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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한국철학회 2003 철학 Vol.77 No.-
본 논문은 전통의 해석학에서 해결되지 못한 쟁점들, 즉 주관과 객관, 방법과 진리 그리고 언어성간의 대항적 관계를 폭력의 해석학이라는 시각에서 다룬다. 논자는 텍스트의 이해에 있어 주관과 대상간의 상호관계성, 융합가능성, 순환성이 배제된 해석은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에 주목하고 텍스트의 본래적 의도를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 기투가 갖는 권력 관심을 분석하고 허용 가능한 폭력의 범위를 제한하고자 한다. 해석의 폭력성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저자의 본래 의도에서 벗어서 새롭게 의미를 재구성하는 자유를, 그러나 부정적인 의미에서 근원적 저자를 지우고 단지 자의적인 조작의 형태로 텍스트를 변형시키는 위험성을 지닌다. 이러한 해석학의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논자는 전통적 해석학이 세 가지의 특징을, 즉 실재론, 보편성, 언어 물활성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니체의 논의를 중심으로 근대의 탈가치화(허무주의)가 초래하는 전통의 소멸이라는 해석학에서의 총체적 위기위식을 드러내고자 한다. 즉 세계의 창조자로서의 신의 지위의 박탈은 저자와 독자, 창조자와 피조물간의 이해의 연결 고려를 파괴하고, 근원적 의미의 부재는 텍스트와 세계로부터 기술가능한 근원적 주체로서의 신에 대한 괄호 치기이며 동시에 다르게-해석하기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언어 이론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는 해체 전략은 해석가능성의 대상과 한계를 명료화한다. 의식적 주체(코기토), 저자, 신의 해체를 통하여 폭력의 해석학은 반실재론으로 귀결된다. 밖에 대한 극단적인 회의주의는 광인의 독백으로서의 유아론이며, 이것을 극복하고 실재를 되찾기 위한 계기는 바로 몸이다. 의식의 명증성이 아닌 몸의 고통을 통하여 실재성을 회복하게 될 때 몸은 주관과 객관, 물음과 대답의 해석학적 순환이 무의식으로 일어나는 교차점이다. 여기서 텍스트성보다 가시성의 영역, 의식보다는 판타지라는 요소가 해석을 매개한다. 해석은 신체의 미학적 표현을 통하여 가시성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텍스트를 넘어서서 타자의 다름을 이해하는 새로운 출구를 마련하게 된다.
니체의 시간에 대한 해석 - 동일성의 반복과 차이의 반복 -
강용수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8 인문과학연구 Vol.0 No.19
Diese Arbeit zielt darauf, Nietzsches Interpretation von der Zeit im Mittelpunkt der ‘ewigen Wiederkehr des Gleichen’ zu interpretieren. Obwohl es zahlreiche Forschungen über dieses Thema gibt, fehlt es an der systematischen Analyse der Zeitstruktur. Ich mache Aufmerksamkeit darauf, die ewige Wiederkehr besteht aus dreifachen Stufen, d.h. alltäglichen Zeit, sich wiederkehrenden Zeit und werttheoretische Zeit. Das zentrale Thema ist die Selbsttherapie, daß́ Einzelne durch Erinnerung und Vergessen aus Leiden der Vergangenheit emanzipiert und erlöst werden. Deleuze's ‘selektive Ontologie’, besteht im Unterscheiung der zwei Prinzipien, des Aktiven und Reaktiven. Problematisch ist, die Anerkennung zwischen Herren und Sklaven nach dem Prinzip der Seletivität kein Sinn haben. Es ist erklärungsbedürfig, wie der widerprecheder Begriff der Wiederholung der Gleichheit und der Differenz durch ewige Wiederkehr rechtfertigt. Ich bin kritisch gegen Deleuze’s Position, daß sich keine Gleichheit, sondern Differenz in der ewigen Wiederkehr wiederholt. Wenn Andere, die nicht wiederkeht wird, negiet wird, wird die postive Lebenseinstellung(amor fati) logisch falsch sein. Ich bin der Meinung, daß der richteg Sinn der Wiederkehr des Gleichen Sorge und Toleranz gegenüber diejenigen, die wir in Zukunft wiederholed troffen werden. 본 논문의 목적은 니체의 시간해석을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를 중심으로 분석하는데 있다. 니체의 철학을 대표하는 키워드인 영원회귀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시간의 중층적 구조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논자는 영원회귀가 일상적 시간, 순환적 시간, 가치적 시간의 구조로 이루어졌음에 주목하고 세 가지 해석을 체계적으로 밝히는 작업을 진행한다. 더 나아가 기억과 망각을 통해 개인이 과거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구원되는 치유의 문제뿐만 아니라 타자와의 공존관계도 모색하기 위해 들뢰즈(G. Deleuze)의 ‘선택성’이론과 反변증법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주인과 노예의 認定(Anerkennung) 문제를 다룬다. 동일성의 반복과 차이의 반복이라는 모순된 개념이 영원회귀를 통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밝히면서 논자는 영원회귀를 통해 반복하는 것이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라는 들뢰즈의 주장에 비판적 입장이다. 즉 선택적 회귀만을 인정하다보면 삶에 대한 적극적, 긍정적 태도인 운명애(amor fati)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고 회귀하지 않는 타자를 배제하게 된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논자는 니체의 영원회귀가 갖는 사회철학적 함의는 다시 만나게 될 타자에 대한 긍정과 배려라는 입장이다.