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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근우회의 위상 변화 연구: 규약 개정을 중심으로

        윤효정 명지대학교(서울캠퍼스) 인문과학연구소 2022 인문과학연구논총 Vol.43 No.4

        This study examined how the status of Geunuhoe referred to as the united cooperation front of every woman had formed with comparisons of the rules of Geunuhoe decided in the inaugural meeting in May of 1927 and the revised rules passed in the temporary rally in July of 1928. Based on the rules, Geunuhoe was made a kind of an association of women intellectuals. However, Geunuhoe was transformed into the only women’s mass party, which was a type of the united cooperation front of women, with the revised rules. The revised rules of Geunuhoe was related to Singanhoe considered as the only national mass party. If only Geunuhoe intended to contribute to a part of the only national mass party, Singanhoe, it was good for it to escape from the association of a minority of women intellectuals. Therefore, the revised rules foreshowed changes of the activities of Geunuhoe; it surveyed the education level and occupations of its members as a spadework for embracing laboring women into Geunuhoe and responded to national issues with various social groups. Henceforth, it is needed to study detailed contents and alterations of activities of each branch of Geunuhoe for understanding concrete state of Geunuhoe movements. 이 연구는 1927년 5월 근우회 창립대회에서 통과된 근우회 규약과 1928년 7 월 임시대회에서 심의·결정된 개정 규약의 비교를 통해 전 여성의 단일협동전선이라는 근우회의 위상이 임시대회를 통해 형성되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창립시 규약에 근거할 때 근우회는 여성 지식인들의 협의체에 가까웠다. 그러나1928년 7월 임시대회에서 통과된 개정 규약은 이와는 달랐다. 개정 규약은 대중단체를 지향했다. 기본적으로 근우회의 본부 간부와 회의 의사결정은 각 지회에서 선출된 대의원들을 통해 회원들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구체화했고, 본부-지회 간의 위계가 명문화되었다. 즉 아래로부터의 의사 결정과 위로부터의지도가 체계화되었다. 또한 대중적인 단체로 근우회를 개편하고자 했던 개정 규약의 취지는 교양부의 폐지와 반(班)의 신설 조항으로 나타났다. 한편 근우회의대중단체로의 조직 개편을 지향한 개정 규약은 근우회의 신간회 운동 참여 문제와도 관련되었다. 민족유일당 신간회의 한 부문으로서 기여하기 위해서는 소수 지식인 중심성을 탈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개정 규약은 근우회의 활동 변화를 예고했다. 근우회 회원의 기초를 기층 여성에게 두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회원들의 지식 수준과 직업에 관한 조사가 수반되었고, 여러 사회단체들과함께 민족적 이슈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추후 규약 개정 이후 근우회 본부와 지회 간의 관계 변화와 각 지회 활동의 변화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여성의 단일협동전선으로서 근우회 운동상의 구축을 연구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 KCI등재

        여성주의 관점의 지역여성사 서술을 위한 제언 - 광주학생운동 전후 광주 지역 여학생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

        윤효정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2020 南道文化硏究 Vol.0 No.40

        This article aims to seek how to write local women’s history from feminist perspective with the subject of activities of female students in Gwangju at the time of Gwangju Students Movement. Local women’s history has been described mostly from compensatory or contributing perspective with female indepenent activists. However, there has been tries to describe local women’s history with women-centric view getting out of men-centric sight. It was clear to intend to write the women’s history in Gwangju from feminist perspective or with women-centric view, but the historiography was not free from men’s experiences. For example, the Society of Girls, the secret reading society created by female students, was described with the standard of the acts of male students in the previous historiography. I suggest the following as how to describe local women’s history from feminist perspective with the activities of female students in Gwangju. The first is to introduce a pattern of historiography of narrative, which emphasizes the subjectivity such as their decisions, intentions and behaviors of actors. The second is to pay attention to subjectivizing processes of the female students with deviating from gender norms ; in details, it is necessary to operate for giving meaning to the motives and processes for Park Gi-Ok, Lee Gwang-Chun and Amseonggeumja to transfer the ‘victims’ of the Incident at Naju Station into active main agents such as assisting in a student demonstration, leading to reject final exam and quitting the school and refusing the colonial education. This work is helpful to overcome previous understanding of stretching the historical meaning of the Society of Girls and standardizing the activities of female students based on the experiences of male students such as demonstrations planned by secret reading societies. 이 글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여성사 연구의 흐름 속에서 지역여성사 서술의 특징을 살펴보고 광주학생운동 당시 광주 여학생들의 행위를 소재로 여성주의 관점에 입각한 지역여성사 서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지역여성사 편찬에서 보충·공헌의 관점에 따른 여성 항일독립운동가의 발굴 작업은 눈에 띈다. 그러나 전반적인 여성사 연구의 성과와 발전 속에서 항일이라는 잣대를 주변화시키면서 여성의 경험을 여성의 시선과 입장에서 역사화하고자 한 시도도 확인된다. 광주 지역 여성사의 경우 여성의 능동적 모습이나 여성주의 관점을 적용하고자 했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그러나 광주학생운동 시기 광주 여학생 동향 서술에서 볼 때, 남학생의 활동과 경험을 기준으로 여학생 비밀독서회 소녀회의 역사적 위상과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로 인해 소녀회는 무리하게 학생대중운동의 틀 속에서 이해되었다. 따라서 여성주의 관점 실현을 위해 남학생의 대중투쟁이라는 경험틀에서 벗어나 있었던 여학생의 행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첫째, 행위주체의 주관을 중시하는 역사 내러티브 서술 방식을 제안했다. 역사 내러티브는 행위주체의 주관을 중시함으로써 여성을 주체로 삼는 역사서술에 적합하다. 둘째, 광주학생운동 당시 광주 여학생의 행위를 개인이 처한 젠더 규범에서 벗어나 주체화하는 과정으로 파악할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나주역 사건의 피해자로 이해되어 왔던 박기옥, 이광춘, 암성금자(岩城錦子) 등이 시위투쟁의 조력자, 백지동맹의 주도자, 자퇴를 통한 식민지 교육의 거부자 등 능동적 행위자로 전환하게 된 동기와 과정에 대한 주목과 의미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남학생들의 경험을 기준으로 했을 때 포착하지 못했던 여학생들의 경험을 역사화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 KCI등재

        조선일보의 중국 국공합작 지지 담론과 신간회 창립 지원

        윤효정 역사학연구소 2018 역사연구 Vol.- No.34

        이 글은 1926년 말에서 1927년 시기 조선일보의 중국국민혁명(이하 중국혁명) 담론의 내용과 역할을 검토했다. 이 시기 조선일보에서 중국혁명 담론을 생산한 이들은 비밀결사 흥업구락부와 조선공산당의 성원들로, 신간회 본부의 주도세력과 일치했다. 또한 편집과 발행 및 운영을 담당한 이들도 신간회의 간부들이었다. 때문에 조선일보는 국민혁명군의 북벌, 장제스 쿠데타, 국공분리 등 중국혁명의 변동 과정 속에서도 국공합작을 지지하는 일관된 담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세부적으로는, ▲북벌의 진전이 한창이던 무렵 국민혁명군의 승리를 가져온 주요 동인으로서 민중의 지지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1927년 4월 12일 장제스 쿠데타 이후에는 장제스와 우한 정부를 국공합작의 이탈자와 계승자로 대조시키는 방식으로, ▲국공분리 이후에는 국공합작을 파괴한 국민당이 중국 민중의 지지를 상실하리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국공합작 지지 담론을 생산, 유통했다. 조선일보의 국공합작 지지 담론은 장제스와 국민당(우파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중국혁명 담론을 형성했던 동아일보와 다른 지형을 창출했고, 1926년 말에서 1927년 신간회의 창립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This article examined the contents and role of the discourse on the Chinese National Revolution which was made by Joseonilbo toward the late of 1926 in 1927. In this period, the discoursers of Joseonilbo were members of Heungup-group and the Korean Communist Party which led the headquater of Singanhoe. In addition, the editor, issuer and managers of Joseonilbo were the leaders of Singanhoe. Therefore, they produced a consistent discourse in favor of Kuomintang-Communist Cooperation in China although there were so many events such as advancing north of the Chinese National Revolutionary Army(the CNRA), the military coup led by Chiang Kai-Shek on April 12, 1927 and Kuomintang-Communist Separation. In detail, they created a discourse in favor of Kuomintang-Communist Cooperation by how to emphasize on the encouragement of Chinese people to the CNRA, how to compare Chiang Kai-Shek to the Wuhan Governmrnt, describing the former as a destroyer and the latter as a successor of Kuomintang-Communist Cooperation after the coup and how to stress that the Chinese Nationalist Party would lose popularity as they broke up the Cooperation. The discourse of Joseonilbo on the Chinese National Revolution differed from it of Dongailbo in favor of Chiang Kai-Shek and played an essential role, finally, in supporting Singanhoe.

      • KCI등재
      • KCI등재

        신간회 운동의 비타협적 성격 재론

        윤효정 호서사학회 2022 역사와 담론 Vol.- No.104

        이 연구는 비타협적 운동, 즉 ‘반자치 항일운동’으로 이해되어 온 신간회 운동의 성격을 재검토했다. ‘합법정치운동’의 맥락에서 신간회 운동을 제의한 일련의 연구들은 신간회의 비타협적 성격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 또한 지회에 참여한 공직자, ‘지역유지’ 등의 검출 역시 신간회 운동의 본질적 성격을 묻고 있다.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이외에도 지회에 참여한 공직자, 지역유지 등은 일제의 식민 통치 영역 내의 존재로 신간회의 비타협성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와 같은 지회 참여 인사들의 넓은 범주는 신간회가 수행한 활동에 접근하는 방식의 변경을 요구한다. 필자는 신간회 운동의 새로운 이해를 위한 핵심어로 ‘민족동권(民族同權)’을 제안했다. 민족동권 개념은 현실의 식민지 체제를 일시적으로 인정한 속에서 지배민족으로서 일본인과 약소민족으로서 조선인의 법적 동등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는 조선 민족의 법적 권리 획득을 위한 공론 형성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성은 취약했다. 그러나 민족동권 운동은 문화통치의 기만적인 식민 지배 미화론을 타격했다는 점에서 식민지 체제와 길항 관계에 있었다. 즉 그것은 체제 균열적인 성격을 지녔다. 향후 민족동권을 핵심어로 한 신간회 운동상의 구축을 위해서는 다음의 과제가 필요하다. 첫째, 지회 차원에서 전개된 여러 활동에 대한 조사와 체계화이다. 즉 그간 주변화되거나 경시되었던 활동 사례들을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지회 설립 이전의 사회운동 상태, 지역 주민들의 동향, 지방 통치 당국의 대응 등 지역 사회의 구체적인 조건과 특징 속에서 각 지역에서 전개된 민족동권 운동의 특징과 성격을 상세하게 분석해야 한다. 체계화된 다양한 지회 운동의 사례가 뒷받침될 때 반자치 항일의 비타협적 운동상을 넘어 식민지 체제 균열의 민족동권 운동상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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