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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일본 고대 목간의 계보

        三上喜孝 한국목간학회 2008 목간과 문자 Vol.1 No.-

        본고는 일본 고대목간의 계보를 더듬어 찾고자 하는 관점에서 한국의 출토목간에 주목하고, 양자를 비교 검토함으로서 그 특질을 부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선 기록간에 주목하면, 첫머리에 날짜를 기입하고 그 아래 인명에 할주를 나란히 쓰는 기재양식이, 한국출토의 6세기 목간과 일본의 7세기 목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목간에 보이는 독특한 용자법도 한국 출토목간과 일본의 7세기 목간에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더욱이 『논어』를 기재한 목간이 한국과 일본에서 출토하고 있는 사실은, 『논어』가 백제에서 자져온 것이라고 하는 『고사기』의 전승과 아울러 문자문화의 수용이 한반도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출토목간과 일본 고대목간을 비교하면, 7세기의 지방목간과 많은 공통점을 보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현저한 것이 近江지역(현재 滋賀현)에서 출토된 7세기 목간이다. 한자를 일본어의 어순으로 나열해서 기록한 西河原森ノ/內遺跡 출토목간은 한국의 壬申誓記石에서 볼 수 있는 문체를 상기시킨다. 湯ノ部遺跡 출토의 『牒』 문서양식을 가진 목간은 6세기대로 추정되는 신라 月城垓子 출토 목간인 『牒』목간의 계보를 이어받는 것으로 봐도 좋다. 7세기 近江지역 출토의 목간과 한국 출토목간 사이에 이러한 공통성이 보이는 배경에는, 이 지역이 한반도의 도래인이 집주하고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지만 단지 이것이 近江지역만의 특수성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일본 고대사회에서 목간이 왕성히 사용된 것은 같은 시기에 한반도에서 목간이 사용되고 있었던 사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열도에 문자문화를 가져온 도래인이 그와 동시에 목간에 의한 정보 전달기술도 가져온 결과, 정보 전달매체로 목간의 유효성이 확인되고 일본의 율령국가 통치기술의 하나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 KCI등재

        古代日本의 荷札

        馬場基 한국목간학회 2008 목간과 문자 Vol.2 No.-

        본고는 하찰목간을 통해 알 수 있는 일본 고대의 物流 상황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축으로 소개·검토하여, 한국에서도 다수 출토되고 있는 하찰목간의 분석방법과 그 성격, 이용방법에 관한 연구를 한일 양국에서 공유하고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선 하찰목간을 통해 在地社會에서의 물류 상황를 검토하였다. 安芸國分寺 출토 하찰목간에서 國分寺의 경영 실태 등을 大宰府 출토 목간에서 大宰府 주변 물자의 움직임과 하찰목간의 양상 등을 밝혔다. 이것은 하찰목간을 樹種과 가공방법 그리고 書風을 아울러 검토한 결과로 도출된 물류의 구체적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도성출토 하찰을 검토하였다. 하찰의 작성주체를 둘러싼 논의와 하찰의 기능론 등, 도성출토 하찰의 선행연구를 정리함으로서 몇 가지 사견을 제시하였다. 첫째, 하찰목간 중에서도 특히 강한 지역적 특색을 가진 ?岐國 하찰목간이 天平연간에 그 양상이 크게 전환되는 것을 지적하였고, 이러한 양상이 재지 사회와 그 지배방법의 변화와 대응할 기능성을 지적하였다. 둘째, 同文荷札(묵서 내용이 동일한 하찰이 複數 발견된 예)의 분석에서 하찰목간의 제작상황 및 荷物에 대한 장착상황을 복원하여, 목간이 작성된 장소와 기능에 대해 검토하였다. 동문하찰은 어느 한쪽을 하물 속에 봉입하여, 바깥의 하찰이 떨어져 없어지거나 바꿔 달릴 우려를 없애려고 사용하였다고 생각된다. 셋째, 부찰목간과 하찰목간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서 하찰목간이 부착되어 도성까지 운반되어 온 물품에 새로운 부찰이 제작되어 장착된 경우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 부찰들이 聖武天皇·光明皇后 夫妻의 신변에서 이용되었던 것도 확인하였다. 넷째, 하찰에서 복원된 일본고대의 소금 생산·수탈·유통 등 여러 가지 모습들을 검토하였다. 문헌사료 등에서 알 수 있는 고대 소금의 상황, 유적에서 알 수 있는 소금 생산의 상황, 하찰목간에서 알 수 있는 소금의 소비기한과 하찰목간의 형태와 장착방법, 또한 목간출토 유적의 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若狹國에서는 보존용의 固形?(덩어리 소금), 周防國에서는 소 비용 散狀?(가루 소금)이 납입되었고, 이러한 소금들은 생산방법을 포함해 국가적인 규제 아래 대량생산되었다는 것, 또 이렇게 공납된 소금 이외에 제염 토기에 채워져 도성주변에서 유통하는 소금도 존재하였던 것 등을 규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검토를 근거로 하여 하찰목간의 기능·성격과 물자의 공납·운송시에 수행했던 역할을 분석하였다. 調荷札은 「帳簿의 分身」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장부라는 데이터와 실제 물품 내용을 결부시키고 整合하게 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었음을 규명하였다. 그리고 贄하찰에 대한 분석에서는 「進上狀」이라 불리는 문서로 다루어지는 목간과 대단히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물자를 수송할 때의 구두 연락과 물자에 대한 부찰의 장착이라는 원초적인 모습이 율령제적으로 전개되었음을 지적하였다.

      • KCI등재

        形態와 記載樣式으로 본 日本古代木簡의 特質

        三上喜孝 한국목간학회 2009 목간과 문자 Vol.3 No.-

        일본의 목간연구는, 목간의 형태적 특징에 주목해 형식분류를 한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내용에 의한 분류는 아니고, 「형식번호」에 의한 분류를 제1로 한 것은 목간을 고고자료로서 취급하려는, 말하자면 일본의 목간연구의 자세를 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고대목간의 특징적인 형태로서, ① 단책형, ② 단책형의 상, 하 양단 혹은 一端을 잘라 홈을 넣은 것, ③ 材의 一端을 칼끝 모양으로 날카롭게 한 것 등이 있고, 그 외 목제품으로 묵서가 있는 것과 목간의 표면을 깍아 만들어진 박편(삭설)도, 목간으로서 분류되고 있다. 그런데 목간의 형태적 특징은 목간의 사용법이나 기재내용과 깊이 관련된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물건에 매달아 붙인 부찰(하찰) 목간에 주목하면, 하단부를 칼끝 모양으로 성형했던 하찰목간이 쌀과 소금과 같은 모래 알갱이 모양의 공진물 하찰의 특징적인 형태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으며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물품의 외측에 장착시킨 것이 아니라 물품의 중앙에 넣어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하는 견해가 나타나고 있다. 또, 볍씨를 넣었던 쌀가마니에 붙인, 소위「種子札」은 품종명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기재내용뿐만이 아니라 부찰의 형상에 의해서도 품종명이 식별가능하도록 궁리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부찰(하찰)목간의 형태적 특징은 그 사용법과 기재내용 등과의 유기적 관련을 부여함으로써 이해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부찰(하찰) 목간 중에는 공진물의 명시라고 하는 기능 외에도 문서와 장부의 원자료로서의 기능이 부가된 경우도 있어 각각 그 기능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장부목간(기록간)에 주목하면 일반적으로 장방형의 형상을 가진 장부목간은 동일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던 장부는 동일한 규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더욱이 종이 장부를 의식했던 기재법을 취하는 것도 있는데, 장부목간은 종이에 의한 기록기술의 발전으로 서로 그 기재양식을 궁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상 일본고대목간 가운데 부찰(하찰)목간과 장부목간에 주목해 검토해보면 형태면에서 부찰(하찰)과 장부라고 하는 분류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해도 그 내실은 다양한 기능이 부가되었던 경우가 있으며, 매우 복잡하다. 형식분류를 근거로 한 다음 각각의 목간에 대한 기능을 다시 상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부찰목간이든 장부목간이든 각각의 場에 부수해 작성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목간은 매우 유력한 형태이며, 그렇다고 하는 점은 공통되고 있다. 정보전달수단으로서의 목간의 유력성은 이러한 점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상의 성과를 근거로 해서 한국출토목간과 비교하여 보면 목간으로서 사용한 材에 제약되는 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형태와 기능에는 일본의 고대목간과 공통된 것이 있다고 생각되고 이러한 검토의 전제로서 한국출토목간에 있어서 형식분류의 연구 진행이 무엇보다도 우선 되길 바라는 것이다.

      • KCI등재

        『한국사』 교과서 속의 고대 목간 자료의 활용 -『日本史B』 교과서와의 對較를 중심으로-

        정선화 한국목간학회 2018 목간과 문자 Vol.0 No.21

        Starting with the 2007 revision of the curriculum, middle school history (issued in 2011), the school considered the description of the ancient wooden tablets contained in the revised curriculum (issued in 2013) of high school year. In March this year, Japan’s history textbooks were published after reviewing descriptions of the wooden tablets of middle school history textbooks. In response, he examined the history textbook of Japan as a comparative example to examine whether the description of the wooden tablets in the high school history textbook reflects the latest achievements of the history studies in the right place. From the 1990s, which was earlier than Korea, Japan has included the ancient wooden tablets in its history textbooks. 『Korean history』 textbooks contain more wooden tablets than Japanese textbooks. However, there were considerable differences in the method of writing wooden tablets and the method of selecting them. While Japan clearly described the value of the wooden tablets as the primary historical materials in its history textbooks, it can be seen that Korean history textbooks contain many descriptions that are not limited to the achievements of history studies. The description of the wooden tablets should clearly describe the characteristics of the primary data and accurately reflect the achievements of the history studies. From a perspective, the descriptive features of the ancient wooden tablets in the 『Korean history』 textbook were reviewed to suggest problems and improvements. 본고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2013 발행) 『한국사』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고대 목간의 서술 현황을 검토하는데 목적이 있다. 올해 3월 역사교육연구회를 통해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목간 관련 서술 내용을 검토한 글을 게재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한국사』 교과서에 목간 관련 서술이 역사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를 적재적소에 잘 반영하고 있는지를 검토하기 위한 비교 사례로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살펴보았다. 일본은 우리보다 빠른 시기인 1990년대부터 고대 목간 자료를 역사교과서에 수록하였다. 山川出版社, 東京書籍, 実敎出版에 기재된 고대 목간은 「長屋王家」 관련 목간, 「郡·評論爭」 관련 목간, 「天皇」 호 관련 목간 등 3종류로 대별된다. 『한국사』 교과서는 고대 목간이 수록된 6종의 교과서에 6종류의 고대 목간이 등장한다.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목간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목간의 기재 방식이나 목간의 선정 방식에서부터 상당한 차이를 있음을 발견하였다. 일본은 역사교과서를 통해 1차 사료로서의 목간의 가치를 분명하게 나타나도록 서술한 반면,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단순한 소개차원이거나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에 반하는 서술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목간 관련 서술은 1차 자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잘 나타나도록 서술하면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정확히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면 측면에서 『한국사』 교과서 속의 고대 목간 관련 서술상의 특징을 검토하여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 KCI등재

        百濟木簡의 형태분류 검토

        박지현(朴芝賢) 한국목간학회 2013 목간과 문자 Vol.11 No.-

        목간의 형태는 목간을 분류하는 기본적인 특징이며, 목간의 용도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목간은 처음부터 용도를 염두에 두고 제작되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출토된 백제목간은 그 출토량이 신라목간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호적, 도량형, 제사의례, 지방제도 등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출토된 목간들의 형태도 매우 다양하다. 이에 발굴보고서의 보고 내용을 바탕으로 각 유적지에서 출토된 목간의 형태상의 특징들을 정리해 보았다. 기존의 목간도록 (『韓國의 古代木簡』,『 나무속 암호 목간』등)에서는 백제목간의 일부분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현재 출토된 모든 백제목간들을 정리하였다. 이어서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목간 형태 분류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한국학계에서는 목간의 형태를 분류한 몇몇 견해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각각의 분류안에서 사용하고 있는 표현과 용어가 달라서 연구자들 간의 혼동과 오해의 餘地가 있다. 따라서 일원화된 형태분류체계가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목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 KCI등재

        7세기 신라・왜의 대외교섭과 贈物 -‘미츠키(調)’를 중심으로-

        강은영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22 한국고대사탐구 Vol.40 No.-

        In the Ritsuryō(律令) system of ancient Japan, the basic tax items are So(租)、Yō(庸)、Chō(調), as in the Tang(唐) dynasty. However, in the Nihon Shoki(日本書紀), all the gifts from the three Kingdoms are written as Chō(調). For the Japanese imperial court, which wants to maintain the decree system, the gift from Silla was recognized as one of the Tax collection methods. In the study, we considered why the Tax Chō(調) was recognized as a diplomatic Chō(調), and what role it played in establishing diplomatic rights centered on the emperor. In the middle of the 7th century, the Tax Chō(調) of the Taika Reform Edict is composed of textile products and local products. Even in the 8th century Yoro Code, the Tax Chō(調) is composed of textile products and the actual product. Of these, the actual item is a trace of the Nie(贄) system that promotes the goods that were cultivated through joint collaboration under the old chief to the imperial court. In the pre-Taika era, it was customary for the emperor or the imperial court to co-promote seafood called Nie(贄). However, it does not appear in official history books. However, it was confirmed through the wooden tablets(木簡) that the Tax Chō(調) and the items of the Nie(贄) overlap. In other words, the Chō(調) includes the meaning of textile products and in-kind products dedicated by the community belonging to the emperor. When the emperor's power was established, it is natural to set Silla as Bankoku(蕃国) and stipulate that the gift from Silla is the Mitsuki(調). In the pre-Taika era, Silla's gifts were divided into Chō(調) for the imperial court and Special offering(別献物) for his vassals. When the emperor's power was established, the special offering belonged to the emperor instead of his vassals. In the latter half of the 7th century, Silla regarded Japan as Bankoku(蕃国) through a special offering, and Japan regarded Silla as Bankoku(蕃国) through the Chō(調). 고대 일본에서는 율령제하에서 당과 마찬가지로 조용조가 기본적인 세목이다. 그런데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에는 삼국에서 보낸 증물이 거의 모두 ‘調’로표기되어 있다. 8세기 율령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재생산하고자 했던 일본 조정에게신라 측의 증물은 조세수취방식 중의 하나인 ‘調’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고대 일본의 수취체제인 ‘調’가 어떠한 이유로 외교 석상의 증물인 ‘調’로 인식되게 되는지, 그리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외교권이 확립되는 과정 속에서 ‘調’가어떠한 역할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7세기 중후반대의 상황을 나타내는 대화2년의 조서에서는 일본의 調는 섬유제품을 납부하는 기본적인 調와 향토의 소산인 調副物(鹽과 贄)로 구성되어 있다. 8세기대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양로 부역령에 의하면, 조는 絹・絁・糸・綿・布의 섬유제품을 납부하도록 되어 있고, 현물로서 조잡물과 조부물이 있었다. 대화2년의조부물은 양로 부역령의 조잡물과 성격이 겹친다. 따라서 고대 일본의 調는 섬유제품과 현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중 현물은 구래의 수장층 아래에서 공동체적인 협업을 통해 마련한 물품(調・贄)을 야마토 조정에 진상하는 ‘贄제도’의 흔적이다. 大化 이전 시대에 해산물을 주축으로 하는 식료품을 贄라는 명칭으로 천황혹은 조정에 공진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사서에서는 ‘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목간을 통해調와 贄가 몇 가지 물품을 제외하고는 품목의 내용이 대체로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調에는 천황・조정의 지배에 복속한 공동체가 바치는 섬유제품과현물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외교권이 확립되는 시기에신라를 비롯한 삼국을 번국으로 설정하고, 삼국 특히 신라에서 보낸 증물을 ‘미츠키(調)’로 규정한 것은 당연한 절차였을 것이다. 대화 이전 시대부터 신라가 왜에 보내는 증물은 ‘섬유제품 중심의 調+진귀한물품인 別獻物’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고, 調가 공적인 外廷에 보내는 물건이라면, 조 이외의 다른 헌물은 야마토정권의 외교에 참여하는 大臣과 大夫에게 보내는 물건이다. 調의 다중적인 특수성 때문에 외교담당자에게 따로 제공하는 물품들이 존재하였으며, 천황의 외교권 확립을 통해 일부 대신・군경에게 제공되었던 ‘별헌물’이 천황가로 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근대 동아시아의 조공-책봉관계에서 조공국이‘별헌’한 사례는 보이지 않으며 피조공국이 조공국의 국왕뿐만 아니라 왕비・태자・ 대신들에게 별도의 물품을 내렸다는 견해와 신라의 조와 별헌물이 신라의 선진의식과 자부심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견해를 참조한다면, 7세기 후반 신라와 왜는 각자 양국의 외교관계에 대해 이중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신라는“별헌물”을 통해 왜국을 ‘번국’으로 인식하였다면, 왜국은 “調”를 통해 신라를 ‘번국’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즉 7세기 후반 신라는 ‘조’와 ‘별헌물’을 왜국에 전달하면서 당의 국제질서에 반발하였다면, 왜국은 이를 통해 외교권을 군주의 권한으로 편입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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