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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코비와 스피노자 논쟁

        최신한(Choi, Shin-Hann) 대한철학회 2014 哲學硏究 Vol.129 No.-

        이 논문은 야코비의 『스피노자 학설』과 이 책이 불러일으킨 '스피노자 논쟁'을 탐구한다. 이로써 야코비가 새롭게 파악한 '초월'과 '내재'의 연관을 드러내고 그 근대적 영향사를 추적한다. 야코비와 레싱의 논쟁을 재구성하고 이 논쟁의 영향을 받은 헤겔과 슐라이어마허를 각각 내재철학과 내재 속의 초월철학으로 해석한다. 레싱은 전통적인 신관(神觀)을 부정하는 대신 전일성(ἑν και παν)을 내세운다. 야코비는 이러한 레싱을 범신론자와 무신론자로 규정하고 그를 넘어서기 위해 도약(Salto mortale)을 주장한다. 이것은 레싱의 자연주의를 넘어서는 초자연성과 믿음을 향한 도약이다. 야코비와 레싱의 논쟁은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의 대립이며 무신론과 유신론 간의 논쟁이다.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의 대립은 야코비와 스피노자의 직접적 대결이기도 하다. 야코비는 스피노자가 근거와 원인을 혼동했다고 보고 진정한 신 개념은 근거와 원인의 통합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자연은 제약자의 총괄개념이라면, 신은 자연적 연관 바깥에 있는 자연의 절대적 시원이다. 스피노자가 자연적 연관에서 신을 파악했다면 야코비는 초자연적 연관에서 신을 파악한다. 스피노자의 '신 즉 자연'은 야코비에게 '인간 안에 있는 신'으로 바뀐다. 인간 가운데 자연적인 것을 넘어서는 능력이 주어져 있는데, 이것은 생명의 원리이며 모든 이성의 원리이다. 이를 수용하는 헤겔은 신을 생명의 주체인 정신으로 파악하고, 정신의 본질을 자기매개적 운동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스피노자를 능가하는 새로운 내재철학이다. 스피노자의 실체는 헤겔에서 주체의 내재적 운동으로 변경된다. 반면에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적 직관과 감정에서 유무한의 통합을 주장한다. 인간과 신의 결합은 유한자 가운데 내재하는 신적 속성에 대한 직관과 감정이 된다. 이것은 내재 속의 초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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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슐라이어마허와 스피노자 -"직관" 개념을 중심으로

        최신한 ( Shin Hann Choi ) 한국동서철학회 2013 동서철학연구 Vol.67 No.-

        이 논문은 슐라이어마허와 스피노자의 관계를 직관 개념을 매개로해서 밝힌다. 특히 『종교론』 에 나타난 스피노자의 상을 드러냄으로써 그와 관련된 난해한 문맥을 해명 한다. 슐라이어마허의 스피노자 수용은 야코비의 『스피노자 학설』 올 통해 이루어진다. 야코비에게 스피노자주의는 범신론이자 무신론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야코비를 통해 스피노자 의 전일성 사상을 수용하면서 이를 유신론으로 이해한다. 직관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간과 우주의 통합은 진정한 종교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이를 스피노자 의 직관지와 개념에 서 발견한다. 직관지는 상상력과 오성의 범위를 뛰어넘는 최고의 지식이다. 직관지와 종교적 직관은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나 직관지는 이성적 통합을 가리키는 반면 종교적 직관은 비합리적 통합을 지시한다. 슐라이어마허의 종교적 직관은 범신론의 혐의를 받아왔지만 이 논문은 이를 반비판한다. 종교적 직관의 대상이 외적 자연, 인간성, 무한자라면 이들과의 통합은 범신론이 주장하는 신과 세계의 단순한 일치와 구별되어야 한다. 슐라이어마허의 스피노자 수용은 칸트 이후 시대에 요구되었던 새로운 형이상학의 건립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Diese Abhandlung zielt darauf, die Beziehung zwischen Schleitemiacher und Spinoza mit Hilfe des Begriffs ckr Anschauung zu erhellen. Insbewrn sie erlautert den auf Spinoza bezogenen komplizietten Kontext, indern sie dessen Bild in Uber die Religion erklarl Schleieimicher rzipet1 Spinoza dumh Uber die Lehre des Spinoza von Jacobi. Der Spinozismus besagt fur Jacobi den Pantheismus und soniit thi Atheismus. Demgegenuber versteht Schleiermacher den Siinozismus als Theismus, inthn er Spinozas All-Finheitsgetianke annimit Bei ihrn ist die Vereinigung von Mensch und lJniversurn die wahre Religion. Schleiernacher findet diese Religion irn Spinozas l3egiiff des scientia intuitiva Scientia mtuitiva ist das hochte Wissen, das den Bereich dei- Phantasievorsteflung und des Verstandes uberschniteL Scientia intuitiva und die religiose Anschauung stinxnen irn Punkt der Vereinigung des Endlichen und Uneixilichen uberein. Aber wahrend scientia intuitiva die vernunfiige Vereinigung zeigt, bezeichnet die zeligiose Anschauung die in-ationale Vereinigung. Ich revithete den Verdacht des Pantheisrnus der uber die rehgiose Anschauung Schleiemiachers erregt worden war. Man muss zwischen dern Pantheismus, det- die lnharenz dci- Welt in Gott behauptet, wid der Anschauung als der Vetinigw-ig des lndividuunis nit uul3eier Natur, Menschheit und Unendlichern unterscheiden. Schleiemiachers Rezeption des Spinoza geht es urn the aufgeforderte Stiftung dcineuen neudn Metaphysik nach K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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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슐라이어마허와 가다머(Ⅱ)

        최신한(Choi Shin-Hann) 대한철학회 2004 哲學硏究 Vol.90 No.-

        이 논문은 해석학의 보편성 요구 문제를 중심으로 슐라이어마허와 가다머를 비교하며,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에서 지평 확대 개념을 발굴해 냄으로써 이를 가다머의 지평 융합 개념에 대립시키려고 한다. 가다머는 방법으로서의 해석학을 근본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해석학을 철학적 해석학으로 정립한다. 철학적 해석학은 이해 주체와 이해 대상의 구별을 지양하면서 이해의 사실을 - 존재로 규정되는 -언어에서 발견한다. 가다머의 의하면 이해될 수 있는 존재는 언어이다. 여기서 이해의 사실은 피투된 기투 내지 전통과의 대화라는 하이데거적인 구조 가운데 자리 잡는다. 따라서 가다머에게 이해는 그때마다 일어나는 이해 지평들의 융합으로 규정된다. 이 논문의 중심논제는 가다머의 지평 융합이 진정한 대화라기보다 전통이 수행하는 사변적이고 독단적인 독백이라는 사실이다. 가다머의 해석학에서는 그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산출할 수 있는 이해 주체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에서는 이해 주체의 반성이 관건이다. 이해 주체의 반성은 그때마다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개방하고 확대한다. 이해는 전통에 대한 개방성일 뿐 아니라 미래를 향한 개방성이기도 하다. 해석학적인 새로움은 반성과 비판 없이 생겨날 수 없다. 반성과 비판이 수반되지않는 이해에서는 오로지 옛것과 낡은 것만이 관철된다. 여기서 이해의 작용현실성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해석학에서 반성과 비판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하버마스를 통해 재차 강조된 바 있다. 그가 직접적으로 슐라이어마허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하버마스는 슐라이어마허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석학과 이데올로기비판의 문제성은 해석학과 비판의 문제성에서 유래한다. 이해의 사실은 과거를 통한 이해일 뿐 아니라 미래를 향한 이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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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과 도야 - 폭력 문제 해결의 한 가능성

        최신한(Choi Shin-Hann) 대한철학회 2008 哲學硏究 Vol.106 No.-

        이 글은 폭력의 현상을 인간본성과 연관해 설명하고 폭력의 끝이 가능한 지평을 모색한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폭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도야된 인간은 야기된 폭력을 해결할 수 있다. 폭력과 그 극복은 동일한 인간의 능력에 속한다. 이 논문은 폭력의 끝이 폭력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나 강제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폭력과 함께 하는 자유의 능력을 통해 달성될 수 있음을 논증한다. 이러한 논증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비추임의 논리이다. 이것은 폭력에 맞서는 또 다른 폭력 대신에 폭력과 함께 하는 자유를 드러낸다. 비추임의 논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사람의 의식 가운데서 바라보는 모순의 논리로서 여기에는 양 주체의 통합이 토대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통합의 유일 가능한 수행자는 바로 도야된 주체이다. 도야된 주체는 폭력의 조건 속에서도 인내로써 이웃사랑의 정언명법을 수행할 수 있다. 폭력 종식을 위해 요구되는 것은 강인한 내면을 형성하기 위해 초월과 접촉하는 일이며 이를 통해 늘 새로운 마음의 문화를 창출하는 일이다. 이 문화는 내면의 지평을 넘어서서 결국 이상적으로 구조화된 폭력 너머의 현실을 건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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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겔과 트렌델렌부르크

        최신한(Shin-Hann Choi) 한국철학회 2002 철학 Vol.71 No.-

        이 논문은 헤겔의 『논리학』에 대한 트렌델렌부르크의 비판을 ‘논리학의 직관 제약성’에 관한 논쟁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그 현대적 의미를 밝힌다. 특히 트렌텔렌부르크의 『논리 탐구』 가운데 ‘변증법적 방법’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난해 한 혜겔의 논리적 사유를 명료화하고,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관계’에 관한 헤겔적 사유의 현주소를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한다. 이 논문은 ‘논리학의 직관 제약성’을 ‘논리학의 시원과 직접성’, ‘논리학과 언어의 관계’, 그리고 ‘변증법적 방법과 체계’의 문제성들을 통해 고찰한다. ‘순수 존재’를 ‘순수 추상’으로 규정하며, 사고 형식을 언어 가운데 간직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체계의 완결을 개념의 운동을 통해서만 보증하려는 시도는 그 가운데 이마 직관과 언어와 이념의 전제를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물음과 만난다. 이들 문제성에 대한 탐구는 헤겔 내재적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관계’에 대한 헤겔적 사유의 현재적 의의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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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확실성

        최신한(Shin-Hann Choi) 한국철학회 2010 철학 Vol.0 No.104

        이 연구는 칸트 ‘이후’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한 야코비(F.H. Jacobi)의 사유를 오늘의 실재론 논의(Realismus-Debatte)와 연관시킴으로써 야코비 철학의 유의미성과 현재성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연구는 야코비의 사유를 『데이비드 흄』에 나타나 있는 ‘믿음’과 ‘확실성’의 개념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현대의 실재론과 연관 짓는다. 야코비의 인식론에서는 믿음과 확실성이 지식에 선행한다. 믿음은 지식과 행위의 토대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성에 토대를 두지 않는 지식은 믿음이며 따라서 이성에서 유래하는 확실성은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믿음과 확실성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비트겐슈타인의 사유와 흡사하다. 이것은 특히 『확실성에 관하여』에 나타나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사유이다. 주관적 확실성은 지식에 부합하지 않고 주관적 믿음에 부합한다. 바로 이 점에서 야코비와 비트겐슈타인은 동일한 생각을 한다. 지식은 주관적 확실성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철학자는 서로 교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차원에서 실재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 연구는 현대의 실재론 논의(직접적 실재론, 형이상학적 실재론, 의미론적 실재론)를 두 철학자와 연관시켜 탐구한다. This paper aims to reconstruct the concept of belief and certainty in F.H. Jacobi's David Hume and to illuminate his genuine thinking of realism in this work. For the point of epistemology Jacobi's concept of belief and certainty precedes the knowledge. Belief is the foundation of knowledge and activity. Knowledge grounded not in reason is belief. Therefore certainty from reason must arise from belief. Characteristic for this paper is that this concept of belief and certainty is compatible with Wittgenstein's concept of the same. His thinking in On Certainty indicates the similar one with Jacobi's. The subjective certainty does not cohere with knowledge but with subjective belief. Jacobi and Wittgenstein have in common the assertion that knowledge originates from the subjective belief. Here from is illumined that two philosophers without direct communication stand for the realism in the level of belief. At this point this paper discusses the contemporary debates on realism in relation to the concept of belief in Jacobi and Wittgenstein.

      • 의로움의 해석학: 슐라이어마허의 “의” (δικαιοσuνη) 개념을 중심으로

        최신한 ( Shin Hann Choi ) 한국해석학회 2013 해석학연구 Vol.31 No.-

        Diese Abhandlung zielt darauf ab, Schleiermachers Begriff der δικ αιοσuνη in Hermeneutik und Kritik auszulegen und diesen im Zusammenhang der heutigen Diskussion der Gerechtigkeit zu erblicken. Das Wort δικαιοσuνη im Neuen Testament kommt ursprunglich aus dem Alten Testament aus, obwohl ihrer Sinn eigentlich etwas anderes als in diesem zeigt. Der Geist des Wortes δι καιοσuνη im Neuen Testament besagt den erweiterten Sinn der Aufopferung und folglich das neue Verhaltnis von Gott und Mensch. Schleiermacher findet diese Bedeutunganderung in anderer Gebrauchsweise der δικαιοσuνη d.h. verknupfender und dialektischer. Damit unterscheiden sich die Gerechtigkeit Gottes und die des Menschen. Wahrend jene die aktive Verurteilung heisst, besagt diese die passive Rechtfertigung durch den Glauben. Diese Rechtfertigung ist nichts anderes als die Liebe Gottes. Somit hangt δικαιοσuνη im Wortgebrauch der Bibel im ganzen mit dem gesamten Leben zusammen. Die heutige Diskussion uber die soziale Gerechtigkeit konzentriert sich auf die Verteilung des Reichtums. Gerechtigkeit als Verteilung kommt eigentlich aus der Liebe und der Barmherzigkeit Gottes im Bezug auf δικαιοσuνη her. Schließlich liegen δικαιοσuνη und die soziale Gerechtigkeit gemeinsam in der allgemeinen Ebene im Sinne des gesamten Leb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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