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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 Beom Soo Kim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2014 儒學硏究 Vol.31 No.-
이 글은 이항의 이기론에 대한 접근방식을 비교 검토하기 위해 쓴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이항의 이기론 뿐만 아니라 후학들의 평가도 종합적으로 분석ㆍ평가해야 한다.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항의 이기론에 대한 접근방식에 문제가 있다. 둘째, 후학들의 평가들 중 일부는 이항의 이기론을 잘못 이해한 것도 적지 않다. 셋째,오해가 발생하게 된 까닭을 찾아 비판하지 않으면 이항의 그것에 대한 적절한 해석은 불가능해진다. 이항의 이기론에 대한 후학들의 오해를 밝히려면, ‘일체’와 ‘일물’ 개념부터 분석해야한다. 그리고 주자의 이기론과 비교해야 한다. 그런 다음 조선 유학자들의 해석과 현대 학자들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항의 일체일물설과 이기론이 지니는 특징 및 의의를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문제점은 여러 곳에서 자주 발생한다. 주자 이기론과의 비교 과정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또 짧은 이항의 글을 분석할 때 생략한 말들을 보충해 넣는 과정에서 발생하기도한다. 이와 다른 유형의 문제들도 발생하는데, 특히 이항의 이기론에 대한 과도한 평가가 문제시 된다. 이것은 주자의 이기론을 논리적 오류로 규정한 뒤 이항의 이기론이 그것을 해결한 것처럼 포장하는 방식이다. 거품을 일으키거나 또는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옷을입혀 놓고 시작하는 셈이다. 이러한 방식은 이항의 이기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뿐이다. 세부 쟁점 중 일부는 용어 사용의 엄밀성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또그것은 하나의 낱말이 적합하게 사용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심각하게 고려하지않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것도 이항의 이기론을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다음과 같이 옷을 줄여 입힐 수 있다. 첫째, ‘일체’와 ‘일물’이 핵심인 이항의 이기론은 본체론과 현상론으로 구분되는 주자의 이기론 중에서 이기무선후의 현상론으로 논의의폭을 좁힌 이기론이다. 다시 말하면, 주자 이기론의 ‘축소 모형’이다. 둘째, 이항의 이기론은 만물의 一原에 관한 주자의 형이상학적 설명을 생략하고 경험적ㆍ감각적 차원에 집중한 결과다. 다시 말하면, 주자 이기론의 ‘특수 모형’이다. This article is written in order to review a comparative approach to Lee Hang’s the theory of Liqi(理氣). His theory as well as evaluation of future reference to achieve this goal, a comprehensive assessment should also analyze. The motivation for writing the article are as follows: First, there is a problem with the approach to his theory. Second, some of the assessment is not a few of the future reference his theory be a misunderstanding. Third, if a misunderstanding occurs as a reason not to find a proper interpretation of his criticism theory becomes impossible. To clarify the misunderstanding of the future reference of the his theory of Li(理) and Qi(氣) should be Yiti(一體) and Yiwu(一物) analyzed from any concept. Should also review the analysis and interpretation of contemporary Confucian scholars of the Joseon era. The success of these two studies lies in comparison with Zhu-xi’s the theory of Liqi(理氣). Problem arise in the process of comparison the theory of Liqi(理氣). The bigger problem, but a problem for excessive assessment is that after his theory of Liqi(理氣) provisions of the Zhu-xi. His theory of Liqi(理氣) a logical fallacy, resolve the exaggerated facts like it. Place clothed cause a bubble or do not fit the body like as starting. This approach will only be a failure to understand the theory of Lee Hang’s. Some of the details of the issue is caused by a lack of rigor terms. Also it will occur because they do not seriously consider the condition to be equipped to become one of the words is suitably used. This also is a factor that makes the theory of his misunderstood. Reducing the clothes may cause the following. First, Yiti(一體) and Yiwu(一物) are thecore of his theory. The theory of Liqi(理氣) is limited to phenomenology. Narrowed the scope of the discussion; Reduction of the Zhu-xi’s theory. Second, empirical, theoretical, and focused on the sensory dimension; Specialization of the Zhu-xi’s theory.
유불도(儒佛道) 사상의 중(中) 관념에 대한 연구: 이항(二項)적 귀결의 문제점과 삼항성(三項性)의 가능성
이찬희 종교문화비평학회 2024 종교문화비평 Vol.46 No.46
본 연구는 유학(儒學) 사상과 불교(佛敎) 사상과 도가(道家) 사상의 중(中) 관념에 대한 상호 비교를 수행하였다. 그럼으로써 유불도 사상에서의 중(中)이라는관념에는 근원적인 이항(二項)적 전제가 함축되어 있음을 밝혔다. 이때 이러한이항성에 내포된 자기지시적인 역설의 문제 때문에 유불도 사상에는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중(中)에 논리로는 다다를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아가기존의 유불도에서의 중(中) 관념에 대한 이항적인 논리를 넘어선 삼항(三項)적인논리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유불도의 중(中) 관념의 근원적인 이항성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중(中)으로 상징되는, 즉 궁극적이고 완전한 절대적인 진리를 이항성을 통해 지시한다는 특징이다. 두 번째는 언어와 사고의 근원적인 이항성의 문제로 인하여그러한 궁극적이고 완전한 진리, 즉 중(中)을 표현해 내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는 이러한 이항성의 한계로 인하여 유불도가 각각 중(中)에대한, 논리를 초월한 표현 방식과 언어를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본 연구에서는 직관과 신비주의가 아니라, 언어와 비(非)언어의 이항을 넘어선그 중간도 아닌-왜냐하면 그 중간은 또한 이항적인 규정이므로-언어의 타자(他 者)를 언어와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말하자면 제3의 언어, 제3의논리의 가능성이다. 이것은 논리와 비(非)논리의 이항적 대립이 아니라, 논리의제3자를 수용하는 제3의 논리이다. 본 연구는 이항성의 자기지시적인 역설은 ‘일항(一項)’, 즉 자기동일성의 동일한 이항적 변주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하나’와 ‘둘’의 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동일성의 논리를 벗어나야 하고 동일성의 논리를 벗어날 수 있는것은 동일성의 이항적 대립자나 부정이 아니라 바로 ‘차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항성을 벗어난 논리로는 ‘하나’를 ‘셋’으로 나누는 ‘셋’의 논리가 바로 이러한동일성을 벗어난 ‘차이’와 일맥상통할 수 있다. 한국철학적인 맥락에서 이야기되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라던가 삼태극(三太極)과 같은 논리들이 바로 이러한동일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차이를 말할 수 있는 존재론적 단초라고 본다. 오히려 현대철학에서의 ‘차이’는 ‘동일자’와 대립되는 개념이면서, 바로 그 동일자와의 대립성 때문에 형식상 또 다른 이항성의 테두리 안에 포섭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를 셋으로 나누는 《천부경(天符經)》의 석삼극(析三極) 같은 개념은동일자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차이를 동일자와 조화시킬 수 있는 철학적 상상력과 존재론적 가능성을 우리에게 암시해 준다. 왜냐하면 석삼극(析三極)의 ‘셋’은‘하나이면서 둘’이 아니라 ‘하나이면서 셋’이기 때문이다. This study conducted a comparison between the ‘Middle(中)’ idea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By doing so, it was revealed that the fundamental binary(二項) premise is implied in the ‘Middle(中)’ idea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At this time, due to the problem of self-directed paradoxes implied in this binomiality(二項性), it was shown that the ‘Middle(中)’ idea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have limitations that cannot be reached by logic. Furthermore, the possibility of ternary(三項) logic beyond the binary(二項) logic of the existing ‘Middle (中)’ idea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was examined. The fundamental binomial nature of the ‘Middle(中)’ concept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is summarized into two categories. The first is the characteristic of indicating the ultimate and complete abso lute t ruth s ymbo lized by ‘Middle(中)’ through binomial nature. The seco nd i s the fact t hat due to the f undamental b ino mial p roblem o f language and thinking, we have n o cho ice but to fail to express such ultimate and complete truth, that is, ‘Middle(中)’. The third is that due to this limitation of binomial nature,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presented a method of expression and language that transcends logic to ‘Middle(中)’, respectively. This study sought a way to reconcile the Otherness of language with language-because the middle is also a binary rule,-not intuition and mysticism. It is the possibility of a third language, a third logic. This is not a binary confrontation between logic and non-logic, but a third logic that accepts a third party o f logic. This study believes that the self-directed paradox of binomiality originated from the same binomial variation of self-identity, that is, ‘One side’. Therefore, in order to escape the variation of ‘one’ and ‘two’, it is not the binomial allele or negation of identity that can escape the logic of identity, but the ‘difference’. In that sense, the logic of ‘three’ that divides ‘one’ into ‘three’ can be in line with the ‘difference’ that deviates from this identity as a logic outside of binomiality. Logic such as ‘the Three Nature(三才)’ of ‘the Heaven, Earth, and Human(天地人)’, and ‘the Three Great Ultimate(三太極)’, which is talked about in the context of Korean philosophy, are the ontological starting point that can say the difference outside the catego ry o f identity. Rather, in modern philosophy, ‘difference’ is a concept that is contrary to ‘same date’, and because of its confrontation with the same person, it can be included in the framework of another binomiality. However, the concept such as “split one into three ultimate.(析三極)” in the Book of CheonBu-Kyung(天符經), which divides one into three, suggests to us the philosophical imagination and ontological possibility of harmonizing differences with the same without excluding the same. This is because the ‘three’ of the “split one into three ultimate.(析三極)” is not ‘one and two’ but ‘one and three’.
유불도(儒佛道) 사상의 중(中) 관념에 대한 연구: 이항(二項)적 귀결의 문제점과 삼항성(三項性)의 가능성
이찬희(Chan Hee Lee)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4 종교문화비평 Vol.46 No.-
본 연구는 유학(儒學) 사상과 불교(佛敎) 사상과 도가(道家) 사상의 중(中) 관념에 대한 상호 비교를 수행하였다. 그럼으로써 유불도 사상에서의 중(中)이라는 관념에는 근원적인 이항(二項)적 전제가 함축되어 있음을 밝혔다. 이때 이러한 이항성에 내포된 자기지시적인 역설의 문제 때문에 유불도 사상에는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중(中)에 논리로는 다다를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기존의 유불도에서의 중(中) 관념에 대한 이항적인 논리를 넘어선 삼항(三項)적인 논리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유불도의 중(中) 관념의 근원적인 이항성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중(中)으로 상징되는, 즉 궁극적이고 완전한 절대적인 진리를 이항성을 통해 지시한다는 특징이다. 두 번째는 언어와 사고의 근원적인 이항성의 문제로 인하여 그러한 궁극적이고 완전한 진리, 즉 중(中)을 표현해 내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는 이러한 이항성의 한계로 인하여 유불도가 각각 중(中)에 대한, 논리를 초월한 표현 방식과 언어를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본 연구에서는 직관과 신비주의가 아니라, 언어와 비(非)언어의 이항을 넘어선 그 중간도 아닌-왜냐하면 그 중간은 또한 이항적인 규정이므로-언어의 타자(他者)를 언어와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말하자면 제3의 언어, 제3의 논리의 가능성이다. 이것은 논리와 비(非)논리의 이항적 대립이 아니라, 논리의 제3자를 수용하는 제3의 논리이다. 본 연구는 이항성의 자기지시적인 역설은 ‘일항(一項)’, 즉 자기동일성의 동일한 이항적 변주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하나’와 ‘둘’의 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동일성의 논리를 벗어나야 하고 동일성의 논리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동일성의 이항적 대립자나 부정이 아니라 바로 ‘차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항성을 벗어난 논리로는 ‘하나’를 ‘셋’으로 나누는 ‘셋’의 논리가 바로 이러한 동일성을 벗어난 ‘차이’와 일맥상통할 수 있다. 한국철학적인 맥락에서 이야기되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라던가 삼태극(三太極)과 같은 논리들이 바로 이러한 동일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차이를 말할 수 있는 존재론적 단초라고 본다. 오히려 현대철학에서의 ‘차이’는 ‘동일자’와 대립되는 개념이면서, 바로 그 동일자와의 대립성 때문에 형식상 또 다른 이항성의 테두리 안에 포섭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를 셋으로 나누는 《천부경(天符經)》의 석삼극(析三極) 같은 개념은 동일자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차이를 동일자와 조화시킬 수 있는 철학적 상상력과 존재론적 가능성을 우리에게 암시해 준다. 왜냐하면 석삼극(析三極)의 ‘셋’은 ‘하나이면서 둘’이 아니라 ‘하나이면서 셋’이기 때문이다. This study conducted a comparison between the ‘Middle(中)’ idea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By doing so, it was revealed that the fundamental binary(二項) premise is implied in the ‘Middle(中)’ idea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At this time, due to the problem of self-directed paradoxes implied in this binomiality(二項性), it was shown that the ‘Middle(中)’ idea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have limitations that cannot be reached by logic. Furthermore, the possibility of ternary(三項) logic beyond the binary(二項) logic of the existing ‘Middle (中)’ idea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was examined. The fundamental binomial nature of the ‘Middle(中)’ concept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is summarized into two categories. The first is the characteristic of indicating the ultimate and complete abso lute t ruth s ymbo lized by ‘Middle(中)’ through binomial nature. The seco nd i s the fact t hat due to the f undamental b ino mial p roblem o f language and thinking, we have n o cho ice but to fail to express such ultimate and complete truth, that is, ‘Middle(中)’. The third is that due to this limitation of binomial nature,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presented a method of expression and language that transcends logic to ‘Middle(中)’, respectively. This study sought a way to reconcile the Otherness of language with language-because the middle is also a binary rule,-not intuition and mysticism. It is the possibility of a third language, a third logic. This is not a binary confrontation between logic and non-logic, but a third logic that accepts a third party of logic. This study believes that the self-directed paradox of binomiality originated from the same binomial variation of self-identity, that is, ‘One side’. Therefore, in order to escape the variation of ‘one’ and ‘two’, it is not the binomial allele or negation of identity that can escape the logic of identity, but the ‘difference’. In that sense, the logic of ‘three’ that divides ‘one’ into ‘three’ can be in line with the ‘difference’ that deviates from this identity as a logic outside of binomiality. Logic such as ‘the Three Nature(三才)’ of ‘the Heaven, Earth, and Human(天地人)’, and ‘the Three Great Ultimate(三太極)’, which is talked about in the context of Korean philosophy, are the ontological starting point that can say the difference outside the category of identity. Rather, in modern philosophy, ‘difference’ is a concept that is contrary to ‘same date’, and because of its confrontation with the same person, it can be included in the framework of another binomiality. However, the concept such as “split one into three ultimate.(析三極)” in the Book of CheonBu-Kyung(天符經), which divides one into three, suggests to us the philosophical imagination and ontological possibility of harmonizing differences with the same without excluding the same. This is because the ‘three’ of the “split one into three ultimate.(析三極)” is not ‘one and two’ but ‘one and three’.
조남호 한국공자학회 2023 공자학 Vol.51 No.-
이 글은 이항의 철학사상과 조식의 관계를 다룬 글이다. 이항과 조식은 동시대 인물이지만, 행동 패턴이 조금 달랐다. 이항이 리기심성론을 주장하는 논변에 대해서 조식은 이름을 도둑질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논변보다는 실제 수양공부에 치중하라는 권고이다. 이항의 리기심성론에 대하여 이황이 주자학의 정통을 벗어났다고 평가하였지만 그렇다고 그의 학술사상이 주자학적 사고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항은 허엽, 이구, 노수신 등의 심학을 비판하였다. 이항의 철학은 두 학파 사이에서 절충점 또는 변별점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독립적인 학술체계를 세우기가 매우 어려웠다. 다시 말해 이항은 이황의 주자학과 서경덕의 심학 사이에서 두 학파의 논리적 단점을 지적하고 비판하였다. 이항의 철학은 정통 주자학으로부터 후자 그룹에 속한다고 비난받았다. 더구나 이항이 리기일물론이나 심성일물론을 논리적으로 끝까지 추구하여 수양공부론을 완성하지 못한 점에서 심학 관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이항의 학술적 절충 또는 쌍방 비난은 이후에 독립된 학파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반면에 조식은 주자학의 형이상학에 관한 논변이 초래하는 위험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이항이나 이황도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조식은 이론이 섬세해질수록 번쇄해져서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This article deals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hilosophical thought of Lee Hang and it's critic by Cho Sik. Although Lee Hang and Cho Sik were contemporaries, their behavior patterns were slightly different. Regarding Lee's argument for claiming Li qi xin xing, Cho criticizes him for stealing confucian value. In other words, it is a recommendation to focus on actual training rather than argumentation. Although Lee's theory of Li qi xin xing was evaluated as deviating from the orthodox philosophical theory of Zhu Xi, this does not mean that his academic ideology deviated from the philosophical thought of Zhu Xi. On the other hand, Lee Hang criticized the school of mind, He Yeop, Lee gu, and Ro Shu sin. It was very difficult to establish an independent academic system because Lee's philosophy pursued a compromise or a point of distinction between the two schools. In other words, Lee pointed out and criticized the logical shortcomings of the two schools between Lee Hwang's Confucianism and Se Gyeong Duk's mind school. Li Hang's philosophy was criticized as belonging to the latter group by the orthodox Zhu Xi. Moreover, it can be criticized from a psychological point of view for the fact that Lee Hang did not complete the study of discipline by logically pursuing one thing of li-qi and one thing of xin and xing. Lee's academic compromise or criticism from both sides became the reason for not being able to create an independent school later. On the other hand, Cho Sik was paying attention to the danger posed by the argument about metaphysics of Zhu Xi, and neither Lee Hang nor Lee Hwang could escape this limit. Cho Sik is the belief that the more delicate the theory, the more it shatters and does not lead to action.
영과잉 음이항회귀 모형을 이용한 보험설계사들의 이직횟수 적합
전희주,Chun, Heuiju 한국데이터정보과학회 2017 한국데이터정보과학회지 Vol.28 No.5
본 연구는 계수자료 (count data)를 반응변수로 갖는 포아송회귀 모형, 음이항회귀 모형, 영과잉 포아송회귀 모형, 영과잉 음이항회귀 모형의 4 모형의 비교를 통해 보험 설계사들의 이직횟수 적합을 위한 최적모형을 찾고자 한다. 보험설계사 이직횟수의 분산이 평균보다 큰 과대산포가 존재하고 0인 경우의 비중이 높을 경우에 영과잉 음이항회귀 모형을 적합하는 것이 타당함을 보여주고 보험 설계사들의 이직횟수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규명하고자 한다. 로그우도값, AIC, SBC 등을 고려하여 보험설계사 이직횟수 적합을 최적의 모형은 영과잉 이항모형과 음이항회귀모형의 결합인 영과잉 음이항 모형이 선택되었다. 영과잉 이항모형에 포함된 변수로는 성별, 총 보험설계사 근무연월, 교차모집 설계사 등록, 보유고객 수, 소속회사 유형이었고, 음이항회귀 모형에 포함된 변수로는 직무만족, 조직몰입, 채널경영만족, 총 보험설계사 근무연월, 현 직장에서 근무연월, 소속회사 유형이었다. 영과잉 음이항회귀 모형의 적합결과, 이직횟수에 유의한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현 직장에서 근무연월, 총 보험설계사 근무연월, 소속회사 유형, 채널경영만족, 직무만족 순으로 나타났다. This study aims to find the best model to fit the number of insurance solicitor's turnovers of life insurance companies using count data regression models such as poisson regression, negative binomial regression, zero-inflated poisson regression, or zero-inflated negative binomial regression. Out of the four models, zero-inflated negative binomial model has been selected based on AIC and SBC criteria, which is due to over-dispersion and high proportion of zero-counts. The significant factors to affect insurance solicitor's turnover found to be a work period in current company, a total work period as financial planner, an affiliated corporation, and channel management satisfaction. We also have found that as the job satisfaction or the channel management satisfaction gets lower as channel management satisfaction, the number of insurance solicitor's turnovers increases. In addition, the total work period as financial planner has positive relationship with the number of insurance solicitor's turnovers, but the work period in current company has negative relationship with it.
이주용,김기영,Lee, Joo-Yong,Kim, Kee-Young 한국통계학회 2009 응용통계연구 Vol.22 No.2
급내/급간상관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변량 이항자료에 대한 모형으로 Danaher과 Hardie (2005)는 베타이항분포를 제안한바 있다. 그러나 이 모형은 베타분포에 따르는 성공확률을 통해 급내 상관을 묘사하므로 그 적용범위가 양의 급내상관을 가지는 자료에 제한된다. 이 연구에서는 보다 더 넓은 범위의 급내 상관에 대해 유용성을 가지는 일반화가법/승법이항모형과 확장베타이항모형 등에 Sarmanov형식의 이변량 확장을 고려하고 이들을 기존 모형과 적합도의 측면에서 비교한다. 실제자료인 주식자료와 소비자패널자료에 이변량 일반화이항모형들을 적용한 결과, B-mB와 B-ebB의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며, 그 중 상대적으로 넓은 허용범위의 급내상관을 가지는 B-mB가 선호된다고 할 수 있다. For bivariate binomial data with both intra and inter-class correlation, Danaher and Hardie (2005) proposed a bivariate beta-binomial model. However, the model is limited to the situation where the intra-class correlation is strictly positive. Thus it might be seriously inadequate for data with a negative intra-class correlation. Several authors have considered generalized binomial distributions covering a wider range of intra-class correlation which could relax the possible model restrictions imposed. Among others there are the additive/multiplicative and the beta/extended beta binomial model. In this study, bivariate models of the Sarmanov (1966) type are formed by combining each of those univariate models to take care of the inter-class correlation, and are evaluated in terms of the goodness-of-fit. As a result, B-mB and B-ebB are fitted, successfully, to real data and that B-mB, which has a wider permissible range than B-ebB for the intra-class correlation is relatively preferred.
노병렬(Roh, Byung-ryul),천병돈(Chun, Byung-don) 한국양명학회 2018 陽明學 Vol.0 No.49
조선과 청나라는 서양의 압력에 의해 문호를 개방했다. 피동적으로 개방된 국가는 사회 문화적 혼란을 겪는다. 전통적 사회에서 자신들의 문화와 전혀 다른 가치들이 전통적인 문화체계와 가치들을 위협할 때, 그 압박감은 더욱 가중된다. 이항로는 서구문물의 수용을 일체 거부하는 척사위정(斥邪衛正)론으로, 위원은 중체서용(中體西用)론으로 전통적 체제를 수호하고자 했다. 이항로는 우주는 리와 기로 이루어졌고, 불변의 리가 우주의 근본이라고 여겼다. 이항로에게 불변의 리는 주자학(中華)을 계승한 조선(小中華)으로 대체된다. 그러므로 중화를 대체한 불변의 리인 조선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이항로가 지키고자 했던 조선은 ‘국가로서의 조선’이 아니라, 주자학을 계승한 ‘소중화의 조선’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독립은 이항로에게 있어서 부차적인 문제였다. 결국 이항로가 주장한 위정척사 운동은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며 반근대적이고 반서양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위원은 세계는 쉬지 않고 변한다고 보았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위원은 이항로처럼 변하지 않는 무엇을 찾기보다는, 변화하는 세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주목했다. 서양 제국주의의 압박 또한 변화하는 세계의 한 단면이라고 파악한 위원은 쇄국적인 자세가 아니라, 서양의 장점 특히 과학기술, 정치제도, 중상주의 정책을 적극 수용하자는 태도를 취했다. 물론 위원의 이러한 정책들이 청나라 정부에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훗날 양무(洋務)·변법(變法)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Joseon and Qing dynasties are opened by Western armed forces. A passively open country suffers from very socio-cultural confusion. In traditional society, when their culture and completely different values threaten traditional cultural systems and values, the pressure becomes more and more intense. Hwaseo defended the traditional system with ‘Wijung Chuksa (defending orthodoxy and rejecting heterodoxy)’, which refuses to accept Western artifacts at all. Weiyuan, on the other hand, defended the traditional system with the zhongtixiyong theory(中體西用). Hwaseo thought that the universe was made up of Li and Qi, and the immutable Li was the center of the universe. The immutable Li to Hwaseo is replaced by Chosun (小中華) who succeeded Zhujia. The immutable Li to Hwaseo is replaced by Chosun (small Chinese) who inherited the orthodox Neo-Confucianism (Chinese). Therefore, shipbuilding, which is an immutable Li replacing Chinese, must be observed. From this point of view, Chosun was not ‘Chosun as a nation’ but ‘Small Chinese Chosun’, succeeding orthodox Neo-Confucianism. In the end, Hwaseo’s Wijung Chuksa was exclusively conservative, anti-modern, anti-Western. Weiyuan saw that the world changed without a moment. In a changing world, Weiyuan did not find immutable Li like Hwaseo. Weiyuan focused on how to respond to the changing world. Weiyuan thought that the pressure of Western imperialism was also a part of a changing world. Thus, Weiyuan took an attitude of actively accepting Western science and technology, political system, and mercantilist policy, not a closed attitude.
朴性淳 동양고전학회 2012 東洋古典硏究 Vol.0 No.48
종래에 이항로의 通商不可論이 서양의 경제적 도전에 직면하여 자국 산업 보호라는 경제적 자존을 그 역사적 임무로 하여 제기된 근대 민족주의적 성격의 것이라는 평가가 있어왔고, 한편에서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조선사회정체성에 맞서는 진보적인 경제사상이라는 평가도 있어왔다. 그렇지만 필자는 본고에서 이러한 시각들이 조선유학사상사의 체계를 이해하지 못한 피상적인 결론의 도출이라고 파악하고, 이항로의 경제인식에서 핵심어라 할 수 있는 井田制에 관련한 논의들을 다루면서, 그것이 철저하게 유학사상에 근거하여 당시 사회를 更張하기 위한 사회개혁책으로서 제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서양 제국과의 통상불가론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점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항로의 정전제 주장은 전반적인 국가제도와 그것의 운영원리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전면적인 제도개혁을 지향하는 變法的 經世學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전제를 통한 균등한 부의 분배는 병농일치의 관점에서 볼 때 강한 군사력을 형성하는 배경이 됨과 동시에 사람이 도덕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이항로의 경제인식은 자본주의 맹아론적 성격을 띤 것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도덕적 관점에서 제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항로에게 있어서 公田制와 節儉의 태도를 축으로 하는 정전제의 시행문제는 곧 人心에 상대되는 道心의 함양을 위한 기본적 전제로서 인식되어진 것이다. 정전제라는 도구를 통해서 도심을 확립하려는 道學的 관점이 이항로 경제인식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서양의 통상 요구는 이익을 도모하는 욕망을 부채질하여 도심에 상대되는 인심의 발호를 촉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항로가 戰守說을 주장하면서까지 꼭 서양 세력의 접근을 막아야 했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Until now, I guess, many scholars misunderstood the characteristic of economic awareness of Yi Hang-no as if it was a modern nationalism or radicalism against Japanese anti-Korean insistences. But I think these opinions are out of historical attitude. So to understand Yi's economic awareness correctly, I think, We should focus on the traditional Confucian thought system at that time. As one method to reach the goal, I focused on the word, Jeong-jeon-je: Oriental equal land system. Yi Hang-no put the importance on Jeong-jeon-je to make utopia he dreamed of. Yi thought Jeong-jeon-je is the basis of equal society and strong state. Also Yi thought a moral society would be achieved by Jeong-jeon-je because the equal land system, so called Jeong-jeon-je provide peasants with equal lands, so it makes peasants stable in economic situation. Especially, Yi Hang-no put importance on that Jeong-jeon-je would raise moral consciousness of people because equal economic condition makes people wealthy, so people would be good men naturally. Yi Hang-no explain it in basis of Insim-Dosim-seol: a theory of two minds bad & good to be. Yi Hang-no thought equal economic condition is the basis of making people moral being. He thought Jeong-jeon-je was a basis of the condition. Reversely, Yi thought Western insists of trade was the beginning of making people fight for individual benefit, so it produces devil selfishness out of human mind. That was the reason that Yi Hang-no opposed the trade with Western Powers. Eventually Yi's assertion of embargo came out of his Insim-Dosim-seol. In this context, Yi's Jeong-jeon-je was insisted as a method to raise human moral consciousness.
朴性淳 동양고전학회 2009 東洋古典硏究 Vol.34 No.-
이항로는 太極, 즉 理가 지닌 主宰와 妙用의 측면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면서 그것을 明德, 즉 심의 본질이라고 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것은 리와 기를 상보적인 것으로 보는 기존의 심설에서 벗어나 리와 기의 차별성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함이었다. 특히 그는 학문의 목표는 大人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며, 그것은 먼저 인심과 도심의 구별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즉 인심과 도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西勢東漸이라고 하는 당시의 특수한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이항로는 리로 표현되는 物我一體的 道德律, 즉 天命意識을 부정하고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는 서양인들의 윤리관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었다. 이항로는 그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태극이 곧 우리 마음의 본체라는 점을 일깨우려고 한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道德心이란 것은 인간이 사사로이 거스를 수 없는 태극의 원리, 즉 天命’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와 같이 이항로가, 인간이 사사로이 거부할 수 없는 도덕심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은, 그것 이외에는 당시 조선사회를 격동시키던 서양 문화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丙寅洋擾(1866)가 발생하자, 이항로는 동부승지로 발탁되어 上疏와 奏箚 등을 통해서 척사의 방책을 진달하였다. 평소 인심과 도심의 구분을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도심을 준수해야 한다고 역설한 그의 주장은 척사 상소에서도 그대로 전개되었다. ‘洋夷’의 침투에 맞서 主戰論과 通商不可論 등을 피력한 이항로의 척사소는 그 궁극적인 해결책으로서 군주의 도심을 강조하는 형식을 띠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항로의 심설은 그대로 병인양요 때에 제시된 척사소에 반영된 것이다. 이것은 이론과 실천이 일치될 수밖에 없었던 이항로 심주리설의 특징이었다. Yi, Hang-no said that taiji(=li) was Myeong-deok(illustrious virtue), the core of mind and heart, emphasizing the sides of superintendent and mysterious ability of li. It seems that he aimed to stress the upper status of li than qi, out of earlier general theory on mind and heart recognizing both li and qi consisted in the mind and heart. Through it, he wanted to say that only human being had moral mind like taiji and upper moral status than animals which human being should keep. The reason that Yi, Hang-no emphasized the difference between li and qi was because of a critical mind that the upper value of li than qi should not be changed and it would be the most dangerous situation if the value collapsed. Like this, Yi, Hang-no's attitude emphasizing li in his theory of mind and heart eventually aimed to explain the theory of Insim(Desire to be) and Dosim(Moral Mind). Yi, Hang-no's disciples testified that their teacher, Yi, Hang-no had cost his whole life to study the theory of Insim and Dosim. This means that Yi, Hang-no had tried to discriminate between Insim and Dosim, and to block private desires in Insim. The fact that Yi, Hang-no stressed the importance of the theory of Insim and Dosim had to do with the special situation that Western Power approached Joseon dynasty. Because Yi, Hang-no opposed the Westerner's moral consciousness for individual desires, against heavenly orders. To overcome the Western challenge, Yi, Hang-no strived to notice that taiji was the core of human mind. The point that Yi, Hang-no wanted to say was that Dosim(Moral Mind) was just the heavenly orders which human being couldn't disobey. Yi, Hang-no thought that Joseon couldn't defence Western flow without this theory of Insim and Dosim. Just after French invasion(1866), Yi, Hang-no was selected as a high-leveled bureaucrat, so he insisted his opinions for rejecting heterodoxy by the letters to the throne several times. The letters also contained his theory of Insim and Dosim mainly. Insisting fight against Western Power and prohibition of trade with Western Power, Yi, Hang-no eventually emphasized the king's right mind(Dosim) as a main and sole means to achieve all the goals he said. In conclusion, Yi, Hang-no's theory on mind and heart was as it is reflected in his letters to the throne. Therefore we can see that Yi, Hang-no's theory on mind and heart had harmonized with his movement to "Rejecting Heterodoxy"
이원석 대동철학회 2017 大同哲學 Vol.79 No.-
조선 천주교의 발원지에서 태어나 일생을 보냈던 이항로는 가학(家學)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의 확산에 대해 남다른 비판의식을 지니게 되었고, 저술활동 초기부터 천주교 비판에 역점을 두었다. 그는 처음에는 ‘도덕-공장(工匠; 기술)’의 구도를 택하여, 유학은 도덕이고 천주교는 공장에 해당된다고 보아 유학을 높이려고 하였으나, ‘도덕-공장’ 구도의 기원은 도가(道家)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기술이 도덕으로 나아갈 통로로 여겨질 수 있었고, 그에 따라 ‘도덕’도 도가적인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었다. 이항로는 한유의 입론을 차용하여 도덕과 유가적 핵심 덕목을 결합시키는 한편, 알레니의 『만물진원』에 대한 비판을 통해 ‘공장(기술)’을 ‘형기(形氣)’로 대체한다. 그리하여 그의 만년 저술인 『벽사록변』은 ‘도덕-형기’ 구도를 정립하고 이에 따라 천주교가 비판된다. 아울러 리(理)는 무위(無爲)적 존재라는 천주교 측의 비판에 대하여, 이항로는 성리학적 상제관이라고 할 만한 것을 내세웠다. 이러한 ‘도덕-형기’의 구도를 뒷받침하는 것은 도기(道器)적 존재론으로서 이것은 이기론으로부터 다소 이탈한 것이었으며, 또한 도덕․인의의 절대화로 인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제외한 성(誠) 등의 여타 유가적 규범의 정체성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기존 연구는 위정척사 사상을 하나의 동일한 주체로 놓고 그것이 천주교와 외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자 했다면, 우리의 연구 결과는 이항로의 상제관과 도기론이 보여주듯이 천주교 비판 과정에서 이항로의 철학 체계도 일정한 변화를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Yi Hang-No had a strong criticism against the spread of Catholicism. At first, he adopted the framework of ‘the Way and Virtue[道德] vs craft[工匠]’, and intended to raise the status of Confucianism by allocating it to ‘the Way and Virtue’ and Catholicism to ‘craft’. But, the framework of ‘the Way and the Virtue vs craft’ being trace back to the philosophy of Daoism[道家], ‘craft’ had the possibility of being regarded as the path for ‘the Way and Virtue’ and, in turn, ‘the Way and Virtue’ also could be misunderstood as Daoistic one. So, while Lee combined ‘the Way and Virtue’ with the key virtue of Confucianism by borrowing Han Yu’s theory of ‘the Way and Virtue', he replaced ‘craft’ with ‘Qi with forms[形氣]’ in the course of criticizing the claims of The True Origin of the World(『萬物眞原』) which had been written by Julius Aleni. Therefore he established the framework of ‘the Way and Virtue vs Qi with forms’ in his The Argument for Expelling Wickedness(『闢邪錄辨』) and criticized Catholicism according to it. Meanwhile, the framework of ‘the Way and the Virtue vs Qi with a form’ was supported by the ontology of ‘the Way and concrete things[道器]’, but the latter could be regarded as the deviating from the ontology of Li-Qi(理氣). And due to the attempting of absolutization of ‘the Way and Virtue’ and humanenessㆍrighteousness[仁義], the status of Confucian virtues excepting for 仁義禮智, for instance ‘Sincerity[誠]’, had been lowered in rank. Comparing to existing studies which looked upon the thoughts of ‘defending the righteousness and expelling the wickedness[衛正斥邪]’ as a identical subject and investigated its reaction against the catholicism and foreign power, this thesis showed us the possibility that Lee’s philosophy had experienced its transformation in the course of criticizing the catholicism, as his viewpoint of the god and the ontology of ‘the Way and concrete things’ revealed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