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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地誌의 遊覽詩 수록의 문화사적 의미

        이상균(Lee, Sang-kyun) 한국고전번역원 2014 民族文化 Vol.44 No.-

        이 글은 조선후기 地誌에 詩의 수록양이 대폭 증가하고, 대부분이 유람시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지지에 유람시가 수록되는 원인을 고찰하여 봄으로써 그 문화사적 의미를 부여해 보고자 하였다. 전국의 지지를 전부 살피지는 못하였으나, 조선후기에 편찬된 『關東誌』의 사례를 분석하여 시가 처음 수록되는 지지인 『 新增東國輿地勝覽』과 수록양을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관동지』 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보다 5배 이상 많은 시가 수록되고, 이 중 유람시가 7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지는 전통적으로 史書로 분류되어 왔다. ‘文史一致’의 측면에서 文士들은 文에서 제일로 여기던 시를 통해 역사를 살필 수 있다는 ‘詩史一致’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사서로 인식한 지지에 시를 수록하여 史實을 보충하고자 했다. 특히 현장을 직접 답사하거나 유람하고 창작한 현장감 있는 유람시를 적극 수록하였다. 또한 유람시 수록은 지역문화에 대한 자긍심의 표출이었다. 인물조를 통해 지역의 顯達한 인물들을 직접적으로 소개했지만, 지역을 詠嘆의 대상으로 삼은 유람시를 수록하여 유명한 인물들이 다녀가고 시를 통해 찬양한 지역임을 소개하고자 했다. 지지의 중요 편찬목적 중 하나는 지역의 산천과 형승, 문물을 소개하는 것이다. 시는 산수를 묘사하고,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 또한 부각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문예작품이었다. 유람시 수록을 통해 지역의 산수가 불러일으키는 감흥 등 그 특징을 다양하게 나타내고자 했다. 그리고 지지는 유람정보를 사전에 습득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되었다. 산천조에 기록되어 있는 산수의 형상과 수록된 유람시를 통해 누가 어느 곳을 주로 유람하고 어떤 감흥을 느끼고 갔는지를 사전에 파악하였다. 즉, 지지에 유람시를 수록하여 지역의 유람정보를 소개하였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유람의 욕구에 부응했던 것이기도 하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전대에 누적된 시가 많아지기는 하나 지지에 유람시가 대폭 수록되는 것은 그 이전 지지편찬 양상과는 다른 가장 큰 변화였다. 文의 제일인 시가 수록됨으로써 지지는 인문적 기술이 더욱 풍부해진 인문지리서의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유람시는 지지의 讀史적 측면을 보충하고, 지역을 다양하게 소개하고자 한 지지 편찬목적에 부합되는 문예물로 적극 활용되었다. This thesis aims to find the meaning of cultural history by studying the reason why people recorded a travel poem in a geography book as there were increasing many poems in a geography book and they were travel poems. Although this thesis cannot find all of poems, but this thesis studies comparing the example between 『Gwandongji』 and 『shinjeung-Donggug-Yeojiseungram』 . As a result, poems in the gwandongji has five times as much as them in the 『shinjeung-Donggug-Yeojiseungram』 and there were the 70% of poems in the『Gwandongji』 . A geography book has been classified as history book. As literature is history, writer had a conception that poem is history and they contained poems in the history book in order to add historical fact. Specially they actively added the travel poems when they go to the ourdoor activity. Also containing the poems was the expression in the area culture. Although they directly introduce the celebrity by using the contents of people, they also tried to introduce the area where famous people stayed by reciting a poem. One of the object of publishing is to introduce the picturesque of mountain-stream and the culture. The poem is a literary work that can bring into relief. By containing the poems, they tried to express the character that mountain-stream was made. And the geography book was utilized as a basic material that people can earn the knowledge of that. People used the poems in order to study the people of feeling in the area. This facts were addressed need. Change was to contain many poems in the geography book in the late Joseon when considering the before. By containing the poem that literature is the est, the geography book became the anthropogeography-book. The travel poems was actively used in order to adding the historical contents in the geography book and widely introducing the area. It met a need about of publishing th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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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遊覽詩(유람시)에 投影(투영)된 智異山(지리산) 認識(인식) 硏究(연구) -天王峰(천왕봉) 遊覽詩(유람시)를 중심으로-

        ( Jin Wook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3 남명학연구 Vol.39 No.-

        본 논문의 목적은 ‘우리는 왜 지리산을 찾는가, 지리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답을 찾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써 조선조 유자들에게 지리산이 어떻게 인식되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은 첫째, 지리산이 大山으로써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조선조 유자들에게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 국토의 중앙에 우뚝 솟은 웅장한 산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가장 높고 웅장한 산이기에 직접 오르고 싶은 산이었다는 사실이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항상 ‘가장’은 ‘최고’의 의미로 인식되곤 한다. 두 번째로 지리산은 승경을 지닌 빼어난 산으로 인식되었다. 논의의 집중을 위하여 청학동을 제외하고 천왕봉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음에도 지리산은 빼어난 승경을 지닌 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람록과 유람시에 묘사된 천왕봉은 승경을 지닌 명산이다. 실제보다 훨씬 아름다운 산으로 관념 속에서 미적 아름다움은 완성되어 갔던 것이다. 그러나 관념 속에서 획득한 미감이기에 구체적인 미적 표현이 약화되어 나타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세 번째로 지리산은 탈속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천왕봉에 오르는 일은 세상 밖으로의 입문이며, 천왕봉은 종종 천계의 입구로 인식되었다. 천왕봉은 하늘문이지만 거기까지였다. 즉, 천왕봉은 세상 밖이지만 천계는 아니었던 것이다. 청학동에서 나타나는 선계로의 몰입이 천왕봉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탈속의 공간이지, 선계로는 구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 천왕봉의 장소성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천왕봉은 탈속의 공간으로써 세상의 짐이 내려지는 공간이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Why are we finding to Mt. Jiri, Mt. Jiri us something?” Work as the basis for finding the answer to Dynasty owner Mt. Jiri is to consider how you been recognized. To this end, this paper first, Mt. Jiri has been recognized as a great mountain that claimed. Mt. Jiri highest mountain in the country, land of magnificent mountain towering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to recognize the fact that the said owners. Yourself because you want to climb the highest mountains were majestic mountain is true. From the past to the present time ‘the’ the ‘best’ is often perceived as a means. Second, a great landscape with Mt Mountain has been recognized as outstanding. Focus of the discussion except for the cheonghakdong cheonwangbong samat only as an object of discussion even with a mountain of Mt exceptional seunggyeong are appearing. Described at the time of the cruise yuramrok cheonwangbong is a special product with superb views. Than the actual notion of the beautiful mountains in the aesthetic beauty of the finish is gone. However, because the specific aesthetic notions acquired in the aesthetic expression appears weakened and the claim that there was regret. Third, the space Mt recognize the fact that talsok claimed. Cheonwangbong thing in the world to climb out of the introduction, and the entrance to the celestial cheonwangbong often been recognized. Cheonwangbong to the sky, but there was the entrance. In other words, cheonwangbong the heavens, but it was not out of the world will. Cheonghakdong seongye appear in place of the star does not appear in the cheonwangbong. Talsok of space, not to Heaven will have not been implemented. Nevertheless, by the space talsok cheonwangbong the burden of the world was unloaded area. Dynasty owners are aware of the three to find the reason and Jiri, said that the purpos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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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산 안희제의 가학 전통과 유람시

        하강진(Ha, Kang-Jin) 부산경남사학회 2017 역사와 경계 Vol.102 No.-

        『나라사랑』19집에 수록된 『백산시초』는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가 구국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지은 한시(漢詩) 모음집이다. 그의 자찬 문헌이 희소한 실정에 비추어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백산 문헌에 대한 실증적 검토가 아직도 미흡하다는 문제 시각에서 『백산시초』의 원전비평적 연구를 처음으로 시도함과 아울러 한시의 의미를 고찰했다. 백산은 20세기 초 전후로 활발했던 가문의 문집 출판 분위기 속에서 대대로 전수된 충효정신의 가학(家學)을 내면화하며 성장했다. 1903년 백산은 결혼한 지 만 4년째인 19세 때 사돈집안의 어른인 장석신(張錫藎)이 주도한 두 차례 유람에 참여했다. 당시 동행자들의 한시가 장석신의 『남유록(南遊錄)』에 두루 실려 있는데, 1975년 외솔회에서 그중 백산 시만을 뽑은 것이 『백산시초(白山詩抄)』이다. 기존 연구에서 편집자 <해설>을 그대로 수용한 탓에 유람 여정, 여행단의 규모, 백산 시의 총량 등의 오류를 답습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남유록』의 텍스트 성격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결과로, 『남유록』에 합편된 「동범록(同泛錄)」과 「두류산동유록(頭流山東遊錄)」(「쌍계동유록」 포함)을 분리하지 않고 연속적인 유람 기록으로 인지한 까닭이다. 두 차례 유람은 장석신이 주도했지만 여행 주체와 여행 장소가 상이하고 한 달 여 간격으로 따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백산의 유람시(遊覽詩)를 순차적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장석신이 유람 때마다 백산을 대동한 것은 그가 호연지기를 함양하고 참된 선비 모습을 체득하게 하려는 배려였다. 백산은 유람단 일행으로 적극 동참해 시재를 능숙하게 발휘했고, 한시 창작을 통해 학문 탐구의 근본 자세와 결기 있는 선비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는 계기로 삼았다. 이는 전통 가학의 문학적 실천이다. 백산의 기행 한시는 을사늑약 이전 사회적 성취를 진지하게 모색하던 그의 수학기 생애를 추적하는 데 상징적 문헌이 된다는 사실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다. 백산 안희제 연구에서 중요한 과제는 새로운 자료 발굴이다. 이에 못지않게 기존 텍스트에 대한 철저한 원문비평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Baeksan Sicho〉 is a Korean Hansi, the Korean poetry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collection of Ahn Hui-je, pen name Baeksan, written before he actively take a part in the Korean resistance movement. This is included in the 19th book of 〈Narasarang〉. Due to the scarcity of Baeksan’s literature, it is evaluated to be a valuable data. In light of the problem that empirical examination on Baeksan’s literature is still insufficient, this paper aims to critically examine the original text of 〈Baeksan Sicho〉 for the first time while contemplating the meaning of the Hansi. Baeksan grew up internalizing the family philosophy, which was the spirit of loyalty and filial piety, in the atmosphere of the literature publication family who were active in the early 20th century. In 1903, Baeksan participated in two journeys organized by Jang Seo-ksin, one of the elders in the family of his wife. He was 19 years old and 4th year of his marriage at the time. Jang Seok-sin’s 〈Narasarang〉 contains many poetry of the members of the journey and Oesolhoe selected poems of Baeksan and published 〈Baeksan Sicho〉 in 1975. In the preceding researches, editor’s commentary was taken in as the facts and therefore followed editor’s errors in excursion itinerary, size of the members, and the total number of Baeksan’s poems. It was the result of inadequate understanding of the nature of 〈Narasarang〉 which is failing to separate 〈Dongbumrok〉 and 〈Dyuryunsandongyurok> (inluding 〈Ssaynggyedongyurok〉) and took them as the continuous records of a journey. Two trips were indeed organized by Jang Seoksin but the members and place were different and trips were about a month apart. This paper reconstituted Baeksan’s travel poetry with these analysis on the basis. It was Jang Seok-sin’s care for Baeksan when he accompanied Baeksan in every one of his trips. He wanted Baeksan to develop a great spirit and acquire the true figure of classical scholar, Seonbi. Baeksan was actively involved as themember of the trip while exhibiting his poetic genius. Through composing Chinese poems, he engraved in his hearts the proper attitude of academic exploration, and the righteous mind of a seonbi. This is the literary practice of the family philosophy. Animportant task left in the study on Baeksan, Ahn Hui-je is discovering new data. As importantly, close examination of the existing texts and thorough criticism of the original text should be preceded a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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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遊覽詩에 投影된 智異山 認識 硏究-天王峰 遊覽詩를 중심으로-

        김진욱 경상국립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13 남명학연구 Vol.39 No.-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Why are we finding to Mt. Jiri, Mt. Jiri us something?” Work as the basis for finding the answer to Dynasty owner Mt. Jiri is to consider how you been recognized. To this end, this paper first, Mt. Jiri has been recognized as a great mountain that claimed. Mt. Jiri highest mountain in the country, land of magnificent mountain towering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to recognize the fact that the said owners. Yourself because you want to climb the highest mountains were majestic mountain is true. From the past to the present time ‘the’ the ‘best’ is often perceived as a means. Second, a great landscape with Mt Mountain has been recognized as outstanding. Focus of the discussion except for the cheonghakdong cheonwangbong samat only as an object of discussion even with a mountain of Mt exceptional seunggyeong are appearing. Described at the time of the cruise yuramrok cheonwangbong is a special product with superb views. Than the actual notion of the beautiful mountains in the aesthetic beauty of the finish is gone. However, because the specific aesthetic notions acquired in the aesthetic expression appears weakened and the claim that there was regret. Third, the space Mt recognize the fact that talsok claimed. Cheonwangbong thing in the world to climb out of the introduction, and the entrance to the celestial cheonwangbong often been recognized. Cheonwangbong to the sky, but there was the entrance. In other words, cheonwangbong the heavens, but it was not out of the world will. Cheonghakdong seongye appear in place of the star does not appear in the cheonwangbong. Talsok of space, not to Heaven will have not been implemented. Nevertheless, by the space talsok cheonwangbong the burden of the world was unloaded area. Dynasty owners are aware of the three to find the reason and Jiri, said that the purpose was. 본 논문의 목적은 ‘우리는 왜 지리산을 찾는가, 지리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답을 찾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써 조선조 유자들에게 지리산이 어떻게 인식되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은 첫째, 지리산이 大山으로써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조선조 유자들에게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 국토의 중앙에 우뚝 솟은 웅장한 산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가장 높고 웅장한 산이기에 직접 오르고 싶은 산이었다는 사실이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항상 ‘가장’은 ‘최고’의 의미로 인식되곤 한다. 두 번째로 지리산은 승경을 지닌 빼어난 산으로 인식되었다. 논의의 집중을 위하여 청학동을 제외하고 천왕봉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음에도 지리산은 빼어난 승경을 지닌 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람록과 유람시에 묘사된 천왕봉은 승경을 지닌 명산이다. 실제보다 훨씬 아름다운 산으로 관념 속에서 미적 아름다움은 완성되어 갔던 것이다. 그러나 관념 속에서 획득한 미감이기에 구체적인 미적 표현이 약화되어 나타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세 번째로 지리산은 탈속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천왕봉에 오르는 일은 세상 밖으로의 입문이며, 천왕봉은 종종 천계의 입구로 인식되었다. 천왕봉은 하늘문이지만 거기까지였다. 즉, 천왕봉은 세상 밖이지만 천계는 아니었던 것이다. 청학동에서 나타나는 선계로의 몰입이 천왕봉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탈속의 공간이지, 선계로는 구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 천왕봉의 장소성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천왕봉은 탈속의 공간으로써 세상의 짐이 내려지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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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실(怡室) 이탁원(李鐸遠)의 생애와 시에 대한 일고(一考)

        윤지훈 ( Yoon Ji-hun ) 동방한문학회 2018 東方漢文學 Vol.0 No.75

        본고는 19세기 개별 문인의 문필 활동을 확인해 본다는 목적 하에 怡室 李鐸遠(1777~1840)의 生涯와 詩世界를 살펴보았다. 검토 결과 이탁원은 浮沈있는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서 중앙 관계에 진출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고, 집안의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純祖와 憲宗 때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당대 少論系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하면서 詩文으로 상당한 명망을 얻었다. 그는 문집인 『怡老室全藁』에 약 430수의 시를 남겼다. 이들 작품은 주로 50대 이후에 지어진 작품들인데, 본고는 이 가운데 그의 交遊詩·遊覽詩·日常詩를 분석하였다. 그의 교유시는 시라는 문학 작품을 매개로 벗들과 지속적으로 안부를 교환하고 자신의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편지의 기능도 포함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람시는 특정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유람을 하면서 보고 느낀 감정들을 자유롭게 시로 표현하고 있으며 일상시의 경우는 자기 고백적 특징과 함께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적인 삶의 과정을 시로 읊고자 한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이탁원은 소론계 문인들의 문필 활동 및 교유 양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조선후기 한시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는 물이라고 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one's life and the poem world of Lee tak-won(1777~1840). He had a hard time with so many types. However, he served in various public offices during the period from Sunjo to Hyeinjong in Joseon dynasty. Also, he had gained a considerable reputation for poetry and prose by broadly interacting with contemporary celebrity. His collected of 『Leerosiljeongo』 works contained about 430 poems. These are mainly composed after the 50's. In this study analyzed his social intercourse Poem, sightseeing poem and daily life poem. As a result, He used a literary work of the poem by means that news and expressing the longing. His social intercourse Poem partial included the function of letters. And his sightseeing poem freely expresses the feelings and the daily life poem was expressing the everyday life process which seems to be very ordinary with its confessional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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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四名子 車佐一의 遊覽詩 연구− 關西지역 유람시를 중심으로 −

        이황진,박난아 동양고전학회 2020 東洋古典硏究 Vol.0 No.80

        Samyeongja Cha Jwa Il is a writer who was active in the mid-18th century. He is the sixth-generation descendant of Cha Cheon Ro, who is known as a famous writer of the late Joseon Dynasty. He had a will to serve in the literary – subject government, but it didn't work out the way he want it to. So in his later years, remaining a military official was all he could do. Cha Jwa Il was out of office in 1804, mingled with a “wandering poet” named Song-Seok-Won poetry company. After experiencing the extinction of his family, hardships of life, he was out of the mainstream. So he always had pent-up anger at the base. So ironically, in his poem, showing the same tendency as a “wandering poet” For example, critical sentiment and pent-up anger toward reality. His collection of poem called 『Samyeongja-si-jip』 is consist of one volume. It wasn't compiled until 100 years after his death. In his collection of poem, his poems are 278 title 356 poetic works. The rest of part is the preface, epilogue, religious writing and writing of history of the deceased for Cha Jwa Il. His later years were not smooth. But he was travel around various regions and created a poem. So in his travel poems, different emotions are expressed than non-travel poems. Among his travels, westward region travel is the most detailed and concrete. Based on current known data, the westward region travel is only long-term travel in his whole life. Get out of a harsh reality, he traveled and created westward-region travel poems and expressed emotions in two opposite ways. A sense of futility and leisurely sentiment. In this study, we will consider the aspect of two opposite expression in his westward-region travel poems. As a result, we can expand his poetic world view in his personal lif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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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남산시(南山詩)」차운시의 양상과 문학적 특징

        이국진 ( Gook Jin Lee ) 민족어문학회 2014 어문논집 Vol.- No.70

        한유의 시는 고려시대부터 이미 學詩의 모범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리고 조선 초기에는 유교적 문학관을 중시했던 분위기 속에서 한유의 시문집이 본격적으로 간행되어 유통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중기부터는 한유의 시문학에 대한 인식 수준이 비평적 차원과 실제 창작 과정에서 모두 높아졌다. 이에 한유의 시작품에 대한 관심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는데, 204구의 五言古詩인 「南山詩」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南山詩」는 중국 송나라 때부터 두보의 「北征」과 자주 비교되었는데, 그 작품의 난해함과 파격적인 형식으로 인해 역대로 예술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그리하여 한편에서는 一韻到底格으로 거침없이 204구의 장편고시를 완성할 수 있는 작가의 才力과 筆勢, 변화무쌍한 장법과 공교로운 묘사력을 높이 인정했다.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작가의 과시욕, 과장되고 난삽한 표현, 시어의 낭비와 시적 여운의 부족, 주제의식의 결여 등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南山詩」에 대한 평가는 칭찬과 비판이 엇갈렸는데, 평가 기준은 중국의 양상과 비슷했다. 그리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南山詩」의 예술성과 작품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또한 실제 창작 과정에서는 조선 전기부터 많은 문인들이 「南山詩」를 적극적으로 모의하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일부 문인들은 「南山詩」의 독특한 표현기법을 자신의 작품 속에 차용하였으며, 일부 문인들은 「南山詩」 모의여부를 통해 그 시적 재능을 가늠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선 중기 이후 장편 고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산수 유람이 더욱 성행하게 되자, 본격적으로 「南山詩」를 차운한 작품들이 등장하였다. 이에 蔡彭胤, 任華世, 徐命膺, 黃胤錫, 李德懋 등은 각자의 작가적 성향과 창작 동기 속에서 「南山詩」를 차운하였다. 그 중에서 채팽윤과 서명응은 「南山詩」를 전범으로 삼아 한유처럼 자신의 산수기행 체험을 형상화하였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작품은 세부적인 창작 동기와 시적 형상화 방식이 서로 달랐다. 채팽윤의 「楓岳詩, 次昌黎南山韻」은 금강산 유람 중에 창작 되었는데, 지금까지의 여정과 풍경을 장편기행시를 통해 전관적으로 살펴보고 싶은 창작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때문에 채팽윤의 작품은 「南山詩」의 체제와 표현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비교적 개성적인 형상화 방식을 구현하였다. 반면에 서명응의 「白頭山詩, 用韓文公南山詩韻」은 자신이 산수유람 직후에 지은 「遊白頭山記」를 바탕으로, 산수유람의 경험을 다시 한 번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싶은 창작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때문에 서명응의 작품은 「南山詩」의 구조와 체제, 표현기법 등을 적극적으로 모의하여 그 형상화 방식을 재현하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펼쳐진 「南山詩」를 둘러싼 문학적 현상을 통해 조선 중기 이후 한유시 수용 양상의 높아진 수준을 알 수 있다. 나아가서 「南山詩」가 조선후기 장편 산수유람시의 중요한 문학적 전범으로 작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Han Yu`s poems have been considered a model for studying poetry (學詩) since the Koryo Dynasty. Collections of his works were published and circulated in the social atmosphere of the early Joseon Dynasty where Confucian literature was considered more important. Therefore Han Yu`s poems became highly recognized from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There was lively interest in Han Yu`s poems. Particularly, Namsan-Poetry, composed of 204 stanzas of Oeonkosi, is representative of his work. Starting in China`s Song Dynasty, Namsan-Poetry has been frequently compared to Tu Fu`s Beizheng. Reception of Namsan-Poetry was mixed based on artistic quality due to the poems` ambiguousness and unprecedented formation. The author`s ability, calligraphy style, changeable composition techniques, and power of description were much appreciated in completing the ancient long poems on the one hand. On the other hand, his ostentatious, exaggerated way of expression, overused poetic diction, and lack of lingering images and subject consciousness were sources of criticism. The mixed reception of Namsan-Poetry took on similar aspects in Joseon. However, appreciation was relatively higher after the middle period of Joseon Dynasty. In addition, Han Yu`s unique formation and expressive ways received much positive attention from many writers in the real process of creation. Some of the writers strengthened their ability to create ancient long poems or disclose their poetry talent by mimicking and transforming Namsan-Poetry. Among them, Chae Paeng-yoon and Seo Myeong-ung managed to depict their travel uniquely by modeling Namsan-Poetry as to structure, system and formation, and description and narration techniques. This literary phenomenon demonstrates high degree of acceptance aspects of Han Yu`s works. It also reflected that Namsan-Poetry worked as an important literary model in travel poetry after the middle period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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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연 김창흡의 금강산 유람시 연구

        장진엽 ( Jang Jin-youp ) 한국한문학회 2024 韓國漢文學硏究 Vol.91 No.0

        본고는 三淵 金昌翕의 금강산 시의 시기별 창작 양상 및 유람 체험의 형상화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遊覽詩’ 또는 ‘山水詩’로서 이 작품들이 지닌 핵심적 특징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삼연의 금강산 시에 대한 분석은 삼연 산수시의 전반적인 특징, 나아가 조선 후기 산수시 창작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산수시’의 개념과 범주에 대한 기본적인 규정이 선행해야 한다. 즉, 산수시란 謝靈運을 원류로 하는 산수 묘사의 시로서 유람이나 行旅의 상황에서 창작된 작품들을 가리키며, 삼연의 시들 가운데서도 이러한 성격의 작품들만을 산수시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상의 전제에 입각하여 본문에서는 삼연 금강산 시의 시기별 창작 양상을 살펴보고, 이어서 유람 체험의 형상화에 있어 산수시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 記遊, 敍景, 抒情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삼연의 금강산 시는 1685년의 제3차 유람의 시와, 1710년 제4차 및 1711년 제5차 유람의 시의 두 부분으로 대별된다. 제3차 유람의 시 16題 24首는 모두 古詩로 창작되었으며, 대부분 20구 이상의 장편이다. 장편고시 양식을 통해 경물 묘사의 폭을 확대하고 세찬 기세를 바탕으로 유람의 興趣를 충실히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한편 제4차와 제5차 유람의 시는 모두 律詩 형식으로 창작되어 보다 정제된 미감을 띠고 있다. 청년기와 노년기 전체에 걸쳐 삼연 금강산 시의 주된 창작 의도는 대상의 逼眞한 모습을 재현함과 동시에 이에 수반되는 화자의 興感을 여실히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다만 제4차와 제5차 유람의 시 가운데는 노년의 비애를 읊은 작품과 같이 화자의 주관적 심회 표출이 중심이 된 시들이 간혹 있다. 다음으로 금강산 유람 체험의 형상화 방식을 두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 번째 특징은 記遊의 적극적 활용을 통해 역동성과 흥취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전체 시기에 걸쳐 ‘나[我/吾]’의 체험과 흥취를 강조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이 점은 삼연의 시를 ‘그림 같은 시’가 아니라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즐기는’ 시로, 즉 독자들이 금강산 탐승의 즐거움을 ‘체험’하게 하는 시로 만들어 주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대상의 핍진한 재현과 관련하여 敍景과 抒情의 표현 양상에 관한 것이다. 삼연의 금강산 시는 대상과 정서적으로 밀착된 상태에서 그것이 주는 흥취, 또는 대상의 情趣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화자는 대상을 ‘관찰’하고 있다기보다 ‘玩賞’하고 있으며, 따라서 서경구에 자연스럽게 흥취와 정서가 담기게 된다. 경물 묘사의 방법에 있어서도 대상의 세밀한 재현보다는 그 분위기와 정취에 집중한 묘사를 선호한다. 또한 경물 묘사의 과정에서, 또는 그 결과로서 표현된 화자의 정감은 대상의 정취에 대한 정서적 반응으로서 묘사 대상의 특징을 생생히 부각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요컨대 삼연 금강산 시는 산수 경물의 묘사와 함께 유람의 흥취를 실감 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한 작품들이다. 삼연의 시에서 대상의 핍진한 재현은 대상의 형태뿐 아니라 그 대상이 촉발하는 흥취와 정감의 표현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삼연의 금강산 시는 삼연 산수시의 주요한 부분으로서 이에 대한 연구는 삼연 산수시의 기본적인 성격을 파악하게 해줄 수 있다. 삼연의 작품 가운데 ‘산수시’의 조건에 부합하는 작품들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삼연 산수시 전반에 관해서 더욱 타당한 시각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조선후기 산수시와 산수문학의 향방을 논하는 것으로 나아갈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identify the core nature of Mt. Kŭmgang poems by Sam-yŏn Kim Ch'anghŭp as ‘travel poetry’ or ‘landscape poetry’ by examining their writing aspect over time and the ways in which they represent travel experience. Analyzing Sam-yŏn's Mt. Kŭmgang poems is an important step toward understanding the overall character of Sam-yŏn's landscape poetry and, by extension, the flow of landscape poetry creation in the late Chosŏn Dynasty. To achieve these goals, certain basic concepts and categories of ‘landscape poetry’ must be defined. In other words, landscape poetry is a poem that describes landscapes since the origin of Xie Lingyun. It refers to works created in the context of traveling, and only works of this nature should be the subject of the discussion of landscape poetry among the poems of Sam-yŏn. Based on the above premise, this study examines Sam-yŏn's Mt. Kŭmgang poems over time. Subsequently, it examines how the basic components of landscape poetry - ‘record of travel,’ ‘description of the landscape,’ and ‘expression of emotion’ -are utilized in the representation of the travel experience. Sam-yŏn's Mt. Kŭmgang poems are divided into two parts: poems from his third trip in 1685 and poems from his fourth and fifth trips in 1710 and 1711. The 24 poems of the 16 titles of the third travel were all composed in the form of old poetry, and most were longer than 20 lines. Through this long-form old poetry, the author aims to expand the scope of describing landscape and sufficiently depict the pleasures of traveling with a strong spirit. Meanwhile, the poems of the fourth and fifth travels were all written in Lushi format and had a more refined aesthetic. Throughout his work in his early thirties and late fifties, Sam-yŏn's primary creative intention in his Mt. Kŭmgang poetry was to represent the authenticity of the object and the poetic self's accompanying pleasure in it. However, some poems from the fourth and fifth travels are centered on the poetic self's expression of deep regret, such as works that recount the woes of old age. Next, I examined how the Mt. Kŭmgang travel experience is shaped in Sam-yŏn's poems in two aspects. The first is the active utilization of records of travel to enhance dynamics and pleasure. There is also an emphasis on the experience and pleasure of the “I” throughout the entire period. This makes Sam-yŏn's poems not ‘picturesque’ but poems that ‘enter into the picture,’ poems that allow readers to ‘experience’ the pleasure of traveling Mt. Kŭmgang. The second characteristic concerns describing landscape and expressing emotions in relation to vivid representations of objects. Sam-yŏn's Mt. Kŭmgang poetry focuses on describing the mood of an object while being emotionally attached to it. The poetic self is “enjoying” the object rather than “observing” it, which naturally imbues the description of scenery with pleasure and emotion. Regarding depicting scenic objects, Sam-yŏn prefers to focus on the atmosphere and mood of the scenery rather than on the details of the object. In addition, the poetic self's emotions, expressed in the course of or as a result of describing the landscape, are emotional responses to the scenery that serve to bring out the characteristics of the object being described more vividly. In short, Sam-yŏn's Mt. Kŭmgang poems focus on conveying the pleasures of travel through the depiction of mountain scenery. In Sam-yŏn's poetry, the realistic representation of the object includes the form of the object and the expression of pleasure and emotion that the object evokes. Sam-yŏn's Mt. Kŭmgang poem is a main part of Sam-yŏn's landscape poetry, and a study of it can highlight the fundamental characteristics of Sam-yŏn's landscape poetry. It is necessary to prepare a more valid view of Sam-yŏn's landscape poetry as a whole through a comparative review of Sam-yŏn's works that meet the conditions of ‘landscape poetry.’ This will ultimately lead to a discussion of the direction of late Chosŏn landscape poetry and landscape literature.

      • KCI등재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의 청주 유람시(遊覽詩) 고찰

        송기섭 ( Song Gi-seop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20 漢文古典硏究 Vol.41 No.1

        백곡 김득신(1604~1684)은 17세기의 시인으로서 전국의 곳곳을 유람하면서 많은 시를 남겼는데, 『백곡집』에 1594수가 실려 있다. 그 중 청주를 유람하며 지은 시도 수십 수가 보인다. 이 시에서 그의 서정과 감회를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청주를 찾아 시심을 녹인 것은 그의 생활근거지였던 잣밭마을, 능촌마을, 율치가 모두 청주목에 접하거나 근접한 곳에 위치해 있었고, 청주목의 친분 있는 관리나 騷客들과 자주 교류했으며, 특히 가장 가까운 친구인 명망한 시인 홍석기가 있었다. 즉 지리적으로 청주를 찾기가 용이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 교분으로 서로 상통할 수 있는 인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의 시를 분류하고 청주 유람에서의 서정, 만남과 이별의 歡恨, 만주 홍석와의 우정과 관련하여 분석해 보았다. 첫째, ‘청주 유람에서의 서정’에서는 백곡이 자연의 경관을 보고 이를 수용하는 정서적 함의를 살폈다. 이에 「伏次先君枕流亭十詠詩韻」과 「蜜巖洞」에서는 자연에 동화되어 그 흥취를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천기의 조화와 자연과의 동화하는 심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또 「鵲江」은 靜的으로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심정을 그리고 있다면 「次朴仲久韻西原」은 動的으로 자신 밖 주변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둘째, ‘만남과 이별의 歡恨’에서는 지인과의 만남과 이별에서 느끼는 작자의 심정을 살폈다. 「別淸牧沈文伯榥」과 「寄忠淸方伯」은 이별의 회한을 노래하고 있는데 「寄忠淸方伯」 8구의 ‘願把酒盈鍾’과 「別淸牧沈文伯榥」 결구의 ‘的應魂夢共悠悠’는 표현상 서로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라도 만나서 그간의 회포를 풀고 싶은 염원이 깊이 배여 있다는 점에서 두 시구의 표현이 의미상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한다. 「贈亞使申德夫厚載葵亭」 2수는 其一에서는 만남의 기쁨을, 其二에서는 이별의 회한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會者定離’의 天則을 깨닫게 한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其二의 끝구의 ‘悵望’이다. 왜냐하면 悵望은 懇念과 상대적 의미이지만 여기서는 훗날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을 엿볼 수 있어 그의 심리적 상황을 가늠하게 하는 시어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만주 홍원구와의 우정’에서는 둘의 인간적 관계와 둘의 시풍에 관하여 비교하며 살펴보았다. 당시 黨色이 다르고 시풍이 다른 처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우정을 살필 수 있었다. 백곡의 「贈洪元九」 2수와 만주의 「喜金子公至」에서 둘의 관계가 친구로서, 시인으로서 우의가 매우 돈독함을 보여준다. 「寄洪元九」에서는 작시에 있어 만주가 天機와 사실적인 묘사를 추구하는 자신의 시풍과는 완전히 다른 西崑體의 시풍을 추구하고 있음에도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관계가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백곡은 청주를 드나들며 유람하고 교유하면서, 그때마다 느끼는 심정을 시로 남겨 놓았다. 여기에서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기쁘고 즐거워하며, 때로는 슬퍼하면서 이를 여과 없이 노래함으로써 그 여운이 깊게 느껴진다. Baekgok Kim Deuk-shin was a poet of the 17th century. He left many poems while traveling all over the country. The "Baekgokjip" contains 1594 poems left while traveling. The number of poems related to Cheongju is relatively high, with dozens of poems related to Cheongju. He fully displayed the lyric and sentiment enjoyed in Cheongju. Jatbat Village, Neungchon Village, and Yulchi were all located near or near Cheongju-mok, which was the base of his life. As a result, it was natural to visit Cheongju and record the poem. There were many familiar officials and poets in Cheongju-mok. Hong Seok-ki, a renowned poet in Cheongjumok, was one of his closest friends. From the perspective of Baekgok, it was not only geographically easy to find Cheongju, but also there were many people who could communicate with each other through human interaction. Based on this, his poems were classified. The following was described in relation to the lyricism in Cheongju, the meeting and parting, and the friendship with Manju Hongseok. First, in "Reading in Cheongju," Baekgok looked at the emotional implications of accepting the lyric of nature. In 「Bok Cha Seon Gun Chim Ryu Gyeong Si Un」 and 「Mill Am Dong」, it is assimilated into nature and depicts the excitement in a picture, and the harmony of heaven and earth and the spirit of assimilation with nature are well illustrated. In addition, if "Jak Gang" is a realistic portrayal of one's feelings in a static way, "Cha Bak Jung Gu Un Seo Won" is a dynamic portrayal of one's surroundings, which is in contrast to its content. Second, 'The Brightness of Meeting and Parting' examines the author's feelings in meeting and parting with acquaintances. "Byeol Cheong Mok Chim Mun Baek Hwang" and "Gi Chung Cheong Bang Baek" are poems about the repentance of parting. Although 「Gi Chung Cheong Bang Baek」 refers to 'Byeol Mong Wol Cheon Bong' in the four districts and the sentiment toward it as 'Won Pa Ju Yeong Jong' in the eight districts, 「Byeol Cheong Mok Chim Mun Baek Hwang」 ended with 'Jeok Eung Hon Mong Kong Yu Yu'. Eight sections of 「Gi Chung Cheong Bang Baek」 replace the feelings felt in 「Byeol Cheong Mok Chim Mun Baek Hwang」. The second chapter of the 「Jeung A Sa Sin Deok Bu Hu Jae Gyu Jeong」 sings of the joy of meeting in the first and the second in the second, repentance of parting in the second part of the term. It makes to us realize the laws of 'People you meet always break up. A broken-up man will surely return someday.' here. Another thing to note is the "stare vacantly at (悵望)’" at the end of the second chapter. Because “to think hard(懇念)” and “stare vacantly at (悵望)” are relative meanings, but here they include “to think hard(懇念)”'s meaning, which makes it a poetic word to gauge his psychological situation. Third, 'Friendship with Man Ju Hong Won-Gu' compared and exam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people and their poetry. First of all, the relationship between "Zeung Hong Won Gu" of Baekgok and "Hui Kim Ja Gong Ji" of Man Ju shows that friendship as a friend and a poet is very close. However, 「Gi Hong Won-Gu」 says that 「Syeo Gon Che」 is different from his own style of poetry, which seeks genius and realistic portrayals in writing. As such, Baekgok enjoyed sightseeing and communing in and out of Cheongju, leaving the feelings of the city. The lingering imagery is deeply felt here by singing it without filtration, sometimes admiring, sometimes happy, and sometimes s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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