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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공진 제어기를 이용한 LLC 컨버터의 출력전압 120Hz 맥동저감에 관한 연구

        소병철,이상리,김학원,조관열,황순상,최은석 전력전자학회 2012 전력전자학회 논문지 Vol.17 No.4

        This paper proposes a new method to reduce 120Hz output voltage ripple of LLC converter using resonant voltage controller. This method can reduce the 120Hz output voltage ripple with very high gain at this frequency by the resonant controller with previous PI voltage controller. The reason why the voltage ripple can be reduced is explained by the Bode diagram comparing with the previous PI controller. The simulation with Matlab/Simulink is carried out for this resonant controller and the simulation results show that resonant controller can reduce the 120Hz output voltage ripple. Experiments with DSP controller also carried out and the experimental results also show that the usefulness of the proposed voltage controller.

      • KCI등재

        산지여행의 패러다임에 관한 문화철학적 단상

        소병철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16 인문사회과학연구 Vol.17 No.3

        이 글은 현대적 산지여행의 유력한 패러다임으로 급부상한 집단적 알피니즘의 생태적 문제점을 진단하는 한편, 그것과 대비되는 지속가능성 지향의 책임여행으로서 ‘생태여행’이 지니는 대안적 의의를 문화철학적 시각에서 환기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근대 서구의 고전적 알피니즘은 일정수치의 높이와 크기로 환원된 산악에 지배와 정복의 족적을 새기는 영웅 적 클라이머의 표상을 지금껏 온존해 왔다. 나아가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적 산악 표상은 집단화와 평준화의 과정을 거치며 대중적 산행문화로 변형된 한국의 속류 알피니즘과 결합되어 맹목적 속도전 양상의 과밀 등정을 점점 더 부추겨 왔고, 이로써 유명 산지의 생태적 안정성이 심각히 훼손되고 인간의 자아가 자연의 경이에 갈수록 무감해지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알피니즘의 관행들은 더 이상 인간과 자연의 지속적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 또한 점점 자라나고 있다. 이에 필자는 ‘인간과 산악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무겁게 요청되는 오늘날 맹목적 속도전 양상의 등정산행을 지양한 신개념 산지여행으로서 생태여행이 사회적으로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이 글에서 제기했다. 그러한 여행은 산악의 생태적 안정성을 보호하는 동시에 인간의 생태적 감수성을 증진하는 동화와 교감의 여정으로 여행자의 발걸음을 인도해 갈것이며,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생활문화의 중요한 범례로서 자체의 가치와 의의를 서서히 증명하게 될 것이다.

      • KCI등재

        노동 윤리의 새로운 정향 : 노동의 기회와 질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소병철 중앙대학교부설 중앙철학연구소 2008 철학탐구 Vol.23 No.-

        생존의 수단인 동시에 자율적인 자기실현의 기회이기도 한 인간의 노동은 오늘날 두 가지의 시련, 즉 대량 실업과 노동 소외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다시 말해 노동 인구의 상당수는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여 절망하고 있고, 또 다른 상당수는 인격의 자율성과 심신의 건강을 심각히 저해하는 노동 조건으로 고통받고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시련에 대처할 수 있는 공적ㆍ사회적 행위의 규준들을 우리가 아직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트 노동 윤리는 대량 실업과 노동 소외라는 ‘구조적인’ 질곡과 그것의 극복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질곡의 희생자인 노동자들의 ‘개인적인’ 분발을 촉구해 왔을 뿐이다. 그러한 윤리에 따르면 노동은 설령 노동자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그의 심신을 피로의 극단으로 몰고 가는 혐오스러운 고역일지언정 하나님의 소명이자 은총의 시험임에는 틀림이 없다. 따라서 그것은 그러한 질곡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오직 부지런히 일해야만 한다는 무조건적인 의무를 과할 뿐, 그들을 온당한 권리의 주체로서 배려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근면이라는 외형에 최우선을 두는 윤리는 노동 기회의 현실적인 보장과 노동의 실질적인 내용을 중시하는 모종의 사회 윤리로 대체되어야만 한다. 논자는 이 논문에서 그러한 새로운 노동 윤리의 가능성을 ‘노동의 기회’와 ‘노동의 질’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비판적인 사회 윤리의 관점에서 타진해 볼 것이다. Our work is, in essence, a means of our living and an opportunity of our autonomous self-realization. But it is now faced with two serious trials, mass unemployment and work alienation. Namely, the considerable proportion of the whole work force is being driven to despair because of the scarcity of the opportunity to work, and its majority is suffering from the working conditions which ruin the personal autonomy of workers and injure their physical and mental health. The problem is that we don't have the canons of public and social action, with which we can cope with those trials yet. The traditional Protestant work ethic has not been concerned about the solution of such structural troubles, but only has stimulated their victims, workers to exert themselves more and more. According to such an ethic, work must be a God's calling and a test of his grace, although it is an abominable toil which ruins workers' autonomy and extremely exhausts their mind and body. For that reason, such an ethic imposes an absolute duty to work diligently on numerous powerless workers, but never considers them as the proper subjects of human rights. And so it must be replaced with a certain kind of social ethics which attaches importance to the substantial ensuring of the opportunities to work and the quality of work life. In this paper, I will grope for the possibilities of such a new work ethic from the viewpoint of a critical social ethics, focusing on the two themes of 'the opportunity to work' and 'the quality of work'.

      • KCI등재

        동학의 생태주의 요소에 대한 비판적 고찰

        소병철 범한철학회 2015 汎韓哲學 Vol.77 No.2

        The aim of this paper is to reveal the ecological directivity of Donghak(東學) as a Korean native religion and to philosophically estimate its significances. Today, the possibilities of ecological catastrophe caused by human activities seem to suggest that our view of nature must be changed epochally. Accordingly, most of contemporary philosophical or religious symbol-systems of normative sort are striving to accuse ‘anthropocentrism’ of being extremely violent and prove that they are not ‘anthropocentric’ in order to be recognized as reasonable by the public. Donghak is likewise doing so by arguing that it has established itself as an originally anti-anthropocentric system of ideas through the medium of the healthy ecological directivity of holistic cosmology and ‘Sicheonju(侍天主)’ doctrine characteristic of it. In this paper I will examine how persuasive such an ecological self-justification of Donghak is. This work will come to reveal both the ecological significances and the limitations of Donghak as a Korean native religion. And as a result of this examination, I will come to critically inspect whether a quasi-nationalist academic tradition of Korean studies which has opposed ‘our biocentrism’ to ‘western anthropocentrism’ is proper or not. 이 글의 목적은 한국의 민족종교 동학의 교의에 내포된 생태주의적 방향성을 드러내어 그 의의를 철학적으로 평가해 보려는 데 있다. 오늘날 인간이 자초한 생태적 파국의 위험은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에 일대 전환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는 듯하다. 이에 따라 ‘인간중심주의’의 폭력성을 탄핵하며 자신이 그것의 보균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일은 종교와 철학을 비롯한 현대의 모든 규범적 상징체계가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거쳐야 할 시대적 통과의례가 된 것처럼 보인다. 동학도 역시 이러한 경향에 가세해 왔는데, 이 경우에 동학은 특유의 전일주의적 우주론과 시천주(侍天主) 교리로 건전한 생태주의적 방향성을 처음부터 확보함으로써 말썽 많은 인간중심주의와 본원적으로 무관한 사상체계로 자리매김해 왔다는 논리가 구사되곤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동학의 그러한 생태주의적 자기변호가 과연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지를 규명해 보려고 한다. 이것은 한국적 토양에서 자생한 민족종교로서의 동학이 지구적 생태위기의 해결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관련하여 지니는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명의 결과로서 필자는 ‘서구의 인간중심주의’와 ‘우리의 생명중심주의’를 대척적으로 맞세우는 유사(類似)민족주의적 학풍을 철학적 논변의 시험대에 올려놓고 그것의 타당성 여부를 비판적으로 검증해 보게 될 것이다.

      • KCI등재

        지리산 둘레길 여행의 생태적 비전에 관한 소고

        소병철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2016 南道文化硏究 Vol.0 No.30

        이 글의 목적은 이른바 ‘생태여행’의 개념과 관련된 지리산 둘레길 여행의 의의와 비전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오늘날 일반화된 산지여행의 두 축인 알피니즘과 패키지여행의 소외된 양상들은 자연을 정복과 소유의 대상으로 치부하지 않는 대안적 여행양식으로서 생태여행이 활성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우리를 주목케 한다. 생태여행은 여행객과 여행지의 자연 및 문화 사이를 이간하는 이데올로기적ㆍ문화적 개입을 최소화 함으로써 인간 정신의 활력에 미치는 자연의 긍정적 영향을 최대화하는 여행양식이다. 더욱이 그것은 ‘등정’과 ‘답파’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시간의 경제학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생태여행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천천히 걸을 용의와 주변의 자연을 향하여 개방된 생태적 감수성뿐이다. 그러한 점에서 생태여행은 자연의 ‘물화’와 ‘지배’를 일방 적으로 추구해 온 서구적 계몽의 에토스를 생태적 책임성의 방향으로 견인할 ‘동화’ 지향적 대안여 행의 유력한 가능태로 간주될 수 있다. 한편 최근 들어 대중의 큰 관심을 끌어 온 지리산 둘레길은 그러한 생태여행의 문화를 촉진할 충분한 비전과 잠재력을 갖는다고 생각된다. 본질적으로 지리산 둘레길은 있는 그대로의 산길과 마을길을 훼손 없이 온존하여 연결한 길이고, 그 품에 안긴 사람의 생태적 감수성을 예상 밖의 경이들로 흔들어 깨우는 길이며, 알피니스트의 답파욕에 부 응할 수 없는 장거리 도보길 정체성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주행문화의 침범을 자연스 럽게 예방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지리산 둘레길은 지속가능한 여행문화의 안착이 기대되는 생태여행 적합지로서 견실한 위상을 점차로 확보해 나가게 될 것이다. The aim of this essay is to critically clarify the ecological vision and the significance of the Jirisan Trail tour. This is related to the concept of so-called ‘eco-tourism’. Today, the alienating aspects of alpinism and package tourism, the two widespread mountain tour modes, make us turn our attention to eco-tourism as an alternative tour mode. This mode does not regard the nature around us as objects of conquest and possession. Eco-tourism is essentially a tour mode which maximizes the positive influence of nature on the vitality of the human mind. It does this by minimizing the ideological and cultural intervention which alienates tourists from the nature and culture of their sightseeing places. Furthermore, it does not set the goal at ‘reaching the summit’, ‘running the whole course’ or ‘economy of time’. It requires us only to have the willingness to walk slowly - then the ecological sensitivity can open to the nature around us. In this sense, it can be regarded as an ecologically sustainable pro-environmental tour mode that could awake us from the Western ‘enlightened’ mentality (one-sided ‘reification’ and ‘domination’ of nature). My main thesis in this essay is that the Jirisan Trail has the ecological vision and potential which could promote a sustainable and responsible tourism. There are three reasons for this. First, the Jirisan Trail is a long-distance walking trail connecting the historical mountain paths and village roads in a natural setting. Second, it is a trail of discovery - awaking the walkers’ ecological sensitivity with various sorts of unforeseen wonders. And third, its identity as a long-distance walking trail tends to prevent pollution since there is no nearby traffic. In this sense, I think that the Jirisan Trail could gradually gain a significant status as a fitting place for eco-tourism with a sustainable culture of tourism.

      • KCI등재후보

        ‘우리 안의 아이히만’은 극복될 수 있는가?

        소병철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9 시민인문학 Vol.37 No.-

        이 글의 목적은 지난 세기의 유태계 독일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 테제를 구래의 정형화된 인간학과 대조해 고찰함으로써 그것이 인간 실존에 대해 지니는 심층의 윤리적 함의를 드러내보려는 데 있다. 여기서 필자가 ‘정형화된 인간학’이라 칭한 것은 이른바 ‘이기적인간’과 ‘사회적 인간’을 양 갈래로 하는 인간 본성론의 오래된 딜레마를 말하는것이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테제는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개인적으로 특별히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았던 전범국 독일의 한 범부를 매개로 그러한 환원적 인간학의 일면성을 통찰해 낸 철학적 예지의 산물이었다고 생각된다. 전술한 집필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자는 우선 ‘정형화된 인간학’의 두 갈래를 개관하며 이것들이 어떻게 윤리적 인간 실존의 복잡성과 역동성을 규격화된 인간학의 틀 안에가두어 왜곡하는지를 규명했다. 다음으로 필자는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 테제를 검토하며 이것이 웅변하는 악의 놀라운 감염력과 인간의 윤리적 취약성을 드러내 보았다. 끝으로 필자는 ‘악의 평범성’이 인간 실존에 대해 지니는 심층의 윤리적 함의를 ‘자유의 양면성’ 및 ‘책임의 의의’와 관련지어 드러내 보았다.

      • KCI등재후보

        세계시민주의적 규범성의 패러다임에 대한 고찰: 홉스적 패러다임과 칸트적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소병철 성결대학교 다문화평화연구소 2012 다문화와 평화 Vol.6 No.1

        The aim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two paradigms of cosmopolitan normativity, Hobbesian one and Kantian one, by a method of comparative study. Hobbesian paradigm is summarized as the ``constraint of self-interest for the maximization of self-interest``, and Kantian one is summarized as the ``rational categorical imperative independent of self-interest``. In short, the former is an attempt to relate the ethical and political normativity to our natural self-interest, and the latter is an attempt to justify it as a part of the pure practical rationality independent of self-interest. But I advocate that Kantian ``Homo moralis`` and Hobbesian ``Homo economicus`` should reconcile themselves on the political stage for the sake of the realization of global peace because all moral ``shoulds`` could prove its effectiveness only if they are ``good`` and ``right`` at the same time for us. This implies that these two paradigms of normativity could be complementary to each other by filling their own roles within their own spheres without coming into antagonism with each other in one and the same sphere.

      • KCI등재

        리영희의 지리산 토벌전 체험과 반공주의 우상 파괴의 역정

        소병철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2018 南道文化硏究 Vol.0 No.34

        As is generally known, ever since the liberation from Japan, many Korean people have been deeply influenced by the pseudo-religious dogma called the ‘anticommunism’ and its extension, the pseudo-McCarthyist propaganda of the extreme-rightist political forces. Lee Younghee(1929~2010) was a representative of political enlighteners in the turbulent period of Korean modern history who by his pen struggled against the antidemocratic mass manipulations of the kind. He applied a scalpel of sharp criticism to the blind anticommunism and pro-American tendency which had ever obstructed the development of the Korean democracy and revealed that the both are nothing but the ‘idols of the Cold War era.’ And because of this, he used to be a main target of the political censorship of the military dictatorship all his life long. By the way, the original motive of his ideology criticism of the kind is known to have been formed just as he had experienced the tragedy of fratricidal Korean War as a junior officer. His war trauma of that time might have made him devote himself to the struggle against the irrationality of Korean anticommunism. But how could we revalue his lifelong stubborn struggle of the sort in the present Korean society where the anticommunist idol in question is still well? With this critical mind I outlined how his experience of the Korean War had influenced on the ripening of his pacifistic self-identity and critically looked back on his lifelong struggle against the anticommunist idol in this essay. As a result, I reached the first conclusion that his most important achievement is his courageous revealing that the blind anticommunism and pro-American tendency of the Korean conservatives were together formed under the inevitable influence of the American postwar policy of the Cold War and that the both have ever functioned as the discursive powers which justify the destruction of democracy and the violation of basic human rights by the conservative ruling cliques. And then, I reached the second conclusion that he deserves to be an ideological forerunner who has greatly helped the Korean people to strengthen their democratic capacity in that thanks to his ideological struggle, his challenging belief of those days in liberal democracy turned into the public commonsensical belief today. 주지하다시피 해방 이후의 한국 사회는 시기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개는‘반공주의’란 이름의 유사 종교적 도그마와 그것의 연장선에 놓인 극우 정치 세력의 유사매카시즘 선동이 대중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온 사회였다. 리영희(1929~2010) 는 그러한 반민주적 대중 조작에 비판적 문필로 맞서며 저항한 격동기의 대표적인 정치적·문화적 계몽가였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맹목적 반공주의와 숭미의식에 메스를 가하여 그러한 것들이 ‘냉전 시대의 우상’에 기인한 것임을 검질기게 폭로해 나갔고, 이 때문에 군사독재 사찰기관의 주요 표적이 되어 체포와 투옥을 밥먹듯당하는 형극의 세월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한 이데올로기 비판의 원초적 동기는 그가 약관의 초급 장교로 참전한한국 전쟁에서 동족상잔의 참상을 목격한 때부터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리산의전장에서 받은 윤리적 충격이 그로 하여금 한국적 반공주의의 비이성과 싸우는 우상파괴의 형로(荊路)에 스스로를 내던지게 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반공주의 우상이 여전히 건재한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그 우상과 집요히 맞섰던 리영희의 인생 역정을 어떻게 재평가하고 의미화해야 할까?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필자는 본고에서 리영희의 한국 전쟁 체험이 그의 반전주의적·평화주의적 정체감 형성에 미친 영향을 개설하고여기에서 비롯된 그의 반공주의 우상 파괴 작업을 비판적으로 회고해 보았다. 리영희의가장 큰 업적은 한국 보수 세력의 맹목적 반공주의와 숭미 의식이 해방 후 미국 냉전정책의 불가피한 영향 아래 동반 형성된 사실과 그것이 지금껏 보수적 집권층의 민주주의 파괴와 인권 억압을 정당화하는 담론 권력으로 기능해 온 사실을 용기 있게 밝혀낸데 있다고 생각된다. 나아가 그는 그러한 우상 파괴 작업을 통해 그의 생전엔 저항의칼끝이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이 시대의 평범한 양식(良識)으로 만들었단 점에서한국민의 민주적 역량 강화에 묵직이 기여한 선각자로도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 KCI등재

        ‘이성의 사실’은 도덕성을 정당화하는가? ― 칸트 도덕 철학의 메타윤리학적 의의 ―

        소병철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2008 철학연구 Vol.0 No.36

        Why should we be moral? This question requires us to finally justify our morality. Immanuel Kant, an advocate of the non-instrumental conception of morality, answers to it with the concept of 'Faktum der Vernunft(fact of reason)' which represents the original givenness of moral law. This concept is an alternative strategy of moral ground-making in accordance with the judgement of his first critique that the theoretical deduction of moral law is impossible. However, on account of the modern implications of the term 'Factum(fact)' it is often accompanied by the charge of so-called naturalistic fallacy which might invalidate the paradigmatic significance of Kantian morality. But Kant's 'Faktum der Vernunft' is not 'Faktum der Natur(fact of nature)' but 'Faktum der Persönlichkeit(fact of personality)', and so it can be demonstrated that such a charge has no good ground. From this point of view, Kantian conception of morality, regardless of the 'solipsistic' limitations of the moral self-determination which it advocates, is still a leading paradigm of the original morality which cannot be reduced to such natural drives as self-interest and, as such, still has the critical authority with which it can face the moral arrogations of instrumental rationality. 왜 우리는 도덕적이어야만 하는가? 비도구적인 도덕성 개념의 한 패러다임을 제시한 칸트는 도덕 법칙의 근원적인 소여성을 나타내는 ‘이성의 사실’이라는 개념으로 도덕성의 궁극적인 정당화를 요구하는 이 물음에 대응한다. 이 개념은 도덕 법칙의 이론적인 연역이 불가능하다는 제1비판의 판결에 따른 대안적 정초의 전략이지만, ‘사실’이라는 술어의 현대적인 함의로 인하여 그 개념에는 칸트적인 도덕성의 패러다임적인 의의를 무효화할 수도 있는 자연주의적 오류의 혐의가 종종 수반되어 왔다. 그러나 논자는 칸트가 말한 이성의 사실이란 자연의 사실이 아닌 인격의 사실이며, 따라서 그러한 혐의에는 정당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 논증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논자는 칸트가 옹호하고 있는 도덕적 자기규정의 ‘유아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칸트적인 도덕성은 여전히 자기 이익과 같은 자연적 동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본래적 도덕성의 유력한 패러다임으로서 도구적 합리성의 도덕적인 월권에 대응할 수 있는 비판적 힘을 갖는다는 점을 주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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