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조선 후기 중서층 화가들의 ‘울분’표현 양상과 그 의미

        이선옥(Lee, Seon-Ok)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3 인문과학연구 Vol.0 No.36

        이 논문은 이인상(李麟祥, 1710~1760)과 최북(崔北, 1712~1786년경)을 중심으로 신분으로 인해 제약을 받았던 조선후기 중서층(中庶層) 화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울분을 표현했는지 살펴본 것이다. 같은 시기 신분차별로 인해 설움을 받고 분노하였던 화가가 이들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개성 있는 화풍으로 조선 후기를 대표할 만한 화가들이며, 개개인이 처한 환경과 성향에 따라 울분을 표출하는 모습도 큰 차이를 보여 당시 중서층 화가들의 다양한 감성표출양상을 볼 수 있었다. 이인상은 서출이라는 신분에서 오는 억울함과 괴로움을 은둔이라는 어쩌면 소극적인 행동양식을 선택함으로써 견뎌내었다. 이러한 이인상의 행동은 그가 비록 불우한 처지에 있지만 당대를 호령하는 핵심 노론계 집안의 후손이자 나라를 걱정하는 지식인으로서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완고하면서도 고매한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이인상은 자신의 울분을 작품을 통해 승화시켰다. 거의 90도로 굽은 굵은 소나무나 병들어 시든 국화 등을 통해 쓸쓸하고 처량한 자신의 처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였으며, 갈필과 윤곽선 위주의 산수화로 적막감을 나타내었다. 최북은 술과 그로 인한 기이한 행동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였다. 그러나 그림은 몇몇 이외에는 당대 유행하던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로 그의 기이한 행적에 부합하는 개성 있는 작품이 많지는 않다. 이는 그의 한계로 지적되며, 역으로 그림을 팔아 겨우 먹고 살았던 그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받았던 편견과 멸시를 그들은 자신의 예술적 자부심으로 견뎌나갔다. 한편으로는 그런 자부심 때문에 자신에 대한 경시를 더 불합리하게 느끼기도 하였다. 스스로는 문인으로서 예술가로서 누구에 못지않은 능력이 있었음에도 신분이라는 틀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이 그들 작품의 개성으로 드러나고 또 기행으로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examined how the middle class painters of the late Josen period expressed their anger as they were restricted due to their social standing centering on Yi In-Sang(李麟祥, 1710~1760) and Choi Buk(崔北, 1712~1786). There were many other painters who were sad about the discrimination according to their social standing. However, as they stood for painting circles of the late Joseon period because of their characteristic painting styles and were different in representing their bitterness according to their situations and tendencies. Yi In-Sang stood grief and suffering derived from his illegitimacy by selecting the negative style of withdrawal from ordinary life. His such conduct was derived from his strict and noble personality as an intellectual and descendant of the dominating family at that time although he was in difficult situation. He sublimed his bitterness through his paintings. He metaphorically expressed his lonely and miserable situation through a curved pine tree or withered chrysanthemum. Choi Buk expressed his anger against the society through drinking and strange behaviors. However, there were only a few paintings that his distinctive character was reflected on as most of his paintings were literary artists" style of the Southern which was popular at that time. It was his limitation and showed his miserable position. Yi In-Sang and Choi Buk stood disregard and ignorance due to their low social standing through their artistic pride. So, they thought that the disregard they received from the society was unreasonable. Their resistance against unreasonable reality was expressed through characteristic paintings and strange conducts as literary persons and artists.

      • KCI등재

        조선 후기 중서층 화가들의 ‘울분’표현 양상과 그 의미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3 인문과학연구 Vol.36 No.-

        <P>&nbsp;&nbsp;이 논문은 이인상(李麟祥, 1710~1760)과 최북(崔北, 1712~1786년경)을 중심으로 신분으로 인해 제약을 받았던 조선후기 중서층(中庶層) 화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울분을 표현했는지 살펴본 것이다. 같은 시기 신분차별로 인해 설움을 받고 분노하였던 화가가 이들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개성 있는 화풍으로 조선 후기를 대표할 만한 화가들이며, 개개인이 처한 환경과 성향에 따라 울분을 표출하는 모습도 큰 차이를 보여 당시 중서층 화가들의 다양한 감성표출양상을 볼 수 있었다.</P><P>&nbsp;&nbsp;이인상은 서출이라는 신분에서 오는 억울함과 괴로움을 은둔이라는 어쩌면 소극적인 행동양식을 선택함으로써 견뎌내었다. 이러한 이인상의 행동은 그가 비록 불우한 처지에 있지만 당대를 호령하는 핵심 노론계 집안의 후손이자 나라를 걱정하는 지식인으로서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완고하면서도 고매한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이인상은 자신의 울분을 작품을 통해 승화시켰다. 거의 90도로 굽은 굵은 소나무나 병들어 시든 국화 등을 통해 쓸쓸하고 처량한 자신의 처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였으며, 갈필과 윤곽선 위주의 산수화로 적막감을 나타내었다.</P><P>&nbsp;&nbsp;최북은 술과 그로 인한 기이한 행동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였다. 그러나 그림은 몇몇 이외에는 당대 유행하던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로 그의 기이한 행적에 부합하는 개성 있는 작품이 많지는 않다. 이는 그의 한계로 지적되며, 역으로 그림을 팔아 겨우 먹고 살았던 그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P><P>&nbsp;&nbsp;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받았던 편견과 멸시를 그들은 자신의 예술적 자부심으로 견뎌나갔다. 한편으로는 그런 자부심 때문에 자신에 대한 경시를 더 불합리하게 느끼기도 하였다. 스스로는 문인으로서 예술가로서 누구에 못지않은 능력이 있었음에도 신분이라는 틀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이 그들 작품의 개성으로 드러나고 또 기행으로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P>

      • KCI등재

        崔北 文人畵의 狂狷的 예술심미

        김도영 국제문화기술진흥원 2019 The Journal of the Convergence on Culture Technolo Vol.5 No.1

        Choi Buk(1712-1786) is the master of three poems, caligraphy, paintings of the Middle Class Painter. There is a resisting cynicism against discrimination, a madly free and unbridled madness that is not bound by itself, and a master sense due to pride in his artistic talents. Madness and stubborn as an image of a unique painting through unworldly and clasical scholar oriented Muninhwa. His muninhwa has many poetic picture paintings where poetry and painting are one, and the technique of painting depicting objects is based on the power of the muscles and is a madness brush which is not bound anywhere. And it expresses the level of art in a higher level through the unconventional composition of the unconventional composition, the simplicity of the line, and the unique operation of margins and colors. His Muninhwa appeared naturally in the works of art, which is a pride of enterprising people and a belief that aesthetic pursuit of a change of the unchanging ones. 崔北(1712∼1786)은 中庶層출신의 閭巷畵家로서 詩·書·畵를 겸비한 三絶作家이다. 신분적 차별에 대한 저항적냉소와 스스로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狂放不羈한 狂氣, 그리고 자신의 예술적 재능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한 傲慢과名人의식 등을 脫俗的·文士的문인화를 통해 개성적 畵風으로 狂狷하게 발현하였다. 그의 문인화는 詩畵一致라는 詩 意圖가 많으며, 畵法은 筋力을 위주로 하여 不拘格套의 狂筆로 대상물을 묘사하였고, 파격적 구도와 필선의 簡逸함, 여백과 색채의 독창적 운용으로 한 차원 높은 예술의경을 발현하였다. 그의 문인화는 狂者의 오만한 듯한 진취적 기상과 狷者의 변혁적 심미를 고수하고자 하는 예술관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투영되었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