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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이을호의 사상의학 연구

        최대우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0 호남문화연구 Vol.0 No.47

        이 논문의 목적은 이을호의 사상의학 연구 성과를 분석하여 그 의미를 밝히고, 그것이 사상의학 이론 탐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조망해 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이을호의 사상의학 연구 배경과 저술을 고찰한 다음, 그의 연구 내용과 방향을 이전의 연구 경향과 대비되는 관점에서 검토했다. 이전의 연구는 대체로 이제마의 저서에 나타난 "사상"(四象)과 "역"(易) 개념에 주목하고, 사상의학 이론은 역의 변화 원리 내지는 변형된 오행원리에 근거해서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해명하려고 했다. 반면 이을호는 사상의학을 이제마의 독창적인 관점에서 사원구조로 재구성했음을 검증하고, 이러한 재구성은 독창적이기는 하지만 유학사상을 원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러한 해명은 사상의학 이론의 탐구는 사변적 논의를 탈피하여 실증적 탐구 방법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을호의 실증적 연구는 사상의학 이론에 대한 새로운 해명이며, 그것은 질병 치료의 새로운 방법과 유가 경전의 현대적 가치를 찾는 새로운 해석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本論文的目的,是在分析李乙浩四象醫學硏究成果的基礎上,闡明內涵,展望其四象醫學理論硏究的貢獻. 爲此,筆者先考察了李乙浩四象醫學硏究的背景和著述,然后在與過去的硏究傾向的對比中,探討了他的四象醫學硏究內容和方向. 過去,學術界的硏究主要着眼于李濟馬著作中的"四象"、"易"槪念,根据易的變化原理乃至變形的五行原理,闡釋其四象醫學理論. 與此相反,李乙浩驗證了四象醫學是李 濟馬獨創性地以四元結構重新構建的,尤其是闡明這樣的重構雖具有獨創性,但乃是對儒學思想的援用. 這樣的闡明正式宣告四象醫學硏究應從思辨議論眞正轉變爲實證硏究方法. 在這個意義上,李乙浩的實證硏究方法作爲對四象醫學硏究的新的解釋,无疑也是對治療疾病的新的方法和尋求儒家經典的現代价値的新的解釋.

      • KCI등재

        중국 사상사 연구방법에 대한 소고

        이연승 ( Lee Yeon Seung ) 영남중국어문학회 2003 중국어문학 Vol.0 No.42

        中國思想史的硏究方法必定與硏究的範疇, 其目標和硏究的資料密切連繫, 甚至於互相分不開, 不過, 爲了敍述方便起見, 本文把타分別討論. 大槪到了60年代末70年代左右, `中國哲學史`的名稱已經不再陌生了, 可是到如今對中國哲學(史)有些學者感到不太敵黨, 而持績討論或採取別的名稱: 認爲 `思想`比`哲學`外延比較廣, 而且`思想史`比`哲學史`比較合適描述中國傳統學問世界. 已往大部分的中國思想史著作都按照時間的順序排列出思想的精英和經典性的文獻. 不過, 這些內容無法代表所有中國人或普遍的中國人的思想世界, 我們應該更關心而硏究 `一般`思想世界. 所謂 `一般`竝不是與大傳統相反的小傳統, 也不是`民間思想`或`民衆思想`, 而是最普遍的, 也能 被有一定知識的人所接受, 掌握和使用的思想. 由於考古發現的文獻資料的刺擊和思想史理論視野的轉變,思想史硏究已經從 `注意中心`都`注意邊緣`, 從 `注意經典`到 `注意一般`, 從`注意精英思想`到`注意生活觀念`. 關於思想史的連續性問題,我們借用年鑒學派的 `長時段`和 `結構分析`來思考, 而擴大硏究的主題和資料. 運用歷史記憶的發掘和對思想資源的重新詮釋之觀點, 是一個思想史的硏究觀點. 同時也是個硏究方法. 筆者認爲中國思想史硏究人, 不要太拘泥於方法或方法論, 而應該更關心多方面的硏究觀點, 而且擴大所關的心範圍. 如此, 自然會增加新的硏究主題.

      • KCI등재

        노장사상의 대극(對極) 융화 문제에 대한 동아시아 불교의 두 가지 수용 방법- 언어상대성의 자각 혹은 언설불가한 일원적 실체의 상정 -

        박수현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23 동아시아불교문화 Vol.- No.58

        노장사상은 대극(對極)의 융합, 개별물들의 대립극복, 그리고 모든 존재들을 포용하는 진리관이라는 측면에서 불교와 여러 인도 사상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이런 세계관은 크게 보아 ‘언어의 상대성의 자각을 통한 대극의 해소’와 ‘언어를 초월한 일원적 실체에 대한 자각’라는 상이한 두 가지 이론적 기반을 가진다. 전자는 불교의 무주처(無住處)적인 진리관에 해당하며, 후자는 현실을 초월한 일자(一者)를 강조한 베단타 등의 실체론적 진리관에 해당한다. 본래 노자 와 장자 의 텍스트 자체는 전자와 후자의 두 측면으로 모두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왕필(王弼)의 위진현학적 노장사상 해석이 주류를 이루면서 노장사상은 전자의 관점보다는 후자의 관점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 결과 불교와 노장사상과의 사상적 유사성은 실제보다 과소평가되기도 했으며, 격의불교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정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반대로 불교 내부에도 진리를 실체론적으로 간주하는 흐름이 항상 존재하였다. 그런 경향은 공(空)을 초월적인 실체로 간주하던 격의불교뿐만 아니라, 중론 의 팔불(八不)을 초월적·일원론적 실체를 묘사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나, 화엄의 법계원융을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언설불가한 실체’를 설명하는 관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무주처적인 불교적 진리관과는 맞지 않으며, 불교의 본의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동아시아 사상의 역사를 고려해보면, 노장이나 불교라는 이름 자체는 다만 명칭에 불과할 수도 있고, 오히려 이런 두 가지 사상적 견해의 대립이 동아시아 사상의 진정한 역사일 수도 있다. 불교와 노장사상을 불문하고 ‘언어의 상대성의 자각을 통한 대극의 해소’의 입장이 실체론적 진리에 대한 고착마저 버려야 함을 주장하는 수승한 형태의 입각점이며, 이것은 동아시아 사상 전반에 자리 잡은 면면한 흐름이다. Laozi and Zhuangzi thought has many aspects similar to Buddhism and various Indian thoughts in terms of the convergence of opposites, overcoming the confrontation of individual objects, and the view of truth that embraces all beings. This view of the world has two different theoretical foundations: 'convergence of opposites through awareness of the relativity of language' and 'awareness of a unitary entity that transcends language'. The former corresponds to the ‘No permanent abode’ view of truth in Buddhism, and the latter corresponds to the substantialist view of truth such as Vedānta that emphasizes The one(一者) transcending phenomena. Originally, the text itself of Laozi and Zhuangzi can be interpreted both in terms of the former and the latter. However, as Wangbi's Wei-Jin Dark Learninginterpretation of Laozi and Zhuangzi thought became the mainstream, Laozi and Zhuangzi thought has been regarded as having the latter point of view rather than the former point of view. As a result, the ideological similarity between Buddhism and Laozi and Zhuangzi thought was underestimated than it actually was, and it was also regarded negatively as seen in Ge-I-Buddhism. On the contrary, even within Buddhism, there has always been a trend that regards Buddhist truth as substantialism. Such a tendency was not only in Ge-I-Buddhism, which regarded emptiness) as a transcendent entity, but also in the viewpoint of viewing the Eight negations of Mūlamadhyamakakārikā as a transcendent, monistic entity, or the viewpoint of explaining Perfect interpenetration of the dharma realm in Huayan buddhism as 'the unspeakable entity that is the foundation of everything'. However, this tendency does not fit with the Buddhist view of truth, which means ‘No permanent abode’, and can be said to distort the original intention of Buddhism. Considering the history of these East Asian ideas, the names of Lao-tzu and Buddhism may be merely superficial, and rather,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se two ideological views may be the true history of East Asian thought.Regardless of Buddhism and Laozi and Zhuangzi's Thought, the position of 'convergence of opposites through awareness of the relativity of language' is a standing point of a superior form that insists that even adherence to substantial truth be abandoned, and this is a consistent trend throughout East Asian thought.

      • KCI등재

        사상사와 지식의 유통 측면에서 살펴본 탄허 택성의 사상

        박성일 한국불교학회 2024 韓國佛敎學 Vol.109 No.-

        본고는 근현대 한반도의 지식 유통을 기반으로 한국 근현대 사상사에서 탄허의 사상의 위치를 비정(比定)하고자 한다. 특히 탄허의 생애를 청년기와 장년기로 나누어 그의 사상적 성격을 검토하였다. 우선 청년기의 탄허와 시대가 맞닿은 최남선, 이광수의 입론이 존재한 1920년대와 일본불교의 적극적 포교 및 심전(心田) 운동 등이 전개된 1930년대를 간략히 살핀 후 탄허 사상의 의미를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자주적으로 정신문화를 지켜내고자 한 탄허의 사상적 경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발표된 탄허 스님의 글들에 대하여, 현대의 한국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인 박종홍의 사상과 비교‧대조하였다. 탄허의 사상은 불교‧유교‧도교 삼교를 아우르지만 불교를 중심으로, 세계철학을 아우르지만 한국 중심으로라는 ‘보편과 특수’ 모두를 고려한 사상적 경향성을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한편 특정 사상가의 생존 당시에 유통되지 않았던 지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일종의 ‘보충적 읽기’의 방식으로 특정 사상가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본고는 제안하였다. 비록 도교의 종말론 관련 문헌이 한반도에서 유통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더라도, 현재의 시각에서 ‘해석적’으로 접근하여 탄허 사상의 이해를 심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상사와 지식의 유통 측면’, ‘지식의 비(非)유통 측면’을 모두 고려해 나가며, ‘불교사상’의 견지를 넘어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위치에서 탄허를 비정하고자 노력한다면, 향후 그의 사상적 특질과 고유성은 더욱 부각될 것이라 생각된다. This paper aims to position the stance of Tanheo’s thoughts in the intellectual history of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 based on the circulation of knowledge in the Korean Peninsula. Particularly, it examines his ideological characteristics by dividing his life into youth and middle age. First, this paper briefly examines the period of the 1920s during which Tanheo’s youth intersected with figures like Choi Namseon and Lee Kwangsu as well as the 1930s marked by active Japanese Buddhist proselytization and the Simjeon Movement. It confirms that the significance of Tanheo’s thoughts during this time identifies Tanheo’s ideological inclination toward preserving the spiritual culture of Korean Peninsula. Furthermore, it compares and contrasts the writings of Tanheo published after the Korean War with the thoughts of Park Jonghong, one of the representatives of contemporary Korean philosophy. Tanheo’s thoughts encompasses Buddhism, Confucianism, and Taoism, with Buddhism at its core, embracing world philosophy while centered on Korea. This indicates that his philosophical orientation considers both universality and particularity. This paper proposes a method of “supplementary reading,” suggesting that even if certain knowledge was not circulated during a certain philosopher’s lifetime, we can approach his or her thoughts using this method. Although documents related to the eschatology of Taoism seem not to have circulated on the Korean Peninsula, an interpretative approach from a contemporary perspective can deepen the understanding of Tanheo’s thoughts. By considering both “intellectual history and circulation of knowledge” and “non-circulation of knowledge,” this paper endeavors to position Tanheo’s thoughts not only in the context of Buddhist thoughts but beyond, within the realm of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intellectual history. Through these efforts, the distinctive philosophical characteristics and uniqueness of Tanheo are expected to become more promin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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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중국의 경학사조와 강유위, 장병린의 정치사상

        조성환(Jo Sung-Hwan)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9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8 No.2

        본 연구는 근대 중국의 대표적인 경학가(經學家)이자 정치사상가인 강유위(康有爲)와 장병린(章炳麟)의 정치사상을 이들의 경학사상과 연관하여 분석한다. 경학(經學)은 중국 사상사의 중요한 특성을 이루며 후한(後漢) 이래 중국의 경학은 금문경학(今文經學)과 고문경학(古文經學)으로 분파하게 된다. 금문과 고문간의 경학적 논쟁과 관학적 위상의 경쟁은 이천년 중국 학술사적 논쟁과 정치적 선택을 분화시켰고 근대중국에서도 이 경쟁은 치열했다. 1890년대 말 변법자강운동은 강유위(康有爲)가 재활(再活)시킨 금문경학의 개혁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한편, 20세기 초 혁명파의 배만(排滿)혁명이론은 고문ㆍ한학(漢學)의 대가 장병린의 민족주의사상으로부터 연원했다. 즉 근대경학사상은 근대중국의 개혁 및 혁명운동에 사상적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안으로 사회ㆍ경제적 질서의 쇠퇴, 밖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의해 역사의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근대 중국에 전통 경학의 근대적 해석을 통해 현실 역사의 위기 극복을 위한 사상적 근거를 마련하려했다는 것이다. 강유위와 장병린은 서로 다른 경학적, 정치적 입장을 지녔으나 이들의 사유와 실천은 지식사회학적 패턴은 유사성을 지녔다. 즉 강유위나 장병린은 당대의 정치사회적 문제의식을 기존질서의 변화(개량, 혁명)에 두었고 이를 정당화시키는 사상적 근거는 전통경학을 재해석하여 구성하였다. 이들은 정치사상이 근대적 문제의식이었다는 측면에서 근대적 정치사상의 선구였다. 그러나 이들이 표현하고 구성한 담론체계는 전통경학의 재해석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이들은 전통사상의 마지막 세대에 속하는 것이다. 강유위와 장병린은 개량과 혁명의 정치적 선택은 달랐지만 지식사회학적으로 보아 양인은 공히 경학적 정치사상가로 분류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양인의 경학적 정치사상은 중국근대정치사상의 대단히 중요한 지식사회학적 특성을 이룬다. This study examines political thoughts of Kang You-wei and Zhang Bing-lin in relations to the Text scholarship, Jingxue. The Text scholarship, which was divided into the New(jinwen) and the Old(guwen) from the period of West Han dynasty, shows a special quality of chinese philosophy and political thoughts. In the long tradition of chinese intellectual history, it offers the orthodoxy to philosophy as well as the authority to politics(statecraft, jingshi). Therefore, intellectual debates and political competitions between the two intellectual groups have continued to exist until the modern era. In modern China, Kang You-wei revived the New Text scholarship for the purpose of political reform and constitutionalism, while Zhang Bing-lin reinterpreted the Old Text scholarship in order to mobilize the chinese national revolution against the Qing dynasty. They were not only disputing within intellectual tradition of the Text scholarship, but also competing in political actions between political reforms and national revolution. Despite their intellectual and political rivalries, they belonged to the last generation of chinese classical thinkers who used traditional Text scholarship in building modem political thoughts of consitutional reform or national revolution. Their ideas displayed transitional thoughts, which was constituted in dual levels of intellectual and political worlds.

      • KCI등재

        이케다 다이사쿠의 문화사상 : 인간과 사회의 내재적 변혁

        미우라 히로키(Hiroki Miura) 동양사회사상학회 2020 사회사상과 문화 Vol.23 No.3

        이 논문은 문화를 키워드로 1950년대 이후 전개된 이케다의 사상을 문헌적 해석 차원에서 살피며, 역사적, 포괄적 관점에서 윤곽과 특징을 논의한다. 관련된 언급을 1950-1970년대의 문화운동사상, 1970-1980년대의창조적 인간 사상, 1980년대 이후 전개된 평화의 문화 사상과 같이 연대별로 구분하면서 구체적 내용을 살펴본다. 도출된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케다 문화사상이란 첫째, 형식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정신적작용·활동의 다차원적 전개에 관한 것이다. 둘째, 구체적 차원에서는 열린 종교관에서 표출된 것으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다원적 공생을 특히추구하고 있다. 셋째, 본질적 차원에서는 인간과 사회의 내재적인 변혁· 소생에 관한 것이다. 종교지도자인 이케다의 이와 같은 사상은 우선 표면적 차원에서는 문화에 관한 일반적 학설이나 이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거나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주목할 만한 것은두 번째와 세 번째의 심층적인 특징이며, 그는 문화사상을 통해 인류의공존·공생·공진화를 구현해 가는 장기적인 패러다임이자 점진적이고 내재적인 사회변혁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현실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삶의 질, 보다 큰 자아의 구현을 위한 개개인의정신적 노력이 한걸음 한걸음씩 전파되고 본인과 주변 사람들 나아가사회를 임파워먼트해 가는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특히인간 소외나 차별 의식, 배타주의 등의 문제가 만연된 현대 사회의 맥락에서 시대적 변혁을 위한 구심적 가치관, 목표, 주체, 원리 등에 관해서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과제나 쟁점도 내포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광범위한 내용과 함께 인간관, 사회관, 세계관과 같은 기타 영역과의 넓은 연관성을 담고 있는 만큼, 세부적 의의나과제, 사상의 보다 실질적 특징이나 의의에 대해서는 임파워먼트론, 리질리언스론, 세계시민론 등 현대적 이론이나 개념의 맥락에서 심화시키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개인의 내면적 변화가 어떻게 사회적 변화로 이어지는지, 그러한 변화의 기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등의 문제에 관한연구가 중요하며, 이케다는 이에 대해 종교, 실천, 학문 등의 융합적 노력을 위한 기회나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discusses buddhist peace activist Daisaku Ikeda s thought on culture from a historical and comprehensive perspective. Through a detailed examination of his major works since the 1950s, this paper highlights following features. First, his cultural thought deeply concerns with the multidimensional and interactive process between spiritual cultivation and various external effects of cultural assets or institutions. In this sense, his thought is similar to the conventional view or theory of culture in anthropology and sociology. Second, based on the multidimensional understanding, he puts a special importance on the in-depth role of culture as seeking for human dignity and plural co-existence through a development of a universal view on ‘the religious.’ Cultural activities are understood as the efforts for these normative goals of humanity. Third, his thought is about the intrinsic transformation of individuals and societies and the restoration of humanism. Ikeda emphasizes that one’s inner transformation and fundamental pursue for the larger-self can bring about chain-reactions of others and society in a step by step manner. His cultural thought provides important wisdom and insight to the contemporary society where human alienation, discrimination, and exclusivism continues to be prevailed. However, as his thought contains a wide range of contents, it will be necessary and desirable to develop it along with relevant academic theories and concepts such as human empowerment, social resilience, value creation through social innovation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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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익환의 평화·통일 사상 담론과 성찰

        이유나(You-Na Lee) 한신대학교 신학사상연구소 2020 신학사상 Vol.0 No.188

        본 논문은 문익환의 평화 사상과 통일 사상의 변화와 특징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문익환의 평화 사상과 통일 사상에서 얻을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다. 문익환의 평화 사상은 생명 평화, 민주 평화, 통일 평화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문익환의 생명 평화로서 문익환의 ‘생명 사랑’ 의식은 인간을 넘어 자연에까지 확대, 발전하였다. 그는 인간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곧 평화라고 인식했다. 또한 문익환의 평화 사상은 민주 평화로서, 단순히 전쟁을 반대하여 남북 간의 평화적 통일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국민들의 생존권과 인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인권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덧붙여 문익환의 평화 사상은 통일 평화로서, 통일 평화는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는 민족의 통일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특히 민족 통일을 위해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추구해 나갈 뿐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통해,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다음으로 문익환의 통일사상은 첫째, ‘통일은 자주하는 민족의 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민족 자주적 통일을 지향하였다. 둘째, 민주 통일병행론 입장을 견지하였다. 셋째는 통일은 좌나 우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사고하였다. 넷째는 통일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까지 기여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1980년대 민통련 의장이었던 문익환은 민중 주도의 통일을 지향하였다. 그리고 통일 이념에 대해 문익환은 자유와 평등이 조화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절충하는 입장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통일 방법에 대해서 문익환은 연방제 3단계 통일 방안을 제시하여 남북의 공존과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였다. 문익환은 방북 이후 통일에 대한 사고가 수정되었다. 방북 이전에는 통일 운동의 주체가 ‘민’이었으나, 방북 이후에는 ‘민’뿐만 아니라 ‘관’도 함께 통일 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는 1991년 범민련을 결성하여 관뿐만이 아니라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민이 통일 운동을 함께 주도해 나가고자 했다. 그런데 그는 남북한 당국에 대해 중립성을 잃고 북한에 경도된 범민련의 한계 상황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하에 그는 통일을 위한 점진적 준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새로운 통일 운동체의 설립을 제안하였다. This paper examines the changes and characteristics of Moon Ik-Hwan’s understanding of peace and unification. Moon Ik-Hwan’s peace ideology and unification ideology are as follows. Moon’s peace ideology can be divided into life peace, democratic peace, and unification peace. First, Moon’s life peace, his “life love” consciousness, expanded the notion of love beyond humans to nature. He recognized that the coexistence of man and man, nature and man is peace. Moon’s peace ideology is democratic peace, which aims not only to pursue peaceful reunification between the two Koreas by opposing war, but also to solve the problems of people’s right to life and human rights. Based on this, he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human rights and democratization movements. Included in Moon’s peace thought was unification peace, and unification peace was possible through the unification of nations. In particular, he recognized that not only should war be prevented and peace be should pursued for national unification, but that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should contribute to peace in Asia and the world. Next, Moon Ik-Hwan’s idea of unification focused on national independence, that ‘unification should be made by the power of a nation that is frequented.’ Second, he maintained the position of democracy·unification parallelism. Third, unification was thought to be in a “neutral” position that is not biased towards the left or right. Fourth, he emphasized that unification should contribute not only to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but also to peace in Northeast Asia and the world. In the 1980s, Moon Ik-Hwan, chairman of Mintonglyeon (Democratic Unification People’s Movement Union), pursued the unification of the people. Regarding the unification ideology, Moon was in a position to compromise capitalism and socialism, which harmonized freedom and equality. On the basis of this, he proposed the third stage of the unification plan to pursue coexistence and peaceful 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Moon Ik-Hwan changed his thinking about unification after his visit to North Korea. Before this visit, the subject of the unification movement was ‘the people’, but after the visit he began to call for ‘the government’ also to unify. Furthermore, Moon Ik-Hwan hoped that the overseas Koreans would work together as independent organizations to propel the unification movement. However, he became aware of the limitations of the Beomminryeon (the Pan-Korean Alliance for Unification, BMR) that had been taken over by North Korea. Recognizing this, he proposed the establishment of a new unification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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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사상과 조선후기 사상사

        하영휘 수선사학회 2017 史林 Vol.0 No.59

        受用中華文化的韓國歷代王朝,逐漸形成了一種獨特的文化,而積極受用中華文化是從麗末鮮初開始的。以鄭夢周爲代表的文人們都將中華文化看作是理想中的文化,他們選明棄元,甚至連朝鮮的建國都大體上模倣了明的體制。丙子胡亂(1636)時期,朝鮮投降淸朝,淸朝代替明朝掌控中原以后,朝鮮士大夫漸具中華思想。可以從兩個方面來理解中華思想。卽,在夷狄掌握中原之后,其一,中華文化不復存在;其二,復興消失的中華文化。春秋大義、衛正斥邪、小中華等等都是要保衛中華的中華思想之一。 確立中華思想的人是宋時烈(1607~1689)。他認爲崇周退夷狄的春秋大義是万代不變之法則。宋時烈的春秋大義思想受到宋朱熹的影響,他稱贊“朱子孔子后一”,這就意味着他信奉的是朱熹的春秋大義思想。宋時烈的中華思想一直持續到十九世紀末,其代表人物是柳重敎(1832~1893)。他講到“宋子朱子后一人”,稱贊宋時烈,幷以宋時烈的春秋大義思想來對抗帝國主義的侵犯。從宋時烈到柳重敎所展開的中華思想是朝鮮后期的代表性思想之一,對朝鮮后期的政治、社會、文化産生深遠影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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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대(古代) 선도(仙道)사상 고찰

        양태호 한국초등도덕교육학회 2016 초등도덕교육 Vol.0 No.53

        삼국의 건국설화와 고구려의 조의선인(?衣仙人)제도 그리고 신라의 화랑국선(花郞國仙)제도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古代) 선도(仙道)사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삼국의 건국설화를 고찰한 결과 그 중심사상이 선도사상 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 고대 선도사상은 고유사상인 신도(神道)사상을 부계(父系)로 하고 외래 사상인 중국 선도사상을 모계(母系)로 하여 탄생한 최초의 한국사상이다. 둘째, 한국 고대 선도사상은 전통사상을 바탕으로 외래의 사상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형성된 사상이기 때문에 단순히 선도사상의 성격만을 갖지는 않는다. 비록 사상의 겉모습이 선도의 형태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유교와 불교를 융섭(融攝)하여 일체화한 선도사상인 것이다. 즉 한국 고대 선도사상의 세계는 도가(道家)의 소요유(逍遙遊)하는 경계 속에서 밝혀진 자연과 불가(佛家)의 이상적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유가(儒家)적 윤리 가운데서 일체화된 인간 주체적 자각을 통해 밝혀진 세계이다. 따라서 그 세계는 인간 사회는 물론 사물과 자연 그리고 신이 인격성 안에서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세계인 것이다. 셋째, 한국 고대 선도사상은 전통사상인 밝사상을 바탕으로 형성된 사상이기 때문에 인간 주체적 자각을 통하여 밝혀진 사회가 중심이다. 따라서 개체가 아닌 우리 또는 국가, 더 나아가서 세계에 그 중심이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고대 선도사상은 덕화(德化)정치 그리고 국가, 사회에 대한 봉사정신의 발로라는 특징을 갖는 것이다. 本文以三國建國說話,高句麗?衣仙人制度,新羅花郎國仙制度爲中心,探究了韓國古代仙道思想。得出以下結論。 第一,三國的建國說話的中心思想是仙道思想。韓國的古代仙道思想是作爲父系的固有神道思想與作爲母系的中國仙道思想二者融合之後所誕生的最初的韓國思想。 第二,因爲韓國的古代仙道思想以傳統思想爲基礎融合了外來思想,所以韓國仙道思想幷不與一般仙道思想相同。雖然有仙道思想的外部特征,但是從內容上看韓國仙道思想是與儒敎和佛敎一體化後的思想。所以,韓國仙道思想的世界是道家的逍遙遊的境界中發現佛家的佛國土理想世界,儒家倫理中一體化的自覺發現的世界。這個仙道世界是人與事物與自然與神全部融爲一體後的美好世界。 第三,因爲韓國的古代仙道思想是以傳統思想發掘思想(밝사상)爲基礎形成的思想,所以通過人自主的自覺而形成的社會是中心。所以不是個體而是共同體或者國家,進一步說是世界,幷以此爲中心。正因此,韓國古代仙道思想是德政與對社會和國家的奉獻精神的外表特征。

      • KCI등재후보

        한국사상(철학) : 율곡이 수용,전개한 공자의 효사상(상)

        김익수 ( Ik Soo Kim ) 한국사상문화학회 2006 韓國思想과 文化 Vol.33 No.-

        공자(孔子 B.C.551-479)는 유교(儒敎)의 창시자이며 육례(六禮)를 연구하였고 仁義道德을 매우 강조하였다. 공자의 중심사상은 인(仁)이며 교육과 실천철학의 중핵(中核)인 효사상(孝思想)을 전개하였다. 한국도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유교가 들어오면서 경전(經典)을 통해 전수되어 본래의 실천적인 고유도덕사상의 기반위에 이론을 갖춘 ``한국적 효사상``으로 재정립(再定立)되어 전체 한국 사상사에서 그 위상이 아주 높다. 그 공능은 윤리 교육과 철학의 기저(基底)를 이루어 왔고 인류평화사상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동방문화(東方文化)가 서방문화(西方文化)보다 우수성은 효사상(孝思想)과 효문화(孝文化)에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인류의 스승인 孔子는 말하기를, "내 뜻은 『춘추(春秋)』에 있고 행실은 『효경(孝經)』에 있다. (吾之在春秋 行在孝經)"고 하였다. 오늘날 정신적 문화의 병폐는 치유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청소년 교육문제는 심각한 기로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은 서구사상과 문화의 비판 없는 수용과 경제적 가치에 치중해 온 결과이다. 인류문명의 새 기운을 열고 인류역사에 일대 전환의 길은 도덕교육과 효사상과 효문화 재정립에 관건이 있음을 본고에서 천명하고자 한다. 율곡(栗谷, 성명은 李珥 1536~1584)은 조선조 중기에 국정(國政)이 문란한 때에 국정개혁책(國政改革策)으로 그의 특유의 문화철학(文化哲學)을 실행하여 공자의 효사상을 한국적으로 재정립하였다. 그 수용·전개양상을 논고하여 새 문화 창조의 기틀을 삼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의 의도이다. 21세기는 문화에 관건이 있으니 오늘날 시대에 맞게 재정립해야 할 필연성은 절대적이므로 본 연구의 가치는 현실적으로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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