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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청년 나운영의 1942년 - 나운영의 초기 기악곡

        홍정수 민족음악학회 2023 음악과 민족 Vol.- No.65

        나운영의 일본 유학 시절 작곡한 년의 세 기악곡은 나운영 음악 1942 이 다른 단계에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그가 소년 시절에 사용하던 단순 삼화음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작곡을 전공하는 음악대학생 나운영의 모델이 된 작곡가들은 드뷔시와 바르톡이었다. 드뷔시는 기존의 작곡학이 금한 것들을 사용 가능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새로운 음악을 시작했다. 거기에는 다른 문화권들의 영향을 받은, 기존의 서양음악과는 다른 색다른 음악의 창출도 있었다 바로, 이 이국적 요소들은 나운영 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드뷔시에게 "이국적" 인 것은 나운영에게 "민족적"인 것이 되었다. 특히 드뷔시 음악이 보여주는 오음음계 관련성은 나운영에게 좋은 모델이 되었다. 나운영과 바르톡의 상관관계는 완벽하게 해명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이유는 바르톡의 <어린이를 위하여>가 드뷔시의기법을 받아들여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나운영의 <어린이를 위한 이국풍>은 바로 이 바르톡의 교육서를 작곡의 모델로 삼은것으로 보이기에 어느 것이 드뷔시의 영향이고, 어느 것이 바르톡의 영향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나운영의 음악에는 드뷔시적인 것, 바르톡적인 것, 한국전통음악적인 것, 이러한 요소들이 각각 독자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는 드뷔시와 바르톡 음악방식의 일부도 "민족적"으로 해석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오음음계, 빛음과 그림자, 미끄러지는 음, 병행음정의 연속, 이런 작곡방식이 그의 민족적 음악 추구에 활용되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시김새와 같은 한국 전통음악의 특징은 나운영 음악에 민족적 성향을 더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적 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기법들도 "현대적"이라 일컬을 수 있었는데, 이는 그가 예스러운 기법을 현대적 방식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이 현대성은 흔히 단순한 음계를 벗어나면서 표현된다. 비음계음을 더욱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짧은 음들은 더 쉽게 음계를 벗어난다. 비음계음들이 많이 사용되면, 그 음악이 조성적 기본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나운영은 그것을 '무조적'이라 생각했다 그의 현대성 추구의 음악은 크게 보아 '조성적'이지만 세밀하게 보면 '무조적'이라 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의 음악은 조성을 양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사고인 것이다. 조성적 양면성은 나운영 음악 중 빛음과 그림자음, 그리고 긴 음과 짧은 음의 구성에서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중요한 음들'이 있고 '그 음들을 반영하는 또 다른 음들'이 있는 것이다. '적은 것들'이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운영의 "민족음악"과 "현대음악"이 동시에 자랄 수 있는 틈새를 보여준다. 나운영의 1942년 기악곡들은 그 틈새에서 나온 새로운 한국양악을 보여준다. 1942년 작곡된 나운영의 세 작품은 그동안 연주가 자주 되는 편이 아니라서 잘 알려진 작품이 아니었다. 특히 한국의 초기 양악들이 거의 성악 위주로 연주되고 관찰되는 관계로 기악 작품에 대한 주목은 현저하게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이후에 오는 나운영 작품들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해방 이후 작곡 된 그의 성악곡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고, 1955년 이후에 더 현대화된 서양음악과의 접촉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작곡적 기초로 남아있다. 또한 세 작품이 ...

      • KCI등재후보

        1950년대 양악작곡가들이 상상한 국민음악: ‘국민’과 ‘민족’ 사이에서

        김은영 민족음악학회 2019 음악과 민족 Vol.0 No.58

        이 글은 1950년대의 음악계에 대한 고찰이다. 해방 후 일제잔재의 청산과 민족국가 수립을 염원하며 제기된 민족음악론은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냉전의 논리로 변화하고 있었다. 분단 후 남한에서는 1948년 정부수립을 기점으로 국민가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국민가요의 내용은 국민국가의 건설과정에서 국민에게 요구되는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1949년 공보처는 박태현, 윤용하, 이흥렬 등 우익 입장의 작곡가들이 쓴 국민가요를 당선시키고 학교 및 군대에 보급시킨다. 그러나 이 시기에 주창된 국민음악은 일제강점기 국민개창운동을 재활용한 것이다. 전쟁은 과거 제국에 봉사하던 음악가들이 남한의 악단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된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전시체제하 만주에서 제국의 후생음악에 봉사하던 이흥렬, 박태현, 김동진 등은 한국전쟁 중에는 종군 문화반원으로 활약하며 호전적인 이승만 정권의 충실한 문화선전대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피난지 부산에서는 ‘전시작곡가협회’가 결성되어 전시(戰時)동요작곡과 가극 등을 창작하였는데 이들의 주요 목표는 군당국과 긴밀히 결합하여 전선에서 일어난 일을 음악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전시작곡가협회 작곡가들은 1950년대 중반부터는 국민개창운동추진회에서 활동하며 재즈와 왜색 유행가 대신 국민가요 창작과 보급에 앞장선다. 국민가요 작곡가들은 멸공과 북진을 강조했던 정권의 정책에 충실히 따름으로써 남한 악단의 중심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1950년대 주요작곡가들에 의한 국민가요 창작은 이후 남한의 악단에서 전개될 이분법적 분단음악사의 시작이 된다. 특히, 우익진영 음악가들은 이승만 정권의 반공주의와 북진통일,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갖는 경우가 많아 정권의 구미에 맞았다. 이들에 의해 창작된 국민음악은 호전적 성격의 노래가 많았는데 이와 같은 편중된 정치성이 순수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개창운동에 참여한 음악가들이 이와 같은 이분법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나운영, 윤이상의 이후의 삶은 1950년대 그들의 활동이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굴절되어 나타난 시대적 산물이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민족음악을 위한 열망은 1980년대의 민족음악론으로 다시 제기되었고 이와 같은 역사를 통해 ‘민족’과 ‘음악’을 연결하고 융합하려고 노력하면서 당대의 시대정신에 민감했던 선배 음악가들의 고뇌와 실천이 과거의 역사로만 남지 않게 하는 것은 변화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음악인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새로운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This paper will be an attempt to examine the music scene of the 1950s in Korea, the era of anti-Communism and the Cold War. A discourse on national music that was raised during the period of liberation led to the music history of the Cold War in the course of division and the Korean war. The attempt to attain national Integration by achieving the national state was taking place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in 1948, when ‘Kukmingayo(songs for the nation)’ were created and disseminated. These songs called ‘Kukmingayo’ or ‘Aegukgayo(songs for patriotism)’ were produced by recycling the ‘National singing campaign’ and national music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Furthermore, a song of the national memorial day was made by the government and music was attempted to emphasize nation than ethnic over the people, such as anti-communism and patriotism. The Korean war, meanwhile, was a golden opportunity for musicians who served the Japanese empire to settle down reliably in the South Korean music scene. Lee Heung-ryul, Park Tae-hyun and Kim Dong-jin began to play a more active role in cultural propaganda for the North Korean regime. On the other hand, in Busan, the ‘Wartime Song Writers Association’ was formed to create wartime children’s song and lyric plays. Besides, they were combined closely with the military authorities to produce music. their goal has been embodied in the formation of the ‘Military Composers Association.’ Composers of the ‘Wartime Song Writers Association’ have been active in the national singing campaign since the mid-1950s. Also, they have been taken the lead in distributing national songs that could achieve national unity instead of jazz and Japanese-style songs. However, such activities were the beginning of a dichotomous divided Korean music history based on the premise of anti-communism and division. These activities were led by right-wing composers who faithfully followed the positions of the then regime. In particular, the combination of anti-communism, northern unification and pro-Americanism under Rhee's government was reflected in the creation of musicians. Christian musicians, especially those who defect from North Korea, were perfectly matched by the regime and were hiding their militant and divided music history under the slogan of purism. Nevertheless, not all musicians who participated in this dichotomy agreed. The later lives of Na Un-young and Yun I-sang, who have acted in the ‘Wartime Song Writers Association’ and the national singing campaign, could indicate the fact that their activities in the 1950s were reflected in refraction in the context of the times. Desires for national music was re-collected into the national music theory of the 1980s, and through this history, it would be a task given to all musicians living in this changed era. Moreover, it could be a new age spirit to ensure that the suffering and practice of senior musicians who were critical to the zeitgeist of the times did not remain the only history of the 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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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음악장(場)의 형성과 나운영의 자리

        김은영 민족음악학회 2023 음악과 민족 Vol.- No.65

        이 논문은 냉전기 반공주의 이데올로기가 작곡가 나운영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하였다. 해방 후 초기 2년 동안 음악가들은 서로 협력하면서 민족음악문화 건설의 꿈을 꾸었다. 나운영도 해방가요와 건국가요를 작곡하였고 첼리스트로, 해외에서 조국으로 돌아오는 동포를 위한 음악회와 각종 기념식에서 음악을 연주했다. 또 민족음악 문화연구를 계획하며 음악가 정추와 민족음악문화연구회를 결성(1946. 3.) 했다. 미소공위 실패 후 냉전이 한반도에 고착화되면서 남한의 음악장에서 좌파 음악가의 입지는 점차 축소되었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야 했다. 이런 정치적 위기 속에서 나운영은 1947년 6월, 성명서를 발표하고 우파 문화예술단체와의 제휴를 통해 남한 사회에서 자신의 정치적 무결함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전쟁 동안 나운영은 한국 최초로 '한국현대음악 학회'를 결성하고 현대음악 레코드감상회를 열면서 한국에 현대음악이 보급되기 위한 계몽 활동을 시작했다. 또 1952년 작곡집을 출판하고 작품발표회를 하는 등 작곡가로서의 삶을 추구했다. 그러나 전쟁은 비정상적인 시간이었고 이 시기 음악은 군대에 의해 유지되는 구조였다. 나운영은 해군과 육군의 문관으로서 전시가요와 전시동요를 작곡했고 이 중< 통일행진곡>(1952) 과 <북진의 노래>(1953)는 반공국가주의를 전파하는 대표적 국민가요로 남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 온 나운영은 현대음악의 거장 메시앙으로부터 파리 유학을 허락받고 준비하던 중 여권발급 불가판정을 받게 된다. 전후 한국사회에서 납북자 가족과 과거 좌익활동의 이력은 음악가로서 중대한 결함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후 나운영의 음악 활동 중 한 부분은 국가주도 음악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을 위해 남겨두어야 했다. 나운영의 1945~1953년의 삶을 통해 냉전이 한 작곡가의 정치적 신념을 굴절시켜가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었다. 때로 그의 삶은 정해진 세계가 아닌 경계에 위치해 있었고 그 결과 한국의 음악권력에서 배제되거나 고립되는 결과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평생 그의 음악인생은 민족음악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 온 수행적 삶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 KCI등재

        나운영 음악에 나타난 ‘선 토착화 후 현대화’의 의미와 진로

        주대창 민족음악학회 2023 음악과 민족 Vol.- No.66

        La Un-Yung as a modern composer sought to realize universal Korean music, so that the traditional and the modern in his music have to join each other. To fulfill Korean national music, the korean folk music should be the fist source in terms of idea to retain Korean characteristics in music, and then the modern techniques could be developed with this kind of materials for the future music. This method of work was manifested in his moto: Indigenizing at first and modernizing the next. According to Herder who advocated the folk character collecting and interpreting fork songs at that time, the terms of folk and nation were naturally equivalent in meaning. However, La considered folk music to be old things in the past, and national music to be new things in the future. La fully applied himself to the job of connecting both sides and especially expected to make reasonable Korean harmony which is accomplished from melodies of old folk music. His efforts provides useful examples on which the coming generations can reflect on the one hand, leaving them a task how to have popular appeal for national music on the other hand. 현대 작곡가로서 나운영은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한국음악을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함께 녹아있어야 했다. 그는 이러한 음악을 진정한 민족음악으로 보았다. 이를 위하여 한국의 민속음악이 먼저 민족성을 드러내는 기본 소재를 제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대적 기법들이 개발되기를 바랐다. 이것은 '선 토착화 후 현대화'라는 그의 모토가 되었다. 음악에서 민중 및 민족 개념은 민요의 가치를 드높였던 헤르더에게서 비로소 자리를 잡는데, 그는 당시의 관습대로 민중과 민족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나운영은 민중의 민속음악을 과거의 것으로 보고, 민족음악을 미래의 한국음악으로 설정하였다. 그는 음악적으로 이 두 가지를 연결하는 데 전력을 다하였고, 이를 통해 특별히 합리적인 한국화성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의 한국적 화성은 민속음악의 선율로부터 형성시킨 것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한편으로 후세들이 참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예들을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족음악이 어떻게 대중에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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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성 사고기법을 활용한 한국음악사 교육방법 개발 연구

        강혜인 ( Hyein Kang ) 민족음악학회 2018 음악과 민족 Vol.0 No.55

        본 연구는 창의성 사고기법을 활용하여 한국음악사 교육 방법을 개발한것이다. 본 연구에서 제시하는 한국음악사 교육의 목적은 첫째, 창의성 사고기법을 수업에 적용하여 한국음악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둘째, 한국음악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음악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셋째, 사고기법을 활용하여 창의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여, 음악을 즐기고 활용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한국음악사 교육 내용 범위는 음악사 전체를 개관하는 수업과 삼국시대, 조선시대, 근현대의 시대별 내용을 포함하였다. 교육 방법은 교사가 제안한 과제를 창의성 사고기법을 적용하여 학생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였으며, 사고기법은 <사고모자기법>, <브레인라이팅기법>, <마인드맵기법>, <속성열거법> 등을 활용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 방법적 측면에서 사고기법의 활용은 유용하였다. 사고기법은 주어진 개념과 과제에 대하여 치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색다른 방법과 관점을 제시하여 학생들의 한국음악사에 대한 재미와 호기심을 유발하는데도 효과가 있었다. 사고기법 활동을 음악적 글쓰기 작업으로 정리하고 발표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한국음악사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기초로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글로 창작해 봄으로서 스스로의 음악적 사고를 보다 구체화하고 확장시키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evelop a method of teaching Korean music history using creativity thinking technique. The objectives of the Korean music history education presented in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it is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Korean music by applying the technique of creativity thinking to class. Second, it recognizes the value of music based on understanding of Korean music history. Third, it has an attitude of expressing its own ideas creatively and enjoying and utilizing music by using the technique of thinking. The scope of the contents of Korean music history includes the class which covers the whole history of music and the contents of the three kingdom era, Chosun era, and modern era. The method of teaching was to ask the teacher to solve the problem by using the creative thinking technique. The thinking technique used in this study is < Brain writing > < attribute listing > < Thinking Cap > < Mind map >. As a result of the study, it was useful to use the thinking technique in terms of method. Thinking techniques helped me to think carefully about given concepts and tasks. It was also effective in inducing students' fun and curiosity about Korean music history by presenting different methods and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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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전통음악의 현재화

        안은지 ( Ahn Eun Gee ) 민족음악학회 2021 음악과 민족 Vol.- No.62

        아일랜드의 전통음악은 전통 속에 갇혀 있지 않고, 현재의 삶과 함께하는 살아 숨 쉬는 음악으로 향유되고 있다. 아일랜드 전통음악의 현재화는 수많은 아일랜드 튠 및 민요의 수집과 출판으로 인한 전통음악 선율의 축적으로부터 시작된다. 전통음악의 현재화는 곧 전통음악의 문화화(enculturation)와 관련된다. 아일랜드 전통음악의 문화화는 가족, 지역사회 및 기관 등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학습 경험에 크게 의존한다. 아일랜드 음악인협회(CCÉ)의 지부, 여름학교, 축제 등에서 제공하는 전통음악 수업과, 곳곳에서 참여할 수 있는 세션을 통해 함께 연주하면서 전통음악이 오늘날의 문화의 한 부분으로 수용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전통음악 문화를 오늘날의 문화로 이어지게 하는 데 아일랜드의 음악세션, 음악협회, 음악축제와 같은 요인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세션은 누구나 어디서나 음악만들기를 할 수 있게 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기능을 감당한다. 음악협회는 전통음악이 계속해서 향유되도록 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관으로 전통음악 관련 수업과 축제 등을 조직하고 운영하고 있다. 축제는 끊임없이 전통음악에 젖어들도록 하는, 그래서 모든 세대의 음악적 감수성이 전통음악을 향해 열려있게 하고 있다. 또한 음악축제의 다양성, 다회성으로 전통음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의 증대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 연구를 통해 전통음악이 아일랜드인들의 정체성 함양에 기여하며, 전통음악 축제와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세션을 통해 전통음악 문화가 상품화 되며 사회적으로 유용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Irish traditional music is not trapped in tradition, but is enjoyed as a living and breathing music with the present life. The currentization of Irish traditional music begins with the accumulation of traditional music tunes through the collection and publication of numerous Irish tunes and folk songs. The presentization of traditional music is directly related to the enculturation of traditional music. The culturalization of traditional Irish music relies heavily on the diverse learning experiences provided by families, communities and institutions. Traditional music classes provided by the Irish Musicians Association (CCÉ) branches, summer schools, festivals, etc. and through sessions that can be participated in various places, traditional music is accepted as part of today's culture and passed on to the next generation. This study attempted to find out how factors such as Irish music sessions, music associations, and music festivals were applied to lead traditional music culture to today's culture. Sessions have a function that allows anyone to make music anywhere and enjoy it. The Music Association is the most fundamental institution to continue enjoying traditional music, and it organizes and operates classes and festivals related to traditional music. The diversity and pluralism of music festivals play a role in increasing public interest in traditional music and attracting tourists. Through this study, it was confirmed that traditional music contributes to the cultivation of the identity of the Irish people, and traditional music culture is commercialized through traditional music festivals and sessions held in various places, creating socially useful va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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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음악 작곡가 박재훈

        홍정수 민족음악학회 2003 음악과 민족 Vol.26 No.-

        朴在勳最初開墾了韓國敎會音樂的荒地幷有了果實. 韓國敎會從他開始創作自己的音樂. 他的音樂方法幷不是複雜的. 他爲自己화了一個比較淸楚的音樂界限幷留在了這個界限里. 他對音樂的關心和表現力是西洋18-19世紀的. 但不只是單純的西洋音樂. 他的音樂是不可能與西洋音樂相同的. 1964年以後的音樂更如此. 他想與韓國傳統音樂接近. 他展示給人們的傳統音樂不是和韓國傳統音樂家直接學習的, 而是以韓國洋樂作曲家對傳統音樂的理解方式學習幷受他人影響. 在朴在勳的音樂里흔容易發現羅運容的影響, 這一点就能證明這一点. 但是朴在勳在這一方面的追求沒有象羅運榮那樣遠離聽衆而發展. 他盡可能與音樂使用者接近. 雖是這樣他的韓國式音樂幷沒有停留在 '三拍子', 和 '五音音階'配以一般和聲的, 單純的程度. 他穩健的音樂試驗是不是因爲使用和演唱他音樂的是"會衆"的原因니? 我這마推測. "會衆"可能是不愿意現存的 禮拜音樂有흔大變化的人們. 在朴在勳的作品中新鮮的不是20世紀的西洋式新音樂, 而是韓國式音樂的形成. 在這些部分可以說他是小心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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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실용음악학과 커리큘럼 연구

        양우석 ( Yang Woo Seok ) 민족음악학회 2018 음악과 민족 Vol.0 No.56

        한국의 실용음악교육의 역사는 1988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30년이 되었다. 실용음악은 현재 가장 인기 있는 학과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특히 보컬 전공은 602:1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산업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 대학의 실용음악교육은 연주 중심적 교육의 한계에 와있다. 특히 이미 세계 10권에 진입한 한국 음악산업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새로운 커리큘럼을 전공으로 개설해야 한다. 본고는 연구의 결론으로 대학의 실용음악교육이 음악산업의 빠른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다양한 음악산업 인력을 배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5개 전공을 제안하였다. 한국의 대학 실용음악교육은 뮤직 프로덕션, 레코딩 엔지니어링, MIDI 및 사운드 디자인, APP, 뮤직 비즈니스를 기준으로 특성화된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음악산업 발전과 세계적 경쟁력 확보에 창조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History of applied music in Korea has turned 30 years now in 2017 beginning from 1988. Applied music has become one of the most popular subjects, and particularly, the competition for majoring vocal music reaches 602:1. However, the applied music education at universities of now that cannot interact with music industry has reached the limit of performance-focused education. A new curriculum should particularly be extended to a major that can positively respond to the progress of music industry of Korea which has now been within top 10 in the world. The result of above analysis was compared to those of Canada, USA. and Japan in order to develop more objective curriculum. The performer-centered practical education period has settled down as a leading characteristic of applied music education in Korea passing through until now. In this study as a conclusion of research, 5 majors were proposed as a detailed method to raise various man forces for music industry in order for applied music education of universities to quickly respond to rapid change of music industry. Much expectation is taken so that applied music education at universities of Korea will creatively contribute to development of music industry now here and to securing competition ability in the world while forming characterized curriculum of its own based on aforesaid 5 majors including Music production, Recording engineering, MIDI and sound design, APP, and Music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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