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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肅宗講學廳日記』를 통해 본 元子 보양 및 교육의 실상과 의미

        김은정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8 규장각 Vol.33 No.-

        조선왕실에서는 미래의 왕을 위해 담당기관을 설치하여 보양과 교육을 맡도록 하였는데, 세자를 위해서 侍講院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자로 책봉되기 전의 원자를 위해서 별도의 교육기관을 설치하기도 하였는데, 講學廳이 바로 그것이다. 『肅宗講學廳日記』는 강학청의 활동을 기록한 관청일기로서, 1665년(현종 6) 6월부터 12월 30일까지 당시 元子였던 肅宗의 輔養과 교육에 대한 기록이다. 전대에도 원자의 보양과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나, 강학청이라는 별도의 교육기관이 설치된 것은 현종조가 처음이며, 『강학청일기』 역시 최초의 것이므로 의의가 크다. 숙종이 세자로 책봉된 시점이 1667년 2월이인 점을 감안하면 강학청은 1665년부터 1667년까지 지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숙종강학청일기』는 1665년의 일기를 1책(39장)으로 묶은 유일본이 전해질 뿐인데, 1666년분의 제2책은 일실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숙종강학청일기』의 첫부분은 원자의 보양과 관련된 논의를 모은 것이며, 뒷부분은 강학청 활동에 대한 기록이다. 이러한 체제는 『顯宗講書院日記』에서도 확인되는바, 상설 관청이 아닌 경우 그 설치 과정에 대한 논의가 자세함을 보이는 것이다. 특히 『肅宗講學廳日記』에는 전대의 元子 보양에 대한 기록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太宗․中宗․仁祖代에 원자 보양․교육 기관이 설치되었는데, 임금 스스로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고 왕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으며 신하들 역시 왕위계승자의 교육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講學廳이 설치되고 員役이 정해진 후 보양관과 원자는 相見禮를 행하고 본격적으로 講學에 임하였다. 강학 교재는 『孝經大義』였으며, 사시 정각(오전 10시)에 강학하였다. 또한 원자는 새로운 내용을 배우기 전에 지난 시간에 배운 부분을 반드시 背誦하였다. 이는 원자 교육이 사대부 자제의 교육 방법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이는데, 왕세자 교육 역시 그러하였음을 고려하면 왕실의 교육 전반이 일반적인 교육 방법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나이 어린 원자를 배려하여 강학을 하루건너 열도록 하고, 강학 여부는 임금이 직접 결정한 점이 다르다. 또한 학습분량을 살펴보면 대체로 15-20자 정도였는데, 강학 진도가 매우 천천히 나간 것 역시 어린 원자에 대한 배려임을 알 수 있다.

      • KCI등재

        조선왕실의 조기교육 기관 연구

        육수화 한국교육사학회 2007 한국교육사학 Vol.29 No.1

        본 연구는 조선왕실의 조기교육기관인 보양청(輔養廳)과 강학청(講學廳)의 설치경위와 교육과정에 대해 규명한 것이다. 조선왕실에서의 왕위계승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보양청은 원자나 원손이 탄생하면, 대개 3세 이전에 설치하였는데, 다른 왕실자손들을 위해서는 설치하지 않았다. 이들이 글을 읽기 시작할 무렵이 되면 강학청을 설치하였는데, 초학교재로는 『孝經』·『小學』·『童蒙先習』 등이 주로 선정되었다. 여타 왕실자손들도 통상 6세가 되면, 대군과 왕자군의 경우에는 강학청(講學廳)을, 왕손의 경우에는 교학청(敎學廳)을 설치하여 조기교육이 이루어졌다. 왕위계승자들의 교육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데 반해, 왕실자손들의 교육은 종친부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위상에 있어서도 왕위계승자들과는 현격한 차등을 두었다. 本論文對作爲朝鮮王室早期敎育機關的輔養廳和講學廳的設置經緯及敎育課程進行了闡述. 以朝鮮王室的王位繼承人爲對象的敎育, 是在國家的層面上系統性的進行的. 輔養廳是在元子, 元孫3歲以前設置的, 但幷不爲其他的王室子孫設置. 在他們能구開始讀書識字時設置講學廳, 初級的敎材主要選定爲『孝經』,『小學』,『童蒙先學』等. 其他的王室子孫一般在6歲的時候, 大君和王子君的情況設置講學廳, 王孫的情況設置敎學廳來實施早期敎育. 王位繼承人的敎育是在國家的層面上進行的, 相反其他王室子孫的敎育是在宗親府的層面上實現的, 這和王位繼承人之間存在著懸殊的差異.

      • KCI등재

        조선시대 왕실의 유아교육

        육수화 동양고전학회 2008 東洋古典硏究 Vol.32 No.-

        조선시대 왕실문화는 유교문화의 정수였고, 왕실교육은 유교교육의 최고봉이었다. 修己治人을 실현하는 선비이자 內聖外王을 구현하는 치자로서, 유교의 이상적인 모델이자,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 바로 조선의 왕이다. 때문에 왕위계승자들의 교육은 일반 사대부들보다 더욱 엄격하고 치열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했고, 왕실구성원이었던 왕실자손들의 교육 또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태교는 태아의 건강과 좋은 기질의 형성을 위해 산모가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몸가짐이다. 이는 애초 산모가 보고 느낀 것을 태아도 태내에서 감응한다는 한의학적 학설에 바탕을 둔 것인데, 유교적 수양론과 결부되면서 교육의 시작이요, 성품형성의 근원으로 여겨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원자와 원손의 교육과정은 왕위계승교육의 일환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아주 체계적으로 구축되었다. 대개 3세 이전에는 輔養廳을 설치하여 보육을 담당하게 하였고, 이들이 글을 읽기 시작할 무렵이 되면 講學廳을 설치하여 조기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이들을 제외한 다른 왕실자손들의 경우, 보양청은 설치되지 않지만 통상 6세가 되면, 종친부 주관으로 대군과 왕자군의 경우에는 講學廳을, 왕손의 경우에는 敎學廳을 설치하여 조기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조선왕실 유아교육은 왕위계승자와 왕실자손들 모두 {孝經}⋅{小學}과 같은 초학단계를 마치면, {大學}⋅{論語}⋅[孟子}⋅{中庸}의 단계적 학습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교육과정 자체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원자의 사부는 정 2품, 원손의 사부는 종 2품이며, 대군과 왕자군의 사부는 종 9품, 왕손의 교부 또한 종 9품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위상에 있어서는 현격히 차등을 두어 시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study aimed to make clear the education process, from antenatal training to early childhood education, of Joseon Royal Family. Centered on the successors to the throne and reviewed also the education of other Royal Family members, this study carried out comparative analysis on them. Antenatal training is pregnant woman's essential physical and mental attitude. It is indispensable to the health and good nature of unborn baby. Antenatal training had been based on the theory of Oriental medical science that fetus can sympathize what mother see and feel. Such theory, combined with Confucian self-culture theory, had taken very important position in Confucianism. Not to speak of Royal Family, noble family regarded antenatal training very essential as beginning of education and root of nature formation. For firstborn son and firstborn grandson, Boyangcheong (輔養廳, special nursery agency) was set up before their age became three, but not for other sons and grandsons of Royal Family. When firstborn son or firstborn grandson grew up to read letters, Ganghakcheong (講學廳) was set up for their early education. Other sons of king also learned in their early ages at Ganghakcheong while other grandsons of king learned at Gyohakcheong (敎學廳). Education courses were almost same between successors and non-successors but there were wide difference in the ranks of their tutors; firstborn son's tutor marked 2nd Jeong(正) class, firstborn grandson's tutor marked 2nd Jong(從) class and other royal sons' tutors were just 9th Jong(從) class.

      • KCI등재

        조선후기 大君과 王子君 그리고 王孫의 교육연구

        陸受禾(Yuk Su-hwa) 한국학중앙연구원 2006 장서각 Vol.0 No.15

        본 연구는 조선후기 왕실 자손들의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의례과정을 규명한 것이다. 그 대상은 왕의 적자인 大君과 서자인 王子君, 그리고 왕세자의 적자인 嫡王孫과 서자인 庶王孫 등이다. 대군과 왕자군의 교육기관은 講學廳이라 하고, 왕손의 교육기관은 敎學廳이라 하였으며, 대군과 왕자군의 스승은 師傅라 하고. 왕손의 스승은 敎傳라 하여 그 廳號와 稱號를 구별하여 사용하였다. 왕위계승자인 왕세자와 왕세손 등의 교육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데 반해 이들의 교육은 종친부 주관으로 이루어졌다. 교육과정은 기본적으로 · 『소학』 · 『효경』등의 초학과정을 이수하면 사서삼경으로 이어져 왕위계승자들의 교육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왕세자와 왕세손의 경우 왕위계승자임을 염두에 두어 교육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帝王學을 위한 방편으로써 역사서도 아울러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교육과정과 차이가 있었다. 또한 왕세자의 사부는 정1품, 왕세손의 사부는 종1품인데 비해, 대군과 왕자군의 사부와 왕손의 교부는 모두 종9품으로 왕위계승자들과는 현격한 차등을 두었다. 차이를 인정하기 보다는 차별을 강조하는 유교적 전통은 각종 의례과정에서 더욱 부각되는데,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철저히 위상을 달리하여 이루어졌다. In this paper I examins the educational institutions for son of the king's principle wife(Daegun, 大君), son of the king's concabine wife(Wangjagun, 王子君) and Crown Prince's son(Wangson, 王孫). The educational institution and teachers for Daegun, Wangjagun were called Gnghakcheong(講學廳) and Sabu (師傅) respectively. Gyohakcheong(敎學廳) and Gyobu(敎傅) were for Wangson. The education for Crown Prince and Grandson-Heir Apparent was performed systematically as a means of governmental strategy. The education for Wangson was only conducted by Bureau of Royal Descendants(Jongch'inbu, 宗親府). The curriculum for royal families included Dongmong seonseup(童蒙先習), Sohak(小學), Hyogyeong(孝經) and other confucianism classics. This curriculum was similar with that of Crown Prince and Grandson-Heir Apparent. When compared to the curriculum for other Royal descendents, the history was the most important subject for the teaching of Crown Prince and Grandson-Heir Apparent.

      • KCI등재후보

        조선후기 大君과 王子君 그리고 王孫의 교육연구

        육수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2006 장서각 Vol.0 No.15

        In this paper I examins the educational institutions for son of the king's principle wife(Daegun, 大君), son of the king's concabine wife(Wangjagun, 王子君) and Crown Prince's son(Wangson, 王孫). The educational institution and teachers for Daegun, Wangjagun were called Gnghakcheong(講學廳) and Sabu(師傅) respectively. Gyohakcheong(敎學廳) and Gyobu(敎傅) were for Wangson. The education for Crown Prince and Grandson-Heir Apparent was performed systematically as a means of governmental strategy. The education for Wangson was only conducted by Bureau of Royal Descendants(Jongch'inbu, 宗親府). The curriculum for royal families included Dongmong seonseup(童蒙先習), Sohak(小學), Hyogyeong(孝經) and other confucianism classics. This curriculum was similar with that of Crown Prince and Grandson-Heir Apparent. When compared to the curriculum for other Royal descendents, the history was the most important subject for the teaching of Crown Prince and Grandson-Heir Apparent. 본 연구는 조선후기 왕실 자손들의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의례과정을 규명한 것이다. 그 대상은 왕의 적자인 大君과 서자인 王子君, 그리고 왕세자의 적자인 嫡王孫과 서자인 庶王孫 등이다. 대군과 왕자군의 교육기관은 講學廳이라 하고, 왕손의 교육기관은 敎學廳이라 하였으며, 대군과 왕자군의 스승은 師傅라 하고, 왕손의 스승은 敎傅라 하여 그 廳號와 稱號를 구별하여 사용하였다. 왕위계승자인 왕세자와 왕세손 등의 교육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데 반해 이들의 교육은 종친부 주관으로 이루어졌다.교육과정은 기본적으로 동몽선습 소학 효경 등의 초학과정을 이수하면 사서삼경으로 이어져 왕위계승자들의 교육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왕세자와 왕세손의 경우 왕위계승자임을 염두에 두어 교육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帝王學을 위한 방편으로써 역사서도 아울러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교육과정과 차이가 있었다. 또한 왕세자의 사부는 정1품, 왕세손의 사부는 종1품인데 비해, 대군과 왕자군의 사부와 왕손의 교부는 모두 종9품으로 왕위계승자들과는 현격한 차등을 두었다. 차이를 인정하기 보다는 차별을 강조하는 유교적 전통은 각종 의례과정에서 더욱 부각되는데,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철저히 위상을 달리하여 이루어졌다.

      • KCI등재

        侍講院 부설기관을 통해 본 조선후기 왕실교육

        김은정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9 한국문화 Vol.47 No.-

        This study is about attached organizations of Sigangwon(侍講院) and Royal Education in the later Chosun(朝鮮) Dynasty. Gangseowon(講書院) for the eldest son of the Crown Prince, Ganghakchung(講學廳) for the Prince Royal who will be the Crown Prince, Boyangchung(輔養廳) for the Prince Royal in an infant was established as an educational institute. Kings in Chosun Dynasty educated the successors to the throne with the object of consolidating own's power and protecting prince. Retainers also joined in education of the Prince Royal for the purpose of strengthening own's situations. Attached organizations of Sigangwon was established for these purposes in the 17th century. YongJo(英祖) strengthened educational function of theses organizations and expanded the objects of Royal Education. JungJo(正祖) systematized the continuities of theses organizations. These arrangements in the 18th century represented promotion of Royal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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