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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건식의 칸트철학 번역과 선택적 전유

        이행훈 동양철학연구회 2011 東洋哲學硏究 Vol.66 No.-

        Yang Geon-sik was a Buddhist activist and a novelist as well as a translator. The former researches on Yang was primarily focused on his literary works although Yang was one of the leading social thinker and scholar in the Korean enlightenment period. In this article, I illuminated Yang's disciplines and ideas by analysing his translation of Kant, which was published in the translated article titled "Western philosopher Kant's gyeokchi theory(西哲康德格致學說)". It should be noted that the philosophy of Kant accepted via Japan and China in Korean in the 1910s through the East Asian distribution channels of Western philosophy. The original author of the article was Ryang Chi-chaoh. During his exile in Japan, Ryang wrote the article titled "the best modern philosopher, Kant's theory(近世第一大哲康德之學說)". Ryang's article was a translation of a part of "the philosophy of history(理學沿革史)" written by Nagaechomin in Japan. To compare the concept of 'Zhenru(眞如)'of Buddhism with the concept of 'Zhenwo(眞我)' of Kant, and 'Mingde(明德)' of Zhuxi, Yang admitted the predominance of Buddhism and Buddhist tradition by recognizing that the universal values of a modern system could be reconfigured. Yang Geon-sik's translation series went along with the Buddhism promotion movement. Yang Geon-sik lived in an era that evolution and development were supposed as an overall social indicators. However, he gave a great focus on Buddhism and literature to discover the possibility of transcendence. For Yang, transcendence was not a notion to escape into abstractness but a notion to recall the value of life by rediscovering the human inner nature which was repressed by capitalism and the civilization base on materialism. Yang's work is an important which is not only a source that can reveal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modernity but also a stimulant that can enrich the history of modern Korean philosophy. 백화 양건식은 불교운동가, 소설가, 번역가로 활동하였다. 기존 연구는 주로 그의 문학세계에서 관한 것이었고 학문이나 사상 연구는 부진하였다. 양건식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특히 식민시기의 지식인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있다.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식민시기를 전통 철학의 단절과 근대적 학문 체계의 미성립으로 보는 관점을 들 수 있다. 전통철학과 연결하는 계보학적 방법이나 서구 근대 학문을 기준으로 수용의 정도를 가늠하는 방식은 식민시기 사상적 지형도를 올바로 분석하기 어렵게 만든다. 본고에서는 역사의미론의 방법을 적용하여, 양건식이 번역 소개한 「서양 철학자 칸트의 격치학설(西哲康德格致學說)」을 중심으로 그의 학문과 사상을 분석하였다. 이 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일본과 중국을 경유하는 동아시아의 서양철학 유통 경로와 1910년대 한국에서 진행된 칸트철학 수용의 한 단면을 적실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자 칸트의 격치학설」의 원저자는 량치차오다. 량치차오는 일본 망명시절 나가에 초민의 『理學沿革史』 중 칸트 부분을 번역 주해하여 「근세 최고의 철학자 칸트의 학설(近世第一大哲康德之學說)」을 집필하였다. 양건식이 이 글을 번역 연재한 목적은 불교진흥운동에 부합한다는 판단에서였다. 불교의 ‘眞如’와 칸트의 ‘眞我’, 주희의 ‘明德’을 비교하고 불교의 우위를 인정함으로써 전통 불교는 근대의 보편적 가치체계로 재구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글의 표제에서 칸트 철학을 ‘格致’라는 용어로 푼 것은 서구의 ‘philoshphy’에 상응하는 번역어로 ‘철학’이 아직 정착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 학술용어인 격치(학)은 대체로 서구 자연과학기술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는데, 양건식은 ‘격치’가 칸트 철학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1910년대 ‘격치’는 여전히 자연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주목해야 할 점은 삼중 번역 과정에서 나타나는 굴절과 ‘선택적 전유(selective appropriation)’ 양상이다. 양건식은 ‘자유’와 ‘독립’, ‘주권’과 ‘영구평화’를 다룬 절을 번역에서 누락시켰다. 일제는 제국의 지배 질서에 반하는 담론의 유통을 통제하였고 칸트 철학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양건식은 ‘진화’와 ‘발전’이 삶의 지표와 규범이던 시대를 살았지만 ‘불교’와 ‘문예(문학)’에서 ‘초월’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초월은 관념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에 억압된 인간 내면의 본성을 발견하여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발견되는 ‘근대성’은 개인사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근대’를 재음미할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이며 한국 근대 철학사를 풍성하게 할 중요한 자료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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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늘과 그림자의 사유방식 — 三玄(易, 老, 莊)을 중심으로 —

        탁양현 동양철학연구회 2011 東洋哲學硏究 Vol.68 No.-

        일상의 언어현상 안에서 ‘그늘’과 ‘그림자’는 상호 유사한 근친적 의미로 사용된다. 예컨대, ‘그늘지다’와 ‘그림자지다’의 실제적인 현재적 활용은 혼용되어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언어의 상황과 철학언어의 상황은 차이가 있다. 이는 동양철학적인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 안에서의 ‘그늘’과 서양철학적인 ‘빛과 그림자’의 사유방식 안에서의 ‘그림자’ 개념이 지니는 함의의 상황과 내용이 서로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三玄철학 안에서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은 주역철학이나 노자철학과 장자철학 그리고 위진현학 이후 현재까지 여전히 이어지는 동양철학의 독특한 사유방식이다. 따라서 三玄철학의 사유방식과 유가철학이나 서양철학의 사유방식적인 차이를 살핌으로써, ‘빛과 그림자’의 사유방식과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의 차이는 밝혀진다. 또한 서양철학의 택일(擇一)의 이분법이나 택일의 변증법과 동양철학의 공거(共居)의 이분법이나 공거의 변증법의 차이 역시 드러난다. 이러한 사유방식의 차이를 살핌은 동서철학의 혼융이라는 21세기라는 현재적 상황 안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시대적 필요인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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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산김일훈(仁山金一勳)의 의철학(醫哲學)

        박홍식 동양철학연구회 2010 東洋哲學硏究 Vol.61 No.-

        朝鮮時代知識分子的特点在于國難期間, 通過義兵活動維護國家.仁山金一勳(1909-1992)也是其中一位.繼承華西學派傳統的金一勳, 不但參加獨立運動而且身爲在野韓醫做了不少貢獻.這樣的人生軌迹成了仁山醫哲學形成的背景.救世濟民的大道展現在他的`神藥`之中.仁山的醫哲學不在傳統的陰陽五行論之外.但是, 仁山醫哲學取得了一些成果. 第一, 他是用`哲醫學`槪念的第一位.二十世紀以后, 仁山可以說是在韓國用`醫哲學`槪念和類似的`哲醫學`槪念的第一位. 第二, 他站在`醫哲學`的觀点來, 寫書.二十世紀以后, 仁山可以說是在韓國`哲醫學`, 卽試圖東方醫學的`醫哲學`樹立的第一位. 第三, 他宣言醫療論理網領.這可以說是他宣言韓國式的`醫療論理網領`.第四, 他在解釋宇宙論和万物生成論的時候, 提倡獨特的`色素論`.第五, 以義理實踐爲重点的華西學脈傳統成了仁山的醫朮背景.此背景加上獨立運動和通過神藥, 他做了民衆救濟的偉大的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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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된 ‘철학’ 개념의 수용과 전유

        이행훈 동양철학연구회 2013 東洋哲學硏究 Vol.74 No.-

        The object of this essay is to consider the aspects of the process in which Korea accepted and appropriated the concept of philosophy in its modern transition period. Modern learning in Korea was formed by Western learning and concepts which were accepted via China and Japan before and after the 20th century. This new system of knowledge, however, could not confine the traditional Confucian system of knowledge entirely to the past. At the beginning of the acceptance, the conceptual definition of philosophy was obliged to rely on the traditional academic terms, and the understanding of Western philosophy could not but be conducted within the traditional mode of thought. This is evident in the fact that Western philosophy was described as Western Confucianism and a variety of Confucian academic terms were used to translate the concept of philosophy. Traditional terms like ‘Gyeokchi(格致)’, ‘Gungri(窮理)’, ‘Seongri(性理)’, ‘Yihak(理學)’, ‘Yuhak(儒學)’, ‘Dohak(道學)’ and others were used to translate the term of philosophy. For this point, we can consult the article of philosophy in a bilingual dictionary published at the early part of the modern times. Until the concept of 'philosophy' was established, its description and definition had depended mostly upon the traditional system of knowledge. Although a few examples existed in which 'philosophy' was introduced and defined before 1900, they considered it not as universal learning but as a special learning which had developed in the West. It was around 1910 that Confucianism was conceived as one branch of modern learning and part of modern system of knowledge. Jang Ji-yeon was content just with defining and introducing philosophy, while Choi Du-seon analyzed, from various angles, the nature of philosophy distinguished from the other disciplines. At the beginning of the acceptance of Western philosophy, it was understood from the perspective of Confucian thought as in Lee Jeong-jik and Lee In-jae's understanding, but gradually, its understanding advanced towards re-interpreting Confucianism and traditional philosophy through the concept and mode of Western Philosophy. This development makes us pay more attention to the addresser's activeness and independence in the structure of addresser and addressee. Gang Chun-san's『東洋道學의 體系如何』(Genealogy of Oriental Knowledge System) was the first 'history of Eastern philosophy', which described equally Hundred Scholars of Thought(諸子百家) in a syntactic frame. Positive aspects of the addressee are evident in An Hwak's『朝鮮哲學思想槪觀』(An Outline of Korean Philosophy), which makes a general survey of Korean history of thought. The reality of 'importer philosophy' has hardly changed, though there has been an increasingly loud call for self-examination against the academic climate in which many bow to the West. It is not easy to change our perspective which has been stamped and fixed for over a hundred years. The traditional philosophy also has not found any possible point of communication with modern philosophy, and its discontinuous continuity was endured. To dissolve the antagonism of philosophy exposed to 'the past of the present' like this, it is more than necessary to reconstruct 'the present of the past'. Furthermore, we will be able to conceive the whole story of Korean thought in the modern transitional period beyond a kind of estrangement and distortion which appeared in the formation of Korean modern philosophy only when our focus is placed not on the viewpoint of the addresser but on the activeness of the addressee. 본고는 근대 전환기 철학 개념 수용과 전유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20세기 전후 중국과 일본을 경유하여 수용된 서양 학술과 개념은 한국 근대 학문 형성의 밑거름이었다. 수용 초기 철학에 대한 개념 규정은 전통 학술용어에 의지했고 서양철학에 대한 이해도 전통 사유방식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格致’, ‘窮理’, ‘性理’, ‘理學’, ‘儒學’, ‘道學’ 등과 같이 유학의 다양한 학술용어들이 철학의 초기 번역어로 혼용된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1900년 이전에도 ‘철학’을 소개하고 정의한 사례가 있지만, 이 당시 ‘철학’은 보편학이라기보다는 서양의 특수한 학술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에서 유교를 철학 즉 근대 분과학문의 하나이자 근대 지식체계의 일환으로서 사유하기 시작한 것은 1910년을 전후해서이다. 장지연이 철학을 정의하고 소개하는 데 머물렀다면 최두선은 제학문과 구분되는 철학의 특성을 다각도로 분석하였다. 이정직이나 이인재처럼 서양철학 수용 초기에는 대체로 유교의 사유지평에서 철학을 이해했지만 점차 서양철학의 개념과 형식으로 유교와 전통철학을 재해석하는 데로 나아갔다. 강춘산의 「동양도학의 체계여하」는 국내 최초로 편찬 소개된 ‘동양철학사’로서 통사적 체계로 제자백가 사상을 고루 기술했다. 철학 개념을 이끌어 조선사상사를 개괄한 안확의 「조선철학사상개관」도 수신자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서양을 추수하는 학문풍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수입상 철학이란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근 백년에 걸쳐 각인되고 고정된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은 탓이다. ‘현재의 과거’에 노정된 철학의 길항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의 현재’를 재구하는 한국 근대 철학의 형성과정에 대한 탐색이 그래서 필요하다. 발신자에서 수신자로 관점을 전환하면 일종의 격의나 왜곡으로 비춰졌던 근대 전환기 학술사상의 전모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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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철학 : 그늘과 그림자의 사유방식 -삼현(三玄)(역(易), 노(老), 장(莊))을 중심으로-

        탁양현 동양철학연구회 2011 東洋哲學硏究 Vol.68 No.-

        일상의 언어현상 안에서 ``그늘``과 ``그림자``는 상호 유사한 근친적 의미로 사용된다. 예컨대, ``그늘지다``와 ``그림자지다``의 실제적인 현재적활용은 혼용되어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언어의 상황과 철학언어의 상황은 차이가 있다. 이는 동양철학적인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 안에서의 ``그늘``과 서양철학적인 ``빛과 그림자``의 사유방식 안에서의 ``그림자`` 개념이 지니는 함의의 상황과 내용이 서로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三玄철학 안에서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은 주역철학이나 노자철학과 장자철학 그리고 위진현학 이후 현재까지 여전히 이어지는 동양철학의 독특한 사유방식이다. 따라서 三玄철학의 사유방식과 유가철학이나 서양철학의 사유방식적인 차이를 살핌으로써, ``빛과 그림자``의 사유방식과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의 차이는 밝혀진다. 또한 서양철학의 택일(擇一)의 이분법이나 택일의 변증법과 동양철학의 공거(共居)의 이분법이나 공거의 변증법의 차이 역시 드러난다. 이러한 사유방식의 차이를 살핌은 동서철학의 혼융이라는 21세기라는 현재적 상황 안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시대적 필요인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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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유럽 계몽주의에 대한 송유이학(宋儒理學)의 영향과 그 문화 철학적 의미 -프랑스 데카르트 학파의 좌파 베일과우파말브랑슈를 중심으로-

        전홍석 동양철학연구회 2009 東洋哲學硏究 Vol.57 No.-

        本文從文化哲學的意義上如何去克服西歐中心主義幷摸索對策之角度, 對宋儒理學對17∼18世紀近代西歐啓蒙主義的影響問題進行了探討. 考慮到接受者的主體性立場, 着重闡述了法國啓蒙主義原形笛잡爾(Descartes)-卽左派的懷疑論進步主義者培爾(Bayle)和右派的護敎論保守主義者馬勒伯郞士(Malebranche)-對中國的認識. 他們基于笛잡爾哲學自身所包含的`革命性` 和`保守性`, 對以理學爲代表的中國非宗敎性理性主義文明, 采取了各自不同的立場與態度. 如果說培爾站在贊成的立場上把中國文明視爲理性世界之典範, 幷把他作爲批判和革新歐州守舊文化的堅强思想后盾, 那요馬勒伯郞士則站在反對立場上把中國文明定性爲極富威脅性的異端世界, 進而在維護 歐洲的神聖文化時, 把他作爲批判和攻格的對象. 由于兩者的闡釋突出了與啓示神學無關的中國之自然理性觀, 從而對歐洲啓蒙主義文人起到進步作用. 卽對法國的百科全書派引起巨大反響, 幷轉化爲法國的無神論和唯物論以及革命哲學, 最終成爲指導法國政治革命揭露宗敎虛僞性和打倒專制政治的思想基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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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氣) 철학자들의 우연성에 대한 성찰

        신정근 ( Jung Geun Shin ) 동양철학연구회 2007 東洋哲學硏究 Vol.52 No.-

        本文就是針對着氣哲學家們與偶然性較量的面貌的。從理哲學來看, 偶然性是被排除的領域又是超越價値的界線的地點。因氣哲學本身具有其變化及流動性而不像理哲學採取對偶然性敵視的態度。然而, 在與偶然性的較量之下, 各個氣哲學家都有各個的面貌。在這個論文, 筆者把議論的對象限定爲董仲舒、王充和王廷。這是因爲他們都在與偶然性較量的過程中表現出各個獨特的個性。董仲舒就主張開放的氣哲學, 以天意這個槪念還超越偶然性。王充借助于具有自己本身的完結性的氣哲學, 必然以命運論容納偶然性。王廷相就區分氣化與氣本, 在氣與理互相接收的過程當中, 還在超越其偶然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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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철학 본체 사유의 분화와 회복

        유운초,안병걸 동양철학연구회 2012 東洋哲學硏究 Vol.69 No.-

        槪而言之, 中國的本體論哲學相比西方哲學有兩個特点, 一是宇宙論與本體論混一, 二是本體論層面“有无合一”、“體用不二”的致思取向。 這兩個特点基本寬穿中國古代思想史的始終, 但是具體而言, 其間也發生了겁爲復雜的思想分化與統合。 單就本體范疇的邏雜進程而言, 從先秦時期到宋明時期, 這些演變可以大致總結爲兩点:一是宇宙論、本體論由混一而分離, 由分離又귀于合一。 二是由有无合一、體用不二而演變爲有无分裂、體用分離, 至宋明而重新趨于圓融。 宋明理學在一個更高的層次上實現了向先秦哲學的復귀。 此外, 還有一個겁爲重要的邏雜演進的特点, 就是對最高本體“自然而然”的根本特性發生了兩個理解的偏向, 道家以至玄學側重“无爲”, 孔孟乃至宋明理學側重“生生”之意, 此乃儒道兩家觀点分岐的根源所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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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철학(理氣哲學)의 세계관이 현대인의 철학으로서 갖는 특장(1) -인간학과 자연학의 통합체계-

        금기현 동양철학연구회 2011 東洋哲學硏究 Vol.67 No.-

        人間學과 自然學을 하나로 통합하여 하나의 철학사상으로 구성하는 점은 宋代이후로 새롭게 정립된 理學들 중 오직 性理學만이 갖는 특색이다. 성리학의 獨自的인 思惟노선은 北宋의 程이(정이)에서 시작되어 南宋의 朱熹(주희)에서 확정되며 조선조의 退溪李滉(퇴계 이황)과 栗谷李珥(율곡 이이)에 이르러 각각 하나의 완성된 체계를 낳는다. 필자는 宋代이래의 理學을 ``直貫系統(직관계통)의 理學``과 ``性理學``으로 兩分하고서, 性理學만이 갖는 인간학과 자연학의 통합성이 전통의 儒學界에서는 때로 哲學上의 논란을 낳기도 했으나 현대철학의 무대에서는 오히려 特長으로 계승해야 할 가치가 있음을 논의한다. 유럽의 近代科學이 들어오자 중국의 지식인들은 과학을 ``格物致知學``이라 명칭하면서 전통의 格物致知와 연계하여 여러 방향을 모색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格物致知는 갑자기 사라지고, 전통의 格物致知와는 無關한 ``과학``만이 전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그것과는 별개로 中國儒學의 현대화 과정에서는 직관계통 이학의 대표인 陽明學진영에서 ``良知自我坎陷說(양지자아감함설)``이 제시된다. 필자는 한편으로는 20세기의 과학철학(philosophy of science) 연구 성과를 참조하고 다른 한편으로 현대의 양명학 진영에서 나온 良知自我坎陷說을 참조하면서, 현대성리학이 인간학과 자연학의 통합체계를 모색할때 어떤 점들을 짚고 가야 하며 어디에서부터 기초를 닦아가야 하는지를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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