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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모 두부방사선계측사진 분석과 측모 사진 분석의 비교

        김광원,임성훈,조주영,최갑림 대한치과교정학회 2006 대한치과교정학회지 Vol.36 No.1

        오래 전부터 교정진단 및 치료계획 수립 시 골격 및 치열 관계와 안모를 분석하기 위한 필수적인 진단 자료로 측모 두부방사선계측사진을 이용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심미적인 측면이 강조되면서 좀 더 정량화된 연조직 분석법이 필요하게 되었고 좀 더 사실적인 연조직 측모를 얻기 위해서는 측모 두부방사선계측사진보다는 측모 사진이 더 유용할 것이다. 아직까지 측모 사진을 계측, 분석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이 연구에서는 측모 사진의 계측 분석을 측모 두부방사선계측사진 분석과 비교해 봄으로써 연조직과 경조직 분석이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지를 알아보고 그 대체 가능성을 시험 평가해 보고자 하였다. 교정과에 내원한 환자들 중 측모 두부방사선계측사진의 계측치인 ANB를 기준으로 Ⅰ급 부정교합(0˚~4°) 32명, Ⅱ급 부정교합(4°≤) 32명, Ⅲ급 부정교합(5°~0°) 31명을 선정하였다. 각 피험자들의 측모 두부방사선계측사진과 측모 사진을 각각 촬영하여 수평적, 수직적 계측 항목을 설정한 후 각 계측치들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구하였고 통계적 유의성을 알아보기 위해 표준화 변수 Z를 이용한 t-test와 상관분석을 이용하였다. 분석 결과 측모 두부방사선계측사진 분석에서 세 그룹 간에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계측치들이 측모 사진에서도 유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결과 측모사진은 Sn-N'-Pg'은 측모 두부방사선계측사진에서 상,하악골의 전후방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ANB를 대신하여 사용될 수 있으며, 측모 사진의 N'-Sn/Sn-Pg'은 측모 두부방사선계측사진의 NA/APg (ficial convexity)을, 그리고 측모 사진의 N'-Tra-Me'는 측모 두부방사선계측사진의 FH-MP (mandibular plane)을 대신하여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lalysis of lateral cephalometric radiograph (cephalogram) has been used routinely to evaluate skeletal and dental relationships, but alalysis of the lateral facial photograph has not been used frequently for evaluation of skeletal relationships. As concerns about harm of X-ray irradiation increases, this study was planned to evaluate the possibility of substituting analysis of the lateral cephalogram with analysis of the lateral facial photograph by comparing these two analysis. According to the ANB values from cephalometric analysis, subjects were divided into three group: ClassⅠmalocclusion group (n = 32). Class Ⅱ malocclusion group (n = 32), and Class Ⅲ malocclusion group (n = 31). After measurements of angles indicating horizontal and vertical relationships of the maxilla and mandible on the lateral cephalograms and photographs, differences between ClassⅠ,Ⅱ and Ⅲ groups were evaluated. To evaluate the similarity between two similar values in the cephalograms and photographs, t-test using standardized variable Z and correlation analysis were performed in the Class Ⅰmalocclusion group. The results show that 1) SnN'Pg' on the photograph can be used to evaluate the antero-posterior relationship of the maxilla and mandible (ANB), 2) N'-Sn/Sn-Pg' on the photograph can be used to evaluate facial convexity (NA/APg), 3) Sn-Tra-Me' on the photograph can be used as a measurement similar to FMA, In conclusion, partly substituting lateral cephalogram analysis with lateral facial photograph analysis was possible in the evaluation of the maxilla and mandible.

      • KCI등재

        사진은 어떻게 진실을 증언하는가 - 언론사진의 목격자역할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연구

        김상덕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2022 기독교사회윤리 Vol.52 No.-

        Photography has a unique characteristic that captures a moment in the past and freezes it forever. It plays a crucial role in revealing a truth of an event, along with its value as historical data. In the context of violent conflict such as the May 18, truth-seeking was most significant. In the process, photographic records played a critical role in witnessing the truth of the May 18. However, some photographs such as the images of militia were often used to distort the truth, insist- ing the May 18 as a riot. This is because a photograph cannot capture the overall context of an event and reproduce only fragmented time and space. How is “the truth” found among the truths claimed in many branches? How does a photograph reveal “the truth” among fragmented pieces of truth? This paper examines the importance of “witness,” maingly drawing upon the concept of “bearing wit- ness” and journalistic vocation in seeking truth. This argument is also theologically significant because it can be reverted to the question of “How can Christianity reveal the truth among the truths spoken by various religions in our plural society?” Within the stated context,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photography and truth through the concept of “witness” and to discuss the meaning of the testimony of the church in digital media society. 사진이 갖는 힘은 과거에 한 순간을 그대로 포착하여 그 순간을 영원히 유지하는 데 있다. 이는 기록사진이 갖는 고유한 특성으로서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광주항쟁과 같은 갈등의 역사에서 진실규명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특히 초기 5.18 유가족 및 시민단체들은 광주항쟁의 진실규명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사진기록은 진실을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반면 모든 사진이 다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파편적인 시간과 공간만을 재현하기 때문에한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을 담아낼 수는 없다. 일부 사진들은 광주 시민들이 조직한 시민군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이런 사진들은 ‘5.18’을 폭동이나 정치공작으로 왜곡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여러 갈래로 주장되는 진실들 가운데 “진실”(the truth)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사진은 파편화된 진실의 조각들 중에서 어떻게 “진실”을 드러내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언론인의 ‘목격자역할’(bearing witness) 개념을 중심으로 진실을 드러내는 ‘증언’(witness)의 중요 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여러 종교가 말하는 여러 진리들 가운데 기독교는 어떻게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도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목격자역할” 개념을 통하여 사진과 진실의 관계를 살피고 이를 통하여 디지털미디어 사회 속 교회의 증언의 의미에 대하여 논하는 데 있다.

      • KCI등재

        사진과 페티시즘 -에르베 기베르의 작품 세계-

        김현아 프랑스학회 2005 프랑스학연구 Vol.34 No.-

        프랑스 태생의 소설가 에르베 기베르는 문학작품을 통해 사진영상을 재현한다. 그는 사진가, 르 몽드(1977~1985)지의 사진기고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며 자전적인 단편집 "L'Image fantô̂me"에서 가공의 사진이나 사진에 관한 희미한 기억을 글로 되살려낸다, 필자는 "L'Image fantô̂me"을 근간으로 작가의 작품 전반에 걸쳐 사진이 페티시즘과 연결되는 양상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 논문의 연구대상은 기베르의 문학작품에서 표현된 사진 영상이라는 점을 밝힌다. 페티시는 인간 내면의 결핍된 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긴 대체물을 의미한다.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와 결부시킨다. 사진 영상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성적인 환상에 빠지기도 하고 현실적으로는 충족하기 힘든 성적인 욕구를 대신 채우기도 하는 것이다. 그에게 사진은 사물의 외관이나 인간의 형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영상이 아니라 사랑의 동반자로 다가온다. 사진에 대해 지나치게 성적으로 집착하는 이 태도가 페티시즘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진은 육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흠모하던 이의 사진이 작가의 몸에 실제로 인쇄됨으로써 육체자체가 인화지처럼 되는 현상이 그것이다. 작가는 사진속의 영상들을 시간의 구속에서 해방시키고 나아가 자신의 육체를 통해 재현해낸다. 기베르는 사진에서 죽음을 통해서만 실현이 가능한 영원성에 대한 꿈을 실현시킨 듯하다. 한편 사진은 기베르에게 정체불명의 유령의 영상을 꿈꾸게도 한다. 작가는 사진을 은밀히 훔쳐보면서 사진에 찍힌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뚫어지게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사진에 드러난 육체가 마치 유령처럼 감상자의 영혼에 끊임없이 엄습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진 영상의 사실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감상자의 심리상태, 충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또한 신이나 영혼과 같은 초월성을 띤 전체가 아니라 한정된 부분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페티시즘과 직결된다. 평범한 사진에서 예기치 않는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이를 페티시즘과 연결시킨 기베르의 작품세계, 우리는 그것을 통해 작가가 현상되고 인화된 영상보다는 상상의 나래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 하는 정신적 사진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사진을 거부하고 자신의 감추어진 욕망, 내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자 함이다. 그는 사진을 통해 인생의 심오한 철학을 담고자 한 것이다. 결국 페티시로써의 사진 영상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과 진리를 보는 인간 영혼의 눈을 회복시키고자 한 작가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 KCI등재

        사진관과 예식장 경영자의 구술생애사로 본 혼인문화의 전개

        노영미 한국구술사학회 2014 구술사연구 Vol.5 No.2

        이 연구는 구술생애사(oral life-history)를 통한 문화연구라 할 수 있다. 구술사란 역 사의 길 위에 남아 있는 또 다른 발자취로서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뿌연 먼지에 덮인 발 자취(기억)이다. 구술을 통해 그 먼지가 걷히고 난 후에 드러난 발자취는 구술사가 된다. 또한 개인의 삶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구술생애사가 되는 것이다. 이 연구는 구술생애 사를 통해 근대 사진관과 예식장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서 사진문화와 혼인문화의 전개 를 살펴보았다. 기존 연구 중에 사진관과 예식장의 긴밀한 연관성을 밝혀낸 연구가 없으 며 더욱이 구술생애사적으로 접근한 연구도 없으므로 이 연구는 구술생애사적 연구 분야 를 좀 더 확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김동욱의 아버지인 김남용은 1930년대 중반에 일본인으로부터 취미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계기로 충남 서천군 길산에서 1930년대 후반에 사진관을 개업하였다. 당시에 조 선인에 의해서 운영되는 사진관이 전국적으로 늘어가는 시기였다. 김남용은 길산보다 장 항이 더 경기가 좋아지자 1946년도에 장항으로 이전을 한다. 장항에서 1960년대까지는 혼인식을 신부집 마당이나 교회에서 올렸기 때문에 김남용은 출사를 많이 다녔다. 그러다 차츰 사진관의 스튜디오에서 간단히 예식을 올리고 사진촬영도 하기를 원하는 신랑신부 가 늘어났다. 이때부터 김남용은 사진관의 스튜디오를 예식에 어울리는 배경으로 바꾸어 예식을 진행하였다. 사진관의 예식이 차츰 늘자 김남용은 1968년에 사진관을 증축하고, 그 후 1971년에 넓은 정원이 있던 자리에 별관을 지어 예식을 전문으로 진행하였다. 이때에 장항에서 유 일한 예식장이었기 때문에 예식이 아주 많았다. 1953년도에 도민증으로 호황기를 보내 고 1960년대에는 학교 졸업 앨범으로 호황기를 보내고 다시 예식장을 경영하면서 호황 기를 맞이한다. 이상과 같이 김동욱의 구술생애사는 장항의 미라미사진관/예식장이 어떻게 변화해 왔 는가를 보여주므로써 근대적 사진문화와 혼인문화의 전개를 일부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 를 통해 근대 사진관이 혼인식 사진 때문에 신부집이나 교회를 대신한 예식 장소로 선호 되면서 전문 예식장으로 변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이 일반사람들에게 보급된 후 혼 인의례에서 혼인식이 가장 중요한 절차로 인식되는 것처럼 이 혼인식을 담은 사진도 매 우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혼인식은 혼인을 사회적으로 공표하기 위한 의식이고 이때 촬영 한 원판사진은 혼인을 증명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사진이 매개가 되어 사진관 이 예식장으로 변화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연구들은 농촌에 서양식의 혼인식이 보급된 것은 1960년대라고 하였고 예식 장이 보급된 것은 1970년대라고 하였다. 그러나 농촌지역의 예식장들이 어떻게 보급되 었는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하였다. 미라미예식장의 형성과정은 1970년대 농촌지역 예식장들이 어떻게 보급되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can be described as a cultural study through oral life-history. Oral life-history is a footprint (memory) covered with a cloud of dust over a long period of time as another footprint left on the historical road. The footprint appears after the dust clears as an oral statement becomes an oral history. In addition, a person’s life becomes an oral life-history through this process. This study examines changes in photographic and marriage cultures while investigating the formation of modern photographic studios and wedding halls through oral life-history. There have been no previous studies clarifying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photographic studios and wedding halls, and furthermore there have been no such studies from the perspective of oral life-history. Therefore, this study extends the field of research on oral life-history. Kim Nam-yong (김남용), the father of Kim Dong-uk (김동욱), began to learn photography from a Japanese person in the mid-1930s and then opened a photographic studio in Gilsan (길산; 吉山), Seocheon-gun (서천 군; 舒川郡), Chungcheonnam-do (충청남도; 忠淸南道) in the late 1930s. At that time, there was an increase in Koreans who operated photographic studios nationwide. When the economy improved in Janghang (장항; 長 項) more than Gilsan, Kim Nam-yong moved to Janghang in 1946. In Janghang, wedding ceremonies had been held in the gardens of brides’ families or churches until the 1960s. Therefore, Kim Nam-yong frequently visited these places to take photographs. Gradually, more and more brides and grooms wanted to have a small wedding ceremony in the photographic studio and then to have their photograph taken there. Subsequently, photographic studios were used as a wedding hall when a wedding ceremony was held. As described above, Kim Dong-uk shows how the Mirami Photographic Studio/Wedding Hall in Janghang has changed alongside the development of modern photographic and marriage cultures through oral life-history. This study shows that modern photographic studios changed to wedding halls as they became preferred as a wedding venue instead of gardens of brides’ families or churches. As the marriage ceremony has been recognized as the most important procedure among marriage rituals since photographs have been popularized, photographs have been regarded as important to this marriage ceremony. A marriage ceremony is held to socially announce the marriage, and the original photograph taken at the time proves the marriage. Based on this concept, it is shown that photographic studios changed to wedding halls through the medium of photographs. Previous studies have reported that Western marriage ceremonies were prevalent in rural areas in the 1960s and wedding halls in the 1970s. However, they failed to demonstrate how wedding halls became prevalent in rural areas. I argue that the formation of the Mirami Wedding Hall is a clear example of how wedding halls were popularized in rural areas in the 1970s.

      • 커뮤니케이션 과학 : 한,미 2012년 대선 사진 보도 비교분석 연구

        김영수 ( Yung Soo Kim ) 고려대학교 정보문화연구소(구 고려대학교 언론연구소) 2012 커뮤니케이션 科學 Vol.29 No.1

        본 연구는 2012년 하반기 동시에 벌어진 한국과 미국의 대선 보도 중 일간 신문들의 사진 보도를 비교 분석하여 대통령 선거라는 공통된 뉴스 이벤트를 다룬 보도 사진의 경우에도 국가별로 고유한 특성이 있는지를 살펴 보았다. 한국 신문 중에서는 조선일보와 한겨레 신문을, 미국 신문 중에서는 뉴욕 타임즈와 로스엔젤레스 타임즈를 선택하여 양국의 대선 후보 (미국의 경우는 부통령 후보 포함) 들을 취재한 2백67장의 사진을 비교 분석하였다. 연구 대상 사진들을 내용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신문들은 대선 후보들을 다룸에 있어서 크기나 사진 내용, 구도 등이 거의 대등소이한 사진들을 나란히 배치하는 대칭적(Symmetric) 보도를 사용하는 비율이 미국 신문에 비해서 현저히 높았으며, 미국 신문과 비교해서 후보들의 자연스런 모습 (Casual look)보다는 공식적인 (Authoritative look) 모습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 신문의 대선 사진의 경우에는 짜여진 공식 행사에서의 후보들을 포착한 사진들(Photo Opportunity photographs)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반면에 미국 신문 사진들의 경우에는 자연스러운 상황을 담은 사진들(Documentary photographs)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끝으로, 한국 신문들의 보도 사진의 경우에는 현장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정보 전달 위주의 사진(Informational photographs)이 전체를 차지한 반면, 미국 신문들은 특이한 구도나 인상적인 조명 효과 등을 요구하는 보다 심도있는 사진들(Above Informational photographs)도 다수 포함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국경을 뛰어넘는 만국 공통어라고 하는 보도사진의 경우도 실제로는 생산되어지는 국가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각 국가별로 고유한 특성을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 본 연구의 비교 분석을 통해서 다시 한번 밝혀진 셈이다. The 2012 presidential elections in Korea and the U.S. provided a unique opportunity to examine how news photographs in two countries presented similar news events differently from one country to another. A content analysis of 267 news photographs in Korean and U.S. newspapers showed that there were considerable differences in balancing pattern, look, type, and complexity of the presidential election photographs between the two countries. Compared with news photographs in the U.S. newspapers, news photographs of candidates in Korean newspapers tended to present symmetric coverage and to render an authoritative look of the candidates. Furthermore, they tended to be products of photo opportunities and all of them were informational photographs.

      • KCI등재

        사진에 의한 지지 기술의 가능성과 의의: 「광주향토사진첩」을 중심으로

        옥한석 ( Han Suk Ock ) 한국사진지리학회 2010 한국사진지리학회지 Vol.20 No.1

        이 연구는 지역의 사진자료를 집성한「광주향토사진첩」(1959)의 발간 배경과 구성, 내용상의 특징을 살펴본 후 사진에 의한 지지 기술의 가능성과 의의를 알아보려고 한다. 「광주향토사진첩」의 구성 내용과 면수를 자세히 보면 수록된 총사진의 매수는 730장이며 이중 인물사진이 549장, 건축 및 경관 사진이 181장이다. 광주사진첩은 24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고장 전경, 광주 각기 관, 금융기관, 수리기관, 각 종교계, 광주군 면사무소. 군내 각지서, 군내 각 고등학교, 군내 각 초등학교, 약진도상의 군내 각기업체, 여객업 및 주유업, 정미요업, 요식업, 명승고적을 찾아서 등의 주제별 구성에 나오는``건축 및 경관``사진이 대부분이 지리적 사실을 담고 있다. 「광주향토사진첩」의 발굴을 통하여 비록 사진첩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이름 그대로 향토사진첩, 지리적 의미에서의 지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본다. 「광주향토사진첩」의 수록 사진 일부를 이용하고 지역 주제와 관련된 사진 자료를 발굴하여 구성한``천호구사거리``는 지리현상을 보다 지리적으로, 체계적으로 보여준 훌륭한 예라고 생각하며 사진에 의하여 지지 서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비록 시간의 변천에 따른 역사사진지리가 되었지만 2004년 발간된「사진으로 본 강동사」는 지리학자에 의하여 서술된, 사진집에 의한 지지라는 점에서「광주향토사진첩」은 50년의 역사를 뛰어 넘어 사진에 의한지지 서술을 가능하게 한 시발점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사진은 오늘날 의사소통과 지리적 지식 전달의 영향력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publishing background and the contents of a Book of Photographs about Gwangju area (1959), and is to propose the regional geography with photographs. The book had 730 photos (figures 549, architecture and landscape 181), which composed with 24 regional topics. The book helps geographers write the regional study with photos, nevertheless emphasizing the history and describing the heads of the local institutions. After gathering photos including it, a Historical Photo-Geography of Gangdong (2004), the title of Photographs in the History of Gangdong is published. Two books to overcome the time lag shows the possibility of writing the regional geography with photographs because photos means the text and the influential media to communication and to convey the geographical concepts to the public.

      • KCI등재

        근대식민주의에 대응한 생활문화

        김정하(Kim, Jung-ha) 실천민속학회 2018 실천민속학연구 Vol.32 No.-

        이 글은 최근까지 대청마루나 안방, 거실, 그리고 각종 관공서와 회사의 회의실, 응접실 등에 걸리던 초상사진의 연원과 내력을 근대기 일제의 식민주의의 영향에서 찾으려는 시도다. 일제가 정치기술서 활용한 천황의 ‘어진영’ 보급제도가 대한제국 황제의 ‘어진’ 보급과 일반인에게서의 초상사진 유행과 상례에서의 영정사진 사용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가설 아래 논의를 전개시켰다. 메이지시대 일본은 자국 내에서 천황의 ‘어진영’을 숭배하도록 국민을 훈육하였으며 이를 식민지에서도 시행하여 근대식민주의를 파급시키고자 획책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은 일본의 제도를 참고하여 ‘어진’을 제작, 보급함으로써 독립성을 얻으려 했고 일반인들은 황제 ‘어진’의 소유로 독립에의 열망을 표현하여 했다. 그러나 조국이 멸망하기에 이르자 일반인들은 초상사진의 소유를 ‘존재 확인’의 수단으로 삼기 시작하여 초상사진이 식민지에서의 계급적 불평등을 강요하고 체제에의 순응과 규율에의 순종을 부추기는 도구임을 알면서도 이를 생활문화로 정착시켜 조상이나 가장의 초상사진을 대청마루에 게시하는 풍속을 정착시켰다. 이처럼 한국인은 근대식민주의에 대한 반응양식으로서 초상사진의 사용은 외세의 지배에 대한 독립의 의지를 드러내거나 근대식민주의 정치기술에 순응하는 한편으로 이를 적극 활용해 스스로 생활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실로 다양한 인식의 표현방식이었다. 이런 식민지 일반인의 생활방식이 비록 근대식민주의의 문화를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지만, 여기서 상대적으로 더욱 주목하는 바는 식민지배자가 전해준 수단을 활용해 신민지배에 맞서는 ‘저항적 혼종’의 일환으로 생활에서의 주체성을 살려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처럼 국민과 식민지인을 훈육하려 했던 근대기 정치기술로서의 초상사진 보급은 지도자의 권위를 구축하려는 민족국가나 세습체계로로 정권을 존속시키는 북한에서도 유사하게 시행되었다. 남한정부가 이승만을 위시한 대통령의 초상사진을 각급기관과 학교에 게시하거나 김일성을 비롯한 지도자의 초상을 목숨을 걸고 지키거나 가정에까지 보존토록 장려하고 있다. 아울러 일제가 메이지시대 ‘국가가족주의’를 내걸고 천황일가의 사진을 보급하던 관행이 대한제국의 황실가족사진 보급으로 이어졌는데, 이 역시 독립된 국민국가에서 대통령의 가족사진을 제작해 일반인에 공개하며 국민을 가족의 일원으로 소환하는 정치기술로 답습되었다. 이런 국가적 정치기술은 일제시대 이래 일반인의 가정에서 조상이나 가장의 초상사진을 대청마루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전해졌고, 국가지도자 가족의 사진을 보급하는 관행도 식민지에서 뿐 아니라 독립 이후의 가정에서 가족사진을 촬영해 게시하는 풍속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조상이나 가장의 초상사진이나 가족사진을 벽에 거는 관습은 근대기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대식민주의에 반응하는 양식으로서 이어져 내려오며 정착한 생활문화였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것은 일반인들은 제국의 신민통치나 국민국가가 구사하는 훈육수단의 정치기술을 마지못해 수용하면서도 이를 도구나 수단으로 삼아 스스로가 생활의 주체임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바로 그 점이 한국의 현대민속으로서 생활문화가 지닌 특성이라 하겠다. This treatise aims at explaining about the origin and history of the portrait photo usually hang on the wall of living room at home and conference room at company. To clarify such origin and history, this treatise put forward a hypothesis that the worship institution for Emperor’s portrait photo in Japanese Empire affected to all the cases of Korean’s living culture related with that from modern times to present times, and try to prove the hypothesis. Really, the worship institution for Emperor’s portrait in Japanese Empire, affected to that of dissemination of Emperor’s portrait in photo in Korean Empire, it also affected to citizens’ popular trend to own portrait photo and to use it as deceased person’s. Furthemore the affection was found out at many aspects as political technique to lead nation people. Especially, Japanese Empire tried to discipline and educate domestically and to use it as tool of spreading modern colonialism in colonized countries. Through this process, Korean Empire tried to spread Emperor’s portrait to citizens, and Korean people wanted to own it as expression of eagerness for independence of Korea. As time passed by, Korean people wanted to make portrait photo as means of identification of self-existence and as living culture with various cognitions and attitudes as hostility, envy, exclusion and acception. According to the settled custom to hang portrait photo on the wall, such convention hanging national leader’s portrait photo at public building have been realized in Korea and North Korea nowadays. Like these origin and history, the custom of hanging portrait photo have been formed as reactive manner against modern colonialism, and handed down as symbol of family nationalism and Korean’s living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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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수 사진의 기록성과 모더니티의 성격

        이광수(Lee, Kwangsu)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9 코기토 Vol.- No.88

        이 글은 사진가 한영수의 다큐멘터리 사진의 기록성과 모더니티의 성격에 대한 분석이다. 분석의 대상이 되는 자료는 사진가가 1956~1963년이라는 한국전쟁 직후에 남긴 주로 서울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다. 그의 사진은 미적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 그가 기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거나 그의 사진이 기록으로서의 성격을 갖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렇지만 한영수는 당시 같이 활동했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과 역사와 사회를 보는 눈이 그리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부르주아적이었고, 그것을 기록하는데 심미적 태도를 중시하였다는 사실이다. 한영수는 부잣집에서 자라 전쟁 후에도 특별하게 노동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치스런 삶을 영위할 정도의 재산과 고상한 취향을 가질 수 있었다. 댄디 사진가로서 그는 부유층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부르주아 사회의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였고, 그래서 유행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가 보는 전쟁 후 한국 사회는 새로운 유행이 퍼지면서 사람들 간에 서로를 구분하고 변화하고 부각시키려는 경향을 만들어가고 있던 사회다. 당시 부유층은 자신들의 신분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구별 짓기 차원에서 다른 생활양식을 보여주어야 했으니, 한영수는 바로 이 점을 보았던 것이다. 거의 같은 시기 부산에서 활동하던 최민식이 가난을 통해 삶의 끈질김을 보는데 집중했다면 그와는 달리 한영수는 유행을 통해 회복하는 삶의 에너지를 본 것이다. 한영수가 사진으로 담은 전쟁이 끝나고 ‘회복하는’ 시기에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갖지 않고, 자유와 기술의 진보 발전의 측면을 주로 보았다. 한영수의 사진에 인구 과밀화, 판자촌, 도시 문제와 같은 거시 사회문제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역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한영수의 사진은 전후의 어두운 시대에 자유주의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미적 모더니티를 살려 감각적으로 기록하였다. 이것이 한영수 사진의 가장 우선적인 가치다. This paper discusses on the character of photography of Han Youngsoo. He is widely known to be one of the masters of Korean realist photography of post-Korean War period to show the masterpieces of modernity. Nobody can deny his perfect composition, framing and timing to be regarded as a brilliant art work with high-end of modernism. Participating in the most terrible Korean War, Han returned to Seoul to find a devastated city. However, he never witnessed brutal frustration but impressive transformation of the people to restore the country. He saw the rapid restoration of a modern city and urban society. What he didn’t wish was not to see the devastated streets but the streets filled with vigor and energetic modern city. His photographs show us a fascinating window onto the everyday lives of the people with dreams and wished. Han paid special attention to the changing status of Korean women who are in vogue of modern society after war. He never hesitated to catch the scenes from fashion boutiques, cinemas, coffee-shops and tram of Seoul. He was a photographer with recording consciousness on the basis of bourgeois eye on th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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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적인 것’의 진화 : 1980년대 이후의 타블로 사진을 중심으로

        손영실 ( Sohn Young Sil ) 한국기초조형학회 2017 기초조형학연구 Vol.18 No.6

        본 연구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타블로 사진이 대형 사이즈, 컬러 프린트의 적용과 사진과 관람객의 대면적 경험을 강조하며 자율적인 형식으로 정립되는 가운데 전통적인 사진 체계로부터 분리를 가속화시키며 픽처로서의 사진의 위상을 부여했음을 보여주었다. 타블로 사진의 대표적인 작가인 제프 월, 토마스 루프, 토마스 스트루스, 안드레야스 구르스키의 사진들은 지표성에 기반한 사진 이론 논의의 무력함을 드러낸다. 새로운 타블로 사진은 회화의 의미화 방식을 지향하면서도 작품과 관객 간의 강화된 거리를 통해 관람자와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의 타블로의 사진적 재구축을 통해 사진으로서의 예술을 지향한다. 1990년대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사진에서 지표성을 넘어선 도상적 전략의 논의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타블로 사진은 새로운 사진적 모델로 구축되며 상호학제적(interdisciplinary) 특성과 재현물인 동시에 인공물로 의도된 사진 이미지의 파라독스한 측면을 통해 사진적 재현의 문제를 급진화하고 사진 매체의 예술적 확장을 위한 인터페이스로 작용하며 사진적의 것의 진화를 보여주었다. This study have pursued the evolution of the photographic begun from the sudden transition by new art photography of tableau form after 1980s. Tableau photography is characterized by big size, color print, edition, without regard to traditional photographic practices. The artists such as Jeff Wall, Thomas Ruff, Thomas Struth, Andreas Gursky had started this tendency and revealed feebleness of the theoretical discussion of photography concerning index. Tableau photography has aimed the way of signification of painting and also asserted the unicity as photography and approached art as photography more than photography as art. The development of digital technology in 1990s has accelerated the discussion of iconicity beyond indexiality. Tableau photography constructed as a new photogrpaic model, have evolved, radicalizing the problem of representation with interdisciplinary and paradoxical a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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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적 행위에 대한 작품분석 연구

        유재길(Yoo Jae kil),장숙(Chang Sook) 한국조형디자인학회 2015 조형디자인연구 Vol.18 No.2

        포스트모던시대로 들어서면서 사진이 갖는 매체로서의 역할은 다른 어느 때보다 많은 기대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진의 재현 능력은 회화와는 다른 존재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사진은 형태의 묘사뿐 아니라 물리적 인과관계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기계적이고 화학적인 과정을 거쳐 빛이 남긴 자국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진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하여 의미의 다양한 층위를 해석할 수 있는 기호학적 관점을 갖고자 하였다. 특히 기표와 기의의 이원론적 관점에서 벗어난 퍼스의 이론 중, 지표성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더 나아가 지표성을 바탕으로 한 두 비평가의 비평적 관점을 취하였다. 첫 번째는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사진적인 것(The photographic) 개념으로, 절대 닮음의 도상으로의 사진이 아닌 그 대상의 물리적 인과관계로 드러나는 인덱스적인 사진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크라우스는 지표성의 근원을 뒤샹(Duchamp)에서 찾고 있다. 두 번째로 필립 뒤부아(Philippe Dubois)의 사진적 행위(L'acte photographique) 개념으로, 사진과 실재의 직접적인 관계에 집중한다. 이러한 개념들을 바탕으로 빅 무니츠(Vik Muniz)의 사진을 분석해보았다. 무니츠의 작품은 대상을 재현하는 입장에서는 지표이며 존재의 기호라고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본고에서는 사진이 지표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입장을 기본으로 하며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미층위가 존재한다는 점을 논의하였다. Postmodernism led photography as a medium of visual communication to gain more attention, as it reproduced reality with its own image style that was separated from the painting arts. Photography not only can be seen as an entity describing the world in frames, but it also can be understood as a causality giving body to light through mechanical and chemical processes. Semiotics carries wieght with photography because it paved the way for images to be interpreted with diverse ideas. Charles S. Peirce's semiotics enabled critics to theoretically read images. It is different from traditional semiotics by unveiling its tendency to understand signs from structuralism and to comprehend the signified meanings from dualism. Peirce's theory is based on two significant concepts : iconicity reproducing the objects and indexically recording the trace of the objects. This study applies Pierce's theory of indexicality dealing with photography as existential quantifier. This also seeks to handle other theorists who gave a meaning to expandability of the indexicality, including Rosalind Krauss's The Photographic, Philippe Dubois's Pictorial Act, Moreover, this study applies indexically into analyzing Vik Muniz and Marcel Duchamp's works. Photography can be seen as an index and symbol of entities in embodying the subjects. But it can also be said that photography has layers composing its meanings of itself. This study is set based on the expandability starting from the idea that photography has indexical characteristics. With this position, this study will be a discussion about questioning the expandability to make sure there are other layers that specify the indexic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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