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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탈냉전기 한국에서의 ‘동아시아 영화 연구’ 동향

        이호걸 한국영화학회 2022 영화연구 Vol.- No.91

        한국에서 동아시아 영화가 학술연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던 것은 탈냉전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던 1990년경부터이다. 탈냉전으로 시작된 중국영화의 수입과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따른 일본영화 수입 등이 이를 촉발했다. 이 글은 탈냉전기 한국에서의 ‘동아시아 영화 연구’ 동향을 조사, 분류, 논평하기 위한 것이다. 한⋅중⋅일 영화에 대한 연구 전체가 대상이 되어야 하겠으나, 논점의 명료화를위해 한⋅중⋅일 영화 사이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에 한정하여 논의한다. 이들은‘동아시아 영화 연구’로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학회의 ‘동아시아영화학자회의’의 개최와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 의 출판 등 2000년대 중반에 제출된 ‘동아시아’를 표제로 하는 학술기획은 동아시아 영화 연구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이는 영화학, 한국학, 중국학, 일본학, 문화연구 등 여러 분과가 함께 구성해 온 학제적 영역으로서 다양한 쟁점과성과를 제출해 왔다. 2010년대에는 보다 심화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여러 학술단행본들의 출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동아시아 영화 연구는 크게 두 가지 접근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비교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그 외의 여러 관계의 양상들-영향ㆍ중첩ㆍ인접ㆍ이행 등-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는 작품의 부면들은 물론, 창작ㆍ제작ㆍ유통ㆍ수용 등 다양한 영화적 실천에 적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맥락들이 고려되었다. 대상이 되는 시기에 따라 분류가 가능할 터인데, 크게 식민주의기(∼1945), 냉전기(1945∼1991), 탈냉전기(1991∼)로 나눌 수 있다. 식민주의기에 대한 연구는 침략전쟁과 식민지배가 역설적으로 열어 놓은 트랜스내셔널한 상황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과 공존했던 민족적 이중 공간으로서의 식민지 조선의 영화 장의 동학이 규명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영화사가 보다 객관적으로 재기술되었다. 냉전기는 진영 간 봉쇄 등으로 비롯된 폐색의 상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동했던 ‘인터/트랜스내셔널’한 흐름을 중심으로연구가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는 정책ㆍ산업ㆍ장르 등의 국가별 비교연구, 동아시아 영화의 상호 수용, 재현, 영향의 양상 등이 논의되었다. 탈냉전기에는 봉쇄의 해제로 인해 강화하고 증대해 온 동아시아 내의 다양한영화적 관계들의 양상들이 주목됐다. 역사적 재현, 주요 작가 등에 대한 국가별비교연구, 상호 재현의 양상들에 대한 논의들, 상호 수용에 대한 실증 작업들,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의 동아시아 영화, 동아시아 국제영화제의 동학, 한류와 아시아 영화 장의 가능성 등이 다뤄졌다. 다양하게 증식해 온 권역 내 영화적 흐름을직간접적으로 추동하는 자본의 동학과, 여전히 강고하게 존속하는 민족국가의 작동에 대한 기술과 성찰도 수반되었다. 동아시아 영화 연구의 전체 흐름을 조망할 때 ‘영화를 매개로 하는 연결된 경험의 장’으로서 동아시아 영화 혹은 영화적 동아시아의 상이 그려져 왔음을 알 수 있다. 현 상태에 대한 비판을 주요한 가치로 삼고 있으므로, 이를 ‘동아시아대안체제론’의 흐름 위에 위치지울 수 있을 것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에 고조되어 온 권역 내의 지정학적 긴장은 역설적으로 동아시아 영화 연구의 실효성을강화하고 있다. 반지정학적 문화 실천으로서의 동아시아 영화 연구의 역량이 요청되고 있기 때문이다.

      • KCI등재

        일반 : 아시아영화제와 한홍합작 시대극 - "아시아영화"라는 범주의 생성과 냉전

        이영재 ( Young Jae Yi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4 大東文化硏究 Vol.88 No.-

        전후 냉전 질서 속의 ‘자유아시아’ 진영이라는 권역 내에서 이루어진 아시아영화제는 새롭게 아시아 시장에 진입하고자 한 전후 일본의 영화 자본과 홍콩의 화교자본을 매개로 한 동남아시아의 영화 자본가들, 필리핀, 인도네시아, 한국, 대만 등의 국가 주도의 영화 자본의 산업적 연대에 대한 지향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 영화제는 회원국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를 통한 각국의 영화 산업의 기술적 발전과 시장 확대를 도모하고자 하는 협력의 장이었으며, 개별 내셔널 시네마의 전시와 승인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아시아영화제는 ‘아시아’라는 말을 둘러싼 가치와 미학, 정치와 자본의 응축판이었다. 이 영화제는 對서구적 아시아의 가치, 미학, 냉전 질서, 내셔널 시네마와 세계와의 연계, 국경을 넘는 영화 자본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영화, 내셔널, 아시아, 세계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가는 데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대상이다. 본 논문에서는 아시아영화제와 이곳에서 이루어진 영화적 실천으로서의 한국-홍콩 합작의 스펙터클 시대극을 통해 내셔널 시네마와 세계 보편으로서의 헐리우드의 매개항으로서 구상된 ‘아시아영화’라는 범주의 성립을 파악하고자 한다. Asian Film Festival was begun as Southeast Asian Film Festival by Southeast Asian Motion Pictures Producers Association from 1954. AFPA was established by two important film producers, Nagata Masaichi(Japan) and Run Run Show(Hong Kong) and other post colonial states of Asia. Japan could reenter this place under the cold war through the Asia Film Festival and other countries tried to present their national identities in the Asia Film Festival. Asia film Festival shows a condensation of value, aesthetics, politics and capital around the word of Asia. What was asian value? How do (free) asia represented themselves? Where did capital of film industry flow? How did USA``s force work in this place? In the meantime, the Asian Film Festival was a place where transnational collaboration had occurred frequently. Many film producers met each other in Asian Film Festival and they collaborated to make films. For example, Shin Sang-ok and Run Run Show made two spectacle epics, The Last Woman of Shang(1964) and The Goddess Of Mercy(1966). This paper examines a formation of asian cinema as mediation of national cinema and hollywood cinema through Asian Film Festival and two co-production spectacle epics.

      • KCI등재

        특집 2 : 2009,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발견 ;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 관련 프로그램의 변화와 그 성격과 의미에 대한 연구1: [개/폐막작], [아시아 영화의 창], [뉴커런츠]를 중심으로

        강소원 ( So Won Kang )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2009 아시아영화연구 Vol.2 No.2

        이 글은 1996년 제 1회부터 2009년 제 14회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 영화와 관련된 프로그램의 성격과 변화를 되짚고 그것의 의미와 성과, 한계를 점검하려는 글이다. 그 중에서 [개막작]과 [폐막작], [아시아 영화의 창], [뉴커런츠]와 [마스터클래스]를 중점적으로 검토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를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새로운 아시아 영화와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지지하는데 초점을 둔 비경쟁 영화제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14년은 한국영화의 국제적 진출과 아시아 영화의 약진과 시기적으로 겹쳐져 있다. 말하자면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와 아시아영화의 질적 양적 성장에 기여한 바가 있는가 하면, 거꾸로 한국영화와 아시아 영화의 성장이 부산국제영화제를 키우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화와 영화제가 동반상승하는 과정에서 영화제 프로그램도 변화해갔다. 본론에서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전반에 걸친 변화를 개괄적으로 살펴본 후 아시아 영화와 관련된 개별 프로그램들을 각각 다루었다. 거기서 [개/ 폐막작] 선정의 성격과 그 변화, [아시아 영화의 창]의 성격과 역할, [뉴커런츠]와 최우수 아시아 영화인상의 의미와 기능, 그리고 [마스터클래스]의 의미와 역할을 세부적으로 검토하였다. 첫해에 제시되었던 프로그램의 구성은 14년을 거치면서 좀 더 세분화되고 확장된 형태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 변화 중 어떤 것은 성공적이었고, 또 어떤 것은 정체성과 색깔이 불분명하고 또 다른 것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를 요구한다. 이 글에서 나는 아시아 작가들의 발굴과 지원이라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목표 혹은 핵심 과제가 어떻게 수행되는지 프로그램을 통해 검토하고 재평가하고자 하였다. This study reviews the character and change of the program related to Asia of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checks its meaning, achievements and limitations. This will be more concentrated on the [Opening Film], [Closing Film], [A Window on Asian Cinema], [New Currents] and [Masterclass]. As many people know,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s non competitive film festival which is focused on introducing Korean films systematically and finding and supporting new Asian films and authors. Fourteen years of the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re overlapped the time that Korean films entered the international market. So to speak,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contributed to the improvement of Korean and Asian Films as both quality and quantity, while the improvement of Korean and Asian Films helps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o grow. Like this, the program has been changed as film and film festival are going up together. In the main point, after checking widely of the changes of the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t was dealt that each program which is related to Asian films. It was specifically reviewed the character of choice of [Opening Film] and [Closing Film] and changes, the role and character of [A Window on Asian Cinema], the meaning and function of the [New Currents] and The Best Asian Screen Actors Guild Award and the role and meaning of [Masterclass]. The structure of the program which was suggested at the first year has been changed more detailed and expanded way for fourteen years. Among the changes, some changes were successful, some changes were not clear about the identity and character, others were required to be watched for a while. In this paper, it was tried to review and revalue how the purpose or main work of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at is finding Asian authors and support is carried through the program.

      • KCI등재

        ‘아시아 영화 허브’의 기치 내세우기: 동아시아 영화제 지도 속 부산국제영화제와 홍콩국제영화제의 상호 네트워크적인 위치성과 관계성

        박은지 한국영화학회 2022 영화연구 Vol.- No.91

        동아시아 영화제 지도에서 볼 때 부산국제영화제와 홍콩국제영화제는 흥미로운 비교 사례를 드러낸다. 두 영화제는 유럽과 북미의 영화제 제도에 대응하려는의도가 낳은 탈식민적(홍콩) 혹은 시민적(부산) 문화기획이라는 출발점을 공유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환기에 탄생했다. 비록 서로 다른 시기에 달성된 것이긴하지만, 아시아의 대표적 영화제라는 기치를 선점하고자 전략적으로 타 동아시아영화제들과 경쟁해왔다는 점은 두 영화제가 공유하는 핵심적인 공통점을 드러낸다. 초기 아시아 중심의 영화제라는 정체성 확립에 주력하여 아시아 영화의 쇼케이스로서 자리를 잡고, 이후 단계적으로 시장 기능화, 대규모 복합 영화제화, 대중화 및 시민 참여화 등의 경로를 거치면서 다변화를 모색해왔다는 점도 홍콩과부산의 두 영화제를 실질적인 접점 속에서 고려하도록 해준다. 본 연구는 부산국제영화제와 홍콩국제영화제를 상호 네트워크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를 중점적으로 수행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주변국 영화제들까지 동반하는 동아시아의 국제영화제 지도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두 영화제에 대한 비교는 동아시아에서 영화제들이 어떻게 순환하고 있는가를시사해주면서 궁극적으로는 영화제들 간 상호적으로 맺는 위치성과 관계성에 대해 심도 있게 숙고해보도록 촉구한다. 이를 통해 아시아 대표적 영화제라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명성을 되풀이하여 주창하는 것으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영화제지도의 전지구적/아시아적/지역적인 글로컬(glocal)한 지평이 지리적 경계뿐만 아니라 시기의 흐름을 가로지르며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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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팍영화제와 한국의 냉전 세계주의

        구민아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19 아시아문화연구 Vol.49 No.-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process of the implementation of the Korean Cold War strategy through comprehensive research on the Asian-Pacific Film Festival. The Asian-Pacific Film Festival is a non-competitiv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organized by Cultural and Social Center for the Asian Pacific Region, an affiliated organization of the Asian and Pacific Council, to strengthen the solidarity of “free-world” Asian countries and to prevent the spread of communism in Asia. By holding the Asian-Pacific Film Festival, the Korean government pursued the internationalization of Asian film industries and sought to build up a sense of cultural solidarity among member countries. The cultural policy of the United States had a great impact on the emergence of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as the venues reflecting the desire for the globalization of Korean films. The Asia Foundation, which implemented the cultural enrichment programs in Asia, encouraged Korea to participate in the Asian Film Festival in order to consolidate a network of anti-communist filmmakers. The Asian Film Festival became a venue for the Korean film industry to explore the possibilities of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in various ways. The Asian Film Festival provided opportunities not only to open up the overseas market for Korean films, but also to boost the Korea’s national image. Furthermore, it was also a venue to stimulate the postcolonial resistance against Japanese cultural imperialism. This article will examine how the US cultural policy influenced the desire for the globalization of Korean films, and then explore the process in which the desire is realized as the Asian-Pacific Film Festival by national policy. By doing this, I would like to contribute to expanding the horizon of historical research on Korean international festivals. 이 글의 목적은 1969년에 막을 올린 아스팍영화제의 종합적인 연구를 통해 한국의 문화적 냉전 전략이 아스팍영화제를 통해 구현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데 있다. 아스팍영화제는 한국의 주도로 출범한 아스팍 사회문화센터가 아시아 자유 진영 국가의 결속을 강화하고 공산 세력을 영향력을 저지하기 위해 주최한 비경쟁 국제영화제이다. 한국 정부는 아스팍영화제를 통해 회원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선전하여 아시아 영화의 국제화를 꾀하고, 각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회원국 간의 문화적 연대감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냉전기에 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의 국제화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는 장으로 부상하게 된 데에는 미국의 문화정책이 큰 영향을 끼쳤다. 아시아지역을 대상으로 문화 원조 사업을 시행한 아시아재단은 반공 영화제작자 네트워크 형성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국이 아시아영화제에 참가하도록 독려하였다. 아시아영화제는 한국영화계가 국제영화제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장이 되었다. 아시아영화제는 한국영화의 해외시장 판로를 개척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으며, 국가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되었다. 또한, 일본의 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탈식민지적 욕망을 자극하는 장이기도 하였다. 아스팍영화제를 주관하였던 아스팍과 사회문화센터의 설립과정을 살펴보면 아스팍영화제가 아시아영화제를 거치며 배태되었던 국제화에 대한 열망과 일본의 헤게모니에 대한 견제 의식, 해방 이후부터 한국 정부가 견지해온 반공 이데올로기가 결합하여 탄생한 냉전 세계주의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냉전기의 미국의 문화정책이 한국영화의 국제화에 관한 관심과 열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피고, 이러한 열망이 아스팍영화제를 통해 국가 정책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냉전의 맥락에서 검토하며, 한국의 국제영화제 역사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 KCI등재

        현대 중앙아시아 영화 연구

        홍상우(Hong Sang Woo) 한국노어노문학회 2008 노어노문학 Vol.20 No.2

        중앙아시아 구소연방 공화국의 영화는 미학적 완성도에 비해서 우리에게 너무나 알려지지 않았던 분야이다. 이 지역의 영화들은 러시아 현지에서도 집중적으로 관람하고 분석하기가 어려운 작품들이다. 그러나 최근에 개최된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중앙아시아 특별전’은 러시아 및 구소연방 지역의 영화 연구자들에게 연구 영역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중앙아시아의 영화들은 구소련 및 러시아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영화사의 일부로 간주되면서 해외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으나, 소연방이 붕괴된 후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독자적인 미학적 성과를 확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중앙아시아는 세계 영화사에서 독특한 현상이다. 현재 중앙아시아 5개국은 각기 독창적인 영화 미학을 소유한 지역이 되었다. 중앙아시아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많은 영화가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데, 아직 영화 산업의 부흥을 위한 대중적인 영화들보다는 인간의 영혼에 호소하는 본질적인 성찰을 추구하는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상황은 나라마다 다양하지만, 종교, 역사, 문화적으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소련에 종속되었다가 독립했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이 지역에서 영화는 민족 정체성의 확립과 새로운 사회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본고는 그 동안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못했던 현대 중앙아시아 영화들에 대해서 제 9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들을 중심으로 개괄적인 비평적 분석을 시도해본 글이다.

      • KCI등재

        한국 영화 속의 동아시아-귀환의 문제를 중심으로-

        육상효 ( Yook Sang-hyo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4 한국학연구 Vol.0 No.35

        문학에서 동아시아론은 20 년이 넘는 시간을 분투해오면서 다양하고 의미 있는 논의들을 생산해왔다. 그러나 이 동아시아론이 한국 영화에 관한 논의에는 적합한 형태로 적용된 적은 많지 않았다. 이 글은 문학에서 발령된 동아시아론을 최근의 한국 영화들에 적용해보려는 시도이다. 동아시아 논의가 국민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지역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예술 작품에 적용될 때는 필연적으로 디아스포라의 문제와 연결된다.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디아스포라의 문제는 주되게는 귀환의 문제였는데, 동아시아를 다룬 최근의 한국 영화에서는 귀환보다 그 귀환의 불가능성이 주목된다. <마이웨이>는 동아시아 역사를 휴머니즘으로 포괄하려 했지만 결국은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결과를 맞았다. 결국은 주인공들도, 그리고 동아시아의 과거도 귀환하지 못했다. <황해>는 현해탄 콤플렉스를 대체하는 황해 콤플렉스를 다루었다. 이 새로운 콤플렉스의 의미는 양안에서 다른 데, 중국에서는 한국에 대한 경제적 선망으로 나타나고, 한국에서는 중국 동포들을 범죄시해서 보는 공포감으로 드러났다. 황해의 주인공인 조선족 청년은 이 콤플렉스에 대한 양안의 관점 사이에서 뭍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그 사이에 바다에 버려진다. <베를린>이나 <용의자> 등의 최근 첩보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주인공으로 육체적으로 초인화 된 북한공작원을 다루는데, 이들의 행동 동기는 이데올로기나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다. 당연히 이들 역시 남과 북 어느 쪽으로도 귀환하지 못한다. 동아시아 논의에서도 미국을 빼놓을 수 없듯이 동아시아 영화 논의에도 미국을 빼 놓을 수는 없다. 영화 속에서도 미국은 여전히 태평양 건너에 있는 선망의 땅이다. 그래서 미국적 요소가 전면적으로 개입하는 동아시아 영화는 갑자기 투박한 생활의 서사를 떠나 감미로운 러브스토리로 변한다. <호우시절>과 <만추> 등이 그런 영화들이다. 한국 영화 속에서 동아시아적 요소들은 여전히 진정으로 다루어지지 못하고, 그 때문에 귀환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그 불가능성을 귀환 가능함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체성의 이중성, 경계성, 중간성이 진정으로 섞이고 약동하는 문화적 혼종이 요구된다. Although East-Asian theory, in the field of literature, has produced diverse and meaningful discussions for over last 2o years, it has barely given influences on Korean films. This paper can be regarded as an attempt to look at Korean films thorough the angle of East-Asian theory. If East-Asian theory demands a transnational perspective including the whole region of eastern Asia, it is inevitably linked to the issues of diaspora and repatriation. But recent Korean films pay more attention on the impossibility of repatriation rather than repatriation itself. the film < My Way > was not welcomed by any of countries in the region although it desperately tried to wrap around the regional history with humanistic approach. < The Yellow Sea > reveals Yellow complex, which, from western side of the sea, shows itself as the envy for economic growth in Korea whereas, from the eastern side, shows up as the fear for primitive violence of ethnic Koreans in China. Recent Korean blockbuster films, < Berlin > and < The Suspect > present North Korean superheroes who fight thorough the world neither for ideology nor for nation, but for his own family. Therefore it is natural that they become impossible to return to any nation. America makes another factor in East-Asian theory and East-Asian films. It stands afar as a fantasy. So its filmic intervention, in many cases, suddenly turns the wild narration of action films to the sweet love stories. Consequently, Korean films failed to build up repatriation, mainly because their East Asian ingredients haven’t mixed in the proper chemical process. That is the reason why the genuine hybridity is needed in these films.

      • KCI등재

        특집 2 : 2008,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발견 ; 중앙아시아 영화의 역사,미학,정체성: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된 중앙아시아 영화를 중심으로

        강소원 ( So Won Kang )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2008 아시아영화연구 Vol.1 No.1

        이 논문은 90년대 이후 서구영화제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한 중앙아시아 영화의 역사와 미학을 다룬다. 1991년 전-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5개의 ``-스탄`` 국가가 자국의 영화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고,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된 6편의 중앙아시아 영화의 다양한 면모를 분석할 것이다. 먼저 중앙아시아 각국의 영화사적 전통에 드러난 공통된 특징은,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 민족주의 경향이 강한 영화들을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의 영화산업은 전체주의 정권에 의해 궤멸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타지키스탄은 내전으로 자국의 감독들을 잃었다. 반면 우즈베키스탄과 키르키즈스탄은 정부의 문화적 통제 아래에서 검열과 싸우고 자본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영화적 전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카자흐스탄 영화의 약진이 가장 눈부시다. 서구영화제에서의 성과를 토대로 국제적 합작을 이뤄낸 카자흐스탄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만 네 편의 영화가 초청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중앙아시아 영화의 역사에서 드러나듯이, 중앙아시아 영화의 정체성은 소비에트의 영화적 전통으로부터 배우고 소비에트를 넘어서려는, 민족적인 움직임 속에서 구성되었다. 이 논문에서 분석하고 있는 6편의 영화에 나타난 애도로서의 역사적 기억, 전통 민족문화의 대항적 가치, 다민족 공동체의 이상,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 근대가 가져온 불안 등은 오늘날 중앙아시아 영화의 공통된 주제라 할 것이다. 소비에트에서 기인한 억압과 고통의 기억을 스크린에 불러내고, 그들 자신의 전통과 기원, 민족적 신화를 상징과 은유에 실어내는 중앙아시아 영화는 지금 새로운 민족적 공간을 상상하고 있는 중이다. This paper deals with the central asian film`s history and aesthetics that attracted through western film festival since 1990s. After reviewing five new independent ``-stan`` nations` historic processes which formed own identity from the past soviet union in 1991, I analysed various aspects of the six central asian cinema which introduced in the PIFF 2008. First, the common features of the central asian films` tradition are they have made the nationalism tendency cinemas under the soviet regime. However, nowadays the film industry of Turkmenistan situated in deterioration by absolutism government. Moreover, in case of Tajikistan many film directors flied because of the civil war. On the other hand, Uzbekistan and Kyegyzstan have made an effort to sustain tradition of the film under the situation of struggling with censorship and deficit of capital. Among these countries, advance of Kazakhstan film is remarkable. Based on the achievement of western film festivals, Kazakhstan have made international cooperation. (They made international cooperation through achievements of Western film festival) They also invited 4 films (Four of their films were invited)in the PIFF this year. As it revealed in the history of central asian cinema, its identity was formed by nationalism to overcome and learn Soviet traditional. The common themes of these 6 films in this paper are historic memories, counter values to traditional culture, an ideal of multiracial community, reconciliation and conflict between generations. The central asian cinema which bring memories of restraint and pain to the screen caused Soviet at the same time carry own tradition, origin and national mythology create new national imagination.

      • KCI등재

        아시아재단의 영화프로젝트와 1950년대 아시아의 문화냉전

        이상준 ( Lee Sang-joon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8 한국학연구 Vol.0 No.48

        본 논문은 1954년에 아시아재단으로 개명된 자유아시아위원회의 1950년대 영화 프로젝트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조망하는 연구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민간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목적으로 결성한 단체로 알려져 있는 아시아재단은, 실제로는 미국의 아시아 외교 정책의 이익을 확대하고 공산진영과의 심리전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미 중앙정보국이 조직하고 운영하는 기관이었다. 미국 정부의 냉전 문화 정책 방향을 따라 1951 년에 설립된 아시아재단은 아시아 국가들, 특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일본, 버마, 태국, 베트남, 대만, 한국, 홍콩, 필리핀 등이 주 활동 무대였으며 주로 학문적 연구와 컨퍼런스 및 토론회를 후원하고, 학술, 교육, 스포츠 및 예술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영화는 아시아재단의 초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분야 중 하나였다. 1952년에 제작이 개시되어 1953년에 완성된 버마어 영화 <국민은 승리한다>와 미완성으로 종료된 <붓다의 삶>에 이어 아시아재단은 1954년 경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홍콩, 일본에서 친미 반공 영화인들의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이를 재정적, 행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한 사업을 다각도로 펼쳤다. 이 논문은 자유아시아위원회에서 아시아재단으로의 정체성 변화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아시아 각 국에 설치된 지부, 그리고 각 지부의 현장 요원들이 아시아에서 친미 성향의 반공 영화 제작자 동맹을 구성하기 위하여 은밀하게 수행한 프로젝트의 방법과 범위를 분석하고, 1950년대 미국 주도의 냉전문화정책이 아시아 각국의 영화 산업과 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추적한다. 또한 아시아재단의 영화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펼쳐진 1950년대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재단의 현장 요원들이 아시아 현지의 영화 제작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리고 해당 지역의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함에 따라 정책 역시 다변화 되어가는 방식을 또한 분석한다. 본 연구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후 버연구소에 소장되어 연구자들에게 공개된 아시아재단 페이퍼와 예일대학교의 로버트 블럼페이퍼, 그리고 이 재단과 연관된 1950년대 학계 인사들의 개인자료를 종합하여 현재까지 거의 연구된 바 없는 자유아시아위원회 설립의 초기 역사와 활동, 자체제작 등 아시아 조직과의 협력을 포함한 초기 영화 프로젝트들을 논의한다. Under the leadership of its first president Robert Blum (1953~1962), The Asia Foundation, a San Francisco based private non profit organization which was established in 1951, was actively involved in the motion picture industries in Asia since its first feature film project The People Win Through, based on a play written by a Burmese Prime Minister U Nu, came out in 1953. The Asia Foundation had clandestinely supported anti-Communist motion picture industry personnel, ranging from producers, directors, and technicians to critics and writers in Japan, Hong Kong, Burma, South Korea, as well as American and British motion picture producers in Malaysia and Thailand through covert activities. What The Asia Foundation’s motion picture project had hoped for was the construction of the alliance of anti-Communist motion picture producers in Asia in order to win the psychological war against communism. Although It was, in the end, a failed project, it should be noted that The Asia Foundation had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formation of the first postwar inter-Asian motion picture industry network in Asia, which had ultimately redrawn the imaginary and geo-political map of Asia. Drawing archival materials from Asia Foundation Records and Robert Blum Papers, this presentation is primarily concerned with the origins of the Foundation’s motion picture project in Hong Kong and Korea, with a view to explore the ways in which US government-led cold war cultural policies had influenced the regional film industry.

      • KCI등재

        Кинопроцесс в Центральной Азии в контексте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с советским и российским кино

        홍상우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러시아연구소 2019 슬라브연구 Vol.35 No.3

        This study focuses on Central Asian cinema in terms of correlation between Soviet and Russian cinema. Central Asian cinema started as history of Soviet cinema, and even after the independence of Central Asian countries, cinema of this region have influenced Russian and Soviet cinema.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history of Kazakhstan cinema have already begun in the Russian Imperial era. History of other Central Asian countries began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Soviet regime. In the beginning of the Soviet regime, the role of cinema was to promote and incite communist ideology. This implies the absence of traditional local life in Central Asian cinema during this period. During World War II, many Moscow filmmakers moved to Almata, Kazakhstan. At this time, Central Asia was the center of Soviet film history. It was only in the “Ottepel” that Central Asian cinema described the real life of the nation. Since then, Central Asian cinema has achieved both localization and globalization, and in the '90s it became a remarkable part of world cinema history with the phenomenon of “Kazakhstan New Wave”. 본 연구는 중앙아시아 영화를 소비에트 영화와 러시아 영화의 상관 관계 측면에서 고찰한 것이다. 중앙아시아 영화사는 소비에트 영화사로서 시작되었으며, 중앙아시아 각국의 독립 이후에도 이 지역의 영화는 러시아 영화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카자흐스탄 영화사의 경우 이미 제정 러시아 시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타지키스탄을 비롯한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의 경우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면서 영화사가 시작되었다. 소비에트 정권 초기 이 지역에서도 영화의 역할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선전과 선동이었다. 이것은 이 시기 중앙아시아 영화에서 지역의 전통적인 삶의 모습이 부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차대전 시기에는 모스크바의 많은 영화인들이 카자흐스탄의 알마타로 이주했다. 이 시기 중앙아시아는 소비에트 영화사의 중심이었다. 중앙아시아 영화가 민족의 삶을 묘사하는 것은 ‘해빙기’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졌다. 이후 중앙아시아 영화는 지역화와 국제화를 동시에 이룩하면서, 90년대에는 ‘카자흐스탄 뉴웨이브’라는 현상으로 세계영화사에서 주목할만한 한 부분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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