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펼치기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 SCOPUSKCI등재

        포스터 전시 : 간경변증 환자에서 복수와 정맥류의 상관 관계

        김희만,전재윤,윤영준,안상훈,박영수,백용한,이관식,한광협,문영명 대한간학회 2003 Clinical and Molecular Hepatology(대한간학회지) Vol.9 No.3(S)

        배경/목적: 간경변증 환자에서 식도 또는 위 정맥류의 진단을 위해 상부위장관 내시경 검사를 시행한다. 이은 출혈의 과거력이 없었던 정맥류의 일차 예방을 위한 베타 차단제의 사용을 가능하게 해주고, 급성 상부위장관 출혈 시 출혈부위를 예측하여 치료의 계획 수립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식도 또는 위 정맥류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추적 검사의 필요성, 시기, 횟수 등에 관련된 구체적인 원칙은 아직까지 없는 실정이다. 복수는 간경변증의 합병증으로 신체검사나 비침습적인 복부 초음파 검사로 쉽게 진단 할 수 있기 때문에 연자들은 이와같은 복수 진단의 용이함을 이용하여 상부위장관 내시경을 시행하지 않고도 위 또는 식도정맥류의 유무 및 중등도를 예측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 복수를 동반한 간경변증 환자에서 전향적 연구를 시행하였다. 대상과 방법: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병원에 내원한 환자 중 복부 초음파 검사와 상부 위장관 내시경을 같은 시기에 실시한 총 23명의 간경변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복수의 중등도는 복부 초음파를 통해 small, moderate, large 세 군으로 분류하였고, 위 또는 식도 정맥류는 상부 위장관 내시경을 통해 형태, 색조, 위치에 따라 분류하였다. 이와 같은 정맥류의 분류는 1991년 일본 문맥압 항진증 연구회의 식도 위 정맥류 내시경 소견을 따랐다. 결과: 대상 환자 나이의 중앙값은 53 (39-70)세였으며 성별은 남녀가 각각 15명, 8명이었다. 간경변증의 원인으로 B형 간염이 13명(56.5%), 알코올성 간경변증이 9명(39.1%), 원발성 담즙성 간경변증이 1명(4.3%)이었다. 대상 환자의 간경변증 이환기간은 24 ?5.2개월이었고 복수의 양은 small 군, moderate 군, large 군이 각각 4명(20%), 7명(35%), 9명(45%)이었다. 내시경 소견에서 식도 정맥류는 18명, 위 정맥류는 6명, 식도와 위정맥류가 동시에 있는 경우는 6명이며, 5명은 복수가 있더라도 정맥류가 없었다. 형태에 따른 분류로 볼 때 F0, F1, F2, F3 가 각각 5명, 5명, 12명, 1명이었다. 위치에 따라 하부, 중부, 상부식도가 각각 4명, 11명, 3명이었다. 복부 초음파로 측정한 비장의 크기는 식도정맥류의 형태에 따른 네 군으로 분류하였을 때, 순서대로 평균 11.7 cm, 13.6 cm, 14.4 cm, 15 cm로 비례하는 경향은 보였으나 통계학적 차이는 없었다. 또한, 네 군으로 분류하였을 때 백혈구, 혈소판, 총단백, 알부민 등 혈청학적 검사에서 유의한 차이는 없었으며, 복수의 백혈구, 알부민, 전해질 등과 24시간 소변의 나트륨 농도에서 통계학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없었다. 식도정맥류의 형태, 정도 및 위치와 복수의 정도는 통계학적으로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결론: 초음파 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복수의 정도는 식도 정맥류의 존재나 중등도를 예측할 수 없었으나 비장의 크기와는 비례하는 경향을 보여 좀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한 계속적인 연구가 진행중이다.

      • KCI등재

        『연경재전집』의 지리류(地理類)와 한국고대 영토 인식

        김희만 동북아역사재단 2022 東北亞歷史論叢 Vol.- No.77

        The book of 『硏經齋全集』 by Seong, Hae-eung(1760~1839), is largely composed of a main books, an outer books, and a separate books. Among them, the composition of Geography Genre consists of ‘史料地理類’, 「山水記」, 「古蹟類」, 「東國地理辨」 and so on. In this article, I tried to find a new approach through geography among Seong Hae-eung’s various expertise. As a result, 『硏經齋全集』 contains 「山水記」, 「古蹟類」, 「東國地理辨」, which show the perception of the land of Joseon society, so that it can be used to expand the historical and geography contents of ‘史料地理類’ found it helpful. In addition, it is also revealed that Seong, Hae-eung uses the terms ‘East’ or ‘East Country’ which largely contrasts with China. And by collecting and organizing various data that can recognize the territory of ancient Joseon at the time, in items such as ‘西北疆域’, ‘西北邊界’ and ‘漢二郡考’. It was possible to examine the status of various ancient territorial perceptions of Korea as viewed by Silhak schola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은 크게 본집·외집·속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리류’의 편성은 외집 권44부터 권51까지의 ‘사료지리류’와 속집 권50의 「산수기」, 외집 권63의 「고적류」, 속집 권16의 「동국지리변」 등이다. 지금까지 성해응에 관한 연구는 주로 문학과 경학사상을 중심으로 이해해왔으나, 이 글에서는 성해응의 다양한 전문지식 가운데 ‘지리류’를 통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해보려고 하였다. 먼저, 『연경재전집』의 지리류에 보이는 다양한 사항을 분석하여 그 구성과 내용에 대하여 구명해보았다. 이 지리류에는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자료가 다수 수록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이러한 작업의 토대 위에서 성해응이 한국 고대의 영토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그 방법과 인식론을 고찰해보았다. 그 결과, 『연경재전집』에는 조선사회의 국토 인식을 알 수 있는 「산수기」, 「고적류」, 「동국지리변」 등이 수록되어 있어서 ‘사료지리류’의 역사지리 내용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성해응은 지리류의 구성을 크게 중국과 대비되는 「동수경」, 「동국천품」, 「동국지리변」 등 ‘동(東)’이나 ‘동국(東國)’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구별하고 있음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북강역」, 「서북변계」, 「한이군고」 등의 항목에서 당시 고대 조선의 영토를 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수집, 정리함으로써, 조선 후기의 실학자가 바라본 다양한 한국 고대의 영토 인식 현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 KCI등재

        『삼국유사』의 ‘사(師)’와 일연(一然)의 승려 인식

        김희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 한국학 Vol.42 No.2

        이 논문에서는 『삼국유사』에 보이는 ‘사(師)’에 대한 다양한 용례 분석을 통해서, 이 책의 찬자인 일연(一然)의 승려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지금까지 ‘사(師)’에 대해서는 국사나 왕사, 그리고 법사나 선사 등 고승이나 대덕의 직책에 따른 칭호로 ‘-師’를 이해해 왔으며, 반면 이들 직책 이외에 별도로 사용된 ‘사(師)’자는 단순히 승려 일반으로 인식해 왔지만, 이에 의문이 있어서 이들 용례를 찾아서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이 ‘사(師)’는 고승과 대덕들에 대한 표현과는 달리 일반 승려 가운데 특별히 존경할 만한 승려의 성격을 적극 반영한 명칭임을 검토할 수 있었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일반 승려를 지칭하는 용어로 다양한 예들이 찾아지는데, 석(釋), 승(僧), 사미(沙彌), 화상(和尙), 사문(沙門), 비구(比丘) 등이 그것이다. 이들 용례를 선별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앞에서 살펴본 ‘사(師)’와는 달리 승려 일반에 대한 범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일연(一然)이 『삼국유사』를 찬술하면서 ‘사(師)’라는 용어를 일반 승려와는 다른 존경의 의미를 한껏 담아 사용하였음이 확실해졌다. 이는 한편으로 『삼국유사』 안에서 일연(一然)이 나름 승려에 대한 인식을 다양하게 표출하고자 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사(師)’자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일연(一然)의 승려에 대한 분별(分別) 인식이 각별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In this article, we tried to examine the perception of the priest, who was the compiler of this book, through the analysis of various examples of the ‘Master(師)’ shown in “SamgukYusa(『三國遺事』)”. Until now, as for the ‘Master(師)’, I have understood that it is a Master(-師) according to the position of a High Priests(高僧) and a Dae-duk(大德), such as a National Preceptor(國師) or a King’s Preceptor(王師) and a Buddhist priest(法師) or a Zenpriest(禪師). On the other hand, These questions were researched and analyzed. As a result, it could be considered that the ‘Master(師)’ is a name that reflects the meaning of respect for the general monk, unlike the expression of High Priests(高僧) and a Dae-duk(大德) etc.. In addition, various examples are found in the term “SamgukYusa(『三國遺事』)” as a term referring to a general monk. As a result of the selective analysis of these examples, it can be seen that there is a certain gap from the ‘Master(師)’ mentioned above. Through this, I could confirm that the term ‘Master(師)’ was used with the meaning of respect different from the general monk while singing “SamgukYusa(『三國遺事』)”. On the other hand, it shows that the first actor in the “Samgukyusa(『三國遺事』)” expressed various perceptions about the monk, and also he could see that the recognition of Buddhist monk was distinguished by actively using ‘Master(師)’.

      • KCI등재

        신라의 사회통합과 외교전략의 리더, 태종무열왕

        김희만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25 한국고대사탐구 Vol.49 No.-

        신라 사회의 발전과정에는 다양한 변혁과 그 변혁을 주도한 리더가 존재하였다. 이들은 천년 왕국 신라를 만들어간 원동력이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신라 사회의 통합과 외교전략의 리더로서, 그의 진취적 역사성은 신라 사회에서 괄목할 만하다. 이 글에서는 김춘추가 文姬와의 혼인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하였을까 하는 점에 먼저 관심을 두었는데, 그들의 결합을 신라의 사회통합이라는 국가적 사안으로 파악해서 검토해 보았다. 또 하나는 김춘추의 외교전략인데, 김춘추가 고구려・倭・唐으로 이어지는 외교 행보를 할 때 나타나는 인질[質]에 관한 전략적인 변화에 집중해 보았다. 특히, 김춘추의 다양한 외교 행보에서 나타난 인질[質]이라는 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결과적으로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신라의 사회통합과 외교전략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서, 신라 中代 사회를 開創할 수 있었다. There were various transformations and leaders in Silla society. They were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creation of the millennial kingdom of Silla. King Taejong Muyeol Kim Chun-chu, who will be discussed in this article, was a leader in the unification and diplomatic strategy of Silla society, and his historical significance was remarkable in Silla society. In particular, I was interested in how Kim Chun-chu strategically utilized his marriage with Moonhee(文姬), and attempted to examine the issue of Silla society’s integration by understanding it as a national issue between Silla and Gaya. Another is Kim Chun-chu’s diplomatic strategy, focusing on the strategic changes that appeared as Kim Chun-chu carried out diplomatic operations toward Goguryeo(高句麗), Wai(倭), and Tang(唐). That is, we focused on the attribute of hostage[人質] in Kim Chun-chu’s various diplomatic actions. As a result, King Taejong Muyeol Kim Chun-chu was able to create the Silla’s Middle Society(中代 社會) by demonstrating leadership in the integration of Silla society and diplomatic strategies.

      • 新羅 金石文의 官等名 檢討

        金羲滿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02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Vol.23 No.-

        The necessary materials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Silla are based on the historical books and the stone monument, a creature of the times. Among them, the stone monument is the most invaluable material since it has not only a document of the times, but also it shows other contents which do not have any historical books. Especially, a record of the official rank of the stone monument is recognized as a material for new historical facts or makes contents of historical books verify. Therefore, many studies have been in this area and I am going co look over them again through interpretations of new several records.

      • KCI등재

        新羅 重位制의 施行과 그 性格

        김희만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2013 신라문화 Vol.42 No.-

        신라사회는 골품제라는 신분제 내에 관등제와 관직제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골품제, 관등제, 관직제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와 연관하여 중위제가 운영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바, 이 제도의 시행과 그 성격을 규명한다면 신라사회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중위제 연구는 각 중위가 골품제적 신분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나마나 사찬에 대한 실체 파악에 어려움이 있어서 이에 대한 조명에 집중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三國史記』 職官志의 중위제 관련 기사를 관직체계에 보이는 관직에 초점을 맞추어 신라 중위제의 실상을 파악하고, 이와 더불어 신라 관등제와 관직제의 운영을 보다 다양하게 살펴보고자 하였다. 우선, 『삼국사기』직관지에 보이는 중위제 관련 기사를 보다 세밀하게 검토하고자 하는 바, 그 서론 부분에 보이는 기사의 의미와 무관조와 외관조에 보이는 기사와의 연관성을 규명하고, 이어서 『삼국사기』 新羅本紀와 각종 金石文에 보이는 관련 자료를 보다 精緻하게 분석함으로써, 그 사료의 성격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특히, 중위제 시행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그 시행 시기에 대한 검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를 삼국통일 전쟁과정에서 마련된 비상위의 대각간과 태대각간의 설치과정에 주목하여 그 운영과정을 살펴보았으며, 아찬과 대나마, 나마의 시행과 성격도 이와 유사한 운영시스템에 다름 아니었음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이와 더불어 사찬의 중위도 중앙에 의한 지방지배 차원에서 촌주를 대별하여 중위제를 시행하였던 측면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신라의 삼국통일 전후 다양한 변화를 수렴하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서 관직체계를 확충하고 또한 관료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국학의 운영을 통해, 중위제가 급변하는 신라사회를 효율적으로 대변하는 주체로 부각하였다고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골품제적 신분과도 충돌하지 않으면서 각 관부를 통일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각 관등에 임명된 관료들도 다양한 승진체계에 합류할 수 있도록 체계화한 것이 바로 중위제라고 하겠다. 결과적으로 중위제를 통하여 신분제와 관등제 그리고 관료제라는 함수관계를 다각도에서 포괄하고, 이를 절충하여 통일 이후의 신라사회를 운영한 주체가 바로 중위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신라 관료제사회에서 중위제는 신분과 관등, 그리고 관직의 윤활유 역할을 수행한 제도라고 할 수 있겠다.

      • KCI등재

        『삼국사기』직관지 未詳條와 편찬자의 역사인식

        김희만 동국대학교 WISE(와이즈)캠퍼스 신라문화연구소 2017 신라문화 Vol.49 No.-

        이 글에서는 『삼국사기』직관지 未詳條에 대한 연구 성과를 검토해 보고, 아울러 그 내용을 새롭게 분석하면서 직관지 未詳條의 원상을 회복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보려고 한다. 물론 지리지 미상조와 마찬가지로 그 본래의 모습에 완전하게 도달할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를 계기로 『삼국사기』직관지 未詳條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올바른 이해의 틀을 제공해 보고자 한다. 먼저, 『삼국사기』직관지 未詳條 부분을 규명하기 위해서 그 체재와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직관지 未詳條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과연 몇 개의 항목으로 분류가 가능한 지에 대한 관련 자료의 검토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그 관직의 출처 파악과 이를 통한 보다 적극적인 분석을 시도해 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미상조의 檢校尙書 左僕射와 檢校 尙書左僕射, 그리고 檢校 尙書 左僕射, 太子侍書 學士와 太子侍書學士, 錄事參軍 右衛將軍과 錄事 參軍 右衛將軍, 그리고 孔子廟堂大舍錄事 參軍, 功德司 節度使와 功德司節度使, 佐 丞과 佐丞 등은 『삼국사기』미상조의 해당 부분에 표점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그 未詳條의 내용이 22개에서 25개까지 그 명칭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과연 『삼국사기』편찬자들이 직관지를 편찬하면서 어떠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이를 편찬했으며, 그 가운데 직관지 未詳條에 대해서는 어떠한 사항을 무슨 의도를 가지고 수집, 편찬했는지에 대한 검토를 해당 내용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이는 지리지의 未詳條 부분과 대비하여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그 성격에 대해서도 보다 실증적으로 검토해 보려고 하였다. 그 결과 미상조에 보이는 관직명은 대개 신라를 그 중심에 두면서 직관지에 누락된 고유의 명칭, 금석문에 기재된 명칭, 그리고 중국에서 연유한 관직이 신라화된 관직 명칭 등 몇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였다. 지금까지 이 미상조에 대해서는 그 자체 未詳으로 처리하여, 이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 성과가 미비한 형편이었다. 이런 사항은 『삼국사기』전체의 이해를 위해서도 매우 불충분한 요소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전거자료의 추출 및 성격 파악에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다시 말해, 『삼국사기』 편찬자의 역사인식은 직관지 미상조의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서도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