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펼치기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Le nombre des syntagmes nominaux et la marque du pluriel en francais et en coreen

        전재연 한국프랑스학회 2004 한국프랑스학논집 Vol.48 No.-

        이 연구는 불어와 한국어의 명사구 내에서 수의 분포를 검토하여 그 통사적, 의미적 양상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두 언어간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도출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어에서 복수 표지 ‘들’을 수반하지 않은 명사구는 통사적으로 단수인 경우도 있지만, 단수 혹은 복수자질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경우도 있다. 본 연구는 전자의 경우 무표 명사구가 단수자질을 지녔지만, 후자의 경우는 명사구에 수 자질이 전혀 지정되어 있지 않다고 가정하고, 명사구의 기본이 되는 명사의 투사 NP가 수 자질의 투사인 NombreP의 관할을 받는 경우와 받지 않는 경우로 통사 구조를 구분한다. 단수 혹은 복수자질을 가진 명사구는 그 내부에 수 투사를 포함하고 있고, 수 자질에 대해서 지정되지 않은 명사구는 그 내부에 수 투사를 포함하지 않는다. 명사구가 통사적으로 수 자질을 지니고 있는지 여부는, 한국어에서는 명사 핵어의 어휘적 특성(유정성/무정성)이나 명사구가 포함된 문장의 특성 혹은 컨텍스트(단순 존재절인지 아니면 지시적으로 기지의 정보를 담고 있는 절인지)에 따라 판별될 수 있다. 불어에서는, 시장에서 상인에 의해서 사용되는 발화체에서 혹은 경멸적인 뉘앙스를 띤 발화체에서 수 자질을 포함하지 않은 명사구의 예가 발견된다. 수 자질과 관련된 한국어와 불어의 차이는 복수표지 ‘들’과 s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불어의 복수 접미사 s는 명사구 내에서나 문장 내에서 일치를 유발하고, 복수표시된 불어 명사구는 엄밀성(rigidité)과 무관하고, 내포적(intensionnel)인 해석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불어의 특성은 수 일치 현상, 복수형 총칭 명사구의 내포적 해석, 그리고 복수 형태를 지니면서도 의미적인 통합성을 동시에 보이는 Pluralia Tantum의 존재를 통해 입증된다. 반면, 한국어의 ‘들’은 엄밀성과 연관되고, 한국어의 ‘들’ 표시된 명사구는 외연적(extensionnel)인 해석을 가진다. 한국어의 복수 표지가 일반적으로 의무적인 문법적 일치현상을 유발하지 않고, 종(espèce)을 가리키는 총칭 명사구가 복수화될 수 없고, 명사구의 복수 형태가 통합성이 아닌 분리성(distinctivité)과 관련된다는 사실이 앞의 가정을 입증해 준다.

      • KCI등재

        다층 구조를 이루는 이분문항 자료의 급내상관계수 추정 방안 비교

        박찬호(Chanho Park) 한국교육평가학회 2013 교육평가연구 Vol.26 No.2

        교육 관련 연구에서 분석의 기본 단위는 대개 개인이지만 개인들은 집단을 이루어 존재한다. 같은 집단에 속한 개인들은 서로 같은 특성을 보이는 집단 내 동질성을 지니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집단내 동질성은 급내상관계수로 확인할 수 있다. 라쉬 모형과 같은 문항반응이론을 적용하여 성취도를 구할 경우 결합최대우도추정법이나 주변최대우도추정법을 적용하여 구한 문항 모수와 능력치를 사용하며, 다층 분석시 이렇게 구한 성취도를 이용하여 급내상관계수를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다층 라쉬 모형이 일반화선형혼합모형에 속한다는 점을 이용하면 라쉬 모형 적용과 급내상관계수 추정을 동시에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다양한 조건에서 급내상관계수가 어떻게 추정되는지 비교하기 위하여 모의 실험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일반화선형혼합모형으로서의 다층 라쉬 모형을 이용한 경우 모든 조건에서 급내상관계수를 정확히 복원하였으나 능력치를 먼저 추정하고 2차로 급내상관계수를 추정한 경우 부적인 편파를 보였으며, 결합최대우도추정법과 주변최대우도추정법 간 차이는 미미하였다. 분산분석을 통해 급내상관계수의 추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 결과 집단 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단의 수가 크고 집단 내 개인의 수가 적을 경우 급내상관계수가 최대 .5까지 낮게 추정될 수 있어 분석시 주의를 요한다. 그래서 평가 결과를 다층 분석에 이용할 경우 문항반응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면 다층 라쉬 모형을 이용해 분석을 하는 것이 권장되며 성취도 결과가 이미 주어진 경우라면 특히 집단 수가 많을 때 주의를 요한다. The unit of analysis in most education research is individuals. However, individuals exist as groups, and the individuals in the same groups share similarities. This within-group homogeneity can be indicated by the intraclass correlation (ICC) coefficient. When item response theory models such as the Rasch model are applied to measure individual's achievement, the parameters are often estimated using the joint maximum likelihood estimation (JMLE) or the marginal maximum likelihood estimation (MMLE). Then the ICC can be estimated using the estimated person parameters. However, by using the generalized linear mixed model (GLMM) framework, the Rasch model analysis and the estimation of the ICC can be completed simultaneously. This study compared the recovery of the ICC under various conditions. The results showed that the ICC was accurately recovered by the multilevel Rasch as a GLMM approach. When the ICC was estimated following the latent ability estimation, the estimated parameters were negatively biased, and there was no substantial difference between the JMLE and MMLE approaches. When an analysis of variance was conducted to examine the factors affecting the estimation of the ICC, the number of groups was found to be the most significant factor. Cautions are needed because the ICC can be underestimated by up to .5 when the number of groups is large and the number of individuals within groups is small. Therefore, the multilevel Rasch model is recommended if item responses are available for a multilevel analysis. If item responses are unavailable, the results should be cautiously interpreted especially when the number of groups is large.

      • KCI등재

        수면 중 소리 신호를 이용한 수면 분석 방법 조사

        권용진,강규창,배창석 한국차세대컴퓨팅학회 2014 한국차세대컴퓨팅학회 논문지 Vol.10 No.3

        인간에게 있어 충분한 수면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부족한 수면, 불규칙한 수면 습관 등으로 인해 수면 장애를 겪고 있다. 하지만 수면 장애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실시하는 수면다원검사는 비용과 시간 문제, 낯선 환경에서 수면을 취해야 한다는 점, 몸에 센서들을 부착하여 수면을 방해하는 점 등의 문제들이 있어 선뜻 검사 받기 쉽지 않다. 본 논문에서는 수면 중 발생하는 소리 신호를 녹음하고, 소리 신호를 분석함으로써 수면 중 특이 사항을 찾아내거나 수면 습관을 분석하는 과거 연구들을 조사한다. 수면 중 소리 신호를 이용하는 분석 방법은 비용이 저렴하고, 일반 가정에서도 분석이 가능하며, 몸에 센서를 부착하지 않아 피실험자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수면 상태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소리 신호를 이용하여 수면 습관을 분석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수면 중 소리 신호를 이용한 기존의 수면 분석 방법의 일반적인 구조를 소개하고, 각 연구에서 사용하는 분석 기법들과 특징값 선택 방법 등에 대해 조사하고, 추후 수면 분석을 하는 연구자들에게 고려해야 할 점들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 KCI등재

        日本の歴史的 「首都」 に関する論点

        岩本 馨(이와모토 카오루)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16 서울학연구 Vol.- No.65

        본 글은 역사적으로 일본 ‘수도’의 변천과 관련된 연구를 살피며 동아시아의 ‘수도’에 관한 논의의 소재를 제공하고자 한다. 첫째, 고대의 수도는 천왕의 대가 바뀔 때 마다 궁을 이전하였던 역대천궁歴代遷宮의 시대를 시작으로, 7세기 말 중국으로부터 도성 제도를 도입하여 복수의 수도를 운영하는 시대를 지나, 9세기에 헤이죠쿄平安京라는 단독의 수도(교토)에 정착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둘째, 중세의 수도는 교토가 권문(권세 가문)의 거점으로 발전하였으며 시라가와白河, 토바鳥羽, 사가嵯峨 등의 위성 도시가 탄생했다는 점, 동일본東日本에도 히라이즈미平泉 혹은 가마쿠라鎌倉 등 무사의 ‘수도’가 형성된 점을 지적 할 수 있다. 또 동아시아 전체로 살펴보았을 때 일본과 류큐琉球라는 ‘섬의 수도’는 중국·조선이라는 ‘육지 수도’와는 이질적인 구조를 가진다는 논점을 제시한다. 근세에는 죠카마치城下町의 ‘수도성’에 관하여 ①국가 공권과의 관계, ②특별한 영역 지배, ③주민의 ‘수도’ 의식, ④‘수도’로서의 도시 경관이라는 4가지 측면으로부터 선행 연구를 정리하며 논점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근세의 ‘수도’에 해당하는 것은 에도江戸와 교토京都이나, 당시에는 경제 도시 오사카大坂도 포함하여 ‘삼도三都’라 인식하는 견해도 뿌리 깊게 존재 하였다. 마지막으로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도쿄가 명실상부한 수도로 자리 잡는 과정과 한편 수도로서 상징성이 부족하여 교토京都나 나라奈良가 ‘고도古都’로 떠오른 문제에 관해서도 소개한다.

      • 隋 宇文述 墓誌銘 考察

        김영관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12 한국고대사탐구 Vol.10 No.-

        宇文述 墓誌銘은 2006년 중국 陝西省 咸陽市 涇陽縣 雲陽鎭에서 출토되었고, 誌와 蓋를 모두 갖추고 있다. 묘지명의 재질은 靑石이고, 크기는 대략 개석이 75×75.5㎝, 지석이 74×74㎝의 방형이다. 개석은 사신도를 양각한 녹정형으로 정상부에 陽刻의 篆書로 “隋故司徒宇文公墓誌”라고 행당 3자씩 9字를 새겨 넣어 墓主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지석에는 4면에 線刻으로 12支神像 문양이 있고, 誌文은 39行에 걸쳐 1,505자를 隸書體로 새겨 넣었다. 묘지명은 다른 묘지명들과 마찬가지로 묘주인 우문술의 가계와 인품, 능력, 이력, 명 등을 기록하였다. 묘지명은 우문술 사망 후 8년 뒤인 당 고조 무덕 8년인 625년에 만들어졌다. 묘지명의 撰者와 書者는 알 수 없으나 次子 우문사급이 嗣子로서 묘지명 작성에 참여하였고 직접銘을 지었다. 묘지명의 작성시기가 우문술 열전이 실린 『北史』와 『隋書』가 편찬되기 이전에 해당하므로 사료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우문술 묘지명을 통하여 열전에는 기록되지 않은 그의 생몰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또한 『隋書』와 『資治通鑑』의 기록이 잘못됐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 우문술이 사망한 해는 『隋書』와 『資治通鑑』에 616년이라고 되어 있지만, 묘지명에는 617년 9월 71세를 일기로 죽었다고 기록함으로써 지금까지 불분명했던 생몰연도를 알려 주었다. 결국 우문술은 546년에 태어나서 617년에 죽었고, 고구려 원정에 참여할 당시인 612년과 613년에 그의 宇文述 墓誌銘은 2006년 중국 陝西省 咸陽市 涇陽縣 雲陽鎭에서 출토되었고, 誌와 蓋를 모두 갖추고 있다. 묘지명의 재질은 靑石이고, 크기는 대략 개석이 75×75.5㎝, 지석이 74×74㎝의 방형이다. 개석은 사신도를 양각한 녹정형으로 정상부에 陽刻의 篆書로 “隋故司徒宇文公墓誌”라고 행당 3자씩 9字를 새겨 넣어 墓主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지석에는 4면에 線刻으로 12支神像 문양이 있고, 誌文은 39行에 걸쳐 1,505자를 隸書體로 새겨 넣었다. 묘지명은 다른 묘지명들과 마찬가지로 묘주인 우문술의 가계와 인품, 능력, 이력, 명 등을 기록하였다. 묘지명은 우문술 사망 후 8년 뒤인 당 고조 무덕 8년인 625년에 만들어졌다. 묘지명의 撰者와 書者는 알 수 없으나 次子 우문사급이 嗣子로서 묘지명 작성에 참여하였고 직접銘을 지었다. 묘지명의 작성시기가 우문술 열전이 실린 『北史』와 『隋書』가 편찬되기 이전에 해당하므로 사료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우문술 묘지명을 통하여 열전에는 기록되지 않은 그의 생몰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또한 『隋書』와 『資治通鑑』의 기록이 잘못됐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 우문술이 사망한 해는 『隋書』와 『資治通鑑』에 616년이라고 되어 있지만, 묘지명에는 617년 9월 71세를 일기로 죽었다고 기록함으로써 지금까지 불분명했던 생몰연도를 알려 주었다. 결국 우문술은 546년에 태어나서 617년에 죽었고, 고구려 원정에 참여할 당시인 612년과 613년에 그의 나이는 66세와 67세의 고령이었다는 것도 더불어 알려주었다. 우문술의 출신지를 遼西 月城人이라고 하여, 『北史』와 『隋書』 열전에 代郡 武川人이라고 기록된 것과 차이가 나는 것은 묘지명에는 실제 출생지를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우문술의 고구려 원정에 대해서는 매우 소략한데 그것은 묘지명의 작성이 묘주의 위신을 가급적 헤치지 않으려는 묘지명 제작전통에 따른 일반적인 현상으로 이해된다.

      • 민화(民畵) 수노인도(壽老人圖)에 대한 고찰

        배원정(Bae Wonjung) 한국민화학회 2016 한국민화 Vol.- No.7

        수노인(壽老人)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남극성(南極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노인성(老人星), 수성(壽星), 수성노인(壽星老人), 남극성(南極星) 등으로도 지칭된다. 수노인은 길상성의 핵심이라고 수 있는 장수(長壽)의 속성을 지닌 신선이기에 궁중에서도 세화(歲畵)나 생일 선물용 그림으로 수노인을 제재로 삼았으며, 점차 저변화되어 민화로까지 다수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의 수노인도는 본래 조선 초기에는 소격서와 같은 도교의 제례 공간에서 숭배용으로 사용되었지만, 조선이 유교적 이념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길상적, 축수적 성격이 강한 도상으로 변모하였다. 조선 중기 김명국이 그린 수노인도는 두상이 길고, 키가 작은 도상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현존하는 한국 수노인도의 이른 사례다. 이후 수노인도는 조선 후기, 말기를 거치면서 화면에 사슴, 영지, 복숭아 등을 결합시키며 한층 더 길상성을 강화하였다. 점차 궁중 및 지식인들의 관습에 따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세화나 생일 선물로 활발히 활용되었기 때문에 수노인도는 민화로도 많이 그려졌다. 이에 민화 수노인도는 일반회화의 도상을 계승하기도, 불교회화의 영향을 받기도, 길상적 상징성을 보다 강화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일반 회화의 도상을 계승하는 경우 긴 두상, 사슴 등의 특징이 유지되었지만, 반대로 키가 작은 특징은 유동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는 도상 자체의 이해에 대한 부족일 수도, 변형을 추구하는 민화 자체의 속성 때문일 수도 있다. 불교 회화의 영향을 수용한 수노인도는 조선 후반기 이래 불교 회화와 민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융합되던 당시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사슴 대신 등장하는 구름, 옷의 묘사법, 달토끼의 모티브 등은 불교와의 관련성을 엿보게 해주는 것들이다. 또한 봉긋한 연기가 피오르는 듯한 호리병의 표현은 도교 신선 이철괴의 도상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아 민화 수노인도에서 다양한 중첩이 발생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민화 수노인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일반회화에 비해 길상성이 강화된 그림들이라 할 수 있다. 수노인 도상에 문자도를 연상시키는 목숨 수(壽)자의 나무를 결합하거나 책거리 그림 속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등의 방식은 일반 회화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요소들이다. 이처럼 민화 수노인도는 그간 수노인도의 전개에 있어 말기적 단계로 부차적으로 여겨졌지만, 일반회화 못지않은 다양성과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Jurojin(壽老人) is the deified south pole star which controls human life and it is also called as the star of south polar old man, the star of old man, the star of longevity, the old man of the long life star or the south pole star. Because Jurojin is the Taoist hermit having the attribute of longevity which is regarded as the core image of the auspices, it became the theme of the new year’s paintings and the paintings for the birthday present in the royal court, and afterwards this kind of trend widened and lots of folk paintings of Jurojin were made. Though the paintings of Jurojin were originally used for worship at Sogyukseo (昭格署: an office of early Joseon Dynasty which managed Taoist worshipping ceremon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in the process of strengthening Confucius ideology, it had changed to an iconograph which has the characteristic of strong auspice and invocation. The painting of Jurojin by Kim Myungkuk of the middle Joseon, in which the iconographic characteristics of long face and short height are well reflected, is an early example of extant paintings of Jurojin. Afterwards through the late and last period of Joseon Dynasty the paintings of Jurojin strengthened the symbolization of auspices by adding things such as deer, Ganoderma Lucidum, and peach. Because following the customs of the royals and intellectuals, the ordinary people used the paintings of Jurojin for the new year’s paintings and for the birthday present, many folk paintings of Jurojin were produced. Folk paintings of Jurojin show various aspects by succeeding the iconograph of ordinary paintings, by receiving the Buddhist influence, and by strengthening the symbolization of auspices. In case of succeeding the iconograph of ordinary paintings, the characteristics such as long face, deer and so on are maintained, but on the contrary the characteristic of short height seems to be flexible. This can be understood as the result of the lack of understanding the iconograph or the characteristic of the folk painting itself which seeks transformation. The paintings of Jurojin which accepted Buddhist paintings’ influence can be regarded as the product of the reciprocal influence of Buddhist paintings and folk painting since the late Joseon Dynasty. The cloud which appears instead of deer, the descriptive method of clothes wrinkles and the motif of the moon rabbit show the relationship with Buddhism. As the description of the smoking gourd bottle seems to be probably borrowed from the iconograph of Taoist hermit Li Tiegui (李鐵拐), we could guess that there happened lots of overlapping in the folk paintings. Compared to the ordinary paintings, the main characteristic of the folk paintings of Jurojin is the strengthening of the symbolization of auspices. Combining the Jurojin iconograph with the tree in the shape of Chinese Su (壽) character which reminds us the paintings of Chinese characters and depicting books like the those on a painting of the scholar’s study are the unique elements which cannot be found in the ordinary paintings. Though the folk paintings of Jurojin are until now regarded as belonging to the supplementary late stage of the development of paintings of Jurojin, we could see in them no less diversity and historical meaning than ordinary paintings.

      • KCI등재

        中国收养制度的发展及其课题

        강해순(姜海顺,)(Jiang Hai Shun) 원광대학교 법학연구소 2017 圓光法學 Vol.33 No.2

        收养制度是本无血缘关系的人之间,通过法定的程序形成拟制血亲关系的制度。中国的收养制度体现在1991年颁布,经1998年修改的《收养法》的相关规定中。中国收养制度具有区别与其他国家的以下几个方面的特色:立法原则及其内容侧重于保护未成年儿童的利益;立法模式是独立于亲属法的单行法的模式;收养类型是只允许收养未满14周岁以下未成年人的完全收养;对收养人的年龄与子女人数进行了严格的限制。中国收养制度存在的主要问题是:未能完全体现未成年人利益最大化的原则;对收养人的要求过于苛刻;收养的类型单一;收养之前不给予当事人一定的磨合期;登记时只进行形式审查。面对家庭观念变化与家庭人口逐渐减少的社会现实,改革收养制度是摆在我们面前的历史使命。在收养制度的立法模式上,应摆脱各种因素的束缚,将收养制度回归到《民法典》当中;降低收养人的年龄要求的同时取消收养人须无子女和只能收养一名子女的规定;引入不完全收养制度,充分发挥收养所具有的“抚养”与“赡养”的双重功能;设立试收养制度的同时强化收养的审查力度,使之成为是适应时代和家庭发展需求的更加完备的收养制度。 Adoption system is a system through the legal procedures to make people who between the bloodless relationship to have fictitious blood relations. Chinese adoption system is embodied in the relevant provisions of the Adoption Law, which was enacted in 1991 and amended in 1998. Chinese Adoption system is different from other countries: the legal principles and their contents are focus on the protection of the interests of minors; the legislative model is a model of individual law independent of Family Law; the adoption type is only allowed full adoption of minors under 14 years of age; and strictly limited the age and number of children of the adopter. The main problems with the Chinese adoption system are that, the principle of maximizing the interests of minors is not fully embodied; the requirements of the adopter are too strict; the type of adoption is single; before the adoption, a certain period of adjustment does not given to the parties; and only a formal review is conducted at the time of registration. In the face of social reality of changes in the concept of family and the gradual reduction of the family population, the reform of the adoption system is the historical mission placed in front of us. For the legislative model of adoption system, it should get rid of the shackles of various factors and return to the Civil Law; it should reduce the age requirement of the adopter and removal of the regulations that adopter shall be free of children and only could adopt one child; it should introduced incomplete adoption system, which give full play of adopt that the dual functions of rearing and support ; it should set up a test-adoption system, and strengthen the review of adoption at the same time, so that make adoption system more comprehensive to meet the needs of the times and family development.

      • KCI등재

        『隋書』 「百濟傳」에 보이는 武王의 二重外交와 濟ㆍ麗關係

        선봉조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8 한국학논총 Vol.49 No.-

        Regarding the time of cooperation between Baekje and Koguryo, 643 years is generally considered as the starting point. But this article asserts that the time above is around 607-611. King Mu of Baekje sent an envoy to Sui dynasty(隋) in 607 to ask for an attack on Koguryo. However, when Sui dynasty invaded Koguryo, Baekje did nothing. On this basis, Baekjejeon of Suishu(『隋書』 「百濟傳」) criticized that Baekje had allied with Koguryo from the start and deceived Sui dynasty. This article generally accepts an explanation of Baekjejeon of Suishu, even though there is an error. Baekje took advantage of Koguryo in 598 and 607 to improve the relationship with Sui dynasty, but suffered only the effects of being attacked by Koguryo without any significant diplomatic achievements. There was no benefit to be gained by keeping a check on Koguryo and it did not match Baekje's strategic goal of regaining Hangang river basin(漢江流域). So King Mu has changed his foreign policy especially about Koguryo and this is the dual diplomacy what this article asserts. King Mu judged that it would be more practical to form a cooperative relationship than to attract Koguryo. Actually, Baekje no longer had any military clashes with Koguryo since 607, and only Silla was targeted. For the same reason, Koguryo also chose to cooperate with Baekje. Becuase at that time, Koguryo stood in confrontation with Sui dynasty in the north and Silla(新羅) in the south. This consensus of interests between the two countries enabled the establishment of an alliance between Baekje and Koguryo after 607. However, Baekje had its own worries. Baekje was unable to disclose cooperation with Koguryo to Sui dynasty because it had insisted on its antagonism against Koguryo in the past. It is an act of antagonism against Sui dynasty. Therefore, Baekje was forced to cooperate secretly with Koguryo and at the same time it had to cheat Sui dynasty. In this regard, Baekje's diplomacy can not be regarded as a neutral or balanced one that can not be biased toward either side. It can be defined as diplomatic tactics, including deception and it is appropriate to call it dual diplomacy when it comes to the use of terminology. 백제와 고구려의 동맹 결성 시점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643년을 그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7세기 『隋書』「백제전」에 보이는 ‘實持兩端’ 기사에 착안하여 그 시점을 607~611년 무렵으로 올려 보고 있다. 『수서』「백제전」에서는 607년 백제 무왕이 사신을 보내 고구려 토벌을 요청했고, 611년에는 軍期를 묻기도 했으나 정작 隋가 고구려를 침공하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隋書』는 백제가 애초부터 고구려와 통화한 채, 隋를 엿본 것이라고 했다. 『수서』가 濟ㆍ麗의 통화시점을 607년으로 인식한 것은 같은 해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렇지만 기존의 대체적인 시각처럼 그것을 부정하거나 중대한 오류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607년 이후 백제가 실제로 대고구려정책을 변화시켰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백제는 대수관계의 개선을 위해 598년과 607년 고구려를 끌어들이기는 했으나 별다른 외교성과 없이 고구려의 보복공격을 당하는 피해만 입었다. 국경을 맞대지 않은 고구려를 견제해서 얻을 수 있는 實益도 없었거니와 한강탈환이라는 백제의 전략적 목표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이에 백제 무왕은 대외정책의 방향을 선회했는데 그것이 바로 『수서』「백제전」에서 말하는 실지양단이다. 무왕은 비록 외교전술이라 할지라도 고구려를 끌어들이는 방법 보다는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백제는 607년 이후로 더 이상 고구려와 군사적으로 충돌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신라만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고구려 역시 北으로 隋, 南으로는 신라와 갈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백제와도 대립한다면 심각한 외교적 고립에 처하게 된다. 이렇듯 두 나라 사이에 현실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607년 이후 백제와 고구려의 동맹이 성립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백제로서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隋에는 과거부터 고구려와 적대적임을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고구려와의 협력을 노출시킬 수 없었다. 이는 곧 隋에 대한 적대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제는 隋를 기만하면서 고구려와 은밀히 협력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점에서 당시 백제의 외교는 隋와 고구려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외교나 균형외교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隋를 기만하면서 고구려와 은밀히 통화하는 二重的 行態의 외교전술로 정의할 수 있고, 그 용어 역시 兩端策이나 兩面外交보다는 二重外交로 지칭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 KCI등재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에서의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 감별 인자

        김석주,이유진,김의중,정도언,Kim, Seog-Ju,Lee, Yu-Jin,Kim, Eui-Joong,Jeong, Do-Un 대한수면의학회 2004 수면·정신생리 Vol.11 No.1

        배 경 : 불면증은 다양한 수면장애에서 흔하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에서 불면증 이외의 다른 여러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나,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 환자가 불면증을 주된 수면 문제로 호소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은 특수한 진단적/치료적 접근을 필요로 하므로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에서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의 감별은 중요하다. 본 연구는 불면증을 주소로 하는 환자에서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의 유병율과 그 감별인자를 조사하려고 하였다. 방법:1996년 6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불면을 주소로 수면다원검사실에 의뢰된 470명의 환자(남자 235명, 여자 235명, 평균 연령 $53.6{\pm}12.4$세) 환자들의 의무기록과 수면다원검사 결과를 분석하였다. 우선 불면증 환자에서의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유병율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한 불면증 군과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하지 않은 불면증군의 인구학적/임상적 특성을 비교하였다. 마지막으로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한 불면증 군 내에서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의 정도인 호흡장애지수와 인구학적/임상적 특성의 상관관계를 보았다. 결 과:총 연구대상 470명 중 125명(26.6%)에서 야간 수면다원검사로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을 진단하였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한 불면증 군은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하지 않은 불면증 군에 비해 유의하게 연령이 높고($58.4{\pm}12.3\;years$ vs $51.8{\pm}11.2\;years$, p<0.01), 신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BMI)가 높았다($23.4{\pm}3.3\;kg/m^2$ vs $22.5{\pm}3.1\;kg/m^2$, p=0.44). 또한,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한 군에서 코골이가 더 흔하게 관찰되었으며(96.0% vs 63.5%, p<0.01) 남성의 비율이 높았으며(64.0% vs 44.9%, pp<0.01) 고혈압이 있는 경우(20.0% vs 9.3%, pp<0.01)가 많았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한 군내에서는 연령과 호흡장애지수가 유의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p=0.01). 결 론:불면을 주소로 내원한 환자들의 상당수가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가지고 있었다. 불면을 주소로 내원한 환자들에서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의 감별인자로 코골이, 고령, 남성, 고혈압, 그리고 비만을 찾을 수 있었다. 위 감별인자를 가진 환자들에서 야간 수면다원검사를 포함한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에 대한 진단적 접근이 필요하다. Objectiv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prevalence rate of OSA in subjects whose main sleep complaint is insomnia and to find differential factors of OSA in these insomniac subjects. Method: We reviewed the medical records and polysomnographic findings of patients referred to the Sleep Laboratory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from January 1996 to December 2002. Four-hundred and seventy subjects complained of insomnia as their main sleep problem (235 males and 235 females, mean age $53.6{\pm}12.4\;years$). First, we investigated the prevalence rate of OSA in these insomniac patients. Second, we compared the clinical and demographic characteristics of the OSA-associated group with those of the non-associated group. Third, we examined whether the degree or presence of differential factors within the OSA group correlate with severity of OSA, as determined by the respiratory disturbance index (RDI). Results: Among 470 insomniac subjects, 125 subjects (26.6%) were diagnosed as OSA by nocturnal polysomnography. OSA-associated subjects were significantly older ($58.4{\pm}12.3\;years$ vs. $51.8{\pm}11.2\;years$, p<0.01), and had significantly higher body mass index (BMI) ($23.4{\pm}3.3\;kg/m^2$ vs. $22.5{\pm}3.1\;kg/m^2$, p=0.44) than non-associated subjects. The OSA-associated group had more subjects with male gender (64.0% vs. 44.9%, p<0.01), hypertension (20.0% vs. 9.3%, p<0.01) or snoring (96.0% vs. 63.5%, p<0.01). Within the OSA-associated group, age had a significant positive correlation with RDI (p=0.01). Conclusion: We found that a considerable portion of patients complaining of insomnia as their main sleep problem were diagnosed as OSA. Snoring, old age, male gender, obesity, and comorbid hypertension were found to be differential factors of OSA in insomniac patients. We suggest that diagnostic efforts including nocturnal polysomnography are needed for insomniac patients with any of the above risk factors of OSA.

      • 修己와 治人 개념을 통한 철학교육적 인간상 탐구

        박정원 한국철학교육학회 2008 철학ㆍ윤리 교육 연구 Vol.24 No.40

        본 연구의 목적은 儒學교육의 理想인 修己와 治人의 개념을 통해 철학교육적 인간상을 탐구하는 것이다. 儒家의 전통적 견해에 의하면 수기는 치인에 ‘앞서는’ 것이며 수기가 치인에 비하여 언제나 강조된다. 栗谷과 茶山은 이러한 전통적 견해에 대하여 근본적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수기의 내용은 치인과 ‘사실상 분리된’ 것이 될 수 없으며 치인에 의하여 수기의 의미가 규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비하여, 程朱學의 견해에서 보면, 율곡과 다산의 견해는 수기와 치인의 ‘분리’라는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은 점에서는 옳았지만 그 과정에서 수기가 치인에 비하여 ‘논리적으로 앞서는’ 것을 암암리에 묵살시킴으로써 수기가 치인의 ‘인식론적 기준’이 된다는 점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였다. 수기와 치인의 관계에 대한 이 두 견해의 대립-수기와 치인 중에서 어느 것을 강조하는가의 문제-은 삶과 교육, 특히 철학교육의 과정을 염두에 둘 때에는 긴장과 대립을 그 속에 품게 된다. 치인을 강조하는 견해에서는 교육의 실질적인 효과나 구체적인 삶의 사태에서 벌어지는 문제해결의 측면이 부각되는 반면, 수기를 강조하는 견해에서는 심성함양과 자기수양과정에서 발견되는 형이상학적, 종교적 측면을 온전히 지켜내려는 측면이 부각된다. 철학교육의 담지자인 교사는 삶과 교육의 현장에서 이 두 가지의 대립과 긴장을 항상 자각하며 그 둘의 ‘합일’을 구현해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