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임화와 김수영의 ‘언어관’ 비교

        고봉준 한국문학회 2018 韓國文學論叢 Vol.80 No.-

        In this article, we attempted to elucidate how Yim Hwa and Kim Suyoung comprehended the meaning of ‘language’ in literature. It is understood that literature is an art of language. As such, it is a common knowledge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literature’ and ‘language’, particularly the significance of ‘language’ in literature, is important. It is not an easy task to explain how ‘language’ in literature is same with or different from the language used in daily life as a tool of communicating information. Variations have been made on a claim that ‘literature is an art of language,’ ranging from an extreme argument that poetry is an outcome of experiments and modifications of ‘language’ rather than a matter of contents or subject matters, to a conservative argument that poetry is a genre of art that pursues beauty of language. These arguments have varied depending on the time period, social context, trends of literature and individuals who made claims, and changed a commonplace claim that ‘literature is an art of language’ into a realm of conflicts and tension. Within this context, we first examined how the relationship between ‘literature’ and ‘language’ has been comprehended in modern literature, particularly in poetry. Modern literature regards ‘literature’ as a ‘linguistic event’, thereby fortifying a distinction between daily use and literary use of language. While the former puts ‘meaning’ in the center by emphasizing the role of communicating information, the latter has striven for linguistic function at a different level. That is why linguistic experiments or use of language that cannot be reduced to ‘meaning’ are often found in modern literature, especially poetry. From a standpoint of understanding ‘language’ in modern literature, Yim Hwa and Kim Suyoung formed an interesting confrontation. Yim Hwa’s work hailed from romantic poem and negativity of Dadaism, and in critiques he published around the time of disbanding KAPF, he emphasized that literature should be written in language easily understandable to the public, and argued for the importance of ‘language of Joseon.’ His arguments converged into a viewpoint that underscored the importance of ‘language’ in literature, but he also criticized a reactionary nature of a view that emphasized ‘language’ in understanding literature, in debates over mannerism. In the 1930s, his thoughts on ‘language’ developed along a seemingly contradictory line between acceptance of ‘Joseon language’ and denial of ‘language.’ Meanwhile, Kim Suyoung’s views on language became visible as a matter of freedom of expression, that is, as a tool to resist oppressive political authority and unconscious repression between the timing of national liberation and the 1960s. To Kim Suyoung, a poet is a being who fights to guard ‘language’, which is at the core of a society’s culture. Both Yim Hwa and Kim Suyoung regarded ‘language’ important in literature, but for Yim Hwa, the peculiar conditions of Japanese colonization and proletariat literature need to be considered, and for Kim Suyoung, political conditions of remains of colonization, that is, post-colonial circumstances, post-war anti-communism and lack of freedom need to be considered. This article examined along which trajectory these two poets’ thoughts on ‘language’ evolved within the special context of the discourses above. 이 논문은 임화와 김수영이 문학에서 ‘언어’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해명하고자 한다. 주지하듯이 문학은 언어예술이다. 따라서 ‘문학’과 ‘언어’의 관계, 특히 문학에서 ‘언어’가 갖는 의미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하나의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문학’과 ‘언어’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이때의 ‘언어’가 정보 전달의 수단인 일상의 언어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해명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문학은 언어예술이다’라는 주장은 시가 내용이나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에 가해진 실험과 변형의 산물이라는 극단적 주장에서 시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장르라는 보수적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전유되어왔다. 이러한 전유과정은 시대와 맥락, 사조와 개인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사실상 ‘문학은 언어예술이다’라는 상식적인 주장을 갈등과 긴장의 장으로 간주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이 논문에서는 먼저 근대문학, 특히 시에서 ‘문학’과 ‘언어’의 관계가 어떻게 이해되어 왔는가를 살폈다. 근대문학은 ‘문학’을 하나의 ‘언어적 사건’으로 간주함으로써 언어의 일상적 용법과 문학적 용법의 구분을 강화해왔다. 언어의 일상적 용법이 정보전달의 기능을 강조함으로써 ‘의미’를 중심에 둔다면, 문학적 용법은 의미와는 다른 층위에서 언어의 기능을 추구해왔다. 근대문학, 특히 시에서 언어 실험이나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언어 사용방식이 자주 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근대문학의 ‘언어’ 이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임화와 김수영은 관점은 흥미로운 대립을 형성하고 있다. 낭만적인 서정시와 다다이즘의 부정성에서 출발한 임화는 카프(KAPF) 해산을 전후한 시기에 발표한 비평들에서 문학은 당대 민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조선어’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문학에서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모아졌으나, 같은 시기 기교주의 논쟁에서는 문학을 ‘언어’ 중심으로 이해하는 태도의 반동적 성격을 비판하기도 했다. 1930년대 ‘언어’에 대한 임화의 사고는 이처럼 ‘조선어’에 대한 긍정과 ‘언어’에 대한 부정이라는 표면적인 모순관계 속에서 전개되었다. 반면 ‘언어’에 대한 김수영의 사고는 해방 직후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억압적인 정치권력과 그로 인한 무의식적 억압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언어’, 즉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로 가시화된다. 김수영에게 시인은 한 사회의 문화의 핵심은 ‘언어’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는 존재로 이해되었다. 이처럼 임화와 김수영 모두 문학에서 ‘언어’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임화의 경우에는 일제 식민지,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는 조건을 고려해야 하고, 김수영의 경우에는 식민의 잔재, 즉 탈식민적 상황과 전후 반공주의와 자유의 부재라는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담론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두 시인의 ‘언어’에 대한 사유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나아갔는가를 주로 살폈다.

      • 김상훈 시의 리얼리즘 연구

        고봉준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96 牛岩斯黎 Vol.6 No.-

        한국문학사에서 해방기 (1945.8.15-1948.8.15)문학은 80년대 후 반에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 연구에 대한 관심은 이데올로기의 해빙기류에 기인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분단극복의 민족사적 열망이 낳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일제 말의 암흑기를 거친 뒤 닥쳐온 해방은 결코 우리에게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해방을 맞은 우리 민족에게는 오 히려 통일된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의 건설, 근대적 민족 경제의 건설, 그리고 식민지 유산의 철저한 청산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었다. 해방기는 이러한 과제의 해결을 둘러싸고 정치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나 좌· 우익간의 견해가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혼란이 거듭된 하나의 격동기라고 할 수 있다. 시는 이러한 격동기에 가장 잘 부응하는 문학양식이라 말할 수 있 다. 때문에 해방기의 정신적 지형을 살피 기위해서는 당시의 시문학 을 살피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해방이라는 단어가 새로 운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해방기는 기성시인 못지 않게 신진시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그러나 소위 ‘전위시인’ 내지 는 ‘문단의 돌격대’ 라는 이름으로 등단한 이들은 많은 작품들을 남겼 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의 민족사의 비극적 전개와 함께 우리의 기억 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해장 직후는 개별 시인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숨가쁘게 변화하는 격동기였다. 따라서 문학인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거나 뒤돌아 볼 겨 를이 없던 시기였다. 당시의 시문학적 성과면에서 오장환 · 이용악· 임화 · 김기림 등의 기성 시인을 제외하면 전위시인 5명(김상훈 · 이병 철 · 유진오 · 박산운 · 김광현)과 상민 · 최석두 · 배인철등이 주목된다. 임화를 비롯한 구카프 계열의 시인들이 정치적 활동으로 인해서 문학 적 활동을 상대적으로 등한시한 데 비해 이들 신진시인들이 해방기의 시문학에서 차지했던 비중은 비교적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해방기 신진시인 그룹의 문학적 대표 역할을 한 사람이 김상훈(金尙勳, 1919-?)이다. 그는 시집『대열』『가족』을 발간하였 고『전위시인집』에도 참여하는 등 매우 정열적인 문학활동을 보였 다. 또한 그의 시는 해방과 더불어 시작 활동을 시작한 당대의 신진 시인들의 의식을 대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의 리얼리즘적 성취면에 서도 돋보이는 역할을 했다. 본고는 이런 점에서 김상훈 시의 리얼리즘적 특성에 주목하고자 한 다. 리얼리즘을 작가의 시정신(세계관)과 세계에 대한 리얼리티의 획 득의 형상화(문학적 형상화의 방법)라고 소박하게 정의할 때, 시정신 은 시인의 삶의 궤적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며, 형상화를 통한 리얼 리티의 획득은 시적 담론을 비롯한 시의 형식적 문제일 것이다. 김상 훈은 해방공간에서 ‘문학가동맹’에 가담하면서 문학운동뿐만 아니라 정치적 활동도 열정적으로 한 ‘전위’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전위’ 의 시각에서 당대의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문학적 실천이다. 또 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특히 담시와 서사시를 통하여 리얼리즘에 접근하고 있다. 이상의 시정신과 형상화의 문제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가 시에 있어서의 궁극적인 리얼리즘의 성패 를 좌우할 것이다.

      • 1920-30년대 경향시의 전개과정 연구

        고봉준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99 牛岩斯黎 Vol.9 No.-

        문학의 역사는 재발견과 재해석의 역사이다. 이 말은 문학이 당대의 역사와 현실을 반영함은 물론 오늘의 문학과 역사적 상관관계를 지니 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특정한 시대의 문학은 영구불변의 고정적이고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과 연속 · 길항의 역동적 관계에 놓여 있다. 이러한 입장에 기초하여 특정 시기의 문학을 고찰할 때,<문 학과 역사> <문학과 현실>의 관계는 연구의 커다란 두 축으로 작용 한다. 그러나 과거 문학의 연구에 있어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오늘의 이 데올로기만으로 당시의 문학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 하면 카프의 문학을 연구함에 있어 식민지의 역사와 현실이라는 당대 적 의미망을 제거하고, 오늘의 입장에서 그 미학적 성과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 만약 그럴 경우 우리가 과거의 문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성과는 극히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예술)의 정신이 근본적으로 <자유>를 지향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시대의 요구에 대한 부응과, 끊 임없이 그 시대의 제약으로부터 탈주하려는 경향을 동시에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자유의 의지 역시 시대적인 상관물이며, 따라서 시사 (詩史)의 체계는 개별 작가나 작품론뿐만 아니라 정신사·운동사적인 측면의 접근도 중요하다. 이상의 지척은 전적으로 문학작품의 내용에 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다양한 기능과 문학적 담론들을 내 포하고 있다. 이 기능과 담론은 그 시대의 요구와 지배적인 가치관에 따라서 그 서열과 체계가 바뀌게 마련이다. 장르의 문제 역시 마찬가 지이다. 이는 역사상 특정한 장르의 유행과 몰락이 그 사회의 발전과 정과 직·간접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통해서 명증하게 확인된다. 우리의 역사는 자생적인 근대화의 움직임을 그 내부에 가지고 있으 면서도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등장과 소멸 속에서 기형적으로 근대를 경험하였다. 특히 일제는 19세기 말부터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길로 접 어들었으며, 그 경험을 패권주의적으로 확대함으로써 빠르게 제국주의 화 되었다. 일제의 한반도 강점은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나타 난 사건이다. 우리의 문학사를 살펴보면 일제의 파시즘적인 권력, 즉 외부의 힘에 의한 강압적 근대화의 경험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이상(李箱)을 필두로 한 모더니즘·다다이즘 적인 경향이며, 다른 하나는 1920-30년대에 전개되었던 경향문학이다. 전자를 근대의 파시즘적인 권력 하의 분열증(schizophrenie)적 현상이 라고 칭할 수 있다면, 후자의 경우는 편집증(paranoia)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규정이 적절한 것이라면 식민지 시대의 경향시 가 보여준 극단적인 정치투쟁적·아지프로적인 경향은 작가 개인의 차 원보다는 오히려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본고는 1920-30년대를 전후하여 카프를 중심으로 활동한 일군의 현 실참여적인 시를 ‘경향시’라고 칭하고, 그 형성과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자 한다. 특히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경향시의 창작방법론의 변화와 시적주체(poetic subject)의 변모과정에 주목하고자 한다.

      • KCI등재

        근대문학과 공동체, 그 이후 - ‘외부성의 공동체’를 위한 시론

        고봉준 상허학회 2011 상허학보 Vol.33 No.-

        There have been largely two traditional approaches to the relationship between literature and community. The first approach is to presume the two subjects, 'literature' and 'community', and then connect the two with a conjunction 'and'. In this approach, literature and community have equal statuses, and the possibility of interaction is eliminated. The second approach proves that all types of cultural development are fundamentally based on 'community'. This approach explains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literature and community is subordinative (limiting) with literature developing within a certain community or all subjects of writing should live in the given community regardless of freedom of decision-making. These traditional approaches are likely to be concluded as logic justifying violent exclusion of others by emphasizing only the homogeneity. On the other hand, some literature has stopped developing within a traditional community and began producing a community itself instead. Therefore, when discussing the relationship between literature and community, we should distinguish the literature that develops based on a community from the literature that produces a community itself. The former is a matter of 'literature and community', while the latter is a matter of 'community of literature'. The modern literature for the past 100 years functioned as an enlightening integration tool during the process of developing into a modern nation-state. The equation that 'modern literature equals the ethnic group(people)' has been dominant by making various tendencies peripheral through a dichotomy between inclusion and exclusion. National literature as a mainstream ideology of modern literature has developed by (re)producing communities of the insides such as 'people', 'nation', and 'home', and many literature works actually have suggested the utopia as a representation of the state in which communities of 'people', 'nation', and 'home' are free of external aggression. However, the equation that modern literature is equal to national literature cannot serve as the effective standard for Korean literature representing community any longer. This study examines the representative way of thinking of community after its end in the philosophical genealogy, including Levinas followed by Blanchot and Nancy. This study also introduces appearances of communities of the outsides in a few works published since the 2000's. The communities of the outside appearing in the works, of course, are coincidental, accidental, and rather temporary unlike the communities in modern terms. Nevertheless, the temporary attribute appears to be more suitable for the matter of 'community of literature'. ‘문학과 공동체’와 ‘문학의 공동체’라는 두 가지 물음의 의미는 다르다. 그것은 랑시에르가 ‘문학과 정치’와 ‘문학의 정치’를 구분했던 것과 동일한 의미에서 그러하다. ‘문학과 공동체’라는 질문은 ‘문학’과 ‘공동체’를 각각 실체적인 것으로 간주한 후, 그것들의 관계에 대해 묻는 것이다. 이 물음 속에서 대개 문학은 실체적인 공동체를 형상화함으로써 그것을 재생산하는 재현적 기능을 떠맡는다. 반면 ‘문학의 공동체’라는 질문은 ‘문학’이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외부의 공동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생산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 경우 문학은 공동체와 관련하여 그 자체로 목적의 성격을 갖는다. 이 두 가지 물음을 구분하면서 이 논문은 근대적 국민(민족)국가 건설 과정에서 계몽적 통합장치의 역할을 담당했던 근대문학의 본질적인 성격을 논구하려 했고, 근대문학에서 민족(국가)담론이 주류적인 위치를 점했던 것은 다분히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근대문학 전체를 통틀어 살펴보면 이광수의 계몽주의에서 2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변주되어 온 다양한 민족문학론들, 심지어 일제말기의 국민문학 또한 민족(국가)라는 공동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근대문학에서 민족(국가) 담론의 지배력은 매우 급속하게 약화되었다. 거대담론의 몰락과 미시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등장이라고 평가되는 이 시기 문학의 특징은 오랫동안 공동체의 문학에서 개인의 문학으로의 변화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2000년대의 문학이 보여주듯이 90년대 이후의 문학은 한편으로는 ‘공동체’에서 ‘개인’의 세계로 진화해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근대적인 공동체의 표상에서 탈근대적인 공동체의 표상으로 바뀌어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은 2000년대의 몇몇 작품들을 중심으로 90년대 이후 문학에서 민족(국가)라는 공동체의 표상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가를 살폈고, 근대문학적 맥락에서의 ‘공동체’와 90년대 이후 문학에서의 ‘공동체’를 구분하기 위해서 ‘내부성의 공동체’와 ‘외부성의 공동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내부성의 공동체’는 ‘공유’를 중심으로 ‘우리’와 ‘우리 아닌 것’을 분리하는 집단주의적 성격의 공동체를 말하며, ‘외부성의 공동체’는 ‘공유’가 아닌 외부성을 긍정하고 이질적인 것의 출현에 의해 항상 재구성되는 ‘특이성’으로서의 공동체이다. 이 구분에 의거하여 이 논문은 90년대 이후의 문학이 ‘공동체’의 문제를 폐기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근대적 관념과는 다른 개념으로 그것을 사유했다고 주장했다. 80년대까지의 문학에서 공동체는 주로 민족(국가)라는 내부성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90년대 이후 문학에서 공동체는 민족(국가)와는 다른 층위에서의 ‘함께-있음’과 ‘타자 지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유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논문은 ‘공동체’라는 물음을 포기하는 대신 그것을 다시 사유해야 할 것을 제안하면서, ‘공동체’에 관한 새로운 사유의 형태로 레비나스-블랑쇼-낭시로 이어지는 철학적 계보를 제시하였다.

      • KCI등재

        시 이미지 연구의 확산과 심화를 위한 제언: 최근의 시 이미지 연구에 대하여

        고봉준 상허학회 2017 상허학보 Vol.49 No.-

        ‘Image’ has enjoyed a special position in poetic research for a long time. Public textbooks introduce that ‘image’ is one of the two largest constituting principles along with ‘rhythm.’ Actually, majority of the studies on modern poetry use the research on images as a starting point. Researches on image in poems have formed two trends so far. One is a research trend that links Ezra Pound to imagism to new criticism. Another is a research trend that is centered at Bachelard’s concept of ‘dynamic imagination.’ However, recent studies on image show distinct differentiation from these trends. In particular, some studies that set ‘image’ as a research methodology are attempting to tear down the boundary between poems and non-poetic writing as well as the one between literacy and non-literal writing by actively bringing research on image suggested in other areas including painting, visual art, movie, and modern philosophy into poetic image. Key arguments of these studies can be largely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studies argue that ontological value of image should be reinstated by reproducing it and thinking about it separated from the classic context such as mimesis. Second, they argue that t ‘image’ in poem should be separated from discussions, testimonies, and arguments by letting the reinstatement of the ontological value guarantee the autonomy of image. These studies certainly infused new life into the research on image that has been at standstill for a long time. However, it is also true that they are drifting from the starting point of ‘research on poetic image’ as they do not stipulate the difference of the concept of ‘image,’ which is widely used in both of literacy and non-literal writing. This paper examined the accomplishments and problems that can arise when research on image by Rancière and Deleuze, which provided basis for the recent studies, is applied to the studies on poetic images. Through this, the study attempted to create an opportunity for the recent studies regarding ‘image’ to be spread and deepened. 이 논문은 최근 학계와 비평계에서 중요한 논점으로 부상한 시의 ‘이미지’ 연구의 연구 현황을 살피고, 새롭게 제기된 ‘이미지’ 이론이 시 연구방법론으로 확대, 심화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이다. 시에서 ‘이미지’는 ‘리듬’과 더불어 시의 2대 구성요소로 손꼽힐 정도로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지만, 시의 현대성이 관심 대상이 됨에 따라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현대시 연구에서 ‘이미지’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 이후 새로운 이론적 제안이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이론 분야에서의 논의에는 진척이 없었다. 때문에 에즈라 파운드를 필두로 한 이미지스트들의 논의와, ‘상상력’ 이론에 기초한 바슐라르의 논의가 현존하는 ‘이미지론’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미지에 대한 이 전통적 이해들이 한편으로는 이미지를 감각기관의 문제로 환원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지를 제제 수준으로 격하시킨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 목소리들은 ‘이미지’에 대한 현대철학의 주장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것을 시 이미지 연구의 중요한 이론적 동력으로 삼고 있다. 권혁웅과 조강석의 이미지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권혁웅은 ‘이미지’를 시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사실상 시의 존재론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이미지’와 ‘시’를 평행관계에 두는 존재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달리 조강석은 ‘이미지’를 시의 내적 실재로 간주하고, 그것을 내재적 비평의 유일무이한 출발점으로 삼아 텍스트의 안과 밖의 소통, 내재적 비평과 외재적 비평의 융합을 모색하고 있다. 권혁웅의 연구가 이미지에 대한 존재론적 분석이라면, 조강석의 연구는 이미지를 연구의 방법론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미지’에 대한 이들의 주장이 답보 상태에 처해 있던 이미지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연구는 동일하게 비(非)문학, 특히 시각예술과 영화 등에서 사용하는 시각적 이미지 개념과 문학에서 사용하는 문자적 이미지의 구별을 간과한다는 점, 이로 인해 ‘이미지’ 자체에 대한 규정에 있어서 전통적인 이해와도 대화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때, 이들의 이미지 연구는 시 이미지 연구에 새로운 논쟁적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