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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철학의 프로테스탄트적 유산과 반프로테스탄티즘

        박영선 대동철학회 2004 大同哲學 Vol.27 No.-

        칸트의 종교철학을 프로테스탄티즘의 관점에서 읽으려는 것이 주된 흐름이다. 그러한 견해를 표방하는 저서들이 ‘프로테스탄티즘 철학자로서의 칸트’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칸트철학에 대한 그러한 해석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프로테스탄티즘이 유한적인 것을 절대화하는 것을 금하였듯이, 칸트철학은 이성에 의해서 형이상학적 이념들을 해명하려는 태도를 독단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즉 칸트와 프로테스탄티즘은 반독단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 유사성을 지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와 프로테스탄티즘 사이에는 차이성이 존재한다. 우선 비판기 이전부터 신이 이성적인 세계를 창조하였기 때문에 신을 이성적 진리의 대변자로 파악하려는 태도에 칸트의 이성중심의 신학적 태도가 나타난다. 그러한 사상은 비판기에 더욱 발전하여, 자유의 선험적 개념에 의해서 도덕의 가능성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도덕에 의해서 도덕적 이성신앙의 가능성을 열면서 더욱 심화된다.본 논문은 칸트와 프로테스탄티즘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 보다는 오히려 차이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신앙의 개념, 자유의 개념, 그리고 사랑의 개념에서 칸트와 프로테스탄티즘이 각각 취하는 차이점을 드러내려한다. Es ist die Hauptstr철mung der Philosophie, die Religionsphilosophie Kants im Bezug auf den Protestantismus zu intpretieren. Deswegen fassen die meisten Interpreten die Tedenze zusammen in ihren Schriften, die meistens 'Kant und Protestantismus' betiltet.sind. Die Tendenz der Interpretation ist wohl nicht grundlos. Es ist nicht ganz falsch, Kants Religionsphilosophie protestantisch zu betrachten. denn Kant und der Protestantismus wohl gegen den dogmatismus sind.. Vor allem ist Kant antidogmatistisch, indem er der Meinung ist, dass die metaphysischen Ideen durch Vernunft nicht erkennbar sind. Aber es sieht so aus, dass es eine Unkonformität zwischen Kants Religionsphilosophie und Protestantismus gibt, weil der rationale Gottesbegriff Kants sich vom Begriff Gottes im Protestantismus ganz unterscheidet. Und zwar entwickelt sich der rationale Gottebegriff d u r c h den Moralbegriff und wird als erwiesen angesehen. So wird in dieser Untersuchung gezeigt, wie Kants Religionsphilosophie und Protestantismus sich in angesichts des Begriffs von Glaube, Freiheit und Liebe. voneinander unterscheiden.

      • KCI등재

        톨스토이와 프로테스탄티즘

        허선화(Huh Sun Wha) 한국노어노문학회 2011 노어노문학 Vol.23 No.1

        톨스토이가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된 것은 1870년대 페테르부르그 귀족 사회에서 발생했던 영적각성 운동 덕분이었다. 그 당시 영국인 전도자 로드스톡 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인간은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고 구원에는 어떤 행위도 필요하지 않다는 내용의 설교를 통해 많은 이들을 회심시켰다. 로드스톡의 전도 활동이 페테르부르그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게 된 톨스토이는 자신의 작품들 속에 그 사회의 영적인 분위기를 묘사하며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반영한다. 『안나 카레니나』 에서 백작 부인 리지야 이바노브나와 안나의 남편 카레닌은 프로테스탄티즘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등장한다. 그들의 믿음에 진실성이 결여된 것을 간파한 작가는 그들을 전혀 호감을 주지 못하는 인물들로 제시한다. 또한 그들과 오블론스키 사이의 논쟁을 통해 작가는 그의 눈에 비친 프로테스탄티즘 교의의 거짓을 폭로한다. 『참회록』 에서 톨스토이는 프로테스탄트들을 비롯해 삶이 그들의 믿음과 일치되지 않는 신자들을 비판한다. 기독교 교회들의 연합을 가로막는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에 실망한 그는 어떤 교회에도 속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마지막 소설 『부활』에서 톨스토이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전사들인 키제베테르와 영국인이 설교하는 속죄의 교의에 강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톨스토이에게 러시아에서 전파된 프로테스탄티즘은 중요한 사회적 의의를 지니는 사건으로 경험되지 못한다. 그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교의가 개인들의 정신과 삶에 미친 영향을 묘사하면서 줄곧 부정적인 평가를 유지한다.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는 교회의 전승을 거부하고 진리의 판단을 자신의 이성에 의존함으로써 그의 ‘종파주의적’ 정신을 노출한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비롯해 모든 교회를 거부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정신적 특성 속에서 프로테스탄티즘 정신과의 모종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 KCI등재

        외채위기 이후 멕시코 치아파스 원주민의 개종

        김윤경(Kim, Yoon-kyung)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1 역사문화연구 Vol.39 No.-

        이 논문은 멕시코의 원주민들 사이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이 성장하게 된 원인과 그 결과를 치아파스 주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멕시코,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프로테스탄티즘이 급성장을 이루었다. 그러한 성장을 이루게 된 배경에는 오일 붐 이후 멕시코의 경제 위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급성장한 대표적인 주인 치아파스에서는 그 위기로 인해서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더 가난해지고 소외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chawaj 같은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이 질병은 원주민들의 일상생활을 파괴하고 종종 자살에 이르게 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은 원주민들에게 하나의 출구였다.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은 고통 중에 있는 원주민들에게 학교나 병원을 지어주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게다가 프로테스탄티즘은 신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원주민들이 신에게서 직접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은 카르고 체제를 공격하여 원주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개종은 종교적인 것을 넘어서 정치적인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caciques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위협하는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으로 개종한 원주민들은 돈이나 노동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카르고체제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들은 공동체의 우두머리들인 caciques의 권력에 대한 막대한 침해를 초래했다. 그래서 개종자들은 엄청난 탄압에 시달렸다. 가톨릭교도들은 개종자들의 집을 불태우고 고문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으며, 공동체에서 추방하기도 했다. 이렇게 추방된 사람들은 산 크리스토발 델 라스 카사스나 라캉돈 밀림지대로 도망가서 거기에 colonias를 형성하여 살았다. 정부와 ORIACH, INESIN, CIM 같은 시민단체들이 이러한 심각한 종교 갈등들을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종교 갈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This article tries to analyse the causes and effects of the growth of protestantism among indigenous people in Mexico. For decades, there has been the rapid growth of protestantism, especially in rural areas of Mexico. It was against the background of the economic crisis after a oil boom. In Chiapas, most of the indigenous were more marginalized and impoverished under the influence of a economic crisis. And they suffered from diseases like tuberculosis and chawaj. Chawaj destroyed a daily life of the indigenous and often made them suicide. In this situation, protestantism was a way out for the indigenous people. Christian missionaries offered practical assistance for them. For example, they built a school and infirmary accomodations. Furthermore, protestantism emphasized the directiv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human, so it was attractive for the indigenous. And protestant missionaries attacked the cargo system which the indigenous people felt a heavy burden with. The conversion had a political meaning beyond the religious. It was regarded as a defiance against cacique’s authority, as it were, a political action that threatened the order of the community. Because protestants didn’t participate in the cargo system and refused to contribute money and labour to festivals. These actions caused extensive damage to the power of caciques. Converts were subjected to the great pressure. Catholics burned houses of converts, tortured, even killed, and exiled from the community. For example, in San Juan Chamula, more than half of the community people were removed from the community, and formed colonias in the suburb of San Cristobal del Las Casas. Mexican government and civil organizations tried to solve these severe religious conflicts. Government-directed religious forums were conducted, and religious organizations like ORIACH, INESIN, CIM encouraged people to recognize religious diversity and thaught religious tolerance. Nevertheless, religious conflicts continue, so I am skeptical whether catholics and protestants will show religious leniency each other.

      • KCI등재

        미국의 앵글로-개신교 문화에 나타난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 노동윤리와 개인주의를 중심으로

        장정애 ( Jung Ae Jang ) 국제지역학회 2007 국제지역연구 Vol.11 No.2

        본 논문은 미국의 앵글로-개신교 문화에 나타나는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미국인들이 공적인 윤리나 기업윤리를 비롯한 경제활동, 정치문화 및 정치현상, 심지어 지극히 사적인 도덕성에 이르기까지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은 그들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저항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저항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은 근면한 삶과 그것을 통한 부의 축적을 신의 축복의 결과로 간주하는 노동윤리를 비롯한 삶에 대한 치열한 윤리, 금욕적인 현세주의, 도덕주의, 개인의 신앙과 중생한 성도의 변화된 삶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의 추구로 나타난다. 사회의 회복이 사회 구조 자체의 변혁이 아니라 개인의 중생과 교회의 회복에서 일어난다는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신조는 미국의 국가적인 환상인 ``아메리칸 드림``을 배태하게 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이 집단의 구조와 환경보다 자수성가의 개인적 노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개인 중심의 신앙적 배경에서 유래하는 현상이다. 개인의 성품과 능력, 사고와 노동을 통한 개인적 자아실현과 성취를 그 척도로 삼는 아메리칸 드림이 미국인에게 고취시키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이 신의 선택을 받은 ``약속의 땅``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각자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노동윤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This paper participates in a broader discussion of Resistant Protestantism in American Anglo-Protestant culture, centering around individualism and labor ethics. The resistant protestantism, being pertinent characteristics of American protestantism different from that of the Old World, is projected in a form of civil religion in American Anglo-Protestant culture which expresses the ideas of secular asceticism. American Dream is deeply embedded in an American group myth of this resistant protestantism inspiring individualism and labor ethics. This cultural ethos supports American Creed composed of Americans` values, beliefs, public opinion and preferences.

      • 세미나 10 : 미국의 앵글로-개신교 문화에 나타난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 노동윤리와 개인주의를 중심으로

        장정애 ( Jung Ae Jang ) 국제지역학회 2007 국제지역학회 춘계학술대회 Vol.2007 No.-

        본 논문은 미국의 앵글로-개신교 문화에 나타나는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미국인들이 공적인 윤리나 기업윤리를 비롯한 경제활동, 정치문화 및 정치현상, 심지어 지극히 사적인 도덕성에 이르기까지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은 그들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저항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저항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은 근면한 삶과 그것을 통한 부의 축적을 신의 축복의 결과로 간주하는 노동윤리를 비롯한 삶에 대한 치열한 윤리, 금욕적인 현세주의, 도덕주의, 개인의 신앙과 중생한 성도의 변화된 삶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의 추구로 나타난다. 사회의 회복이 사회 구조 자체의 변혁이 아니라 개인의 중생과 교회의 회복에서 일어난다는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신조는 미국의 국가적인 환상인 ``아메리칸 드림``을 배태하게 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이 집단의 구조와 환경보다 자수성가의 개인적 노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개인 중심의 신앙적 배경에서 유래하는 현상이다. 개인의 성품과 능력, 사고와 노동을 통한 개인적 자아실현과 성취를 그 척도로 삼는 아메리칸드림이 미국인에게 고취시키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이 신의 선택을 받은 ``약속의 땅``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각자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노동윤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This paper participates in a broader discussion of Resistant Protestantism in American Anglo-Protestant culture, centering around individualism and labor ethics. The resistant protestantism, being pertinent characteristics of American protestantism different from that of the Old World, is projected in a form of civil religion in American Anglo-Protestant culture which expresses the ideas of secular asceticism. American Dream is deeply embedded in an American group myth of this resistant protestantism inspiring individualism and labor ethics. This cultural ethos supports American Creed composed of Americans` values, beliefs, public opinion and preferences.

      • KCI등재

        프로테스탄티즘과 서구 근대법의 균열 구조

        이국운 한국사회이론학회 2020 사회이론 Vol.- No.58

        Whenever we try to view the Western modern law as a whole in the perspective of social theory, we are faced with a complex of multiple tensions between public law and private law, positive law and natural law, and Civil law and Common law. This article is an attempt to fill a theoretical vacuum that Max Weber remained by analyzing the unique structural cracks beneath the Western modern law in the relationship with Protestantism. Weber understood the uniqueness of the Western modern law with the separation of public law and private law as well as the prevailing of the former to the latter. His greatness as a social scientist lies in the fact that he located his own position in a broader system of thoughts, in which any other competing viewpoint can find a suitable position. The strategy of this article is to take this structural crack in Weber’s approach as a focus to interpret the structural cracks in the Western modern law as well as Protestantism. The key is a demand of Rationalization(Disenchantment) suggested by Weber as a common tendency in Modernity. Protestantism has established theological position of thinking individual before God, and tried to realize the revolutionary message of the New Testament, the Gospel, in every aspect of human life. In the unprecedentedly favorable religious and social condition 사회이론의 관점에서 서구 근대법을 하나의 총체로 조망할 때마다 우리는 항상 ‘공법 대 사법’, ‘실정법 대 자연법’, ‘대륙법 대 영미법’의 대립 구도들을 마주한다. 이 글은 서구 근대법의 근저에서 작동하는 이처럼 특수한 균열 구조를 프로테스탄티즘과의 관계에서 분석함으로써 막스 베버가 남긴 연구의 공백을 채워보려는 시도이다. 흥미롭게도 베버는 사실과 가치의 준별을 전제로 서구 근대법의 특징을 공법과 사법의 분리 및 공법 질서의 우위로 파악하면서도, 자신의 이해를 이론적 경쟁 관계에 놓인 다른 관점들과 하나의 체계 속에 배치했다. 이와 같은 베버의 균열을 서구 근대법과 프로테스탄티즘 각각의 균열 구조를 연결하는 초점으로 삼는 것이 이 글이 취한 전략이다. 핵심은 이 셋 모두를 꿰뚫는 경향성으로서 베버가 제안했던 ‘합리화(탈주술화)의 요청’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오직 믿음’의 기치 아래 ‘신 앞에선 사유하는 개인’을 신학적으로 정초했고, 스크립투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입장에서 진실한 믿음을 진리와 자유와 아가페의 사랑에 연결하는 신약성서의 혁명적 메시지를 삶의 모든 국면에 전면화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신앙이 기독교회와 사회 전체에서 다수이자 주류인 전례 없이 유리한 종교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은 모든 인간 존재에 ‘신적 형상’이 내재한다는 신학적 명제와 ‘보편적-정언적 자유의 요청’을 내세워 자유와 평등의 적극적인 실현을 추구했으며, 그 과정에서 성서적 합리성과 자연적 합리성을 함께 발전시켰다. 하지만 신정주의를 앞세운 ‘성도들의 혁명’이 지금껏 서구 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는 제도적 혁신을 촉발했음에도, 프로테스탄트 종교혁명은 결국 ‘원초적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이 틈을 파고든 계몽적 합리주의의 도전 앞에서 인격신론과 이신론으로 갈라졌으며, 종파별로 흩어져 ‘분리주의’, ‘이원주의’, ‘관계주의’의 모델들로 분열되었다. 이 글은 서구 사회이론에 대한 존 밀뱅크의 도발적인 신학적 분석을 뒤집어, 아이러니하게도 계몽적 합리주의가 이 세 가지 모델을 표현형식으로 재활용했으며, 그 결과 서구 근대법의 균열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가설을 제안한다. 이에 따르면, 주권국가론은 인격신론에 입각한 프로테스탄트의 분리주의를 재활용했고, 시장자유주의는 이신론에 입각한 프로테스탄트의 이원주의를 재활용했으며, 사실과 가치, 존재와 당위의 구분을 전제하는 사회이론의 흐름은 그 사이에서 제3의 입장인 프로테스탄트의 관계주의를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재활용했다. 제1의 입장이 공법으로 사법을 환원하려는 것이고, 제2의 입장이 사법으로 공법을 환원하려는 것이라면, 제3의 입장은 이른바 ‘숭고함에 대한 감찰’을 내세우면서 공법 우위와 사법 우위가 끊임없이 각축하는 모습이다.

      • KCI등재

        사회적 자본으로서 복음의 공공성 연구 : 21세기형 프로테스탄티즘 연구

        김미영 한국실천신학회 2022 신학과 실천 Vol.- No.79

        This paper attempts to prove that social capital as social virtues can be interpreted as the value of the kingdom of God, that is, the publicity of the Gospel, which is formed in the process of socialization and culturalization of the Gospel with transformative power at the social level beyond the personal level through work ethics and labor ethics. Therefore, it can be said still insufficient knowledge of human understanding to rely only on the realm of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 to establish humanity for the restoration of humanness and to identify social capital for social development and integration. Until now, in the study of social capital, the spiritual realm and the role of Christianity, which occupies the most important part in this realm, have been neglected. Therefore, Christian theology can contribute to promoting interest in and research on social capital by meeting the need to bridge the gap between general studies and theology through interdisciplinary research along with the fields of social science. In the meantime, research on social capital has mostly focused on the concept and measurement of social capital and the impact of social capital on society and economy. However, although the concept of social capital itself is multifaceted and related studies are relatively diverse, relatively little is known about the factors that form social capital. Beginning with Robert D. Putnam's research on social networks and Francis Fukuyama's research on trust, research on the factors that form social capital has only been conducted relatively recently. This study also tried to investigate how the spiritual culture of Protestantism has formed the social capital of trust and cooperation through the publicity of the Gospel in these insufficient areas. Moral trust, especially emphasized as social capital, can only be explained as a universal perspective on humanity regarding the image of God. It can be said that this is different from the strategic trust and individual trust often discussed in social capital. According to Francis Fukuyama, the social capital of trust is created when a community shares an systemic moral value structure that pursues a life of normal fairness and common sense. Since this is shared with the Protestant ethics emphasized by Max Weber, it can be asserted that this social capital of trust is based on the ethos of Protestantism as a Christian spiritual culture, that is, the norms of the kingdom of God. In order to understand the social capital formed by Christian humanness, we must understand the biblical truths that constitute humanity. Therefore, in order for the modern society to properly understand the 21st century Protestantism, it is necessary to recognize that the knowledge of God is urgent for modern people. This paper emphasizes the argument that the mission for this is given to the church and the theological community. 본 논문은 사회적 덕성으로서 사회적 자본을 복음이 직업윤리와 노동윤리를 통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차원에서 변혁적 능력으로 사회화되고 문화화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 즉 복음의 공공성이라고 해석할 수 있음을 변증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인간다움의 정립과 사회 발전과 통합을 위한 사회적 자본의 규명은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만 의존하기에는 인간 이해에 대한 본질적인 지식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사회적 자본에 관한 연구에서 정신적 영역과 이러한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기독교의 역할은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더불어 다학제간 연구를 통해 일반 학문과 신학 간의 간극을 메울 필요성을 충족하여 사회적 자본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촉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동안 사회적 자본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사회적 자본의 개념과 측정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본이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면적이고 관련 연구도 비교적 다양하게 많지만 사회적 자본의 형성 요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로버트 퍼트넘의 사회적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신뢰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사회적 자본의 형성 요인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본 연구도 이러한 미진한 영역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신문화가 신뢰와 협력의 규범과 네트워크라는 사회적 자본을 복음의 공공성을 통해 어떻게 형성하여 왔는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특히 사회적 자본으로서 강조되는 도덕적 신뢰는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인간다움에 대한 보편적인 관점으로서만 설명되어질 수 있다. 이는 종종 사회적 자본에서 거론되는 전략적 신뢰와 개별적 신뢰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후쿠야마에 의하면 신뢰의 사회적 자본은 공동체가 정상적인 공정과 상식의 삶을 추구하는 유기적인 도덕적 가치체계를 공유할 때 조성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막스 베버가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공유하기에 기독교 정신문화로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에토스, 즉 하나님 나라의 규범에 근거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기독교의 인간성이 형성하는 사회적 자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성경적 진리를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현대사회가 21세기형 프로테스탄티즘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현대인들에게 절실함을 인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한 사명이 교회와 신학 공동체에 주어져 있다는 주장을 본 논문은 강조하고자 한다.

      • KCI등재

        유교 연구에서 베버 종교론의 가치와 재해석

        이황직 한국사회이론학회 2020 사회이론 Vol.- No.58

        Despite the classical value of Max Weber’s Protestant studies, his Confucian studies have become the subject of intense debate in the course of East Asian modernization. On the occasion of the Centenary of Weber’s death, to overcome the limitations and misunderstandings of his Confucian theory, this paper carried out the following research. First, Weber’s world religion research project was carried out in accordance with the purpose of explaining the results of his Protestant ethic in universal history. As a result, his study on China and Confucianism, conducted as part of the study of world religion, was bound to have limitations. If the relationship between Protestant Ethic and Confucianism and Taoism is reset equally, Weber’s historical and sociological methods and conclusion are still valid as a starting point for Confucian studies. Second, the academic discussions of East Asian modernity in the last century were in the search for functional equivalents of Western Protestantism. Confucian capitalism theory was a discourse that synthesized these critical processes, but it did not overcome Weber’s thesis internally. In order to overcome Weber academically, this paper reviewed two concepts, Peter Berger’s ‘post-Confucian ethic’ and Robert Bellah’s ‘bourgeois Confucianism’, and sought the possibility of innovation of Confucianism as an ethical religion through Bella’s final exploration of Confucian transcendence of secular world and Park Young-shin’s reflections on Korean society as ‘bamboo cage’. 프로테스탄티즘 연구의 고전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베버의 유교 연구는 동아시아 근대화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베버 100주기를 맞아 그의 유교론의 한계와 오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연구 관점을 모색하기 위해 작성된 이 논문의 탐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베버의 세계종교 연구 기획은 선행 프로테스탄티즘의 연구 관심을 보편사적으로 해명하려는 목적에 따라 진행되었고 그 결과 세계종교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된 중국과 유교 연구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관심을 배제하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유교와 도교의 관계를 대등하게 재설정한다면, 유교와 도교의 세련된 역사사회학적 분석 방법과 결론은 여전히 유교 연구의 출발점으로 유효하다. 둘째, 지난 세기 동아시아 근대성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서구 프로테스탄티즘의 기능적 등가물 찾기에 있었다. 유교자본주의론은 이러한 비판 과정을 종합한 담론이었지만, 베버 테제를 내적으로 극복하지는 못했다. 베버를 학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이 논문은 후기 유교 윤리와 부르주아 유교 개념을 검토했는데, 특히 벨라가 최종적으로 제안한 유교의 초월성 탐구와 박 영신이 개념화한 ‘대우리’로서의 한국 사회에 대한 반성 작업을 통해서 윤리 종교로서 유교가 혁신될 수 있는 길을 여는 데 기여할 것이다.

      • KCI등재

        Desire, Duty, and Poetics of Incompletion : Edmund Spenser's The Faerie Queene (Book Ⅰ) and Philip Sidney's The Old Arcadia

        Ju ok Yoon(윤주옥) 한국셰익스피어학회 2009 셰익스피어 비평 Vol.45 No.4

        르네상스시대 프로테스탄티즘을 대표하는 시인들인 에드먼드 스펜서와 필립 시드니는 각각 『선녀여왕』의 제 일권과 『구아카디아』에서 욕망과 의무, 덕과 사랑, 절제와 충동 사이의 갈등을 주요한 주제 중 하나로 다루고 있다. 시인들은 상충되는 이들 두 힘들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편드는 대신에, 이를 넘어서는 시학으로 미완성의 시학을 제시하며, 이 미완성의 시학은 그들이 믿었던 프로테스탄티즘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녀여왕』 제 일 권의 주인공인 붉은 십자가의 기사는, 선녀여왕이 부여한 기사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 중 많은 부분에서 욕망과 충동 사이에 사로잡혀 자신의 의무를 망각하며, 그의 기사답지 못한 태도는 작품의 끝 부분에서도 계속된다. 『구아카디아』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피라넥스와 유르크스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욕망에 사로잡혀 통치자이자 아버지로서, 왕자이자 기사로서, 공작부인이자 어머니로서, 그리고 공주이자 딸로서 자신들에게 기대되어지는 덕과 의무를 저버리며, 그 대가로 유르크스가 내리는 극한 벌을 받을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스펜서와 시드니는 허물이 많은 극중 인물들을 도덕적으로 나무라고 체벌하는 대신에 그들이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의 도움, 용서, 자비를 찾아가는,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노정 중에 있는 존재들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고자 하며, 이 점이 시인들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교훈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 논문에서 저자는 스펜서와 시드니가 작품 속에서 욕망과 의무, 덕과 사랑, 절제와 충동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그리고 열린 또는 미완성의 끝이 갖는 시학의 의미를 프로테스탄티즘과 연결하여 탐색해본다.

      • KCI등재

        자유민주주의와 교회 정치

        이국운 기독교학문연구회 2023 신앙과 학문 Vol.28 No.1

        이 글은 오늘날의 한국 상황에서 프로테스탄트 정치 운동의 조건과 한계를 교회 정치 차원에서 탐색하려는 시도이다. 2000년대 이후 거듭되고 있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정치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정치로부터의 철수가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 원칙이 이 문제를 풀어가는 출발점이라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프로테스탄티즘은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가? 저자는 프로테스탄티즘이 그 출발점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 운동으로서의 에토스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프로테스탄티즘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서 모든 인간의 자유를 초월적으로 정초하면서 원초적 평등과 정치적 자동성의 이념을 차례로 정당화시켰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나간 수 세기 동안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공동체(교회)가 그와 같은 자유민주주의 운동의 실험장으로서 다양한 정치 노선들을 발전시켜왔음을 제시한다. 문제는 19세기 이후 자유민주주의 정치 운동의 무대가 실증적 주권국가로 옮겨지면서 제도적 교회 정치가 자유민주주의 운동으로서의 에토스를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최근 한국 사회의 프로테스탄트들이 경험하고 있는 정치적 실패를 이와 같은 장기적 추세의 일환으로 해석하면서, 차제에 프로테스탄트 정치 운동의 무대를 옮길 것을 제안한다. 흔히 교계(敎界)라고 지칭되는 목회자 중심의 종교조직(Churchian network)을 넘어서서 다양한 종류의 크리스천 결사체들(Christian associations)들을 프로테스탄트 정치운동의 새로운 무대로 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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