문헌비평에 대해 정약용이 분석 평가한 것이다. 『매씨서평』에서 「집전」편이 차지하는 위치는 핵심적이며 주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정약용은 주희가 상서 주석서를 저술하지 않은 것이 매색본 상서가 위작임을 파악하고 절필한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채침(蔡沈)의 『서집전(書集傳)』서문에서 주희가 노쇠하여 채침에게 상서 주석서 저술을 미루었다는 주장과는 다른 구 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또 금문․고문 분류에서 당대(唐代)의 오류를 주희가 답습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상서의 위작 문제에 대해서는 매색이 한대(漢代) 공안국(孔安國)이 저술한 상서 주석서라고 바친 이른바 『고문상서공전(古文 尙書孔傳)』이 그 서문과 주석의 문장이 한대의 문장과는 다른 것임을 고증하고 위진(魏晉)시대 사람이 저술한 것을 공 안국 저술이라고 칭탁하였다고 고증하였다. 정약용은 주희의 이러한 고증을 ‘귀신처럼 밝은 혜안’이라고 극찬하였다. 주희의 서서(書序) 100편이 공자가 지은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정약용은 상서 판본의 분류와 연계하여 고증하지 못한 점과 매색의 위고문상서(僞古文尙書)를 자료로 사용한 점을 들어 그 한계와 오류를 지적하였다. 정약용은 주희의 상서문헌비평에 대해서 높이 평가한 일면 그 오류와 한계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지적 비판하였다. 이러한 주희의 오류와 한계는 채침의 『서집전』에도 그대로 전승되었는데 이점은 채침의 『서집전』을 유일한 주석서 로 사용한 조선시대 상서학에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주희의 상서문헌비평에 대한 정약용의 분석과 평가 는 조선의 상서학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한 것이 그 저술의 또 다른 이유라고 보여진다. 이것은 뒷날 추사 김정희의 상서 저술에서 제기한 문제의식과도 유사하다. Review on Massie(梅氏書平) by Jeong Yak-yong(丁若鏞) is written in order to prove that the Old Text Shangshu(尙 書, Book of Documents) presented to the emperor by Mei Ze(梅賾) in Eastern Jin Dynasty was a forgery. In Review on Massie the chapter on Shujizhuan(書集傳), a.k.a. A Collection of Comments on the Shangshu of Cai Chen(蔡沈) who was a disciple of Zhu Xi(朱熹) is an essential part because it was analyzing and assessing the Shujizhuan of Zhu Xi that had been the first book to prove the forgery of Mei Ze’s Shangshu. Zhu Xi did not make the commentary of Shangshu, and Jeong thought that Zhu Xi figured out the forgery of Mei Ze’ s Shangshu to abandon the commentary project of Shangshu. Jeong’s analysis is different from Cai Chen’s remark in the preface of Shujizhuan that Zhu Xi was too old to write the commentary of Shangshu and that he asked Cai to write the commentary. Mei Ze insisted that his Shangshu be written by Han dynasty’s great commentariat Gong Anguo(孔安國). Zhu Xi proved that the grammar of the preface and commentary of Mei Ze’s Shangshu cannot be a Han dynasty’s. Zhu concluded that Mei’s version was written in Weijin(魏晉) period and that it was just attributed to Gong Anguo by Mei. Jeong spoke highly of Zhu’s analysis. Meanwhile, Jeong criticized Zhu for following the same erroneous method as before to classify the Old and New Text of Shangshu. Zhu insisted that the hundred brief prefaces of Shangshu chapters cannot be written by Confucius. Jeong pointed out Zhu’s defect in this insistence. According to Jeong, Zhu could not relate the problem of authenticity of prefaces to the authenticity of Old and New version of Shangshu, and he also used Mei’s Shangshu as the source material. Jeong highly appreciated Zhu’s text critic of Shangshu while he pointed out his errors and limit. Cai’s Shujizhuan followed Zhu’s erroneous method, and Chosun dynasty’s Shangshu study also followed the same way because Chosun’s scholars adopted Cai’s commentary as the authentic commentary of Shangshu. Jeong’s analysis and assessment of Zhu’s study on Shangshu also was targeted at Chosun dynasty’s Shangshu study. His critical mind would be inherited by Chusa(秋史) Kim Jeonghi(金正喜)’s Shangshu study.
왕 소유 한국동양예술학회 2022 동양예술 Vol.56 No.-
유가의 학설은 송대 이후 성리학자들의 재해석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많은 사회문화와 예술활동 속에 스며들었다. 성리학은 의리(義理)에 대해 상세한 해석을 중시하며, 간결하고 명확한 도덕 윤리와 사변(思辨)적인 특징으로 정치·사회·문학·예술 등의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주희 미학 사상에서 리(理) 자체는 진(眞)·선(善)·미(美)가 하나로 어우러진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 속에는 선(善)을 전제로 하는 미(美)도 포함된다. 주희는 '리본론'(理本論) 사상의 영향 아래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서예관(書藝觀)을 구축하여 후세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주희의 서예이론은 ‘천하의 일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다(天下爲己任)’는 도덕적 자율을 갖춘 서예 이론이다. 주희의 서예는 그의 학문적 성취만큼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서예사(書藝史)에서도 분명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의 질문은 주희의 서예관이 주로 어떤 이론에 근거하여 설명되는가 하는 데서 시작된다.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해 주희의 서예관은 주로 그 리본론에 기초하여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理가 주희의 철학과 서예 미학의 최고 범주라고 볼 수 있고, 현존하는 주희의 문집에도 理로 서예와 문자를 논하는 문헌 자료가 많다는 점이다. 주희의 서예관도 주희의 학술사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리학·경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본 논문은 주희의 '리본론' 사상이 서예관에 미치는 영향을 접점으로 주희의 성리학과 서예미학의 적합성, 그리고 주희 철학 사상이 서예 품평(品評)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理를 궁극의 준칙으로 삼는 문예관이 서예의 예술적 가치를 드높인다는 점을 확인한다. 주희의 '리본론'은 후대의 문예미학사상의 발전, 특히 서예이론의 사상적 기초를 놓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문인사대부가 서예라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기 수양과 도덕성 함양에 적극적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였다. 이 연구는 주희의 理 본체론 관점으로 서예관의 학술적 가치를 탐색하고, 그 이론의 가치와 사상적 특징을 발견할 수 하는 데 의의가 있다.
정영근 ( Yeong Keun Jung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5 韓國思想과 文化 Vol.80 No.-
주희가 직업적 활동에 대해 직접적으로 논의한 내용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주희는 개인의 도덕적 수양만 중시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려는 노력 또한 중시하였다. 사회적 실천의 중심은 직업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주희의 사상 속에서 직업과 관련된 내용을 읽어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본 논문은 일과 직업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주희의 사상내용을 재구성하고 재해석해 봄으로써 주희가 가지고 있는 직업사상의 대강과 특징을 찾아본 것이다. 주희는 개인의 도덕적 덕성을 완성하는 것을 누구보다 강조하고, 이에 기초한 사회적 실천만이 현실적인 문제들을 올바르게 처리하여 사회전체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희는 현실의 이익이나 결과의 실용성만을 추구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개인의 도덕적 타락 및 사회적 갈등과 무질서를 경계하였다. 이상에 의해 지도되고 이상적으로 질서 잡히지 않는 현실은 불안정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이 주희의 생각이다. 주희는 자신이 처한 사회적인 위치와 역할에 대한 자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자신에게 요구되는 구체적인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그 일을 왜 해야 하는 것이고 또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바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주희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일에 대해서 전심전력으로 다가감으로써 그 것을 대하는 올바른 도리를 깨우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의 일에 대해서 공경을 다하는 것은 도덕적 수양과 인격의 완성으로부터 비롯하는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하고 인격완성에 이르는 핵심이기도 하다. 주희는 개인의 인격수양이나 현실적인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부당하게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기적인 사심을 제거하고 공적인 이익과 질서에 합치하려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주희는 개인적 삶이나 사회적 실천에 있어서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 삶이라고 보고 있고, 그 올바름을 판단하는 핵심에 공정성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Max Weber는 공정성을 중시하는 유교의 직업에 대한 생각을 유기적직업윤리라고 규정하고 개인의 자아실현이 저해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항상 공적 질서와의 관계 속에서 일을 생각하고 공적 질서와의 조화를 모색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개인의 성숙한 인격 및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이상적인 사회의 건설을 위해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Zhuxi emphasized social practice as well as moral cultivation as a means of reforming reality. Work being the central part of social practice, it is not difficult to read work-related arguments in his philosophy. This thesis examines the broad characteristics of Zhuxi`s philosophy on work through reconsidering and reconstructing his thoughts with particular focus on work and occupation. The foremost emphasis in Zhuxi`s argument lies on individual`s moral cultivation, and he contends that only the social practices based on that virtue could create harmony with social order by properly dealing with practical issues. He was vigilant on social conflict and chaos along with individuals` moral corruption, which could be brought about by selfish pursuit of profit or single-minded chase after practical results. According to Zhuxi`s theory, reality that is not structured according to an ideal is precarious and meaningless. Zhuxi strongly argues that it is necessary to acknowledge one`s place and role in the society. He believes that in order to perform one`s specific role required by the society, it is crucial to thoroughly understand why and how that work should be done. Zhuxi also maintains that approaching concrete object or work with wholehearted sincerity allows one to realize what the proper way to fulfill one`s duty. Zhuxi suggests selfish motive that seeks unfair profit as the most perilous factor in cultivating oneself as a person or in handling practical work. Thus, he puts emphasis on recovering the wish to maintain in accordance with the public good and the system while eliminating selfish purposes. Zhuxi believes that worthy life pursues righteousness both in private life and social practice; and public justice lies at the center of determining righteousness. Max Weber defines Confucian thought on occupation that emphasizes public justice as an organic ethics of work and criticizes it for its risking individual self-realization. However, fulfilling one`s duty in balance with the public system and considering one`s work in relation to the public system has its merits both in terms of cultivating mature self and leading a happy life as well as facilitating the construction of an ideal society.
주희(朱熹) 철학에서 이순(耳順)의 형이상학적 의미 - 『논어(論語)』 ‘지우학(志于學)’장에 대한 주희의 해석을 중심으로
신상후 대동철학회 2018 大同哲學 Vol.85 No.-
『논어』 「위정(爲政)」 ‘지우학(志于學)’장은 공자(孔子)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스스로 거쳐 온 삶의 과정을 6단계로 서술한 내용이다. 공자는 유학에서 인간의 이상이자 목표로 제시되는 성인(聖人)의 현현이기에, 공자의 삶의 과정에 대한 직접적 서술은 유학자들의 많은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 구체적 해석에 있어서는 견해의 차이를 보이는데, 그 차이는 특히 ‘이순(耳順)’에 대한 이해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주희(朱熹)는 이순을 ‘앎이 지극해져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知之之至 不思而得也]’으로 해석하였다. 불혹(不惑)-지천명(知天命)-이순(耳順)의 단계를 앎[知]의 심화과정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후대의 학자, 예컨대 다산(茶山)ㆍ이토 진사이[伊藤仁齊]ㆍ초순(焦循) 등에게 거부되었다. 이들은 ‘이순’을 ‘이치에 어긋나는 말이나 자신을 비방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귀에 거슬리지 않음’의 의미로 해석하였으며, 주희의 해석에 대해서는 ‘공자를 신성화하려 했던 무리한 시도에서 발생한 오역’이란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주희의 해석은 그의 존재론과 심성론에 입각해있는 것으로서, 다산 등의 지적과 반대로 주희는 이순을 포함한 6단계의 과정에 대해 ‘신성한 성인’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에게 알맞은 점진화 과정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주희에 해석에 대하여 공자의 신성화를 문제 삼는 것은 실상 주희가 계획한 인간의 신성화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우학’장에 대한 주희의 해석은 그의 존재론과 심성론의 전체 문맥 하에서 이해하여야 오독을 피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주희가 ‘불혹-지천명-이순’을 앎[知]의 심화 과정으로 이해한 것에 주목하되, 그 이해의 토대로서 그의 ‘본체-현상의 일원적 존재론(체용일원(體用一源)의 존재론)’을 먼저 검토하였다. 그 존재론을 검토하여야 불혹, 지천명, 이순 사이의 의미 차이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희는 불혹을 사(事)의 측면에서 아는 것, 지천명을 리(理)의 측면에서 아는 것, 이순을 사(事)와 리(理)에 모두 통달한 것이라고 하여 구분한다. ‘사(事)-리(理)-리사(理事)’의 진전은, 화엄(華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현상적 앎-본체적 앎-본체와 현상을 통일하는 앎’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천리가 본체적 측면과 현상적 측면의 두 층위를 갖는 만큼, 앎의 극치에 도달한 성인은 천리의 두 측면에 대한 앎을 모두 획득하여 둘을 통일하는 인격이며, 이러한 성인의 경지를 『논어』 ‘지우학’장의 용어로 하면 ‘이순’이 되는 것이다. 'Jiwoohak' in Confucian Analects is described as one stage of the six-process of life written by Confucius after he recalls his own life. Since Confucius is suggested as a incarnation of sage and also as a being of ideal living, many Confucian scholars have paid attention to this direct description of Confucius's life. Nevertheless, the Confucian scholars show different opinions on a detailed interpretation, especially on the interpretation on 'Isoon(耳順)'. Zhu Xi interprets 'Isoon' as a stage of getting to know without thinking because of that one's Ji(知) reached the most. He thinks that the three-process of 'Boolhok(不惑)' - 'Jicheonmyeong(知天命)' - 'Isoon' is an intensive course of 'Ji'. But, this Zhu Xi's interpretation is rejected by some of the later scholars such as Dasan Chong Yak-Yong, Ito Jinsai and Jiao Xun etc. These later scholars interpret that 'Isoon' is a stage of being not offensive when someone hears of something against the process of nature or slander on oneself. And they regard Zhu Xi's interpretation as a mistranslation by his impractical attempt to sanctify Confucius. However, Zhu Xi's interpretation is based on his Theory of Mind-Nature and the six-process is applied not to a sage but to an ordinary human. Therefore, to raise a question on Zhu Xi's interpretation means to disagree the sanctification of human designated by Zhu Xi and Dasan Chong Yak-Yong and Ito Jinsai stand on that position. Then, Zhu Xi's interpretation on ‘Jiwoohak’ should be read in the context of his Mind-Nature Theory not to misread it. In addition, to analyze his interpretation on the six-process of life can help Zhu Xi's Theory of Mind-Nature and understanding of human. This paper focuses on that the three-process of 'Boolhok' - 'Jicheonmyeong' - 'Isoon' is an intensive course of 'Ji'. Zhu Xi accounts that 'Boolhok' is to know in terms of Sa(事, affair), 'Jicheonmyeong' is to know in terms of Li(理, principle) and 'Isoon' is to be well versed in terms of both Sa and Li. The progress of 'Sa - Li - Li and Sa' can be explained as 'phenomenalistic knowing - substantialistic knowing - knowing the unit of phenomenon and substance' as Avatamsaka shows. The development of this three-process means not an increase or extend of the knowledge but a leap and qualitative transformation of a subject and object.
주희의 도연명의 시가 수용과 인격 비평 -주희에 의한 도연명의 충신으로서의 전범화-
노우정 ( Woo Jeung Roh ) 온지학회 2013 溫知論叢 Vol.0 No.35
도연명은 중국문학사와 문화사의 특수한 인물로, 송대 이후는 물론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도 ‘충신의 전범’으로 인식되었는데, 이는 성리학의 집대성자로서 중국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주희의 영향이 크다. 주희는 도연명의 인격을 유교적 인격을 가진 인물로 규범화하였다. 주희는 도연명을 유교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현인과 군자로 인식하였고, 나아가 충신의 전범으로 평가하였다. 주희의 도연명의 인격에 대한 평가는 시인 도연명을 이상화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희는 心性學의 관점에서 도연명의 작품을 그의 인격과 연관 지어 비평함으로써, 도연명의 自然과 超脫은 배우려 해도 배울 수 없다고 평가하였다. 주희가 도연명을 유교적 인격의 전범이자 후천적인 노력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경지의 시인으로 규범화 한 것은 신유학으로써 중화적 정통사상과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주희의 시대적 사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주희는 군신관계가 와해되고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한 남송 시기의 지식인으로서, 정통유학을 계승한 성리학을 시대사상으로 확립하고, ‘天理’로 이루어진 군신관계를 정립하여 왕조의 통치를 정당화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기치 아래 주희는 유교적 인격의 모델을 모색하는 체계를 진행하였다. 주희는 도연명의 인격을 유교적인 인물의 범위 안에서 규정화하였고, 도연명의 시문에 대해서도 유가의 덕목인 충심, 정절, 의리가 반영된 작품에 특별히 주목하고 <귀거래사>를 정전으로 평가하였다. 주희는 도연명을 성인의 경지라고는 받들지 않았는데, 이를 통해 주희가 특별히 도연명의 시문에 드러난 유가사상과 ‘충’의 덕목을 주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희에 의한 도연명의 유교적 인격으로의 규범화는 남송의 정치현실에서 유학적 이념으로 중국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왕조의 통치를 정당화하여 이를 중국 문화의 표준으로 삼고자 한 체계로서 진행된 것이며, 그 영향은 주희의 성리학을 지식권력으로 수용한 조선에까지 미쳤다. Song Dynasty, after the course, Taoyuanming has got enduring prestige that is "Idolization of the personality" in East Asian cultural area of chinese character, which was greatly influenced by Sushi in the Northern Song and Zhuxi in Southern Song. Zhuxi had played thinkers, as well as actively as a literary critic. He accepted Taoyuanmingg`s archaism poem and criticized the retreat, lineage, personality, philosophy of life,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poetry of Taoyuanming. In this process, Zhuxi standardized Taoyuanming`s personality into sage, gentleman, and loyalist, which is progressed to recover the identity of confucianism as system to seek to confucian model of personality. Highly rated Taoyuanming`s personality by Zhuxi affected the idealized poet Taoyuanming. Zhuxi suggested and imitated Taoyuanming`s archaism poem which has no rhetorical embellishments and reflect rich philosophy as the rules of the poetry. And Zhuxi as Song Dynasty scientist idealized that Taoyuanming`s nature and detachment from the point of view crane plutonic is best stage which can be reached after the holy Spirit and the moral training you need to combine and future generation can not even learn to. However, Zhuxi did not evaluate Taoyuanming`s personality as the state of a saint. Zhuxi regulated Taoyuanming`s personality within the scope of the confucian figures, and also evaluated his poetry and prose like "Guiqulaici(Homecoming Song)" as canon while paying attention to his poetry and prose to reflect loyalty, fidelity and sincerest. With this point in view, we can know that Zhuxi pay attention to virtues like confucianism and loyalty especially.
일반논문 : 주희(朱熹)의 소목론(昭穆論)과 종묘제(宗廟制) 개혁론(改革論)
김정신 ( Jeong Shin Kim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5 大東文化硏究 Vol.92 No.-
廟制에 있어 位次論과 歲次論의 논쟁은 소목에 의한 세대구분과 제위계승의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즉 계통과 계사가 불일치하는 변칙적 승계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전개되었다. 이러한 경우 종묘에서 소목 배열을 둘러싼 典禮問題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며, 그에 대한 해결은 경학상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漢代 이래 종묘에서의 소목 배열은 세차가 관행처럼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주희(1130~1200)가 생존하였던 송대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주희는 한대의 同堂異室 제도와 陸佃(1042~1102)의 昭穆歲次說을 비판하는 한편 태조·태종의 소목배열 문제, 영종의 사친 추숭 문제 등 구체적인 전례문제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昭穆位次說을 중심으로 하는 묘제론을 완성하였다. 그렇다면 종묘제도 및 왕실의 전례문제에서 주희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소목위 차설의 정치적 함의는 무엇일까? 먼저 주희가 천리를 매개로 계통과 계사의 연속적측면을 강조하고 군신의리와 부자의리를 동일시하는 臣子一體論을 주장하였음이 주목된다. 주희는 계통의 정당성을 부자 의리로 지칭되는 천리에서 찾았고, 나아가 부자 의리에 기반하지 않는 군신 의리 그 자체의 독자성을 부정하였다. 둘째, 주희는 위차설을 통하여 제왕가에도 예외 없이 종법상 ‘一統’의 원칙을 관철시키고자 하였다. 주희는 위차설에 기반하여 계통이 이루어진 모든 경우에 부자의리를 적용함으로써 계통과 계사가 일치하는 종법상의 일통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주희는 종법의 일통을 실현함에 있어서 공가가 갖는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종법의 일통을 실현할 때 公家든 私家든 관통하는 의리·명분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본 것이다. 주희가 군신상하의 공적 질서를 부자관계의 사적 질서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거론하였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러한 주희에게 세차설이 내포하는 혈통 중심의 논리는 종법의 ‘一統’과 천리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결국 주희의 위차설은 ‘臣子一體’의 논리로써 계통의 정통성을 천리에 두었던 한편, 궁극에서는 이를 통하여 ‘비종법’적이고 ‘비정통’적인 승계를 방지하고자 하였던 정치적 의도를 내포한 것이라 하겠다. Representing the arrangement of Zhao and Mu, shici(世次) began to be implemented in ancestral shrines during the Han dynasty of China. It was also employed during the days of Zhu Xi and the Song dynasty. However, criticism of the shici enshrinement system designed to enshrine the tablets of brothers who successively acceded to the throne in one room in the ancestral shrine continuously arose from the onset of the Song dynasty onwards. Zhu Xi called for the arrangement of Zhao and Mu in accordance with the concept of weici(位次, succession of legitimacy of the imperial throne based on the proper order of ascension) when dealing with issues such as the arrangement of tablets for Emperors Taizu and the Taizong brothers, and the posthumous designation of Emperor Yingzong’s father. The following can be regarded as the political implications of the weici theory which Zhu Xi consistently asserted in terms of the ancestral shrine system. Above all, based on the notion of the heavenly principle(天理), Zhu Xi emphasized consistency in terms of the succession of legitimacy and blood and focused on the importance of loyalty between king and subjects and between father and son. Zhu Xi introduced the notion of the legitimacy of lineages based on heavenly principle, or what he referred to as loyalty between father and son. Furthermore, Zhu Xi refused to accept the notion of the independence of king and subjects if such independence was not based on the loyalty between father and son. In addition, Zhu Xi did not accept the uniqueness of the royal family when it came to the actualization of the ‘unification’ of the patriarchal clan system. He regarded the notions of loyalty and justification that lay at the heart of the actualization of the unification of the patriarchal clan system, and this regardless of whether one was dealing with the royal family or commoners’ family, as being fundamentally the same. As such, for Zhu Xi, succession to the imperial throne based on the notion of shici.
人心道心說에서 朱熹와 韓元震의 문제의식 비교- “私”자 풀이를 중심으로 -
이창규 한국유교학회 2018 유교사상문화연구 Vol.0 No.72
In the latter part of the Joseon Dynasty, the attempt to find Zhu Xi's established theory is prevalent, and Han Won-Jin is a representative figure in this attempt. He notices "Xing-Qi[形氣]" in the theory of Renxin-Daoxin. On his understanding, a description that divides Renxin and Daoxin into Qi-Fa[氣發] and Li-Fa[理發] is caused by misunderstanding about "Xing-Qi" as Xin-Qi[心氣]. Yet Zhu Xi's description include "Si[私]", so clearly, "Xing-Qi" means body, not Xin-Qi. Seong Hon insist that Si-Duan[四端] and Qi-Qing[七情] can be divided as Li-Fa and Qi-Fa like Daoxin and Renxin. Through this argument, Renxin-Daoxin debate begins. Han Won-Jin wants to conclude this debate, so emphasize the understanding about "Xing-Qi". In this case, "Si[私] is a important clue to decide understanding. However in Zhu Xi's position, it doesn't matter. Zhu Xi's student claim that "Si[私] can casue misunderstanding about "Xing-Qi" or Renxin, because "Si" means "Si-Yu[私欲]" in general. Zhu Xi doesn't want to understand Renxin as perfect evil. In fact, he intends Renxin and Daoxin to translate into complementary concepts. But Cheng Yi[程頤], a senior scholar, describes Renxin as Si-Yu. Zhu Xi has trouble about compatibility problem with Cheng Yi, so as a limited definition about "Si[私], avoid this problem. This is uncommon definition in Zhu Xi's times. Yet He wants to interpret Renxin as a meaning of private needs, and also avoid compatibility problem with Cheng Yi. This trouble doesn't matter in Han Won-Jin's times. Because Zhu xi has authority, so compatibility with Cheng Yi is not problem, and limited definition aobut "Si[私] becomes general meaning. Based on these premise, Han Won-Jin attempts to conclude Renxin-Daoxin debate. This debate is not the problem of Zhu Xi one's lifetime, it's for Joesen scholars. Han Won-Jin makes "Xing-Qi" an important issue, and "Si[私] becomes conclusive evidence. It is regarded to has possible to misunderstang in Zhu Xi's times, on the contrary, in Han Won-Jin's theory, it is authorized to make "Xing-Qi's meaning clear. Consequently, the theory of Han Won-Jin about Renxin-Daoxin is developed in different way with Zhu Xi's thinking. Because, as a Joseon scholar, Han Won-Jin focues on the issue of Joseon's Renxin-Daoxin debate, not Zhu Xi's. 조선 후기에는 朱熹의 정론을 확립하려는 시도가 유행했고, 한원진은 이러한 시도를 수행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인심도심설에서 “形氣”라는 글자에 주목했다. 人心과 道心을 각각 氣發과 理發로 분속하는 학설은 『중용장구』 서문의 “形氣”라는 글자를 心氣로 오해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한원진에 따르면, 朱熹는 “形氣之私”라고 표현하여 “私”를 붙였으므로 “形氣”는 분명히 신체에 해당한다. 하지만 蔡沈이 『서경』 주석에서 “私”를 빼고 “形氣”만 사용하면서 잘못된 설명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원진이 인심도심설에서 氣發과 理發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조선 중기의 인심도심논쟁 때문이다. 성혼은 인심과 도심의 관계를 근거로 들어, 이황이 四端과 七情을 理發과 氣發로 풀이한 것에 찬성했다. 한원진은 율곡학파의 입장에서 이러한 입장을 비판하려 했고, “形氣”에 대한 이해를 핵심쟁점으로 내세웠다. “私”자는 이 경우 “形氣”라는 글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하지만 朱熹의 경우엔 사정이 다르다. 朱熹의 제자들은 『중용장구』 서문의 “私”자 때문에 形氣와 인심을 오해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私”자를 私欲이라는 의미로 보고 形氣와 인심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朱熹는 인심을 전적으로 나쁜 것으로만 보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인심과 도심을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이 경우 인심을 私欲이라고 풀이한 程頤와 충돌하게 된다. 朱熹는 程頤와의 정합성 문제 때문에 고민했으며, 그 결과 “私”라는 글자를 몸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측면이라는 방식으로 한정적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이것은 朱熹 당대의 일반적인 풀이와 달랐으며 朱熹의 사상 속에서도 특별한 용법이다. 하지만 한정적으로 풀이하면서라도 “私”자를 수용함으로써 程頤와의 정합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따라서 朱熹의 경우 인심도심설에서의 “私”자는 程頤와의 정합성 문제가 중요한 관건이다. 그는 인심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는 의미에서 풀이하고자 했고, 이것을 유가의 정체성으로 삼아 불교는 욕구를 모두 없애버리려고만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인심을 욕구의 의미로 보면서도 선배학자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朱熹는 “私”자를 한정적으로 풀이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한원진의 시대에는 거의 무의미해졌다. 朱熹 자체가 학문적 권위를 획득했으므로 程頤와의 정합성은 문제되지 않고, 인심도심설에 한정된 “私”자 용법은 그 자체로 존중받았다. 한원진은 이런 점을 전제로 하고서, 인심도심과 理氣互發의 관계를 부정하는 데에 집중했다. 이 문제는 朱熹 당대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 중기부터 시작된 조선시대 학자들의 문제였다. 한원진은 “形氣”에 대한 이해를 주요 쟁점으로 내세우고 “私”자를 결정적인 증거로 삼았다. 朱熹 당대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私”자가 이번에는 “形氣”의 의미를 명료하게 해주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따라서 한원진의 인심도심설은 朱熹의 문제의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한원진이 조선 후기 학자로서, 南宋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 후기의 학술상 쟁점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儒 · 佛의 修養 · 修行의 윤리적 의미에 대한 비교분석 -知訥과 朱熹를 中心으로-
김종용(金鍾龍)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21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87 No.-
동양철학의 윤리학에서 유 · 불(儒 · 佛)의 수양(修養) 또는 수행(修行)은 자기완성의 방법론임과 동시에 윤리적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론이다. 동양철학에 있어서 두 철학은 몇 천년에 걸쳐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두 철학 및 사상의 수양 또는 수행론의 이론적 근간(根幹)과 종지(宗旨)가 다른 만큼 방법론에 있어서도 상이(相異)한 부분 또한 적지 않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동양철학, 나아가 한국 유 · 불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지눌과 주희를 중심으로 이를 살펴보았다. 두 인물의 수양 또는 수행에 있어서 전제는 모든 인간은 보편적으로 윤리적 가능태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두 인물 모두 만인(萬人)은 윤리적 기준을 태생적으로 내재하고 있으며, 이를 수양 또는 수행을 통해 발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윤리적 기준, 즉 주희에게 있어 성리(性理), 지눌에게 있어 공적영지(空寂靈知)를 밝히기 위한 방법론과 이론적 설명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지눌은 큰 자비[大悲] 서원 전제로 한 정혜(定慧) 수행과 더불어 간화선을 통한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공적영지 또는 무심(無心)이 윤리적 기준이 된다고 말하는데, 이는 수행을 통해 선정(禪定)에 들게 되면 곧 영지(靈知)가 드러남으로 깨달음[定]과 지혜[慧]에 대한 시간적 또는 개념적 간극(間隙) 없이 실현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공적영지에 기인한 윤리적 행위는 무위적인 것으로 직관적 판단에 가깝다. 이에 반해 주희는 심(心)의 주재성(主宰性)을 강조하고 이러한 심은 모든 수양의 과정에서 경(敬)으로써 내적을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주희는 윤리적 판단 및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거경함양(居敬涵養)으로써 자신의 인욕을 절제함과 동시에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해 성리를 활연관통(豁然貫通)하여 성리(性理)가 온전할 수 있도록 함양해야 하고[先涵養], 이후에 이러한 함양 공부를 기반으로 한 앎으로써[先知後行] 모든 언행에 앞서 자신을 찰식하여[後察識] 중절(中節)을 유지토록 하였다. 따라서 주희의 윤리적 인간 완성은 단계적이며 이성주의적 판단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In the ethics of East Asian philosophy, Xiu-Yang[修養] or Xiu-Xing[修行]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is a methodology of self-completion and a representative methodology for cultivating ethical human beings. In Eastern philosophy, the two philosophies had a profound influence on each other for thousands of years. However, the theoretical logic and ultimate goal of Xiu-Yang[修養] or Xiu-Xing[修行] of these two philosophies are still different. Therefore, in this thesis, we have looked into the oriental philosophy, focusing on Ji-Nul[知訥] and Zhu-Xi[朱熹], which had a profound influence on the philosophy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in Korea. In the two philosophies Xiu-Yang[修養] or Xiu-Xing[修行], the premise is that all human beings have universal ethical possibilities. Both philosophies considered that human ethical possibilities could be realized through Xiu-Yang[修養] or Xiu-Xing[修行]. However, the methodology and theoretical for realizing the ethical standards they argue, namely, Xing-Li[性理] of Zhu-Xi[朱熹], Kong-Ji-Ling-Zhi[空寂靈知] of Ji-Nul[知訥]. The explanation was different. Ji-Nul [知訥] asserts that Ding-Hui-Xiu-Xing[定慧修行] and Kan-Hua-Chan[看話禪] should be practiced on the premise of a vow of great mercy. Kong-Ji-Ling-Zhi[空寂靈知] or Wu-Xin[無心] is said to be an ethical standard. Wisdom based on these ethical standards is realized through ethical conduct. There is no temporal or semantic gap between wisdom and action. In addition, the ethical behavior caused by Kong-Ji-Ling-Zhi [空寂靈知] is unconsciously close to intuitive judgment. On the other hand, Zhu-Xi[朱熹] emphasizes the subjectivity of Xin[心], and this Xin[心] maintains a state of psychological tension as Jing[敬] in the process of all Xiu-Yang[修養]. Zhu-Xi [朱熹], in order to conduct ethical judgment and conduct, first restrained his human desire with Ju-Jing-Han-Yang [居敬涵養]. In addition, it emphasizes the need to realize Xing-Li[性理] through Ge-Wu-Zhi-Zhi[格物致知]. Afterwards, you must observe yourself and maintain Zhong-Jie[中節] before all words and actions by knowing based on discipline.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Zhu-Xi[朱熹]"s ethical human perfection is step-by-step and based on rationalistic judgment.
知訥과 朱熹의 倫理思想에 대한 比較分析 -心性論을 中心으로-
김종용 한국불교연구원 2021 불교연구 Vol.54 No.-
한국 윤리사상의 근간에는 儒·佛의 사상이 복합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한국 철학의 중심에는 단연 지눌(知訥, 1158-1210)과 주희(朱熹, 1130-1200)의 사상이 至大的이다. 그들의 사상은 한국 철학의 전반에 영향을 주었으며, 윤리학 또한 그중 하나이다. 이들의 윤리학적 논리는 ‘인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물음의 해답은 心性論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며, 이러한 심성론의 해석 위에서 윤리학의 이론과 방법론이 구축되는 것이다. 이에 본 논문은 한국의 윤리학적 근거를 추적하기 위해 두 인물의 윤리학을 심성론을 중심으로 비교분석 하였다. 그 결과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되었다. 첫째, 두 이론 모두 인간은 선험적으로 윤리적 기준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눌은 眞心이 곧 空心임을 깨달아 이에 혼연히 드러나는 空寂靈知로 말미암는 윤리적 판단을, 주희는 마음[心]의 主宰로 말미암는 性=理가 윤리적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보았다. 둘째, 두 인물 모두 순수한 인간 그 자체로는 윤리적 행위가 불가하다고 보았다. 지눌은 진정한 윤리적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解悟를 전제로 하였고, 주희는 정당한 공부의 과정 없이 곧장 도덕적 自覺 또는 도덕적 知覺에 이르려는 것은 불가하다 말하고 이에 居敬涵養의 공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셋째, 지눌의 윤리적 행위의 논리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만물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서 온다. 이에 지눌의 윤리적 행위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본질로 들어간다면 곧 자신을 돕는 것이며[自利利他], 만물을 모두 소중히 여기는 것 또한 같은 논리이다. 하지만 주희는 이러한 物我爲一의 개념에 의한 윤리적 행동을 비판한다. 주희는 만물과 내가 하나인 경지에 이르게 되면 仁을 구하고자 하는 이는 공부를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게 되며, 仁은 自心의 이치인데 남과 나의 구분이 없게 되면 누가 주체가 되어 누구를 사랑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넷째, 지눌의 윤리적 판단은 공적영지에 의한 판단으로 이러한 판단은 무위적인 것으로 이성적 판단이 아닌 직관적 판단에 해당한다. 반면 주희의 윤리적 판단은 心에 의한 자율적 행위로, 심의 주재에 의한 이성주의적 판단에 해당한다. Confucianism and Buddhism are in a complex harmony at the basis of Korean ethical thoughts. At the center of this Korean philosophy, the ideas of Ji-Nul(知訥, 1158-1210) and Zhu-Xi(朱熹, 1130-1200) occupy a large part. Their thoughts influenced the whole of Korean philosophy, and ethics was one of them. Their ethics start from 'how to interpret humans?'. The answer to these questions can be found in Xin-Xing-Lun[心性論]. The theory and methodology of ethics are constructed on the basis of this interpretation of Xin-Xing-Lun[心性論]. This thesis compared and analyzed the ethics of the two characters, focusing on Xin-Xing-Lun[心性論] to trace the ethical basis of Korea. The results were largely classified into four categories. First, both theories say that humans have inherent ethical standards. Ji-Nul[知訥] refers to an ethical judgment based on Kong-Ji-Ling-Zhi[空寂靈知] that is revealed by realizing the original emptiness of Zhen-Xin[眞心]. However, Zhu-xi[朱熹] regarded the Li[理] of Xing[性] presiding with Xin[心] as the standard for ethical judgment. Second, both figures considered that pure humans themselves were not capable of ethical behavior. Ji-Nul[知訥] presupposes Jie-Wu[解悟] in order to conduct a genuine ethical act. And Zhu-xi[朱熹] said that it is impossible to achieve moral awareness directly without a proper course of study, and he saw that the study of Ju-Jing-Hamg-Yang[居敬涵養] should be premised. Third, the logic of the ethical behavior of Ji-nul[知訥] comes from breaking the boundaries between oneself, others, and all things. Therefore, Ji-Nul[知訥] ethical behavior is for himself, not for others. It is also the same logic to value all things. However, Zhu-Xi[朱熹] criticizes the ethical behavior of the concept of Wu-Wo-Wei-Yi[物我爲一]. Zhu-xi[朱熹] said that when all things and I reach the level of being one, those who want to save Ren[仁] do not know where to start their studies. ‘Ren[仁] is the reason of one’s own heart, but if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me and others, it is said that it is impossible to know who is the subject and loves whom. Fourth, Jinul's ethical judgment is a judgment based on Kong-Ji-Ling-Zhi[空寂靈知], which is a judgment of Wu-Wei[無爲]. Therefore, it is an intuitive judgment, not a rational judgment. On the other hand, the ethical judgment of ‘chuu’ is an autonomous ethical act by the mind, which corresponds to a rational judgment.
성리학의 中和論辨에서 보이는 불교의 영향과 변용: 朱熹의 中和新說 修養論 구축 과정을 중심으로
김종용 한국불교연구원 2024 불교연구 Vol.0 No.61
본 연구는 성리학 성립과정에서 보이는 불교적 영향과 그러한 영향을 극복 또는 유교적으로 재해석한 변용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먼저 도남학파는 인간의 내면에서 ‘리(理)’를 구하고자 하였으며 그 구하는 바는 미발(未發) 시에 가능하다 보았다. 이에 도남학파에서는 미발구중(未發求中)‧미발체인(未發體認)을 목적으로 묵좌징심(默坐澄心)을 수양 방법론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도남학파의 내면에서 ‘리’를 구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 앉아서 내면을 다스리는 등의 특징은 분명 선불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러한 도남학파의 이론과는 다르게 주희는 인간 내면에서 자신의 성리(性理)를 직접 구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주희는 미발(未發) 시에 중을 구하는 것[求中]은 이미 그 자체로 이발(已發)이기 때문에 불가하다 보았으며, 이발찰식(已發察識)에서 성리(性理)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이전의 함양 공부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성리(性理)를 파악할 수 없다 보았다. 이에 주희는 인간 내면이 아닌 일[事]과 사물에서 리를 구하고자 하였다. 주희는 격물궁리와 같은 외적 공부와 더불어 미발함양(未發涵養)과 같은 내적 공부 또한 강조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미발함양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내적 수행을 통한 깨달음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주희는 자신의 내면의 성리를 직접 구하는 것은 불가하다 보았다. 왜냐하면 성리(性理)는 미발의 상태이지만 그 구하는 바가 이미 이발이기 때문이다. 이에 주희가 말한 내적 공부 방법론은 ‘함양(涵養)’ 공부이다. 여기서 말하는 함양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방한(防閑)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수양이다. 정리하자면 주희는, 리(理)는 밖에서 구하고[格物窮理], 내면의 리는 다만 지키는 것[未發含陽]을 기조로 자신의 중화신설(中和新說) 수양론을 완성하였다. 이러한 그의 일련의 중화신설 성립과정은 이전의 리학 학파들에서 보이는 불교적 수행론을 극복하고자 하는 주희의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Buddhist influence seen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Neo-Confucianism and the transformation of such influence by overcoming or reinterpreting it in a Confucian way. First, the Dao nan[道南] school believed that humans wanted to seek Li[理] from within, and that seeking was possible during Wei fa[未發]. Accordingly, the Dao nan[道南] school spoke of Mo zuo cheng xin[默坐澄心] for the purpose of Wei fa qiu zhong[未發求中]‧Wei fa ti ren[未發體認]. The characteristics of the Dao nan[道南] school, such as its desire to seek Li[理] and its specific methodology of sitting and practicing, clearly appear to be influenced by Zen Buddhism. Zhu xi[朱熹] believed that one cannot directly seek one's Xing li[性理] within a human being. In the criticism of Dao nan[道南] school, it was considered impossible to seek Zhong[中] during Wei fa[未發] because it was already Yi fa[已發] in itself. And, trying to discover Xing li[性理] in Yi fa cha shi[已發察識], it was believed that Xing li[性理] could not be grasped because the previous cultivation study was lacking. Accordingly, Zhu xi[朱熹] tried to seek Li[理] from work and things, not from within humans. Zhu Xi also emphasized internal studies, such as Wei fa han yang [未發涵養], in addition to submaterial studies such as Ge wu qiong li [格物窮理]. Wei fa han yang [未發涵養] mentioned here was different from the enlightenment through internal practice mentioned in Zen Buddhism. As mentioned earlier, Zhu xi [朱熹] believed that it was impossible to directly seek one's inner Li [理]. This is because Li[理] is in the state of Wei fa[未發], but the object sought is already Wei fa[已發]. Accordingly, the internal study methodology mentioned by Zhu Xi [朱熹] is cultivation study. The cultivation referred to here is one whose purpose is not to seek, but to protect. To summarize, Zhu xi [朱熹] completed his Zhong he xin shuo [中和新說] theory of cultivation based on the principle of seeking Li [理] below the form and only protecting the inner Li [理]. The process of completing Zhong he xin shuo [中和新說] as above appears to be the result of Zhu xi [朱熹]'s concerns to overcome the Buddhist practice theory seen in the previous Li xue [理學] schoo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