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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和諍과 蕩平은 어떻게 상대주의를 넘어서는가?

        안효성(Ahn, Hyo-Soung),김원명(Kim, Won-Myoung) 새한철학회 2015 哲學論叢 Vol.81 No.3

        이 논문은 원효(元曉) 의 화쟁(和諍)과 정조(正祖)의 탕평(蕩平)이 상대주의를 넘어서는 논리적, 원리적 구조에 대한 연구이다. 화쟁과 준론탕평(峻論蕩平)은 대립과 갈등을 화해시키고 최대한 다양성을 살리면서도 결코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원적 공존과 통합을 매우 이상적으로 조화시킨다. 화쟁에서는 부처의 깨달음인 일심(一心)이 바탕이 되고, 탕평에서는 성왕(聖王)의 주권인 황극(皇極)이 바탕이 됨으로써 양자 모두 그것이 가능해진다. 일심은 이론적이고 깨달음적인 바탕이고 황극은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바탕이다. 이 차이가 화쟁과 탕평의 공통된 원융회통성(圓融會通性)에도 불구하고 화쟁의 불교적인 특징과 탕평의 유교적인 특징 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가 논문에서 수행될 것이다.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hwajaeng(和諍, Harmonization) of Wonhyo(元曉) and Tangpyoung(蕩平) of Jungjo(正祖). And they are the study of the logical structure and principle to overcome relativism. Hwajaeng and Tangpyoung eliminate confrontation and conflict. And to maximize diversity. However, they do not fall into relativism never. Rather, they are the most ideally harmonizes by making be able to coexist and integrate everything. One mind (一心) is the enlightenment of the Buddha. Whangkeuk(皇極) is the sovereignty of a sage king. Since One mind moves the Hwajaeng and Whangkeuk move the Tangpyoung, not both fall into relativism. One mind is theoretical and enlightenment of. Whangkeuk is political and ideological. This difference makes the Buddhist features of hwajaeng and does Confucian characteristic of Tangpyoung. Because of this, despite the two have in common(圓融會通), they are different. A detailed discussion about this will be done in this paper.

      • 정조탕평책(正祖蕩平策)의 공공성(公共性)과 공론정치(公論政治)의 좌표(座標)

        안효성 ( Hyo Soung Ahn ) 한국해석학회 2015 해석학연구 Vol.36 No.-

        본고는 조선(朝鮮) 정치의 특색을 고려한 정치철학적 관심을 투영하여 ‘공공성’과 ‘공론정치’의 지평에서 정조(正祖)의 탕평책에 접근하여 그 내용과 성격, 그리고 가치 위상을 규명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하였다. 단 조선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고 조선에서 인정되는 공공성은 성리학적 가치였다. 공론 또한 유교적 천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본고는 조선의 정치이념이나 정치현실 속에 존재하는 공공성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공공성 개념을 한정적으로 적용하였다. 공공성의 극대화를 꾀하는 조선의 공론정치는 한나 아렌트가 구분하는 ‘진리의 정치’와 ‘의견의 정치’의 속성이 혼재된 형태이다. 따라서 본고는 한나 아렌트의 정치 구분 도식을 사용해 정조의 탕평책이 가진 원리와 그것의 전개 양상을 분석하였으며, 그 결과 정조의 통치 전반기에는 준론탕평이 의견의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긍정적인 측면이 돋보이고, 통치 후반기에는 탕평의 중심축인 황극주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진리의 정치로 치우치는 준론탕평의 퇴색적 측면이 두드러짐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볼 때, 정조의 준론탕평책은 원리적으로는 원융(圓融)의 공공성과 자유로운 공론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묘책이지만, 공론장의 중심에 권위적 황극을 두고 있는 한, 황극의 절대화가 강화되고 그 황극이 공론과 정치를 주도하면 할수록 현실의 공론정치는 와해되고 공공성이 제약된다는 역설적 측면을 안고 있다. 정조가 구상한 탕평의 공론정치는 유림(儒林)이 원래적으로 추구했던 공론정치에 비했을때, 이념적으로는 공공성의 폭과 깊이가 더 넓고 심오하며 나아가 논쟁적이면서도 평화적인 공론정치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공론의 활성화를 억누르는 반정치적 성격이 강한 나머지 시혜적공공성을 제외한 공공성의 다른 측면들은 심하게 위축시키는 경향이 있다. This paper has studied Tangpyoungchaek of King Jeongjo in terms of ‘publicness’ and ‘public opinion politics’, reflecting the characteristics of Chosun politics and interests of political philosophy. Furthermore, its aim is to clarify the content and the nature and value. However Chosun is was not a democratic country. The neo-confucian values had been recognized as publicness in Chosun. In addition, public opinion was to determine the Confucian Natural Law. Therefore, this paper was to limit concept of the publicness, taking into account the specificity of the publicness in political philosophy and political realities that exist in Chosun. Public opinion politics of Chosun to pursue the maximization of publicness was mixed form of “politics of truth” and “politics of opinion”, in accordance with the classification of Hannah Arendt. Therefore, this paper analyzed the principle and its developments with the Tangpyoungchaek of King Jeongjo with the political scheme of Hannah Arendt. In the first half of the reign of King Jeongjo, Hardline Tangpyoung had activated the politics of opinion. It is the positive side. In the second half of the reign, Whangkeuk sovereignty has been overemphasized the central axis of Tangpyoung. This was biased to the politics of truth. And it was faded aspects of Hardline Tangpyoung. Hardline Tangpyoungchaek in principle is the ideal trick that can achieve the free public opinion politics and harmonious publicness. However, since the heart of the Tangpyoung public sphere is authoritative Whangkeuk, when Whangkeuk is Absolutized, public opinion politics of reality is breaking down and publicness is constrained. This is a paradoxical aspect. Public opinion politics of King Jeongjo compared to public opinion politics of Youlim have the following characteristics. At Idea it revive the public opinion politics and maximize the publicness. However, in practical sides of which a strong anti-political nature is to suppress public opinion. Therefore, another aspects of the publicness except passive publicness are severely daunted.

      • 正祖와 皇極蕩平政治의 公共性

        안효성(Hyo soung AHN)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문화연구소 2014 철학과 문화 Vol.29 No.-

        유교왕국 조선에서는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치열했다. 군신공치(君臣公治)는 정치적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조선의 공화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조는 전통적인 군신공치가 아닌 왕권 중심적 정치를 통해 공공성을 회복시키고자 했다. 그 방법과 원리는 정조식 탕평, 이른바 준론탕평이다. 정조의 탕평은 혼란과 갈등을 유발하는 논리와 주장들을 평정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탕평은 그러나 모든 의견들을 단일한 한 가지로 통일시키려 하지 않고 다양성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궁극의 도(道)와 평화에 도달하게 한다. 배타적 진리의 독점 반대, 언어와 토론의 적극적 역할인정, 자기모순을 최소화한 의견의 완성이 준론탕평의 특징이다. 그런데 정조의 탕평에는 문화와 정치의 절대 중심인 황극이라는 중심축이 존재한다. 황극은 군사일치(君師一致)의 유교적 성왕(聖王)이었고 무엇보다 정조 자신이었다. 탕평이 다양성을 보존하면서도 극단적 상대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분쟁 해결력을 가지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확실히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개인과 공동체,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함께 살리고 아우르는 '공공성'과 가깝다. 다만 정조의 탕평은 중심축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시비를 판단하는 권위적 공공이므로 완전한 다원적 평등은 될 수 없다. Chosun, the Confucian monarchy, had fervent debates on the publicness. It was also for the realization of the publicness that the monarch made a political partnership with lieges. It was different from traditional partnership in that it confers more active role on the royal authority. This is the idiosyncrasy of King Jeongjo's stern Tangpyoung. Its purpose was to synthesize all prevalent logics and arguments in the society and to ultimately alleviate disarrays and conflicts. The synthesis is not through a simplistic unification of different ideas but through intense competition of ideas, which leads to the ultimate Tao and peace. The stern Tangpyoung is distinguished by the resist against the monopolization of truth, appreciation of the active roles of linguistics and discussion, and the minimization of discrepancy. At the very core of this Tangpyoung is Whangkeuk. Whangkeuk is Confucian seongwang, King Jeongjo himself. Due to this powerfulness of the core, Tangpyoung policy was able to preserve the diversity of ideas and resolve the conflict without falling into the trap of extreme relativism or nihilism. This principle assuredly resembles the publicness of nowadays which seeks the balance between individuals and communities and the modern and the postmodern. That said, King Jeongjo's Tangpyoung does not reach the full-fledged pluralistic equality since it is an authoritarian publicness where the core, the royal authority, makes aggressive interventions and judgments.

      • KCI등재

        정조의 탕평 소통 리더십과 민주 시대의 사이-소통 리더십

        안효성(Ahn, Hyo-soung) 원광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7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Vol.18 No.2

        본고는 정조 임금의 탕평정치를 리더십의 관점에서 조명함으로써 한국의 정치 사회에서 소통과 공공성을 최대한 온전하게 회복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바람직한 통치 리더십의 원리와 방식을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조는 지금의 한국이 처한 상황과 너무도 유사했던 18세기 조선의 위기를 돌파하고 소통과 공공성의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었던 통치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초당파적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인사정책을 단행하고, 엄준한 도덕적 태도와 합리적인 정치 논리를 견지하는 준론(峻論)들을 중용하여 막힘없는 의견의 개진과 토론을 허용한 정조의 ‘준론탕평’은 이념적으로 경직된 조선 사회의 한계 속에서도 다양성을 공존시키고 적극적인 소통과 화합을 실현함으로써 조선에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이는 소위 ‘의견의 정치’를 열어주는 소통의 통치 리더십이 좋은 정치와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정조의 탕평정치에는 진리적 표준을 세우는 권능적인 군주가 탕평의 주체로 설정되는 ‘황극탕평’의 이념이 준론탕평의 원칙과 공존한다는 모순이 있다. 이 때문에 정조는 진리의 심판자를 자처하면서 자유롭고 창발적인 의견의 정치를 억압하는 반소통적이고 독단적인 ‘독재적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것은 정치 시스템을 무용하게 만들었고 정조 사후 조선의 몰락을 앞당기기도 한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측면은 우리가 회피해야 할 정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정조의 리더십이 보여준 준론탕평의 긍정적 측면과 황극탕평의 부정적 측면은,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의견의 정치’를 열고 사회적으로 ‘공공성’을 크게 증대시킬 수 있는 통치 리더십이란 ‘토론하고 논쟁하는’ 소통을 허용하며 구성원들 간에 소통이 막힘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사이-소통’의 리더십임을 지시한다. This paper aims to seek the principle and methods of desirable governing leadership that could recover the communication and publicness as wholly as possible and develop in Korean political society by examining the King Jôngjo"s Tangpyông politics from leadership point of view. Jôngjo was the king with governing leadership who broke through the crisis in 18th century Chosôn which is quiet similar to current situation in Korea and improved communication and publicness level. Jôngjo"s Junlon Tangpyông which carried out unpartisan personnel management policy, selected Junlons who held strict ethical attitude and rational political logics to approve free statement of opinion and discussion has led to diversity in stiffened limits in Chosôn society, realization of aggressive communication and harmony and brought about the renaissance of Chosôn. This confirms that leadership of communication activating "politics of opinion" is the core motivation of good politics and development of state. However, in Jôngjo’s Tangpyông politics, it has contradiction between ideas of "Whangkûk Tangpyông" which sets charismatic king who establishes truth based standard as the subject and "Junlon Tangpyông". Thus, Jôngjo consider himself as the judge of truth while sometimes show "autocratic leadership", the counter-communicational and dogmatic leadership suppressing politics of free and critical opinion. This caused futility of political system and it could be one of the causes leading to fall of Chosôn after the death of Jôngjo. This tells us what political leadership should we try to avoid. Positive aspect of Junlon Tangpyông and negative aspect of Whangkûk Tangpyông displayed by Jôngjo’s leadership indicates that democratic "politics of opinion" and governing leadership which could enhance the "publicness" of society refers to leadership of "inter-communication" allowing "discussing and arguing" communication, and helping the fluent communication among the members of the society.

      • KCI등재

        공자 철학에서 `서(恕)`의 의미와 지위

        안효성 ( Ahn,Hyo-soung )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정치연구소 2016 글로벌정치연구 Vol.9 No.2

        본고는 『논어』의 텍스트적 고찰을 통해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일`이 `서(恕)`라고 주장한다. 본고는 『논어』에서 `충(忠)`이 서술어적 용법 및 형용사적 용법으로 쓰인 용례가 있음을 확인하여 `일이관지` 대목의 충서를 통상적 해석과 달리 읽어야 할 문법적 타당성을 입증한다. 그로써 서의 뜻을 분명히 한 다음, 인(仁)과 예(禮)와 서 사이의 관계와 의미를 밝혀 공자 철학의 본래적 구조가 무엇인지를 밝혀낸다. `충서`는 `충`과 `서`가 아니라 `충`한(충실한) `서` 또는 `서`를 `충`(충실히/절실히) 하는 것일 확률이 크다는 것이 본고의 통찰이다. 즉 충은 `자기에의 충실`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개념어로서 서와 나란히 하는 것이 아니라, `서`를 꾸며주는 수식어 내지는 서를 목적어로 갖는 술어적 명사(동명사)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볼 때라야 다른 사상 학파와 변별되는 공자 유학 특유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심과 공동체적 실존주의의 성격이 원리적인 측면에서 더 간명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The treatise, by textual analysis of the < Analects >, will prove that the “one” bespoken of by Zeng Zi(曾子) reflects only a single concept of “reciprocity(shu, 恕)”, and confirm cases where “loyalty(zhong, 忠)” was actually used as a adjective and narrative, thus opening it up to textual reinterpretation. This will thus clarify the real meaning of shu(恕), and its relation with “humanity(仁”) and “rite (禮)”, thus elucidating the actual philosophical construction of Confucian thought. Given this possibility, it is not far-fetched to cast the shadow of doubt as to whether the “One” concept actually represents zhong(忠) and shu(恕). My treatise challenges the long-held view, and posits that the word zhong(忠) may be an adjective, that urges one to “faithfully” perform acts of “shu(恕)”. In other word, the character “zhong(忠)” is not an independent concept, but one subordinated to the idea of “shu(恕)”.

      • 이기상의 생명사건학 개략 -하이데거 존재사건학의 한국화-

        안효성 ( Ahn Hyo-soung ) 한국하이데거학회 2012 존재론 연구 Vol.29 No.-

        한국의 대표적인 하이데거 연구자 이기상은 그의 후기 연구에서 한국적인 현상학, 한국적인 해석학을 수립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는 서양의 이성 중심적 사유태도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권의 사유에 귀 기울일 필요를 역설하고 존재의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존재사건(Ereignis)에 주목하는 하이데거의 후기사유를 계승한다. 한편 무(無)ㆍ공(空)ㆍ허(虛) 등의 비존재적인 것을 중시하며 변화와 생성을 실재적인 것으로 간주했던 사유태도, 뭇 생명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명을 살리면서 살아가려 한 살림살이적 삶의 태도는, 서양의 인식론적 진리와는 구별되는 동양의 전통적인 진리사건이다. 이기상은 이 독특한 진리사건을 생명학적 진리로 이해하면서 하이데거의 존재사건학을 한국적인 ‘생명사건학’으로 변용시킨다. 이 철학적 작업은 평가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이 논문은 이러한 이기상의 ‘생명사건학’의 탄생 배경과 발전 과정, 그 개념의 얼개, 그리고 지향점과 의미의 대략을 다룬다. Lee Ki-sang, Korea’s leading researcher on the philosophy of Martin Heidegger, has devoted his recent research towards the establishment of uniquely Korean phenomenology and hermeneutics. Lee seeks to move away from western focus on reason and has stresses that modes of thinking in different cultures be given equal attention. In this, he continues Heidegger’s later philosophy that emphasized actual workings of existence, or ‘ereignis’ in German. On the other hand, in contrast with truth in western epistemology, there is a traditional of thought in the East that emphasized such intangible concepts as ‘nothingness(無)’, ‘void(空)’, ‘emptiness(虛)’; and considered change and creation as real phenomena. This also manifests as a different attitude of living, where importance is given to all life and efforts are made toward their continuation, summed up in the term ‘salimsari.’ Lee understands this unique ‘ereignis’ as ‘life-logical truth,’ and transforms the Heidegger’s ereignis into a Korean event of life. This series of philosophical efforts by Lee Ki-Sang deserve greater attention than it has been given hitherto, and this study provides the background for the formation of Lee’s discussion on event of life, the process of its development, its conceptual framework, and a general summary of its direction and meaning.

      • 음양이론의 상징적 상상력

        안효성(Ahn, Hyo-Soung)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문화연구소 2009 철학과 문화 Vol.18 No.-

        The dual image of night and day, known in eastern philosophical parlance and the yin and the yang, are the two fundamental archetypes of all the symbols used to comprehend hour 'being'. Recently, some scholars have even claimed that the first human comprehension was not based on the notion of one whole, but a concept of two. In this treatise, I will seek to highlight the Chinese yin-yang philosophy (which I believe is a product of a profound 'imaginative' philosophy concerning the archetype of the yin-yang) under the premise that 'imagination' precedes 'thought(reasoning)', in accordance with the framework of symbolic imagination. The yin-yang philosophy represents a very advanced theory of comparative, dualistic archetypes, and has become the basis for not only Chinese but East Asian philosophy. It is intimately related with the fact that Chinese thought and modes of expression adopted symbolism as its fundamental characteristic, a characteristic brought on by a combination of the use of ideographic Chinese characters along with the world view that regarding all objects as living, synthetic, and organic. As expressed in the well-known symbol called the taiji, the yin-yang theory is based on a system of two concepts juxtaposed but coming together to form a single whole, basically a concept of a single whole with two dimensions, which I will describe it as dualistic monism. If that(duality of one) is indeed true, than how does the two dimensions of the whole interact, remain in opposition, and change? The explanation of the principles said to drive the process were often posited upon material factors such as the five elements (not unlike the four elements), but in this treatise, I shall content that the dynamism of the yin and the yang are not driven by external factors, as the yin-yang is sufficiently self-dynamic to propel the process itself. In other words, the yin-yang already contains as a latent mechanism a dynamic for change. This is something that can be confirmed by traditional texts, and in this treatise, evidence for my argument will be provided by purview of the taiji and the monistic qi mechanism, along with yin-yang symbols from the Book of Changes and the mechanism of the trigrams and the hexagrams they form. 낮과 밤의 대립된 두 개의 이미지, 동양적으로는 ‘음양(陰陽)’으로 압축할 수 있는 두 개의 이미지는 우리가 존재를 이해하는 몇 가지 원형들 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인 원형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최초의 존재 인식은‘하나’가 아니라 ‘둘’이라고 보는 최근의 학자도 있다. 우리는 상상력이 사유 보다 앞서는 것이라는, 훨씬 자유로운 것이라는―그러나 상상력에는 어떤 법칙이 있다―전제 하에서 음양의 원형을 놓고 심원한 상상력의 철학을 구사한 중국의 음양이론을 ‘상징적 상상력’의 구도 위에서 조명할 것이다. 이원대비적 원형 이론은 중국의 음양이론에서 매우 발전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중국철학 나아가 동양철학의 기초가 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중국적 사유와 표현방식이 상징성을 근본적 특성으로 갖는 특수함과도 관련이 있다. 한자라는 문자적 요인, 사물을 생명적·유기적·총합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물관 혹은 우주관적 요인이 그러한 특수성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음양이론은 유명한 태극 도식[☯ 또는 ☯]이 드러내 보이고 있듯이, 음양이 대대(待對) 관계에 있되 그 둘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또는 통일적 존재인 하나의 다른두 차원이라는 주장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그것은 이원적 일원론이라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이 두 개의 차원은 어떻게 서로 호응하고 대척하며 변화해 나가는 것인가? 이 두 차원을 움직이는 힘 또는 이 두 차원이 움직여 가는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해명으로 보통은 ‘오행’이나 ‘사원소’와 같은 질료적 요인에 의존 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음양의 역동성을 음양 외적 요인에서 찾지 않으려 한다. 음양은 충분히 자기 역동적이다. 음양은 만변하는 역동성을 자기 안에 자기 기제적으로 갖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전통적인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태극(太極)과 기(氣)일원론적 기제 및『주역』의 음양부호[--/−]와 괘효(卦爻)적 기제를 살펴봄으로써 이에 대한 논증과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 KCI등재

        원효의 화쟁과 정조의 탕평 비교 연구

        안효성 ( Hyo Soung Ahn ),김원명 ( Won Myoung Kim ) 한국철학사연구회 2015 한국 철학논집 Vol.0 No.45

        요즘은 여러 학문의 통섭(統攝)을 요청하는 시대이다. 본 논문에서 우리는 통섭적 전거를 우리 역사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즉 원효(元曉, 617-686)와 정조(正祖, 1752-1800)에 주목하였다. 우선, 원효와 정조 시대에 그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청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다음으로 그 시대적 요청에 따른 그들의 응답이었던 원효의 화쟁과 정조의 탕평을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맺는 말에서 화쟁(和諍)과 탕평(蕩平)의 가치와 한계를 설명하였다. 본 논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그들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일 것이다. 그것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즉 두 가지 모두 혼란과 갈등이 유발되는 논리와 주장들을 조화롭게 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모든 의견들을 단일한 한가지로 통일시키려 하지 않고 각각의 일리를 인정하며 만사를 아우른다. 화쟁에는 불교의 대승(大乘)적 바탕이, 탕평에는 유가의 대동(大同)적인 바탕이 있음으로 인해, 다양성이 인정되고 다시 그 다양성들이 경쟁하면서도 각 주장들의 논리들은 하나[一]로 그리고 도(道)로 귀일한다. 그들 간에는 근본적으로 불교와 유교라는 큰 차이가 있다. 불교와 유교의 차이만큼 화쟁과 탕평 양자에게도 그 차이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원효 화쟁의 중심축은 일심(一心)이고, 정조 탕평의 중심축은 황극(皇極)이다. 그것들은 각각 불교와 유가에서 근원적 중심축이라는 의미에서 동일 성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조의 탕평은 중심축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시비를 판단하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이라면, 원효의 화쟁은 개입과 시비 판단을 초월한―그것을 하지만 하지 않고 하지 않으나 하는―원융회통이 라는 차이가 있다. In this paper, we investigated comparative study of Wonhyo(元曉, 617-686)`s thought with King Jungjo(正祖, 1752-1800)`s thought. First, we explained Wonhyo`s One mind(一心) and Hwajaeng(和諍). Second, we King explained Jungjo`s Tangpyeong(蕩平), Whangkeuk(皇極). Last, we explained value and limitations of harmonization in their thoughts.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are as follows: ①Similarities of Wonhyo`s Hwajaeng and Jungjo`s Tangpyeong are as follows: They made in harmony the logic and arguments which cause confusion and conflict. They do not unify different arguments in one at the same time. They are based on the Mahayana(大乘) thought and the Daetong(大同) thought which affirm diversity and the ultimate one. ②Differences of Wonhyo`s Hwajaeng and Jungjo`s Tangpyeong are as follows: As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Hwajaeng and Tangpyeong, One mind(一心) and Whangkeuk. In Tangpyeong and Whangkeuk, there are harmonious in a judgment and an active involvement. In Hwajaeng and One mind(一心), there is harmonious beyond a judgment and in an inactive involvement.

      • KCI등재

        정조(正祖)의 『대학(大學)』 혈구정치관(絜矩政治觀)에 대한 판단이론적 고찰 ― 한나 아렌트의 정치판단이론을 적용하여 ―

        안효성 ( Ahn Hyo Soung ) 온지학회 2018 溫知論叢 Vol.0 No.56

        이 논문은 『대학(大學)』 전(傳) 10장에 등장하는 혈구지도(絜矩之道)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한 정조(正祖, 1752~1800)의 정치관, 곧 혈구정치관(絜矩政治觀)의 사상적 특징을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의 정치판단이론을 적용해 고찰하는 연구다. 휴머니즘적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볼 때, 정조의 혈구정치관은 일면 아렌트의 정치판단이론과 일맥상통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하다. 『대학』의 이론 요점을 명덕(明德)으로 『대학』이 제시하는 정치판단의 원리를 혈구로 간주하는 정조는, 혈구를 할 수 있는 근원을 명덕으로 이해하며, 또한 명덕은 곧 본심(本心)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그는 혈구정치를 잘 실천할 수 있도록 본심을 키우는 공부 비법으로 ‘활법活法)’을 제안한다. 그런데 그 내용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정조의 명덕 본심, 혈구지도, 활법의 개념과 체계는 아렌트의 정치판단이론의 핵심 개념과 체계를 이루는 ‘공통감(common sense)’, ‘상상력(imagination)’, ‘반성(reflection)’, ‘판단(judging)’, ‘판단 훈련’ 등의 전모와 상당히 유사하며, 양자가 공히 정치의 본질을 ‘소통’과 ‘동의(同意)’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대학』의 혈구정치관을 발전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자신의 독창적인 ‘명덕=본심’관 및 활법 공부론과 연계시키고 있는 정조의 휴머니즘적 정치사상은 상당한 혁신성과 철학적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해 볼 수 있다. This paper applied Hannah Arendt(1906~1975)'s theory of political judgment on ideological characteristics of King Jongjo(正祖)(1752~1800)'s political view, the Hyolgu(絜矩) political view focusing on interpretation about method of Hyolgu(絜矩之道) in tenth chapter of commentary of The Great Learning to conduct comparative study. From humanistic political philosophy point of view, Hyolgu political view of King Jongjo is quiet similar to Arendt's theory of political judgment. King Jongjo understood the theoretical point of The Great Learning as Myongdoek(明德). He regarded the principle of political judgment presented by The Great Learning as Hyolgu. And then he understood Myongdoek as origin to do Hyolgu, and interpreted Myongdoek as Bonsim(本心). Also, he suggested Hwalbup(活法) as a self-cultivation(工夫) for bonsim to well practice Hyolgu politics. When looking into the mechanism, King Jongjo's concept and system of Myongdoek Bonsim, method of Hyolgu, and Hwalbup is very similar to common sense, imagination, reflection, judging and judgment training that compose core concept and system of Arendt's theory of political judgment. It is clear that both political view sees the essence of politics lies in communication and agreement. From this point of view, the humanistic political idea of King Jongjo who interpreted Hyolgu political view in expansive way and connected it with his own original “Myongdoek = Bonsim” point of view and theory of Hwalbup learning has substantial innovativeness and philosophical significance.

      • KCI등재

        정조의 평화사상 : 탕평과 활법을 중심으로

        안효성 ( Ahn Hyo Soung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8 통일과 평화 Vol.10 No.1

        조선의 왕 정조(正祖, 1752~1800)에게서 현대 평화학에서 다루는 수준의 평화사상을 찾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조에게 평화에 대한 관념이 없지는 않았고, 그러한 관념은 정조의 사상과 정치에 반영되었다. 정조의 평화사상은 관용과 통합의 사상으로서의 탕평과 내면의 활기 있는 평안을 추구하는 활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토론과 소통의 활력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폭력 없는 공존과 갈등의 완화를 추구하는 준론탕평(峻論蕩平)은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의 사상으로 볼 수 있다. 둘째, 구조적 폭력이 제거된 화합과 대통합의 정치사회체제를 추구함으로써 관용 없는 분쟁과 폭력의 여지를 없애려는 대동탕평(大同蕩平)은 적극적 평화 (positive peace)의 사상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성리학적 마음공부의 연장선상에 있으면 서도 정조 자신만의 독특한 깨달음을 가미한 정조의 활법(活法) 공부론(工夫論)은 내적인 평화, 인간 마음의 평화를 위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정조의 평화사상을 조명한다. It will be challenging to look for thoughts of peace from King Jôngjo(正 祖, 1752-1800) of Joseon, from the same level of the modern Peace Studies. However, it was true that King Jôngjo did have the notion of peace, and this notion was considerably reflected in his thoughts and politics. Thought of Peace of King Jôngjo can be found from Tangpyông(蕩平) as an ideology of tolerance and integration and Hwalbup(活法) pursuing internal vivacity. Firstly, his “Junlon Tangpyông(峻論蕩平)” can be considered negative peace thoughts in the sense that this ideology aims at coexistence without violence and minimization of conflicts by increasing the understanding of others through respect of diverse opinions and dynamism of discussions and communications. Secondly, his “Daedong Tangpyông(大同蕩平)” is considered positive peace thoughts in the sense that this notion intends to remove the possibility of dispute without tolerance and violence by seeking socio-political system of harmony and great integration void of structural violence. Thirdly, Jôngjo’s “Theory of Hwalbup learning” can be considered internal peace, namely, thoughts for peace of mind of humanity, in the sense that this theory is an extension of mind learning of Neo-Confucianism but is added by unique awakening of Jôngjo of his own. This study aims to illuminate the thoughts of peace in King Jôngjo from these three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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