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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淸 전·중기 朝鮮 歸附人 金氏 가문의 세대별 정착양상

        김휘석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202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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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요동지역에서 등장한 ‘滿洲’는 八旗制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민족 공동체의 개념이다. 그렇기에 팔기에 새로 편입되는 집단이 생기면 ‘만주’의 범위도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팔기의 범위가 확장되는 주요한 원동력인 다민족성과 융합성이 청의 治世期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작동되었는가에 있다. 이를 검토하고자 본고에서는 조선 출신의 구성원인 김씨 가문이 세대별로 청 사회에 어떻게 정착하였는지를 통해 살펴보았다. 김씨 가문의 세대별 정착 양상은 각 세대별마다의 그들 가문을 둘러싼 시대적 환경의 영향과 김씨 가문의 이중적인 정체성의 충돌로 인해 다양한 변화들이 있었다. 가문의 1세대인 김신달리 형제들 시기에서는 그들의 이주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자 새로운 검토를 시도하였다. 신달리 형제들을 청으로 귀부하게 만든 요인들에 대해서는 현재 직접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상황적으로 추론 가능한 이유들이 있는데 조선 내부에서 이들을 밀어낸 유출요인(Pushing-factor)과 청에서 이들을 끌어들인 유인요인(Pulling-factor)으로 나누어 볼 때, 크게 4가지이다. 유출요인으로는 첫째 서북지역에 대한 지역적 차별, 특히 중앙관리 등용에 있어서의 암묵적인 차별, 둘째 모문룡과 그가 이끄는 요동 유민들에 의한 서북지역에서의 횡포가 있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유인요인에서는 첫째 귀부인들에 대한 홍타이지의 우대정책, 둘째 동시대인으로서 1625년에 먼저 청으로 귀부하였던 한윤, 한택 종형제의 정착 사례에 대한 소문의 영향이 있었다. 이렇듯 신달리 형제들은 지역적 차별이 심했던 조선에서 벗어나 청에 귀부한 이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러 차례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급 통사관과 하급무관으로서 종사하던 형제들은 이후 자신들의 유능함과 내부자 고발로 인해 얻은 신임, 그리고 뛰어난 전공을 통해 두각을 드러내다. 그 결과 병자호란 전공 보상에서 맏형 신달리가 홍타이지로부터 황제의 친위 세력으로 형성하고 있던 보오이 니루의 어전으로 임명 되었다. 신달리의 보오이 니루 어전직 임명을 계기로 김씨 가문 전체의 旗籍이 正黃旗구사 니루에서 正黃旗보오이 니루로 변경되었다. 1세대들은 적극적으로 조선인으로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새로운 만주 정체성을 획득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본질상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기는 힘든 부분들이 있었다. 김씨 가문의 3세대인 김상명 시기에는 팔기 상층 사회로의 정착이 더 가속화되었다. 김상명이 청 사회 상층으로 가문을 정착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할아버지 신달리에 의한 旗籍변경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신달리의 후손들은 황실 보오이로서 황제에게 보다 더 가까운 위치에 머물 수 있었다. 보오이로서 황제와 가까운 위치에 있게 된 결과 김씨 가문에게는 황제의 신임을 받아 성장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들이 주어졌다. 그 중 하나가 2세대인 김상명의 어머니가 강희제의 유모로서 발탁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상명 자신이 옹정제의 하하 주서로서 발탁된 것이었다. 상명은 이러한 기회들을 통해 황제와의 사적인 신뢰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황제의 신뢰는 상명 자신에게는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상명의 지위는 정6품 理藩院主事에서 결국 정1품 領侍衛內大臣까지 상승했다. 팔기조직 내에서 2세대를 거치며 중간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던 김씨 가문은 상명을 통해 상층 기인 사회로의 진입에 성공했다. 3세대 시기 기인 상층 사회로 진입한 김씨 가문은 조선과의 잦은 교류 속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만주 정체성이 혼재해졌다. 당시 권력이 있던 김씨 가문은 적극적으로 조선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김씨 가문의 이중적이고 중간자적인 속성이 입관 후에도 계속 유지되어 왔다고 해도, 조선출신 기인과 만주족의 차이는 조선인과의 차이보다 적었다. 팔기에 조선인들이 편입된 이후 조선 출신 기인들은 만주어를 배워 말해야 했고, 만주의 문화와 관습을 따라야 했기에, 김씨 가문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만주화’가 되었다. 4세대 시기의 김씨 가문은 여전히 조선인과 만주인 정체성이 공존했지만, 숙가황귀비의 혼인으로 황실의 외척이 됨에 따라 ‘만주화’의 완성이 초래되었다. 특히 가경제의 擡旗조치와 만주식 姓을 하사하는 조치는 김씨 집안의 정체성을 제도적으로 만주인으로 규정지었다. 이러한 가경제의 제도적 조치 이면에는 황실 외척인 김씨 집안을 완전히 그들 집단으로 흡수하고자 하는 황제의 외척 가문들에 대한 인식이 존재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황실은 혼인으로 맺어진 새로운 구성원을 자신들의 집단으로 흡수하는 방식을 취했었다. 이로써 김씨 가문의 만주화는 제도적인 측면과 그 제도를 뒷받침하는 지배층의 인식 두 가지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김씨 가문의 세대별 정착 양상을 볼 때, 청나라 발전의 원동력인 팔기의 다민족성과 융합성은 청 중기인 건륭년간까지 지속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 DC 바이어스 된 고주파 Orthogonal fluxgate 센서의 감도와 분해능

        김휘석 부경대학교 201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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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rthogonal fluxgate sensor was fabricated with a Co-based amorphous wire with 100 mm-ϕ and a 280-turns pickup coil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DC bias current ~ 110 mA on its output and/or sensitivity. The operation frequency was varied from 0.8 MHz to 1.4 MHz. DC bias was applied in order to prevent domain wall motion of the magnetic wire and to improve the sensitivity. The sensitivity decreased with excess of DC bias, and the suitable DC bias current is independent on the operation frequency from 0.8 MHz to 1.4 MHz. The output increased with an increasing of operation frequency to reach a peak at 1.2 MHz, but decreased in higher frequencies than 1.2 MHz because of LC resonance of the pickup coil surrounding the magnetic wire core. In order to investigate the frequency dependence of the sensitivity, output spectra of the sensor which was connected by using a coaxial cable with the various lengths of 0.5 ~ 5 m were measured with a RF lock-in amplifier. The maximum sensitivities were obtained at different frequencies according to coaxial cable lengths. It was found that the optimal operation frequencies, at which maximum sensitivities were appeared, were almost identical to the frequencies of impedance resonance. This correspondence could be explained with the maximum power transfer theorem. The experimental results in this study presented the sensitivity was strongly dependent on both DC bias current and operation frequency when the sensor was driven at high frequency ~ 1 MHz. The sensor showed the maximum sensitivity with the DC bias of 20 mA at 1.2 MHz. The high sensitivity of 1.6 V/Oe (=16000 V/T) was obt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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