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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ㆍ중국ㆍ일본의 地理志의 편찬과 발달

        楊普景 誠信女子大學校 韓國地理硏究所 1996 應用地理 Vol.- No.19

        지리지는 과거 동양 사회의 정신적인 특징의 하나로 꼽힌다. 지리지는 조선 사회를 지배하 고 있던 성리학이라는 철학적 관점과 동양 사회에서 성립된 중세적인 지역 연구 방법이 상 호 결합하여 산출한 지리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리지는 단순한 지명자료집·행정자료집 으로 평가하기 보다 일정한 지리사상이 반영된 지리학의 한 분야로 생각할 수 있다. 지리지 는 조선 시대의 사람들, 나아가 동양권의 사람들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성격과 특 징을 추출, 표현하고자 했던 방법이며, 이러한 점에서 지리학의 중요한 내용이 된다. 지역의 실태와 구조를 정리하는 작업은 지리학의 주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광의의 지리지는 수록 대상과 내용에 따라 全國地理志(輿誌), 邑誌, 外國志, 山川志, 紀行 및 日記類, 기타 雜志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리지라고 할 경우 협의의 지리지 를 지칭한다. 협의의 지리지는 지역적 범위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와 편찬자를 기준으로 하 는 경우에 따라 더욱 세분된다. 지역적 범위와 대상에 따라 협의의 지리지를 분류하면 全國 地理志(輿誌)와 邑誌로 나뉘며, 邑誌는 다시 道誌·郡縣誌·村洞面誌·鎭營誌·邊防誌 등으 로 나뉘어진다. 한편 지리지는 편찬주체에 따라 官撰地理志와 私撰地理志로 구분된다. 동양 삼국의 地方志는 체제와 형식, 내용 면에서 많은 공통점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기본이 된 것은 중국의 지리지였다. 각국 지리지의 특징을 비교하여 봄으로써 결론에 대신하 고자 한다. 첫째, 삼국의 地方志는 편찬 단위가 다르다. 이는 지방 행정 제도의 차이와 국토면적의 크기 의 다름에서 연유한다. 우리나라 경우 읍지는 대부분 한 읍을 단위로 하여 편찬되었다. 지방 행정 단위는 府·牧·郡·縣 등 邑規模의 차이와 행정 서열은 있으나 각기 道 밑에 독립 적·병렬적으로 예속되어 있다. 따라서 邑誌라는 명칭하에 一邑이 一邑誌를 구성하여 1種의 邑誌가 1冊을 이루는 경우가 많고 상세하다고 하는 私撰邑誌도 5冊 이상의 분량을 가진 것 은 매우 드물다. 郡縣誌 외에 한 道의 소속 읍을 모두 수록한 道誌가 多冊으로 구성되어 있 으나 中國이나 일본처럼 100여책에 이르는 읍지는 없다. 이에 비해서 중국은 행정 제도가 중첩적인 관계로 인하여 州誌·府誌라 하더라도 그 안에 몇 개 顯의 縣誌를 포함하고 있으며, 최하위 행정 단위인 縣의 규모도 數萬戶에 달하므로 1 種의 邑誌의 분량이 상당히 많다. 일본은 봉건제도를 취하고 있었으므로 봉건 장원인 藩(大名領)을 단위로 하여 작성된 地方 志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그 내부에 포함된 郡·村의 地方志가 수록되어 있다. 둘째로 항목과 내용에서의 상이점이 발견된다. 이는 각국의 지역적인 특징과 邑誌 편찬자 및 이용자의 성격의 차이에 기인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는 「烽燧」·「牧 場」·「姓氏」·「邑事例」등의 항목이 독특한 내용이다. 군사적 시설이 서로 다르며, 氏族 에 대한 관념이 중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말기에는 事例가 중시되어 地方志의 성 격이 변화하고 있음도 주목된다. 中國의 경우에는 「祥異」(혹은 災害)조를 별도로 설치하여 지진이나 서리·旱災·낙석·메 뚜기(蝗)·大水 등의 자연재해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치수와 운하 등 수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지역에 따라 편목명은 차이가 있으나 「조운지」「운하편」「하목편」「수리지」등 의 편목을 따로 설정하는 등 수리에 관한 내용이 중시되고 있다. 人物 관계 항목 주에는 「方伎」(의학기술 관계), 「仙釋」(道佛 관계) 등도 빠짐없이 수록되어 中國의 독특한 사회 분위기를 시사한다. 일본의 地志에는 「神社」의 항목이 祀祠를 대신해 편입되어 있는 점을 통해 일본 특유의 종교적 정신적 세게를 엿볼 수 있으며, 寺院에 대한 풍부한 기록은 불교의 흥융을 나타낸다. 「人物」조가 없는 地方志도 있는 등 항목의 수가 간략하고 내용도 간단한 경우가 많으며 「風俗」등의 항목이 비교적 상세하다. 또한 일본에서는 遊覽記나 여행을 위한 案內記 名所記類가 다수 편찬된 것이 특징이다. 案 內記 名所記 道中記 巡覽記 등은 민간 신앙의 대상이었던 社寺靈場, 庶民四季行樂의 유람지, 詩歌이 명소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圖畵 및 詩歌俳句의 삽입이며 후기의 名所圖會류는 寫生的 風景畵를 주로 하고 그것에 지리적 사항을 기재한 것으로 지리적 취미 와 實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셋째로 표현 형식의 문제이다. 중국과 한국은 지리지를 漢文으로 기록하였다. 한국에서는 19 세기 말에 國漢文混用體로 쓴 지리지가 대두하었다. 일본에서는 18세기 이후가 되면 한문형 태로부터 벗어나 日漢混用文도 출현하였다. 특히 안내기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종류에서 현저하다. 넷째로 地方志의 源流 형태인 圖經·古記·風土記류 이외에 전형적인 地方志 체체가 확립되 는 시기에서 차이가 난다. 中國에서는 12세기 후반경 北宋末∼南宋初에 地方志 체제가 정립 되었으며, 한국은 16세기 후반, 일본은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地方志 체제가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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