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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平壤出土 「樂浪郡初元四年縣別戸口簿」 研究

        尹龍九 한국목간학회 2009 목간과 문자 Vol.3 No.-

        「樂浪郡初元四年縣別戶口多少口簿」(初元4年 戶口簿로 略)는 1990년대 초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동 364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정백동 364호분은 男性 1인을 묻은 單葬의 나무곽무덤(木槨墓)이다. 무덤에서는 環頭刀子·鐵長劍을 비롯하여 車馬具, 土器와 漆器, 帶鉤 등 裝身具, 木簡(牘) 數種이 출토되었다. 정백동 364호분에서 출토된 목간은 初元4年 戶口簿 외에도 같은 시기의 公文書 형태의 목간 몇 건이 함께 출토되었지만,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初元4年 戶口簿는 2006년 3월 孫永鐘 先生이 判讀文에 가까운 戶口統計表를 발표하였고, 2008년 11월 木牘 3枚의 黑白寫眞이 공개되어 全文 파악이 가능해 졌다. 근래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흑백사진은 일부 不明한 字劃이 있지만, 孫永鐘의 戶口統計表에 의해 복원이 가능하다. 初元4年 戶口簿는 3枚로 나뉜 木牘에 標題를 제외하면 9행씩 每行 23내외로 총 707字가 쓰여 있다. 글씨는 正方形의 隷書體이고, 3枚의 木牘을 상하로 합치면 길이 26.8㎝, 너비 5~6㎝로 추정된다. 이는 漢代 公文書 규격 1尺(~1尺2寸)에 해당 한다. 호구부의 내용은 前漢 元帝 初元4年(BC.45) 樂浪郡 隷下 25個縣의 戶口數와 前年度 통계와의 增減與否와 增減値를 기재하였다. 목독의 末尾에는 낙랑군의 總戶口가 43,835戶에 280,361口였으며, 전년도보다 584호가 증가(多前)하였다고 집계하였다. 初元4年 戶口簿는 기원전 45년 낙랑군 소속 25개현의 주민분포 및 이를 통한 지역별 특성을 이해하는 한편, 군현 설치 전후의 歷史地理的 變化相을 이해하는데도 긴요한 자료로 생각된다. 그러나 초원4년 호구부와 함께 출토되었다는 公文書의 내용을 알기 어렵고, 정백동 364호분에 대한 발굴보고가 없어서 墓中文書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쉽지 않다. 初元4년 戶口簿는 郡府에서 縣단위의 호구자료를 집계한 漢代簡牘으로는 처음 발견된 것이다. 縣에서 隷下 鄕단위의 자료를 집계한 安徽省 天長漢簡의 「戶口簿」와 기재방식에서 大同小異하다. 특히 호구부에 기재된 낙랑군 소속 25개현의 記載順序가 4區域의 段落을 이루면서 郡治로부터 지리적으로 연접하여 배열되어 있다. 각각의 구역이 역사적 연원을 지닌 共同體로 여겨져 주목되는 현상이다. 앞으로 松柏漢簡의 「南郡元年戶口簿」가 공개되면 같은 縣單位의 戶口集計 簡牘으로 유용한 비교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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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集安 高句麗碑의 拓本과 判讀

        尹龍九 한국고대사학회 2013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70

        2013년 1월 4日 『中國文物報』를 통해 새로 발견된 「集安 高句麗碑」가 소개 된지도 半年 가까이 지났다. 廣開土王碑와 中原 高句麗碑에 이은 4~5세기 高句麗史硏究에 새로운 전기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여전히 기초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集安市博物館의 노력으로 종합조사보고서라 할 『集安高句麗碑』가 간행되었고, 이에 참여하지 않았던 연구자들이 『東北史地』(2013년 3기)를 통해 새로운 견해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개된 비석은 碑面의 관찰이 불가능한 상태이고, 중국 측 판독을 이끌어 낸 주요 拓本은 기초적인 書誌事項조차 정리되어 있지 못한 형편이다. 현재로선 중국 측 연구자가 가공하여 제공한 자료를 이해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하지만 한국고대사학회를 비롯하여 동북아역사재단과 고구려발해학회 등의 노력으로 중국 측 연구 성과를 이해하고 나름의 시각을 정립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지난 4월 13일 개최된 한국고대사학회 주최의 학술회의(「신발견 集安高句麗碑 종합검토」)는 새로운 자료에 대한 국내학계의 연구역량이 결집된 결과였다. 집안 고구려비의 조사연구를 주도한 耿鐵華?孫仁杰 등 연구자까지 참여하여 비석발견 된 후 개최된 첫 번째 공식 학술회의였다. 그럼에도 碑文의 判讀, 이를 위한 拓本과 寫眞 등 연구의 기초적인 자료의 열람이나 공유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碑文 연구의 특성상 판독과 내용검토는 늘 양립하는 것이지만, 판독을 위한 기초적인 논의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고 하겠다. 본고에서는 碑面의 상태, 탁본의 현황과 각 탁본의 자료적 성격, 비문의 記載方式 및 기왕의 판독이 지니는 문제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두 차례 진행된 한국고대사학회 주최의 판독회 결과를 바탕으로 비문의 판독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원 비석을 실견하고, 판독의 底本이 된 탁본을 비교한 후에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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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記』·『漢書』 注文의 ‘古朝鮮’ 관련 기사

        尹龍九(Yun, Yong-Gu) 한국고대사학회 2017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85

        『사기』·『한서』의 注釋은 해당 시기 학문과 史書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현존하는 注文은 주석 당시 모습이 아니다. 곧 인쇄본(刊本) 이전 오랜 筆寫 중의 節略과 改文, 그리고 여러 注文을 합하는 集注, 주문을 正文에 散入하는 注本의 成書에서도 변형이 반복되었다. 이는 ‘고조선’ 관련 注文도 마찬가지였다. 본고는 ‘고조선’ 관련 注文을 모으고, 주문 사이의 계통과 集注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分別을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고조선과 한사군에 대한 논란이 되어 온 注文 몇 가지를 검토하였다. ‘고조선’ 관련 주석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보다는 그동안의 讀法과 이해가 타당하였는지 살펴본 것이다. Records on Ancient Joseon, Yemaek, etc., in Shiji and Hanshu are essential for understanding ancient history of Korea, but there is a limitation that there is no record needed to verify their contents. In that respect, various commentaries that came after publication of Shiji and Hanshu have contributed to related studies, and the commentaries associated with Ancient Joseon was no exception. In the meantime, they have given rise to ongoing debates swirling to date over historic geography of Ancient Joseon and Four Commanderies of Han. The commentaries of Shiji and Hanshu reflected the understanding of studies and Chinese classics of concerned period, but the problem is that the records which have been preserved and inherited do not remain in their original forms. In other words, original texts underwent changes in the course of combination of transcription of several commentaries and such change continued. The commentaries produced from the period of Han to Tang Dynasty are the typical of such change. Thus, the commentaries on Ancient Joseon in Shiji and Hanshu require basic process of collection of related materials and detailed examination. Based on that, the study examined several commentaries which had given rise to the issues over Ancient Joseon and Four Commanderies of Han. We examined to determine whether the approach to comprehension of commentaries on Ancient Joseon had been reasonable thus far, compared to presentation of new 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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