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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문학’ 재고-‘문학이론’의 보편성을 둘러싸고-

        미하라요시아키,김동식,윤대석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8 한국학연구 Vol.0 No.51

        이 강연에서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시했던 ‘세속비평[secular criticism]’이라는 개념으로 최재서의 비평과 실천을 다시 읽고자 하였다. 사이드에 따르면 ‘비평’을 정의하는 제1의 요건은 ‘정황구속적[situated]’이라는 점이다. 그의 ‘세속비평’은 ‘대항적[oppositional]’이며 ‘아이러니적[ironic]’인 <실천>으로, ‘전체화[totalizing]’하는(=범용성ㆍ보편성을 주장하는) ‘이론’에 대립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이드의 ‘세속비평’은 ‘종교 vs 세속’이라는 이항대립을 전제한 것이기도 하였다. 즉 ‘비평’에 의한 ‘이론’ 비판은 ‘종교 vs 세속’이라는 이항대립의 틀에 빠져버려 모든 ‘이론’이 ‘종교적’이라는 재단에 이르게 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드의 제자 가우리 비스와나탄은, 사이드가 종교를 혐오한 나머지 ‘종교적인 것(the religious)’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에 대해 맹목적인 경향을 가졌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신앙의 세속세계성’이라는 개념으로 ‘세속비평’을 ‘종교’의 영역에까지 확대ㆍ발전시키고자 하였다. 그녀는 사이드가 비타협적이고 강인한 ‘대항적(oppositional)’ 태도를 시종일관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가능성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면서, ‘비평’적 태도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형태로 사이드 자신의 언설까지 비판하였다. 비스와나탄의 비판은 철저한 동화정책이 강제되었던 식민지 조선에서처럼 이항대립이 성립하는 장 자체를 빼앗긴 언설 공간에서, ‘이론 vs 비평’이라는 틀이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최재서는 ‘이론에의 의지’에 근거하여 「풍자문학론」이라는 독창적인 이론을 고안하였고, 어빙 배빗의 『루소와 낭만주의』를 일본어로 번역하였으며, 『인문평론』에서 ‘인민전선’적 문화 운동의 가능성을 엿보는 실천을 수행하였고, 경성(京城)으로부터 ‘국민문학’을 주장하며 ‘포스트콜로니얼 문학’을 선취하는 비전(vision)을 제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황이 점점 악화되는 가운데에서도 최재서는 ‘이론에의 의지’로 끝까지 일관하였는데, 그 일관적인 태도는 오히려 ‘국민문학’=‘제국일본문학’으로서의 주체화=국민화의 ‘이론’을 ‘주체적’으로 구축하는 지점으로까지 최재서를 끌고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최종적으로 최재서는 ‘천황귀일’이라는 (대문자의) ‘이론[Theory]’에 굴복하게 된다. 하지만 사이드의 틀을 빌려온다면, 굴복하기 까지의 과정에서 최재서의 ‘이론에의 의지’가 시도한 저항은 (대문자의) ‘이론’의 바로 앞에 머무는 ‘태도’로서 ‘세속비평’을 실천하는 하나의 형태로, ‘세속세계적’인 정황에 내재하면서 (소문자의, 대안적인) ‘이론[theories]’을 그때그때 ‘발견’하고자 하는 실천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재서의 비평과 실천은 ‘파르티잔’적인 지적(知的) 행위로서 ‘이론에의 의지’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다시 생각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この講演では、サイードが提示した「世俗批評[secular criticism]」という概念をもって、崔載瑞の批評と実践を再論した。サイードにとって「批評」を定義するための第一の要件は「情況拘束的(situated)」ということである。彼の「世俗批評」は、「対抗的[oppositional]」かつ「アイロニー的[ironic]」な<実践>であり、「全体化[totalizing]」する(=汎用性․普遍性を主張する)「理論」に対峙するものと位置付けられる。しかし、サイードの「世俗批評」は「宗教 vs 世俗」という二項対立を前提としている。つまり、「批評」による「理論」批判は「宗教 vs世俗」という二項対立の枠組みにはまっており、あらゆる「理論」は「宗教的」であるといった裁断に至ってしまう危険性を孕んでいる。宗教を嫌うあまりに、「宗教的なるもの(the religious)」が持つ潜在的可能性に対して盲目となる傾向があったサイードの問題点を指摘し、「信仰の世俗世界性」という概念で「世俗批評」を「宗教」の領域にまで拡大․発展させたのが、直弟子のゴウリ․ヴィシュワナータンであった。彼女は、サイードが非妥協的で強靭な「対抗的(oppositional)」態度を終始一貫して維持できた可能性の条件について批判的に検証しながら、その「批評」的態度を推し進める形でサイード自身の言説をも批判した。ヴィシュワナータンの批判は、徹底的な同化政策を強制されている植民地朝鮮のように、そもそも二項対立が成立する場が奪われているような言説空間において、「理論 vs 批評」といった枠組みはどういう意味かという問題を提起する。崔載瑞は「理論への意志」に基づいて、「諷刺文学論」という独創的な理論を考案したり、アーヴィング․バビットの_ルソーと浪漫主義_を日本語に翻訳したり、_人文評論_において「人民戦線」的文化運動の可能性をうかがう実践を行ったり、「国民文学」を京城からはじめることを主張して「ポストコロニアル文学」に先駆けるようなヴィジョンを提唱できた。しかし、情況がますます悪化するなかで、その「意志」が最後まで一貫していたことがかえって、「国民文学」= 「帝国日本文学」としての主体化=臣民化の「理論」を「主体的」に構築する地点にまで崔載瑞を導く結果につながった。しかし、サイードの枠組みを借りるならば、最終的には「天皇帰一」という(大文字の)「理論[Theory]」に屈服してしまったとはいえ、屈服するまでの過程において崔載瑞の「理論への意志」が試みた抵抗は、(大文字の)「理論」の手前に留まる「態度」としての「世俗批評」を実践するひとつの形態として、(小文字の、オルタナティヴな)「理論[theories]」を「世俗世界的」な情況に内在しながらそのつど「発見」するような実践であったと考えられるかもしれない。そうであるならば、崔載瑞の批評と実践は「パルチザン」的な知的営為として「理論への意志」の潜在的可能性を考え直すことの可能性を提供する。

      • KCI등재

        최재서(崔載瑞)의 Order

        미하라요시아키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2008 사이 Vol.4 No.-

        이 글에서는 `친일파` 최재서의 문학 이론가/지식인으로서의 사상적 편력을 경성제국대학에서의 영문학 연구로부터 서거 후 출판된 세익스피어론까지 여러 저작들을 정독함으로써 그려내고자 하였다. 특히 경성제국대학 시절의 영문학 연구가 이후 그의 사상적 편력에서 어떻게 관통, 혹은 굴절하는지를 해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경성제국대학 영문학회 회보』를 중심으로 하는 최재서의 영문학 연구는 주로 어빙 배빗(Irving Babbitt, 1865~1933)의 강한 영향하에서 `반-낭만주의`를 그 사상적 핵심으로 한다. 그는 낭만주의적 `상상력`의 이론을 계보학적으로 해체함으로써 그 기원에 `주지적(主知的)` 요소를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반 -낭만주의적 문학의 최고봉을 윈덤 루이스(Wyndham Lewis, 1882~1957)의 `풍자`에서 찾아내고자 하였다. 최재서의 `풍자문학론`은 배빗의 비평성과 루이스의 파괴성을 기묘하게 접목시킴으로써 프롤레타리아문학과 민족주의문학의 `정치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현대인들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기 위한 문학 이론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묘함 속에서 `질서(order)`가 항상 외부로부터의 `명령(order)`으로서 내려지는 식민지 상황의 어려움을 찾아볼 수 있다. 잡지 『인문평론』을 간행한 의도에는 그가 모범으로 삼은 T. S. 엘리엇(T. S. Eliot, 1888~1965) 편집의 잡지 『크라이테리온(The Criterion)』에서 보인 `phalanx` 이념을 참조하는 등, 문화를 방위하고자 한 `인민전선`적 요소를 볼 수 있다. 물론 최재서 자신에게는 서인식이나 박치우 등이 보여준 `<번역>을 통한 저항`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저항`을 가능케 하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평론』 이후 최재서는 『국민문학』지를 간행하면서 당초 제국 일본의 폭력적 포섭에 대해 `조선문학`의 주체성을 이론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엘리엇의 `전통론`을 바탕으로 `일본문학의 질서`를 이론화한 이 시도는 그 주체(발화의 위치)를 식민지 조선으로부터 제국 일본으로 `전향`시킴으로써 한층 더 그 이론을 `제국주의적 국민주의`로 구체화하고 강화한다. 여기서 최재서의 문학이론은 `떠받드는 문학(まつらふ文學)`이라는 순전히 `정치주의`적인 모습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일본의 패전으로 `제국의 Order`가 붕괴된 이후 그는 정치를 거부하고 `문학의 Order`에서 주체화의 계기를 찾아낸다. 이러한 주지주의(主知主義, 정치주의 비판)―정치주의―비―정치주의라는 전향과 재전향을 통해서 일관된 것은 `Order`를 최종 심급으로 하는 `주체화`의 이론이다. `Order`가 외부로부터 내려지는 식민지 상황 속에서 `이론으로의 의지`가 파탄나는 과정을 통해 식민지 상황하의 `이론` 그 자체의 `비극`을 볼 수 있다. This article follows the vicissitudes of pro-Japanese Ch`oe Chaeso`s literary theory by closely analyzing his various works stretching from his English studies at Keijo(Seoul) Imperial University to his posthumous monograph on Shakespeare, with special emphasis on his relation to such contemporary Anglo-American figures as Irving Babbitt, Wyndham Lewis, and T. S. Eliot. Ch`oe Chaeso`s earliest works, mostly published in The Journal of the English Department of Keijo Imperial University(1929~), put anti-Romanticism a la Babbitt at the core, genealogically deconstructing the Romantic theory of imagination, while finding the essence of anti-Romantic/Modernist literature in Lewisian satire. On Satiric Literature(1935), which criticizes the supremacy of politics in the then - proletarian as well as nationalist literary theories and offers instead, as a breakthrough, satiric literature that allows a modern man to become his own master, is a queer grafting of Lewis` destructive element onto Babbitt`s moral criticism. Such queerness is, the author maintains, symptomatic of the predicaments of colonial conditions, in which Order is always imposed by the outside authorities. Ch`oe Chaeso`s editorial project of Inmun p`yongnon(1939. 10~1941. 4) is then compared with that of T. S. Eliot`s Criterion,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idea of phalanx shared among the Criterion group as a model for Ch`oe Chaeso to rally various intellectuals from right to left in the name of Defense of Culture. Although Ch`oe Chaeso himself shows no potential resistance, it is fair to say that his journal has created a space for such potentialities of several other contributors. During the Kokumin Bungaku years (1941.11~1945.5), Ch`oe Chaeso at first attempts to theorize the subjectivity of Korean Literature in the face of the Japanese Empire`s violent containment, but when he theorizes the Order of Japanese Literature by borrowing the idioms of T. S. Eliot`s theory of Tradition, his position of utterance turns from that of Korean subjectivity to that of Japanese Imperial subjectivity, so that he consolidates his collaborationist theory in the form of Imperialistic nationalism. At this point, his literary theory accepts the sheer supremacy of politics. After the fall of the Japanese Empire, i.e., the loss of the Order of Empire, Ch`oe Chaeso refuses politics altogether and takes refuge in the Order of Literature. All through these turns, however, the theory of subjection based on the idea of Order remains unchallenged. Finally, the author finds a tragedy not in this literary theorist as a person but in the will to theory itself under colonial conditions, in that any theory of subjection based on the idea of Order is doomed in so far as the Order always arrives from out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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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주의’와 ‘보편성’의 사이 : 스코틀랜드 계몽과 국민문학

        미하라요시아키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2 한국학연구 Vol.0 No.27

        보편과 관련하여 질문해야 할 것은 ‘보편주의란 무엇인가?’ ‘보편성은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인 물음이 아니라, ‘보편주의와 보편성은 어떤 관계인가?’ ‘그 관계성이 어떠한 분석 장치로서 유용한가?’라는 프라그머틱한 물음이다. 이데올로기로서 (사칭된) ‘보편성’이란, 소위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공범관계’를 부드럽게 구동시키기 위한 윤활유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본고에서 제기하는 ‘보편성’이란 이 ‘공범관계’에 ‘절단’을 반입하는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무엇인가’는 실체로서(=그 자신에 있어)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관계성’을 지시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금, 여기’에 각인되어 있는 균열·틈새로서 현실적으로 작동하는(現働化, actualisation) 잠재성(virtualité)이다. 즉, 그것은 어디에선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사물)’이 아니라 ‘부재 원인’으로서의 ‘힘(역능, potentia)’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재서와 관련해서 우리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주지주의 문학론’의 기수로서 비평의 문제와 정면으로 씨름했던 최재서의 ‘보편성’에 대한 지향이, 국민문학 주간으로서 행한 명백한 ‘친일행위’에 다다랐을 때는 제국 일본의 프로파간다인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보편주의’로 낙착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보편주의적’ 해답이란, ‘천황’이라는 실로 단순하고도 ‘절대적’인 통일에 의해 조직된 ‘진정한 일본인’이라는 동일성 사고에 고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애초 최재서가 일본/조선이라는 그야말로 ‘보편주의와 특수주의 공범관계’인 이항대립에 대해 도래해야 할 ‘국민문학’이라는 ‘절단’의 계기를 도입하고, 게다가 식민지 조선의 작가와 비평가들이 ‘국민문학’으로의 대전환(즉, 일본문학, 조선문학의 동시적 지양)을 솔선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프로그램을 명시했을 때, 그것은 여전히 ‘문제’의 토포스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있다. 다시 말해, 최재서가 제출한 ‘국민문학’이라는 ‘문제’는 잠재적으로―즉, 그것이 지향하는 ‘보편성’을 잠재성의 한 범주로 연결해 두는 한에서―이러한 보편주의적 ‘해답’에 대해 ‘영원히 충돌의 원천’(언제나 이미 ‘문제’인)과 같은 ‘사건’이었던 것이다. 최재서가 그러한 ‘해답’에 도달했던 데는 어떠한 종류의 필연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해답’(현세태, 現勢態)이 필연적이었다고 해도, 거기서 균열·틈새로 (징후적으로) 읽어내는 것이 가능한 ‘문제’(잠재태)를 적출해내는 비평적=위기적 외과수술을 시도해보는 것, 그것이 식민지 상황에서의 ‘비평’의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하는 오늘날 우리들의 과제이다. 나아가 (‘보편성’이 상실되어, 언제나 ‘보편주의’의 유혹에 사로잡혀 있는) 그것은 ‘근대’ 일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담 스미스가 이상으로 삼은, 자신을 ‘개량’하는 개인-제국의 주체로서, 그리고 시장경제의 단위로서 추상화·일반화된 ‘보편적 개인’이란 실은 ‘보편주의’적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점을 간파하고, 거기에 ‘비평’의 메스를 지속적으로 집어넣는 행위 안에서 ‘보편성’의 흔적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本講演は、 「普遍主義」と「普遍性」という一対の概念に関する理論的考察(前半)および、 崔載瑞の「国民文学」論と絡めて「スコットランド啓蒙」という話題の提供(後半)で構成されている。 前半の理論的考察において、 まず重要なことは、 「普遍主義」(「国民主義」「民族主義」「帝国的国民主義」など)とは、 つねに「普遍性」を詐称するものであるが、 その実態は「特殊性」の単なる量的な拡張である「一般性」に他ならず、 その「詐称」によるイデオロギー効果は「普遍主義と特殊主義の共犯関係」(酒井直樹)の隠蔽に他ならない、 ということである。 では、かように「詐称」されたものとは別に、 本論で概念化を試みる「普遍性」とはなにかと言えば、 まさにこの「共犯関係」に「切断」をもちこむ「なにか」である、 ととりあえずは言えるだろう。 それは、 「どこか」に実体として想定されるものではなく、あくまで「いま·ここ」に刻み込まれる亀裂·空隙として現働化(actualisation)する潜在性(virtualité)であり、 エチエンヌ·バリバールが「理念[理想]的普遍性」と呼び、 ジル·ドゥルーズが「『問題』としての≪理念≫」と呼んだような「なにか」である。 以上のように概念化される「普遍性」は、 「特殊」―「一般」軸(普遍主義)の基盤をなす同一性の思考(同一律)にまったく依拠しない差異的=微分的(différentiel)な「特異性」(singularité)を持つものであるがゆえに、 「問題」に対するあらゆる「普遍主義」的解答を「炸裂」させる。 このような「問題」という観点から崔載瑞の「国民文学」論を再審するならば、 それは、 日本/ 朝鮮という(まさに「普遍主義と特殊主義の共犯関係」である)二項対立に対して、 来るべき「国民文学」という「切断」の契機を導入し、 しかもその「国民文学」への大転換(すなわち、 「日本文学」「朝鮮文学」の同時的止揚)を植民地朝鮮の作家や批評家が先導する、 というプログラムを胚胎するその潜勢力において「普遍性」の「出来事」であったとも見なすことができるだろう。 この意味でも、 崔載瑞の「国民文学」論は、 親日行為という「解答」によって即座に断罪されるのではなく、 「問題」として理論的に取り組まれるべきであり、 その「問題」が生み出す亀裂や空隙に対しては「徴候的読解」の手法で臨ま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のような読解の一助として、 本節の最後に、 崔載瑞初期の英文学研究への一視角を試論的に提出する。 後半は、 ある話題(トピカ)の提供であるが、 それは、 崔載瑞の有名な(悪名高い)「朝鮮文学=蘇格蘭文学」説に「トピカ的発見法」でアプローチする試み、すなわち、 「スコットランド啓蒙」から「英文学」が生まれたという興味深い歴史的事実と、 崔載瑞の「国民文学」論とを重ね合わせてみることによって、 なんらかの発見がありうるのではないか、 という問いかけである。 イングランドとスコットランドの「合同」(1707年)の余波として「スコットランド啓蒙」運動が興隆することになるが、 そこには、 スコットランドの知識人たちが「ブリテン」という英·蘇両者を包摂(止揚)するカテゴリーへの投企を試み、 またそうすることにより大英帝国とともに世界に拡大する戦略をとった、 という側面がある。その一翼を担ったのが「改良」の手段としての「英文学」であり、 その最初の講義を行ったのが、 一説によると、 「古典派経済学の父」アダム·スミスであったというのには、 単なる偶然では片付かない思想史的な意義があったといえるだろう。 その講義の受講者であったジェイムズ·ボズウェルと、 18世紀イングランドの「文学王」サミュエル·ジョンソンをめぐるいつくかの逸話で本節は締めくくられることになるが、 英文学徒として、 ボズウェルの『サミュエル·ジョンソン伝』を熟読したに違いない崔載瑞が、 その伝記のなかに時折突出する、 伝記作者ボズウェルのスコットランド人としての出自をめぐる逸話に敏感に反応したであろうことを想像すると、 この「トピカ」が孕む豊穣さを感じ取ることができる。 おわりに、 最近『ガーディアン』紙に載ったスチュアート·ホールのインタビューの中に、 原初的でカテゴリカルな「否定性」=「普遍性」が突きつける「問題」に憑かれることによって「批判的知識人」であり続けた「老大家」の姿を見いだすことによって、 本講演は閉じ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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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문학의 문제

        미하라요시아키 ( Yashiaki Mihara ) 한국문학연구학회 2012 현대문학의 연구 Vol.0 No.47

        1940년말의 일본 문단의 ``국민문학``론 붐은 곧바로 조선 문단으로 파급 되었다. ``파급``이라는 표현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선문학 사에서는 1926∼1927년 무렵에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대항하여 ``국민문학 론``이 대두된바 있다. 물론 1920년대 중반과 1940년 사이에는 ``국민``이라 는 명사의 의미·범주에 결정적 단절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간단히 말하면, 전자의 ``국민문학``이란 ``(조선)민족문학``과 등가였던 반면, 후자에서는 ``제국문학``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 해도 이것 역시 ``내선일 체`` 하의 ``황국신민``으로서의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복고적 색채가 강한 내지의 ``국민문학``론을 살펴보면 당장 알 수 있듯이, 그쪽에서의 ``국 민``이란 ``야마토 민족``만을 가리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즉, 1940년 대 식민지조선에서의 ``국민문학``이란, 조선에서의 과거의 ``국민문학`` 및 내 지에서의 동시대의 ``국민문학``이라는 쌍방의 ``민족문학``으로부터 이중으 로 절단된 특이한 ``(제)국민문학``이라는 것이 예상되어, 그 의미에서도 여 기에서 말하는 ``파급``은 필연적으로 중층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당시의 식민지조선 문단을 견인하고 있던 양 수레바퀴의 하나인 『인문평론』 주 간 최재서의 국민문학론은 이런 맥락에서 재검토 되어야 한다. 최재서의 ``이론``은 철두철미하게 ``보편성``에 대한 강박관념이라는 족 쇄가 채워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기에서 ``족쇄``라고 불리고 있는 것은 실은 ``무기``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그 ``무기``에 의해서 최재서는 이광수 보다도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흔히 식민지조선에서의 외국문 학연구는 ``서양``이라는 보편에 접속함으로써 ``일본``이라는 유사 보편을 극 복하는 수단이었다고 논의된다. 확실히 당사자들의 의식에도 그러한 지 향이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국일본의 ``제국적 국민 주의``가 영미제국주의의 경합관계에서 독자적인 보편주의를 내세우고, 그 보편성의 근거는 ``천황``이라는 ``절대자``라고 하는 주장을 강요해 오고, 게 다가 나날이 그 통일적 주장의 외부가 상실되어 간다면 어떻게 될까. ``보 편성``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이론``은 그 이론에 대한 의지가 강 하면 강할수록 ``보편성``을 사칭하는 ``절대자``(그것은 ``천황``일지도 모르고 ``공화주의``일지도 모른다)에게 최종적으로는 귀의할 운명에 있는 것은 아 닐까. ``무기``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실은 처음부터 ``족쇄``였던 것은 아닐까. 최재서의 ``이념``은 항상 실체적 질서로서의 ``보편성``을 지향하며, 더욱 이 ``질서``(Order)가 ``명령``(orders)으로서 떨어지는 식민지 상황에서, 그 지 향이 ``강박관념``으로까지 이른 이상, 이미 모종의 ``보편주의``(천황 귀일의 ``제국적 국민주의``)에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생각 하면, 본 논고의 제목이기도 한 ``국민문학의 문제``의 핵심은 바로 ``최재 서가 제기한 국민문학이라는 (권리상의) 문제는(사실상) 소멸될 수밖 에 없는 운명에 있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것은 식민지 상황에서의 ``이 념``의 문제, 경우에 따라서는 ``근대`` 일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This article deals with kokumin bungaku and its intertwined history in Imperial Japan / Colonial Korea in the early 1940`s. The difficulty with translating the very term kokumin bungaku into English clearly reveals the overdetermined nature of kokumin under the exceptionally rigid assimilationist policy of the Japanese Empire. Kokumin bungaku was a hot issue in the Japanese literary journalism during the last months of 1940, where the term simply meant National Literature, often with reactionary Japanist connotations; whereas in Korea, where the debate was introduced at the beginning of 1941 and eventually led to the birth of the pro-Japanese literary journal Kokumin Bungaku, the term was interpreted (or appropriated) as Imperial Literature, so that kokumin should include all the assimilated imperial subjects such as Koreans. Against this background, two prominent pro-Japanese literary figures, Yi Kwangsu and Choe Chaeso, are featured. Yi Kwangsu was the quicker to arrive at determination to become fully Japanese, responding to the interpellation made by such benevolent imperialists as Kobayashi Hideo and Hayashi Fusao. Meanwhile, Choe Chaeso acted with courage in struggling to appropriate kokumin bungaku to the extent that he even insisted that it be the Koreans themselves who were to create the yet-to-come kokumin bungaku - kokumin being not Japanese but the yet-to-come Great East Asian Imperial subjects. In other words, Choe Chaeso theoretically appropriated and re-presented kokumin bungaku as a problem, which may well be associated with the postcolonial problematics today. In the end, however, Choe Choeso, too, abandoned such theoretical project and jumped to the same conclusion that Yi Kwangsu had earlier arrived at. I see this tragedy not caused by the man`s weakness but led by the fate of Theory shackled by Universality. Insofar as Choe Chaeso`s theory is based upon his aspiration for universality, it is doomed to accept the Absolute (the Emperor) as the Universal, once any other alternative universal is denied under the ever-unifying imperial rule. In order to understand the fate of Choe Chaeso`s abortive feat of Theory, I propose a theoretical distinction between universality and universalism. To the former belong l`universalite ideale (Balibar) and l`Idee comme instance problematique (Deleuze), both of which, being singular-multiple, critical, and insurrectional, pertain to demolition of any kind of universalism (i.e., identitarian thinking, such as Nation, Empire, minzoku, etc.), which is always disguised as universality but is, in fact, nothing but generality. In this respect, Choe Chaeso`s kokumin bungaku could have amounted to universality by posing such a problem, but, instead, he ended up finding a universalistic answer in becoming an authentic Japanese. It is therefore safe to conclude that the problem of kokumin bungaku is that the kind of postcolonial problematics posed by Choe Chaeso`s theory is indeed doomed to be assimilated to some kind of universalism, unless it adamantly and incessantly struggles to meet the promise of universality by radically questioning its very foundation (as, for example, Glissant`s Poetics of Relation d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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