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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주의의 신화 해석 : 문화적 정치신학의 기원

        김진(Kim Jin) 사회와 철학 연구회 2009 사회와 철학 Vol.0 No.18

        계몽주의가 이성과 철학의 시대라고 한다면 낭만주의는 감성과 신화의 시대이다. 낭만주의 사상가들이 추구한 신화는 고대 그리스 문화와 중세 유럽의 기독교국가였다. 계몽주의는 보편적인 반유대주의에 일상화되어 있었던 근대 유럽인들에게 변화를 촉구하였으나, 칸트와 같은 계몽주의의 대변자조차도 반유대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낭만주의는 로마-가톨릭 교회와 중세문학의 부활을 도모하면서 독일 민족주의의 출현을 자극하였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모두 당시 독일의 유대인들에게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독일이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았을 때, 독일의 낭만주의는 민족주의에 기초한 정치적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나가고 있었다. 피히테와 슐레겔과 노발리스가 독일정신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의 신화정신이나 중세 기독교의 국가에서 발굴하려고 시도하면서, 낭만주의자들의 신화적 지향성이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칸트가 제기한 정치적 최고선의 이상 요청은 낭만주의자들에 의한 문화적 세계정부의 현실 요청으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계몽주의의 이성보편주의에도 불구하고 반유대주의가 일상화된 것처럼, 보편의지의 국가 실현이라는 낭만주의적 기획에서도 전체주의와 반유대주의의 기운은 여전히 생동적이다. 피히테의 보호무역국가, 노발리스의 중세유럽국가, 슐레겔의 세계단일 국가 개념은 정치적 삶에 대한 유기체 이론을 전제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낭만주의자들에게 국가는 “거룩한 신비”로 인식되었다. 낭만주의적 힘은 바로 공통의 언어, 의사소통, 가치를 기반으로 한 이 거룩한 신비의 파괴력에 있으며, 이로써 파시즘은 ‘낭만주의의 후예’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Wenn die Aufkl?rung die Periode der Vernunft und Philosophie sei, dann k?nne die Romantik als die der Sinnlichkeit und des Mythos bezeichnet werden. Die Mythen der Romantiker sind die Kultur des alten Griechenlandes und die Gedanke des europ?ischen Staats im Mittelalter. F?r neuzeitlichen Europ?er war der Antisemitismus sehr allgemein. Diese Atmosph?re wurde durch die Aufkl?rung langsam ver?ndert. Kant als Repr?sentant der Aufkl?rung kann trotzdem nicht vollkommen frei von der damaligen antisemitischen Haltung sein. Die Romantik reizt an die Entstehung des Deutschen Nationalismus durch die Herausforderung auf die Restauration der r?misch-katholischen Kirche und die Auferstehung der Mittelalterichen Literatur. Aber die damaligen Deutschen Juden erfuhren keinen Unterschied zwischen den beiden, Aufkl?rung und Romantik. Als Napoleon in Deutschland eindringen, erschaffen die Deutschen Romantiker einen neuen Mythos der politischen Romantik, die auf dem Nationalismus basiert. Ficht, Novalis, und Schlegel versuchen den Ursprung der Deutschheit in den mythischen Geist alten Griechenlands oder im r?misch-christlichen Staat des Mittelalters zu rekonstruieren, und dadurch wird klar die mythischen Intentionalit?t der Romantiker. Kants Postulat des Ideals des politischen h?chsten Gutes wird durch die Romantiker in das Postulat der Verwirklichung der kulturellen Weltrepublik verwandeln. In diesem romantischen Projekt “Staat-Verwirklichung des universalen Willen” ist die Atmosph?re des Totalit?rismus und Antisemitismus noch sehr tatkr?ftig, wie die Spuren des Antisemitismus im Vernunftuniversalismus gefunden werden. Fichtes Begriff des geschlossenen Handelsstaat, der Begriff des Europa-Staat des Mittelalters bei Novalis, und Schlegels Begriff der Einen Weltrepublik setzt die Organstheorie des geistigen Lebens voraus, deshalb erfahren die Romantiker den Staat als heilige Misterien. Die Kr?fte der Romantik springen aus dieser, der gemeinsamen Sprache, Kommunikation, und Werte beruhenden, zerst?renden Kraft des heiligen Geheimnisses. Das ist der Grund, den Faschismus als ‘Nachfolger der Romantik’ erkannt zu werden.

      • KCI등재

        Immortality in Romanticism : An Exploration of its Origin in Victor Hugo's Plays 빅토르 위고의 낭만주의 희곡에 나타나는 영원성의 근원에 관한 연구

        Kim, Jung-hyo 한국미학회 2003 美學 Vol.35 No.-

        낭만주의 문학의 서장을 연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희곡 『에르나니』(1830)에서 사랑하는 연인, 에르나니와 도나솔은 독약을 마시며 "보다 나은 다음 세상"에서 만나기를 기약한다. 이 두 연인들은 사회의 불공평과 강압적 요소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방해한다고 믿으며 죽음으로 완성시키려는 사상을 보인다. 이러한 낭만주의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사상은 『에르나니』 뿐만 아니라 위고의 또 다른 작품 『루이 블라』(1838)에서도 나타난다. 에르나니와 루이 블라가 사랑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극적 구성은 위고의 낭만주의적 기술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다음 세상"의 이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원성(永遠性)'의 사상은 위고의 등장인물에 국한되지 않고 19세기 낭만주의 비극의 주요 모델이 되었다. 이 글은 빅토르 위고의 낭만주의 비극에 나타나는 '죽음 다음의 세상', 다시 말해, 작품의 중심사상이 되는 영원성이 어디에서 근원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사실 빅토르 위고는 자신의 작품에 나타나는 영원성이라는 사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거의 드러내지 않은 까닭에 그 근원을 분석한다는 것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글은 빅토르 위고의 작품에 나타나는 영원성의 근원이란 주제를 ①빅토르 위고의 개인적인 가족사와 ②19세기 프랑스 사회에 끼쳤던 동양영향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 작가의 사상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그 작가의 내적 환경과 외적 세계에 대해 무시하고 논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낭만주의 선언을 서문에 실었던 희곡 『크롬웰』(1827)은 아버지 레오폴드 위고에게 헌사 하는 작품이었지만, 그는 이듬해에 갑자기 숨을 거뒀다. 1830년에 발표된 『에르나니』를 기점으로 빅토르 위고 개인에게 많은 일들이 생겼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사랑하는 자신의 딸과 아들과 거의 평생을 돌봐주었던 가정부와 사별하면서 위고는 삶과 죽음의 존재란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빅토르 위고는 『에르나니』를 발표한 뒤, 자신의 가슴 속에서 가톨릭의 믿음이 없어졌음을 고백했다. 특히 장녀 레오폴딘의 익사(溺死)사고는 '위고의 첫 번째 정신적 죽음'이라고 할 만큼 충격적이었으며 자신의 삶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위고는 점차 사후세계와 영혼에 대한 글을 많이 발표하였으며 결국 "죽음에 대한 허무주의"를 '영원성'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즉, 죽음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도 찾기 어렵다는 위고의 사상은 이처럼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였다. 위고의 낭만주의 작품에 등장하는 영원성이란 주제는 사실 기독교적인 차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동양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러한 점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서 위고를 "동양풍에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는 지적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위고는 화가 외젠들라크루와, 고티에 같은 당시 동양에 관심이 높았던 지인들과 많은 접촉을 했다. 위고 자신도 『에르나니』를 발표하기 한해전에 "그 어느 때 보다 동양의 열품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고 피력했다. 위고는 일종의 '코멘스먼트(commencement)'에 비유하며, 죽음을 인생의 끝이면서 또 다른 삶의 시작의로 여겼다. 죽은 뒤 우리의 몸은 땅과, 나무와, 꽃과, 계곡과 산야와 같은 자연계로 다시 회귀한다는 그의 주장은 동양의 윤회사상과 흡사하다. 이러한 사상은 위고의 낭만주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이 자신들을 자연의 일부분이거나 그 자체로 묘사하는 대목과 일치하고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19세기 유럽에 유행처럼 불었던 동양사상의 영향은 위고의 낭만주의 희곡에서 보이는 영원성의 토대를 제공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위고의 모든 작품에서 영원성이란 주제가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희곡, 『에르나니』와 『루이 블라』에는 '죽음 다음의 세상'이란 '영원성'이 중심사상을 이루고 있다. 사랑과 죽음과 삶이라는 단어들이 일체화하거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빅토르 위고의 사상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사랑하던 가족들과의 사별이라는 개인적 경험과 19세기 프랑스에 불었던 동양사상과 그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지인들과의 교류에서 형성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끝으로 방대한 주제와 접근의 산만성으로 인해 영원성의 구체적 개념과 사상, 다른 낭만주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분석이 제외되었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연구대상이며 현대적 의미로서의 영원성, 혹은 반(反)-신고전주의와 빅토르 위고의 영원성에 대한 고찰과 같은 좀더 세부적인 낭만주의 연구를 위해 이 글이 도움이 된다면 위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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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 `읽기`에서의 `낭만주의` 재검토

        이승은 ( Lee Seung-eun ) 국제어문학회 ( 구 국제어문학연구회 ) 2010 국제어문 Vol.48 No.-

        이 논문은 한국문학에서 그동안 낭만주의가 이해되어 온 방식을 검토하여 특정한 낭만주의, 즉 초기낭만주의라 할 수 있는 낭만주의는 배제되어 망각된 양상을 살펴보았다. 초기 낭만주의와 후기 낭만주의의 자질들에 대한 변별적 이해 없이 낭만주의가 지칭됨으로써 야기된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탐색하여 배제된 낭만주의 복권의 정당선 여부를 제언하고자 했다. 낭만주의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문학 담론의 장 안에서 낭만주의를 배제하는 결과를 나았다. 그 결과 `감정`에 대한 편향된 이해가 이어졌다. <반성-전-감정>의 영역으로서의 <감정>은 지속되고 <반성-후-감정>으로서의 <감정>은 망각된 채 수면 아래에서만 존재하는 양상을 보였다. <반성-전-감정>으로서의 감정은 낭만주의라는 이름을 달지 않은 채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의 천연성 때문에 당당하게 존재해왔는데 근래에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비판의 표적의 하나로 낭만주의가 지목되기도 했다. 문제는 그것이 후기 낭만주의적 자질이라는 것이고 반면에 수면 아래에서 주로 존재하는 낭만주의는 비판적 읽기의 형태로서 자신의 이름이 적극적으로 호명되지 못한 채로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는 낭만주의의 역사에서 볼 때 초기낭만주의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복권되어야 하는 이유는 <반성-후-감정>의 문제, <상상력>의 문제, <주관성>의 문제가 모두 이 낭만주의라는 뿌리로부터 배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낭만주의에서의 사조적 접근을 지양하고 낭만주의에 대한 통시적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낭만주의를 총체적으로 규명하여 한국문학 전반에 흐르고 있는 낭만성을 새롭게 주목한다면 한국문학의 복합성이 보다 포괄적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이 강조하는 바는, 전적으로 문학작품 `읽기`의 영역에 관계되는 담론 안에서의 흐름이지 문학작품 자체의 양상과는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In this paper, I argued how the essential part of pre-romanticism has been excluded and rendered to be forgotten in the field of Korean literature by examining the way it has been comprehended. Investigating the result that has brought about from the designating romanticism without distinctive apprehension, I attempted to propose to reconsider the feasibility of rehabilitation of romanticism. The negative interpretation of romanticism has brought about the consequence to that romanticism has been excluded from the field of Korean literary discourse. In result, the biased understanding of Emotion reigns. To say more precisely, pre-reflective-emotion lasts while post-reflective-emotion stays undersurface. The pre-reflective-emotion has sailed into the discourse having been rent the label says “romanticism” which has lately been detected as a target of Nationalism critique. The matter is that it is the post-romantic characteristic and the (pre-)romanticism undersurface left as a mode of critical reading without any reasonable formal calling from above. The reason why it has to be rehabilitate is that the essential issues of post-reflective-emotion, imagination, subjectivity are all arose from one root, romanticism. When we sublate the approaches based on the trend of the literary thought and examine romanticism on the whole, so we could pay valid attention to the properties of romanticism that have run through the entire Korean modern literature, the complexity of it would be brought to light more comprehensively. I add the point this paper emphasize on is entirely related with the current of the discourse of `reading` literary text, so it must be differentiated from the modes of the texts them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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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 초기 낭만주의 시의 산문화 경향과 시적 이미지

        이성혁(Lee, Seong-hyuk) 한국시학회 2016 한국시학연구 Vol.- No.48

        시의 근대성은 시적인 것과 산문적인 것이라는 두 극(極) 사이에서 방황해간 궤적으로 나타난다. 한국 근대시는 낭만주의를 통해 정립되기 시작했다. 한국 근대 초기 낭만주의 시인들은 현실로부터 자율적인 시적 공간을 마련하여 시적인 것을 확보하고자 했다. 하지만 삶을 옥죄는 현실에 대한 감정의 토로로 나아가거나 은유적으로라도 산문적 현실을 담아내야 했기 때문에 산문화에의 지향으로 이끌리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 근대 낭만주의 시에는 시적인 것과 타율적인 산문성이 모순적으로 공존한다. 낭만주의가 연 근대시는, 독일 초기 낭만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를 낭만화하자는 기획 아래서 시의 산문화가 이루어지면서 형성되어갔다. 나아가 시의 산문화는 산문을 이미지의 논리에 용해시키고 이미지의 리듬을 확보하면서 포에지를 획득해 나갔다. 이러한 근대 자유시의 성립 과정은 한국 근대초기 낭만주의 시인들 역시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시적인 것과 산문성의 긴장을 해결하기 위하여 시에 유입된 산문성을 시적 이미지의 창출과 구성을 통해 승화하고자 했다. 1910년대 『학지광』에 실린 몇몇 시들은, 정형률에서 탈피하면서 산문과는 다른 자유시의 독자적인 미적 가치를 마련하려는 시인들의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서정적 주체의 내면 공간을 형성시키는 방식으로 시적인 것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시의 공간에 산문적인 것이 침투하면서 시인들은 시적인 것을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김억은 ‘밤’의 상징적 이미지를 구축하여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했다. 주요한은 「불놀이」에서 ‘밤’의 상징적 이미지를 이어받으면서 ‘불꽃’의 이미지를 통해 산문을 산문시로 승화하는 데 성공했다. 김억과 주요한은 ‘밤의 낭만주의’를 통해 한국 근대시를 출범시켰다. 1920년대의 1920년대의 많은 시들이, 낭만적인 감정의 분출을 통해 산문에 리듬을 만들어냄으로써 시적인 것을 획득하는 「불놀이」의 길을 따라갔다. 이상화와 김소월은 산문이 개입되는 낭만주의의 두 양상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시에 시적인 것을 유지하면서 산문을 들여오는 방안으로 ‘대지’의 상징에 기댔다. 이들은 ‘대지의 시학’을 통해 한국의 산문적 현실을 시에 담아내면서, 이를 낭만적으로 승화시켰다. 이상화 시에서 대지의 이미지는 성적인 의미를 품으면서 열정적이고 발랄한 리듬을 산출했다. 김소월은 대지의 이미지를 통해 상실을 노래했으며, 나아가 일상의 노동을 시화하면서 산문적 경향에 이끌렸다. 이상화와 김소월은 밤의 낭만주의에서 낮의 낭만주의로의 이행을 보여주면서 한국 낭만주의의 두 전형을 정립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The poetry modernity has appeared in the trace of wandering between poetic extreme and prosaic extreme. Korean modern poetry established through the Romanticism. Korean Romantic poet of early modern age tried to secure the poetic making autonomous poetic space from reality. However Korean modern poetry inclined to the prosaic tendency because of exposing the feelings of choking reality or having to express the prosaic reality metaphorically. Therefore Korean Romantic modern poem had coexistence of both the poetic and the heteronomous prosaic. Like early Romanticism of Germany we could have seen, modern poem which Romanticism opened has been formed making poem prosaic under the plan of romanticizing the world. Furthermore, to make the poem prosaic has been acquiring the ‘poesie’ not only melting the prose in image logic but also securing the image rhythm. Korean Romantic poet of early modern age also showed the formation process of modern free verse. They tried to sublimate the prosaic of poem through creating and organizing the poetic image in order to relax the tension between the poetic and the prosaic. Several poems which was published in the 『Hak Ji Kwang』 of 1910s showed the effort of poet who has created the independent aesthetic value of free verse differently from prose getting out of fixed rhythm. They tried to make the poetic forming the inward space of lyrical subject. However poets had hard time securing the poetic while the prosaic passing through in the poem space. Kim Yeok tried to solve such a difficulty by means of cultivating the symbolic image of ‘night’. Ju Yo-Han succeeded in sublimating the prose into prose poem through the image of flame, while he inherited the symbolic image of ‘night’ from the 「Fireworks」. Kim Yeok and Ju Yo-Han inaugurated Korean modern poetry through the ‘Romanticism of night’. A lot of poetry of 1920s followed the way of 「Fireworks」 acquiring the poetic by means of making the rhythm in the prose through the eruption of romantic emotion. Lee Sang-Wha and Kim So-Wol showed the aspect of Romanticism intervening the prose very well. They leaned on the symbol of the ‘Earth’ as a way of adopting the prose maintaining the poetic in the poetry. They not only melted the prosaic reality of Korea into the poetry through the ‘Poetics of Earth’ but also sublimated it romantically. The earth image of Lee Sang-Wha’s poem not only had the sexual meaning but also produced the passionate and vivacious rhythm. Kim So-Wol recited the loss through the earth image. In addition, he was attracted by the prosaic tendency poeticizing everyday labor. It could be evaluated that Lee Sang-Wha and Kim So-Wol established two models of Korean Romanticism, while showing the transition from Romanticism of night to Romanticism of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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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근대시의 낭만주의 재검토와 저항성의 문제

        박성준 ( Park Seong-jun ) 현대문학이론학회 2017 現代文學理論硏究 Vol.0 No.71

        이 논문은 한국근대시에서 낭만주의를 재검토하고 그 안에 내재된 저항성의 문제를 고찰한다. 조선에 유입된 낭만주의는 한 시대의 유파만을 수식하는 문예사조가 아니라 근대를 성립하는 인식적 질서로 작용하여 조선 문인 그룹 내의 근대적 정신 활동의 시발점이자, 그 촉매였다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낭만주의가 ‘병적 낭만주의’로 평가되고 이후 문학사 기술에 있어서도 배제되거나 결락된 용례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식민지 조선의 문학 장 내의 낭만주의란 각각의 시기마다 ‘불구성’을 그대로 내장한 채 흡착되었다. 절망과 좌절, 비애감 등의 시적 정동을 자산으로 삼았던 당대 인텔리겐치아 문인들은 『廢墟』, 『白潮』, 『薔薇村』 등 동인지 운동을 통해 자신의 미적 충동을 표출해냈으며, 이러한 미적 특권의식이 그들만의 지적·미적 충족의 수준에서 끝난 것만이 아니다. 『白潮』파 일부가 카프문단을 개방하는 주체가 되고, 『白潮』 내부에서는 일찍이 ‘力의 藝術’을 제창하면서 허무나 염세주의로 기울 수 있었던 1920년대산 낭만주의를 반성하고 자각했다. 조선 문단은 낭만주의에 대해 배척과 흡착을 반복하며, ‘기교파’, ‘경향파’, ‘순수파’ 등으로 초기 문단의 형세를 조직해갔다. 이와 관련해 임화의 ‘낭만적 정신’, ‘혁명적 낭만주의’, 박용철의 체험을 기반으로 한 ‘감정의 시화’와 같은 용어들은 낭만성이 짙은 비평적 태도를 투사한 것으로 1930년대식 신낭만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초기 낭만주의와 달리 이 시기의 신낭만주의는 감각이나 직관, 꿈이 아닌 현실에 뿌리를 깊숙이 들이밀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열정이었다. 그러므로 낭만주의는 ‘낭만적-’과 같은 수사로 결락된 채 조선 문학의 정신사 속을 끊임없이 개입해왔다. 이와 같은 사상의 발생 근원은 이곳이 아닌 저곳을 상정하고 기획하는 열정과 동경을 기반으로 함으로서, 이후 ‘저항성’이라는 이름으로 내재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 한용운, 심훈 등의 저항시인들 또한 해방 공간에서 보수적 민족주의자들의 기획에 의해 호명되어 왔다. 이렇게 기획된 저항 시인들의 저항성은 불온한 과거에 조선 문학에 대한 재빠른 청산의 수준이 아니라 한국근대시사에 흡착되어 왔던 ‘낭만 정신’과 연동하여 그 저항성을 해명해나갈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This paper reviews the romanticism in modern Korean poetry and examines the problem of resistance inherent in it. The romanticism that entered the Joseon Dynasty was not a literary art form which only expresses the wave of a time, but a cognitive order that established modernity. Romanticism was the starting point and the catalyst for modern mental activity within the Joseon Dynasty literary group. As romanticism in the 1920s was regarded as 'morbid romanticism' and later used as an excluded or missing example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it was absorbed into literature with the 'un-configuration’. Written by the poetry of despair, frustration and sadness, the author of the present day expressed their aesthetic impulses through the literary coterie magazine movement such as 『Pye-heo』, 『Baek-jo』, 『Jangmi-chon』 and these aesthetic privilege rituals are not the end of their intellectual and aesthetic satisfaction. A part of the 『Baek-jo』 became the subject of opening the KAPF(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they insisted on themselves 'art of power' and reflected on the romanticism of the twenties, which could be devoted to nihilism or pessimism. The Joseon literary world repeatedly rejected and absorbed the romanticism, and organized paragraphs' style with 'Technicalism', 'Realism' and 'Purism'. In this regard, Lim-hwa’s terms such as 'romantic spirit', 'revolutionary romanticism' and Park Yong-cheol’s terms such as 'poetize emotion’ based on experience are all projected a romantic critical attitude. Contrary to the early romanticism, the new romanticism of the 1930s was not a sense, an intuition, a dream, but a passion for a new age deeply rooted in reality. Therefore, romanticism has been constantly intervening in the spiritual history of Joseon literature, being used only such rhetoric as 'romantic-'. The origin of this idea was based on the passion and the willingness to plan and design ‘that place’, not ‘this place’, and it was later inherited as 'Resistance'. Therefore, the poets of Lee Sang-wha, Lee Yook-sa, Yoon dong-ju, Han Yong-woon, Sim Hoon, etc. have been called as the poets of resistance after the liberation by the plan of conservative nationalists. The resilience of such poets is not a level of quick settlement of the unstable past Joseon literature, but there are points that can be exploited in connection with the 'romantic spirit' that has been absorbed in Korean modern literature history.

      • KCI등재

        낭만주의 역사화: 히스토리아(Historia)에서 저널리즘으로의 발전

        김정락(Kim, Jung Rak) 서양미술사학회 2015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Vol.43 No.-

        낭만주의의 역사화는 당대의 역사의식을 반영하는 중요한 증거물이다. 낭만주의 역사화는 혁신적 성격 중 하나인 저널리즘적 태도와 요소를 보여준다. 저널리즘적 성향은 역사화의 본질과 기능을 변화시켰던 매우 의미 있는 단초이다. 시기적으로도 낭만주의와 근대적 의미의 저널리즘의 탄생은 일치한다. 저널리즘의 전례 없는 확산은 혁명을 불러왔으며, 예술사조로서 낭만주의의 탄생 또한 저널리즘과의 영향관계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당시 상당량의 언론매체들은 정치적인 당파성을 가지고 선동적인 성향을 띠었다. 마라를 포함한 많은 혁명정치인들이 언론매체를 보유하거나 편집인으로써 활동했던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정치이념의 전파와 더불어 각종 사건·사고들이 날마다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당위성을 찾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집권세력을 비판하기 위한 의도들이 갈등을 일으키면서, 역사는 혼란과 위기를 가중시켜 나갔다. 본 연구는 낭만주의의 역사화의 저널리즘적 성격을 특정하기 위해 사건화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사건화는 19세기 초반 유럽의 급변한 정치적 상황과 시민의식을 가장 명시적으로 반영하는 근대적인 역사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애국주의나 민족주의 등 새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사회이념들이 회화의 내용으로 부각되었으며, 특히 부르주아 계급의 역사적 인식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나아가 그들이 지닌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맥락에서의 역사관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화를 통한 과거 역사의 소환은 이전 역사화에 비하여 비판적이며, 사실적인 양상을 띤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까지 역사화는 과거를 회상, 기념하거나 기록하고 교화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면, 낭만주의의 사건화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성하며, 현재와 미래에 대한 발언으로써 새로운 역할을 지니게 되었다. 이렇게 변화된 의식은 역사화를 활용하는 주체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화가가 당대 사회의 권력자들에게 의존하여 제작하는 역사화가 아니라, 사회 혹은 권력에 대항하는 다른 사회적 주체들과의 연관 속에서 역사화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도 반증할 수 있다. 변화된 낭만주의의 사건화는 저널리즘적인 성격을 보유하면서 보다 능동적인 정치적인 목적을 지향하였으며, 이는 수동적으로 역사를 사유화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면서, 존속하는 역사화들에 대한 대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건화(Ereignisbild)로서의 신역사화는 언론 보도에 상응하는 조건들을 갖추었다. 이를테면, 6하 원칙에 해당하는 사실관계의 제공으로 신뢰성을 얻는 것은 물론, 이러한 사건, 사고의 전달이 현장성이 강조된 양태를 띠면서, 대중적 선정성 또한 가미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상의 선정에서도 사회적 이슈나 대중적 관심 등에 더욱 치중하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의 역사화는 시사적인 성격을 지닌 근대적인 역사화의 출현과 전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역사화가 사료나 전설 혹은 신화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신비적인 혹은 초월적인 재현으로 전이하는 것에 비하여, 사건화는 저널리즘처럼 당대성이 강조되고, 이로써 시사성과 대중성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낭만주의 이후의 사건화는 1839년 이후 등장한 사진에 대응하는 사실기록적인 태도와 실천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19세기 중반부터 등장한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회화에서도 지속되었다. 안톤 폰 베르너의 보도적 성격은 물론, 마네의 <막시밀리언 황제의 처형>에서 나타난 사실성은 사건화의 발전양상을 뚜렷하게 반영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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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 헤르더, 낭만주의

        김진(Kim Jin) 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 인간학연구소 2010 인간연구 Vol.0 No.18

        이 글에서는 칸트, 헤르더, 독일 낭만주의의 인간학적, 역사철학적 상호작용과 그 의미를 기술하고자 한다. 이사야 벌린은 칸트와 헤르더를 낭만주의의 두 시원이라고 주장하였다. 낭만주의에서 칸트와 헤르더의 철학적 위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과학은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중시하지만, 낭만주의는 가치에 대한 지식보다는 가치의 창조를 중시한다. 칸트의 경우에 이론적 인식과 실천적 가치는 철저하게 구분되지만, 헤르더에서는 그러한 구분이 없다. 칸트에서 역사의 목적은 규제적인 반면에 헤르더에서 그것은 구성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둘째로, 낭만주의 철학은 비합리주의를 지향한다. 낭만주의자에게 존재는 쉼 없는 흐름’이나 ‘세계의 부단한 자기 창조’일 뿐이다. 칸트의 경우에 인식은 현상 존재에 국한되며, 자연과 역사 영역에서의 한계가 분명하다. 반면에 헤르더의 세계 이해는 유기적, 역동적, 일원론적이다. 인류의 역사는 자연 역사의 일부이며, 그 자연의 이면에는 신이 존재하고 있다. 칸트와 헤르더의 경우에 세계 역사는 ‘문화’ ‘인간성’을 향한 부단한 접근 현상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 점에서 둘 다 계몽주의적이다. 셋째로, 낭만주의는 신화를 창조하고자 하며, 낭만주의자들에게 생명의 힘은 해명할 수 없는 신비이다. 칸트에서는 현상 존재의 배후에 신적인 것이 ‘요청’되지만, 헤르더에서 신의 존재는 현실적인 ‘실재’이자 자연과 인간의 역사 속에서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은총이다. 넷째로, 낭만주의자들에게 국가는 “거룩한 신비”다. 칸트는 보편적 세계주의를 지향하였으나 헤르더는 국가보다 민족의 존재나 개인의 자유를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특히 헤르더는 개별적 민족문화와 인간성의 이상이 공존할 수 있는 역사신학적 국가 형태를 모색하였다. 칸트의 정치적 최고선은 규제적 이념이지만, 역사에서 인간성의 실현이라는 헤르더의 최고선은 초월적 이념이면서 동시에 구성적인 의미에서의 낭만주의의 이상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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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혁명적 낭만주의 이입 연구 -바이런과 셸리를 중심으로-

        박호영 한중인문학회 2009 한중인문학연구 Vol.28 No.-

        흔히 한국의 1920년대 낭만주의를 감상적 낭만주의 내지 병적 낭만주의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성향을 띤 것은 김억을 중심으로 일찍이 받아들인 프랑스 상징주의의 퇴폐적 풍조와 함께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분위기를 생각할 때 자연스러운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는 다른 낭만주의가 적지 않은 비중으로 소개되고 있었음도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혁명적 낭만주의다. 일반적으로 혁명적 낭만주의는 사회의 진보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기본적인 태도로 한다. 그렇기에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개인의 자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큰 특징이다. 영국의 혁명적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블레이크와 더불어 바이런과 셸리가 손꼽힌다. 특히 바이런과 셸리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이 땅에 큰 비중을 갖고 이입된 시인군에 속한다. 그리고 두 시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소개된 것이 <시용의 죄수>와 <해방된 프로메테우스>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통치자들로부터 구속 당하였다가 풀려나와 자유를 되찾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러한 주제가 큰 의미를 지님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민족이 일제의 구속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것과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용의 죄수>나 <해방된 프로메테우스>가 당시 시인들의 창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느냐의 여부는 쉽게 속단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차용과 함께 프로메테우스란 인물이 시 본문에 나오고, 용궁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토끼를 등장시키고 있는 윤동주의 <간>은 셸리의 <해방된 프로메테우스>와의 연관성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더구나 그가 그 작품을 발표할 즈음에 연희전문에서 영문학 수업을 받고 그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었다는 사실과, 후에 일본 유학 시에도 입교대와 동지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은 그 영향의 개연성을 뒷받침한다. 두 작품과의 직접적인 관계는 아닐지라도 혁명적 낭만주의의 수용의 차원에서 거론할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 우선 바이런의 전신자이며 영문학 전공자인 양주동의 <조선의 맥박>이 다. 그는 이 시에서 ‘아가’란 존재를 통해 조국 미래의 부활을 노래하고 있다. 시 제목 자체가 식민지 현실로부터의 탈피를 비유하고 있는 <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든가 ‘산제비’란 대상을 자유의 화신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산제비> 등도 혁명적 낭만주의를 수용한 대표적인 작품에 속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작품들의 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당시의 혹독한 검열로 인해 체제 부정적인 작품들은 활자화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혁명적 낭만주의의 수용은 한국근대시문학사에서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흐름으로 판단된다. Generally Korean Romanticism in 1920s is defined as either Emotional Romanticism or Abnormal Romanticism. Considering decadent trend of French symbolism which was accepted earlier by Kim, Eok(김억) and social atmosphere during the Japanese Imperialism period, this symptom is very natural. However, it cannot be denied that other kind of romanticism is considerably introduced. That is Revolutionary Romanticism. Revolutionary Romanticism has a basic attitude of optimistic expectation towards social progress. Therefore, it is all about liberation from restriction, individual freedom and desire for the new world. Byron and Shelley as well as Blake are the representative English poets of Revolutionary Romanticism. Especially, Byron and Shelley known as Revolutionary Romanticist poets are weightily introduced into Korea extending from the 1920s to 1930s. Among their various works, The Prisoner of Chillon and Prometheus Unbound are most famous. These two works have main characters who acquire freedom from the rulers’ restriction. At that time this common theme represent for the Korean people the very liberation of Korea from the Japanese Imperialism. It is uncertain that whether The Prisoner of Chillon or Prometheus Unbound had directly influenced Korean poets during that period or not. However, the strong relations of The Liver by Yoon, Dong-ju with Shelley’s Prometheus Unbound can be observed from the character name Prometheus in the poem and the rabbit who acquires freedom from the Sea King(용왕) as well as the borrowing from the Prometheus myth. Moreover, the fact that Yoon was affected by the atmosphere at Yonsei University while attending English literature classes and the fact that he specialized in English Literature at Rikkyo University and Doshisha University while studying in Japan support their relations. Apart from the direct relations with The Prisoner of Chillon and Prometheus Unbound, there are some works which can be mentioned in terms of Revolutionary Romanticism. First of all, there is The Pulse of Joseon written by Yang, Ju-dong who majored in English Literature and so introduced Byron’s works. Yang emphasized the future revival of his country Korea with ‘baby’ in his poem. Has Spring Come in the Encroached Field?(<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 which uses metaphor in the title by meaning the liberation from the reality of colonization and Mountain Swallow which uses mountain swallow as a symbol of liberty are the representative poems of Revolutionary Romanticism. Nevertheless, unfortunately the number of related works is not that big. There are several reasons but the most significant one is because of harsh censorship during that period. Due to the harsh censorship, many works which took the negative view on the society failed to be published. However, the acceptance of Revolutionary Romanticism during the era of the Japanese Imperialism is a significant flow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modern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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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골의 『아라베스키』 문집의 낭만주의 에세이들에 대한 성서적인 고찰

        이경완(Kyong Wan Lee) 한국노어노문학회 2017 노어노문학 Vol.29 No.3

        본고는 고골의 사실상 세 번째 문집 『아라베스키』의 낭만주의 에세이들에 개진된 그의 보편사적 역사관과 낭만주의적 예술관을, 고골의 낭만주의적이고 기독교-신화적인 시각에 따른 내재적인 분석과 필자의 성서적인 관점에 따른 외재적인 분석을 통하여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둔다. 고골은 이 에세이들에서 독일의 낙관적인 보편사적 역사관과 낭만주의적인 예술관에 따라서 낭만주의적인 “시”의 이념을 인류의 근본적인 원칙으로 규정하였다. 고골은 이 시의 속성은 “통일성 속의 다양성,” “어린아이다움,” “무의도성” 등이며, 중세 유럽의 교황제, 기사도, 십자군 전쟁, 고딕건축, 우크라이나의 과거 및 민요, 낭만주의 회화 “폼페이 최후의 날” 등이 완전한 시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고골은 유럽의 역사와 예술, 세계사에 대해서는 독일 보편사적 역사관과 낭만주의적인 예술관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반면,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민요, 19세기 러시아 낭만주의 예술에는 그 이념을 자기화하여 확대 적용하였다. 반면 19세기 러시아 현실에 대해서는 독일의 이념을 자신이 유년시절에 체득한 부정신학과 염세주의적인 바로크 종말론의 토대 위에서 재구성하고, 자신의 예술적 재능, 감성, 기질 등도 반영하여 독창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문집의 낭만주의 에세이들과 세 편의 페테르부르그 이야기는 그의 세계인식의 자기모순과 균열을 반영하며, 예술-종교 혹은 종교-예술로 비속한 근대 사회의 영적인 변형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의 기획의 시험대였다. 「초상화」가 “자기파괴를 통한 자기창조”의 낭만적 아이러니를 추구하는 아라베스크 시학의 낭만주의적인 기획이라면, 「넵스키 거리」와 「광인일기」는 그 기획의 무력함에 대한 고골의 깨달음을 암시한다. 성서적인 시각에서 이 낭만주의적인 기획은 물론 이를 기독교-신화적인 관점에서 변형시킨 1840년대의 기획 역시 그 안의 신화적인 요소들로 인하여 실현불가능한 것이었다. This paper aims to reflect on Gogol’s universal historical and romantic artistic viewpoints in romantic essays included in his third cycle of Arabesque from a biblical viewpoint. The biblical approach is characterized by the double sight combining the intrinsic analysis and external biblical reflections on objects. It also discriminates biblical, non-biblical(mythical) and ambiguous elements in objects, accepting only biblical ones. This biblical approach contributes to understanding the meaning of romantic essays and their combination with three Petersburg Tales in the cycle. In the essays, Gogol explained the main properties of his romantic idea of “poetry”: “diversity in unity, childishness, disinterestedness,” etc. Medieval history and culture, European and Ukrainian past and Karl Bryulov’s romantic painting, The Last Day of Pompeii, etc. are identified as the representatives. However, in such optimistic ideas were latent Gogol’s pessimistic Baroque apocalypse and negative theology which had become the foundation of his constant Christian-mythical viewpoint. The conflicts of optimistic and pessimistic ideas are testified in The Portrait and the composition of the cycle. Later, Gogol developed his Christian-mythical and romantic idea into a more religious variant, trilogy of Dead Souls to transform the modern Russia into ‘Holy Rus.’ It is unresolved whether the third cycle and his epic realized the arabesque poetics. What is clear is that his idea was impossible to realize because of mythical elements in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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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 나타나는 낭만주의 서체에 관한 연구

        정경선 한국일러스아트학회 2014 조형미디어학 Vol.17 No.4

        Communication design in the romantic font reflects the diverse society we live in, and what you want to convey their interest in raising or lowering the interest has been experiencing rapid changes in various forms to. These romantic main mode is primarily used in the us is difficult to express the sensibility existing fonts and can be seen as a form of expression. In a variety of fields and applications and romantic typefaces are easy to engage with design in everyday life, we are naturally around the distribution of advertisements or all design disciplines in one big trend. Therefore, romantic typefaces are developed in various fields, and the need for a cultural content be utilized for the study more than ever being expanded. Therefore, this research will be utilized as a cultural content about the need for more than ever interested in expanding. This is the point of view of this research communication design field is used throughout the romantic typeface the attributes and nature of romanticism in order to appreciate the concept of establishing and romantic and romantic relationship defining. These theoretical background in the center, the design romantic, typeface is used to analyze use cases of romanticism, the typeface of the features and to understand the digital media environment view expression as a means of communication, seeking to value the romantic typeface more effective utilization of seeking will offer.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 있어서 낭만주의 서체는 우리가 살아가는 다양한 사회를 반영하고 있으며,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관심을 높이거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거듭하여 왔다. 이러한 낭만주적 형태는 우리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기존 서체가 표현하기 어려운 감성을 내포하고 있는 표현양식으로 볼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응용되어지고 있는 낭만주의 서체는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쉬운 디자인까지 우리 주위에 자연스럽게 분포되어 있으며 광고나 모든 디자인 분야에서 하나의 커다란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낭만주의 서체는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 활용되는 문화적 컨텐츠로서의 연구와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확대되고 필요성이 요구되는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분야 전반에 걸쳐 활용되어지는 낭만주의 서체에 대한 특성과 본질을 이해하기 위하여 낭만주의의 개념을 정립하고, 낭만주의와 낭만주의 서체의 관계를 정의 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이론적 배경을 중심으로 디자인 분야에 낭만주의적인 서체가 사용된 활용사례를 분석하여 낭만주의 서체의 조형적인 특징을 이해하고 디지털미디어 환경에 시각 커뮤니케이션 표현 수단으로의 가치를 모색하여 낭만주의 서체의 보다 효과적인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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